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의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총재가 7일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동남아시아 중앙은행 총재단 모임에서 “선진국 경제가 이미 공황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 전체로 위기가 확산되는 가운데, 국제 금융기구의 수장이 나서서 ‘공황’을 언급하자 많은 이들이 긴장하고 있다. 앞서 지난 4일에는 영국의 고든 브라운 총리가 “세계 경제가 공황의 한복판에 서 있다”고 말했다가 파장이 커지자 말실수라고 번복하기도 했다.

리세션과 디프레션

경기 침체를 나타내는 말로는 경기후퇴를 뜻하는 리세션(Recession)과 공황을 뜻하는 디프레션(Depression)이 있다. 리세션은 미국의 경우 2분기 연속 국내총생산(GDP)이 전분기보다 하락할 때를 뜻하며, 디프레션은 명확한 정의는 없지만 리세션보다 침체가 심각하고 장기일 때를 뜻한다. 최근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디프레션과 리세션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2가지를 제시했다. 실질 GDP가 10퍼센트 이상 급락하는 급격한 침체나 경기침체가 3년 이상 지속되는 때를 디프레션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경기변동과 그 속에서의 경기침체는 자본주의 경제에서 당연히 발생하는 일이다. 모든 것이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결정되므로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로 인한 호황과 불황이 순환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경기의 오르내림을 경기순환(Business cycle)이라고 부른다. 1회 순환의 주기에 따라 50~60년 주기 장기적 성격의 콘트라티에프 파동, 10년을 전후로 한 중기적 성격은 쥬글라 파동, 2~6년 주기 단기적 성격의 치킨 파동 등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 경기순환(출처 : 국가통계포털)


자본주의 경제에서 공황은 필연적

이런 경기변동 중에서도 심각하고 장기적인 침체를 이르는 공황은 신용거래 붕괴, 상품판매 불황, 재생산 수축, 대량 실업 등의 현상으로 나타난다. 자본주의 경제를 분석한 <자본론>의 저자 마르크스는 공황 역시 자본주의 경제의 내재적 모순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고 보았다. 자본가의 이윤추구를 원동력으로 굴러가는 자본주의에서 생산은 무정부적이며, 무계획적이다. 따라서 시장에서의 수요보다 많은 상품이 생산되어 판매되지 않는 ‘과잉생산’이 발생하고 이 때문에 공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한편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결과이기도 하다. 노동자들에게 가능한 적은 임금을 주고, 가능한 많은 일을 시키는 자본가들의 착취에 의해 생산되는 물건은 많지만, 노동자들의 구매력은 낮아지면서 시장에서의 수요-공급 균형이 파괴되는 것이다. 이를 두고 마르크스는 “한편에서는 부의 축적, 또 다른 한편에서는 빈곤의 축적” 이란 말로 공황의 기본원인을 설명했다. 주류 경제학에서는 경제 공황이 일어나는 근본원인에 대해 설명하지 못한다. ‘소비가 부진해서’ 혹은 ‘투자가 부진해서’ 라고 답하지만 자본주의의 문제를 인정하지 않는 한 근본원인을 설명하기 어렵다.

공황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1929년에 터진 미국 대공황이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20년대 미국 경제는 호황이었다. 유럽국가에게 군수품과 식량을 판매한 덕에 산업생산은 2배 증가했고, GDP는 40퍼센트나 증가했다. 이렇게 생겨난 과잉자본은 주식과 토지에 투자되었다. 그러나 ‘암흑의 목요일’이라 불리는 1929년 10월 24일 주식시세가 대폭락했다. 만연했던 투기의 거품이 꺼진 것이 공황의 첫 번째 원인이었다.

한편 1920년대 미국은 호황을 누렸지만, 경제적 불평등은 심화되고 있었다. 당시 가장 부유한 국민 1퍼센트가 국부의 60퍼센트를 점유하고 있었으며, 최상층 6만 가족의 예금액이 가장 가난한 2,500만 가족의 예금액보다 많았다. 경제가 성장한 만큼의 소득을 얻지 못한 대부분의 미국민들은 부채에 기댈 수밖에 없었고, 경제는 빚에 의해 굴러가고 있었다. 이것이 공황의 두 번째 원인이었다.

80년 전 공황과 지금의 경제위기

80년 전 대공황의 발생과정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위기의 발생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라는 부동산 투기에 파생상품이라는 금융투기가 겹쳐졌고, 양극화는 여전히 심화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결국 지금의 위기 역시 단순히 금융 분야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가 재촉한 부실하고 불건전한 실물경제의 문제이며, 구조적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 대공황의 결과로 1929년에서 1933년 사이에 미국에서만 약 10만 개의 기업이 파산했고, 다우존스 공업지수는 381에서 41로 하락했다. 약 6,000개의 은행이 파산했고 수백 만 명이 저축한 250억 달러의 예금도 증발했다. 실업률은 25퍼센트를 기록하며 실업자는 약 2,600만 명에 달했다. 그 때 자본주의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경제체제를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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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이슈 2008.10.09 10:46

“이러다가 주가와 환율이 역전되는 것 아닌가”

10월초 까지도 가벼운 이야기로 이런 우려를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농담 섞인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10월 8일 환율은 1350원을 넘어섰고 주가는 1350 포인트 밑으로 떨어졌다. 정부가 매일 10억 달러 이상을 외환시장에 풀고 있지만 치솟는 환율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있다. 정부통제를 완전히 벗어났다는 얘기다. 우리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비중이 이미 30퍼센트 밑으로 떨어졌건만 외국인들의 주식매도는 여전히 멈추지 않고 있다. 그나마 주가를 방어해왔던 기관투자가들도 더 이상 주식을 사려하지 않는다. 펀드 환매에 대비해 현금을 보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루짜리 달러 리보 금리는 3.94퍼센트까지 올랐고 유로 리보도 4.27퍼센트를 기록했다.

최후의 대책인 구제금융법으로도 진정이 안된다면

금융위기의 진원지인 미국은 우여곡절 끝에 법안 발의 2주 만에 겨우 구제금융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통과되던 10월 3일부터 주가가 폭락하기 시작하더니 1만선 밑으로 내려앉았다. 극도의 신용경색으로 기업들이 유상증자는 물론이고 회사채 발행도 어려운 상황이다. 금융권에서 자금을 조달하려 해도 유동성 확보에 급급한 은행들은 대출을 해주지 않는다. 해준다고 해도 높은 금리를 물어야 한다.

미국 금융위기 전개를 거의 정확히 예측했던 뉴욕대 루비니 교수는 “기업들의 자금조달 창구가 막힌 것은 두려운 일”이라며 “부채 만기 연장을 하지 못하는 기업들의 많은 수가 유동성 공급로가 막히면서 디폴트(채무불이행)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는 “만약 기업 부문의 자금 조달이 지금처럼 계속 막힌다면 대공황과 유사한 경제적 붕괴 위험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기업들만 자금 조달길이 막힌 것이 아니다. 캘리포니아 주는 채권발행이 안되자 “경찰, 소방서 공무원들의 급여를 2주째 주지 못하고 있다”면서 연방정부에 70억 달러 지원을 긴급히 요청한 바 있다.

문제는 미국이 이 같은 위기확산을 막을 뚜렷한 방법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JP 모건 체이스 보고서는 금융기관 손실이 이미 1조 7천억 달러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마당에 7천억 달러 구제금융은 턱없이 모자라 보인다. 예금자 보호한도를 10만 달러에서 25만 달러로 늘리고, 자금조달이 어려운 기업들의 기업어음(CP)을 직접 매입하며, 10월말 추가로 기준 금리 인하를 할 수 있다는 등의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전혀 상황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있다.

미국 국민들이 느끼는 경제위기 체감도는 훨씬 더 크다. 지난 10월 6일 CNN이 발표한 여론 조사에 의하면 “대공황이 다시 찾아올 수 있다”고 응답한 미국 국민은 59퍼센트나 되었다. 주택담보 대출 연체자가 500만을 넘고 실업자가 940만을 넘었다. 공식 실업률은 6.1퍼센트이지만 구직단념자 등을 포함한 실질 실업률은 이미 10퍼센트를 넘어가고 있으니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사실상 달러 거래가 중단된 한국

환율 폭등, 금리 상승, 주가 폭락, 펀드가치 폭락이 이어지고 있는 한국의 금융시장과 외환시장도 자금 경색이 극심한 미국에 못지않다. 특히 환율폭등은 이미 우려할 수준을 훨씬 넘어서 1300원 이상이 되었다. 올해 내내 환율은 달러가 강세이든 약세이든 상관없이 올라가고 있고 다른 통화에 비해 원화가치 하락이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이다. 지난 3개월(7월 15일~10월 6일) 동안 원화는 21퍼센트 하락했다. 이는 말레시아와 같은 신흥국 8퍼센트 절하는 물론이고, 가치가 많이 떨어진 파운드화 13퍼센트나 유로화 15퍼센트보다 훨씬 큰 것이다.

외환보유고 2,390억 달러가 충분한지 아닌지는 의미가 없게 되었다. 사실상 달러 유통자체가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외국인이 주식투자 자금으로 달러로 바꾸어 회수해가고 있고 경상수지가 적자행진을 하고 있는 상황만이 문제가 아니다. 금융위기가 심화되면서 달러를 확보해 두려는 경향에 가속이 붙고 있는 것이다.

수출업체들은 수출해서 번 달러를 시장에 내놓지 않고 보유하고 있다. 은행 역시 외화 차입금 상환 등에 대비해서 달러를 확보해 두려고 분주하다. 해외로부터 외화차입이 극히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개인들도 마찬가지다. 유일하게 정부 혼자 매일 10억 달러 이상을 풀고 있지만 풀자마자 매입해 버리는 ‘달러 사재기’가 한창이다. 외환보유고만 까먹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극도로 경색되어 버린 외환시장 국면에서 외화채무와 외환보유고를 비교하면서 충분한 보유고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달러뿐 아니라 원화도 비슷한 상황이다. 기업들은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현금 보유고를 계속 늘리고 있다. 은행들도 뱅크런 사태에 대비해서 대출을 꺼리고 있다. 투신사와 같은 기관 투자가들은 펀드 환매 사태에 대비해서 자금을 투자하지 않고 묶어두고 있다. 이럴수록 금리는 올라가고 은행채와 CD금리를 비롯한 모든 금리가 뛰어 오르고 있는 실정이다. 달러화와 원화를 포함하여 기업들의 자금조달 통로가 모조리 차단될 수 있다는 우려가 기우에 그치지 않는 이유다.

그동안 경제의 금융화, 금융의 세계화로 특징지어진 신자유주의는 신용팽창을 동력으로 경제성장을 구가해왔다. 금융과 자본시장이 전 세계에 걸쳐 개방되고 자유화되면서 세계는 신용의 사슬로 복잡하게 얽혀 자금 순환구조를 형성해왔던 것이다. 그런데 미국 금융위기와 신용경색이 전 세계로 파급되면서 신용으로 얽힌 경제의 모든 연결선들이 끊어지고 있다.

더 이상의 진통제는 없다. 각자 살길 찾자?

경제의 핏줄인 금융이 막혀가는 데도 불구하고 아직 ‘파국’이 오지 않고 있는 것은 왜일까. 1929년 대공황을 경험하고, 1980년 이후 반복되는 금융위기를 경험하면서 개발해낸 갖가지 위기 지연 장치들과 기법들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위기를 치유하지는 못했다. 그저 잠시 통증을 잊게 해줄 각종 진통제를 개발한 것일 뿐이다.

미국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초기에는 금리 인하와 유동성 공급이라는 진통제를 처방했다. 그러나 9개월간 5.25퍼센트에서 2퍼센트까지 금리를 연이어 내렸는데도 불구하고 금융위기는 확산되어갔다. 베어스턴스가 파산하자 미국 정부는 사후적인 선별구제라는 좀 더 강도 높은 진통제를 투입했다. 그러나 9월에 접어들면서 이마저도 약발이 먹히지 않게 된다. 미국 국민들의 저항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최후의 강도 높은 진통제인 7천억 달러 구제금융을 밀어부쳤지만 법안이 통과되던 그 날 다우지수가 폭락했다. 진통제를 맞기도 전에 효력이 없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제 어찌할 것인가. 미국은 물론 한국 정부 정책의 신뢰성은 땅에 떨어졌고 기업, 은행, 가계는 각자 제 살길을 찾아가고 있다. 신용의 연결선들이 끊어진 상황에서 각자 위기에 대비해 현금을 쌓아두면서 생존의 길을 찾아나가고 있는 형국이다. 각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WTO, IMF, G8 등 한때 화려한 역할을 했던 국제기구들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있다. 국가 간의 공조체제는 보이지 않으며, 서로 앞다투어 자국 은행의 예금자 보호와 자국 기업의 구제에 몰두하고 있는 형편이다.

진통제 투입으로 위기의 폭발이 지연되고, 그 동안 겪었던 위기에 대한 학습효과로 각자 위기관리를 하고 있기 때문에 1929년 대공황 같은 폭발이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을 ‘공황’이라는 말 이외에 뭐라고 불러야 할까. 적어도 경기침체(recession)을 너머 불황(depression)으로 넘어간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이런 와중에 이명박 대통령은 “현재의 상황은 1997년 IMF 외환위기 때와 많이 다르다”며 “이런 때일수록 국민들도 정부를 믿고 내외의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는 데 힘과 지혜를 모아주었으면 한다”는 식의 발언으로 일관하고 있다. 처해있는 현실 인식이 제대로 되어 있는지 우려가 앞선다. 이명박 대통령과 강만수 재정부 장관은 말을 꺼내기만 하면 ‘선제적 대응’을 수없이 반복했다. 그러나 진정으로 ‘선제적 대응’을 한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더 한심한 것은 이 와중에 외환위기 시절의 금모으기 운동을 흉내 내며 ‘달러 모으기 운동’을 벌이자는 주장도 들린다. 국민들이 달러를 모아야 할 정도라면 이미 외환위기는 온 것이 아닐까?

김병권/새사연 연구센터장

* 이 글은 인권운동사랑방의 주간 웹진 '인권오름'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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