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 01 / 10 최정은/새사연 연구원

 

새사연 2013년 회원 캠페인- “새사연과 함께하는 희망 북클럽”을 시작하면서


우려했던 신자유주의 보수정권의 집권 연장이 현실화되면서 우리 사회가 진보적 발전을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가 많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을 힘들어 하는 다수 국민이 존재하는 한 변화에 대한 모색은 멈출 수 없으며 우리 사회의 진보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진보가 노력을 기울여온 보편 복지와 경제 민주화, 그리고 일자리를 의제로 하여 치러진 18대 대선임에도 진보가 패배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보수가 손쉽게 의제를 차용해도 아무런 차별화가 되지 않을 만큼 진보 정책의 폭과 깊이가 짧기 때문이라 생각 됩니다. 또한 진정 현실에서 살아가는 우리 국민들의 삶과 생각에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살아있는 진보 정책’을 모아내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제안합니다. 평범한 생활인들과 손잡고 우리 사회의 진보적 변화를 추구해온 새사연은 현 시점에 꼭 필요한 고민이 담긴 책들을 함께 읽는 것으로 새로운 시작을 함께 할 것을 회원들과 시민들에게 제안합니다. 그 첫 출발점으로 새사연 연구원들이 각자 회원님들께 꼭 추천하고 싶은 책 한권씩을 선정하여 소개하고, 진보의 깊이를 위한 물음을 던지겠습니다.

아울러 이후에 회원님들이 추천하는 책, 새사연과 함께하는 독서 토론, 저자와의 대화 등을 다양하게 시도할 생각입니다. 회원님들의 관심과 참여 기대하겠습니다.

 

<새사연 희망 북클럽②>『대한민국 부모』
-대한민국 부모, 욕망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라-

『대한민국 부모

(이승욱 신희경 김은산, 문학동네, 2012)

자식을 명문대에 넣기 위해 오늘도 기를 쓰는 엄마들, 학원비 대느라 자식과 말 한 번 제대로 섞지 못하는 아빠들에게 일침을 놓는 우리 십대와 부모들의 실태보고서이다.

『대한민국 부모』는 교육의 탈을 쓴 텅 빈 교육 때문에 아이들만 멍들어 버린 것이 아니라 부모역시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아이들과 부모 그리고 우리 사회 모두를 리셋 해야 한다고 진단한다.

대한민국 교육을 단 한번이라도 고민해본 이들이라면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부모노릇 해보려고 좌충우돌 양육 앞에서 머리를 싸매며 한 두 권의 책은 잡아봤을 것이다. 차고 넘치는 정보들 가운데 유용한 보조제도 있지만, 대부분은 우리 자식을 최고로 키우려는 부모의 욕망을 자극하기도 한다. 건강이 최고라고 말하면서도 내심 명문대 들어가 대기업에 취직하는 자식의 미래를 포기 못하는 부모가 대한민국의 현실이지 않은가. 

『대한민국 부모』(문학동네, 2012)는 살벌하게 묻는다. 당신과 당신의 아이는 정말 살아있냐고? 그럼 우리가 죽어있단 말인가? 놀랍게도 그렇단다. 심리치료와 교육을 본업으로 하는 세 명의 전문가들이 수많은 십대들과 부모를 상담하면서 내린 진단이다. 현장에서 만난 아이들은 심각하게 망가져있었고, 부모들은 더 암담해보였다고 한다. 도대체 왜? 우리가 늘 입에 거품 물고 말하는 대한민국 교육 때문에? 

문제는 ‘교육’만이 아니었다. 세 필자는 교육과 얽힌 가정, 사회 전체의 문제로 시야를 넓히고 있다. 교육은 교육의 외피를 썼을 뿐 텅 빈 공간이고, 가정은 안식을 얻지 못하는 빈 공간이다. 그 안에서 교육과 사교육에 발목 잡힌 자식, 부모, 부부는 악순환을 겪으며 병들어 가고 있었다. 현장에서 나온 생생한 상담 사례들은 거침이 없다. 부모가 자식들에게 ‘미친년, 찌질이’로 불릴 수 있다니, 강 건너 불구경할 일이 아니다.  

우리 아이들, 어쩌다?

무수한 사례들은 아이들이 교육이라는 야만의 정글 안에서 ‘죽거나, 죽이거나 미치거나’한 상태를 담담히 증언한다. 아직도 고3 학생이 성적 때문에 매를 맞고 엄마를 죽인 사건은 잊을 수가 없다. 그러나 아이도 부모도 과해 생겨난 예외적인 비극이 아니었다. 자식과 부모의 갈등이 극에 달한 경우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영재교육 학원에 다니면서 틱장애를 보인 초등3학년 민희, 과학자가 꿈이었지만 창의력 수업 숙제로 꿈마저 잃은 초등5학년 세환이, 대학입시를 앞두고 외상없이 아픈 고3 민선이, 성적이 크게 떨어진 후 망상에 시달리는 고2 재혁이는 병들어 있었다. 또 다른 아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일탈을 일삼거나 무기력증에 빠져있기도 한다. 흔히들 상위권에 있다고 하는 아이들 역시 안으로 곪은 병이 크다. 일찌감치 미국 아이비리그에 진출한 아이들이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학동안 상담실을 찾는가하면, 일류대를 나와 대기업에 다녀도 타인과의 관계에 익숙하지 못해 ‘정서적 발달지체’라는 진단을 받기도 한다.
 
자신들을 내버려 두지 않는 부모에 대한 아이들의 분노도 극에 달해있다. 인터넷 공간에서 아이들은 엄마를 ‘미친년’, 아빠를 ‘찌질이’ 등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로 칭한다. 부모가 주도하는 학습에 아이들은 주도력을 잃고, 자신의 삶을 상상하는 힘마저 잃어 산 채로 죽어지낸다는 소름끼치는 진단이다.  성공까지 기다렸다가 매몰차게 부모와 연을 끊는 자식마저 생겨난다.

우리 가정이라고 다를까? 

흔히 자녀의 입시성공은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 할아버지의 재력에 의해 좌우된다는 우스갯소리를 나눈다. 하지만 이는 기막힌 대한민국 가정의 한 단면을 대변해주고 있다.  

가정 안에서 부모는 희생하고 있다. 엄마는 아이의 공부를 자신의 과업으로 여기고, 아버지는 학원비 대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게 정말 옳은 희생인가 돌이켜보지 않을 수 없다. 바쁘다, 피곤하다 입에 달고 사는 아버지와 자식은 어느새 멀어져있고, 성적 떨어지면 가족의 원망에 전전긍긍하는 엄마는 아이 공부에 집착하면서 급기야 남편과도 멀어진다. 애정 없이 살아도 자식만은 포기 못하는 엄마, 육아에 한번 참여하지 않은 아버지가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라니 서글프다.  

이 책의 저자들은 가혹하리만큼 대한민국의 엄마를 질타한다. 정확히 말하면 엄마의 속물근성을 꼬집는다. 부모들이 희생하면서 자식을 통해 그만큼 보상받으려 한다는 점이 예전의 부모와 다르다는 지적이다. 오늘날 부모는 물질적으로 희생했다고 당당히 말하면서, 정작 마음으로 희생하는 부모노릇은 놓치고 있었는지 모른다. 아이들의 마음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희생이야말로 부모가 아이들로부터 독립하고, 아이들도 부모에게서 자립하는 옳은 길이었다. 

주류사회의 허상 깨야 답이 보인다 

해마다 대학진학률이 올라 10명 중 8명이 대학을 가는 사회가 되었다. 그야말로 대졸자 주류사회다. 그러나 이 사회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주류와 비주류, 정상과 비정상을 편가르고, 그 안에서 또 서열도 매긴다. 남들 다 가는 대학, 남들 다 사는 아파트, 남들 다 타는 차... 왜곡된 주류에 속하려고 끊임없이 바드득거리며 경쟁하는 꼴이다. 이들 부모 세대가 다름 아닌 486세대다(이제는 40대가 되어버린 386세대). 이들은 민주화운동의 주역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동시에 아파트와 재테크, 주식투자, 사교육 열풍을 이끈 주역이라는 비난도 듣는다. 

자본에 포획된 사회에서 교육, 가정, 사회 그리고 그 안의 주체들은 허하고 불안하기만 하다. 늘 불안감에 시달리는 부모는 자식들에게도 똑같은 불안을 물려주었다. 대학을 나와도 끝 모를 경쟁에서 이겨야하니 십대와 청년들은 자기 삶의 가치를 알지 못한다. 

여전히 명문대에 집착하는 부모들 때문에 오늘도 등 떠밀려 학원으로 돌고 도는 아이들이 있다. 가정 생활비의 대부분이 학원비이고, 생활비는 빚을 내 충당하는 ‘교육 빈곤층’도 생겨나고 있다. 단순히 부모의 욕망과 잘못된 선택만 탓하기 어려운 문제다.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다. 최근 혁신학교의 열풍도 이런 기형적 교육과 사회를 바꿔보려는 부모의 열망을 반영하고 있다. 서열경쟁이 아니라 함께 협력하고, 교사와 아이 모두 자율적으로 학습하는 분위기에서 사교육비도 줄고 학습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적어도 이 책을 읽은 부모라면 애면글면 아이에게 자신의 욕망을 투시하지 말고 독립하자. 그리고 함께 협력하며 공부하는 교육제도를 요구하자. 이 두 가지만 시작해도 다른 미래를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 저자들이 살만한 대한민국을 위한 22가지 과제도 고심해 내놓았으니, 우리 자신과 아이들의 모습부터 들여다보자.

1. 먼저 자기만의 삶의 기준을 갖자, 그것이 삶의 감각을 회복하는 첫걸음이다
2. 좀 깐깐하게 살자, 삶의 품위를 지키자
3. 생각을 하고 살자, 공부다운 공부를 하자
4. 혼자만 살아남으려 발버둥 치다 외롭게 무너지지 말고 함께 살길을 찾자
5. 제도와 시스템이 인간의 삶을 위해 기능하게 하자
6. 정치가 우리의 삶이 되게 하자
7. 더 많은 세금을 내자, 부자들은 더 더 더 많이 내라
8. 국민의 건강과 교육, 양육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9. 아이들의 ‘살아 있음’을 인정하자
10. 교육 본래의 의미를 복원하자
11. 공교육을 포기한 학교에 문제를 제기하고 항의하자
12. 작은 학교를 더 많이 만들고 교사 수를 대폭 늘리자
13. 누구나 ‘본부장님’이 될 수 없다, 아이들은 노동의 가치를 배워야 한다
14. 대학을 국립화하고 스무 개만 놓아두고 다 없애자
15. 학생의 학력 평가 방법을 개혁하자
16. 부모 자신이 먼저 독립하자
17. 엄마는 자식과 남편에게 자신의 욕망을 투사하지 말자
18. 아내는 남편의 건강한 남성성이 발현될 수 있도록 지지하자
19. 아버지는 아내에게, 아이들에게 좀더 당당해지자
20. 아버지가 어른이 되어야 한다
21. 아이들이 문제가 아니다, 부모가 문제가 아니다, 부부가 문제다
22. 가족이 함께 책임을 나누고 일하는 시간을 갖자

저자 소개

-이승욱-

뉴질랜드에서 정신분석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다시 실존적 현상학 전공으로 철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뉴질랜드 국립 정신병원에서 심리치료실장으로 약 10년 가까이 일하며 심리치료(정신분석)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마쳤다. 이민 국가인 뉴질랜드에서 문화적 배경과 인종적 출신이 다른 사람들, 아시안 이민자들, 또 한국인들과 정신분석작업을 했다. 지금은 서울에서 닛부타의숲(회복의 숲) 상담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1년 정도 MBC <생방송 오늘아침-사랑더하기>의 고정패널로 출연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사랑에 서툰 아빠들에게》 등이 있다.

-신희경-

대학에서 교육심리학을 전공하고 독일에서 교육심리학, 발달심리학을 공부했다. 그후 한국교육개발원에서 연구원으로 일했고, 현재 ‘한 정신건강연구소’를 운영하면서 청소년, 부부, 가족 상담을 하고 있다. 청소년 문제, 부모 노릇, 공교육의 변화에 관심을 갖고 있다. 지은 책으로 『학습자의 동기유발을 위한 교육심리학』(공저)이 있다.

-김은산-

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출판사와 언론사에서 일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이미지 비평과 문화연구로 대학원 과정을 마쳤고 대안적인 삶과 문화를 모색하며 하자작업장학교에서 교사로 일했다. 청소년 예술 교육과 생태적 삶에 관심을 갖고 있다. 지은 책으로 『비밀 많은 디자인씨』가 있다.

* 출처: 알라딘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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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11 / 19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미국 대선은 오바마의 재선 승리로 끝이 났다. 하지만 오바마의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일 것이다. 미국 경제 뿐 아니라 세계 경제는 여전히 침체 상태이고, 뾰족한 해결책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년 1월 1일로 다가온 재정절벽(세금 인상과 예산 삭감으로 인하 큰 폭의 재정지출 감소)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전 터키 재무장관이자 유엔개발계획(UNDP) 사무총장, 세계은행 부총재였던 케말 데르비스는 오바마의 당선 요인은 광범위한 중산층의 지지에 있다고 지적하면서, 오바마가 두 번째 임기에서 가장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 정책은 중산층과 저소득층을 위한 소득재분배라고 말한다. 중산층과 저소득층이 살아나야 수요가 회복될 수 있으며, 지속가능한 성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미국 뿐 아니라 세계 모든 국가들이 소득재분배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소득재분배를 위한 방안으로 양질의 교육과 기술훈련을 제공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그럴 때에 실업을 막을 수 있고, 안정적 고용을 통해서 소득재분배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글로벌 불균형을 해소하고, 기후변화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세계적 차원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인다.


케말 데르비스의 제안처럼 소득재분배는 지금 전세계적으로 필요한 조치이다. 미국 국민들은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대통령으로 부자증세와 재정지출을 강조한 오바마를 선택한 것이다. 반면 감세와 재정긴축을 주장했던 롬니는 이 문제를 실현하기에 부적절한 후보로 평가받은 것이다. 몇 달전 있었던 프랑스 대선에서 고소득자에 대한 세율을 높이겠다고 주장했던 올랑드가 당선된 것도 마찬가지이다. 일본 민주당이 부자증세 계획을 발표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세계 각 국의 국민들이 선택을 내리고 있는 가운데, 이제 우리의 선택이 남았다. 부자증세와 복지강화는 물론이며 근본적으로는 중산층 이하의 임금과 소득을 높여 양극화를 해소하고 소득재분배를 이룰 수 있는 후보는 누구일지 잘 판단해보자.

 

 

버락 오바마의 두 번째 임기

(The Second Coming of Barack Obama)

 


2012년 11월 7일

프로젝트 신디케이트(Project Syndicate)

케말 데르비스(Kemal Dervis)

힘든 선거였지만, 버락 오바마는 재선에 승리했다.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오바마는 새로운 4년의 임기 동안 미국과 세계를 위해서무엇을 할 것인가?


계속되는 경기 침체와 8%에 달하는 실업률을 껴안은 채 재선에 승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니콜라스 사르코지(프랑스 전 대통령), 고든 브라운(영국 전 총리), 호세 사파테로(스페인 전 총리)와 같은 많은 정치지도자들이 최근의 경제적 문제로 인해 자리에서 밀려났다. 공화당 대통령 조지 부시의 8년 임기 동안 폭발한 금융 악재로 인해, 오바마는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경제회복을 위해 뛰어야만 했다.


오바마는 단지 그의 비범한 개인적 쾌활함 뿐 아니라 중산층 유권자의 폭넓은 지지 덕분에 이길 수 있었다. 오바마의 경제 회복이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중산층 유권자들은 부자들을 옹호하는 것처럼 인식된 공화당 후보 롬니보다는 오바마 대통령이 자신들을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미국의 계속되는 인구 변화는 라틴계를 비롯한 소수민족에게 강력하게 피력하지 못하는 후보의 승리를 어렵게 만들었다. 이는 특히 롬니가 실패한 부분이다.

이번 선거는 과도한 비용 지출과 네거티브적 공격이 많았다는 점에서, 많은 유권자들을 불쾌하게 만들만 했다. 하지만 대안은 항상 존재하며,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격렬하게 싸워야만 한다는 미국 민주주의의 경쟁력을 전세계에 보여주었다.

기로에 서있는 세계 경제와 함께 오바마의 두 번째 임기가 시작되었다. 미국은 엄청난 확장적 통화정책과 거대한 재정적자를 유지함으로써 그나마 불안정하고 약한 수준의 경제 회복을 추진하고 있다. 기업의 금고에는 현금이 쌓여있지만, 민간 투자는 정체되고 있다. 일본은 총리가 계속해서 깜짝놀랄 만한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확실한 경제 회복은 아직 눈에 보이지 않는다.

유럽 역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마리오 드라기의 기민한 임기응변과 국채시장에 무제한 개입하겠다는 약속 덕분에 겨우 연명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최근 십년동안 가장 높은 실업률을 보이고 있으며, 성장은 본질적으로 침체되어 있다. 남유럽의 문제는 심지어 독일마저 경기 침체에 빠지도록 만들고 있다. 게다가 그리스는 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이다. 유그리스 자체는 작은 국가에 불과하지만, 그리스가 보여주는 총체적인 붕괴는 금융과 사람들의 심리에 매우 부정적인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세계 신흥시장의 경제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신흥국들의 잠재생산성 증가추세는 선진국보다 높다. 하지만 경기순환적 디커플링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선진국 경제의 영향을 받는다는 뜻 - 역자주). 세계 경제는 전체적으로 상호의존적이다. 어떤 중요한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이는 전세계로 전파된다. 협소한 거시경제의 시야를 넘어서는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은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다.

미국 자체만으로 세계경제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이 어떤 경로를 밟느냐는 세계에 거대한 영향을 미친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경제이며, 국제통화기금이나 세계은행 G20 등에서 중요한 주체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생각은 전세계의 정책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오바마가 두 번째 임기에서 가장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 경제정책은 무엇일까? 세계 경제가 처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미국, 중국, 독일 등에는 거대한 투자 자원이 있다. 기후와 자원의 제약을 고려해야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높은 생산력과 거대한 번영을 가져다주며 노동과 고용을 증진시키 줄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기술혁명의 시작에 서 있다.


하지만 이런 자원들은 지속가능한 경제 성장을 위해 쓰여져야 한다. 지속가능한 성장은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에서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회복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질 때 가능하다. 선진국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회복은 투자자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수요의 회복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자본은 많은 수익을 거두었지만 거기에 부과되는 실질 세율은 높지 않으며, 현재의 저금리는 기업에게 유용하다. 또한 미국이 2011년에 이룬 경제성장의 90% 이상이 상위 1%에게 돌아가는 것과 같은 고소득층에 집중되는 수익 배분이 일어나고 있다. 이는 더 많은 사람들을 기반으로 하는 경제 회복을 제한하고, 거시경제 정책은 지속적인 경기부양의 필요성과 커져가는 공공부채의 위험, 저금리로 인한 자산거품 사이에서 길을 잃게 만든다.

균형잡힌 소득재분배는 단지 사회적, 도덕적 문제가 아니다. 이는 거시경제에서 필수적이며, 장기적으로는 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미국과 중국 뿐 아니라 많은 국가들에게 꼭 필요한 해법이다.


이를 위해 미국은 물론이며 전세계적으로 교육과 적절한 기술 훈련이 제공되어야 한다. 새로운 기술을 훈련받지 못한다면 수많은 노동자들은 실업상태에 있을 수밖에 없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질 좋은 교육을 제공하는 것은 소득재분배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다.


마지막으로 효과적인 국제 협력이 필요하다. 중국의 경상수지 흑자는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이제 북유럽이 5조 달러의 흑자를 내고 있다. 반면 남유럽의 수요는 붕괴되고 미국의 적자는 5조 달러에 이른다. 장기적으로는 기후변화나 이상기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세계적 협력이 요구되며, 선거 이후 미국에 대해서는 청정에너지혁명, 고용창출 투자의 확대, 새로운 성장 방식 만들기와 같은 약속을 지킬 것이 강력하게 요구된다.

미국의 길고 어려웠던 선거는 끝이 났고, 이제 포괄적인 개혁정책이 요구되고 있다. 미국 의회가 이를 잘 깨닫고, 미국과 전세계의 수 억 명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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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10정태인/새사연 원장

나는 예술가들이 부럽다. 그들은 미래를 온몸으로 느끼고 문학은 문학대로, 미술은 미술대로, 또 음악은 음악대로 각각 표현해낸다. 그들은 타고난 예언자다. 그런 재능을 갖고 태어나지 못한 학자들은 미래를 과거와 현재로부터 추론해야 한다. 불행히도 이 또한 쉽지 않은데, 완전히 새로운 현상이라면 과거와 전혀 다른 이론체계를 필요로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 아무리 팍팍한 경제학을 한다 하더라도 대가들은 상당한 예술성을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예술가들처럼 미세한 떨림까지 느끼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미래의 큰 변화를 감지하고 그것을 새로운 이론으로 설명하고 답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마르크스가 그렇고 케인스가 그렇다.
 
느낌까지 갈 것도 없는 뻔한 미래에 대해서도 답을 제시하지 못하는 평범한 학자는 절망할 수밖에 없다. 생태문제가 그렇고, 또한 교육이 그렇다. 되풀이하고 또 되뇌지만 ‘대한민국’의 교육은 이미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대한민국’ 전체를 잡아먹을 것이다. 생태문제 역시 이젠 발등의 불이며, 한 나라를 넘어 전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그런데 왜 현재의 대선에서 현재의 삶을 위협하고 미래의 삶을 압살할 것이 틀림없는 이 두 문제는 쟁점조차 되지 않는 것일까? 박근혜 후보는 물론이고 문재인, 안철수 후보의 공약에서도 생태와 교육은 뚜렷한 해법을 찾기 어렵다.
 
내 여태까지의 공부로 볼 때 현재의 경제학 수준으론 생태문제의 해법을 제시할 수 없다. 애로와 다스굽타와 같은 당대의 최고 주류경제학자들의 최근 논문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이들은 생태문제의 핵심 개념인 ‘지속가능성’을 브룬트란트 리포트(1987)에 따라 “미래 세대가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킬 능력을 훼손하지 않고 현재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발전”으로 정의한다. 이는 추상적인 차원에서 미래 소비의 현재 가치가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100년 후에도 우리 아이들이 지금 우리처럼 소비할 수 있으면 된다는 얘기다.
 
이제 경제학자들에게 생태문제는 미래 세대의 행복의 가치를 얼마나 할인하느냐의 문제와 자연자원과 물적자원의 대체 가능성, 즉 기술적 발전을 얼마나 높게 평가하느냐의 질문으로 좁혀진다. 예컨대 극단적으로 하루살이에게 미래 할인율은 1이 되어 생태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기술의 무한한 발전이라는 가정 하에서는 에너지 가격 급등이 자동적으로 에너지 절약 기술을 출현시킬 것이기에 생태문제란 기우의 영역에 속하게 된다. 결국 합리적 미래 할인율과 합리적 대체 가능성의 추정이라는 끝없는 논쟁에 빠져들게 된다(무의미하다는 얘긴 아니다).
 
불행하게도 우리의 민주주의도 믿음직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만일 민주주의를 다수결로 단순화한다면 생태문제에 관한 투표 결과는 번번이 실망스러울 것이다. 예컨대 할인율을 낮게 잡는다면, 그리고 기술 개발의 가능성을 의심하는 경우, 100년 뒤의 아이가 우리와 똑같이 에너지를 쓰게 하려면 우린 당장 우리의 에너지 소비를 제로로 줄이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미래의 아이들은 물론 이렇게 현재의 소비를 대폭 줄이는 데 투표할 것이다. 반면 보통의 어른들은 경제학자들의 의견 대립을 이유로 결단을 유보하는 쪽을 택할 것이다. 미래를 살아야 할 현재의 아이들은 물론 태어나지 않은 미래의 아이들에겐 투표권이 없다.
 
얼치기 경제학자의 결론은 생태정치가 시민들의 예술가적 감성을 자극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원의 대체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으며 앞으로 닥칠 에너지 위기는 70년대의 오일쇼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규모라는 것을 절감하도록 해야 한다. 핵발전 문제는 아주 좋은 소재다. 그 위협을 실감한 경험이 그리 오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핵발전을 중지시키려면 에너지 소비를 3분의 1 가량 줄여야 한다는 결론도 바로 나온다.

소비절약에 합의하지 않는 한 에너지 절약 기술은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제본스 패러독스). 지금 내 책상 옆에 쌓여 있는 논문 더미가 바로 그 증거다. 핵발전의 중지와 에너지 소비를 3분의 1로 줄이기, 그리고 이를 위한 생태세(echo tax)의 부과는 우리의 예술적 감성에 기댄 최소한의 대선 공약일 것이다. 누가 이런 공약을 제시할 것인가? 이번 대선의 내 선택 기준이다.

이 글은 주간경향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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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12정태인/새사연 원장

교육에서 평등이란 무엇을 의미할까? 독자들께서는 대부분 ‘고교 평준화’를 떠올렸을 것이고, 곧 이어서 ‘주입식, 암기식 획일교육’까지 연상하셨을 것이다. 이주호 교과부 장관이 ‘고교 다양화’를 대안으로 제시하면서 극단의 경쟁을 도입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연상에 근거한다.

과연 그럴까? 답은 단연코 “아니오”이다. 평등교육으로 유명한 핀란드 교육이 주입식, 암기식인가? 정반대다. 교육에서 평등이란 말 그대로 등(等)수가 없다(平)는 것을 의미한다. 재작년 핀란드에서 나는 에리키 아호를 만났다.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핀란드의 교육개혁 40년 역사 중 처음 20년 동안의 국가교육청장이었다.

은발의 이 노신사는 매우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등수라니요? 이 아이는 달리기를 잘 하고, 얘는 수학을 잘 하고, 이 친구는 음악에 발군인데 아이들의 순서를 어떻게 정한다는 얘기죠?” 이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리는 환하게 밝아졌다. 평등이란 등수를 매길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하여 핀란드 선생님들의 역할은 아이가 어떤 분야를 좋아하는지 파악해서, 더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데 있다.

등수를 매기려면 아이들의 학력을 하나의 숫자(scalar)로 환산해야 한다. 그러려면 수학이나 영어에는 가중치 100이나 90을 주고, 체육이나 음악에는 10 또는 5를 부여해야 한다. 바로 우리나라에서 하는 짓이다. 전국이 단일한 시험을 보고 그 점수에 따라 인생이 결정되니, 모두 똑같은 내용을 배워야 하고 ‘찍기’에 의해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전국 등수와 일제고사. 이것이 획일식, 암기식 교육의 근원이다. 아이들이 자살하고 심지어 어머니를 살해하는 끔찍한 사태의 원인도 이것이다.

평등은 다양성을 낳는다. 자기가 좋아하는 걸 더 잘 하면 된다. 바로 이 다양성이 효율성을 낳는다. 3년에 한 번 15살 정도 아이들을 대상으로 PISA라는 국제학력평가를 치르는데 핀란드는 10년 동안 3연속 종합 1위를 차지했다.

우리 아이들도 발군의 성적을 올리고 있다. 대체로 핀란드 바로 뒤의 자리를 유지해 왔다. 학력에 관한 한 어깨를 나란히하는 두 나라 아이들이 정반대의 응답을 하는 질문은 “얼마나 좋아서 공부하는가?”이다. 상상하시는 대로 핀란드 1위, 우리는 일본과 함께 꼴찌다. 우리 아이들이 핀란드에 비해서 거의 두 배의 공부를 한다는 것도 여기에 추가해야 한다.

아이들뿐 아니다. 어른들도 두 배로 일한다. 그런데 1인당 GDP는 핀란드가 두 배다. 우리들이 핀란드 사람보다 4배나 못났을까? 그럴 리 없다. 만일 어떤 직업을 택한다 하더라도 월급도 별 차이가 없고 사회적으로 비슷하게 인정받는다면 당신은 어떤 직업을 택할 것인가? 자기가 잘 하고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일을 택할 것이다. 핀란드의 수도배관공과 교수는 비슷한 월급을 받는다. 더구나 이 나라의 보편복지는 어떤 직업을 택해도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준다. 시장주의자들이 강조하는 ‘선택의 자유’를 어느 쪽이 더 확실히 보장하는 것일까?

북유럽 국가의 일반적 신뢰(generalized trust·‘다른 사람을 얼마나 믿는가?’)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최근의 연구들은 소득불평등도가 신뢰도를 결정하는 요소 중 가장 중요하다는 데 거의 100% 합의했다. 신뢰는 사회적 딜레마를 해결해서 효율성을 높인다. 다음 번에 이야기할 주제이다.

이 글은 주간경향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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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 06 / 10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가계소득의 16.6%에 달하는 등록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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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등록금 상승률과 물가, 가구 소득 및 지출 상승률을 비교해보았다.


□ 2000년 이후 한 해 평균 물가 상승 3.1%, 대학 등록금 상승은 6.4%

- 통계청 소비자물가지수에 의하면 2000년부터 2010년까지 물가 상승은 한 해 평균 3.1%였다. 같은 기간 대학 등록금 상승률은 6.4%였다.
- 같은 기간 대학 등록금 상승률을 국공립대, 사립대, 전문대로 나누어 살펴보면 각각 7.4%, 5.7%, 6.2%로 국공립대의 상승폭이 가장 컸다.
- 그림1과 표1에서 볼 수 있듯이 거의 매년 물가 상승을 훨씬 뛰어넘는 등록금 상승이 있어왔다. 단 2009년과 2010년의 경우 몇몇 대학들의 등록금 동결이 이루어지면서 등록금 상승률이 낮은 수치를 보였다.

□ 가계 소득 증가 보다 빠르게 상승해 온 대학 등록금

- 통계청 가계동향에 의하면 2005년부터 2010년까지의 기간 중 2010년을 제외하고 매년 대학 등록금 상승률이 가계 소득 및 소비 증가율보다 높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미국발 금융위기가 닥친 후 임금이 거의 동결되었던 2009년의 경우 소득 증가율은 1.2%에 그쳤지만 대학등록금은 이보다 2배 높은 2.4%의 상승률을 보였다.

□ 평균 연간 가계소득 4634만 원, 사립대 등록금 768만 6천 원

- 통계청 가계동향에 의하면 2011년 1분기 전체 가계의 평균소득은 월 385만 8천 원이다. 이를 연간으로 환산하면 4634만 원으로, 우리나라 가계가 1년 동안 벌어들이는 평균 소득이 된다. 한 편 교육과학기술부의 발표에 의하면 2011년 사립대의 1년 등록금 평균은 768만 6천 원인데 이는 평균 가계 소득의 16.6%에 달한다.
- 가계 소득과 비교했을 때 대학 등록금의 부담은 저소득 가구일수록 커진다. 소득 수준에 따라 5분위로 구분했을 때 저소득층인 1분위 가계는 연간 소득이 1327만 2천 원이다. 만약 이 가구에 사립대를 다니는 대학생이 있다면 가계 소득 중 절반 이상을 등록금으로 지출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2분위 가계의 경우 연간 소득이 2892만 원이며 사립대 대학생이 존재한다면 가계 소득 중 4분의 1 이상을 등록금으로 지출해야 한다.
- 결국 최근 반값등록금에 대한 전 국민적, 전 세대적 지지는 대학 등록금을 감당하기 어려워진 가계 경제가 한 요인으로 작용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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