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5.04정태인/새사연 원장

역시 ‘다이내믹 한국’인가, 했다.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이 의료민영화나 4대강 등 공공성 의제의 들불로 번져나갔던 것, 2010년 무상급식이 순식간에 보편복지 의제로 자리잡은 것처럼 이번엔 ‘경제민주화’가 그럴지도 모른다, 내 가슴은 노래 가사처럼 두근두근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민주통합당은 패배했고 통합진보당은 여전히 대중의 인정을 받지 못했으며 진보신당과 녹색당은 아예 없어지고 말았다. 김종인 박사 말마따나 새누리당 당선자 중에 경제민주화를 실천할 사람은 찾아볼 수 없고 야권연대 쪽을 통틀어 당장 정책과 법안을 만들 정도의 실력을 가진 당선자는 대여섯 명에 불과하다. 더구나 민주통합당에서는 예의 ‘중도론’이 또 스멀스멀 기어나오고 있으니 이대로 간다면 대선에서도 별로 기대할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경제민주화란 도대체 무엇일까? 한국에서는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는 헌법 119조 2항(김종인 조항)이 그 근거다. 즉 헌법은 소득재분배(복지), 그리고 독점규제(재벌개혁)를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제헌헌법에는 ‘이익균점권’이 있었으니 우리 헌법은 유구한 ‘경제민주화’의 전통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경제민주화란 ‘경제민주주의’를 향하여 간다는 뜻일텐데 경제민주주의라는 목표는 어떤 모습일까? 불행하게도 이 질문에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명확한 답이 없고 그야말로 백화제방의 상태이다. 경제학자들은 시장이 곧 민주주의라는 프리드만(Freedman, M)의 강변 이래 별 관심이 없었고 정치학자들만 띄엄띄엄 의견을 개진했을 뿐이다.
 
경제민주주의 하면 떠오르는 학자는 정치학자 달(Dahl, R)이다. 그는 적어도 선진 사회의 정치에서는 ‘1인 1표’라는 (형식적) 민주주의가 규범인데, 경제에서는 왜 ‘기업 괴물(corporate leviathan)’의 전제주의가 규범인지에 의문을 제기했다. 따라서 정치와 경제가 대칭적이기 위해서는 ‘작업장 민주주의(workplace democracy)’가 필수적이다. 
 
이런 문제의식은 1980년대 진보적 경제학자들에게도 나타나는데 보울스(Bowls, S) 등의 ‘민주적 기업’이 그것이고 지난번에 소개한 프리먼(Feeman, R)은 30년 넘게 이 문제에 천착해서 ‘공유자본주의론’을 완성했다.
 
기업 내 민주주의를 넘어 롤스(Rawls, J)는 경제에도 자신의 정의론을 적용한 결과 ‘재산소유 민주주의(property-owning democracy)’를 이상적 사회로 내세우기에 이르렀다(또 하나의 대안은 ‘자유주의적 사회주의’). 놀랍게도 롤스는 스웨덴의 복지국가를 강하게 비판했는데 복지국가가 자산 소유(‘생산 자산’, production assets)의 양극화를 용인해서 정의의 원칙인 ‘기회 평등의 원칙’, ‘차등의 원칙’을 위반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자유의 원칙도 위반했다고 해석하는 학자도 있다). 결국 롤스는 자산 및 자본재분배까지 주장한 것이다. 

우리 헌법은 사실상 독점의 시정(즉 산업구조 상의 문제)을 중심으로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국가가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고 달과 프리먼은 기업의 민주화를, 그리고 롤스는 재산소유의 민주화까지 주장한 것이다. 이 모두를 일반화한다면 자신의 삶과 자유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차원의 의사결정에 시민들이 참여해서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 경제민주주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착한 경제학’은 경제민주주의를 어떻게 볼까? 독자들은 지금까지의 정책 처방이 경제민주주의론자들의 주장과 아주 유사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데 이 얘기는 다음 번에 계속하기로 하자. 
 

이 글은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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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2정태인/새사연 원장

“아이들이 밝힌 촛불이 점점이 일렁인다. 책임을 다하지 못한 중년 사내의 시야가 이내 흐려지면서 촛불은 파스텔톤의 들불로 부옇게 번져간다.” 4년 전 이맘때 쓴 글의 첫머리다. 2008년 5월2일, “나 이제 15살, 살고 싶어요”라는 팻말을 목에 걸고 여중생들이 광장으로 나왔다. 이 아이들도 이번 총선에서 한 표를 던졌을 테지만 우리는 책임을 다하기는커녕 또 한 번 그들을 실망시켰다.

극적으로 변한 건 정부와 여당, 그리고 보수언론이었다. 촛불에 놀라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반성’을 하고 결국 국민에게 사과까지 했던 대통령은 2010년 5월, “촛불시위 2년이 지났는데 많은 억측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음에도 당시 참여했던 지식인과 의학계 인사 어느 누구도 반성하는 사람이 없다”고 다그쳤다. 조·중·동은 시민들에게 “좌파의 선동에 놀아났다”는 반성을 강요했고 검찰과 법원은 1000명이 넘는 촛불시민에게 벌금형 이상을 때렸다. 심지어 정부의 광우병 대책을 비판한 지식인들을 쫓아다니며 허위의 폭로 기사를 쓰는 것도 그들의 일이었고, 사소한 흠결을 문제삼아 MBC 팀을 대법원에서 무죄로 확정될 때까지 끊임없이 괴롭혔다.

확률로 볼 때 썩 괜찮은 전략이었다. 실제로 고전적 광우병(CJD)은 전 세계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였고 도축 소의 0.05%에서 0.1%만 검사하는 미국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 내에 광우병 소가 발견될 확률은 지극히 낮으니 말이다.

광우병 연구로 노벨상을 수상한 프루시너 교수가 미 하원에서 “은폐는 좋은 방책이 아니”라며 전수검사를 지지했다는 사실은 이들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캔자스주립대학의 폭스와 피터슨 교수가 미국에서도 유럽 수준으로 ‘고위험 소’를 검사한다면 99.999%의 확률로 광우병 양성 소를 찾아낼 것이라고 단언한 사실도 무시됐다.

그러나 미국은 영국이 광우병을 막기 위해 차례로 취한 3단계 사료 조치 중 1단계만 시행하고 있을 뿐이며 등뼈에 붙은 살을 기계로 뜯어내는 AMR도 허용하고 있다. 결국 광우병 소가 발견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오로지 미국 축산대기업의 이익 때문이다. 미국에선 버려야 하는 창자, 혀, 목둘레살 등 소의 부산물을 한국에 수출하면 이윤율을 10% 가까이 올릴 수 있다.

정부는 이번에 발견된 소가 비정형광우병(atypical BSE, BASE)에 걸린 것이며 인간의 식품체계에 들어가지 않았으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코모이 등 유럽과 미국의 수의학자, 의학자 16명의 공동연구는 원숭이 실험에서 비정형광우병이 CJD보다 더 병원성이 높을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따라서 이들은 CJD가 감소하는 추세라고 해서 기존의 규제조치를 완화해서는 안된다고 권고한다.

미국에서는 늙거나 죽은 소를 닭과 돼지와 같은 다른 가축의 사료로 만든다. 이들 가축이 죽으면 또다시 소의 사료가 되니 언제든 광우병의 교차감염이 일어날 수 있다. 직접 먹지 않는다고 해서 위험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정부는 언제까지 국민을 속일 것인가? 다른 아시아 국가들이 우리 수준으로 개방하지 않으면 위생검역조건을 재개정하겠다는 거짓말, 언제든지 수입중지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했던 뻔한 거짓말, 그리고 지금 별 위험이 없으므로 검역만 강화하면 된다는 거짓말….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기 마련이다. 장차 인간 광우병까지 발견되면 또 어떤 거짓말을 할 것인가?

아이들에게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는 어른이 되기 위해 우리는 지난 총선의 과오를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오늘 나는 이제 훌쩍 컸을 촛불소녀들에게 “정말 미안하다”고 말하기 위해 광장으로 나가야 한다.

이 글은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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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이슈 2008.06.04 14:38


지난 5월 17일은 나의 열다섯 번째 생일이었다. 장미의 계절 오월. 엄마는 내가 태어난 덕분에 광주항쟁으로 상징되던 ‘그해 오월’이 다시 ‘장미꽃이 피는 오월’이 되었다고 말하곤 했었다. 내가 엄마인생에 꽃다발이라나.(낯 뜨겁다. 이건 엄마 취향이다).


촛불문화제에서 맞은 ’특별한 생일’


그런데 이번에는 장미꽃다발을 가슴에 안고 다시 거리로 나서게 되었다. 오후에 청계광장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와 학교 자율화에 반대하는 촛불문화제가 열리기 때문이었다.


사실 며칠 전 선배언니들이 ‘5월 17일 D-day 3일전’ 문자를 주고 받길래 ‘어. 그날 내 생일인데...’ 했더니 한 언니가 ‘5월 17일(지원이 생일 아님)’이라고 문자를 찍어 날리는 바람에 다 같이 깔깔 웃었다.


“지원아. 서울광장에서 만나면 생일파티 해줄게.”


학교에서 이런 대화를 나누기도 해서, 터미널에 마중 나온 엄마가 촛불문화제에서 특별한 생일파티를 하자고 했을 때도 선듯 응했다.


“오늘은 윤도현하고 김장훈도 나온다더라.”


엄마가 내 기분을 부추기려고 덧붙인 말이었는데, 사실 그런 말 아니래도 나는 집회에 가야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누가 시켜? 절박한 우리 문제다


언론에서는

학생들의 촛불문화제 참여에 배후가 있다느니, 연예인들이 자신들의 영향력을 생각하지 않고 감정적인 발언으로 학생들을 선동한다느니 하지만, 사실 학생들이 거리로 나선 것은 어떤 배후가 있기 때문도, 연예인들의 말 때문도 아니다. 바로 현 정부에서 시행하려고 하는 정책이 모두 우리와 관련되어 있고 우리에게 심각한 위협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중학교 2학년인 나 때부터 대학입시제도가 바뀐다. 고등학생이 되면 꼭두새벽에 등교해서 0교시 수업을 하고 야간자율학습을 해야 한단다. 거기다 광우병 걸린 미친 쇠고기가 당장 이번 달부터 들어와서 우리 급식 식탁에 오르게 된다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청계광장은 이미 촛불을 든 인파로 가득했다. 거리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른 것은 어렸을 때 월드컵축구 때 이후 두 번째인 것 같다. 선배언니들에게 핸드폰을 했지만 너무 시끄러워서인지 연결이 되지 않았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프레스센터 근처에서 무대를 비추는 스크린 앞에 주저앉아 한손에는 촛불을, 다른 한손에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문구가 적힌 종이를 들고 신나게 구호를 외쳤다.


밤이 되자 날씨가 쌀쌀해져서 마음 한편에서 작년처럼 따뜻한 방안에서 생일 파티를 할 걸 하는 마음이 살짝 올라왔다. 하지만 광장을 가득 메운 인파와 그 속의 내 또래 학생들도 모두 편하게 쉬고 싶은 마음일 텐데도 아무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열다섯 개의 작은 촛불이 아니라 수만 개의 촛불이 내 생일을 축하해주고 있다고 생각해야지.


“우와! 김장훈의 2단 옆차기가 저렇게 속 시원한 줄 몰랐네,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 애들이 왜 라이브 콘서트에 가는지 이제 이해가 간다.”

"엄마가 나보다 더 좋아하는 것 같애.”

“우리 다음엔 김장훈 콘서트에도 같이 가자.”


수만 개의 축하촛불과 함께 엄마와 새로운 공감대가 생기고 라이브콘서트에도 갈 수 있게 된 것이 또 다른 생일선물이었다.


국민의 권리 위해 촛불 들 때


촛불문화제에 다녀온 이후 요즘 나에게 광우병이나 학교자율화 문제 등에 대하여 묻는 친구들이 부쩍 많아졌다. 아마 옷과 배낭에 붙이고 다녔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스티커와 뱃지 때문이리라. 바로 오늘도 친구 영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있잖아. 우리 할머니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하면 그냥 먹겠다는데 나 어떻게 해야 돼?”


촛불문화제에 관심이 많고 유난히도 내 ‘미친소 수입반대’ 스티커를 예쁘다며 탐내던 친구다. 집이나 학교에서 주는 대로 먹어야 하는 우리에겐 광우병 쇠고기에 대한 선택의 자유가 없는 셈이다. 게다가 기숙사생활을 하는 우리는 당장 광우병 쇠고기의 마루타가 될지도 모르는 운명이다.


“10년 후에 이유 없이 죽어나가는 사람들의 신원을 추적해보니 모두 우리학교 출신이었다? 살인범은 헌상중학교와 관련이 있다... ”

“완전 엽추공이네(엽기추리공포)!” 

“근데 미국산 쇠고기가 화장품에도 들어간다며? 그러면 그 화장품 사용해도 광우병에 걸릴 수 있겠네?”


몰래 B.B크림을 얼굴에 바르고 다니는 영이는 그것도 걱정이었다.


“나도 내일은 촛불문화제에 나가볼래. 할머니한텐 비밀로 하고...”


어쩌면 광우병으로 사람들이 많이 죽어서 취업난이 해결될 지도 모른다느니, 2MB는 쓰촨성에서 자원봉사나 하라고 귀국금지를 시켜야 한다느니, 장난스럽지만 씁쓸한 이야기를 하다가 마지막엔 서로 건강하라는 당부를 하며 전화를 끊었다.


“우리 미친 소 먹지 말고 건강하게 오래 살자.”


막연히 멀게만 느껴졌던 세상은 너무나 가까워졌고 또한 위협적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그러니 이제 우리도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권리를 행사하고 거리로 나가 촛불을 들어야 할 때가 아닐까.



■ 이정지원/중2 학생

이정지원양은 중학교 2학년 학생으로, 새사연 운영위원이자 민족소설가이신 정혜주님의 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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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이슈 2008.05.13 09:18


“낙농업 하시는 분들, 소 키우시는 분들은 보상을 하면 숫자가 적으니까 될 것이고. 도시 근로자들은 질 좋은 고기를 값싸게 먹게 된다. 싫으면 안 사먹으면 된다.”(4월 21일 이명박 대통령 쇠고기 협상 타결 후)

“미국뿐 아니라 모든 나라에서 들어올
수 있는 건 다 개ㅅ방하는 게 맞다. 그 다음은 소비자 몫이다.”(4월 27일 재정전략회의)


“30개월 이상의 쇠고기를 수입하느냐 마느냐는 민간 수입업자들이 결정할 일.”(5월 6일 청와대 대변인 )


"물건을 사는 사람에게 선택권이 있는 것이다. 위험하면 우리가 안 먹는 것이며, 수입업자도 장사가 안 되면 안 들여온다."(5월 8일 이명박 대통령 기자간담회)


이명박 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30% 이하(여의도 연구소 28%, CBS 25.4%)로 떨어졌다. 취임한 지 100일도 안 된 집권 초반에 이렇게 급격하게 지지율이 떨어진 정권은 역사상 전무하다. 전인미답의 길을 걷고 있는 셈이다. ‘시장’에 빗대어 설명하면 부정확한 정보로 인해 형성된 잘못된 ‘기대’, 즉 거품이 꺼지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상 붕괴되지 않은 버블은 없었던 것처럼, 버블 정권이 붕괴되리라 예상은 했지만 속도가 이렇게 빠르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만큼 정치를 못하고 있기 때문이며, 한마디로 무능하고 못난 정권이라 정리할 수 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시장만능주의자(이하 시장주의자)들이 ‘시장경제’를 제대로 모르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광우병 사태가 그 단적인 예다.


‘미국산 쇠고기’ 사태를 통해 본 시장의 실패


들여올

수 있는 모든 것을 개방하여 시장에 풀어놓고 소비자들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주장은 전형적인 시장주의자들의 본색, 즉 ‘시장본색’이다. 사실 시장주의자들은 시장에 대해 종교와 같은 신앙심을 보인다. 그 신앙의 기저에는 바로 시장 효율성 명제가 함축되어 있다.


시장 효율성에 대한 아담 스미스의 주장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것이 이른바 ‘파레토 효율성’ 명제다. 즉 시장경제에서는 가격기구를 통해 다른 사람의 후생을 악화시키지 않고는 어느 누구의 후생도 개선될 수 없는 최적의 상태가 달성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파레토 효율성 결과는 현실에서 결코 달성될 수 없다. 왜냐하면 완전경쟁, 외부성, 그리고 공공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까다로운 조건에서만 성립하기 때문이다. 이를 외부성을 중심으로 간략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급부와 반대급부로 이루어지는 시장경제는 가격이라는 대가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효용을 얻는다고 가정한다. 즉 이기적인 행위자의 결정에 따른 최적화 과정에는 타인의 효용과 행위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이기적 행위들의 단순 합에 따라 사회적 결과가 발생하므로 사회적 관계가 존재하지 않게 된다. 이에 비해 시장경제에서는 외부성이 발생하는데, 어느 한 경제주체의 행동이 타인의 후생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말한다.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개인의 소비 행위가 타인의 효용에 영향을 미치는 소비외부성과 한 재화의 생산량이 다른 재화에 투입되는 생산요소나 생산물에 영향을 미치는 생산외부성이 존재한다. 이러한 외부성 또는 확산효과를 시장주의자들은 극히 예외적으로 취급하지만, 수많은 경제주체들이 상호작용 하는 현대 경제에서 외부성은 보편적인 현상이다.


광우병 쇠고기 수입을 예로 들면 외부성이 발생하는 경로는 수없이 존재한다. 먼저, 국민을 대표한다는 정부가 국민과 아무런 소통이나 합의도 없이, 일방적, 졸속적, 그리고 굴욕적인 협상을 실시한 것 자체가 국민 개개인의 자존심과 국가의 자주성을 훼손시켰다. 소비나 생산 등 경제 행위가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경제적 계약행위인 협상의 결과 발표만으로도 개인의 효용, 국가의 위상에 해를 끼치는 외부성을 발생시켰다.    


SRM(특정위험물질) 함유가 높은 쇠고기를 폐기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이득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축산업자와 수출업자들이 사적인 이득을 위해 SRM과 30개월 이상 된 쇠고기 수출을 늘리게 되는 생산의 외부불경제가 발생하게 된다.


한편, 30개월 이상의 쇠고기 수입 결정은 수입업체의 몫이며, 어느 쇠고기를 소비할 것이냐는 소비자선택 원리에 따라야 한다고 정부는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에서도 거의 폐기처분 되고 있는 30개월 이상의 쇠고기는 헐값에 수입될 것이고, 이는 ‘이윤’이라면 지옥까지도 쫓아가는 시장원리에 따라 국내에 유통될 것이 분명하다.


시장주의자들의 주장처럼, 더 싼 가격에 더 많은 소비자를 유혹할 수 있는 ‘발견’의 기회가 생기면 그런 부분이 이윤을 획득하는 방식으로 시장력은 자원을 배치하게 된다. 이에 따라 유통영역에서도 외부불경제가 발생하게 된다.


또한, 국민의 비판과 저항에 궁색해진 정부는 모든 음식점에 원산지 표시를 강화하고 미국의 도축장에 검역원을 투입하겠다는 졸속적인 대책을 발표했다. 수백만 개나 되는 음식점을 단속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광우병 쇠고기를 수입하지 않았더라면, 더 생산적인 곳에 투입되어 경제적 효과를 낳을 수 있는 자원들을 단속과 검역에 동원해 엄청난 비용까지 들이게 된다. 이는 분명 밑져도 한참 밑지는 장사이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형국이며, 있는 둑을 터놓고 강가에서 모래를 채취하여 모래주머니를 쌓는 격이다.

   

더군다나 수입된 쇠고기에 대한 정확한 정보에 대해서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는 정보 격차가 발생한다. 즉 30개월 이상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오직 축산업자만이 알게 되는 정보 비대칭성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축산업자, 도축업자, 수출업자, 수입업자, 그리고 유통과 판매에 이르기까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보다는 은폐, 위장 혹은 둔갑의 사례가 흔히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쇠고기를 비롯한 식품 판매 과정에서는 가장 안전하고 인간적인 방식으로 생산한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인증’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만약 민간업체에 인증 권한을 부여하게 되면 ‘인증서’에 대한 수요자와 공급자 사이에 이해관계의 충돌이 발생하게 된다. 서브프라임 부실채권에 대해서 유명한 미국의 신용평가기관들이 무분별하게 AAA 등급을 준 것도 바로 이해관계의 충돌 때문이다. 따라서 ‘인증서’의 가장 믿을만한 원천은 ‘신뢰’할 수 있는 정부로부터 발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축산업자-도축업자-수출업자-판매업자-수입업자-유통업자-판매자에 이르는 수많은 경로를 따라 최종 소비자에 이르기까지 정보가 왜곡되지 않고 안전하게 전달할 책임을 국민은 정부에 위임한 것이다. 또한 위험을 흡수하고 위험에 대한 노출을 가능하면 줄이기 위해 제약을 부과할 책임도 정부에 위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소는 안전하다’는 주술만 외우고, 나머지는 민간과 소비자가 알아서 하는 것이 원칙이라니 이들은 시장경제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작자들이다.

마지막으로 광우병 쇠고기를 수입하여 최종소비자가 소비하게 될 경우 어떤 일이 발생하게 될 지를 살펴보자. 정부 행위에 대한 불신과 광우병 쇠고기에 대한 위험이 확산되면 쇠고기 관련 업체들이 ‘유탄’을 맞을 수 있다. 이미 한우 값은 폭락했으며, 소규모 정육점 및 음식점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예방접종에 따른 외부경제의 발생과 정반대로, 혈액으로도 전염되는 광우병 쇠고기 소비는 타인의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외부불경제가 발생할 수 있다. 만약 미국에서 광우병 소가 발생하거나 인간 광우병 환자가 발생하게 되면 이는 한국 사회에 엄청난 혼란과 사회적 불신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경우는 현재 광우병 쇠고기 수입 논란으로 인한 엄청난 사회적 비용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아니 계산도 불가능한 수준의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 것이 틀림없다. 게다가 조류독감이 발생한 것이 언제인데 이제 서울 한복판까지 상륙했다하니, 현 정권의 위기관리와 통제 능력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시장주의자들이여, 시장경제를 학습하라


한미 쇠고기 협상은 총선이 끝나자마자 시작(11일 오전 9시)하여 캠프데이비드에 도착하기 11시간 전인 18일 오후 6시에 협상 타결을 발표하고 끝났다. 그로 인해 유례가 없을 정도로 미국에 유리한 협상결과였고,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에서 박수와 환대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미국에서 박수치고 박장대소한 것처럼 본인은 지금도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NAFTA를 체결한 캐나다(10%)와 멕시코(20%)를 제외하면, 2003년 기준 한국(24%)과 일본(37%)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서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였다. 4개 국가가 전체 수입의 90%  이상을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의 ‘모범사례’를 준거로 일본을 비롯한 다른 국가에 개방 압력을 높일 수 있으니 미국으로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바보 같지만 고마운 존재였을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미국의 축산업자들에게는 엄청난 이득이지만, 한국의 축산업자와 소비자는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만 한다. 시장경제를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밑지는 장사를 하는 것이다. 통상 시장경제에서는 구매자가 우월적 지위에 서는 것이 일반적인데도, 이렇게 졸속적인 협상결과를 도출한 것은 미국 앞에만 서면 너무도 작아지는 뿌리 깊은 미국숭배 근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국민의 속은 아랑곳하지 않고 잘된 협상이라고 자랑하고 박수까지 쳤겠는가. 시장을 숭배하고 미국을 숭배하다 보니 이런 아둔한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 정부의 시장주의자들은 민영화, 감세, 규제완화를 핵심 경제정책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정책들은 재벌과 소수 특권층에게만 유리하며 국민경제에는 지극히 해로운 정책들이다. 오죽했으면 집값을 올리기 위해 뉴타운 정책을 추진하다는 정신 나간 발언들을 서슴없이 하겠는가. 이 자들은 자신들이 숭배하는 미국에서 왜 어처구니없는 서브프라임 사태가 벌어졌으며, 왜 그렇게 양극화가 심해졌는지 전혀 모르는 자들이다. 세상은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말을 이 정권은 되새겨야할 것이다. 이들은 시장경제의 작동 원리와 시장실패에 대응하여 정부규제가 왜 필요한지를 배울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밑지는 장사나 투기에만 정신이 팔려 심각한 경제위기를 초래하게 되지 않을까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대통령은 CEO와 다르다는 충고를 꼭 해주고 싶다. 새로운 기회를 발견하고 혁신하는 기업가정신은 시장경제가 역동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자산이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수행 과정을 유심히 살펴보면, 기업가정신에 근거하기보다는 재벌총수 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고 소통하기보다는 일단 오더 때리고 따라오라는 식이다. 기업의 노동자는 열악한 협상력으로 말미암아 잘못되고 부당한 의사결정에 ‘해고’가 두려워 발언을 피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가의 주인인 국민은 자신의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대리인인 정부에 비판하고 저항할 정당한 권리와 지위를 지니고 있다.


국민의 82%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와 관련해 재협상이 필요하며, 75.1%는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지 않다는 우려를 보이고 있다(5월 7일 동서리서치 결과). 쇠고기 수입이 왜 문제가 되며 나 자신과 국가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국민은 제대로 알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장주의자들은 시장경제를 몰라도 국민은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말이다.


정부는 15일로 예정된 농림부 고시를 연기하고 재협상만이 이 난국을 벗어나는 길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만약 CEO가 노동자를 억누르듯이 국민의 저항을 무시하고 짓밟는다면 정부는 더 큰 저항과 위기에 직면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옛말에도 권력은 움켜쥘수록 빠져나가고 베풀수록 들어온다는 말이 있지 않았던가.

여경훈 | 새사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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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