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이슈 /정치2012.03.14 14:12

경제 자유화 대신 경제 민주화가 대세가 되다.

2007년, 그러니까 5년 전에는 ‘성장과 경제 자유화’ 라는 구호가 대통령 선거를 지배했었다. 경부 대운하 공약, 줄,푸,세 공약, 747 공약이 또한 그랬다.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 해소 같은 문제들은 성장률을 높이고 시장경제를 확대하면 부수적으로 해결될 것처럼 여겨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기 직전의 한국 정치 상황이었다.

다시 찾아온 선거의 계절. 이미 보편 복지의 파고가 한국사회를 한차례 휩쓸고 이어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의 담론이 급격히 부상하고 있다. 5년 전의 ‘성장과 경제 자유화’ 의제 대신에 지금은 ‘복지와 경제 민주화’ 의제가 선거 공약을 좌우하는 판이한 지각변동이 일어난 셈이다. 이러한 변화의 이유는 무엇일까? 극적으로 등장한 경제 민주화라는 말의 의미를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재벌개혁만이 경제 민주화인가.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는 분배개혁을 말하는가. 아니 경제 민주화를 넘어서 아예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는 어떤 관계인가.

자유 시장은 반드시 민주주의와 충돌한다.

외환위기 직후 국민의 정부가 내건 모토는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였다. 하지만 시장경제라고 도입했던 신자유주의는 고용불안과 가계부채,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라고 하는 결과를 초래했고 이는 참여정부까지 계속되었다. 금융과 교육, 보건과 보육 등 더 많은 삶의 영역이 자유 시장에서 거래 되도록 작동했고,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민주적인 의사결정은 설자리를 잃게 되었다. 자유 시장은 민주주의와 함께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결과 2012년, 우리는 시장의 자유가 아니라 경제의 민주화라는 국민적 요구 앞에 서게 되었다.

우리 헌법 119조 1항은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일종의 ‘자유 시장 존중’으로 해석될 수 있는 조항이다. 곧바로 이어서 2항은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흔히 말하는 ‘경제 민주화’ 조항이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경제 민주화 이전에 자유시장이 먼저 옹호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참 앞의 헌법 제 1조 1항은 잘 알다시피 우리나라가 민주 공화국임을 선언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모든 가치에 우선한다는 뜻이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시장 경제와 경제 주체들의 자유를 옹호한다면 그 역시 민주주의에 가장 부합하는 경제 형태이기에 선택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시장 경제는 선험적인 절대 선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장이 잘 작동하는 영역이 있는가 하면 보건이나 교육처럼 시장 메커니즘으로 해결이 안 되는 생활 영역도 있을 것이다. 금융처럼 시장에서 작동시키되 일정한 규제나 공공의 참여가 필요한 영역도 있다.

모두 민주주의라는 가치 안에서 작동해야 한다. 자유 시장을 해치지 않는 한도에서 경제 민주화를 말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시장의 자유가 있는 것이다. 새로운 체제를 만드는 화두가 경제 민주화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제 1 과제는 민주주의 허용범위를 심각한 수준에서 일탈한 동시에 자유 경쟁시장 조차 파괴하고 있는 재벌의 이익추구 행위를 개혁하는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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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2 / 29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세계 석학들의 기고 전문사이트인 프로젝트 신디케이트(Project Syndicate)에 실린 장 피사니 페리(Jean Pisani-Ferry)의 "누가 그리스를 잃어버렸는가?(Who Lost Greece?)"를 요약 소개한다. 장 피사니 페리는 파리듀퐁대학교의 경제학 교수이며, 국제경제싱크탱크 브뢰겔(Bruegel)의 대표이다.

그리스 의회가 28일 밤 늦게 2차 구제금융을 얻기 위해 약 32억 유로(43억 달러) 규모의 추가 긴축 조치를 가결했다. 이는 유로존과 IMF로 부터 1300억 유로의 긴급자금을 구조받고, 국채 상각을 통해 1070억 유로의 부채 탕감을 받기 위한 조건이었다. 긴축 조치에는 전 공무원의 임금 삭감과 1300유로 이상의 연금 삭감 등이 포함되었다. 이로써 그리스는 2차 구제금융에 한 발 더 다가섰고 돌아오는 국체 만기일까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장 피사니 페리(Jean Pisani-Ferry)는 그리스 사태의 책임은 그리스 자체에도 있지만 유럽연합에도 있다고 비판한다. 그리스가 부패와 부채로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이지만 문제가 터졌을 때 적절한 대책을 취하지 못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킨 유럽연합의 책임도 크다는 것이다. 초기 대책이 너무 늦었고, 일관성 있는 방향이 부족했으며, 당장 예산 조정을 통한 부채 축소에 급급해서 경제 회복과 성장에 대한 대책을 내놓지 못했음을 꼬집었다. 또한 인상적인 것은 정치적 연합체인 EU가 최저임금 삭감 등을 주장하면서 불평등을 조장한 것 역시 문제라고 지적했다는 점이다.

누가 그리스를 잃어버렸는가?
(Who Lost Greece?)

2012년 2월 28일
장 피사니 페리(Jean Pisani-Ferry)
프로젝트 신디케이트(Project Syndicate)

유럽 사태에 대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에 대한 논의는 아직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리스의 국채 만기일인 3월 20일까지 그리스와 채권자 사이에 합의가 이루어질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라 빚을 갚아야 할 날을 미룬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스가 약속한 긴축안을 실행하지 않고 유로존을 탈퇴하거나 혹은 채무불이행 선언을 해버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네덜란드, 핀란드, 독일의 몇몇 정치적 지도자들은 그리스가 왜 유로 존에 남아 있어야 하는지 매우 의문스러워했다. 아테네의 분노는 극에 달하고 있다. 마치 1920년대 독일인들이 전쟁 보상금에 대해 거세게 반발했던 것처럼 말이다.

“누가 중국을 잃어버렸는가?” 1949년 마오쩌둥의 공산당이 승리를 거둔 후 1950년대 미국의 전략가가 던졌던 질문이다. 조만간 유럽 역시 그리스를 두고 스스로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지게 될 것이다.

주범은 물론 그리스 자신이다. 그리스 정치인들의 무기력한 태도, 정부를 망친 이권정치,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 부패지수 순위 세계 80위, 이 뿐 아니라 그리스는 2011년 9월 그 해에 고소득자에게 부과되는 75개의 세금 중 31개만을 집행했다.

하지만 이런 이유들을 들어서 나머지 유럽의 책임을 용서해버리는 것은 너무 안이하다. 유럽 관료들의 첫 번째 잘못은 그리스가 2013년에는 회복될 것이라는 것을 가정한 비현실적인 구제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몇 달을 끌어온 것이다. 그리스가 회복되기 위해서는 몇 년, 아마도 십 년 쯤은 걸릴 것이 명백하다.

유럽의 두 번째 잘못은 대외 지급능력 위기에 대한 일관성 없는 대응이다. 두 가지 전략이 가능했다. 그리스의 국가부채를 초기에 감축시켜서 지급능력을 재빨리 회복시키거나 모든 유로존 국가의 집단적 평판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그리스의 부채에 대한 책임을 나눠지는 것이다. 둘 중 하나의 전략을 택해서 일관성 있게 진행시켰어야 하는데, 독일과 프랑스는 두 가지를 혼합하는데 합의했다. 이것이 상황을 악화시켰다.

세 번째 잘못은 우선 해결해야 할 문제를 잘못 선택한 것이다. 위기의 시작부터 IMF는 두 가지 문제를 진단했다. 바로 국가부채의 취약성과 심각한 경쟁력 상실이다. 불행하게도 정치가들은 전자에 주목했다. 그리고 태평스럽게도 구조적 개혁이 후자를 해결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스 정부는 빈약한 정치적 자본의 대부분을 경쟁력 있는 경제 건설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예산 조정에 투자했다.

현재 구제 프로그램은 선결 문제의 순서를 뒤집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예산 조정을 통한 국가 재정 강화보다 더 앞서 그리스 경제의 경쟁력 회복과 성장을 놓고 있다. 이 결정을 내리기까지 왜 2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려야만 했는지 의문이다.

네 번째, 성장 대책에 대해서는 실질적인 성과가 하나도 없다. 예산 조정 프로그램은 필수적으로 경기침체를 초래한다. 그리스는 원칙적으로 유럽연합의 예산에서 지역개발원조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충분히 이용되지 못했는데, 지역공동자금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유럽의 마지막 실수는 부채를 공정하게 부담해야 한다는 의지가 부족했다는 것이다. 기술관료기구인 IMF가 거시경제의 범주를 넘어서는 제안을 하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EU는 정치적 결합체이며, 사회적 정의 실현을 근본 목표의 하나로 추구하고 있다. 때문에 EU는 최저임금을 깎으라고 요구해서는 안된다. 특히 소득세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상위 10%의 고소득자들이 벌이는 세금 회피를 부차적인 문제를 둔 채로 말이다.

그리스의 긴축을 강요했다는 점을 두고 유럽을 비판할 수는 없다. 이는 막대한 금융 지원을 받기 위한 필수적인 조치이다. 또한 심각한 불균형 상태의 국가는 높은 수준의 제재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유럽이 사태 초기에 보여준 신속하지 못한 대책, 나쁜 대책, 불균형적인 대책, 불공정한 대책은 비난의 대상이다. 누가 그리스를 잃어버렸냐는 질문에 대해 충분히 책임을 져야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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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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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새사연의 정태인 원장이 2011년 1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진행한 ‘정태인의 경제학 과외 2부 : 사회경제, 공공경제, 생태경제’ 강연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착하게 살면 다 해결할 수 있다

앞서 살펴본 세 가지 사회적 딜레마 게임을 해결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모든 사람이 이타적 인간이 되는 것이다. 이제까지 자신의 보수를 고려했던 것과 달리 남의 보수만을 고려하여 게임이론을 전개하면 사회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상대방의 보수를 고려하면서 죄수의 딜레마의 경우를 다시 살펴보자. B가 협력을 선택할 때 A도 협력을 선택하면 상대방인 B는 3을 얻는다. 반면 A가 배반을 선택하면 상대방인 B는 1을 얻는다. 상대방의 보수를 고려한다고 가정했으므로 A는 협력을 선택한다. 이번에 B가 배반을 선택하는 경우이다. A가 협력을 선택하면 상대방인 B는 4를 얻고, A도 배반을 선택하면 상대방인 B는 2를 얻는다. 상대방의 보수를 고려한다고 가정했으므로 A는 협력을 선택한다. 즉, A는 B가 무엇을 택하든지 협력을 택해서 상대방의 보수를 최대화할 것이다. B의 경우도 A와 똑같은 과정을 거쳐서 협력을 택하게 된다. 따라서 A와 B 모두 협력을 택하고 (3,3)이 새로운 내쉬균형이 된다. 이는 두 사람의 보수의 합이 가장 크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점이다.

사슴사냥게임의 경우도 똑같이 적용해보자. B가 협력을 선택할 때 A도 협력을 선택하면 상대방인 B는 4를 얻는다. 반면 A가 배반을 선택하면 상대방인 B는 1을 얻는다. 상대방의 보수를 고려한다고 가정했으므로 A는 협력을 선택한다. 이번에 B가 배반을 선택하는 경우이다. A가 협력을 선택하면 상대방인 B는 3을 얻고, A도 배반을 선택하면 상대방인 B는 2를 얻는다. 상대방의 보수를 고려한다고 가정했으므로 A는 협력을 선택한다. 즉, A는 B가 무엇을 택하든지 협력을 택해서 상대방의 보수를 최대화할 것이다. B의 경우도 A와 똑같은 과정을 거쳐서 협력을 택하게 된다. 따라서 A와 B 모두 협력을 택하고 (4,4)가 새로운 내쉬균형이 된다. 이 역시 두 사람의 보수의 합이 가장 크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가장 바람직하다.

치킨게임은 어떨까? B가 협력을 선택할 때 A도 협력을 선택하면 상대방인 B는 3을 얻는다. 반면 A가 배반을 선택하면 상대방인 B는 2를 얻는다. 상대방의 보수를 고려한다고 가정했으므로 A는 협력을 선택한다. 이번에 B가 배반을 선택하는 경우이다. A가 협력을 선택하면 상대방인 B는 4를 얻고, A도 배반을 선택하면 상대방인 B는 1을 얻는다. 상대방의 보수를 고려한다고 가정했으므로 A는 협력을 선택한다. 즉, A는 B가 무엇을 택하든지 협력을 택해서 상대방의 보수를 최대화할 것이다. B의 경우도 A와 똑같은 과정을 거쳐서 협력을 택하게 된다. 따라서 A와 B 모두 협력을 택하고 (3,3)이 새로운 내쉬균형이 된다. 역시 사회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점이다.

이처럼 모두가 남을 생각한다면 문제는 해결된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종교의 가르침이 바로 이것이다. 종교적 해법은 굉장히 강력해서 모든 사회적 딜레마 게임을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인류 역사에서 종교적 해법이 장기적 성공을 거둔 경우는 없다. 왜일까?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이기적이기만 한 존재는 아니지만 이기적 속성을 갖고 있음은 분명하다. 한 인간 안에 이타적인 모습도 존재하고 이기적인 모습도 존재한다.

인간은 언제 협력하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해법을 찾아야 할까? 대부분의 인간은 상대가 이기적일 때 자신도 이기적으로 행동한다. 손해를 보거나 바보가 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상대가 이타적이라고 확신한다면, 상대가 나에게 잘해 줄 것이라고 확신한다면 자신도 이타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 서로 이타적으로 행동했을 때, 서로 협력했을 때 자신에게 돌아오는 이득이 크다면 그렇게 행동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런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사회적 제도와 규범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인간뿐 아니라 자연 속 동물들도 서로 협력할 때가 있다. 진화론을 주장한 다윈(Charles Robert Darwin)은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ional Seleciton)>에서 적자생존을 주장하지만 자연 곳곳에서 나타나는 동물의 이타적 행위 또한 설명하고자 했다. 그 중 대표적 사례로 꿀벌를 들었다. 꿀벌 사회는 한 마리의 여왕벌과 나머지 수 천 마리의 일벌로 이루어진다. 대다수 일벌은 여왕벌이 낳은 알을 돌보고,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목숨을 바친다. 일벌의 일생은 이타적 행위 그 자체이다.

비슷한 예로 남아프리카 지역에 사는 미어캣이라는 몽구스과에 속하는 포유동물이 있다. 이들은 땅굴에서 집단서식을 하는데 서로 돌아가면서 보초를 선다. 침입자가 나타날 경우 보초는 위험을 알리기 위해 큰 소리로 신호를 보낸다. 이 덕분에 나머지 미어캣은 위험에 대비하고 안전하게 피신할 수 있지만, 큰 소리를 내면서 자신의 위치를 노출시킨 보초는 침입자의 눈에 띨 확률이 높아지게 된다.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는 것이다. 흡혈박쥐들도 이타적 행동을 한다. 이들은 가축의 피를 빨아먹고 살아가는데 흡혈에 성공하지 못하는 날이 많다. 만약 충분한 피를 섭취하지 못해서 굶어죽을 상태에 이른 흡혈박쥐가 있을 경우 다른 흡혈박쥐가 자신이 빨아온 피를 나누어준다. 자신이 먹어야 할 몫을 포기하고 남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다.

동물은 왜 이타적 행동을 할까? 사람은 왜 그럴까? 무임승차를 하면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시킬 수 있는데 왜 그렇게 하지 않을까? 하버드대학교의 생물학 및 수학과 교수인 노박(Martin Nowak)은 2006년 <협동 진화의 다섯 가지 규칙(Five Rules for the Evolution of Cooperation)>이라는 논문을 발표한다. 여섯 페이지에 불과한 이 짧은 논문은 인간을 포함한 동물이 협력하는 다섯 가지 경우를 보여준다.

인간 협력의 조건 1 : 피는 물보다 진하다

첫 번째는 혈연선택(Kin Selection)이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며,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로도 표현된다. 혈연, 핏줄은 더 구체화되어 유전자로 설명된다. "나는 물에 빠진 2명의 동생 또는 8명의 조카를 살릴 의지가 있다"고 말한 생물학자 할데인(J. B. S. Haldane)의 장난스러운 설명 또한 이를 설명한다. 동생은 자신의 유전자의 절반을 공유하고 있고, 조카는 8분의 1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죽더라도 2명의 동생 또는 8명의 조카를 살릴 수 있다면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는데 차이가 없다는 주장이다. 생물의 가장 큰 목표인 종족보전을 위해서는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전달해야 하며, 이를 위해 자신과 혈연관계가 있는 개체들을 돕고자 하는 이타적 행동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꿀벌도 미어캣도, 흡혈박쥐의 이타적 행동도 결국 자신과 같은 유전자를 가진 종족을 보호하기 위한 '이기적인' 이타적 행동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를 영국의 생물학자 해밀턴(Hamilton)이 1960년대 확장하여 체계화 것이 해밀턴 법칙(Hamilton's Rule)이다. 다른 개체와 자신과의 연관성(relatedness)을 r이라 하고, 다른 개체를 돕는데 지불하는 비용(cost)을 c, 이를 통해 얻게 되는 이익(benefit)을 b라 했을 때 r > c/b 인 경우에 이타적 행동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c/b는 이익 대비 비용의 비율을 나타낸 것으로 이 숫자가 클수록 협력의 비용이 크며, 이 숫자가 작아질수록 협력의 이익이 크다. 이 비율보다 연관성이 클 때, 다시 말해 혈연관계가 긴밀할수록 이타적 행동이 잘 일어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설명은 적용 범위가 너무나 제한적이다. 내 가족, 친척에게만 적용될 수 있다. 내 친구들은 아무리 친하고, 서로를 배려한다고 해도 혈연관계나 유전자의 공유도로 따지자면 그 정도가 매우 미약하다. 혈연선택은 이를 설명하기 힘들다. 남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베풀어지는 선행의 경우에도 설명할 수 없다. 앞서 말한 동물들의 경우도 그렇다. 케임브리지대학교의 팀 클러튼 브록(Tim Clutton Brock)이 미어캣 집단을 관찰한 결과, 그들 속에는 혈연관계를 맺지 않은 이민자들도 섞여 있었지만 보초를 서는 횟수에 있어서 차별이 없었다. 이들의 이타적 행동이 반드시 유전자의 공유도 때문만은 아님을 보여준다.

인간 협력의 조건 2 :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두 번째는 직접 상호성(Direct Reciprocity)이다. A가 B를 도와주면 그 보답으로 B가 A를 도와준다는 것이다. 특히 둘 사이의 관계나 거래가 장기적이거나 반복될 때 직접 상호성이 많이 나타난다. 단골이 형성되는 경우가 이렇다. 가게가 좋은 물건을 팔면, 손님들은 이에 호응해서 그 가게만을 찾아오는 것이다. 또한 이렇게 반복적인 관계가 형성되면 가게 주인 입장에서는 오늘 하루 조금 더 돈을 벌기 위해서 손님에게 바가지를 씌우기보다 앞으로의 장기 거래를 생각해서 더 친절히 대하게 된다.

즉, 직접상호성에서는 반복의 횟수가 중요한데 이를 식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w는 게임이 반복될 확률이고, c는 협력할 때 지불하는 비용이고, b는 협력할 때 얻게 되는 이익이라 한다면 w > c/b 인 경우에 이타적 행동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익 대비 비용의 비율보다 게임이 반복될 확률이 클 경우, 즉 반복되는 횟수가 클수록 이타적 행동이 잘 일어난다는 뜻이다.

우리가 앞서 살펴본 죄수의 딜레마도 이를 반복할 경우 다른 해법이 나올 수 있다. 원래 죄수의 딜레마에서는 상대방이 어떻게 하든지 상관없이 나는 배반하는 것이 (2,2)로 이득이었다. 하지만 반복해서 이런 거래를 할 경우 1회의 보수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게임 속에서 발생하는 보수의 합을 생각하게 된다. 따라서 (3,3)을 선택할 때 장기적으로 가장 많은 이득을 얻게 된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실제로 1980년대에 미국의 정치학자 악셀로드(Robert Axelrod)는 죄수의 게임을 반복할 경우 최선의 전략이 무엇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전 세계의 경제학자, 게임이론가, 컴퓨터과학자 등을 대상으로 토너먼트를 벌였다. 1등은 미국의 수학심리학자 아나톨 래퍼포트(Anatol Rapoport)가 제시한 TFT(Tit for Tat) 전략이었다. 이 전략은 한마디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 설명할 수 있다.

우선 처음에는 상대방에게 잘해준다. 그 후에는 상대방이 잘해주면 나도 잘해주고, 상대방이 잘못하면 나도 잘못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직전에 한 행동을 따라하는 것이다. 이 간단한 전략이 가장 우수한 성적을 거둔다. 이 경우 일단 서로가 협력하기 시작하면 계속해서 협력할 수 있다. 즉, 계속해서 (3,3)의 보수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상대방이 순간의 실수로 배반할 경우, 나도 배반하게 되어 계속해서 서로 배반하게 된다. 즉, 계속해서 (2,2)의 보수밖에 얻지 못한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추가 전략이 몇 가지 필요하다. 서로 배반하는 선택이 어느 정도 계속될 경우 먼저 협력하여 변화의 기회를 꾀하는 것이다. 이를 GTFT(Generous TFT), 즉 관대한 TFT라 한다. 혹은 상대방이 두 번 연속해서 배반할 경우에만 똑같이 배반하는 전략이다. 상대방이 단 한 번 배반하고 다시 협력으로 돌아설 때에는 응징하지 않지만 두 번 이상 배반할 경우에는 응징하는 것이다. 이는 TF2T(Tif for 2 Tat)라 부른다.

쉽게 말하면 이런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잘 지내려면 처음에는 협력해라, 그리고는 상대방이 하는 대로 하라, 그런데 만약 배반이 계속되면 네가 먼저 협력하라. 이렇게 하면 자기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이기적 인간과 대립하여 상정했던 상호적 인간의 특성에 딱 맞는 이야기이다. 2500년 전 성경과 논어에서 이미 알려주었던 황금률과도 같다.

하지만 경제학자들 중에는 직접상호성은 이타적 행위가 아니라 이기적 행위라고 규졍하기도 한다. 결국 장기적으로 자신이 얻는 보수가 높은 쪽을 선택하는 것이므로 이기적 동기에 의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또한 혈연선택과 마찬가지로 직접상호성도 제한적이다. 수많은 인류 중 내가 두 번 이상 만나는 사람, 나와 두 번 이상 거래를 하는 사람은 매우 소수이기 때문이다.

* 정리 :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7)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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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석학들의 기고 전문사이트인 프로젝트 신디케이트(Project Syndicate)에 실린 요하네스 저팅(Johnnes Jutting)의 "세계 중산층의 진출(The Middle Class Goes Global)"을 요약 소개한다. 요하네스 저팅은 OECD 개발국(Development center)에서 빈곤퇴치를 담당하고 있다.

브루킹스 연구소는 중산층을 1일 1인당 지출이 10~100달러인 가구로 정의했다. 이에 의하면 약 20억 명이 세계 중산층에 해당한다. 이들은 점점 증가하여 2030년에는 49억 명에 달할 것이며, 이들 중 최대 39억 명이 정도가 신흥국에 거주할 것이라고 예상된다.

저팅은 최근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시민들의 저항은 중산층의 증가로 인한 당연한 변화라고 본다. 중산층은 불평등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싶어하고, 더 책임감있는 정치를 원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늘어날수록 이들의 요구도 커질 것이며, 중동에서 일어난 민주화 혁명은 그런 과정의 시작일 뿐이라고 보았다.

또한 이런 변화는 신흥국에서 많이 일어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선진국에 비해 신흥국이 빠른 속도로 경제성장을 경험하면서 중산층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신흥국 경제발전 모델은 필연적으로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정치적 무관심을 가져오며, 일자리의 부족을 유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흥국 정부에서는 사회보장제도를 확대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해야 하며. 사람들이 서로를 신뢰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사회적 계약을 만들어 나가고, 시민들의 정치 참여와 감시를 수용해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다.

세계 중산층의 진출
(The Middle Class Goes Global)

2012년 2월 21일
요하네스 저팅(Johnnes Jutting)
프로젝트 신디케이트(Project Syndicate)

20세기 중산층의 아메리칸 드림은 전 세계를 고무시켰다. 21세기의 세계는 경제성장의 형태가 새로운 모습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아시아와 남반구에 거주하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극심한 빈곤에서 탈출하여 잠재적으로 힘있는 중산층 소비자로 변화하고 있다. 새로운 세계의 중산층의 꿈이 실현될지 혹은 악몽이 될지는 몇 가지 요인에 달려있다.

약 80개 개발도상국의 1인당 GDP는 OECD 국가에 비해 2배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부의 증감과 상관없이 중산층 시민의 불만은 커지고, 저항은 거세지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무역산업장관인 모이세스 나임(Moises Naim)은 “중산층의 새로운 세계 전쟁” 가능성을 경고하기도 했다.

임금 삭감과 실업에 대한 분노는 당연한 반응이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경제가 성장하면서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있는 태국, 칠레와 같은 나라에서의 저항은 이해하기 힘들다, 무슨 일인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아시아와 남쪽 나라들에서의 높은 성장은 수출과 천연자원 개발 덕분이었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축복은 저주로 변했다. “일부 사람들이라도 먼저 부자가 되게 하라”고 말했던 중국의 전 공산당 지도자인 덩샤오핑은 놀라운 경제 성장과 빈곤 퇴치를 가져왔다. 하지만 스스로 주장했던 “조화로운 사회”를 어렵게 만들었다.

불평등의 심화, 시민 참여의 부족, 정치적 무관심, 좋은 일자리의 부족, 특히 젊은이들의 일자리 부족은 최근 신흥국의 경제발전 모델이 갖고 있는 아킬레스 건이다. 튀니지와 태국에서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양국 국민들은 2006년에서 2010년 사이에 소득수준과 사회적 지위는 향상되었지만, 삶의 만족도는 떨어졌다고 대답했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선임연구원 호미 카라스(Homi Kharas)는 오늘날 세계의 중산층을 구매력평가 기준으로 1일 1인당 지출이 10~100달러인 가구로 정의한다. 대략 20억 명이 여기에 해당하며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에 고르게 퍼져있다. OECD 보고서에 의하면 2030년까지 세계 중산층은 총 49억 명이 될 것이다. 이들 중 32억에서 39억 명 정도가 신흥국 국민이며 세계 인구의 65~80%를 차지할 것이다.

중산층은 더 많은 그리고 더 좋은 서비스를 원한다. 이들은 성장의 혜택을 공평하게 나누기를 원한다. 이들은 더 책임감 있는 정치를 원한다. 지금 불고 있는 저항의 물결은 이러한 요구의 시작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첫째, 사회보장제도가 더 확대되어야 한다. 신흥 중산층의 대부분은 한 번의 소득 충격만으로도 다시 빈곤 상태에 빠질 수 있다. 이러한 위험에 대비하여 사회보장제도는 점차적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인도의 고용보장제도, 가나의 국민건강보험, 레소토의 연금제도들은 신흥국 중산층에게 필요한 유익한 사회보장제도이다.

둘째, 더 많은 그리고 더 좋은 일자리는 반드시 필요하다. 세계의 노동력은 30억 명에 이르는데, 이 중 3분의 2만이 공식적 고용 상태이다. 인도는 꾸준한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사회보장을 받지 못하는 일자리가 늘어나고 있다. 튀니지에서는 교육수준이 높을수록 실업 가능성이 늘어나고 있다. 고학력자 중 거의 30%가 실업 상태이며, 이는 저숙련 노동자의 실업률과 겨우 8%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신흥국에서의 교육은 필요한 기술을 제공하는 쪽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셋째, 더 좋은 공공서비스와 정부의 책임을 보장하는 사회계약이 필요하다. 이는 재정정책을 개선하고 국내의 자원을 잘 활용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다. 국민들이 더 많은 자치권을 갖는 국가에서는 양질의 공공서비스가 제공되고, 사회적 신뢰가 커지며, 시민들은 더 많은 세금을 낼 용의가 있다. 조사에 의하면 서로를 신뢰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3분의 1 이상의 국민이 탈세의 유혹을 접한다. 반면 사람들이 서로 신뢰하는 사회에서는 이 수치가 10분 1로 줄어들었다.

마지막으로, 아랍의 봄이 증명하듯이 시민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은 마련되지 않은 채 복종만을 강요하는 국가는 궁극적으로 지속불가능하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같은 사회적 미디어는 시민들의 의견 교환을 용이하게 해주었다. 케냐의 우샤히디(Ushahidi)는 인터넷을 이용해서 사람들이 인신매매와 같은 인권 유린에 관한 정보를 신속하게 공유하도록 해주었다. 기술의 발전이 시민들이 정부를 감시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를 제공해주었다.

세계 중산층의 증가는 세계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지형을 바꾸고 있다. 사람들이 보호받고 있다고 느끼고, 시민들이 서로를 믿을 수 있으며, 노력한 만큼 보상받을 수 있는 단합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사람들의 꿈을 실현시키는 열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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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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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새사연의 정태인 원장이 2011년 1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진행한 ‘정태인의 경제학 과외 2부 : 사회경제, 공공경제, 생태경제’ 강연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사회적 딜레마 게임 2 : 사슴사냥 게임

두 번째 사회적 딜레마 게임은 사슴사냥게임이다. 이 게임은 확신게임(Assurance Game), 신뢰게임(Trust Dilemma)이라고도 불린다. 이는 루소(Rousseau)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A Discourse on Inequality)>에서 나온 우화에서 비롯되었다.

상황은 이렇다. 사슴을 사냥하기 위해서는 두 명의 사냥꾼이 힘을 합쳐 자신이 맡은 길목을 지켜야 한다. 토끼를 사냥하기 위해서는 한 명의 사냥꾼만으로도 충분하다. 토끼를 사냥했을 때 얻는 이익보다 사슴을 사냥할 때 얻는 이익이 더 크다. 사냥꾼 A와 B가 함께 사슴을 사냥하기로 약속하고 각자 맡은 길목을 지키고 있었는데, 그 옆으로 토끼 한 마리가 지나간다. 이 때 토끼를 잡으러 쫓아가야 할까? 아니면 사슴을 잡기 위해 기다려야 할까?

여기서 사냥꾼 A와 B의 전략은 '사슴을 잡는다'와 '토끼를 잡는다' 두 가지가 된다. 사슴을 잡기로 했다면 서로 협력(cooperation)하는 쪽을 선택한 것이므로 C로 표시하고, 토끼를 잡기로 했다면 상대방을 배반(defect)하는 쪽을 선택한 것이므로 D로 표시한다. 보수는 A와 B가 서로 협력하여 사슴을 잡았을 경우는 (4,4), A와 B가 서로 배반하여 토끼를 잡았을 경우는 (2,2), A는 사슴을 기다렸으나 B가 토끼를 쫓아가버린 경우는 (1,3), A가 토끼를 쫓아가버리고 B는 사슴을 기다린 경우는 (3,1)이 된다.

이제 A와 B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먼저 B가 협력할 경우 A의 선택을 생각해보자. 이 경우 A도 협력하면 4를 얻는다. 반면 A가 배반하면 3을 얻는다. 따라서 B가 협력할 경우 A도 협력한다. 다음으로 B가 배반할 경우 A의 선택을 생각해보자. 이 경우 A는 협력하면 1을 얻는다. 반면 A도 배반하면 2를 얻는다. 따라서 B가 배반할 경우 A도 배반한다. 즉, 상대방이 협력하면 나도 협력하고 상대방이 배반하면 나도 배반하는 것이 이득이다. 상대방이 사슴을 잡기 위해 길목을 지킨다면 나도 그래야 하고, 상대방이 토끼를 쫓아가버리면 나도 그래야 한다.

(4,4)와 (2,2) 둘 다 내쉬균형이다. 이 경우 상대방이 어떤 선택을 하던지 최선의 이익을 가져다주는 고정된 전략이 없으므로 우월전략균형은 아니다. 이와 같이 상대방과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 균형인 경우의 게임을 조정게임(Coordinatioin Game)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둘 중 어떤 균형으로 귀결될지는 알 수 없다. 물론 (4,4)가 (2,2)보다 훨씬 이득이지만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다. 사슴을 기다릴 경우 얻을 이득은 4 또는 1이다. 상대방도 사슴을 기다린다면 4를 얻지만 만약 상대방이 토끼를 쫓아가버리면 1밖에 못 얻는다. 반면 토끼를 쫓아갈 경우 얻을 이득 3 또는 2이다. 운이 나빠도 2는 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보면 토끼를 쫓아가는 것이 더 안전한 선택이 될 수 있다.

사슴사냥게임이 갖는 보수 구조의 특징은 가로축 행위자를 기준으로 하여 보수의 크기 순서가 U의 형태가 된다는 것이다. '서로 협력할 때(C,C)의 보수 > 나는 배반하고 상대방은 협력할 때의 보수(D,C)의 보수 ≥ 서로 배반할 때(D,D)의 보수 > 나는 협력하고 상대방은 배반할 때의 보수(C,D)의 보수' 의 순서와 같으면 사슴사냥게임이다. 앞의 표에서도 A의 이익을 기준으로 했을 때 보수의 크기를 따라가보면 '4 > 3 > 2 >1'로 U자를 그린다.

파업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사슴사냥게임을 하나 더 살펴보자. 집단행동 게임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된 것이다. 사장 한 명과 직원 두 명이 있는 직장이 있다. 사장은 권위주의적이어서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직원에게는 불이익을 준다. 어느 날 두 명의 직원은 휴가를 제 때에 보장받기 위해서 파업에 돌입하기로 했다. 파업이 성공하면 사장은 휴가를 보장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두 명의 직원 중 한 명이 파업에서 빠지면 휴가 보장의 요구는 묵살되고, 이를 주장한 직원은 불이익을 받는다. 물론 두 직원 모두 파업에서 빠지면 휴가는 보장되지 않는다.

두 직원을 A와 B라고 하자. 이들이 택할 수 있는 전략은 '파업에 참여한다'와 '파업에 불참한다' 두 가지가 된다. 파업에 참여한다면 서로 협력하는 것이고, 파업에 불참한다면 서로  배반하는 것이다. 보수는 A와 B가 서로 협력하여 파업에 성공하고 휴가를 보장받았을 경우는 (1,1), A와 B가 서로 배반하여 파업에 불참하고 휴가를 보장받지 못했을 경우는 (0,0), A는 파업에 참여했으나 B는 불참하여 A가 불이익을 당한 경우는 (-1,0), A는 파업에 불참했으나 B는 참여하여 B가 불이익을 당한 경우는 (0,-1)이 된다.

B가 파업에 참여할 경우 A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때 A도 파업에 참여하면 1을 얻지만 불참하면 0을 얻는다. 따라서 A는 파업에 참여하는 게 이득이다. B가 파업에 불참할 경우 A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때 A는 파업에 참여하면 -1을 얻지만, 불참하면 0을 얻는다. 따라서 A는 파업에 불참하는 게 이득이다. (1,1)과 (0,0) 둘 다 내쉬균형이 된다. 즉, 상대방이 파업에 참여하면 나도 참여해서 휴가를 따내는 것이 이득이고 상대방이 파업에 불참하면 나도 그냥 조용히 있는 게 이득이다.

탐욕이 사라진 게임

죄수의 딜레마에서는 상대방을 협력하든 배반하든 상관없이 무조건 배반하는 게 이득이었다. 그런데 상대방이 협력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배반하는 것과 상대방이 배반할 때 어쩔 수 없이 나도 배반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 전자가 탐욕(greed)이라면, 후자는 공포(fear)다. 사슴사냥게임에서는 적어도 탐욕으로 인한 배반은 사라진다. 상대방이 협력하면 나도 협력하는 것이 이득이다. 죄수의 딜레마보다 사슴사냥게임이 더 인간적일지 모른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남을 배신하는 경우는 남이 나를 배신할까 두려워서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문제를 죄수의 딜레마에서 사슴사냥게임으로 바꿀 수만 있다면, 협력할 때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바꿀 수만 있다면 이는 매우 큰 변화이다. 적어도 탐욕에 의해서 나만 잘 살겠다는 선택과 그로 인해 사회 전체적으로 손해를 보는 결과는 사라지기 때문이다.

사교육의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앞서 죄수의 딜레마를 적용했을 때는 남이 사교육을 시키든 안 시키든 일단 우리 아이는 사교육을 시키는 것이 답이다. 하지만 요즘 학부모들을 만나보면 남들이 사교육 안 시킨다면 나도 안 시키고 싶다고 말하는 이들이 꽤 있다. 사교육 비용이 늘어나고, 아이들은 고생하고 그런데 성적은 안 오르는 괴로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진 부모들이 많아진 것이다. 전국의 학부모들이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사교육은 이제 사슴사냥게임으로 변한다. 남이 사교육을 시키면 어쩔 수 없이 나도 시키지만, 즉 남이 배반하면 나도 배반하지만 남이 사교육을 안 시키면 나도 안 시키겠다, 즉 남이 협력하면 나도 협력하겠다는 것이다. 죄수의 딜레마에서는 (2,2)라는 해밖에 없었다면, 이제는 (4,4)와 (2,2)이라는 두 가지 대안이 생겼다.

물론 이 두 가지 대안 중 서로 협력하는 (4,4)를 택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어야 한다. 나는 사교육을 안 시키고 싶은데 남들도 안 시킨다는 보장이 없다면, 어쩔 수 없이 사교육을 시키는 (2,2)의 해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럼 어떻게 모두가 사교육을 안 시킬 것이라고, 모두가 협력할 것이라고 보장할 수 있을까? 아주 간단한 방법을 들자면 사교육을 금지시키면 된다. 적절한 제도와 규범을 도입한다면, 죄수의 딜레마는 사슴사냥게임으로 바뀔 수 있고 사람들은 서로 협력하는 해를 택할 수 있다.

사회적 딜레마 게임 3 : 치킨게임

세 번째는 치킨게임이다. 치킨은 겁쟁이를 뜻하는데, 영화배우 제임스 딘(James Dean)이 출연한 <이유없는 반항(Rebel without a Cause)>에 나오는 한 장면을 생각하면 된다. 그 영화에서 두 건달이 여주인공을 놓고 게임을 한다. 절벽 위에서 자동차를 전속력으로 몰고 가다가 둘 중 먼저 차를 세운 사람이 지는 것이다. 누가 겁쟁이인지 보자는 무식한 게임이다.

또는 서로를 향해 차를 몰다가 누가 먼저 핸들을 돌리는가, 기찻길 위에 누워 있다가 누가 먼저 도망가는가를 겨루는 것들도 모두 치킨게임이다. 치킨게임은 매-비둘기 게임(Hawk-Dove Game)으로도 불린다. 매는 돌진하는 미친놈이고, 비둘기는 도망가는 겁쟁이다. 매와 비둘기가 만나면 언제나 매가 이긴다. 하지만 매와 매가 만나면 서로 멸망하는 최악의 상황이 초래된다.

여기 치킨게임에 참가한 무식한 사람 A와 B가 있다고 하자. 이들이 선택한 게임은 서로를 향해 차를 몰아 달려오는 것이다. 전략은 '핸들을 돌린다'와 '핸들을 돌리지 않는다'가 있다. 핸들을 돌리는 것이 협력(C)이고, 핸들을 돌리지 않는 것이 배반(D)이다. 보수는 A와 B 모두 핸들을 돌리지 않고 달리는 경우, 결국 둘 다 죽는 경우가 (1,1)이다. A와 B 모두 핸들을 돌리는 경우는 둘 다 목숨은 건졌지만 겁쟁이가 되었으므로 (3,3)이다. A가 핸들을 돌리고, B는 핸들을 돌리지 않는 경우는 (2,4), B가 핸들을 돌리고 A는 핸들을 돌리지 않는 경우는 (4,2)이다. 핸들을 돌린 사람은 겁쟁이가 되었으니 2의 보수를 얻고, 핸들을 돌리지 않는 사람은 게임에서 이겨 용감한 남자로 인정받았으니 4의 보수를 얻는 것이다.

앞에서와 같은 방식으로 균형을 찾아보자. B가 협력하면 A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경우 A가 협력하면 3을 얻고, 배반하면 4를 얻는다. 따라서 A는 배반하고 핸들을 돌리지 않는다. B가 배반하면 A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경우 A가 협력하면 2를 얻고, 배반하면 1을 얻는다. 따라서 A는 협력하고 핸들을 돌린다. 남이 협력하면 나는 배반하고, 남이 배반하면 나는 협력하는 것이 이득이다. 즉, B가 핸들을 돌릴 것 같으면 A는 핸들을 돌리지 않고 직진해서 용감한 자가 되는 것이 낫다. 하지만 B가 너무 무식한 놈이어서 절대 핸들을 돌릴 것 같지 않다면 A는 핸들을 돌려서 목숨이라도 건지는 것이 낫다.

이처럼 상대방과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것이 균형이 되는 게임을 반조정게임(Anti-Coordination Game)이라고 한다. 앞서 본 사슴사냥게임과 정반대이다. 사슴사냥게임에 해당하는 경우는 남이 어떤 것을 선택한다고 해서 내 몫이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남과 내가 같은 것을 선택할수록 나눠 갖는 몫이 커진다. 혼자서 토끼를 잡는 것보다 둘이서 사슴을 잡았을 때의 이익이 더 큰 것처럼 말이다. 즉, 재화의 비경합성이 존재하는 경우에 해당된다. 반면 치킨게임은 남이 어떤 것을 선택하면 내 몫은 줄어든다. 서로 같은 것을 선택해서 공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즉, 재화의 경합성이 존재하는 경우에 해당된다.

내쉬균형은 (4,2)와 (2,4)에서 이루어진다. 이 경우 상대방이 어떤 선택을 하던지 최선의 이익을 가져다주는 고정된 전략이 없으므로 우월전략균형은 아니다. 둘 중 어떤 균형으로 귀결될지는 둘 중 어떤 놈이 더 앞뒤 가리지 않고 돌진하는 무식한 인간인지에 따라 결정된다. 그래서 치킨게임에서는 미친놈이 이긴다고 말한다. 치킨게임에서 이기려면 자신이 미친놈이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서로를 향해 차를 모는 경우라면 나는 핸들을 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주어야 한다. 핸들을 망가뜨려 버리거나 자신의 손을 묶어서, 나는 절대 핸들을 돌리지 않을 것이라는 엄포를 놓아야 한다. 배수진을 치는 것이다.

치킨게임의 보수 구조의 특징은 가로축 행위자를 기준으로 하여 보수의 크기 순서가 ∩의 형태가 된다는 것이다. '나는 배반하고 상대방은 협력할 때의 보수(D,C)의 보수 > 서로 협력할 때(C,C)의 보수 > 나는 협력하고 상대방은 배반할 때의 보수(C,D)의 보수 > 서로 배반할 때(D,D)의 보수' 의 순서와 같으면 치킨게임이다. 앞의 표에서도 A의 이익을 기준으로 했을 때 보수의 크기를 따라가보면 '4 > 3 > 2 >1'로 ∩의 모양이다.

미국이 러시아와 핵무기 경쟁을 할 당시 미국의 닉슨(Ricard Milhous Nixon) 대통령은 "내 전략은 미친놈으로 보이는 것이다" 라고 말했다. 핵무기가 가져올 엄청난 위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 경쟁적으로 핵무기를 늘리는 것은 치킨게임과 같다. 그리고 닉슨은 치킨게임에서 이기는 방법을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상대방이 나를 미친놈으로 인식하면, 다시 말해 나를 언제라도 핵무기를 터뜨릴 수 있는 사람으로 인식하면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않을 것이다.

남북관계, 바보와 미친놈의 게임

같은 맥락에서 우리의 남북관계도 치킨게임이다. 여기서 미친놈은 북한이다. 남한 정부도 별로 다를 바는 없지만, 그래도 남한보다는 북한이 앞뒤 가리지 않고 돌진할 수 있다. 실제 남북 간에 전쟁이 나면 남한이 이길 것이다. GDP의 차이가 20배 이상 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한은 가진 게 많은 만큼 잃을 것도 많아서 쉽게 미친놈이 될 수 없다. 남한 정부는 미친놈보다는 바보에 가깝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은 남북 간의 치킨게임을 사슴사냥게임으로 바꾸려는 시도였다. 우리는 협력할 것이고, 이 때 너희도 협력하는 것이 더 많은 이득을 얻는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 것이다. 상대방이 협력할 때 나도 협력하는 것이 이득을 주는 게임은 사슴사냥게임이다. 김대중 정부는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등의 이득을 제시하여 협력할 때 북한이 얻는 이득이 더 커지도록 만들었다. 혹은 적어도 협력할 때 이득이 많아진다고 북한이 믿도록 만들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의 잘못된 상호주의 전략은 이를 다시 치킨게임으로 되돌려 놓았다. 상호주의의 핵심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남이 잘하면 나도 잘하고, 남이 잘못하면 나도 잘못한다는 것이다. 바로 협력과 응징이다. 문제는 협력보다는 응징에 방점이 찍혀서 북한이 잘못하면 나도 잘못한다는 전략만 실행되었다는 점이다. 상대방이 잘못하니 나도 응징을 하겠다. 그러면 당연히 상대방도 다시 나를 응징한다. 응징의 악순환이 반복된다. 따라서 북한 입장에서는 협력할 때보다 배반할 때 이득이 더 크다고 인식하게 된다. 치킨게임이 되는 것이다. 미친놈을 상대하면서 게임을 이렇게 바꿔놓은 사람이 바보다.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은 다시 사슴사냥게임으로 바꾸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세 가지의 사회적 딜레마 게임에서 가장 나은 상황이 사슴사냥게임이다. 협력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딜레마는 개인이 전체를 생각하지 않고 이기적으로 행동해서 발생하는 문제이다. 따라서 협력하는 경우가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모두가 인식하다면, 그리고 그럴 수 있는 제도를 만든다면 해결될 수 있다.

* 정리 :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6)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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