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22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전설과 신화로 유서 깊어 관광을 해 보고 싶은 첫손에 꼽히는 나라 가운데 그리스를 빼놓을 수 없다. 지금은 독일·프랑스·영국이 강국 행세를 하고 있지만 사실 유럽문명의 발원지는 그리스가 아니던가. 그런데 국민소득 3만달러의 1천만 국민이 평화롭게 살고만 있을 것 같았던 그리스가 연일 세계 언론의 머리기사로 오르고 있다. 전설과 신화 때문이 아니고 관광명소 때문도 아니며 치욕스럽게도 국가부도 위기를 목전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가 외국에 진 빚을 못 갚고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하면 돈을 빌려 준 프랑스·독일·미국 은행 등이 부실에 빠지고, 처지가 비슷한 아일랜드·포르투갈 등으로 사태가 번지면서 또다시 세계경제가 공황상태에 빠질 것이라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지금 그리스는 세계경제 위기를 다시 촉발시킬 시킬지도 모를 시한폭탄으로 간주되고 있고 2008년의 리먼 브러더스로 취급받고 있는 중이다. 3만달러 국민소득을 이룬 유럽문명 발원국가가 졸지에 서구가 멸시해 왔던 아시아나 남미의 부실국가 취급을 받게 된 것이고, 그 나라에 사는 그리스 국민은 후진국 국민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다.

채권자들인 프랑스·독일 등의 민간은행들 부실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로재정안정기금(EFSF)이 돈을 빌려 줘서 빚을 갚게 하고, 대신 그리스에게는 공무원도 대폭 실업자로 만들고 서민 사회복지 지출도 줄이고, 임금도 깎으라는 요구를 하고 이를 안 지키면 더 돈을 빌려 주지 않겠다고 위협한다. 심지어 그리스는 빚을 갚기 위해 국가재산 약 500억유로 규모를 팔겠다는 약속을 해야 했다. 우리 돈으로 70조원가량 되는데, 인천국제 공항 규모의 공공자산을 10개쯤 팔아야 될 지경이다. 도대체 그리스 국민들이 뭘 잘못했기에 이렇게 가혹한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일까.

언론보도의 어디에도 그리스 국민들이 겪는 고통을 이해하려는 노력의 흔적은 없다. 오직 그리스 국가부도가 현실화할 경우 채권자들이 입을 손실과 이로 인한 세계경제의 혼란에 대한 우려뿐이다. 이름 있는 전문가나 정치가들도 그리스 국민의 안위 따위는 관심 없고 마치 부실한 기업 처리하듯 쉽게 다룬다. 심지어 우리 정부나 보수세력들은 그리스가 그동안 과도한 복지지출로 재정을 허술하게 운영했기 때문에 나라가 결딴났다고 비판하고, 우리는 ‘복지 포퓰리즘’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그럴듯한 교훈을 도출하는 모습조차 보인다.

과연 지금의 국가파산 사태는 그리스 국민이 그동안 나라 재정으로 안일하게 사회복지를 누린 자업자득일까. 객관적 통계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 준다. 그리스가 재정위기에 빠졌다고는 하지만 2008년 경제위기 전까지만 해도 재정적자가 GDP 대비 5%를 넘지 않다가 3년 만에 두 배가 뛰었다. 국가채무도 100%에서 150%로 뛰었다. 평균 4% 정도는 성장했는데 지금은 정반대로 마이너스 5%로 추락했다. 바로 금융위기 때문이다. 금융위기를 그리스 국민이 일으켰는가. 아니다. 바로 그리스에 돈을 빌려 준 미국과 유럽 강국들의 민간은행들이 저지른 범죄다. 바로 그들이 그리스 채권을 회수하겠다면서 그리스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일찍이 우리나라도 97년 끔찍했던 외환위기 경험이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은 후, 금반지를 모아도 부족해서 공기업과 은행들을 해외매각할 수밖에 없었고 외자유치를 구걸해야 하는 처지였다. 일자리에서 쫓겨나고 월급이 깎여 나가는 것을 감수해야 했다. 그리스도 마찬가지다. 재정위기라기보다는 대외채무 상환위기에 걸린 것이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환율을 절하시키고 대외여건의 호조건을 타 수출을 급격히 늘림으로써 일단 채무위기로부터는 벗어났다.

그러나 그리스는 사정이 다르다. 통화정책과 환율정책을 쓸 수가 없다. 자국의 독자적 통화를 쓰는 것이 아니라 유로통화를 함께 쓰고 있기 때문이다. 수출을 늘려 경상수지를 흑자로 반전시켜 빚을 갚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우리나라의 경험처럼 구제금융의 대가로 요구한 긴축정책은 경기침체를 더 가속화시켜 성장률을 떨어뜨리고 있다. 점점 빚을 갚을 능력을 잃어 가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나라가 있게 하고 그 나라 국민이 살게 해야 한다. 채권자들과 민간 채권은행이 손실을 입지 않게 하겠다면서 그 나라 국민을 무한의 고통으로 내몰 수는 없는 것이다. 더구나 원인을 따지면 문제의 원인이 바로 그 채권자들이 아니던가. 즉시 채무지불을 상당기간 연장하든지 아니면 탕감해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 국가의 자금을 그리스 국민과 국민경제를 회생시키는 데 투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스 국민이 살고 국민경제가 회복돼서 떳떳이 빚을 갚을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만들어야 한다. 채권은행의 부실 우려가 먼저가 아니다. 필요하다면 유로화 탈퇴도 못할 것은 아니다. 살아나고 나서야 유로화든 무엇이든 지킬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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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도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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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1.09.15김병권/새사연 부원장

158년 역사의 4위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면서 세계금융위기로 확산된 지 3년이 됐다. 위기 수습을 위한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건만 금융위기가 극복된 것은 고사하고 제2의 경제위기 징후가 다시 세계를 뒤덮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더블딥 공포가 배경에 깔리면서 그리스 국가 부도위험이 거의 막바지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중이다.

3년 전의 위기 상황에서 나왔던 거의 모든 현상들이 그대로 재연되고 있다. 신용평가기관들의 줄 이은 신용등급 강등 조치가 3년 만에 재연되고 있다. 유럽 주요 은행들의 부실 우려와 자본확충을 해야 한다는 움직임들도 다시 나타나고 있다. 미국과 일본·스위스 국채 등 안전자산 쪽으로의 쏠림현상이 극심해지고 있는 모습도 3년 전에 익히 보던 것이다. 부실에 빠진 미국은행에 긴급 수혈을 해 준 적이 있는 중국이 다시 유럽 부실채권을 매입하려는 움직임도 3년 전에 봤던 낯익은 모습이다. 파산과 구제 사이의 극심한 갈등과 혼란도 투자은행이냐 남유럽 국가들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 본질은 유사하다.

물론 달라진 것도 있다. 각국 정부의 극히 무력한 대처방식과 힘을 잃어버린 국제공조가 그것이다. 미국의 오바마 정부가 지난 8일 두 번째 경기부양책을 발표했지만 2009년 1차 부양정책에 비해 거의 긍정적인 반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G7 정상들이 모였지만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못했다. 그리스 국가부도 위험에 대한 유로통화 국가들의 분열은 정도가 심각하다. 경제위기의 확산위험이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와중에 미국 통계국은 이달 13일 중요한 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지난해 미국의 빈곤인구가 4천630만명으로 한 해 사이에 270만명 늘어났으며 통계 작성 52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라는 것이다. 지난해 빈곤비율(15.1%)도 93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또한 미국가계 중위소득은 2009년 5만599달러에서 지난해 4만9천445달러로 1년 동안 2.3%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60년대 이후 어떤 침체기보다 빠른 감소율이었다. 14년 전인 96년 수준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문제는 이런 미국의 수치가 경제위기 이후 회복세가 정점에 이르러 경제성장률이 3%까지 올라갔던 지난해 데이터라는 점에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빈곤가구는 늘고 소득도 줄어든 상황에서 무슨 요인 때문에 성장률은 3%까지 올랐던 것일까. 가계부문의 소득이 줄어든 대신 기업부문의 소득이 올라갔기 때문이다. 경제위기로 파산지경에 몰렸던 씨티은행과 GM 등 유력 기업들이 지난해 사상 최대의 실적을 기록했던 것을 기억하면 된다.

결국 리먼 사태 3년 동안 각국 정부와 언론매체가 앞 다퉈 보도했던 경기회복의 실체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극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각국의 국민들과 가계는 고용과 소득이 거의 회복되지 못한 채 기업들만 인력 구조조정과 비용절감으로 수익률을 회복했던 것에 불과했던 셈이다. 이는 미국의 빈곤율과 소득상승률 이외에 여전히 9% 수준인 실업률, 아직도 하강 추세를 멈추지 않고 있는 주택가격 등을 봐도 명백하다. 가계 입장에서 보면 사실상의 경기침체가 3년째 이어 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식적인 지표경기마저 다시 추락할 태세다. 올해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2% 밑으로 떨어질 것이 확실하다.

더욱이 미국의 경우 재정수지와 국가채무 악화를 이유로 재정긴축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사회보장성 지출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 실업률 증가와 소득하락의 영향 때문에 미국의 건강보험 미적용 인구는 경제위기 이후 4천990만명으로 늘었다. 민간 건강보험 적용대상자는 2008년 이후 2년 동안 무려 3.2%가 줄었다. 그나마 정부부문에서 1.9%가 증가해 겨우 완충을 해 주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보장성 지출 축소는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

우리나라 역시 다르지 않다. 경제위기 3년 동안 삼성과 현대자동차 등 주요 대기업들은 최고 실적을 갈아치우며 고공행진을 했지만 국민들의 가계소득은 사실상 정체하거나 하락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도 이제 제2의 경제위기 국면 초입에 서게 됐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보수도 어김없이 재정긴축과 복지지출 억제 주장을 펴고 있고 대기업과 초고소득층 증세라는 해법은 애써 피해 가려 하고 있다. 그러나 객관적 지표는 가계와 저소득층에 대한 사회안전망 강화를 위해 기업과 초고소득층에 대한 증세가 정의로우며 불가피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도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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