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사연의 [잇:북]2012.07.31 11:22

2012 / 07 / 30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테마북] 재벌개혁 경제민주화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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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장. 경제 자유화인가 경제 민주화인가.

2장. 재벌개혁 없는 경제 민주화는 가능한가.

3장. 경제 민주화와 시장의 역할, 국가의 역할

4장. 경제 민주화인가 보편복지인가.

 

[글머리에]

불평등의 세계화, 경제 민주화를 부활시키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 시민운동의 화두는 ‘불평등(inequality)’해소이다. ‘1%에 의한, 1%를 위한, 1%의’ 사회를 개혁하여 99%가 더 나은 삶을 보장받는 미래를 만드는 것이다. 1990~2000년대 신자유주의 경제 성장기에 감춰졌던 소득 불평등 구조가 경제위기가 터지면서 수면위로 부상했다. 위기에도 불구하고 상위 1%는 타격을 거의 받지 않는데 비해 서민은 심각한 빈곤으로 떨어져 생존권을 위협받고 중산층은 쪼그라드는(squeezed middle)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도 다르지 않다. 2010년 기준 한국의 상위 1%가 차지하고 있는 소득 비중은 11.2~11.5%인데 이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의 6.97%에 비해 거의 두 배가 늘어난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사회의 경제적 불평등과 상위 1%로의 부의 쏠림현상이 심각했음을 알 수 있다.

위기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상위 1%인 금융회사들이 손실을 사회화시키면서 오히려 불평등을 심화시키자, 2011년 카이로에서 스페인, 이스라엘, 영국, 인도, 그리고 월가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서 1%의 탐욕과 불평등에 저항하는 시민사회의 운동이 확산되어갔다. 불평등의 세계화가 저항의 세계화를 낳은 것이다.

중국효과 덕분에 위기의 충격에서 다소 벗어나 있었던 동아시아의 불평등 심화 역시 예외는 아니었고 한국경제도 마찬가지였다. 2010년에는 6%가 넘는 성장률을 기록했고 2011년7월까지 주가가 2200포인트에 도달한 한국경제지만, 그것은 삼성과 현대차 등 유력 재벌의 ‘나 홀로 성장’이거나, 세계적 과잉 유동성이 신흥국에 흘러들어온 ‘해외자본 유출입 효과’로 만들어진 것일 뿐, 국민들의 생활향상과 동떨어졌다.

우리나라에서 고용불안과 경제적 불평등, 불공정의 뿌리이자 부를 독점하는 1%가 있다면 당연히 그 맨 앞자리에 재벌 대기업 집단이 있어야 한다. ‘부유한 월가와 가난한 미국 국민’이 있다면 ‘부자 삼성과 가난한 한국 국민’이 우리 앞에 있는 냉엄한 현실인 것이다. 시위에 참여한 미국 시민들이 ‘월가에게 금융규제를, 증세를, 사법처리를’ 구호로 내걸고 있다. 한국에서는 재벌 대기업 집단에게 규제를, 증세를 해야 하고 불법적인 증여 상속 등에 대해 법의 엄정한 집행을 해야 한다. 재벌개혁 경제 민주화는 이러한 역사적 흐름을 배경으로 하여 외환위기 이후 15만에 역사적으로 부활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과거처럼 자본시장 범주 내에서의 일부 소액 투자자 운동이나 전문가 운동이 아니라 ‘시민적 민생운동’으로 차원을 달리하면서 상인들과 소비자, 노동자들과 중소기업의 생활현장에서 부활하고 있다.

 

경제 권력이 집중되면 경제 독재가 나타난다.

월가 시위대들의 분노의 표적이 된 월가 초대형은행에 견줄만한 대한민국의 1%는 누구일까. 바로 삼성, 현대, SK, LG로 대표되는 재벌 대기업 집단이라고 주장할 근거가 있는가? 삼성과 현대 그룹의 공식적인 자산 총액은 한 해 국가 예산규모를 상회하는 330조원이 넘는다. SK와 LG까지를 포함하는 4대그룹의 작년 매출액 603조 원은 우리나라 국내총생산 규모의 절반을 웃돈다. 이들은 금융위기 이후에도 그 규모를 계속 키워서 2007년 대비 계열사 수자가 최소 30%이상 늘어났다. 2012년 삼성그룹이 81개, 현대 그룹이 56개, 그리고 SK그룹이 94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너무 커져서 도저히 해체나 파산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지경이다. 더욱이 이들은 과거처럼 정권의 눈치나 보는 위약한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정권에게 훈수를 두고 여의도 국회에 촘촘하게 로비를 하며 자사 싱크탱크를 동원하여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낼 능력까지 보유하게 되었다. 미국의 월가가 그런 것처럼 진정한 실세로서 권력을 쥐게 된 것이다.

힘이 집중되면 그 힘은 남용될 수 있다. 정치권력이 집중되면 독재가 나타나고 시장 점유율이 집중되면 독점이 나타난다. 나아가 시장에서의 독점 권력을 넘어서 ‘선출되지 않은 사회권력’으로 진화하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더 걱정스러운 것은 커져가는 재벌권력을 제어할 최소한의 법적 제도적 수단들이 모두 해제되고 마땅한 견제 세력도 없는 실정이다. 김종인 전 의원은 "정치민주화의 골자가 정치독재를 막는 것이었다면, 경제민주화의 골자는 경제독재를 막는 것"이라며 경제 민주화가 반드시 재벌개혁을 수반해야 함을 지적하고 있다. 정당한 주장이다.

 

헌법에 따라 국가는 시장의 경제 권력을 규제해야한다.

외환위기 이후 15년 동안 규제를 완화하고 시장의 자율에 맡긴 결과는 양극화의 심화였고 재벌권력의 비대화였다. 양극화는 더 이상 시장의 자동조절 메커니즘으로 완화되지 않으며 재벌권력도 시장에서 견제되지 않는다. 헌법의 민주주의 정신에 따라 국가가 나서야 한다. 일부에서는 헌법 119조 2항의 경제 민주화조항 이전에 119조 1항 경제 자유화 조항이 있다면서 국가의 시장개입을 지금처럼 막으려고 한다.

그러나 시장은 신성불가침의 성역 같은 것이 아니다. 우리의 헌법 제 1조 1항은 잘 알다시피 우리나라가 민주 공화국임을 선언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모든 가치에 우선한다는 뜻이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이 시장 경제와 경제 주체들의 자유를 옹호한다면 그 역시 민주주의에 가장 부합하는 경제 형태이기에 선택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시장 경제는 선험적인 절대 선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장이 잘 작동하는 영역이 있는가 하면 보건이나 교육처럼 시장 메커니즘으로 해결이 안 되는 생활 영역도 있을 것이다. 금융처럼 시장에서 작동시키되 일정한 규제나 공공의 참여가 필요한 영역도 있다.

모두 민주주의라는 가치 안에서 작동해야 한다. 자유 시장을 해치지 않는 한도에서 경제 민주화를 말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시장의 자유가 있는 것이다. 새로운 체제를 만드는 화두가 경제 민주화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제 1 과제는 민주주의 허용범위를 심각한 수준에서 일탈한 동시에 자유 경쟁시장 조차 파괴하고 있는 재벌의 이익추구 행위를 개혁하는 것이다. 이제 헌법 119조 2항이 명시한 경제에서의 국가의 역할 즉, ①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 ② 적정한 소득의 분배, ③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 남용 방지, 그리고 ④ 경제 주체간의 조화를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할 시점에 있다.

지금 경제 민주화의 가장 긴급하고 우선적 과제는 국민경제라고 하는 경제 생태계에서 재벌의 독식이 도를 넘어섬으로써 노동자, 상인, 소비자, 중소기업 등 나머지 경제주체들이 같은 공간에서 생존하고 공생할 수가 없게 되었다는 데 있다. 재벌구조 내부의 민주화를 논하기에 앞서 재벌과 여타 경제주체들이 같은 국민경제 생태계에서 공존할수 있도록 할 민주화가 절실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국가는 재벌의 과도한 경제력 남용을 억제하는 한편, 과도하게 권리가 침해된 다른 경제주체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협상력을 높일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재벌들과 공기업들부터 비정규직 사용 남용이나 정리해고 남용을 엄격히 제한하고 더 많은 노동자들이 단결하고 단체 협상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이름아래 십 수 년 동안 진행되어 온 체계적인 노동권 약화시도를 되돌려야 한다.

경제위기 이후 새로운 재벌개혁운동을 일으킨 상인들이 지역 상권에서 생존하고 서로 협력하여 발전할 수 있도록 법적 제도적 장치들을 보강해야 한다. 소매, 도매, 온라인 시장에서의 재벌들의 무차별 진입을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

주요 필수 품목들에 대한 재벌의 독과점 가격 횡포와 담합행위 등을 당사자인 소비자들이 직접 해결할 수 있도록 소비자 집단소송 요건을 대폭 완화해야 한다. 납품 중소기업들의 원가절감과 기술혁신, 생산성 향상 노력이 정당하게 이익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재벌들의 무리한 납품가격 인하를 억제해야 한다. 스스로 납품가격 협상력을 높일 수 있도록 중소기업 단체들에게 협상권을 부여해야 한다.

무엇보다 재벌의 과도한 경제력 남용을 방지하고 일정한 제도적 틀 안에서 경제활동을 하도록 기업집단법과 같은 제도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각종 세금 감면 등 이미 종료했어야 할 특혜도 이젠 거둬야 한다. 이익독식을 노린 탈법적인 행동에 대해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와 같은 강력한 벌칙이 뒤따라야 하고 재벌을 감독하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권한을 대폭 보강해야 한다.

물론 그렇다고 재벌 집단 내부의 의사결정체계나 소유 지배구조, 상속 관계 등이 아무래도 좋다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내부구조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밖으로 잘못된 행동이 나오는 것이다. 무리한 사업 확장이 무리한 이윤추구를 불러오는 것이고, 독단적인 의사결정이 주위의 이해관계자의 이익 침해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경제 민주화는 한 시대의 과제다.

김종인 전의원은 "1962년부터 1987년까지 25년은 압축 성장, 1987년부터 2012년 현재까지 25년은 정치민주화의 시기였다면 앞으로는 경제민주화의 시기"라고 규정했다. 맞는 말이다. 보편 복지와 함께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는 일시적 구호가 아니다. 지금까지 수십 년 역사를 통해 누적된 구조적 문제와 시대적 전환의 산물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보편복지와 경제 민주화는 2010년대 내내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사회적 의제가 되어야 한다. 더욱이 경제 민주화는 금융 민주화로, 노동 민주화로 그 내용을 더욱 확장시켜 나감으로써 우리사회가 경제적 민주주의를 심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한 마디로 한국사회가 ‘정치 민주국가’이자 ‘경제 민주국가’, 그리고 ‘보편 복지국가’가 되려는 긴 도정을 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공룡이 이 지구상에서 사라진 것은 초식동물을 위한 풀과 나무를 다 먹어치워서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현재 대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소기업 업종과 중소상인들을 괴멸시키는 상황인데, 그렇게 되면 결국 대기업도 죽게 되어 있습니다." 2011년 재벌개혁 이슈가 부상하기 시작할 때 지식경제위위원회 위원장을 맡던 민주당 김영환 의원이 한 발언이다. 점점 더 ‘상수’가 되어가는 경제위기 국면에서 공룡의 횡포를 막아 생태계를 지켜보자는 경제주체들의 생존 움직임이 바로 경제 민주화다. 재벌 독식의 ‘약탈적 공생관계’를 개혁하고 진정한 공생이 가능한 경제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또한 경제 민주화의 목표와 지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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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4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최근 경제 민주화는 야당인 민주통합당이 아니라 새누리당이 주도한다는 착각이 들 정도다. 올해 초 새누리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회에 합류해 경제 민주화 내용을 주장하다가 사퇴한 김종인 전 의원이 다시 박근혜 캠프 선대본부로 결합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그는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를 포함해 상속증여세 철저 징수, 법인세율의 절반 밖에 안 되는 실효세율의 대폭 상향, 산업용 전력요금 특혜 폐지 등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실제 과정을 지켜봐야 알겠지만 일단 환영할 만한 주장이다.

아울러 새누리당 내의 경제 민주화 실천모임도 지난달 5일 공개 세미나를 가진데 이어, 28일에는 리서치앤리서치(R&R)에 경제 민주화에 대한 여론조사를 의뢰하는 등 활발한 움직임을 이어가고 있다. 여론 조사 결과에 의하면, 국민 10명 가운데 8명이 경제 민주화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86.9%는 대선에서 경제 민주화에 대한 입장을 중요한 고려사항으로 한다고 밝혔다. 의외(?)인 것은 경제 민주화를 책임질 정당으로서 28.5%가 새누리당을 지목한 반면, 민주통합당을 선택한 응답자는 22.2%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론조사 주체가 새누리당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새누리당과 박근혜 캠프가 국민으로부터 부자정당, 친재벌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탈각하는데 일정한 성과가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하긴 친재벌 정치인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는 이명박 대통령마저 지난달 28일 비상경제대책회의 마무리 발언에서 “대기업들이 정치권에서 얘기하는 경제 민주화를 부정적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제 전경련만 빼놓으면 모두 ‘경제 민주화론자’가 된 셈이다.

사실 최근의 내외적 환경을 보건데,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누구도 지금까지의 경제 시스템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진보는 신자유주의주의가 초래한 위기가 쉽게 수습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고, 실제로 그렇게 상황은 흘러가고 있다. 보수 역시 지금의 자본주의를 액면 그대로 미래로 연장시킬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우리나라 경제 시스템의 중심부에 있는 기존 재벌체제도 많건 적건 손을 댈 수밖에 없다는 것은 꼭 진보의 판단만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국민들의 재벌개혁 요구가 갈수록 커지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모두가 경제 민주화를 말하는 상황에서, 진정 무엇을 꼭해야 하고 무엇이 가장 절박한 것인가. 그리고 무엇으로 그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인가.

재벌증세를 진정성의 리트머스 시험지로 삼아보면 어떨까. 우리나라 기업 중 과세표준 500억원을 초과하는 기업은 전체 40만 여개 법인 가운데 1% 미만, 즉 400개가 안 된다. 이들의 법인세를 27%이상으로 올리면 대략 5조~8조원 사이의 증세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다. 보편복지와 경제 민주화가 만나는 교집합에 재벌 법인세 증세라는 효과적인 정책 수단이 있는 것이다. 물론 증세를 하는 마당에 법인세 감세특혜를 해지하고 최저한 세율을 인상하는 것은 패키지로 함께 가야 한다. 각 정당과 대선 후보들은 자신들이 진정성 있게 경제 민주화를 요구했다면 무엇보다 재벌 법인세 증세 방안에 찬성할 것이라고 본다.

둘째로, 90년 이후 자산 기준 10대 그룹 총수 가운데 7명이 모두 22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하지만 모두 집행유예를 받아 단 하루도 실형을 살지 않았던 지독히 불공정한 관행을 확실히 없애는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 마디로 재벌총수의 중대한 경제 범죄에 대한 불관용 원칙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침 19대 국회 첫 날 민주통합당 원혜영 의원 등이 횡령·배임 등의 경제범죄를 저지른 기업인들에 대해 더 이상 집행유예가 선고될 수 없도록 하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입법 발의했다고 한다. 이 법안의 찬성 유무도 경제 민주화 의지를 보여주는 의미 있는 지표가 될 것이다.

재벌증세와 재벌범죄 불관용을 경제 민주화에 대한 의지를 읽을 수 있는 예시로 든 것은, 그것이 재벌에게 말뿐이거나 단순한 협박이 아니라 실효적인 부담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나아가 특별히 재벌에게 과중하거나 불리할 것도 없는 대단히 일반적인 규칙을 재벌·대기업 집단에게까지 공정하게 연장한 것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19대 국회가 개원됐으니 이렇게 경제 민주화도 주장과 실천을 병행해 가야 할 것이다.

전경련도 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여전히 경제 민주화보다는 경제 자유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규제완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려면, 우선 연구개발 세액감면 등 자신들이 아직도 누리고 있는 온갖 특혜를 내놓아야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교훈이 ‘규제가 없으면 구제도 없다’던 것처럼, 한국의 재벌도 ‘규제가 없으면 특혜도 없다’는 원칙을 적용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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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7 / 01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재벌개혁, 시장의 힘으로? 또는 국가의 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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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1. 우리는 모두 경제 민주화론자가 되었나?

2. 정경유착 근절이 경제 민주화였던 시기

3. 정치 민주화와 경제 자유화의 잘못된 결합

4. 2012년 버전의 경제 민주화를 말한다.

 

[본 문]

1. 우리는 모두 경제민주화론자가 되었나?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6월 28일, 비상경제대책회의 마무리 발언을 통해 "대기업들이 정치권에서 얘기하는 경제 민주화를 부정적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가장 대표적인 성장론자이자 친기업론자인 대통령까지 경제민주화론자로 전향하는 순간이다. 물론 "경제 민주화가 대기업을 위축시켜서 한다든지 하는 것은 받아들여질 수가 없겠지만 그런 측면으로 가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이른바 ‘자율적’ 상생과 동반성장이라는 지금까지 해왔던 ‘재벌개혁 없는 경제 민주화’로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쯤 되면, “우리는 모두 경제 민주화론자다.”라고 받아들일만 하지 않은가? 개혁 대상 당자사인 전경련을 제외한다면 야당과 시민사회운동은 물론이고 여당과 정부까지 경제 민주화의 대세에 올라탔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경제와 사회정책의 큰 운용의 틀을 경제 민주화로 잡고 여기서 시장 개혁과 불평등 해소, 경기 안정과 성장을 도모하는 지혜를 모으는 큰 흐름이 형성된 것이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자신들을 경제민주화론자로 제대로 전향을 하려면, 지금까지 경제 민주화 대신에 자율적 ‘상생’과 ‘동반성장’으로 일관했던 기존의 정책이 실패했음을 먼저 인정하고 지금부터라도 ‘제도적 재벌 규제’를 통한 경제 민주화 노선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모두 경제민주화론자가 되는 것이다. 상생과 동반성장과 같은 자율적인 협의가 경제 민주화를 어떻게 역행시켰는지 ‘경제 민주화 시민연대(준)’은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고용 없는 성장, 재벌의 골목상권 장악, 식자재 납품, 빵집. 떡집, 문구와 공구까지 무차별적인 중소상인 영역 침탈로 나타나자 드디어 국민적 분노가 폭발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상생’을 외치고 이명박 정부가 ‘동반 성장’을 외치는 과정에서 재벌은 순식간에 중소기업과 중소상인 시장 영역을 장악해 나갔다. ‘상생’ 전략의 최첨단을 보여주는 동반성장위원회가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사업조정제도’라는 것이 재벌의 대형마트에 대해 소주, 담배, 쓰레기봉투 팔지 말라는 한심한 대안밖에 내놓지 못하는 것은, 재벌을 법으로 규제할 수 없고 재벌을 설득하여 중소기업과 중소상인에게 양보하게 해야 한다는 시장 방임의 신자유주의적 경제운영철학이 깊이 내재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지금의 경제 민주화운동은 재벌과의 자율적 상생이 아니라 일정한 정도의 강제력 있는 재벌규제와 재벌개혁을 동반해야만 하고, 이런 의지가 없는 경제 민주화 논의는 공허한 말잔치에 끝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확인해 준다. 재벌이 독식하고 있는 시장에 정부가 개입하여 재벌과 다른 경제주체들 사이의 힘의 불균형을 제도적으로 재조정하지 않으면 자율적 상생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 시장에서의 불평등한 분배구조 개혁과 힘의 불균형 해소를 위한 정부의 시장 개입과 규제가 재벌권력에 대한 규제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금융규제가 필요하고 동시에 자산거품에 대한 규제도 필요하다. 금융규제, 재벌규제, 자산거품규제 등 3대 규제를 해야 경제개혁이 가능하다는 것이 우리 연구원의 일관된 생각이다.

동시에 재벌규제가 곧 재벌해체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순수하게 대기업집단이 효율적인지 다수 독립기업들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다주는지를 말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기업과 대기업집단(재벌그룹)을 잘게 쪼개어 수만 개의 중소벤처기업, 수천 개의 독립 대기업을 만들어 그들끼리 치열하게 (무한)경쟁하도록 하는 것이다. 게다가 대기업 및 재벌기업의 대주주(오너) 소유 지분 역시 잘게 쪼개어(이른바 '자산재분배') 수많은 소액주주들이 기업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게 하면 된다.”는 식의 재벌해체가 경제 민주화에 가장 적합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재벌이라는 기업 집단에 대해 일정한 규제의 틀에서 민주적 통제를 하자는 것이며, 다른 경제주체와의 힘의 균형이 가능하도록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재벌개혁을 재벌해체로 등식화시키면 마치 전자와 자동차, 통신 등의 한국경제 중추 생산시스템마저 해체한다는 인상을 국민들에게 심어줘 공포를 조장할 가능성도 있다. 물론 분명한 것은 재벌을 포함하여 누구도 민주주의를 위협할 만큼 과도한 권력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민주주의 제도 아래에서 무너져서는 절대 안 된다거나 해체되어서도 안 되는 그런 사적 집단이나 조직은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정부가 반독점법, 부동산세 같은 정책을 통해, 대기업 권력이 정부의 권력을 능가할 정도로 커지는 것을 방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로 미국인들은 소득 불평등에 대해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정부는 은행 권력이 커질 때마다 역시 반복적으로 개입했다.” “미국 정부는 반독점법 위한 사례에 대해서도 엄격하게 대처했다. 존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과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한 조사는 미국 정부가 대기업의 권력이 지나치게 커지는 것에 얼마나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지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의 재벌 대기업 집단도 권력이 커지고 민주적 질서를 위협할 상황에 이르게 되면 당연히 규제와 통제를 받아야 하는 것이 경제 민주주의다.

 

2. 정경유착 근절이 경제 민주화였던 시기

이처럼 똑 같은 경제 민주화를 놓고도 정부와 대통령은 재벌과 중소기업, 상인들과의 자율적 상생협의를, 그리고 시민사회와 진보는 정부의 제도적, 법적 규제를 통한 재벌개혁을 경제 민주화에 포함시키고 있다. 그런데 경제 민주화를 위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인지 아니면 시장의 자율에 맡겨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훨씬 더 복잡한 문제가 숨겨져 있다. 그것은 파란만장하고 엄청난 변화를 겪었던 우리 경제 역사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경제 민주화는 철저히 우리만의 역사적 경로가 있는 개념이고 의제이다. 지금은 경제 민주화를 위한 국가의 규제를 말하고 있지만, 경제 민주화의 과거 역사 속에는 오히려 지나친 정부개입이 관치경제와 정경유착을 낳고 부패를 발생시켜 경제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기도 했던 경험도 있었다. 국가로부터 시장의 자율성 확보를 경제 민주화라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조금 더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자.

우리나라는 1970년대까지 강력한 국가주의 발전모델을 추구했다. 가장 반민주적인 군부독재 정권인 박정희 정권이 쿠데타로 집권한 정치적 정통성의 부재를 경제 실적으로 만회하려는 강력한 욕구까지 겹치면서, 국가가 자본 조달자이자 육성자, 노동력 공급과 관리자, 그리고 해외 시장 개척자로서 인위적으로 재벌 대기업을 키워 고속 성장을 도모했다. 지금의 표현법으로 자본통제, 시장통제, 노동통제를 국가가 직접적으로 수행했고, 이 과정에서 재벌은 ‘육성’되어 지면서 권위주의 국가의 하위 세력으로서 ‘성장 동맹’의 한 축이 된 것이다.

경제 민주화 이전에 정치 민주화가 급선무였던 이 시점에서 경제 민주화라고 하면 ‘관치 경제와 정경 유착을 근절’하는 것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시장 기능 회복으로 간주될 수도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권위주의 정부의 시장개입이 노동자에게는 저임금과 노동권 억압이라는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했고 재벌 대기업에게는 온갖 특혜를 주는 개입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개입을 끊어내는 것이 경제 민주화와 부의 공정한 분배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당시의 강력한 자본통제와 재벌대기업 육성을 통한 고속 성장모델이, 후진국이 선진국을 추격하는 효율적인 모델일 수 있다고 일부에서 평가해주면서, 오히려 경제 민주화 주장이 국가의 역할을 축소시키고 시장 자율로 맡기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당시 권위주의 정부가 노동통제 외에 자본통제도 시행했던 점, 그리고 경제성장률이 매우 높았던 점 등을 사실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지적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권위주의적’ 개입 방식을 옹호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쨌든 민간부분의 경제역량이 커지고 신자유주의 조류가 형성되면서 국가우위의 한국경제도 변화하기 시작한다. 완전한 국가주도 모델에서 민간주도 경제로 넘어가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전두환 정권부터다. 그러나 민간주도 경제로 전환이 현실화되고 경제 민주화가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아무래도 1987년 직선제 쟁취로 정치에서 절차적 민주화가 열리기 시작한 때부터였다.

당시에 발표된 글을 보면, “이제 민주화 대장정의 서막이 올랐으므로 반민주 세력의 부상을 저지하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구석구석에까지 민주주의가 전파되어야 할 것이다. 앞으로의 민주화 과제는 정치에 한정되지 않고, 행정. 경제. 사회 등 모든 부문에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치 민주화 - 절차적 민주화를 뛰어넘기 위해 경제 민주화 -실질적 민주화를 제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1987년 이후 민주화 논의는 지금까지도 실질적 민주화의 담론을 포함하고 있고, 이는 다시 경제적 민주화를 포함하는 연장선에 있다. 2012년 경제 민주화 역시 이러한 궤도의 연장선에 있다.

 

3. 정치 민주화와 경제 자유화의 잘못된 결합

그런데 이 과정에서 일련의 모순적 상황이 만들어진다. 과거로부터 착근된 국가주도의 관치경제와 정경유착에 근거한 부정부패를 경제에서 제거하는 것- 이런 유형의 국가 개입을 줄이는 것이 경제 민주화의 하나의 내용으로 이해된다. 또한 동시에, 민간주도 경제의 중심 세력인 재벌 대기업 집단의 독점적 지배력을 통제하고, 시장 실패를 보완하는 국가 개입의 확대가 또 다른 차원에서 경제 민주화로 해석되기도 한다.

앞서 인용했던 글에는 이 부분이 확실하게 언급되어 있다. “이런 반사회적이고 경제적 비효율을 유발하는 근본 요인은 경제에 대한 정부 통제의 심화에 있다. 따라서 민주화 시대를 겨냥하는 현 시점에서 정경유착의 극복책은 최소 정부를 지향하는 것이다. 그러나 근대 혼합경제 체제하의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시장실패 보완적 정책을 완전히 포기할 수 없다.”면서 민주정치가 구현되면 시장 실패를 보완하기 위해 경제 활동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더욱이 이미 당시에도 재벌 대기업의 시장 지배력과 경제 권력화에 대한 우려가 상당 수준에 있음도 보여주는 대목이 있다. “민간 기업의 독과점적 산업 조직 내지는 불공정 거래에 대한 정부 통제는 결코 줄여서는 안 된다. 사실 우리 경제가 독점 단계에 접어들고 있으므로 정부 통제가 강화되더라도 독점 자본을 제어할 수 있을지 실효성이 의심될 정도다. 기업 결합, 합병의 규제, 경제력 집중의 억제, 그리고 기타 불공정 거래 방지에 힘써야 할 것이다.”

결국 시장과 기업에 대한 권위주의적 통제와 개입을 해소하는 대신 시장 자율로 넘기는 것이 경제 민주화가 아니라, 민주주의적 의사와 방식에 의한 시장 개입, 즉 민주적 통제로 전환하는 것이 1987년을 전후한 우리 역사에서 경제 민주화의 어려운 과제이었음을 알 수 있다. 최근 1원 1표의 시장 논리를 1인 1표의 민주적 정치구조가 통제하는 것이 경제 민주화라고 하는 주장도 내용적으로는 동일한 맥락이다. 정치 영역에서 1인 1표 민주주의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시장에 내재된 1원 1표 원칙의 불평등성을 완화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고 그것이 경제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국경제가 권위주의 정부주도에서 민간주도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신자유주의 시장화와 세계화 압력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권위주의 정부 통제는 물론이고 민주적 정부의 개입마저 거부하는 신자유주의 작은 정부, 규제완화, 시장 지상주의 논리가 강력히 한국경제로 수입되고 1997년 외환위기로 확고한 대세가 되었던 것이다. 이런 가운데 재벌 대기업 집단은 정부통제로부터 벗어나 한국경제의 실세로 부상하게 되었고 세계화와 개방화의 환경에 적응하면서 경제는 물론 정치와 관료, 언론 등으로까지 영향력을 확대해간다. 이른바 정부의 재벌의 성장 동맹이 확실하게 붕괴되고 대신 신자유주의 글로벌 자본과 재벌의 ‘수익 동맹’이 구축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등 정치적 민주정부시대에 신자유주의 조류가 확산되었고, 금융과 재벌 대기업 집단은 정부통제로부터 자유를 얻은 반면 대다수 평범한 국민들은 금융부채와 비정규직 등 신자유주의적 폐해에 노출되면서 양극화와 불평등을 심화시켜나간다. 그리고 이 시기에 경제 민주화는 경제의 자유화로 곡해되거나, 기껏해야 자본시장에서의 1원 1표의 주주 민주주의로 좁아지게 되었던 것이다.

요약하면, 1997년 이후 민주정부들은 정치적 민주화와 진정한 경제적 민주화를 함께 엮어 가기 보다는, 정치적 민주주의를 경제적 자유화와 결합시켰던 역사적 오류를 경험했던 것이다. 최근 경제 민주화를 자유주의라고 비판하는 것은 이런 경험을 확대해석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4. 2012년 버전의 경제민주화를 말한다.

역사과정 속에서 의미가 변해왔던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다시 국민들의 관심과 지지를 받으면서 새로운 버전으로 변화된다. 따라서 지금 논쟁해야 할 경제 민주화는 권위주의 정부개입이 횡행하던 1970년대 유신 시대나,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탄식하던 2000년대 중반 시점의 경제 민주화가 아니다. 2008년 이후 신자유주의가 자초한 경제위기가 장기화되고, 불평등이 국민들의 인내력 범위를 벗어나고 있는 지금의 경제 민주화를 쟁점으로 해야 한다.

금융위기 이후 경제 민주화는 과거와 다른 몇 가지 특징을 보이는데, 1)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국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서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심각한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2) 따라서 전문가들이나 자본시장의 투자자들이 요구하는 독점 대기업 지배구조 개선과는 차원이 다르고, 대형마트 입점규제를 요구하는 소상공인들처럼 아래로부터 생활현장에서 민생운동의 형태로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 요구가 확산되고 있다.

또한, 3) 신자유주의가 오랫동안 확장시켜 놓은 시장 자율 구조 아니라, 국가의 일정한 개입과 규제를 수반해야 경제 민주화가 가능하다는 공감대가 있다. 4) 특히 경제적 상위 1%와 재벌 대기업 집단이 시장 지배력을 남용하여 불공정하게 부를 편취해왔던 관행을 규제하는 ‘규제 자본주의’를 대세로 하고 있다. 5) 또한 노동 유연화와 같이 시장 자율이라는 이름아래 지속적으로 권리가 축소되고 협상력이 약화되어 왔던 노동자, 상인, 중소기업, 소비자들의 권리와 협상력을 높여주는 국가의 적극적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이처럼 2012년 버전의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는 신자유주의 불평등과 시장화가 정점에서 붕괴되는 바로 그 상황에서 제기되고 있고, 시장을 넘어 정치 사회적으로도 국가의 힘을 능가할 만큼 커진 재벌 대기업집단의 경제권력 남용에 대해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제기되고 있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재벌 대기업 집단이 국내외적으로 보여준 두 가지 행태가 경제 민주화요구를 확산시킨 계기가 되었다는 점을 중시해야 한다. 경제 민주화가 시작부터 재벌개혁과 밀접히 결부되었던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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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2.06.14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지난 총선부터 우리 사회의 최대 화두였던 보편복지와 경제 민주화는 대선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위험한 국면을 통과하고 있는 세계경제의 어려움과 맞물리면서 경제 민주화는 가장 중요한 대선 의제가 될 것이다. 이를 예고하듯 전경련과 산하 연구원인 한국경제연구원이 19대 국회 개원에 맞춰 지난 4일 경제 민주화에 대한 대기업의 반론을 적극적으로 펴기 시작했다.

전경련은 법·경제·철학이론을 모두 동원해 경제 민주화 논리를 반박하는 큰 스케일(?)을 보였다. 우리 헌법에 비춰 볼 때, 경제 자유화·자유시장경제가 원칙이고 경제 민주화는 극히 예외적인 국면에서 법률이 정하는 한도에서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 이론적으로는 소비자 선택 이론을 들고 나오면서 소비자 주권에 기초한 자유로운 소비자 선택이 가능한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가장 경제 민주주의에 접근한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보편복지를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하면서 선택적 복지를 주장하더니 경제 민주화를 예외적인 정책이라고 축소하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전경련이나 보수진영에서 복지와 경제 민주화 자체의 정당성과 지금 시점에서의 필요성을 부정하지는 못하고 있다. 나아가 이를 대체할 대안 담론을 만들지도 못하고 있다. 다만 제한하려고 할 뿐이다. 보편복지와 경제 민주화는 우리 현실에서 진보적인 프레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보편복지와 경제 민주화는 우리 경제현실에서 매우 좁게 제한돼 해석돼 왔다. 해석과 적용 분야를 훨씬 확장시켜야 한다.

그런데 복지나 경제 민주화를 말할 때 한 가지 생각해야 할 대목이 있다. 바로 현실적인 힘의 관계, 사회세력 사이의 역학관계다. 복지나 경제 민주화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새롭고 참신한 정책의 여부도 아니고, 각 정당들의 정책수용 여부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사회세력들 사이의 힘의 관계를 정확히 반영한다.

흔히들 선진국 경제사에서 복지국가의 황금시대라 불리는 50~60년대에는 사회의 권력균형에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면서 노동자와 대중의 힘이 시장의 힘을 견제할 만한 상황이 됐던 시기다. 반면 자본의 파워는 제한을 받게 됐다. 시장에 대한 정치적 개입을 통해 경쟁은 완화됐다. 자본 통제가 도입되고, 금융자본은 엄격히 규제됐다. 공공부문 확대를 통해 경제의 중요한 부분이 시장에서 떨어져 나가 민주적 통제를 받게 됐던 시기다. 이처럼 해당 사회에서의 사회세력(주로 자본과 노동) 사이의 힘의 관계에서 노동의 힘이 커지면서 복지정책을 제대로 적용할 ‘정책 공간’이 열리고 복지국가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80년 이후 신자유주의 30년 동안 시장을 둘러싼 규제 틀이 모두 깨지고 이번에는 시장과 자본의 힘이 사회 전 영역으로 팽창하게 됐다. 신자유주의가 성취한 정치·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가 신속하고 체계적인 규제철폐에 이용됐다. 고정 환율제가 폐지되고, 자본통제가 해제되고, 시장에서 규제가 사라지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그에 따라 이번에는 아래에서 위로 부의 역재분배가 이뤄졌다. 양극화가 심화된 것이다.

보편복지의 실현이 사회적 힘의 관계를 반영한다면, 경제 민주화는 사회적 세력관계 그 자체라고 할 만하다. 우리 헌법에서도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 민주화의 실현” 이라고 돼 있다. 무슨 말인가. 경제 민주화란 원래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경제주체들, 예컨대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용자와 노동자, 기업과 소비자들 간의 원천적인 불균형 관계를 국가의 정책적 개입에 의해 최소한 ‘조화’가 가능한 균형상황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앞서 세계경제에서 “80년 이후 신자유주의 30년 동안 시장을 둘러싼 규제 틀이 모두 깨지고 이번에는 시장과 자본의 힘이 사회 전 영역으로 팽창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한국에서는 97년 외환위기 이후 그랬다. 그 결과 경제 민주화도 심각한 후퇴를 맞게 된 것이다. 힘의 균형이 무너지고 금융자본과 재벌 대기업의 힘이 압도적으로 우리 경제질서를 지배하게 됐기 때문이다. 특히 선출되지 않는 경제권력, 3세로 승계되고 있는 재벌권력에 대한 견제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논의돼야 할 경제 민주화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경제 자유화가 원칙이고 경제 민주화는 예외라고 하는 전경련의 주장이나, 경제 민주화가 실상은 주주자본주의적 요소를 함축하고 있다는 진보 일각의 비판은 모두가 핵심을 비켜 간 것이다. 복지의 확장을 위해서나 경제 민주화를 위해 노동자와 시민 등 99%의 힘과 권한을 다시 키워 나가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노동조합의 권리를 키우고 대자본의 힘을 제약하는 각종 정책과 법률을 통해 힘의 재균형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것이 복지고 경제 민주화다.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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