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01정태인/새사연 원장

뭔가 '대가'가 있겠지... 그런데 이상하다

무릇 헌법과 공공 정책은, 오로지 자신의 '사적 이익'에 의해 움직이는 '악당들'을 상정해서 설계되어야 한다 - 데이비드 흄

교육개혁의 상징이 곤경에 처했다. 이른바 진보개혁진영 대부분과 민주당 대표까지 나서서 사퇴하라고 압력을 가하고 있다. 2억을 '선의'로 건넸다는 곽 교육감의 진술을 들었을 때 내 일감도 그랬다. 돌이켜 보면 그 '일감'을 지배한 것은 "다 된 밥에 코 빠뜨린다"는 생각이었다. 오세훈의 초절정 승부수가 실패로 판명난 시점에서 터진 사건이었기에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법하다. 모름지기 문제가 되는 사안은 재빨리 수습해야 한다. 두 번째는 돈의 액수가 너무 컸다. 200만 원이라도 '선의'를 의심할 만한데 2억이라니, 이건 보통 사람의 생각 범위를 넘어섰다.

2억? 이런 돈을 건넸으면 분명히 뭔가 '대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당연하다. 또 다시 당연히 우리의 머릿속에는 '후보 단일화'가 떠오른다. 촛불이 일렁이는 가운데에서도 낙선했던 2008년 서울교육감 선거의 경험 때문에 우리는 후보 단일화에 목을 맸다. 그러므로 돈을 써서라도 단일화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으리라 짐작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우리는 위에서 인용한 흄의 경구대로 "모든 인간은 이기적(악당들)"이라는 가정으로 이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사회과학 중 가장 '과학적'인 것처럼 보이는 경제학의 인간관, 호모 에코노미쿠스라면 위의 추정은 지극히 합리적이다. 이런 합리적 생각에 대한 반론은 두가지로 나올 수 있다. "과연 인간은 (언제나 대가를 바라는) 이기적 동물일까?" 그리고 "곽노현은 그런 인간들 중 하나인가?"

나는 자신있게 첫 번째 질문에 대해 NO라고 대답할 수 있다. 인간은 이기적이기도 하지만, 때론 협동할 줄 알고, 그 무엇보다도 언제나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동물이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행동경제학의 결론이 그렇고 무엇보다도 우리 스스로를 잠깐만 돌아봐도 "인간이 이기적"이라는 경제학의 가정이 터무니없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모든 인간은 이기적이다?

적어도 나 스스로는 절대로 이기적이지 않지만(상당히 도덕적이지만) 남들이 모두 이기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나를 지키기 위해서(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우리 스스로도 별로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는 행동규범을 자본주의 사회는 우리 스스로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 데 성공했다. 경제학은 그것이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태도라고 가르치는 학문이다. 왜? 인간은 호모 에코노미쿠스니까. 그 정도는 아니라도 적어도 인류 최고의 철학자 중 하나인 흄처럼 사회를 유지하려면 그런 법과 규율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가 확실히 인정해야 하는 것은 흄의 세계가 문명사회의 '하한선'이라는 사실이다. 경제학은 이기적 인간이 시장을 통해서 조화로운 세상을 이룰 수 있다고, 그것이 유토피아라고 가르치지만 설령 그 모든 시장실패를 다 극복해서 "일반균형"이 달성됐다 하더라도 그 세상은 '하한선', 즉 최저 수준의 사회이다. 폴라니가 갈파했고(실은 동서고금 인류의 모든 지도자들이 그래야 한다고 가르쳤다. 다만 경제학자가 그렇게 얘기했기 때문에 폴라니가 도드라지는 것이다), 실험경제학이 수없이 증명했듯이 인간은 시장 교환 말고도 선물(giving)이라는 행위를 해왔고, 지금도 매일 무수히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 본성에 대한 올바른 상식으로 생각한다면 곽노현의 2억은 선물(즉 선의)일 수 있다고 판단해야 한다. 이것이 기본 사고(디폴트)여야 한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그런 사람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왜? 우리가 남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기적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뭔가 고결한 사람이 나타나면 왠지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해서 그들도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비루하다는 사실이 증명되기를 기대한다. 이런 반사회적 태도 역시 실험경제학에서 끊임없이 발견된다.

그럼 곽노현의 행위가 선물이라는 증거가 있을까? 이건 인간이 이기적이라는 가정 하에서 벌어지는 하한선의 법정에서 밝혀질 일이지만(그러므로 경제학자들과 함께 법조인들 역시 인간 말종에 속할 가능성이 높다^^) 잠깐만 생각하면 얼마든지 그렇게 추측할 수 있다.

이해 못할 곽노현...왜 더 많이 줬다고 발표했을까?

왜 선거법 공소시효(6개월)가 훨씬 지난 시점에 돈을 건넸을까? 왜 법을 전공한 사람이, 마찬가지로 법을 전공한 사람을 통해 대가성 있는 돈을 주면서 그렇게 허술하게 처리했을까? 지금 사퇴하면 선거비용으로 보전받은 35억 원은 지킬 수 있는데 그토록 어마어마한 액수, 2억의 17배가 넘는 돈을 걸고서라도 지켜야 할 것(즉 그 대가)은 무엇일까? 불법이라면 당연히 액수를 줄여야 하는데 검찰이 발표한 액수(1억 3천만원)보다 더 많이 줬다고 발표한 이유는 도대체 뭘까?

이 모두 인간이 이기적이고 곽노현도 그렇다는 하한의 사고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즉 곽노현은 바보이거나 아니면 선의의 인간이라고 결론이 날 수 밖에 없다. 차라리 모든 인간은 악당이라는 전제를 의심해 보는 게 어떨까? 못 박아 두지만 보수 쪽의 혐의에 대해서도 사고는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더 나간다면 혹시 진정으로 깨끗하게 '교육개혁'을 하고 싶어서 구질구질한 일 하나를 정리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이런 상상을 해 보는게 더 합리적일지도 모른다.

이제 첫 번째 의문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과연 곽노현의 사퇴가 진보개혁진영의 진로에 도움이 될까? 한 사람을 희생시키면 문제가 해결될 거라는 일감이 옳았던 것일까? "진보는 무능한 동시에 부패했다"는 프레임, 더구나 사람들이 그렇게 보고 싶어하는 심정에 동조하는 것이 올바른 길일까? 보수적인 법조계가 결국 그렇게 확정할 것이라고 예단할지라도 인생 전체를 걸고 자신의 그 무언가를 지키려는 사람을 좌절시키는 게 사회에 도움이 될까?

내가 아는 경제학으로는 이렇게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다. 곽노현은 바보 아니면 양심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양심을 지키는 게 장기적으로 올바른 사회를 만들려는 움직임에도 도움이 된다. 앞으로 매일 쏟아질 수만 페이지와 수만 시간의 험담을 홀로 견뎌내야 하는 곽노현 교육감에게 응원을 보낸다. 죽음과 같은 시간이 1년 넘게 아주 천천히 흐를 것이기에.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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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주제별 이슈 2010.06.21 11:11
진보 교육감,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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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전날까지도 숨겨졌던 표심이 드러났다. 후보자가 누군지도 알지 못하는 유권자가 절반 혹은 그 이상을 육박하던 각 지역에 당선자가 발표됐다. 발표 직전까지도 많은 이들은 투표용지에 기재된 이름순서에 따라 승패가 좌우될 것이라며 '로또 선거'를 우려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유권자들은 '1인8표제'라는 어려움 속에서도 교육감 후보를 ‘골라’ 뽑았다. 다름 아닌, 지역에서 자신이 원하는 교육개혁을 진두지휘할 대표자로서의 교육감이다.

1. 진보 교육감 ‘골라’ 뽑은 유권자의 열망

이번 교육감 선거는 평균 4.6대 1이라는 경쟁률을 기록했다. 광역단체장 선거의 경쟁률이 3.4대 1이었음을 감안하면 높은 비율이다. 각 지역에 후보자가 많았던 탓이다. 진보성향의 교육감이 출마한 지역은 더욱 후보자가 많았다. 특히, 서울은 7명의 후보자가 교육감 당선을 위해 겨뤘고 부산은 9명이나 후보로 등록했다. 그만큼 지역교육의 변화에 대한 교육관계자들의 요구가 다양하다는 의미다.

유권자들도 새로운 교육개혁에 대한 열망이 강했다. 천안함 사건이나 교과부의 전교조 교사 무더기 징계 등의 악재 속에서도 진보성향 교육감은 전국 16개 시·도 중 6곳에서 당선됐다. 시민사회단체에서 단일후보로 추대한 진보성향 교육감은 12명이었다. 절반의 성공이다.

하지만 단순히 당선자 수만 놓고 ‘절반의 성공’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그 파급력이 너무 크다. 수도권인 서울과 경기 두 곳과 보수 ‘텃밭’이던 강원, 그리고 호남권의 광주, 전북, 전남에서 각각 수도권·강원과 호남권의 교육 혁신벨트를 조성한 까닭이다. 전국 동시 지방선거와 함께 치룬 첫 선거였고 다수의 보수성향 교육감 후보가 ‘현직 프리미엄’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진보 교육감의 대약진이다.

선거결과를 보면, 당선된 6명의 진보 교육감이 책임지게 될 초중고 학생 수는 전체 학생 수의 56%로 보수 교육감에 비해 13%p나 많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경우 진보 교육감이 보수 교육감보다 4천억 원을 더 쓸 수 있다. ([그림 1] 참고) 이들 6명의 교육감이 정책적 연대를 통해 동시에 정책을 펼쳐나간다면 정부의 교육정책과 다른 새로운 교육개혁을 이룰 수 있는 국면이 열린 것이다.

유권자가 이들 교육감을 ‘로또’식이 아닌 ‘골라’ 뽑았다는 근거는 단순하게 설명할 수 있다. [표 1]과 같이 서울지역의 곽노현 당선자는 투표용지에서 일곱 번째 칸에 이름이 기재돼 있었다. 경기, 광주, 전북 지역의 진보 교육감도 이름이 첫 번째나 두 번째 칸에 쓰이지 않았다. 당선자를 바짝 뒤쫓아 지지율 차이를 좁힌 인천, 부산 지역 역시 마찬가지다. 유권자들은 이름 순서와 상관없이 후보자를 선택해 투표를 한 것이다. 이는 이번 선거에 각 후보자가 내세운 교육의제가 중심변수로 작용했을 가능성을 내포한다.

2. 서울지역 결과 분석 : 다양한 교육적 요구 분출

이번 선거의 결과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지난 시기 교육감 선거와의 비교가 필요하다. 전국의 교육정책에 큰 영향을 미치는 수도권 지역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서울과 경기도는 각각 지난 2008년, 2009년에 교육감 선거를 치렀다. 교육감 선거만 따로 실시하다 보니 투표율은 저조했다. 서울은 15.4%, 경기도는 12.3%의 투표율로 주민대표성이 낮다는 비판을 받았다. 반면, 지방선거와 함께 실시된 이번 교육감 선거는 50% 이상의 투표율을 보였다. 앞으로도 교육감 선거는 지방선거와 함께 실시되므로 낮은 투표율에 의한 주민대표성 논란은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2008년 서울지역의 교육감 선거는 보수성향의 공정택 후보와 진보성향의 주경복 후보 사이에 치열한 접전을 이뤘다. 선거결과, 공정택 후보(40%)는 주경복 후보(38%)보다 2만 2053표라는 근소한 차이로 당선이 된다. 당시 논란이 됐던 것은 강남3구(강남, 서초, 송파)에서만 2만표를 훌쩍 뛰어넘는 표가 공정택 후보에게 몰렸다는 점이었다. 강남구, 서초구의 경우는 공정택 후보 지지율이 주경복 후보 지지율의 2~3배에 달했다. 따라서 주경복 후보가 서울 25개구 중 17개구에서 승리를 했지만 ‘강부자’의 장벽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평가가 주류를 이뤘다.

올해 교육감 선거는 달랐다. [그림 2]와 같이 곽노현 후보(34%)가 이원희 후보(33%)를 4만7783표 차이로 눌러 지지율 차이는 1.12%p로 좀 더 좁혀졌다. 그만큼 올해 선거 역시 쫓고 쫓기는 치열한 구도였다는 증거다. 그러나 진보 교육감에 대한 지지율이 높은 지역은 늘었다. 곽노현 후보는 서울 25개구 중 19개구에서 앞섰다. 게다가 이원희 후보에게 대폭 몰릴 것으로 예상됐던 강남3구의 표심은 분산됐다. 강남구, 서초구의 경우 곽노현 후보와 이원희 후보의 지지율 차이는 15% 정도로 여타 지역에 비해 매우 큰 차이가 났지만 2008년에 비하면 좁혀졌다.

다만, 곽노현 당선자로서는 제3의 후보에게 투표한 32%의 유권자에게 주목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선거보다 진보후보의 지지율은 높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과는 유권자들의 교육적 요구가 다양해지고 있는 현실을 입증한다. 2008년 제3의 후보 지지율이 총 22%였다면, 올해 제3의 후보들에 대한 지지율은 총 32%로 10%p 상승했다. ‘사교육 없는 학교’, ‘엄마표 교육감’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김영숙, 남승희 후보가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를 받은 것은 사교육비 절감을 위한 공교육 혁신과 맞벌이 부부를 위한 돌봄교육 등 유권자들의 다양한 요구가 반영된 결과다.

3. 경기지역 결과분석 : 한층 향상된 ‘성적’과 그에 따르는 책임

경기도에서 2009년과 2010년 1년 전후로 치른 두 차례의 교육감 선거 사이에는 더 큰 변화가 나타난다. 2009년 김상곤(41%), 김진춘(33%) 후보 사이의 표차는 7만5811표(8%p). 첫 진보단일화 교육감 후보로 출마한 김상곤 후보와 보수성향의 현직교육감이던 김진춘 후보는 지지도가 높은 지역 수도 엇비슷했다. 특징이 있다면 도시 지역에서는 김상곤 후보, 도농복합 지역에서는 김진춘 후보의 지지도가 높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2010년 선거에서 김상곤(42%), 정진곤(27%) 후보 사이의 표차는 무려 66만1919표(15%p). 두 후보 간 지지율 차이가 2009년의 두 배나 높아졌다. 지역별 지지현황을 봐도 올해 선거에서 김상곤 후보는 가평군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정진곤 후보 지지율의 두 배에 달하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림 2] 참고)

높아진 지지도는 유권자가 임기동안의 교육감 활동을 평가한 ‘성적’과 같다. 김상곤 교육감은 2009년 첫 선거에서 “이명박 특권교육 반대”라는 명확한 슬로건을 내세우고 폭넓은 연대를 기반으로 기층여론을 주도해 당선됐다. 그리고 임기 1년이라는 제한된 시간 속에서도 처음 공약으로 내세웠던 무상급식, 혁신학교, 학생인권조례 등 굵직한 교육정책들을 성실히 실현시켜 왔다. 이렇듯 김상곤 교육감이 새로운 교육적 시도를 꾸준히 이행하는 과정에서 유권자의 신뢰가 점차 증폭된 것이다.

이러한 경기도교육감의 성공사례는 올해 진보 교육감 대거 탄생의 기반이 됐다. 김상곤 교육감이 올해 선거에 미친 영향은 첫째, 김상곤 교육감의 교육정책이 전국적으로 화제가 되면서 국민들은 진보적 교육단체의 주장들이 실현가능한 것임을 알게 됐다. 둘째, 진보적 교육개혁을 추구하는 이들은 선거에 앞서 지역 내 시민사회단체와의 폭넓은 연대 흐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셋째, ‘무엇을 하지 않겠다’는 네거티브 정책이 아닌 ‘무엇을 하겠다’는 포지티브 정책을 공약으로 준비했다. 이렇듯 진보 교육감의 대표 격인 김상곤 교육감에게는 이후 임기 4년 동안의 행로에 또다시 막중한 책임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4. 교육계의 지각변동,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

선거가 끝나자마자 각 언론은 현 교육감과 새로 당선된 진보 교육감 사이의 ‘마찰’에 초점을 맞춘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교과부, 광역단체장과의 ‘불편한 동거’를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대응해 갈 것인가가 관건이라고도 한다. 논란의 중심에 놓인 공약은 다름 아닌 무상급식이다.

무상급식은 무엇보다 예산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급식을 하기 위한 재정마련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예산 결정의 권한은 교육의원과 시도의원에게 있다. 교육감이 예산안을 작성해 교육위원회, 시도의회에 제출하면 그들이 의결을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의원과 시도의원이 모두 반대하고 나서면 무상급식 예산안은 통과시키기 어렵다. 지난해 김상곤 교육감도 취임 시 핵심공약이었던 무상급식에 관한 예산을 제출했으나 도교육의원과 도의원들에게 세 차례나 전액 삭감 당했다.

그러나 올해는 다르다. 지방선거 결과 정치지형이 상당히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표 2]와 같이, 진보 교육감이 당선된 지역은 강원도를 제외하고 모든 지방의회가 ‘여소야대’가 된 상황이다. 특히, 수도권인 서울·경기는 여당이 광역단체장을 맡게 됐으나 광역의원과 기초자치단체장 당선자 모두 야당 비율이 높다. 무상급식은 기초자치단체의 지원도 필요로 한다. 또 전국에서 82명 중 16명이 진보성향의 교육의원으로 당선된 것도 작게나마 도움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광역단체장이라 하더라도 함부로 교육정책을 좌지우지 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당선 직후 오세훈 서울시장은 선거기간과 달리 “곽노현 교육감 당선자와 서로 충분히 논의하면 좋은 절충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문수 경기지사도 지난해 무상급식 마찰이 쟁점화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유연한 입장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교육감 당선자들 역시 불협화음을 내기보다 협력적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바 있다.

여당이 우세한 강원도의 경우는 도지사가 민병희 교육감 당선자와 같은 공약을 제시해 입성한 만큼 시도의회나 교육의원이 무상급식을 반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강원도에서는 선거기간에 민병희 후보의 제안으로 보수성향 교육감 후보까지 전원이 무상급식에 대해 약속하기도 했다. 무상급식이 수도권을 비롯해 전국적인 흐름을 타고 이뤄질 경우 강원도만 멈춰서 있을 수 없는 노릇이다.

다음으로 교육계의 주요한 변동 중 하나는 혁신학교 모델 확대다. 혁신학교는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 만든 새로운 모델로, 학급당 25명 이하, 학년당 6학급 이내로 운영되는 작은 학교다. 학교와 교사에게 수업에 대한 자율성을 주고 다양화, 특성화, 맞춤형 교육을 실시하도록 한다. 김상곤 교육감은 경기도 내 200개, 곽노현 당선자는 서울시 내 300개의 혁신학교를 지정하겠다는 공약을 밝혔다.

곽노현 당선자는 교육여건이 열악하고 기초학력미달자가 많은 학교를 중심으로 혁신학교를 지정하겠다고 밝혔다. 모든 학교에서 동일하게 좋은 교육을 받도록 하고, 각 학교·학생 사이의 학력격차를 해소하겠다는 의지다. 이는 학교 간 경쟁을 강조하고 학력이 연속으로 낮은 학교는 폐교시키겠다던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과는 상반된다. 다른 진보 교육감들 역시 혁신학교를 공약화한 만큼 수도권에서 시작되는 혁신학교 바람은 전국에 공교육 개혁운동으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경쟁과 교육양극화를 심화시키는 ‘MB 교육정책’이 재검토될 예정이다. 일제고사와 그 성적공개, 고교선택제, 자율형사립고(자율고) 등이 그것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MB 심판론’이 우세했던 만큼, 진보 교육감의 대거 당선은 국민들이 그만큼 정부의 경쟁·서열중심 교육을 반대하는 의사를 표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이명박 정부는 전국 단위의 학력평가를 실시하고 그 성적을 공개해 학생들을 경쟁의 굴레에 가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리고 다음 달 13~14일에 또다시 일제고사가 예정돼 있다. 그러나 교육감에게는 일제고사에 대한 권한 자체는 없다. 이에 진보 교육감 당선자들은 시·도교육감협의회를 통해 일제고사를 표집형으로 전환하고 성적 공개를 재고하도록 교과부와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시도교육감협의회 주관 진단평가는 거부할 예정이다. 따라서 다음 달에 있을 일제고사는 기존 방식대로 치러지더라도 그것을 계기로 일제고사에 대한 재논의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고교선택제 역시 수정 논의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은 지난해 처음 실시됐으나 학생들이 선호하는 학교와 기피하는 학교가 뚜렷하게 구분되는 부작용을 낳았다. 이에 대해 곽노현 당선자는 “소위지역 학생에게 강남학군 학교로 입학할 기회를 주는 것보다 소위 지역에 좋은 학교를 만들어주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혁신학교 추진 배경과 마찬가지로 모든 학생이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의지다.

특목고나 자율고는 추가 지정이 어려워질 전망이다. 특목고와 자율고를 지정하는 권한은 교육감에게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자율고로 지정된 학교를 일반고로 전환하거나 입학요건·등록금을 변경하는 것은 교육감이 임의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지정을 해제하려면 교과부와의 협의와 해당 학교의 동의를 거쳐야 하며 입학요건·등록금은 학교 자율로 명시돼 있다. 따라서 자율고가 집중적으로 신설된 서울지역의 기존 자율고는 지정 해제되지 않는다. 다만, ‘MB식 특권교육’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은 만큼 특목고나 자율고, 자사고 등을 지역 내 새로이 추가 지정하지 않겠다는 것이 진보 교육감 당선자들의 한 목소리다.

5. 진보 교육감, 구체적인 진보 정책대안 제시해야

이번 선거에서 진보 교육감들이 많은 호응을 받은 것은 무상급식, 혁신학교 등 선명한 대안을 공약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현 정부의 경쟁만능 교육정책에 대한 반대여론도 높았던 터다. 따라서 ‘진보 교육감’이라는 말은 진보성향을 표방하는 단체들을 대표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현 정부와 달리 진보적인 교육개혁을 추구한다는 의미다. 이번 선거에서 진보 교육감이 대거 당선된 것은 그것을 바라는 유권자들의 ‘적극적인 선택’의 결과다.

이제 진보 교육감들은 시험대에 올랐다. 앞으로 4년의 임기동안 어떤 구체적인 정책을 만들고 어떤 새로운 시도를 할지 국민들은 지켜볼 것이다. 그런 진보 교육감들에게 당장 코 앞에 닥친 1차적 과제는 지방 교육행정 차원에서 협력과 조율을 끌어내고 ‘MB 교육정책’과 맞서는 것이다. 유권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마땅히 노력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국민들은 1차적 과제만으로 진보 교육감이 성공했다고 평가하지 않을 것이다. 유권자들의 요구에 귀 기울이고 그것을 토대로 경쟁 위주의 ‘수월성’ 프레임을 넘어선 구체적인 진보 정책대안을 차분히 준비해나가야 할 때다. 유권자들은 보다 다양한 교육적 수요를 수렴한 진보적 교육정책의 분명한 성과를 요구하고 있다.

humanelife@saesayo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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