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5-11                                                                                      고병수 / 새사연 이사

4월 25일 네팔 대지진이 발생했다. ‘열린의사회’에서 구성한 신속 긴급구호의료지원단 3명이 선발대로 지진 발생 8일째 네팔로 파견됐다. 스리랑카 내전지역을 수 차례 방문한 것을 비롯 필리핀 태풍 등 재난 지역 긴급의료지원 및 해외 의료지원 10여 차례 참여한 고병수(가정의학과 의사 )원장과  이이티 지진 및 동티모르 내전지역 등 해외 의료지원 수 차례 다녀온 최정철(이비인후과 의사 )원장, 두 의사와 스텝 한 명을 포함 3명이 네팔로 달려갔다. 탑동365일의원 고병수 원장이 현지 소식을 보냈다. 그들은 현지 정보를 통해 산악지대에 다친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를 들어 짚차를 구했고, 1500~2000m 사이의 히말라야 끝자락 산간지대를 오르내리며 이동진료를 하기로 했다. 멀쩡하게 남은 건물들이 거의 없어서 풀밭에 침낭을 깔고 노숙하며 이동중이다. 고병수 원장의 네팔 현지의 이야기다.  (편집자 주)

네팔에 도착한지 3일째. 지금 우리가 다니고 있는 곳은 히말라야 산맥 끝자락의 산들이다. 짚차에 약품과 의료기구들을 싣고 험준한 산들을 오르내리고 있다.

분주한 도시, 평온한 모습들

처음 공항에 내려 짐을 싣고 시내를 가로질러 갈 때만 해도 ‘지진 일어난 곳 맞아?’, ‘건물들도 대부분 멀쩡하네?’하고 속으로는 너무 아무 일 없는 듯이 보여서 놀랐다. 공항에는 철수하는 긴급구조대들이 장비들을 본국으로 이송하고 있었으며, 많은 대원들도 돌아가는 줄에 서 있었던 모습을 봤기 때문에 의아함은 더 했다. 하지만 수도 카투만두에서 2시간쯤 달려 산악지대로 들어서면서부터는 눈을 의심해야 했다.

거의 모든 집들이 폭격 맞은 것처럼 완전히 부서져 있었다. 한국에서 보도에 많이 나온 것들은 카투만두나 관광도시 포카라, 고대유적들이 있는 유명한 박타푸르였는데, 이 곳들은 큰 건물들이나 널리 알려진 사원들이라서 보도를 많이 탔지만 사실 대부분의 주거지들은 건재해서 우리가 왔을 시점에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지진 일주일이 지나면서는 가게들도 문을 열고 시내가 평온했던 것이다.

 

▲ 완전히 부서진 집들 _ 산간지역은 집구조가 주로 돌과 진흙으로 이루어져 피해가 컸다.
피해지역 산간 마을들은 90%가량 완전히 무너졌을 뿐 아니라 인명 피해도 컸다.


이동 진료를 하다

3일째 우리가 차로 이동 진료를 하는 곳은 피해 지역 22개 군 중 데바쩌우르와 신두팔촉 지역이다. 특히 이 지역들은 첫 지진 후 다음 날 이차 강진으로 더 큰 피해를 입은 곳들이었다. 네팔의 몇몇 도시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산악지대여서 웬만해서는 차가 오르내릴 수 없다.

이런 곳들의 진료를 위해서는 한 곳에 머무르지 말고 다니면서 해야 한다는 문광진 선교사님(우리의 현지 안내자)의 제안에 따라 어렵사리 짚차도 구하고 산으로 오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전 세계 NGO나 정부단체 등이 네팔로 몰려서 차량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이고, 값도 이전의 몇 배 수준이었다.

신두팔촉 지역으로 가다가 한국적십자사 대원들도 보였고, 현지인들 얘기를 들으니 주변 넓은 공터에 일본 의료진이 45명 가량 대형 천막을 치고 장비들을 갖춘채 진료를 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환자들이 없어서 조끼 입은 일본 대원들만 바글바글하고, 정작 환자들은 가뭄에 콩나듯 보였다고 전했다. 우리가 너무 늦게 와서 일이 없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그렇게 된 이유를 나중에 마을을 돌다보니 알게 됐다.

우리는 카투만두를 벗어나서 한참 산을 빙빙 돌며 마을들을 돌며 주민들에게 아픈 사람 있냐고 묻고 다녔다. 있다고 하면 짐을 풀어 진료를 시작하고 웬만큼 일을 마쳤다 싶으면 다시 약품 등 짐을 싸서 이동을 했다. 마을이 작아도 몇 명을 진료하다보면 금새 산 너머 동네 사람들까지 몰려들어 한 군데 머물면 보통 2~30명을 보게 된다.


▲ 봉합수술 장면 _ 너무 많아 소독할 시간이 모자랄 지경.


대부분은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주민들이어서 그들을 대하는 내내 착찹했다. 5살 난 여자 아이는 왼쪽 팔을 못 써서 찾아왔는데 흙더미에 완전히 묻혔다가 구해져서 나왔는데 팔이 마비됐는지 힘을 못썼다. 타박상 같은 가벼운 환자들도 많았지만 돌에 찧이거나 살이 찢긴 사람들이 꽤 많아서 그 자리에서 봉합수술을 한 게 여러 차례였다.

멀지만 군청소재지에 병원이 있고, 몇 군데는 각국에서 온 의료캠프도 있는데 왜 안 갔냐고 물었더니 나름대로의 이유들이 있었다. 병원이 있는 읍내를 가자면 산을 걸어 내려간 후 버스를 타야 하는데, 걷기가 용이하지 않을 뿐더러 이 정도면 괜찮을 줄 알았다는 이유가 가장 많았다. 산 밑에 차려진 긴급의료구호 캠프에도 그래서 못 가는 것이었다.

이미 중환자들은 어떻게든 이송을 했고, 마을을 지키는 사람들은 겨우 살아난 이들…. (겨우 살아났다는 말이 이해가 안 갈 것이다. 마을들은 돌집들이 8~90%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그런 돌들 틈에서 나왔다는 것은 죽어서이거나 겨우 살아남게 되는 것이라 이 표현을 안 쓸 수가 없다.) 이들의 다리가 돌이나 나무에 찢기거나 웬만한 골절은 다행이면서도 죽은 가족들에게는 치료를 받기에 미안한 것이기도 했다.


▲ 완전히 부서진 집들 _ 산간지역은 집구조가 주로 돌과 진흙으로 이루어져 피해가 컸다.
피해지역 산간 마을들은 90%가량 완전히 무너졌을 뿐 아니라 인명 피해도 컸다.


산 아래로 내려가지 못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무너진 돌 틈에서 식기나 가재도구 하나라도 건지려거나 돌들을 밀치고 조금이라도 집을 다시 세워보겠다는 것인데, 다시 집을 쌓기는 정말 어려워 보인다.

환자가 없는 게 아니었다

어제 우리가 돈 곳은 데바찌우르 군의 여러 마을들 중 6개 정도 마을이었다. 마을들은 우리처럼 모여있는 게 아니라 산기슭 지형에 따라 한 채에서 많게는 50여 채까지 흩어져 있다. 적으면 적은 대로 잠시, 많으면 2~3시간 정도 머무르며 진료를 했다. 원래는 작은 마을이어서 간단히 짐을 풀고 환자들을 보고는 짐을 싸다보면 산에 난 좁은 길을 따라 이웃 마을에서 몇 명씩 걸어오고 있다.

그러면 우리는 다시 짐을 풀고 그들을 봐야 했다. 걷지 못하는 환자들은 찾아가서 진료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면 마을은 작아도 2시간 넘게 머물러야 한다. 그렇게 움직이면서 다닐 수 있는 게 5~6개 마을. 물론 고정된 마을이 아니어도 차를 타고 산길을 가다가 주민들을 만나면 아픈데 없냐고 물어보고, 다친 부위 고름을 짜서 드레싱을 깨끗이 해주고는 항생제와 진통제를 넉넉히 주고 다시 길을 가는 것은 셀 수 없이 많았다.

네팔에 온지 셋째 날, 이제는 웬만큼 찢어졌지만 지진 이후 10여일이 지나서 왔대도 우리는 놀래지도 않는다. 그럴 수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리저리 살핀 후 봉합 준비를 한다. 처음에는 안 그랬다. 왜 병원 안 가고 이 때까지 놔뒀냐 반 핀잔, 반 안타까움으로 얘기를 했는데, 이제는 별 물음 없이 다 치료하고는 스스로 소독처치할 수 있는 것을 가르치고 항생제를 주고 보낸다. 슬슬 현지 상황에 적응하고 있나 보다.

▲ 산세가 험해 짚차가 올라가지 못할 때는 밀어야 했고,
더 높은 데는 차가 못 가서 짐을 들고 이동해야 함.


한번은 작은 마을에 잠시 짐을 풀고 진료를 하는데 60세쯤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오른쪽발에 비닐봉지를 감은 채 찾아왔다. 다른 왼쪽은 맨발이었다. 비닐봉지를 풀어보니 입이 딱 벌어질 수 밖에 없는 모습이 나타났다.

오른쪽 발가락 첫째와 둘째 사이로부터 발바닥 앞쪽까지 10cm 정도가 찢어져서 속살은 물론, 뼈까지 드러나 보였다. 다행이 힘줄은 무사해 보였다. 왜 병원 안 갔냐고 이제는 묻지 않는다. 수술 도구를 펼치고 봉합을 시작했는데, 발바닥에 어찌나 굳은 살이 박혔는지 바늘이 자꾸 휘어서 고생했다. 그뿐 아니라 수술 바늘이 들어가지 않아서 땀을 빼야 했고, 오래도록 벌어진 발바닥이 되서 실을 당겨도 살이 붙질 않았다. 우리를 안내하던 기아대책본부 소속 문광진 선교사님께 벌어진 살을 밀어서 붙여달라고 하고는 실을 묶기를 반복하며 30분 동안 수술 한 후에야 끝낼 수 있었다.

드레싱을 마치고 일어서려니 허리가 아프고 다리 근육이 욱씬거리며 한참 저려왔다. 수술대가 없어서 바닥에서 꿰매느라 자세를 꾸부정하게 했더니 후유증이 왔다. 한참을 그렇게 아프더니 이동을 하면서야 겨우 풀렸다.

이제는 한산한 마을을 지나더라도 걱정이 된다. 금새 환자들이 몰려오는 것들은 둘째치고 또 어떤 열상 환자가 찾아올까 조금 우려가 되는 것이다. 소독기구가 충분치 않아서 여러 명을 동시에 수술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꼭 필요한 약품도 일부 동이 나기 시작했고…. 내일은 산을 내려가서 약이나 필요한 물품을 구비하고 와야 할 것 같다.


< 네팔 상황 요약 >
ㆍ국토면적 한반도 2/3(남한 1.5배)
ㆍ전 국토 77% 산악지대
ㆍ인구 3000만 명 (수도 카투만두 250만 명)
ㆍ12개 도, 75개 군
2015년 4월 25일 낮 11시 50분경 진도 7.8의 첫 지진, 다음날 4월 26일 진도 6.8의 강진 후 
  수 백 차례의 여진이 발생해서 1만~1만 5천 이상의 사망자 발생, 수 십만 채의 건물 붕괴

해발 1800m 의 산악지대 점점이 집들이 있다. 좁은 길을 따라 차를 타고 겉고 하면서 이동을 한다.

 

고병수는?

= 제주제일고를 나와 무작정 서울로 상경, 돈벌이를 하다 다시 대학진학의 꿈을 키우고 연세대 의대에 입학했다. 의대를 나와 세브란스병원에서 가정의학 전공의 과정을 마쳤다. 세브란스병원 연구강사를 거쳐 서울 구로동에서 개원, 7년여 진료실을 꾸리며 홀로 사는 노인들을 찾아 다니며 도왔다. 2008년 고향 제주에 안착, 지금껏 탑동365의원 진료실을 지키고 있다. 열린의사회 일원으로 캄보디아와 필리핀, 스리랑카 등 오지를 찾아 의료봉사도 한다. 『온국민 주치의제도』란 책을 펴내는 등 보건의료 선진화 방안과 우리나라의 1차 의료 발전


* 본 글은 제이누리에 기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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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13 고병수 / 새사연 이사


고병수 / 새사연 이사



공공병원 문제로 많은 자료들을 들춰봤지만 하나같이 “공공병원을 강화하자”라든지, “공공병원의 재정, 시설, 인력 등에 대해서 국가의 책임을 늘려야 한다”와 같은 원론적인 얘기들밖에 없었다. 그 내용들을 보면서 과연 그렇게 하면 지금의 공공병원 문제들이 해결될까 의아했다. 물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들 있지만, 그 정도의 문제의식과 해법 가지고 실제 병원을 운영하라고 했을 때 지금의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겠느냐 판단해 본다면 전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왜? 공공병원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여러 전문가들이 지적한 총론적인 것들도 의미가 있지만, 실제 운영에서 필요한 각론적인 것들이 지금의 문제들을 풀기 위해 더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역 주민의 신뢰 확보가 중요

 

신문보도, 관련 연구 자료나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을 다양하게 보고도 해답이 안 보여 나는 직접 몇몇 공공병원들을 찾아 나섰다. 병원 규모, 시설, 인력 등을 둘러보면서 어렵게나마 몇몇 직원들과 병원의 책임자인 원장님들을 면담했다.


 (사례 1)

유명한 대학병원 부원장 출신으로 있다가 정년퇴임하면서 오게 된 OO공공의료원의 김원장은 부임하면서부터 병원 노조 간부들을 여러 차례 만나서 병원 살리기에 대한 방안을 함께 고민했다. 뿐만 아니라 전 직원들의 생일을 일일이 챙기면서 꽃과 간단한 선물을 갖다 주었고, 카드에다가는 그 직원을 지켜본 소감을 적으면서 하는 업무가 힘들지만 병원과 환자를 위해서 애써 주니 너무 고맙다는 말을 빼곡히 적어서 함께 보낸다. 김원장은 병원 행사가 있으면 떡이나 음료수를 들고 청소 직원들이나 주차관리인들에게 먼저 갖다 준다. 이러한 모습에 직원들은 감동을 하고, 어려워도 원장의 뜻을 따르려고 같이 노력을 하게 되었다.

부임 초기에 직원들 월급이 제대로 지급되지 못할 상황이 되었을 때, 원장은 의사들에게 직원들 월급을 먼저 주자고 제안해서 승낙을 받았고, 노조에 이를 알리자 노조에서는 오히려 의사들이 먼저 월급을 가져가야 자꾸 떠나지 않을 거라면서 자기들이 양보하겠다고 거절했다. 몇 번이고 옥신각신 하다가 결국 의사들의 급여를 먼저 정산하게 되었고, 직원들은 80% 정도의 월급을 수령해야 했다. 다음 달에도, 또 다음 달에도 직원들은 제대로 된 월급을 손에 쥘 수가 없었다. 몇 년이 지난 지금은 재정이 넉넉하지는 않지만 직원들 급여가 어느 정도씩은 잘 돌아가게 되었고, 의사 인력도 많이 늘리고 시설도 보강해서 지역 주민들의 신뢰를 회복하게 되었다. 


노조와 해마다 분쟁을 겪어야 했던 위의 OO의료원은 원장이 몇 차례 연임을 하는 동안에 한 번도 분쟁 없이 단체교섭이 통과되었으며, 전 직원들의 화합된 분위기 속에 병원이 움직이고 있었다. 거기에 지방 정부의 지원을 받게 되어 병원 건물을 리모델링했으며, 의사 인력도 보강을 해서 처음에는 괄시하던 지역 주민들도 이제는 많이 찾아오는 병원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사례 2)

OO의료원으로 새로 부임한 강원장은 오래 전부터 지금의 병원을 어떻게 운영할지 고민해오던 터였다. 그러던 중 원장 공모에 응했고, 몇몇 전문가들과 논의 끝에 종합병원으로서의 지위를 내려놓고, 지역 특성에 맞는 병원으로 바꾸기로 결정을 했다. 종합병원이 아니면 진료 수가도 낮아서 운영에 차질이 생기지만 정말 필요한 진료과를 잘 키우면서 노인질환 중심으로 만들어 나가기로 했던 것이다.

노인전문병원에 걸맞게 시설이나 장비도 맞춰서 보강을 했고, 내과와 신경과, 재활의학과, 영상의학과를 핵으로 지역의 의료 욕구도 충족하면서 어르신들의 질환에 전문적이고,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위 의료원은 종합병원을 고집하지 않으면서 시대적 변화와 지역민들의 욕구를 잘 파악해서 운영 방침을 전환한 예이다. 아직 운영 초기여서 그 성과는 평가를 할 수 없지만, 내가 찾아갔을 때는 왠지 모를 도전에 대한 의지가 느껴졌고, 외래마다 환자들이 빼곡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보니 잘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멋진 공공병원을 만들기 위하여

 

만성 적자의 병원, 지역 주민들이 신뢰하지 않는 병원..... 이것은 지금의 공공의료원들에 항상 따라다니는 이미지이다. 하지만 최근 진주의료원 사태처럼 맘에 들지 않는다고 없애버리는 게 정답일까 물어본다면 그 대답은 또한 ‘아니올시다’이다. 그것은 마치 아이들이 다니는 공립학교를 없애고, 모든 학교를 사립학원으로 만들어버리는 꼴과 같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향하고자 하는 공교육의 이념을 없애고, 저급한 시장의 논리에 우리 아이들을 맡겨 놓을 것인가?

 

사립학교조차도 많은 운영비를 국가에서 대면서 공공의료원에는 찔끔찔끔 지원금을 대면서 왜 그렇게 싫은 소리들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전국 34곳 지방의료원들은 20% 이상의 의료급여환자들을 돌보고 있으며(민간병원의 경우 12%), 국가 재난 사태에는 첨병 역할을 해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수익이 안 된다고 민간병원들이 기피하는 하는 의료사업들을 꿋꿋이 해내고 있는 공공의료원을 오히려 더 지원해야 하는 것 아닌가? 민간병원들도 비보험 진료, 특진비, 값비싼 검사와 치료가 아니면 흑자를 볼 수 있을지 궁금하다. 지금의 실정에서 대한민국의 공공의료원들은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공공의료원들 내부의 문제점이 없다고 보지는 않는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스스로 개혁해야 할 부분들도 많다. 원장이나 조언자가 병원 개혁 방안을 내놓아도 모른 채 무시하는 중간 관리자들의 행태는 커다란 병폐이다. 원장은 2~3년 있다 떠날 사람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어서 더 능동적으로 사고하고 조직해야 할 중간 관리자들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의사들이나 직원들의 적극성 부족도 문제로 지적한다. 성실히 환자를 대하면서 지역의 주민들이 병원을 찾아오게끔 해야 하는데, 뭔가 부족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례 3)

병원 청소부 김씨 아주머니는 여느 때처럼 병실을 돌며 일을 하는데, 한 환자가 자기를 불러서 호소를 한다. “아주머니, 검사 끝났기 때문에 밥을 먹어야 하는데, 밥이 왜 안 나오죠? 간호사한테 얘기 좀 해주세요. 아이고, 배고파.....”

김씨 아주머니는 병동 스테이션으로 가서 간호사에게 그 병실의 환자 문제를 얘기한다. “어, 아주머니 말해줘서 고맙습니다. 그 환자 밥을 따로 시켰는데, 조금 늦나봐요. 저희가 가서 말씀드릴게요. 늘 신경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병실에 문제가 있으면 저희에게 말해주세요. 바빠서 빼뜨리는 것들을 아주머니가 함께 도와주시니까 든든하네요.” 간호사의 말에 청소부 아주머니는 보람을 느낀다. 비록 환자를 대하는 일을 하는 건 아니지만 자기도 환자의 케어에 같이 복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간호사는 병실로 가서 그 환자에게 금방 식사가 올 것이라고 안심시켰고, 이 말을 빼놓지 않는다. “아까 청소하시는 김씨 아주머니가 말해주셔서 저희가 더 빨리 식사를 준비해 달라고 영양사실에 얘기했어요. 30분 내로 올 거예요. 아주머니가 병실을 청소하시면서 저희들이 못하는 부분을 들어주는 역할을 하니까 저희들도 간호사가 한 명 더 있는 느낌이 들어 좋아요.”

이 병원은 환자 신뢰를 얻은 여러 사례들을 모아서 직원회의 때 중간 관리자들이 발표하고, 그 직원을 칭찬하면서 의기를 북돋워준다. 이러한 병원의 분위기는 원장의 의지와 중간 관리자들의 노력으로 만들어 지는 것이라고 한다. 


보통의 병동이었으면 자기들이 알아서 다 하니까 청소부 아주머니는 신경 쓰지 말라고 핀잔을 줬을 것이다. 하지만 이 병원은 의사나 간호사만 아니라 청소부부터 전 직원들이 환자를 위해서 모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고, 어느 직원일지라도 환자를 위해서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만들어 주고 있는 두 가지 효과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것이 환자가 병원을 신뢰하는 중요한 지점이다.

 

물론 병원의 의료시설이나 의사 인력이 중요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이 부족하니까 공공의료원은 운영이 힘들다고 너무 핑계 대는 것은 아닐까? 지역 주민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 스스로 변화하려는 노력을 덜 하고 있는 부분은 없을까? 지방의 어떤 공공의료원은 만성 적자에, 주민들의 믿음을 얻지 못하는 가운데에서도 무리하게 심혈관 센터를 추진하기도 한다.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의료시설을 확충한다는 명분이지만 30분이면 근처 대학병원으로 이송도 가능한데, 과연 그러한 훌륭한 시설이나 장비가 없어서 의료원이 신망을 못 얻는 걸까 먼저 자문을 해볼 필요가 있다.


 



신뢰란 믿음이 가고, 의지하게 된다는 뜻이다. 병원으로서 신뢰를 갖는다는 말은 믿고 자신의 건강과 더 나아가서는 삶과 죽음의 문제까지도 맡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인력과 장비도 중요하지만 병원을 찾는 환자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게 우선이라고 본다. 지금의 공공의료원들은 지역사회 종합병원으로서 주민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구체적인, 정말 주민들의 가슴을 움직이는 노력을 하고 있는가? 이는 비단 몇몇 공공의료원만 고민해야 할 게 아닐 듯하다.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 속에서도 몇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신뢰는 주민과 환자들의 충성심을 얻는 것으로 나타나게 된다. 지금부터라도 공공의료원들은 ‘공공’이라는 글자를 지우겠다는 의지를 가졌으면 한다. 민간병원들은 망하느냐, 흥하느냐의 기로에서 항상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고 지낸다. 공공의료원들도 우리가 스스로 해내지 못한다면 망할 수 있다는 각오로 환자들을 대하고, 병원 체질 개선에 노력을 배가하도록 해야 한다. 그 가운데 국가나 지방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관심을 얻어야 하며, 주민들이 “우리 지역의 OO의료원은 정말 찾아가고 싶은 곳이야.”라는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찾은 의료원 중 몇 곳은 정말 그러한 노력들을 하고 있었다. 그러한 사례들을 연구하고 독특한 노력을 기울이면서 우리도 멋지고 안심이 되는, 지역 의료의 중심이 되는 공공의료원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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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25고병수/새사연 이사

지난 칼럼을 쓸 즈음에는 진주의료원이 폐쇄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후 각계각층에서 공공병원을 늘리지는 못할망정 폐쇄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보건의료를 망치는 일이라는 반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에 홍준표 경남 도지사도 다소 주춤하는 기세다.

 

 

외국의 공공병원 특징

 

진주의료원 때문인지, 지난 대통령 선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웬만한 국민들은 한국의 공공의료 부분이 취약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다. 외국은 의료보장성이 90% 가까이 되는데 우리는 60% 남짓, 외국은 공공의료 인프라가 90% 정도 되는데 한국은 10% 정도(전체 의료기관 중 공공의료기관의 병상 수는 12%, 병원 수는 6% 정도)로 흔히 비교하는 OECD에서도 최하위라고 한다.

 

이번 진주의료원 사태로 그동안 필자가 찾아갔던 외국의 병원들을 돌이켜 보게 되었다. 다른 나라의 공공병원들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모두 알다시피 공공병원 이용은 거의 무료라는 점이다. 암이든 중증질환이든 관계없이 말이다. 반면 동네의원들은 나라마다 달라서 진료비를 내는 곳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둘째, 종합병원은 거의 다 공공병원이다. 그래서 외국에 갔을 때 공공병원이 어디 있느냐 물어 보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왜냐하면 주변에 깔린 게 다 공공병원이기 때문에 굳이 ‘공공병원’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평범하게 ‘OO종합병원’이라고 표현하며, 주민들 역시 평범하게 이용할 뿐이다. 늘 공기를 들이쉬고 내쉬면서도 굳이 숨을 쉰다고 일일이 표현하지 않는 것처럼.

 

캐나다 토론토 근교에 있는 ‘노스 요크 종합병원(North York General Hospital)’
중앙정부와 주정부의 예산으로 지역에서 전문의료를 담당하고 있다.

 

 

런던 외곽 뉴멀든(New Malden) 지역의 킹스턴 종합병원(Kingston Hospital)

역시 공공병원으로서 영국도 지역마다 균등하게 유치해서 지역민들이 이용할 수 있게 한다. 

 

셋째, 공공병원의 의료 수준과 의료의 질이 사립병원보다 훨씬 뛰어나다. 그래서 공공병원에는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많은 진료과들이 있지만, 사립병원들은 진료수가가 낮거나 노력 대비 수익이 낮은 것들은 취급하지 않는다. 심장수술, 중증질환센터, 응급실 등은 외국의 사립병원들이 들여놓지 않는 진료 내용들이다. 주민들도 다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상황을 겪게 되면 모두 지역의 종합병원(공공병원)으로 간다. 사립병원들은 대부분 수술이나 검사 대기시간을 줄이기 위해 가는 경우가 많다.

 

넷째, 외국의 공공병원들은 거의 적자병원들이다. 하지만 우리처럼 적자를 만들어내니까 문제 있는 병원이라는 인식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병원들은 해마다 내년도 병원 운영 예산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받고 있고, 주민들로부터 진료비를 받아서 운영하지 않으며, 의료장비, 수술기법, 약품비, 인건비들이 해마다 증가하는데 예산이 따라서 증가하는 건 당연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역마다 배치되어 있는 종합병원들의 소중함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고관절치환 수술을 받아야 하는 70세 스미스 부인은 자기가 사는 지역의 병원을 선택할 수 있었는데그곳에는 NHS와 계약을 통해 치료비를 받고 있는 사립병원(영리병원)도 있었고, NHS 병원(공공병원)도 있었다그녀는 NHS 병원을 골랐지만 수술 날짜는 정해졌어도 병실이 나오지 않아서 다시 사립병원을 찾아서 시간을 잡았고병실에 입원을 한 후 빠르게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수술 받은 얼마 후 운이 나쁘게도 그녀에게 위험한 합병증이 생기고 말았다하지만 그 사립병원은 응급의료 전문 인력은 물론 응급치료 시설도 갖추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그녀는 급히NHS 병원으로 후송되었다다행히 스미스 부인은 머잖아 회복을 할 수 있었지만자칫 기본적인 수술이었어도 비극으로 끝날 수도 있었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영국 의사협회 제공 사례)

 


적자가 아니라 예산이 늘어나는 것

 

필자가 사는 제주도의 2013년 예산이 3조 원이 약간 넘는다. 2014년에는 분명 이 금액보다 많은 예산이 수립될 것인데, 도 예산이 수천억 원 초과되었다고 도 행정을 나무랄 것인가? 예산이 초과 수립되었다고 도의회에서 질타를 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다만 적정하게 만들어졌는지, 새는 구석은 없는지 살필 뿐이다. 국가나 시도의 예산이 해마다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 아닐까? 그러한 시각을 공공의료원에는 왜 못 보여줄까? 각 시도에서는 주민들의 공익을 위해서 막대한 재정을 투여하면서 지역의 건강지킴이인 공공의료원에는 왜 넉넉하게 쓰지 못하는 것일까?

 

모든 조직이나 단체의 예산은 늘어나기 마련이다. 그것이 줄어들었다는 것은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다. 공공의료원도 마찬가지이다. 지역의 보건문제에 관여하고, 저소득층 환자들을 돌보고 국가 비상사태 때에는 적절한 역할을 해내는 의료원들은 해마다 적자가 날 수밖에 없다. 사실 적자란 개념은 경영에서 쓰는 말이라서 예산이 늘어난다고 쓰는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외국과 다른 점은 한국의 공공의료원들은 전액 국가나 지방정부로부터 지원을 받는 것이 아니고 주민들로부터 진료비를 받아가며 운영해야 하며, 쥐꼬리만큼 아주 조금 지원을 받기 때문에 더 힘들게 운영되고 있다.

 

국가의 전폭 지원과 주민들의 사랑을 받는 외국의 공공병원을 우리는 왜 못 만들어낼까? 거기에는 앞선 칼럼에서 썼듯이 대부분의 의료 인프라가 민영화되어 있는 한국의 현실이 큰 영향을 미쳤고, 둘째는 공공병원을 키우지 못하는 국가나 지방정부의 소홀한 인식이 컸다고 본다.

 

그렇다고 외국의 공공병원들이 모두 좋다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공공의료원들이 아무 잘못이 없다는 얘기도 아니다. 다음 시간에는 이러한 것들을 조명하면서 우리 공공병원들이 발전할 방법들을 찾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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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06고병수/새사연 이사


어느 공공의료 발전을 위한 토론회에 갔을 때의 일이다. 토론자로 온 어느 전문가분이 대한민국 공공의료원의 설립 취지를 말하던 중 “우리나라 공공의료원은 취약계층에 대한 의료서비스 제공과 지역의 풍토병이나 보건의료와 관련된 국가적 재난에 대처하는 것을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서 만들어졌습니다.”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부터 머리가 지끈 아파오기 시작했다.

아, 정말 대한민국에서 공공의료원이란 곳은 정말 희생과 봉사, 투철한 소명의식 없으면 일을 할 수 있는 곳이 아니구나. 결국 희생과 봉사라는 것은 부유한 상황에서도 하지만, 보통은 자신의 처지나 상황에 관계없이 자기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이타적인 관점에서 행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공공의료원들은 이익에 신경 쓰지 않고 공공의료 실현을 위해 힘쓰다보니 ‘적자병원’이라는 온갖 비아냥과 그를 뒤받치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이나 의원들까지도 비난을 할 정도로 힘들게 운영되는구나….

이러한 생각들로만 끝났다면 내 머리가 아프지 않았을 것이다. 두통의 주범은 토론자들이 아무도 공공의료원의 설립목적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일어나 질문을 해야 했다.

“발표자 OOO 선생님 말씀은 잘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공공의료원의 설립목적이 꼭 공공의료 실현에만 있는 건가요?”

청중들이나 토론자들 모두 생소한 질문이라는 듯이 모두 나를 쳐다봤다. 귓불이 뜨겁고 괜한 질문을 했나 후회가 들기도 했다. 질문의 취지를 다시 정리해 달라는 사회자의 요청에 나는 우리나라의 공공의료원의 설립목적이 취약계층, 의료 접근성이 안 좋은 곳, 국가적 재난의 상황 등, 정말 그러한 상황들에 주동적으로 일을 하라고 만들어진 것인가 라고 정리를 하였다. 내 질문 취지를 잘 이해를 못했는지 토론자는 아까와 같은 얘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이어서 계속 공공의료원의 문제점, 발전방향 등을 토론하고 질문도 받으면서 진행이 되었지만, 내 관심은 거기서 끝났다. 첫 단추를 잘못 꿰었는데 다음 옷깃이 제대로 연결되겠는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공공의료원의 설립목적

<지방의료원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 2012>에서 우리나라 지방의료원의 설립근거와 목적을 알 수 있다. 제2조에서 ‘지방의료원이란 지역주민에 대한 의료사업을 수행할 목적으로 이 법에 따라 설립된 의료기관’으로 정의하면서 그 역할을 제7조에서 ‘1. 지역주민의 진료사업, 2. 감염병 및 주요 질병의 관리 및 예방 사업, 3. 민간 의료기관이 담당하기 곤란한 보건의료사업, 4. 의료인ㆍ의료기사 및 지역주민의 보건교육사업, 5. 의료지식과 치료기술의 보급 등에 관한 사항, 6.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공공보건의료 시책의 수행, 7. 그 밖에 보건복지부장관 및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한 보건의료사업의 수행 및 관리’라고 규정하고 있다.

길게 나열되어서 복잡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단순히 말하면 지역에서 일반 진료를 주로 하면서 필요한 공익적인 의료사업을 하라는 것이다. 이 표현이 중요한 것이 우리는 자칫 지역의 공공의료원을 무슨 공공의료의 첨병쯤으로 여기기 때문에 잘 새겨둘 필요가 있다. 

많은 연구 자료들이나 글들을 보면 상당수가 공공의료원의 역할을 공공의료의 실천이라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음을 보게 된다. 실제로는 지역에서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평범하게 제공하면서 지역병원으로 자리 잡으라고 한 것이 본말이 전도되어 ‘공공’이라는 것에 중심점이 잘못 잡히게 된 것이 아닐까? 그러다보니 지금의 공공의료원이 겪는 딜레마가 만들어진 건 아닐까?

실제로 공익적 보건의료서비스를 중심에 두고 행하려면 특수목적 병원들이어야 한다. 한센병원, 결핵병원 등처럼 말이다. 물론 공공의료를 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지역의 일반적인 건강이나 의료문제가 주된 관심사이어야 하고, 특별히 공익적인 보건의료서비스를 사립병원들과 차별적으로 잘 하라는 것뿐이다. 그러한 목적을 위해서 만들어졌기에 국가나 지방정부는 지원과 물적 토대를 마련해 주겠다는 것이다.

공공의료원은 일반 병원이라는 생각으로

우리나라에서 지역거점 공공병원이라면 34개 지방공공의료원과 5개의 적십자병원을 말할 수 있다(안타깝게도 최근 경상남도는 진주의료원을 없애기로 하여서 지방공공의료원이 33개로 오히려 줄어들게 되었다). 그들 모두 인력난, 재정난을 겪고 있고, 지역주민들의 신뢰를 제대로 확보하고 있지 못하다. 그러한 연유에는 공공의료원을 운영하는 측면에서나 국가나 지방정부, 혹은 관련 연구자들이 지나치게 공공이라는 측면만 강조해서 문제점이 나타나는 점도 없지 않을 것이다.

‘공공(公共)’이라는 말은 사전적 의미 그대로 사회의 일반 구성원들에게 공히 관계되는 것을 말한다. 공공의료원은 그래서 지역사회의 일반적인 주민들에게 필요한 보건의료서비스를 적절히 담당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 자본주의의 첨단 국가인 대한민국과 같은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사립병원들이 돈 안 되니까 접근하지 않는 분야를 맡아서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본말이 전도 되어서는 안 된다.

공공의료원을 그냥 편하게 바라봤으면 한다. 그 병원들도 그냥 일반 병원들처럼 생각해 주자. 그렇다고 병원의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보통의 병원들처럼 생각하자는 것이다. 거기에서 출발해서 지역에서 자리 잡게 하고, 주민들이 원하는 의료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독려할 수 있었으면 한다.

고병수는?

가정의학과 전문의로 현재 제주도 '탑동 365일 의원'을 공동 개원해 운영하고 있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에서 보건복지분야 이사로도 활동 중이다.



* 본 글은 라포르시안에도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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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27고병수/새사연 이사

 

이번 2012년 12월 7일부터 14일까지 7박 8일 동안 스리랑카를 다녀왔다. 스리랑카는 수단, 소말리아와 같은 아프리카 지역처럼 세계적인 내전 지역이었다. 이번에 방문한 곳은 그 중에서도 가장 전투가 치열했던 지역이었고, 정부군과 싸우는 타밀반군은 용맹하기로 유명해서 영화에서도 자주 등장하였다.

내전은 2009년에 종식되어 3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타밀 반군의 점령지는 황폐화되어서 복구가 되지 않고 있고, 난민들은 세계 각국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스리랑카 영부인이 운영하는 복지재단의 요청으로 긴급 의료지원을 가게 되었다. 짧은 여정이었지만 그간의 기록을 연재한다.


한국에서 스리랑카까지의 이동이 예상보다 길어져 하루의 시간이 날아가 버렸다. 예정대로라면 진료 시작일 보다 하루 먼저 도착해 여유롭게 준비를 하고 진료에 들어가야 했지만, 도착한 다음 날 아침 일찍 부리나케 진료지로 가서 준비를 하게 되었다. 적지 않게 해외 진료를 다녀온 전문가들답게 뚝딱뚝딱하더니 잠시 후 내과, 소아과, 정형외과, 산부인과, 신경과, 치과에 약국까지 갖춰지면서 미니 종합병원을 만들어냈다.

숙소에서 진료할 곳까지 가는 것도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군부대 차량의 호위를 받으며 갔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근처 초등학교로 우리 같으면 분교 크기인 곳이다. 교실도 몇 개 안 되고, 교장실과 그 옆방을 제외한 온 교실에 전기가 안 들어와 다소 어두운 실내에서 진료를 하게 되었다. 20제곱미터 조금 안 되는 교실마다 진료실을 만들고, 치과 진료실과 약국은 전기가 들어오는 방으로 배정했다.

그런데 우리가 준비를 모두 마칠 때까지도 약속된 통역원들이 오지 않았다. 원래 영어를 할 줄 아는 장교들을 통역원으로 구성했는데, 갑자기 부대 행사가 생겨서 우리 일정에 합류하지 못 한다고 하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인근 지역에 있는 영어 가능 민간인들을 급히 모은다고 했다. 우리가 있는 북부 지역의 킬리노치(Killinochchi)는 타밀족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영어를 할 줄 알면서 타밀족 언어를 쓰는 사람이어야 했다. 힘들게 왔는데 첫날부터 진료에 차질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 두 시간 정도 기다렸더니 군인들의 안내를 받으며 통역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방으로 들어왔다.


의료 혜택은 절실하지만 부족한 의료 인프라

급조된 통역원들은 대부분 은퇴한 지역 주민들로 나이가 대략 70대 초반이었다. 인도나 스리랑카는 영국 식민지 상태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아직도 흔히 영어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이 분들은 그나마 학교 선생님으로 일했거나 다소 교육을 잘 받은 분들이라고 한다.

예정 시간보다 2시간 정도 늦어졌더니 진료실 밖에 만들어진 대기 장소는 주민들로 북적였다. 정신없이 진료를 하면서도 이제는 조금 줄었나싶어 밖을 내다보면, 군인들이 쉬지 않고 버스 한가득 주민들을 실어 오다보니 대기자가 줄어들 생각을 않는다. 점심 먹을 때가 돼서야 겨우 엉덩이를 들고 허리를 한번 쭉 펴고 나서는 물병을 찾았다. 물병 뚜껑이 따져 있지 않은 걸로 봐서 지금까지 물 한 모금도 못 마신 상태였다.

         

대기 중인 주민들

스리랑카는 개발도상국으로 아직 의료시설이나 의사, 간호사들이 절대 부족한 상황이다. OECD 국가들의 평균 활동의사 수가 인구 1,000명당 3.2명이고, 한국이 2명(2011년) 수준으로 적은 편인데, 스리랑카는 0.5명(2006년 수치이지만, 아직도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고 함) 정도밖에 안 된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0.1명이었다고 하니 의사 얼굴 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을 것이다. 해외 진료 때마다 그렇듯이 스리랑카에서 진료 활동할 때도 환자들이 끊임없이 오는 것이 이해가 간다.

WHO 자료 인용 (인구 1,000명당 활동 의사 수)

우리가 와 있는 킬리노치에는 종합병원이 하나 있지만, 규모가 작을뿐더러 널리 퍼져있는 밀림이나 드문드문 산재한 마을들에서 찾아오기에는 지역적 접근성이 너무 떨어지는 것도 의료 혜택을 못 받는 큰 이유가 된다. 이런 경우에는 국가에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공공의료시설들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개인 병원들은 수지타산이 안 맞으면 작은 마을에는 안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한 환자 분포

사전에 스리랑카와 같은 열대지역 개발도상국의 보건문제나 질환들에 대해서 나름대로 준비는 했지만, 진료를 하다 보니 전혀 생각하지 못한 상황에 부딪히게 되었다. 예를 들면 피부가 우리보다 훨씬 까매서 익숙하지 않다보니 피부질환을 감별하는데 다소 어려움이 있었고, 눈의 흰자위가 노랗게 보이는 경우가 많아서 황달로 보이기 쉬웠다. 그리고 흥미로운 점은 알레르기 비염이나 천식 환자, 그리고 어루러기 환자들이 상당히 많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특히 천식 환자들이 많다는 것은 진료를 하면서 알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알레르기 비염과 천식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너무 많았다. 요즘 우스갯소리로 “많아도 너~무 많아.” 그러다보니 진료를 시작한 첫날인데도 기관지 확장제나 관련 약품들이 너무 많이 소모되어 약사님들이 급히 연락을 돌리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원래 이 지역이 선진국처럼 점점 심혈관계 질환들이 많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전염병이 많다고 들었다. 그래서 기생충으로 인한 피부병이나 간염 같은 것들을 집중적으로 고민하고 왔는데, 전혀 예상치 않은 알레르기 질환이 많을 줄이야...

숙소 근처에서 반딧불이를 볼 수 있을 정도로 공기가 맑을 텐데 왜 그럴까? 잠시 생각해 보면 이 나라가 밀림이 많고 나무나 풀이 많아서 꽃가루 알레르기 때문 아닐까 한다. 돌아가서 관련 자료를 찾아봐야겠다. 그리고 어루러기는 영어 이름으로 ‘Tinea versicolor’라고 하는데, 가슴이나 겨드랑이 주변에 얼룩얼룩 반점들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 이는 발에 생기는 무좀과 같은 진균들이 원인으로 몸에 땀이 많이 나기 때문인 것 같다.


뜻하지 않은 일들

점심때가 지나서 갑자기 밖이 소란스러워 무슨 일인가 나가 보았다. 이럴 때마다 한 번씩 사고가 나서 응급 수술을 한 적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무슨 일일까 신경이 쓰였다.

“수처 세트(suture set)! 빨리!”
“거즈부터 가져와요! 피를 너무 흘려.”

다친 사람은 마을 주민이 아니라 정00 약사였다. 정약사는 약이 떨어질 때마다 급히 진료실을 돌며 처방을 조절하느라고 뛰어다니다가 처마 끝에 달려있던 쇳덩이에 부딪혀서 이마가 찢어진 것이다. 땅바닥에 피를 쏟고 있는 것을 빨리 침대에 눕히고, 지혈을 시키면서 정형외과 선생이 봉합을 했다. 7바늘을 꿰맸으니 많이 찢어진 셈이다.  

오후 진료를 거의 마치고, 약국을 지나면서 창살 사이를 들여다보니 누워 있어야 할 정약사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열심히 약 봉투에 약을 담고 있었다.  

“괜찮아요? 어지러울 테니까 좀 누워있어야 해요.”
“어휴, 죄송합니다. 다들 바쁜데, 일을 만들어서....” 

마음씨가 착한 건지, 미련한 건지. 약사의 부상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더니, 잠시 후에는 일부 약이 너무 모자라다고 급한 전갈을 해왔다. 생각지도 못한 질환들이 집중적으로 많다보니 기관지 계통 약들이나 알레르기 관련 약들이 일찍 동이 나기 시작해서 의사들은 관련된 질환의 처방 일수를 줄여야 했다. 심지어 약을 담아 줄 약봉지까지 모자랐다. ‘오늘은 그렇다 치고 내일부터는?’ 약이 없으면 고생 끝에 온 우리의 활동은 무의미한 것이었다. 

나는 진료를 마친 후 걱정하고 있는 동료들을 뒤로 하고 약사 두 분, 봉사팀 스텝, 스리랑카 안내인과 함께 약을 구하러 시내로 나갔다. 시내라고는 해도 우리의 군 단위 정도도 안 되는 작은 곳인데 많은 분량의 약을 어디에서 구할 것인가? 거리는 이미 어두워졌는데.  

우리끼리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다가 결국 스리랑카 안내인에게 자문을 구했다. 약이 떨어졌다고 말하자니 창피하기도 하고, 우리에게 실망할까봐 얘기를 안 했던 것인데, 그 이야기를 듣고는 현지 안내인 닐 미니(Nil Mini Cabral)씨는 급히 어디론가 전화를 한다. 옆에서 들어서는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밝아지는 표정을 보니 뭔가 일이 잘 풀리는 것 같았다. 스리랑카 보건복지부에서 약을 구해서 보내주기로 했단다. 늦은 저녁 어떻게 그렇게 빨리 약을 구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우리가 스리랑카로 오게 된 것과 연관이 있었다. 스리랑카 대통령은 자국의 빈부격차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정책들을 시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영부인은 복지와 의료 문제에 관심이 많아 그와 관련한 일들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 중에서 특히 신경을 쓰는 일이 있는데, ‘칼튼 수어 우다나(Calton Suwa Udana, Calton Social Health Service)’라는 조직으로 영부인이 직접 운영하는 국민건강 프로그램 운영 조직이다. 

우리가 스리랑카로 오게 된 것도 이 조직과 우리 봉사단체가 연결되어 급히 팀을 꾸려서 오게 됐는데, 영부인이 각별히 신경을 쓰기 때문에 신변 보장에서부터 지금과 같은 비상 상황까지 쉽게 해결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킬리노치의 어두운 거리에서 환호를 질렀고, 밝은 얼굴로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에는 약을 구하고 오기를 목 빠지게 기다리는 동료들이 있었다. 그날 밤 우리는 약이 준비됐다는 기쁨에 피곤한 줄도 모르고 밤늦게까지 약봉지를 접었다.
 

* 스리랑카 의료봉사 체험기 3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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