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9.24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올해 선거는 좀 독특하다. 우선 정당들의 정책이 서로 맞서는 대결 양상을 보이지 않는다. 유럽처럼 긴축이냐 아니냐 하는 방식의 대결도 아니고 미국처럼 증세냐 감세냐 하는 모양도 아니다. 모두다 복지이고 모두 다 경제 민주화를 주장한다. 그러다 보니 진짜 경제 민주화냐 가짜 경제 민주화냐, 진정성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다소 맥없는 논쟁만이 난무하는 실정이다. 이를 보도하는 언론들도 난감하다. 국민들에게 각 정당과 후보들의 차별성을 비교해서 알려줘야 하는데, 차별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진정성 여부를 글로 비교해 줄 수는 없지 않은가.

결국 언론은 국민에게 익숙하고 단답형 방식으로 단순화 할 수 있는 몇 가지를 뽑아 정책비교를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출자총액 제한제도 부활을 새누리당은 반대, 민주통합당은 찬성한다는 식으로 차별화한다. 순환출자에 대해서는 새누리당은 신규 순환출자만을 금지, 민주통합당은 기존 순환출자도 금지한다는 식으로 구분한다. 그러다 보니 지금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마치 출자총액 제한제도 부활여부가 되고 순환출자 금지가 되는 것처럼 느껴지게 된다. 정말 그런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전혀 아니다. 출자총액 제한, 상호 출자와 순환출자 금지, 지주회사 지분요건 강화, 금산 분리 등은 기업 집단형태로 존재하는 재벌들로 하여금 건전한 지배구조를 확립하고 무분별한 계열사 확대로 부실화되는 것을 방지하는 재벌개혁 영역이다. 당연히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의 큰 맥락에서 볼 때 필요한 조치들이다. 재벌들이 대거 부실화됐던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특히 중요했던 개혁과제다. 그러나 경제 민주화 과제가 여기에만 국한되지는 않으며 어쩌면 2012년 버전의 경제 민주화에서 중심 영역이 아닐 수도 있다.

이 시점에서 왜 지금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가 시대의 요구로 부상했는지를 되짚어봐야 한다. 단순히 정치권에서 선거용 구호로 작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외환위기 이후 15년 동안 깊어진 양극화와 불평등 때문이다. 5년 전 대선에서는 대기업 성장을 통한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로 양극화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이명박 후보가 당선됐고, 이명박 정부는 실제로 친 기업 정책을 폈지만 양극화와 불평등은 오히려 심화되었다. 그 때문에 이명박 정부 스스로가 2009년부터 공정사회와 동반성장을 정책과제로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재벌의 자발성에 기대는 동반성장은 처음부터 실패를 예정한 것이었고, 이는 동반성장위원장을 맡은 정운찬 전 총리가 위원장 자리를 1년 만에 사퇴한 데서 증명된다.

물론 양극화와 불평등을 복지정책 확대를 통해서 완화시키는 방법을 모색할 수도 있다. 2010년 무상급식을 매개로 급격히 확산된 국민의 보편적 복지 요구도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된다. 그러나 시장에서의 양극화와 불평등을 개혁하지 않은 채, 정부가 재정을 동원해 복지정책을 확대한다고 불평등이 제대로 해소될 수는 없고, 조만간 재원의 한계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결국 보편복지에서 경제 민주화로 국민들의 관심이 확장됐던 것이고 시장의 개혁을 요구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한국경제에서 시장의 지배자이자 독식자인 재벌에 대한 개혁 요구로 나타난 것이다.

이처럼 국민들이 경제활동을 하는 시장의 곳곳에서 재벌 대기업의 횡포와 독식, 힘의 논리가 작동하면서 경제적 약자들의 몫을 침해하고 있기 때문에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가 제기된 것이다. 시장의 ‘자율적 조정’으로는 이러한 횡포와 독식이 오히려 강화되고 고착되기 때문에 국가가 시장에 개입해 재벌을 규제하고 노동자와 중소상인, 소비자와 중소기업의 권리를 지켜주는 경제개혁을 실시하자는 것이 경제 민주화의 핵심이다. 국민들이 경제 민주화에 공감하고 지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최근 선거 공간에서 경제 민주화나 언론에서 보도되는 경제 민주화는 나의 생활과는 꽤 멀리 떨어진 문제처럼 느껴진다. 국민 생활 한 가운데로 경제 민주화 논의를 다시 보내야 한다.

이글은 미디어오늘에 기고된 글입니다.


신고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2.07.25김병권/새사연 부원장

 

“그동안 학계 등에서 계속 제기돼 왔던 재벌집단에 대한 정의와 규제를 담은 별도의 법률, 즉 기업집단법 혹은 독일식 콘체른법을 새로 제정하자는 것이다. 독립법률을 제정해야 하는 이유는 재벌집단을 독립된 법인격 실체로 인정해 주고 내부의 특수성을 어느 정도 양해해 주는 대신 실질적인 소유와 경영통제구조에 대한 명확한 책임을 규정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새사연이 펴낸 <리셋 코리아>에서 기업집단법을 만들자는 제안의 도입부분이다. 지금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를 위한 다양한 방안이 정치권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에 맞춰 각종 개혁법안들도 준비되고 있는 중이다. 특히 소유·지배구조 개혁과 관련해 폐지된 출자총액제한 제도의 부활·순환출자 금지·지주회사 지분요건 강화·금산 분리 등이 거의 단골메뉴로 거론되고 있다. 각 제도의 실효성과 효과성에 대한 논쟁도 뜨겁다.

재벌개혁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렇게 커진 이유는 무엇일까. 재벌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규제의 틀이 모두 없어졌기 때문이다. 아무런 규제도 없어진 시장에서 재벌이 공룡이 돼 이익을 독식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노동자·상인·중소기업·소비자 등 나머지 경제주체들이 살아갈 수 없는 상태에 몰렸기 때문이다. 이른바 산업생태계의 파괴다. 다시 재벌이라는 공룡에게 규제의 틀을 씌우자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결과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이미 한국의 재벌집단은 15년 전 외환위기를 일으킨 재벌집단에서 한참 진화해 왔다. 글로벌 경제환경도 상당한 변화를 겪었다. 그러다 보니 출자총액제한 제도·순환출자 금지·지주회사 요건 강화 등 과거식의 사전적 자본규제만으로는 실효적이지 않은 측면들이 발생하고 있다. 그래서 과거식 규제제도를 다시 부활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후 미래까지를 감안해서 새로운 규제의 틀을 만들자는 것이다. 그 중심에 기업집단법이 있다.

기업집단법은 “개별기업 범위를 넘는 기업집단이 독립적으로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실체라는 점을 상법적 각도에서 인정하고 그 존재와 구성요건을 법률적으로 규정하는 새로운 재벌법을 만들자”는 것이다. 회사법인 상법의 범주에서 경제활동을 영위하는 특수한 실체로서 기업집단을 규정하는 ‘상법의 특별법’으로서 기업집단법을 새로 만들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기업집단법 안에는 기존 공정거래법 안에서 추상적으로 존재하는 기업집단, 즉 재벌의 정의를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내용이 있어야 한다. 다만 기업집단법에서는 규모에 관계없이 기업집단의 일반적 정의를 한 후 공정거래법에서 자산규모 5조원 이상과 같은 독점규제 대상이 되는 기업집단을 지정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기업집단을 구성하는 기업들, 즉 계열사 관계 성립과 해지 요건, 계열사 편입의 법적 허용 범위 등이 규정돼 있어야 한다. 현재 출자 지분율 요건 등에 대해 대통령에 정하도록 유보된 것을 법률로 명시할 필요가 있다. 이때 명목적인 출자지분에 의한 계열사 편입과 함께 실질적 지배개념을 적용해 위장 계열사 등의 논란을 가급적 축소시킬 수 있어야 한다.

순환출자 구조 등을 아예 합법적인 기업집단 구성요건에서 배제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나아가 기업집단 전체의 지휘통제 구조를 규정해야 한다. 지휘통제의 동일인이 재벌총수인지 지배기업인지 등에 대한 규정이 있어야 한다. 구조조정본부와 같은 지휘통제 조직의 존재와 법적 지위를 규정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기업집단법에 대해 여당과 야당이 검토만 하고 제대로 공론화 과정을 거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잠재적 대권 후보인 안철수 교수가 기업집단법을 재벌개혁과 관련해 공식적으로 주장해 주목을 받고 있다. 안 교수는 최근 발간한 그의 책 <안철수의 생각>에서 “재벌그룹은 사실 현행 법규상 초법적인 존재”라며 “현행법에는 재벌체제에 대한 규정이 없고 주주 중심의 개별회사만이 존재할 수 있다. 그래서 기업집단법을 만들어 제대로 규제하자는 논의가 있고, 저도 지금처럼 어정쩡하게 놔두지 말고 기업집단법을 만드는 게 옳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상당히 의미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대선주자들도 이에 대한 의견을 표명하고, 정당들도 더 이상 기업집단법을 서류뭉치 속에 던져 놓지 말고 국민들에게 공개해야 한다. 이 기회에 기업집단법 논의가 미래의 재벌체제를 개혁하는 중요한 대안으로 공론화되기를 기대한다.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신고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