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 11 / 25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새사연은 2012년 가장 중요한 화두로 ‘불평등(Inequality)’를 제시하면서 다양한 각도로 이에 대해 접근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세계적인 석학들의 관점과 견해를 다양하게 소개해주기도 했다. 누리엘 루비니 교수, 폴 크루그만과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 그리고 로라 타이슨과 로버트 라이시 교수 등이 소득 불평등 문제를 현재 경제위기의 중심 문제로 지목하면서 각자의 견해를 밝혀왔다. 그 가운데 경제학자 케인스의 전기를 써서 유명해진 로버트 스키델스키(Robert Skidelsky) 교수가 또 다시 불평등이 경제위기 발생의 원인이자 경제가 회복되지 않은 원인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번 글에서 저자는 금융과 소득 불평등 문제를 알기 쉽게 연결하면서 왜 금융 그 자체보다는 그 이면의 소득 불평등이 위기를 발생시키고 회복을 지연시키는 요인이 되는지를 설명해주고 있다. 한마디로 소득의 불평등한 분배가 상대적 빈곤에 놓여있는 계층들에게 부채를 끌어 쓰려는 강력한 ‘수요’를 만들어내면서 부채의 급증이 생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소득이 오르지 않아 이를 메우기 위한 ‘대출 수요’가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자금을 공급해주는 은행들이 예금 규모를 뛰어넘어 무제한으로 대출을 해줄 수 있는 ‘금융시스템의 규제완화’가 시행되지 않았다면 또한 위기가 발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짧은 글이 마치 금융의 약탈적 대출(predatory lending)을 충분히 단죄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칼럼의 핵심은 대출 수요를 만들어낸 소득의 정체를 강조하고 이것이 위기의 원인이자 회복지연의 원인임을 부각시키려는데 있다. 특히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중앙은행의 양적완화가 아니라 정부의 적절한 재정지출을 강조한 대목이 인상적이다.

“우리의 현재 상황은 최후의 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 중앙은행을 의미-역자)가 아니라 ‘최후의 소비자(spender of last resort; 결국 정부를 의미 -역자)'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것은 오직 정부만이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미국에서 상위 1%로 소득이 집중되어 가장 불평등 정도가 심각했던 시점이 1928년과 2007년 이었고, 이 때 심각한 경제위기가 시작되었던 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동시에 불평등이 가장 줄어들었던 1950~60년대에 오히려 자본주의 황금기였음을 또한 기억해야 한다. 자본주의를 위협하는 것은 외부세력이 아니라, 내부의 불평등을 증폭시키는 자기 자신이며 자본주의의 ‘자기 파괴적(selt-destructive)'성격에 있다는 점을 이 칼럼은 환기시켜주고 있다.


 

불평등이 자본주의를 죽인다.

(Inequality is Killing Capitalism)

 

2012년 11월 21일

프로젝트 신디케이트(Project Syndicate)

로버트 스키델스키(Robert Skidelsky)

2008~2009년 위기가 발생한 것은 은행의 과잉대출 때문이고, 위기로부터 제대로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깨져버린’ 대차대조표로 인해서 은행들이 대출을 하지 않는데 기인하고 있다고 일반적으로 알려졌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추종자들과 오스트리아 학파들(신자유주의 경제학파 -역자)이 선호하는 전형적인 이야기는 이렇게 전개된다. 위기로 치닫는 기간 동안에, 은행들은 예금 규모를 뛰어넘는 돈을 차입자들에게 대출해주었는데, 이는 특히 미국 연준(Fed) 같은 중앙은행이 공급해주는 엄청나게 싼 이자 덕분이었다는 설명이다. 중앙은행의 돈으로 자금을 두둑이 채운 상업은행들은 비합리적인 수많은 투자 프로젝트에 신용을 제공했고, 이 때 광란의 대출을 가능하게 해준 폭발적인 금융혁신(특히 파생상품)을 동반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부채의 역 피라미드는 미국 연준(Fed)이 금리를 올리면서 흥청거리는 소비를 중단시켰을 때 붕괴되었다. (연준은 기준금리를 2004년 1%에서 2006년 5.25%가지 올렸다. 그리고 2007년 8월까지 유지시켰다.) 그 결과, 주택 가격이 붕괴하고, (자산을 훨씬 초과하는 채무를 보유한) 좀비 은행들을 양산시켰고, 채무자들을 파산시켰다. 

현재의 문제는 은행이 자금 대출을 재개하도록 하는 것이다. 대출을 꺼리면서 제 기능을 못하는 은행들을 어떻게 하든지 ‘정상적으로’ 되돌려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미국과 유럽에서 엄청난 규모의 은행 구제 금융을 해주고, 뒤이어서 중앙은행이 다양한 비정통적인 경로를 통해 돈을 찍어서 은행시스템으로 돈을 공급해주는, 수차례의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을 한 것이다.(위기가 과잉 신용 때문에 발생했다고 보는 하이에크 추종자들은 이런 조치에 반대한다.)

동시에, 다시는 은행이 금융시스템을 위태롭게 하지 못하도록 규제체제가 모든 곳에서 더 강화되었다. 예를 들어, 기존 물가안정 목표를 임무로 했던 것에 더해서, 영란은행은 ‘금융시스템의 안정성(the stability of financial system)’을 유지하기 위한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았다.  

이러한 분석은, 그럴 듯해 보이지만, 경제적 건강성에서 본질적인 것은 신용 공급이라는 믿음과 관련이 있다. 돈이 너무 많이 공급되어도, 너무 적게 공급되어도 경제적 건강성을 해칠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그러나 다른 관점을 택할 수도 있다. 신용에 대한 공급 보다는 ‘신용에 대한 수요’가 결정적인 경제적 동인이라는 관점이 그것이다. 결국, 은행들은 반드시 적절한 담보 아래에서만 대출을 해준다. 그런데 위기를 향해 가는 기간 동안에는 상승하는 주택가격이 담보를 제공해주었다. 바꿔 말하면 신용 공급은 신용 수요의 결과였다.  

이것은 다소 다른 측면에서 위기의 기원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경제위기가 약탈적 대출(predatory lending) 때문이 아니라, 사려 깊지 못하거나 기만적인,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는 채무자(가계와 기업 - 역자)들 때문이라는 식으로 결론이 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문이 제기된다. 왜 사람들은 그렇게 많이 차입을 했을까? 왜 소득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경기침체 이전 시기에 전례 없는 수준으로 폭등하게 되었을까? 

사람들이 탐욕스러워서 자신들의 분수보다 늘 더 많은 것을 원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왜 이러한 ‘탐욕’이 그렇게 미친 듯이 표출되게 되었을까?  

여기에 답을 하기 위하여 우리는 소득분배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보아야만 한다. 세계는 지속적으로 풍요로워졌지만 각 국가 안에서 소득 분배는 지속적으로 더 불균형하게 되어갔다. 지난 30년 동안 국내총생산(GDP)이 성장하는 와중에도 중위 소득자들의 소득은 정체하거나 심지어 하락하기조차 했다. 이것은 부자들이 생산성 향상의 더 많은 몫을 뽑아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활수준이 향상되어가는 이 세상에서, 상대적 빈곤층들이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 무엇을 한 것일까? 그들은 빈곤층이 늘 했던 것, 부채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예전에는 전당포에서 돈을 빌렸고 지금은 은행이나 신용카드 회사로부터 돈을 빌린다. 그들의 빈곤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이었고 (담보로 잡은- 역자) 주택 가격은 계속 오르고 있었기 때문에, 채권자인 금융회사는 그들을 점점 더 깊은 부채의 늪으로 빠뜨리면서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물론, 일부에서 가계의 저축률이 폭락하는 것에 대해 걱정하기도 했지만, 그걸 문제 삼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마지막 논문들 중 한 곳에서 밀턴 프리드먼은 저축이 지금은 주택의 형태를 띤다고 쓰기도 했다.  

나에게 이런 관점은, 중앙은행이 갖은 방법으로 양적완화를 시행함에도 불구하고 왜 은행들이 대출을 재개하지 않고 있고, 왜 경기회복은 다시 흐지부지 되어 가는지에 대해서 정통적인 설명보다도 훨씬 더 잘 설명 해준다. 대출 은행들이 위기 이전에 대중들에게 대출을 강요하지 않았던 것처럼, 지금 역시 그들은 부채가 있는 가구들에게 돈을 빌릴 것을 강요할 수 없다. 시장이 위축된 상황에서 설비 확장 자금을 대출 받으라고 기업에게 강요할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다.  

요약하면, 경기회복은 미국의 연준이나 유럽중앙은행, 영란은행에게 달려있는 것이 아니다. 경기회복을 위해서는 재정정책 결정자들의 적극적인 개입을 필요로 한다. 우리의 현재 상황은 최후의 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 중앙은행을 의미-역자)가 아니라 ‘최후의 소비자(spender of last resort; 결국 정부를 의미 -역자)'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것은 오직 정부만이 할 수 있다. 

만약에 정부가 이미 많은 부채를 짊어져서 더 이상 국민들에게 자금을 빌릴 수 없다면, 중앙은행으로부터 빌려서 공공사업이나 인프라 프로젝트에 추가적으로 자금을 지출해야 한다. 이것이 거대 서구 경제권을 다시 움직이게 할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나 이것을 뛰어 넘어서, 우리는 국민소득과 자산의 대부분을 소수의 수중에 집중시키도록 하는 시스템을 더 이상 지속시킬 수 없다. 자산과 소득의 결연한 재분배야말로 대부분의 경우 자본주의 장기적 생존의 본질적인 것이었다. 우리는 지금 다시 한 번 이 교훈을 새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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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11 / 13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테마북] 경제를 보는 세계의 시선-대침체 속의 세계경제 편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의 제목을 누르면 됩니다.

* 새사연은 올해 1월부터 눈여겨 볼만한 관점이나 주장을 담은 해외 기사, 칼럼, 논문 등을 번역하고 요약하여 소개하는 ‘경제를 보는 세계의 시선’을 연재하고 있다. 그 중에서 장기적으로 지속 되고 있는 경제 침체 속의 세계 경제에 대해 다룬 10편의 글을 모아 테마북으로 엮었다.

 

[여는 글]

세계 경제 침체가 2008년 이후 5년을 지나고 있다. 5년 전 미국의 투자은행들을 줄줄이 무너뜨렸던 금융위기는 집과 일자리를 빼앗긴 사람들을 타고 실물경제를 잠식했다. 소비는 줄어들었고, 수출은 부진했다. 정부가 경기부양에 뛰어들었으나 긴축재정을 외치는 목소리에 발목이 잡혔다. 재정운영에 관한 논쟁 속에서 그리스와 스페인 등이 휘청이면서 2011년에는 유럽위기의 공포가 전 세계를 휩쓸었다.

일본 경제는 이미 오래 전에 침체에 빠졌고, 이후 미국과 유럽마저 위기에 빠졌다. 그나마 중국이 존재하는 아시아가 가장 양호한 상태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성장률도 주춤하는 추세일 뿐 아니라 아시아의 수출 시장이던 미국과 유럽이 침체일로를 겪는 상황에서 아시아만 독자행보를 하기란 불가능한 상황이다.

IMF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올리비에 블랑샤르는 세계 경제가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위기가 발생한 2008년 이후 적어도 10년은 지나야 할 것이라 전망했다. 그러니 2018년까지는 침체 상태일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최소한 2018년까지라고 예측한 것이니 훨씬 더 긴 안목으로 경기 침체의 시대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그간 소개했던 세계 석학들의 글 중 경기침체 시대에 필요한 경제정책을 제시하고 있는 10편의 글을 모아서 테마북으로 엮었다.  

세계의 석학들은 경제 위기 이후 잘못된 경제 정책으로 긴축정책을 손꼽았다. 경제를 돌릴 원동력이 사라진 상태에서 누군가 먼저 마중물을 부어야 하는데, 현재 그럴 수 있는 경제주체는 정부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부마저 지출을 줄인다면 경제는 더욱 위축되고 부채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는 복지의 확충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공공부문에서의 일자리 확충으로도 나타날 수 있다.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중산층 이하의 소비를 늘리는 것이 핵심이다. 스키델스키는 소비 진작과 경기 부양을 위해 부채를 과감하게 탕감할 것을 주장하기도 한다. 로치는 그나마 상황이 나은 아시아는 지역 공동체 활성화를 통해서 소비와 무역을 증진시키라고 제안한다.

우리의 경우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 요구가 소비 회복과 경제 성장의 관점에서 필요한 조치이다. 일부에게 집중되어 있는 부를 재분배하고, 더 다양한 경제주체들이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안정적인 소득을 받을 수 있도록 일터에서, 골목상권에서, 하청관계에서 경제민주화가 실현되어야 하는 것이다.

한 편 위기는 기회이기도 하다. 지금은 한국사회가 그리고 전 세계가, 무너진 낡은 패러다임을 버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도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마틴 울프가 제안한 거시 불안정성 관리, 금융시스템 개선, 불평등과 일자리 문제 해결, 기업 지배구조 변화, 조세 재도 개선, 정경유착 근절, 공공재의 세계화라는 7가지 개선책은 눈여겨 볼 만하다. 물론 아무리 좋은 방안도 결국 실현하려는 주체의 의지에 달려 있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는데, 다가오는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실현할 수 있는 이를 잘 골라보자.


2012년 11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수연

 

[목  차]

◆ 여는 글   -------------------------------------------- 2

◆ 미국 경제, 침체를 탈출할 구멍이 없다 --------------------- 6
    곤경에 처한 미국 / 누리엘 루비니

◆ 살아남은 아시아, 잃어버린 소비를 찾아라 ------------------ 10 
    위험에 노출된 아시아 / 스티븐 로치 

◆ 중국 경제발전 방향 전환할 때이다 ------------------------ 14
    중국은 경기둔화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 위용딩

◆ 더 나은 자본주의를 위한 7가지 개선 ---------------------- 18 
    자본주의의 결함을 고치기 위한 7가지 방법 / 마틴 울프 

◆ 법인세일까? 주주 배당세일까? --------------------------- 23 
    까다로운 법인세 문제 / 로라 타이슨

◆ 통 큰 부채 탕감이 경기 회복의 지름길 --------------------- 27 
    부채를 탕감하라 / 로버트 스키델스키 

◆ 긴축재정은 독일까, 약일까 ------------------------------ 32 
    긴축이 경제 성장을 촉진시킬까? / 로버트 쉴러

◆ 미국의 3차 양적완화는 두 번째 ‘환율전쟁’을 부르나? ---------- 37 
    연방준비제도(미국 중앙은행)와 환율전쟁 / 호세 안토니오 오캄포 

◆ 루비니, 미국경제의 3차 양적효과 실망스러울 것 -------------- 41 
    회의적인 양적완화 효과 / 누리엘 루비니 

◆ 세계 경기 침체에서 살아남는 국가의 조건 ------------------- 46 
    새로운 세계 경제의 승자 / 데니 로드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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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7 / 31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노동조합탄압? 경기회복 망치는 길이다.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의 제목을 눌러주시면 됩니다.

 

[목 차]

1.세계 어느나라도 연봉에 따라 노조활동을 제한하지 않는다.

2. 경제 민주화는 노동현장에는 없고 여의도에만 있는가.

3. 경제위기에 노동조합 활동을 적극 지원했던 뉴딜 정부

4. 경제 민주화는 여의도가 아니라 산업 현장으로

 

 

[본 문]

세계 어느 나라도 연봉에 따라 노조 활동을 제한하지 않는다.

“세계 어느 나라도 귀족노조가 파업을 하는 나라는 없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지난 7월 27일 오후, 이명박 대통령이 국정현안 점검회의에서 한 말이다. 대통령은 특히 “만도기계라는 회사는 연봉이 9500만원이라는 데 직장 폐쇄를 한다고 한다”면서 직장폐쇄 사실까지 정확히 보고를 받고 있었다.

세계 어느 나라 어느 역사에서 연봉이 많고 적은 소득 구간별로 노동조합이 구성되고 노동조합 활동이 제한받는 경우가 있기나 한 것인지 대통령이 모르고 하는 소리임을 차치하자. 대통령이 고소득을 운위한 자동차 관련 기업의 연봉이 기본급과 비슷한 수준의 잔업과 특근이 더해져서 만들어진 수치라는 점, 바로 그런 문제를 없애려고 만도 노동조합이 주간연속 2교대 제도를 도입하자고 파업을 개시한 것이며, 그런 문화를 바꿔보자고 모 대선 후보가 제시한 ‘저녁이 있는 삶’에 호응이 크다는 점도 미뤄두자.

7월 27일 현대 기아차에 자동차 부품을 납품하는 대기업 만도와 중견기업 에스제이엠(SJM)이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최근 경기의 재 침체 우려 속에서도 상대적으로 가장 선전하는 산업 분야의 기업들이다. 금속노조 산하의 두 기업 노조들이 구조조정 반대와 주간연속 2교대 등을 요구하면서 부분파업과 하루 전면파업을 한 정도임에도 불구하고, 두 기업은 시설물의 파괴나 심각한 경영상의 위기와 같이 지극히 제한된 상황에서 방어적으로 사용해야 할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말하자면 불법적인 직장폐쇄인 셈이다. 그리고 대통령은 불법적인 직장 폐쇄를 용인하는 대신 비난의 화살을 노동조합에게 씌운 것이다.

 

경제 민주화는 노동현장에는 없고 여의도에만 있는가.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이 두 기업의 직장폐쇄를 위해 전국에서 1500여 명의 이른바 경비용역이 동원되어 에스제이엠 안산공장과 만도의 평택, 문산, 익산 공장에 있던 노동조합원을 몰아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경비용역들이 휘두른 폭력으로 조합원 약 30여 명의 부상을 입는 폭력사태가 발생했다. 공격적 행위를 할 수도 없고 경찰에게 사전에 신고를 해야 하는 용역들이 명백한 불법적 폭력 행위를 한 결과임은 물론이다.

그 용역회사가 바로 컨택터스(Contactus)라고 하는 사설 경비업체였다. 그 업체는 "국내 최대 규모 시위진압 장비를 보유한 대한민국 시위·집회 해결사"라고 스스로 홍보하고 있다. 원거리에서 시위대를 제지할 수 있는 독일산 물대포용 수력방어차량을 최초로 도입했다고 한다. 가장 공격적이라고 알려진 이른바 '히틀러 경비견', 방패, 헬멧, 진압복, 곤봉 1000세트와 지휘차량, 진압차량, 항공 채증용 무인헬기까지 갖췄다고 알려졌다니 가히 사설 무장경찰조직 수준이다. 더욱이 7월 30일 민주통합당 장하나 의원이 폭로한 바에 의하면, 2007년 이명박 대통령 경호를 맡았던 업체라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컨택터스(Contactus)의 명백한 불법 폭력이 아니라 이들에게 폭력을 당한 노동조합을 비난한 것이 아닌가?

지금 정치권에서 온통 경제 민주화 주장이 백화제방을 이루고 있는 와중인데도 에스제이엠의 안산 공장과 만도 작업장은 예외지대인 것 같다. 불법적인 직장 폐쇄와 불법적인 용역 깡패 동원이라고 하는 원시적인 경제 ‘반민주화 사태’가 버젓이 일어나고 있지를 않나? 경제 민주화는 지금 여의도에만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대통령과 기업주들이 노동조합을 비난하는 모든 이유와 명분은 지금 다시 ‘경제 위기’로 가고 있기 때문에 노동조합이 파업이나 단체행동 등을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위기로 경제 민주화는 적어도 노동자들에게는 물거품이 되는 것인가.

 

경제가 위기에 빠지자 노동조합 활동을 적극 지원했던 뉴딜 정부

확실히 올해 들어서 경제 성장률은 전년 동기대비 1분기에 2.8%, 2분기에 2.4%로서 극히 저조한 성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반기에도 유럽경기 침체가 거의 확실한 상황에서 이미 3% 수준의 성장은 불가능할 것이다. 한편에서는 3% 수준으로 급락한 수출부진이 원인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가계부채의 덫에 갇힌 국내 민간소비위축과 부동산 경기조정이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어느 것 하나 단기적 해법은 없으며 장기적 저성장과 불황으로 이어질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일치한 의견은 ‘내수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맞다. 지금의 수출 부진은 품질 경쟁력이나 가격 경쟁력 때문이 아니라 글로벌 수요 자체가 위축되면서 생긴 문제이니 수출 의존도를 줄이는 것 말고 달리 대책이 있을 수 없다. 내수를 보강해야 하는데, 그 중에서도 정부소비나 기업투자보다 당장 핵심적인 것은 민간소비 즉 국민들의 구매력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1930년대 세계 대공황 시기에 뉴딜 정책을 추진했던 미국 정부가, 대공황 탈출의 일환으로 노동자의 구매력 향상을 위해 어떻게 노동조합과 노동조합의 단체협상을 장려하는 정책을 도입했는지 되돌아 봐야 한다. 심각한 경제위기를 맞아 최근 로버트 라이시 미국 전 노동부 장관이 ‘역사로부터 배울 필요’가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바로 그 시점에서 거품이 터지고 대공황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러나 바로 그 때 미국은 사용자들에게 조직노동자들과 신뢰의 협약을 요구하는 와그너 법(Wagner Act)을 만들었고 사회 안전망과 실업보험을 도입했다. 공공사업국(Works Projects Administration)과 시민보전단(Civil Conservation Corps)을 만들었다. 최저 임금제도를 만들었다. 금융에서는 증권법과 글래스-스티걸법을 만들었다.”

사실 미국에서는 19세기는 물론이고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노동조합활동이나 피케팅, 파업 등 노동자들의 단결과 단체행위 자체에 대해 법원이 ‘범죄적 공모죄’로 몰아 형사처벌을 할 만큼 노동자 무권리의 나라였다. 일부에서는 뉴딜 이전의 미국 노-사 관계가 봉건제적인 ‘주인과 하인의 법’의 지배를 받았다고 할 정도였다.

이런 미국에서 1929년 대공황이 터지면서 실업이 급증하고 공황이 장기화하던 시점인 1935년 7월 5일에 입법 서명한 ‘전국 노동 관계법(NLRA: National Labor Relation Act)’, 일명 ‘와그너 법(Wagner Act)’이 제정되면서 완전히 새로운 국면이 열린다. ‘미국에서 제정된 가장 진보적인 법’, ‘노동자의 권리 장전’으로 불릴 정도였던 점을 기억해보면 된다.

와그너 법은 한마디로 노동자에게는 노동조합을 자주적으로 결성하고 단체협상 할 권리를 충분히 보장하고, 사용자에게는 노동조합에 간섭하거나 지배하지 못하게 하는 등 부당 노동행위를 엄격히 금지하도록 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지금 우리의 노동 3권 같은 것이지만, 노동조합 만들고 단체 행동을 하기만 해도 법원이 범죄행위로 형사 처벌하던 나라에서, 더욱이 대공황에 빠져 있는 국면에서 노동권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정책을 내놓았던 것 자체가 주목을 받을 만했다.

한 마디로 와그너 법은 그 이전 수십 년간 계속되어 온 노동정책의 극적인 변화를 의미하였다. 와그너 법에 의하여 미국의 법원은 노동단체 그 자체가 범죄조직이라는 관념을 완전히 버리게 되었으며 자본과 노동 사이의 합리적 관계가 비로소 정착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그리고 단결과 단체협상에 대한 정부정책은 그것을 억압하는 방향에서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서 긍정적으로 인정하고 또 적극적으로 진작하는 방향으로 발전하였다.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와그너 법이 노동운동의 산물이라기보다는 미국 정부 주도아래 이뤄졌다는 것이다. 당시 노동조합 조직률이 지금과 유사한 10%정도 밖에 되지 않았던 점이 이를 반증한다. 때문에 노동자의 구매력 증진이 경기회복에 필수적일 것이라는 “그 당시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운영에 관한 수정자본주의의 이론에 기초해서 나온 노동 정책적 결단”이라는 평가도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 정부와 고용 노동부가 에스제이엠이나 만도 직장폐쇄에 대해 취하고 있는 태도와 완전히 상반됨을 알 수 있다.

 

“구매력 향상을 위해 노동자의 단결권과 단체 협상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럼 왜 미국 정부는 대공황의 한 복판에서 노동조합 활동과 단체협상을 획기적으로 보장해주는 입법안을 통과시켰을까. 대체로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앞서 언급한대로 수요부족을 타개하기 위한 노동자의 구매력 향상이었다. 입법안을 발의했던 와그너 상원의원은 “경제 침체 극복을 위해서는 구매력이 향상되어야 하며, 구매력 향상을 위해 노동자들의 단결권과 단체 협상권이 법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이런 취지는 실제로 와그너 법 전문에 아주 명확히 들어가 있다. 와그너 법의 전문에는 “완전한 결사 자유 또는 실질적인 계약자유를 가지고 있지 않는 근로자와 회사, 또는 여타 형태의 소유자 연맹체로 조직된 사용자 간의 교섭력 불평등이 임금 및 임금 소득자의 구매력을 억압하며, 산업 간의 경쟁 임금과 근로 조건의 안정을 방해해서 거래에 악영향을 미쳐서 계속적인 기업불황을 악화시킨다.”고 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와그너 법에는 독립성을 가진 노동조합은 이윤의 적정한 분배를 주장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노동조합의 활동에 의해서 노동자들의 경제 사정이 호전되어서 시장에서 높은 구매력이 유지될 것이라는 믿음이 전제되어 있었다.”

더 나아가 와그너 상원 의원은 와그너 법이 보다 나은 경제적 균형을 창조해서 보다 나은 경제적 안정을 가져올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와그너 상원 의원은 단체교섭이 높은 임금과 국민소득의 보다 나은 분배를 촉진하며, 올바른 단체교섭은 사용자의 지배가 없는 노동조합에 의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와그너 법은 자유롭고 독립적인 노동운동의 성장을 촉진하는 것, 그 자체가 직접적인 입법목적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와그너 법의 취지는 2012년 세계경제와 한국경제 상황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현재의 장기침체 국면은 부채축소와 함께 극도의 소비위축 등에 비롯된 바가 크므로, 노동자의 임금소득을 포함한 소득과 구매력 증진을 통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스스로 협상력을 강화해서 이를 달성할 수 있도록 노동조합 활동과 단체협상을 정부가 지원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지난 15년 동안 신자유주의적 노동 유연화로 인해 체계적으로 해체되었던 각종 노동자 보호 제도와 장치를 복원하는 과정임은 물론이다. 2012년 지금은 한국경제 회생을 위해 와그너 법의 정신이 담긴 노동법 재개정이 다시 이뤄져야 하는 시점인 것이다.

 

경제 민주화는 여의도가 아니라 산업현장으로 뿌리내려야 한다.

그런데 와그너 법의 취지가 단지 경기회복을 위한 노동자 구매력 증진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33년 미국이 처했던 경제적 불황의 타개를 위한 노동정책의 산물이 와그너 법이면서 동시에 이를 민주주의 함양으로 통해 해결하고자 했다는 데 커다란 의의가 있는 것이다. 와그너 상원의원은 경기회복 못지않게 산업 민주주의(industrial democracy)의 정착을 중시했고 심지어 그는 노동자의 민주적 동의와 실질적 자유의 성취를 거시 경제적 안정과 성장보다 우선시했다는 평가도 있다. “경제 안정은 바람직하지만 사회정의는 불가피하다.”고 했던 와그너 의원의 발언이 그 상징이다.

어쨌든 와그너 법 지지자들은 와그너 법이 노동자들의 노동생활에서 민주적 절차를 앙양시킴으로써 정치적 민주주의에 보다 깊은 뿌리가 마련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정부 영역에서 뿐만 아니라 산업영역에서도 민주주의가 성취되어야 하고, 산업 민주주의는 정부의 민주주의와 동일한 원칙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이 그 핵심이었다. 따라서 와그너 법 지지자들은 단체 교섭을 통해서 노동자들이 그들의 노동생활의 규범과 조건을 결정하는 데 효과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인간적 완전성과 존엄성을 높은 수준으로 성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80년이 지난 한국에서는 경제 민주화라는 깃발 뒤에서 단지 부분파업만으로 직장폐쇄와 용역깡패의 난입이 들어오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와그너 의원은 권위주의 정부와 자유시장이라고 하는 두 가지의 폭정을 종식시킬 정당하고 민주적인 대안의 필요성을 역설했다고 한다. 권위주의 정부도 자유 시장도 거부했던 그가 생각했던 대안은 공적 이익을 보호하는 민주 정부였고 그 일환으로 와그너 법을 생각했다는 평가는 의미가 있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는, 한편에서는 극단적인 시장 자유화로 인한 양극화와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국가가 적절히 시장에 개입하여 경제의 균형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또 한편에서는 그러한 국가의 시장 개입이 1970년대 박정희 시대의 권위주의적 국가 개입이 아니라, 민주적 시장 통제를 의미해야 한다는 점을 확실히 해야 한다.

정부의 민주적 시장개입에서 중요한 핵심은 경제 권력이 집중된 재벌을 규제함과 아울러 노동자와 소상인, 중소기업, 소비자와 시민 등 다른 경제주체들의 권리와 힘을 강화시켜 그들 스스로 협상력을 높이고 대자본과 재벌 경제 권력으로부터 자신의 권리를 지킬 수 있도록 제도적, 법적, 행정적 개입을 하는 것이다. 최근 시민사회에서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 시민연대’를 구성하려는 것도 노동조합이 약한 우리 여건에서 경제권력에 대항하는 시민적 힘을 키우기 위함이다. 이런 여건에서 특히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결성을 더 용이하게 해주고 단체협상 적용범위를 확대할 수 있도록 정부가 개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이것이 경제 민주화에서 권위주의적 개입과 민주적 개입을 나누는 하나의 기준점일 수 있다. 특히 보수적 박근혜 후보의 경제 민주화가 박정희식의 권위주의적 국가 개입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진정한 경제 민주화인지를 판가름하는 기준일 수 있다. 대선 후보들이 경제 민주화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가 있고 경기 회복에 대한 진정한 의지가 있다면, 노동조합 활동을 보장하고 보호하는 행동을 보여야 한다. 특히 이번 만도와 에스제이엠 사태에 대해 자신들의 의견을 밝혀야 한다.

그리고 이제 경제 민주화는 당연히 자본시장의 주주들의 테이블에서 벗어나야 함은 물론, 해당 기업을 뛰어넘어 외연으로는 시민들 속으로 들어가야 하며, 내면으로는 노동자들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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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7김병권/새사연 부원장

 

2012년 상반기가 마무리되고 하반기를 준비하는 시점이다. 5월부터 걱정해 왔던 경기하락이 이제 기정사실화한 느낌이다. 비록 지난 17일 그리스 총선에서 이변이 일어나지 않았고, 유로화 탈퇴사건도 없었지만 그래서 달라진 것은 거의 없어 보인다. 예정된 유럽의 침체와 그리스와 스페인을 필두로 한 위험요인은 그대로 남아 있다. 유럽에 국한되지 않는다. 뉴욕대의 누리엘 루비니 교수는 유럽과 미국·중국이 내년에는 모두 침체로 돌아서는 퍼펙트 스톰이 올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최근 미국 연방준비은행 의장으로 이름을 날렸던 앨런 그린스펀도 "전 세계적 불황이 우려된다"는 언급을 공개적으로 할 정도다.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가 완전히 꺾인 것은 틀림없다. 우리나라 경제도 당초에는 상저하고(上低下高)를 기대했지만, 하반기에 경기가 상승할 것이라는 예측은 이제 완전히 빗나가게 됐다. 이를 입증하듯 가장 최근에 경기전망을 수정한 엘지경제연구원은 올해 성장률을 3.0%로 설정했다. 조만간 2% 수준의 전망이 나올 가능성도 충분하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우리 사회의 주요 의제가 보편복지와 경제 민주화를 역진해 ‘성장과 일자리’로 되돌아가는 느낌이다. 당장 민주통합당의 대선주자들이 ‘스스로’ 성장담론을 부활시키려 하고 있지 않은가. 그들은 ‘성장과 분배의 동행’이라든지 ‘진보적 성장’, ‘사람이 성장동력’이라면서 대선후보 출사표 앞자리에 자진해 성장을 놓고 있다. 아울러 일자리 창출이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뒤이어 조만간 재벌대기업 쪽에서 불황 예상국면을 이유로 분규 자제 요청이나 심지어 임금삭감 요구까지 들고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2009년에도 임금삭감을 들고 나온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성장론과 일자리 창출론 등이 경제위기와 닥쳐올 장기 침체를 막는 향후 5년의 비전이 돼야 할까. 우리는 여기서 잠시 1929년 미국 대공황 이후 35년 제정된 노동보호법인 와그너법(Wagner Act)에서 배울 점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진보적인 법으로 평가받는 와그너법은 30년대 미국이 처했던 경제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노동자의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을 연방법 차원에서 처음으로 인정해 줬다. 뿐만 아니라 이를 방해하려는 사용자들의 부당노동행위를 명시적으로 금지했던 법이다. 나아가 부당노동행위를 물리적으로 억제하기 위해 준 사법기관인 전국노동관계위원회를 설치하게 했던 법이다.

그러면 어떻게 노동자의 단결권과 단체교섭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것이 불황을 타개하는 대책이 될 수 있는가. 와그너법 전문에 의하면 “완전한 결사의 자유 또는 실질적인 계약자유를 가지고 있는 않은 근로자와 사용자 사이의 교섭력 불평등은 임금 및 임금 소득자의 구매력을 억압하며, 산업 간 경쟁임금과 근로조건의 안정을 방해해 지속적으로 기업 불황을 악화시킨다”고 돼 있다. 즉 입법자인 와그너 상원의원에 의하면 노동자의 단체교섭은 높은 임금과 국민소득을 확보하게 해 보다 나은 분배를 촉진하며, 올바른 단체교섭은 사용자의 지배가 없는 독립적인 노동조합에 의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현재의 경제위기와 비견되는, 29년 대공황을 탈출하기 위해 노동정책에서 사용됐던 해법이었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와그너법의 입법취지가 앞서 언급한 경기회복에 그치는 것이 아님을 하나 더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와그너 의원은 경기회복 못지않게 산업 민주주의의 정착을 중시했다. 심지어 노동자의 민주적 동의와 실질적 자유의 성취를 경제적 안정과 성장보다 우선했다는 연구도 있다.(김진희·2006·'뉴딜 단체협상법의 생성과 변형')

특히 와그너는 자유시장과 권위주의 정부 모두를 폭정으로 비난했다. 자유시장은 실상 노동자의 권리가 상실되고, 계약관계를 통해 노동자가 사용주의 볼모가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와그너는 권위주의 정부와 자유시장이라고 하는 두 가지의 폭정을 종식시킬 정당하고 민주적인 대안의 필요성을 역설했다고 한다. 권위주의 정부도 자유시장도 거부했던 그가 생각했던 대안은 공적이익을 보호하는 민주정부였다. 그 일환으로 와그너법을 생각했다. 지금의 표현법으로 바꾸면 노동 민주화이자 경제 민주화라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어떤 시사점을 찾아낼 수 있을까. 닥쳐올 경제위기와 장기 침체를 극복할 대안은 노동시장 억제를 통해서도 아니고, 단순히 일자리 개수를 늘리는 정책도 아니다. 노동자 권익을 보장하고 협상력을 높여 더 나은 임금과 소득을 확보하게 함으로써 구매력을 높이는 대안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노동자의 민주적 권리와 결사를 보장하는 노동 민주화, 경제 민주화를 통해서 달성된다. 단순한 성장전략이 아니라 경제 민주화를 통한 성장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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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6 / 26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1990년대 클린턴 대통령 시절 노동부 장관을 지낸 경제학자 로버트 라이시(Robert Reich)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비판 강도를 높이고 있다. 현재 미국 대선 국면에서 공화당 롬니 후보의 감세 주장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기도 하다.

최근 세계경제가 다시 흔들리면서 그린스펀(Greenspan) 전 연준(Fed) 의장조차 “전 세계적 불황이 우려된다.”고 할 정도의 상황이 전개되자 그가 다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경기회복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1% 부유층에게 집중되고 있는 부를 재분배하여 중산층에게 돌려줌으로써 중산층의 구매력을 확충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 요지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서 1929년 대공황 이후에 공황 극복을 위해 ‘뉴딜’이라는 이름으로 미국 정부가 시행했던 과감한 정책들, 1)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과감한 조치들, 2) 실업 보험을 포함한 사회 안전망 제정, 3) 공공일자리 창출을 위한 대대적인 프로젝트, 4) 대형 사회 인프라 구축 계획, 5) 강화된 조세 제도, 6) 금융 규제 제도 등을 들고 있다.

어찌 보면 현재의 위기가 실질적으로 1929년의 대공황에 비견될 수 있는 것이라면, 그리고 1929년 당시와 달리 2008년 이후 신속하게 취해진 각종 구제 금융과 경기부양책이 단지 위기를 지연시킨데 머무른 것이었다면, 위기를 타개하는 해법들도 명실상부하게 1929년 이후에 실행되었던 대규모 조치와 견줄 수 있는 그런 혁신적인 해법들이 제시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현재까지 ‘약간의 경기 자극정책’ 이후 소란스런 ‘긴축’과 ‘통화 완화’정책이 사실상 전부였다.

특히 노동자들의 단결권과 단체협상권을 명문화하여 보호하고 사용주들의 부당노동행위를 적극적으로 금지하여 ‘노동자 권리장전’이라고 불렀던 1935년의 ‘와그너법(Wagner Act)’을 위기 극복의 주요 대책으로 거명한 것은 매우 중요하다. “독립성을 가진 노동조합 활동을 보장해주면 이들이 이윤의 적정한 분배를 요구하고, 그로 인해 노동자들의 경제사정이 호전되어서 시장에서 높은 구매력을 창출”할 것이라고 와그너법은 기대했기 때문이다. 노동자 임금 깎고 파업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단결권을 보장해줘서 임금 올리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불황 타개책이라는 것이다.

아래 소개하는 로버트 라이시의 글은 1929년 대공황과 그를 극복해왔던 일련의 정책들에서 지금 무엇을 배워야 할 것인지 간결하면서도 복합적인 암시를 주고 있다.

 

경기회복 여부는 중산층의 구매력에 달렸다

(Recovery depends on middle-class spending power)


 

2012년 6월 22일

샌프란시스코 게이트(www.sfgate.com)

로버트 라이시(Robert Reich)

 

현재 미국 경기 회복세가 매우 부진한 원인은 단순히 유럽의 부채위기 때문만은 아니다. 더구나 우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기업이나 부자들에게 물리는 세금이 너무 높다거나, 빈곤층에게 주는 사회 안전망이 너무 관대하다거나, 기업에 대한 규제가 너무 부담이 되고 있기 때문도 아니다. 심지어는 오바마 행정부가 케인즈주의적 경기 부양정책을 충분히 쓰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자유주의자들의 주장도 진정한 원인이라고 할 수 없다.

회복부진의 진짜 원인은 바로 우리 눈앞에 있다. 그것은 미국 경제활동의 70%를 차지하는 미국 소비자들이 경제를 활성화시킬 만큼 충분히 소비 할 현금이 없기 때문이고, 그렇다고 2008년 위기 이전에 했던 것처럼 더 이상 부채를 동원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혹시 의심스러우면, 연준에서 발표한 소비자 금융조사 결과를 보라. 중위 가구 소득이 2007년 49,600 달러에서 2010년에 45,800달러로 7.7%가 감소한 것으로 나와 있다.

경제성장에 따른 모든 소득은 1% 부유층에게로 집중되어왔고, 그래서 부자가 된 그들은 벌어들인 소득의 절반도 소비를 하지 않는다. 그들은 국내에서 소비하지 않은 나머지 소득으로 고수익이 보장되는 세계 어느 곳이라도 찾아서 투자한다.

2차 대전 후 30년 동안에는 미국 중산층의 소득 증가가 미국경제 성장의 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1980년대 이후 최근 수십 년 동안 중산층의 상대적 소득 부진이 미국 경제의 붕괴로 이어졌다. 1980년대가 시작되면서 세계화와 자동화는 중위 임금에 대한 하방 압력을 높였다. 사용주들은 수익을 높이기 위해 노동조합을 파괴했다. 규제가 풀려간 금융시장은 실물경제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대부분 가정에서 임금은 고통스럽도록 조금밖에 인상되지 않았다. 여성들은 가정 소득을 지탱하기 위해 임금 노동의 대열로 뛰어들었다. 실직을 하게 된 가정들은 주택 값이 올라가고 있었기에 주택담보 대출을 받아 부채를 늘려갔다. 그 때 주택거품이 터졌던 것이다. 연준의 가장 최근 보고서는 주택거품 붕괴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보여준다. 자료에 의하면 2007년에서 2010년 사이에 미국 중위 가구의 순자산 가치는 거의 40%가 떨어져서 1992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전형적인 가구의 자산은 주식이 아니라 주택인데, 2006년 이후 주택가치가 3분의 1 까지 떨어졌던 것이다.

미국경제는 여전히 헤매고 있는 중인데, 그것은 미국 중산층들이 여전히 바닥에서 탈출할 만큼 충분한 소비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할까. 사실 단기적으로 보면 바닥에서 뒤로 미끄러지지 않기만 바랄 뿐 경기회복의 단순한 해법은 없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경제성장으로부터 발생하는 결과를 중산층들이 훨씬 더 많이 갖도록 하는 것이 해법이다.

어떻게? 우리는 역사로부터 배울 필요가 있다. 1920년대에도 전 기간 내내 소득은 최상층에게 집중되었다. 1928년까지 1%부자들의 소득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3.94%까지 올라갔다. (2007년에 다시 1% 소득 비중은 23.5%에 근접했다.) 바로 그 시점에서 거품이 터지고 대공황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러나 바로 그 때 미국은 사용자들에게 조직노동자들과 신뢰의 협약을 요구하는 와그너 법(Wagner Act)*을 만들었고 사회 안전망과 실업보험을 도입했다. 공공사업국(Works Projects Administration)과 시민보전단(Civil Conservation Corps)**을 만들었다. 최저 임금제도를 만들었다. 금융에서는 증권법과 글래스-스티걸법을 만들었다.

1941년에 미국이 전쟁에 참전하면서 신체 건강한 미국 성인들이 대규모 동원되었고 그들의 호주머니에 돈을 채워주었다. 전쟁이 끝난 후, 제대군인원호법(GI bill)***에 따라 퇴역하는 수백만의 군인들을 대학에 보냈다. 고등교육을 받은 거대한 층이 형성된 것이다. 1956년 전미주계간방위고속도로망법(National Interstate and Defense Highways Act)과 같은 법으로 인해 대규모 인프라투자가 시행되었다. 부자에 대한 세율은 1981년까지 최소 70% 까지 유지되고 있었다.

결과 1957년까지 1%부자의 소득비중은 전체 소득 가운데 10.1%로 떨어졌다. 세계사에서 가장 호황기를 누릴 수 있는 동력이 되었던 중산층을 성장시키는 방향으로 대부분의 소득이 분배되었다. 이제 이해가 되었을 것이다. 적어도 생산성이 향상되는 수준 이상의 분배 몫을 주장하기위해, 2차 대전 이후 30년 동안 중산층이 보유했던 협상력 수준을 다시 회복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경기 바닥에서 탈출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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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와그너 법(Wagner Act): 정식명칭은 전국노동관계법(National Labor Relations Act)이다. 1933년에 제정된  노동권을 보장한 전국산업부흥법이 오히려 노동분쟁을 촉발하자 1935년 상원의원 R.F.와그너가 제안하여 만들어진 법이다. 노동자의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사용주의 부당노동행위를 금지하였다. 이 법률로 말미암아 미국의 노동자 권리와 노동운동은 획기적인 발전을 보았다.

** 공공사업국(PWA; Works Projects Administration)과 시민보전단(Civil Conservation Corps): 1933년 6월 공공사업국이 발족되어 도로와 학교 건물과 같이 단순한 토목 건설 공사부터 댐, 전함, 잠수함과 같은 장기적인 프로젝트들을 담당했다. 우리가 잘 아는 요크타운(Yorktown)과 엔터프라이즈(Enterprise) 항공모함도 PWA 프로젝트였다. 또한 1930년대 대공황 시기에 실업상태에 있는 청년들로 시민보전단(CCC·Civilian Conservation Corps)을 조직해 조림, 산불감시, 산림휴양 공간 조성 등 산림사업에 투입하여 300만 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다. 오늘날 애팔래치안 트레일과 요세미티 옐로스톤 숲 등 아름다운 국립공원은 이러한 사업의 산물이다.

*** 제대군인원호법(GI bill): 미국의 퇴역군인들에게 교육, 주택, 보험, 의료 및 직업훈련의 기회를 제공하는 1944년에 개시한 제반 법률과 프로그램 등을 말한다. 이들 프로그램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돌아온 퇴역군인들을 사회에 통합시키고 미국의 노동인구(work force)를 증가시키기 위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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