2012 / 11 / 05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11월 6일, 미국 대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오바마와 롬니의 접전 속에서 오바마의 재선이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새사연은 이미 미국 대선과 관련하여 오바마를 공개지지한 워싱턴 포스트의 사설(http://bit.ly/TsrE1r)을 소개한 바 있다. 또 미국 대선의 핵심은 민주주의와 자유기업의 싸움이라 평했던 라구람 라잔 교수의 글(http://bit.ly/RAk2xJ), 사회적 책임감의 문제로 보았던 세계 최대 채권 투자회사 핌코(PIMCO)의 CEO 에리언의 글(http://bit.ly/WoyxsP), 롬니 후보의 탈세가 문제인 이유를 지적한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의 글(http://bit.ly/TsrDKX)을 소개했었다.

미국 대선 전 마지막 글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스티글리츠 교수의 글을 소개한다. 그는 미국의 선거는 미국만의 선거가 아니라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선거라고 규정하면서, 전세계적 의제로 기후변화와 금융규제, 환율을 비롯한 무역의 문제를 꼽았다. 그리고 이 세가지 의제에서 왜 롬니 후보가 부적격한지를 비판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롬니의 정책은 부시와 크게 다를바가 없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기후변화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있으며, 금융 문제에 있어서는 롬니 자신이 금융세력이기 때문에 올바른 규제 정책을 기대할 수 없고, 중국과의 환율전쟁을 불러 일으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오바마의 재선이 전세계를 위해 더 나은 선택이라고 주장한다.

 

전세계적인 미국의 선거

(America's Global Election)

 

2012년 11월 1일

프로젝트 신디케이트(Project Syndicate)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E. Stiglitz)

다가오는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는 세계 많은 이들에게 매우 큰 영향을 미치지만,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은 투표권을 갖지 못한다. 미국 시민이 아닌 이들 중 대부분이 버락 오바마가 미트 롬니를 이기고 재선에 승리하기를 바란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경제적 관점에서, 롬니가 펼치려는 정책은 더 많은 불평등과 사회적 대립을 만들어낸다. 물론 이것이 직접 해외 다른 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거은 아니다. 하지만 과거에는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다른 나라들이 미국의 사례를 따라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1930년대 전 세계의 경제 침체를 가져왔던

로날드 레이건의 규제없는 시장이라는 주문을 많은 나라들이 따라했다. 미국을 따라한 국가들은 점점 심각해지는 불평등을 경험하고 있다. 상위층에게는 점점 더 많은 돈이 가고, 하위층은 점점 더 가난해지고, 중산층은 점점 더 약해지고 있다.

롬니는 미국 경제가 여전히 허약한 상태에서 과도하게 빠른 재정 감축을 추구하는 긴축 정책을 제안하고 있다. 이는 이미 약해진 미국의 성장을 확실히 더 약화시킬 것이며, 만약 유로 위기가 악화된다면 또 다른 침체를 맞게 될 것이다. 세계의 다른 국가들은 미국의 수요가 감소하는 것을 통해 미국 대통령 롬니가 가져온 경제적 효과를 매우 빠르게 직접적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국제 사회 공동체에서 많은 측면에서 협력해야만 하는 세계화의 시대이다. 하지만 무역, 금융, 기후변화와 다른 중요한 문제들을 위해 필요한 일들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많은 사람들은 미국의 리더쉽 부족이 실패의 이유 중 일부라고 탓한다. 하지만 롬니는 무모하고 강한 수사를 사용하고 있어, 세계의 다른 지도자들은 그를 따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미국을 그리고 자신들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이는 옳은 판단이다)

미국의 예외주의는 국내에서는 인기가 있을지 몰라도 해외에서는 먹히지 않는다. 조지 부시의 이라크 전쟁, 국제 법을 위반했다고 비판받는 이 전쟁은 미국이 세계의 다른 곳에서 사용하는 군사비만큼 쏟아부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인구의 10%에 미치지 못하고 미국 GDP의 1%에 미치지 못하는 한 나라도 평장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또한 미국식 자본주의는 효율적이지도 안정적이도 않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공식적이 GDP 수치야 어쨌든지 간에 대다수 미국인의 소득이 근 15년 동안 정체되었고, 미국 경제 모델이 더 많은 시민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실제로 부시가 대통령에서 물러나기 전에 이미 미국 경제 모델은 파산했다. 부시의 정부 하에서 인권은 침해되었고, 그의 경제 정책이 가져올 것으로 충분히 예측되었던 대침체가 발생했다.  이는 미국의 소프트 파워(외교력, 문화적 지배력 등 - 역자 주)를 매우 약화시켰다. 마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이 미국의 군사력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킨 것처럼 말이다.

가치의 관점에서, 롬니와 그의 런닝메이트 폴 라이언이 제시하는 가치는 별로 훌륭하지 않다. 다른 선진국들은 의료보험(health care)을 제공 받을 수 있는 권리와 오바마의 건강보험개혁법안(Affordable Care Act)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주목할 만한 성과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하지만 롬니는 이런 노력을 비판하면서 대안을 제시하지도 못한다.

미국은 이제 선진국 중에서 적어도 시민들이 평등한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는 국가라는 특징을 갖게 되었다. 빈곤층과 중산층을 타겟으로 한 롬니의 급격한 예산 삭감은 사회 이동성을 방해한다. 동시에 롬니는 존재하지 않는 적을 향한 무기를 사는데 더 많은 돈을 들이면서 군사력을 확대시킨다, 이는 사회기반시설과 교육에 있어서 공적 투자가 절실하게 필요한 속에서 할리버튼(이라크 유전개발 및 복구기업)과 같은 군수산업자들을 부자로 만든다.

부시가 후보자는 아니지만, 롬니의 정책은 부시와 큰 없다. 오히려 롬니의 선거운동은 높은 군사비 지출, 부자를 위한 세금 감면이 모든 경제 문제의 해결책이라는 같은 믿음, 정확하지 않은 예산 계산 등 부시와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앞서 제기되었던 세계 공통 문제 중 핵심인 기후 변화, 금융 규제, 무역의 3가지 의제를 살펴보자. 롬니는 첫번째 사안인 기후변화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공화당의 많은 이들은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사람(climate denier)들이다. 때문에 세계는 롬니로부터 참된 리더쉽을 기대할 수 없다.

금융규제에 관해서도, 최근의 위기는 파악하기 어려운 더 많은 금융 문제에 대해 더 엄격한 규칙과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오바마 행정부가 금융과 너무 가까웠던 것도 문제의 일부 원인 중 하나였다. 그런데 롬니는 은유적으로 말하자면, 그 자체가 금융부문이다.

금융에 있어서 국제적 합의가 필요한 문제 중 하나는 주로 탈세, 세금 회피, 돈 세탁, 부패를 위해 존재하는 해외 금융 피난처의 폐쇄이다. 그러나 롬니는 케이먼 군도에 있는 은행을 이용한 일에 대해 사죄하지 않았고, 우리는 이 부문에서 롬니가 진보를 만들어낼 것이라 볼 수 없다.

무역에 있어서 롬니는 중국과의 무역 전쟁을 선언하며,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명명했다. 그는 최근 몇년 동안 있었던 인민화의 상당한 평가절상에 주목하지 못했다. 또한 중국의 환율 변화가 양국 무역 적자 및 미국의 다국 무역 적자에도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위안화의 강화는 중국으로부터 미국에 들어오는 낮은 가격의 섬유, 의복 및 기타 생산물의 가격을 상승시킨다.

게다가 다른 국가들이 환율 조작국으로 미국을 고소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연준의 양적완화 정책은 무엇보다도 실질 경제에 의미있는 영향을 주는 유일한 채널이지만, 이는 미국 달러의 평가절하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세계는 미국의 선거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선거의 영향을 받는 대부분의 사람은 결과에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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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7 / 16 정태인/새사연 원장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18)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의 제목을 눌러주시면 됩니다.

 

이 글은 새사연의 정태인 원장이 2011년 1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진행한 ‘정태인의 경제학 과외 2부 : 사회경제, 공공경제, 생태경제’ 강연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복지국가, 국가에 의한 공공성 실현

오늘은 지난 시간의 공공경제에 이어서 보편 복지국가에 관해 논해보고자 한다. 앞서 공공성이 무엇인지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제일 중요한 것은 공공의 가치(public value)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물론 이는 현존하는 철학자들을 모두 동원해도 어려운 일이지만, 결국은 공공의 이성(public reason)이 숙의 민주주의를 통해 결정해야 하는 일이다.

공공의 가치가 무엇인지 합의되고 나면 이를 어떻게 실현하느냐의 문제가 남아있다. 예를 들어 공공의 가치로 모두의 건강을 위해 1인당 하루 사과 두 알을 먹는 게 좋다고 합의되었다면, 이제 사과를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주장은 시장에 맡기자는 것이다. 각각 개별적으로 시장에서 사과 두 알씩 사먹을 수 있도록 하면 된다. 만약 사과 살 돈이 없는 사람이 있다면 보조금을 주고, 사과 물량이 부족하다면 과수원에 보조금을 주면 된다. 사실 많은 문제들이 시장에서 해결하고, 국가가 세금이나 보조금을 주어 보완하는 방식으로 해결될 수 있다. 그리고 분명 충분한 장점을 가지고 있는 해결 방식이다. 시장은 경쟁을 통해서 인류의 생산력을 무한히 발전시켰다. 이를 가장 많이 칭송한 사람이 바로 마르크스이다. 마르크스는 자본론 곳곳에서 자본주의의 역사적 사명은 생산력 발전이며, 이는 경쟁, 끊임없는 무한의 욕구, 화폐의 축적, 자본의 탄생을 통해 가능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실패가 존재하는 경우에는 국가 또는 공동체에서 해결해야 한다. 문제는 국가와 공동체에 어느 정도의 역할을, 어떤 방식으로 맡길 것인지, 둘을 어떻게 조합할 것인지 등이다. 공공경제 분야에서 이런 문제를 다루는 대표적 학문은 행정학인데, 이 분야에서 80년대 이후 주류로 등장한 이론이 신공공관리론이다. 이는 결국 관료나 정부기구도 자기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되도록 민영화하고 규제완화를 해서 경쟁을 통해 소비자에게 도움이 되도록 하자는 내용이다. 그런데 최근 신공공관리론이 퇴조하고 공공가치행정론이 등장하고 있다. 이는 공공의 가치를 민주주의 방법으로 실현하는 방식에 관한 이론이다. 공공성에 대해 얘기할 때, 그것이 시장실패의 어떤 유형에 해당하는지 확인하고, 그에 따라 해결책도 다르게 제시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참여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 내용이다.

 

스웨덴 복지국가 모델 뜯어보기

이런 공공성을 국가단계에서 가장 잘 실현한 것인 보편적 복지국가이다. 가장 성공한 보편적 복지국가는 스웨덴이다. 사실 스웨덴 모델은 한 번 실패했었다. 80년대 중반부터 스웨덴 병 또는 복지병이라 불리는 현상이 나타났고, 90년대 초반에는 스웨덴 뿐 아니라 노르웨이, 핀란드 등이 외환위기를 맞는다. 93년에는 스웨덴 복지국가 모델의 설계자인 마이드너(Meidner)가 스웨덴 모델이 실패했음을 인정하고 그 원인을 분석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95년경부터 다시 부활해서 지금은 여전히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로 꼽히고 있다.

스웨덴 모델은 렌-마이드너(Rehn-Meidner) 모델로도 불린다. 렌과 마이드너는 우리나라의 민주노총이라고 할 수 있는 스웨덴 LO(노동조합연맹)의 경제이론가이다. 이들은 직접 임금중앙교섭에 들어가며 LO의 경제정책을 만든다. 스웨덴은 LO와 사민당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LO는 한 때 노조조직률이 93%에 이르렀고 지금도 70~75%에 이른다. 조합원들의 가족까지 고려하면 전체 유권자의 절반 이상이 LO와 관련된 셈이다. 이런 LO를 기반으로 하여 사민당은 지금까지 약 90년 정도를 집권해왔다. 현재는 보수당이 집권하고 있다. 사민당이 얻는 득표수는 약 35% 정도라 언제나 다른 정당과 연정을 한다. LO과 정책을 만들면 대부분을 사민당이 정책에 반영한다.

렌-마이드너 모델은 참 기가 막힌 모델인데 한 마디로 연대임금정책이라 할 수 있다. 스웨덴은 수출 주도, 대기업 주도 경제라는 점에서 우리나라 비슷한 점이 많다. 이런 경제의 문제는 수출대기업과 내수중소기업의 생산성 격차에 따른 임금 격차가 크다는 것이다. 이를 줄이기 위해 스웨덴은 수출대기업 노동자의 임금을 깎아서 내수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을 보조해준다. 이는 전국의 모든 직장이 함께 임금협상을 하는 중앙교섭을 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전체 자본가 대표와 전체 노동자 대표가 만나서 산업별 임금을 정하는 것이다. 노동자 대표로는 LO가 나온다.

이렇게 조정했을 때 제일 손해를 보는 쪽은 수출대기업 노동자이다. 이 정책이 관철된 이것이 관철되던 60년대 스웨덴의 수출대기업은 자동차, 철강, 조선업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현대자동차, 포스코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임금을 깎는 것에 합의한 것이다. 제일 이익을 보는 쪽은 수출대기업 자본가이다. 생산성 보다 낮은 임금을 주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이익 보는 것은 수출대기업 노동자로부터 임금을 이전받은 내수중소기업 노동자이다. 반면 내수중소기업 자본가는 생산성보다 높은 임금을 주어야 하므로 손해를 본다.

 

적극적 노동시장과 임노동자 기금

이렇게 되면 두 가지 문제가 나타난다. 먼저 그래프 오른쪽의 빗금 친 부분은 내수중소기업에서 발생하는 실업을 의미한다. 생산성보다 높은 임금을 주어야 하는 내수중소기업이 이를 감당하지 못해서 고용 인력을 줄이고 혹은 파산하기 때문이다. 한편 그래프 왼쪽의 빗금 친 부분은 수출대기업의 초과이윤을 의미한다. 생산성보다 낮은 임금을 준 결과이다.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해 스웨덴은 역시 기가 막힌 해법을 냈다. 첫 번째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다. 요즘은 다른 나라에도 많이 도입되었지만 스웨덴이 그 시초라 할 수 있다. 굉장히 관대한 실업보험을 기초로 하며, 모든 노동자를 재교육 시켜서 중소기업 노동자를 대기업 노동자로 이직시키는 것이다. 이를 전부 노동조합이 관리한다. 스웨덴의 실업보험은 국가 차원에서 도입하기 전에 이미 오래전부터 노동자들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지역별, 산업별 실업보험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다. 이를 겐트(Ghent)라 했는데, 이미 존재하던 것을 국가가 통합했지만, 그 관리는 여전히 노조에게 맡겨놓았던 것이다. 스웨덴 노조의 가입률이 높은 것은 이 때문이다. LO 소속이 되면 실업보험에 가입되고, 퇴직하면 LO의 관리 속에서 재교육과 이직을 할 수 있다. 노조가 실업자를 관리하는 것이다. 이를 노동자 주도의 구조조정이라 불렀다. 이는 실업에 대한 해결책이 되었다.

두 번째로 대기업의 초과이윤에 대한 해결책으로는 임노동자 기금이 도입되었다. 이는 초과이윤의 20%를 신주로 발행하여 노조가 소유하도록 한 제도이다. 신주의 20%를 노조가 계속 소유할 경우, 2~30년 지나면 모든 기업이 노조의 소유가 될 수 있다. 사회주의로 가는 매우 창의적인 길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자본가들의 반대가 격렬했고, 이 제도에 대한 입장을 놓고 사민당도 3개파로 찢어지고 말았다. 결국 LO와 사민당의 관계는 서먹해졌으며 끝내 사민당은 선거에서 패배하여 이 꿈은 물거품이 되었다. 하지만 적극적 노동시장과 임노동자기금을 바탕으로 연대임금정책을 실현한 것이 스웨덴 모델의 핵심이다. 이를 통해 스웨덴 경제는 성장과 안정이라는 두 마리를 토끼를 잡을 수 있었으며 사회주의로의 장기 전망도 세울 수 있었다.

흔히 복지국가는 완전고용을 목표로 하는 케인즈주의 경제학을 따른다. 렌과 마이드너도 자신들을 케인즈주의자라고 지칭했다. 그러나 완전고용과 함께 렌과 마이드너가 신경썼던 것은 임금상승에 의한 물가상승을 억제하는 것이었다. 전후 유럽의 부흥사업을 통해 수출대기업은 돈을 많이 벌었고 임금도 상승했다. 그런데 경제학 이론에 의하면 완전고용과 물가는 상충함을 보여주는 필립스 곡선이 존재한다. 즉, 물가가 상승하면 완전고용은 어려워지는 것이다. 따라서 물가상승을 최대한 억제해야 했고, 이를 위한 방안으로 연대임금을 생각해낸 것이다.

우리에게는 매우 낯선 모습인데, 노동조합이 임금인상을 억제하면서까지 거시경제정책을 고려한 것이다. LO의 경제학자로서 매번 중앙교섭에 참여했던 렌과 마이드너의 경험은 독특한 물가상승이론을 가지도록 만들었다. 부흥사업으로 호황을 누리던 수출대기업의 높은 임금을 제시하면 그것이 다른 산업과 기업의 노동자에게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쳐서 전반적인 임금과 물가 상승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이는 20여년 후에 효율임금이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는 이론이다. 이렇듯 스웨덴 모델은 처음부터 물가안정을 위한 정책이었다. 또한 세금을 많이 걷어서 재정흑자를 유지했다. 소득과 자산에 따라 차등적 세금을 부과했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구성원들에게 높은 수준의 세금을 부과했다. 모든 사람이 비용을 내고 모든 사람이 혜택을 받자는 의도였던 것이다. 재정흑자를 유지하며 물가상승 억제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볼 때 렌-마이드너 모델은 순수한 케인즈주의 정책과는 차이가 있다.

 

스웨덴 모델의 붕괴

그러나 1970년대 중반이 되면 스웨덴 모델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미국 등과 비교해서 국내총생산 성장률이 떨이지고, 외환위기 등까지 겪게 된 것이다. 이를 두고 주류경제학자들은 스웨덴 병을 운운하며, 복지국가의 사망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그들은 스웨덴 등 북유럽의 평등주의와 그 결과물인 지나친 복지가 노동자들의 노동 유인을 없애고 도덕적 해이를 불러와 망할 수밖에 없었다고 비판했다. 실업수당으로 월급의 80%가 지급되고, 특별한 절차 없이 병가를 사용할 수 있는데 누가 열심히 일을 하겠냐는 것이다. 사실 보편복지국가는 대표적인 공유자원이다. 세금을 내는 문제에서는 공공재 게임이 그대로 적용된다. 무임승차자가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스웨덴에서도 어느 정도 복지병이 나타난다. 독일과의 축구 중계가 있는 다음 날이면 직장인들의 병가 사용이 늘어나는 것은 그런 사례이다. 하지만 이는 미시적 요인일 뿐이다. 이것만으로 스웨덴 모델의 붕괴를 설명하는 것은 부족하다.

사실 스웨덴이 위기를 겪었던 근본 원인은 거시경제정책의 문제 때문이다. 첫 번째는 고환율 정책이다. 수출의 비중이 컸던 탓에 경기가 나쁠 때마다 환율을 조정했다. ‘1달러=1000크로나’일 때와 ‘1달러=2000크로나’일 때를 비교한다면 후자의 경우가 수출할 때 더 유리하다. 따라서 통화가치 하락 정책을 편다. 이명박 정부 하에서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다. 두 번째는 신자유주의와 함께 금리자유화, 개방, 조세개혁이 실시된다. 이 중에 가장 큰 요인이 금리소득에 대한 세금을 면제해준 것이다. 이렇게 되자 국내에 자본은 늘어나고 규제와 세금은 줄어들면서 부동산 투기가 일어났다. 결국 부동산 거품이 붕괴되고 해외자본이 빠져나가면서 90년대에 외환위기에 빠지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스웨덴 노동자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노동규제 강화에 나선다. 최저임금법을 법제화하고 임노동자기금을 강력하게 추진한 것이다. 프랑스나 독일과 같은 대륙의 노동규제, 노동자 보호는 굉장히 강하다. 하지만 스웨덴은 실제 법과 제도 상으로는 약하다. 이는 사회적 신뢰가 높기 때문일 수도 있고, 정권을 거의 늘 사민당이 잡고 있었기 때문에 법이나 제도를 경직적으로 강제할 이유가 없었던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를 강화하기 시작하면서 노사타협으로 운영되던 중앙교섭이 깨진다.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금속노조이다. 이제까지 수출대기업이 희생해왔는데, 경기가 나빠지자 더 이상 희생을 견디지 못하고 교섭에서 빠져나온 것이다. 여기서부터 보편복지도 어려워진다.

마이드너는 이런 상황을 반성하며 “스웨덴 모델은 왜 실패했는가?”라는 글을 쓴다. 그는 통화의 대규모 평가절하가 계속되면서 이윤은 급증했으나 투기에 의해 자산가격이 폭등하고 경쟁력이 떨어져서 결국 성장이 정체되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애써 희망을 찾으며 “노동계급을 동원할 수 있는 역사와 전통, 이데올로기적 힘과 지도자의 능력, 그리고 다른 계급과연대할 수 있는 능력”이 스웨덴 노동운동의 힘이었으며, 이를 다시 회복할 때 복지국가도 부활할 것이라고 보았다.

 

스웨덴은 어떻게 부활했나?

그리고 1990년대 중반 스웨덴은 부활했다. 거시경제 측면에서는 EU에 가입하면서 실질적으로 고정환율제가 되었고, 연금개혁을 통해 재정긴축을 단행한 덕분이었다. 세부적으로는 결렬되었던 중앙교섭이 산업별, 지역별로 분권화되어 부활했으며, 연대임금이 부분적으로 복원되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자본가들의 요구가 컸다. 기업별 교섭이 진행될수록 곳곳에서 임금이 인상되고 돌발적인 파업이 일어나면서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과 사회서비스에 의한 고용율 회복도 경제 회복에 큰 힘이 되었다. 스웨덴의 완전고용이 위협받을 때 가장 강력히 버텨준 것이 사회서비스 분야이다. 스웨덴의 복지는 보편현물복지로 교육, 의료, 보육, 돌봄 등 사회서비스 담당자는 모두 공무원이다. 사회서비스가 늘어날수록 공무원도 늘어나고, 고용율도 올라갔다. 또한 현재 LO의 주축세력 역시 공공노조이다. 우리의 경우 현물복지가 아니라 바우처 제도를 통해 보조금을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아동수당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러나 우리처럼 민간시설이 대다수인 상황에서는 아동수당 지급이 보육비의 증가, 보육원의 수입 증가로만 이어진다. 아동수당이란 결국 수요 쪽에 보조금을 주는 것으로 수요곡선이 상승하면서 가격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즉, 시장에만 맡기고 보조금을 주면 가격이 올라간다.

성평등 정책과 평등교육을 강화하여 여성 고용율을 높이고 IT와 제조업에서 경쟁력을 높인 것도 중요한 요인이었다. 보편복지가 가능하려면 고용율이 높아야 하고, 여성 고용이 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여성이 출산과 육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집중적인 사회서비스가 제공되었다.

보편적 복지국가에서 안정적 경제는 매우 중요하다. 경제가 안정되어야 복지를 제공할 수 있는 안정적 세수가 확보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환율 안정, 물가 안정 등을 통해 경기가 증폭되는 것을 억제하는 장치들이 필요하다. 최근 금융위기로 그 중요성이 대두된 자본통제나 금융규제, 투기억제, 자산가격 안정 정책들은 복지국가의 전제 조건이다. 복지국가의 성패는 안정적 거시경제정책의 마련에 달려있는 것이다. 케인즈 경제학은 기본적으로 불황의 경제학이다. 여기에 더불어 보편적 복지국가가 공유자원의 특성을 갖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무임승차를 줄여갈 수 있는 신뢰와 협동의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 정리 :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19)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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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2 / 07 / 01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재벌개혁, 시장의 힘으로? 또는 국가의 힘으로?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의 제목을 눌러주시면 됩니다.

 

[목 차]

1. 우리는 모두 경제 민주화론자가 되었나?

2. 정경유착 근절이 경제 민주화였던 시기

3. 정치 민주화와 경제 자유화의 잘못된 결합

4. 2012년 버전의 경제 민주화를 말한다.

 

[본 문]

1. 우리는 모두 경제민주화론자가 되었나?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6월 28일, 비상경제대책회의 마무리 발언을 통해 "대기업들이 정치권에서 얘기하는 경제 민주화를 부정적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가장 대표적인 성장론자이자 친기업론자인 대통령까지 경제민주화론자로 전향하는 순간이다. 물론 "경제 민주화가 대기업을 위축시켜서 한다든지 하는 것은 받아들여질 수가 없겠지만 그런 측면으로 가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이른바 ‘자율적’ 상생과 동반성장이라는 지금까지 해왔던 ‘재벌개혁 없는 경제 민주화’로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쯤 되면, “우리는 모두 경제 민주화론자다.”라고 받아들일만 하지 않은가? 개혁 대상 당자사인 전경련을 제외한다면 야당과 시민사회운동은 물론이고 여당과 정부까지 경제 민주화의 대세에 올라탔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경제와 사회정책의 큰 운용의 틀을 경제 민주화로 잡고 여기서 시장 개혁과 불평등 해소, 경기 안정과 성장을 도모하는 지혜를 모으는 큰 흐름이 형성된 것이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자신들을 경제민주화론자로 제대로 전향을 하려면, 지금까지 경제 민주화 대신에 자율적 ‘상생’과 ‘동반성장’으로 일관했던 기존의 정책이 실패했음을 먼저 인정하고 지금부터라도 ‘제도적 재벌 규제’를 통한 경제 민주화 노선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모두 경제민주화론자가 되는 것이다. 상생과 동반성장과 같은 자율적인 협의가 경제 민주화를 어떻게 역행시켰는지 ‘경제 민주화 시민연대(준)’은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고용 없는 성장, 재벌의 골목상권 장악, 식자재 납품, 빵집. 떡집, 문구와 공구까지 무차별적인 중소상인 영역 침탈로 나타나자 드디어 국민적 분노가 폭발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상생’을 외치고 이명박 정부가 ‘동반 성장’을 외치는 과정에서 재벌은 순식간에 중소기업과 중소상인 시장 영역을 장악해 나갔다. ‘상생’ 전략의 최첨단을 보여주는 동반성장위원회가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사업조정제도’라는 것이 재벌의 대형마트에 대해 소주, 담배, 쓰레기봉투 팔지 말라는 한심한 대안밖에 내놓지 못하는 것은, 재벌을 법으로 규제할 수 없고 재벌을 설득하여 중소기업과 중소상인에게 양보하게 해야 한다는 시장 방임의 신자유주의적 경제운영철학이 깊이 내재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지금의 경제 민주화운동은 재벌과의 자율적 상생이 아니라 일정한 정도의 강제력 있는 재벌규제와 재벌개혁을 동반해야만 하고, 이런 의지가 없는 경제 민주화 논의는 공허한 말잔치에 끝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확인해 준다. 재벌이 독식하고 있는 시장에 정부가 개입하여 재벌과 다른 경제주체들 사이의 힘의 불균형을 제도적으로 재조정하지 않으면 자율적 상생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 시장에서의 불평등한 분배구조 개혁과 힘의 불균형 해소를 위한 정부의 시장 개입과 규제가 재벌권력에 대한 규제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금융규제가 필요하고 동시에 자산거품에 대한 규제도 필요하다. 금융규제, 재벌규제, 자산거품규제 등 3대 규제를 해야 경제개혁이 가능하다는 것이 우리 연구원의 일관된 생각이다.

동시에 재벌규제가 곧 재벌해체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순수하게 대기업집단이 효율적인지 다수 독립기업들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다주는지를 말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기업과 대기업집단(재벌그룹)을 잘게 쪼개어 수만 개의 중소벤처기업, 수천 개의 독립 대기업을 만들어 그들끼리 치열하게 (무한)경쟁하도록 하는 것이다. 게다가 대기업 및 재벌기업의 대주주(오너) 소유 지분 역시 잘게 쪼개어(이른바 '자산재분배') 수많은 소액주주들이 기업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게 하면 된다.”는 식의 재벌해체가 경제 민주화에 가장 적합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재벌이라는 기업 집단에 대해 일정한 규제의 틀에서 민주적 통제를 하자는 것이며, 다른 경제주체와의 힘의 균형이 가능하도록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재벌개혁을 재벌해체로 등식화시키면 마치 전자와 자동차, 통신 등의 한국경제 중추 생산시스템마저 해체한다는 인상을 국민들에게 심어줘 공포를 조장할 가능성도 있다. 물론 분명한 것은 재벌을 포함하여 누구도 민주주의를 위협할 만큼 과도한 권력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민주주의 제도 아래에서 무너져서는 절대 안 된다거나 해체되어서도 안 되는 그런 사적 집단이나 조직은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정부가 반독점법, 부동산세 같은 정책을 통해, 대기업 권력이 정부의 권력을 능가할 정도로 커지는 것을 방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로 미국인들은 소득 불평등에 대해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정부는 은행 권력이 커질 때마다 역시 반복적으로 개입했다.” “미국 정부는 반독점법 위한 사례에 대해서도 엄격하게 대처했다. 존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과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한 조사는 미국 정부가 대기업의 권력이 지나치게 커지는 것에 얼마나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지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의 재벌 대기업 집단도 권력이 커지고 민주적 질서를 위협할 상황에 이르게 되면 당연히 규제와 통제를 받아야 하는 것이 경제 민주주의다.

 

2. 정경유착 근절이 경제 민주화였던 시기

이처럼 똑 같은 경제 민주화를 놓고도 정부와 대통령은 재벌과 중소기업, 상인들과의 자율적 상생협의를, 그리고 시민사회와 진보는 정부의 제도적, 법적 규제를 통한 재벌개혁을 경제 민주화에 포함시키고 있다. 그런데 경제 민주화를 위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인지 아니면 시장의 자율에 맡겨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훨씬 더 복잡한 문제가 숨겨져 있다. 그것은 파란만장하고 엄청난 변화를 겪었던 우리 경제 역사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경제 민주화는 철저히 우리만의 역사적 경로가 있는 개념이고 의제이다. 지금은 경제 민주화를 위한 국가의 규제를 말하고 있지만, 경제 민주화의 과거 역사 속에는 오히려 지나친 정부개입이 관치경제와 정경유착을 낳고 부패를 발생시켜 경제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기도 했던 경험도 있었다. 국가로부터 시장의 자율성 확보를 경제 민주화라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조금 더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자.

우리나라는 1970년대까지 강력한 국가주의 발전모델을 추구했다. 가장 반민주적인 군부독재 정권인 박정희 정권이 쿠데타로 집권한 정치적 정통성의 부재를 경제 실적으로 만회하려는 강력한 욕구까지 겹치면서, 국가가 자본 조달자이자 육성자, 노동력 공급과 관리자, 그리고 해외 시장 개척자로서 인위적으로 재벌 대기업을 키워 고속 성장을 도모했다. 지금의 표현법으로 자본통제, 시장통제, 노동통제를 국가가 직접적으로 수행했고, 이 과정에서 재벌은 ‘육성’되어 지면서 권위주의 국가의 하위 세력으로서 ‘성장 동맹’의 한 축이 된 것이다.

경제 민주화 이전에 정치 민주화가 급선무였던 이 시점에서 경제 민주화라고 하면 ‘관치 경제와 정경 유착을 근절’하는 것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시장 기능 회복으로 간주될 수도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권위주의 정부의 시장개입이 노동자에게는 저임금과 노동권 억압이라는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했고 재벌 대기업에게는 온갖 특혜를 주는 개입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개입을 끊어내는 것이 경제 민주화와 부의 공정한 분배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당시의 강력한 자본통제와 재벌대기업 육성을 통한 고속 성장모델이, 후진국이 선진국을 추격하는 효율적인 모델일 수 있다고 일부에서 평가해주면서, 오히려 경제 민주화 주장이 국가의 역할을 축소시키고 시장 자율로 맡기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당시 권위주의 정부가 노동통제 외에 자본통제도 시행했던 점, 그리고 경제성장률이 매우 높았던 점 등을 사실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지적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권위주의적’ 개입 방식을 옹호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쨌든 민간부분의 경제역량이 커지고 신자유주의 조류가 형성되면서 국가우위의 한국경제도 변화하기 시작한다. 완전한 국가주도 모델에서 민간주도 경제로 넘어가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전두환 정권부터다. 그러나 민간주도 경제로 전환이 현실화되고 경제 민주화가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아무래도 1987년 직선제 쟁취로 정치에서 절차적 민주화가 열리기 시작한 때부터였다.

당시에 발표된 글을 보면, “이제 민주화 대장정의 서막이 올랐으므로 반민주 세력의 부상을 저지하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구석구석에까지 민주주의가 전파되어야 할 것이다. 앞으로의 민주화 과제는 정치에 한정되지 않고, 행정. 경제. 사회 등 모든 부문에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치 민주화 - 절차적 민주화를 뛰어넘기 위해 경제 민주화 -실질적 민주화를 제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1987년 이후 민주화 논의는 지금까지도 실질적 민주화의 담론을 포함하고 있고, 이는 다시 경제적 민주화를 포함하는 연장선에 있다. 2012년 경제 민주화 역시 이러한 궤도의 연장선에 있다.

 

3. 정치 민주화와 경제 자유화의 잘못된 결합

그런데 이 과정에서 일련의 모순적 상황이 만들어진다. 과거로부터 착근된 국가주도의 관치경제와 정경유착에 근거한 부정부패를 경제에서 제거하는 것- 이런 유형의 국가 개입을 줄이는 것이 경제 민주화의 하나의 내용으로 이해된다. 또한 동시에, 민간주도 경제의 중심 세력인 재벌 대기업 집단의 독점적 지배력을 통제하고, 시장 실패를 보완하는 국가 개입의 확대가 또 다른 차원에서 경제 민주화로 해석되기도 한다.

앞서 인용했던 글에는 이 부분이 확실하게 언급되어 있다. “이런 반사회적이고 경제적 비효율을 유발하는 근본 요인은 경제에 대한 정부 통제의 심화에 있다. 따라서 민주화 시대를 겨냥하는 현 시점에서 정경유착의 극복책은 최소 정부를 지향하는 것이다. 그러나 근대 혼합경제 체제하의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시장실패 보완적 정책을 완전히 포기할 수 없다.”면서 민주정치가 구현되면 시장 실패를 보완하기 위해 경제 활동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더욱이 이미 당시에도 재벌 대기업의 시장 지배력과 경제 권력화에 대한 우려가 상당 수준에 있음도 보여주는 대목이 있다. “민간 기업의 독과점적 산업 조직 내지는 불공정 거래에 대한 정부 통제는 결코 줄여서는 안 된다. 사실 우리 경제가 독점 단계에 접어들고 있으므로 정부 통제가 강화되더라도 독점 자본을 제어할 수 있을지 실효성이 의심될 정도다. 기업 결합, 합병의 규제, 경제력 집중의 억제, 그리고 기타 불공정 거래 방지에 힘써야 할 것이다.”

결국 시장과 기업에 대한 권위주의적 통제와 개입을 해소하는 대신 시장 자율로 넘기는 것이 경제 민주화가 아니라, 민주주의적 의사와 방식에 의한 시장 개입, 즉 민주적 통제로 전환하는 것이 1987년을 전후한 우리 역사에서 경제 민주화의 어려운 과제이었음을 알 수 있다. 최근 1원 1표의 시장 논리를 1인 1표의 민주적 정치구조가 통제하는 것이 경제 민주화라고 하는 주장도 내용적으로는 동일한 맥락이다. 정치 영역에서 1인 1표 민주주의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시장에 내재된 1원 1표 원칙의 불평등성을 완화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고 그것이 경제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국경제가 권위주의 정부주도에서 민간주도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신자유주의 시장화와 세계화 압력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권위주의 정부 통제는 물론이고 민주적 정부의 개입마저 거부하는 신자유주의 작은 정부, 규제완화, 시장 지상주의 논리가 강력히 한국경제로 수입되고 1997년 외환위기로 확고한 대세가 되었던 것이다. 이런 가운데 재벌 대기업 집단은 정부통제로부터 벗어나 한국경제의 실세로 부상하게 되었고 세계화와 개방화의 환경에 적응하면서 경제는 물론 정치와 관료, 언론 등으로까지 영향력을 확대해간다. 이른바 정부의 재벌의 성장 동맹이 확실하게 붕괴되고 대신 신자유주의 글로벌 자본과 재벌의 ‘수익 동맹’이 구축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등 정치적 민주정부시대에 신자유주의 조류가 확산되었고, 금융과 재벌 대기업 집단은 정부통제로부터 자유를 얻은 반면 대다수 평범한 국민들은 금융부채와 비정규직 등 신자유주의적 폐해에 노출되면서 양극화와 불평등을 심화시켜나간다. 그리고 이 시기에 경제 민주화는 경제의 자유화로 곡해되거나, 기껏해야 자본시장에서의 1원 1표의 주주 민주주의로 좁아지게 되었던 것이다.

요약하면, 1997년 이후 민주정부들은 정치적 민주화와 진정한 경제적 민주화를 함께 엮어 가기 보다는, 정치적 민주주의를 경제적 자유화와 결합시켰던 역사적 오류를 경험했던 것이다. 최근 경제 민주화를 자유주의라고 비판하는 것은 이런 경험을 확대해석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4. 2012년 버전의 경제민주화를 말한다.

역사과정 속에서 의미가 변해왔던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다시 국민들의 관심과 지지를 받으면서 새로운 버전으로 변화된다. 따라서 지금 논쟁해야 할 경제 민주화는 권위주의 정부개입이 횡행하던 1970년대 유신 시대나,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탄식하던 2000년대 중반 시점의 경제 민주화가 아니다. 2008년 이후 신자유주의가 자초한 경제위기가 장기화되고, 불평등이 국민들의 인내력 범위를 벗어나고 있는 지금의 경제 민주화를 쟁점으로 해야 한다.

금융위기 이후 경제 민주화는 과거와 다른 몇 가지 특징을 보이는데, 1)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국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서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심각한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2) 따라서 전문가들이나 자본시장의 투자자들이 요구하는 독점 대기업 지배구조 개선과는 차원이 다르고, 대형마트 입점규제를 요구하는 소상공인들처럼 아래로부터 생활현장에서 민생운동의 형태로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 요구가 확산되고 있다.

또한, 3) 신자유주의가 오랫동안 확장시켜 놓은 시장 자율 구조 아니라, 국가의 일정한 개입과 규제를 수반해야 경제 민주화가 가능하다는 공감대가 있다. 4) 특히 경제적 상위 1%와 재벌 대기업 집단이 시장 지배력을 남용하여 불공정하게 부를 편취해왔던 관행을 규제하는 ‘규제 자본주의’를 대세로 하고 있다. 5) 또한 노동 유연화와 같이 시장 자율이라는 이름아래 지속적으로 권리가 축소되고 협상력이 약화되어 왔던 노동자, 상인, 중소기업, 소비자들의 권리와 협상력을 높여주는 국가의 적극적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이처럼 2012년 버전의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는 신자유주의 불평등과 시장화가 정점에서 붕괴되는 바로 그 상황에서 제기되고 있고, 시장을 넘어 정치 사회적으로도 국가의 힘을 능가할 만큼 커진 재벌 대기업집단의 경제권력 남용에 대해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제기되고 있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재벌 대기업 집단이 국내외적으로 보여준 두 가지 행태가 경제 민주화요구를 확산시킨 계기가 되었다는 점을 중시해야 한다. 경제 민주화가 시작부터 재벌개혁과 밀접히 결부되었던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전문을 보시려면 위의 제목을 눌러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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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2.05.16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지난 11일 한국은행은 의미 있는 이슈페이퍼를 발표했다. ‘자본 자유화 이후 한국의 자본이동 행태’라는 제목 그대로 자본시장 개방 이후 국내외의 자본 유출입 특징을 진단한 글이다. 한국은행이 금융 관련 진단을 한 것은 전혀 특별할 것이 없다. 하지만 자본시장의 변동성이 심하고, 특히 경제위기시에 증폭현상이 나타난다는 점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일정한 정책적 제어장치(규제)를 마련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우리나라 자본시장이 여타 신흥국에 비해 변동성이 심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유입자본의 구성상 우리나라는 수시유출입성 자본의 비중이 2000년대의 경우 83%에 달해 신흥국 평균인 49%를 크게 상회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수시유출입성 자본 유입속도가 신흥국 평균보다 더 빠른 것”으로 나타났는데, “차입이나 채권투자의 경우 유입자본의 지속성이 짧은 점이, 그리고 주식투자의 경우에는 유출입 규모가 큰 것이 변동성을 높이는 주된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우리 자본시장은 실물경기 변동에 따라 변동을 증폭시키는 속성이 있다는 점도 덧붙인다.

한마디로 “우리나라는 수시유출입성 자본의 비중이 높을 뿐만 아니라 유입속도도 신흥국 평균보다 빠르므로 이러한 변동성을 완화시킬 수 있는 건전성 정책수단을 지속적으로 개발하자”는 것이다. 구체적 정책수단을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여기까지만 해도 대단히 의미 있는 결론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자본시장의 개방과 자유화를 금과옥조로 여기면서, 자본시장에 대한 정책적 개입을 낙후한 발상으로 여기는 풍조가 만연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최근 유럽이 긴축일변도의 정책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다시금 위기에 빠지려는 조짐이 확연하다. 중국을 포함해 브릭스(BRICs)의 실물경제 회복력이 예상보다 부진한 상황에서 한국의 자본시장이 다시 불안정해질 개연성이 얼마든지 있는 상황이다. 이 시점에서 한국 자본시장의 구조적 취약성을 환기시키고 정책적 방안의 필요성을 한국은행이 언급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문제는 정치권인 듯싶다. 여당인 새누리당의 과반수 확보로 4·11 총선이 끝나고 대선을 불과 7개월 정도 남겨 두고 있다.

사실 이번 총선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첫 총선이었고 12월의 대선도 마찬가지다. 참여정부 시절부터 ‘아시아 금융허브’, ‘미래 신성장 동력으로서의 금융산업 육성’, ‘글로벌 메가뱅크 육성’ 등을 내걸었던 한국에서도 당연히 금융규제와 금융산업의 재구성에 대해 상당한 문제제기가 던져지는 것이 정상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문제의식이 선거공약에 수렴되기를 기대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원래 정책경쟁 자체가 부실한 가운데 치러진 이번 총선에서 ‘금융규제와 금융개혁’ 관련 내용은 더욱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세계 금융위기가 불과 몇 년 전에 세계경제를 뒤흔들었고 지난해에는 유럽 채권시장이 흔들리면서 재침체에 빠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무색할 정도다. 게다가 여당인 새누리당은 주요 10대 공약 안에 금융개혁에 관한 항목이 아예 없다. 다만 일자리 창출 관련 재원조달 항목에서 파생상품시장의 거래세 신설 등 일부 조항이 있을 뿐이다.

전반적으로 각 당들이 금융거래 과세, 가계부채 경감을 위한 이자율 제한이나 채무자 보호, 산업자본의 금융지배 제한, 그리고 은행 공공성 회복까지를 포함한 주요 의제들을 다루고는 있다. 하지만 그 중요도나 구체성, 그리고 전략적 개혁방향 등은 매우 부실한 것이 현실이다. 세계 금융위기를 통해 확인된 금융시스템의 불안정성과 그것이 실물경제에 미칠 수 있는 막대한 파급력, 세계가 금융으로 얽혀 있는 복잡한 현실 등이 국내적으로 충분히 수렴되지 않았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는 7개월 뒤 대선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금이라도 금융부문에 대해 더욱 전진된 개혁방안이 검토되고 토론돼야 할 필요가 절박하다. 당면한 시점에서 금융개혁은 첫째, 자본시장 개방으로 인한 금융 불안정성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에 대한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둘째, 은행을 중심으로 수익을 추구하는 사적 금융회사가 된 금융산업에 대한 재편 방향을 검토해야 한다. 셋째, 소비자와 서민의 입장에서 금융상품 피해를 막고 건전한 금융 접근성을 확보하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이 가운데 자본시장 개방으로 인한 대책이 절박하다는 사실을 위 한국은행 보고서가 말해 주고 있다.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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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2.02.09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경제가 나빠지면서 서민들이 이자가 높은 제2금융권 대출을 늘리고 카드론 사용빈도가 높아지자 최근 신용카드 대란과 서민가계 파산위험을 걱정하는 목소리들이 높다. 이런 와중에 지난해 우리나라 은행들이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고 해서 상당히 많은 언론매체에서 문제를 삼았던 적이 있다. 금융감독원 발표를 보면 지난해 은행들의 세전수익이 19조원이었다. 2010년 대비 무려 46%나 상승한 규모다. 세금 내고 대손준비금을 적립하고도 12조원이었다.

얼마나 엄청난지 실감이 나도록 비교를 해 보자. 우선 우리경제의 2010년 성장률은 6.2%인데 지난해에는 3.6%였다. 반 토막이 났다. 그런데 은행은 거꾸로 이익 신장률이 50% 가깝게 뛰어올랐다. 기업에서 이익 신장률이 이 정도면 문자 그대로 ‘어닝 서프라이즈’ 수준이다. 신장률뿐 아니라 이익규모 자체도 놀랍다. 지난해 삼성전자 영업이익이 16조2천억원이었다. 삼성전자조차 지난해 실적은 2010년에 비해 줄었다. 어쨌든 세계적인 제조업 삼성전자의 실적은 한국의 은행들 전체 이익보다 적다. 이미 우리나라 각 은행들이 조 단위의 수익을 올리는 것은 2000년 이후 일상적인 모습이기는 하다. 괜히 비난의 화살이 쏟아진 것이 아니었다.

이와 관련해 최근 국책 금융연구원에서 주목을 끌 만한 짤막한 글 하나가 발표됐다. 지난 1월28일 발표된 ‘은행의 상업성과 사회적 역할’이라는 5쪽짜리 논단이다. 논단은 다음과 같은 문제의식으로부터 시작한다.

“얼마 전 언론매체에는 우리나라 은행들이 2011년에 높은 수익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는 보도가 일제히 실렸다. 하지만 이에 대한 여론의 반응은 냉랭했다. … 반면에 지난 1월6일 삼성전자가 작년에 사상 최대의 매출과 이익을 올렸다는 실적을 발표하자 언론과 여론의 태도는 대부분 칭찬 일색이었다. 경제가 어려운데 은행이 높은 수익을 내는 것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많았지만, 정반대로 그러한 상황에서 수출 대기업이 높은 수익을 올린 것은 정말 대견하고 자랑스럽다는 것이 대체적인 언론과 여론의 반응이었다.”

똑같이 높은 이익을 냈는데 금융업인 은행은 비난하고 제조업인 삼성전자는 칭찬하는 상반된 태도에 대해 논단은 우선 그럴 만한 이유와 근거를 찾는다. 예를 들어 은행은 정부가 허락을 해서 특별히 자신들만 영업을 할 수 있는 규제산업이고 또 부실에 빠지면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해서 살려주는 특별한 혜택을 받기 때문일 수 있다고 진단한다. 맞다. 그런 점이 분명이 있다.

또한 논단은 은행이 낮은 금리의 예금을 받아 높은 금리로 대출해서 이익을 얻는 ‘땅 짚고 헤엄치기’ 식의 장사로 큰 돈을 벌고 있고, 그것도 해외시장이 아니라 가계부채가 심각한 국내시장에서 벌어들였다는 데에 여론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것으로 추정한다. 이 역시 맞는 얘기다.

하지만 논단은 은행들이 나름대로 신용평가를 해서 대출을 잘 선별해 이익을 얻는 과정에서 많은 노력을 들이고 있고 결코 거저 돈을 버는 것은 아니라고 항변한다. 변명이 크게 설득력 있게 들리지는 않는다. 금융연구원의 짧은 논단이 던지는 핵심 메시지는 이런 빈약한 설득력이 아니다. 정작 중요한 논지는 다른 데 있다. 바로 은행이 삼성전자와 같은 사기업과는 다르게 공기업에 준하는 수준의 ‘공공성’이 있다고 국민이 생각하고 있고 논단의 저자도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핵심 논지는 그럼에도 현실적으로 은행도 ‘사적인 주식회사’이기 때문에 주주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노력해야지 공익만을 위해 노력할 수는 없다는 것, 그래서 높은 수익을 내는 것을 한편에서 인정해야 한다는 논단 저자의 적극적인 항변 부분이다. 종합하면 은행이 공공성과 상업성을 모두 갖고 있으므로 공공성만 강조하지 말고 상업성과 조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사적 기업이라고 해서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싶다. 이것은 지금 세계경제위기를 몰고 온 영미식 주주자본주의의 기업 경영관점일 뿐 원래 기업논리는 아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는, 만약 은행을 사적 기업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어떤가 하는 것이다. 은행의 성격과 본성이 공공성이라고 한다면, 굳이 사적 기업형태로 만들어 공공성과 상업성의 갈등을 고민할 필요가 있는가. 공기업으로 만들면 그런 고민은 필요 없는 것 아닌가. 민영화가 얼마 전까지 대세였다면 이제는 공기업화를 생각해 보자.

덧붙일 것이 있다. 삼성전자는 칭찬을 받고 은행이 비난의 화살을 맞고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정반대다. 지금 재벌은 개혁대상으로 지목돼 다양한 규제와 과세 논쟁이 정치권에서 치열하다. 그런데 은행도 수익규모로 말하자면 재벌그룹 10위권 반열에 들어와 있고, 모두가 지주회사 체계로 돼 있어서 계열사를 거느린 재벌들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은행지주회사는 예외로 해서 감시·감독을 하지 않기 때문에 빠져 있을 뿐이다. 은행이 사적기업과 다르게 공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도 지금 재벌개혁대상에서 빠져 있는 것, 이것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닌가. 그래서 제안한다. 은행그룹 개혁도 재벌개혁 범위에 집어넣어야 한다고.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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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