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7일은 나의 열다섯 번째 생일이었다. 장미의 계절 오월. 엄마는 내가 태어난 덕분에 광주항쟁으로 상징되던 ‘그해 오월’이 다시 ‘장미꽃이 피는 오월’이 되었다고 말하곤 했었다. 내가 엄마인생에 꽃다발이라나.(낯 뜨겁다. 이건 엄마 취향이다).
촛불문화제에서 맞은 ’특별한 생일’
그런데 이번에는 장미꽃다발을 가슴에 안고 다시 거리로 나서게 되었다. 오후에 청계광장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와 학교 자율화에 반대하는 촛불문화제가 열리기 때문이었다.
사실 며칠 전 선배언니들이 ‘5월 17일 D-day 3일전’ 문자를 주고 받길래 ‘어. 그날 내 생일인데...’ 했더니 한 언니가 ‘5월 17일(지원이 생일 아님)’이라고 문자를 찍어 날리는 바람에 다 같이 깔깔 웃었다.
“지원아. 서울광장에서 만나면 생일파티 해줄게.”
학교에서 이런 대화를 나누기도 해서, 터미널에 마중 나온 엄마가 촛불문화제에서 특별한 생일파티를 하자고 했을 때도 선듯 응했다.
“오늘은 윤도현하고 김장훈도 나온다더라.”
엄마가 내 기분을 부추기려고 덧붙인 말이었는데, 사실 그런 말 아니래도 나는 집회에 가야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누가 시켜? 절박한 우리 문제다
언론에서는
학생들의 촛불문화제 참여에 배후가 있다느니, 연예인들이 자신들의 영향력을 생각하지 않고 감정적인 발언으로 학생들을 선동한다느니 하지만, 사실 학생들이 거리로 나선 것은 어떤 배후가 있기 때문도, 연예인들의 말 때문도 아니다. 바로 현 정부에서 시행하려고 하는 정책이 모두 우리와 관련되어 있고 우리에게 심각한 위협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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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중학교 2학년인 나 때부터 대학입시제도가 바뀐다. 고등학생이 되면 꼭두새벽에 등교해서 0교시 수업을 하고 야간자율학습을 해야 한단다. 거기다 광우병 걸린 미친 쇠고기가 당장 이번 달부터 들어와서 우리 급식 식탁에 오르게 된다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청계광장은 이미 촛불을 든 인파로 가득했다. 거리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른 것은 어렸을 때 월드컵축구 때 이후 두 번째인 것 같다. 선배언니들에게 핸드폰을 했지만 너무 시끄러워서인지 연결이 되지 않았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프레스센터 근처에서 무대를 비추는 스크린 앞에 주저앉아 한손에는 촛불을, 다른 한손에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문구가 적힌 종이를 들고 신나게 구호를 외쳤다.
밤이 되자 날씨가 쌀쌀해져서 마음 한편에서 작년처럼 따뜻한 방안에서 생일 파티를 할 걸 하는 마음이 살짝 올라왔다. 하지만 광장을 가득 메운 인파와 그 속의 내 또래 학생들도 모두 편하게 쉬고 싶은 마음일 텐데도 아무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열다섯 개의 작은 촛불이 아니라 수만 개의 촛불이 내 생일을 축하해주고 있다고 생각해야지.
“우와! 김장훈의 2단 옆차기가 저렇게 속 시원한 줄 몰랐네,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 애들이 왜 라이브 콘서트에 가는지 이제 이해가 간다.”
"엄마가 나보다 더 좋아하는 것 같애.”
“우리 다음엔 김장훈 콘서트에도 같이 가자.”
수만 개의 축하촛불과 함께 엄마와 새로운 공감대가 생기고 라이브콘서트에도 갈 수 있게 된 것이 또 다른 생일선물이었다.
국민의 권리 위해 촛불 들 때
촛불문화제에 다녀온 이후 요즘 나에게 광우병이나 학교자율화 문제 등에 대하여 묻는 친구들이 부쩍 많아졌다. 아마 옷과 배낭에 붙이고 다녔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스티커와 뱃지 때문이리라. 바로 오늘도 친구 영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있잖아. 우리 할머니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하면 그냥 먹겠다는데 나 어떻게 해야 돼?”
촛불문화제에 관심이 많고 유난히도 내 ‘미친소 수입반대’ 스티커를 예쁘다며 탐내던 친구다. 집이나 학교에서 주는 대로 먹어야 하는 우리에겐 광우병 쇠고기에 대한 선택의 자유가 없는 셈이다. 게다가 기숙사생활을 하는 우리는 당장 광우병 쇠고기의 마루타가 될지도 모르는 운명이다.
“10년 후에 이유 없이 죽어나가는 사람들의 신원을 추적해보니 모두 우리학교 출신이었다? 살인범은 헌상중학교와 관련이 있다... ”
“완전 엽추공이네(엽기추리공포)!”
“근데 미국산 쇠고기가 화장품에도 들어간다며? 그러면 그 화장품 사용해도 광우병에 걸릴 수 있겠네?”
몰래 B.B크림을 얼굴에 바르고 다니는 영이는 그것도 걱정이었다.
“나도 내일은 촛불문화제에 나가볼래. 할머니한텐 비밀로 하고...”
어쩌면 광우병으로 사람들이 많이 죽어서 취업난이 해결될 지도 모른다느니, 2MB는 쓰촨성에서 자원봉사나 하라고 귀국금지를 시켜야 한다느니, 장난스럽지만 씁쓸한 이야기를 하다가 마지막엔 서로 건강하라는 당부를 하며 전화를 끊었다.
“우리 미친 소 먹지 말고 건강하게 오래 살자.”
막연히 멀게만 느껴졌던 세상은 너무나 가까워졌고 또한 위협적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그러니 이제 우리도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권리를 행사하고 거리로 나가 촛불을 들어야 할 때가 아닐까.
■ 이정지원/중2 학생
이정지원양은 중학교 2학년 학생으로, 새사연 운영위원이자 민족소설가이신 정혜주님의 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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