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이슈 /정치2009.09.08 09:41
1. 급부상하고 있는 개헌논의

최근 청와대와 국회의장실의 주도로 개헌논의와 선거구제 개편논의가 시작되었다. 민주당은 제도의 변경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지만 논의가 제기된 배경을 의심하며, 국면전환용 제도개편 논의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것이 기본입장임을 밝혔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아직 뚜렷한 입장을 표명하고 있지는 않지만, 현행 ‘제왕적’ 대통령제와 지역감정을 부추긴다고 비난받고 있는 소선거구제도의 본질적 문제가 제도상의 변화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청와대와 여당의 진짜 의도가 설령 국면전환에 있다 하더라도 계속해서 논의 자체를 막을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일보에서 국회의원 전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18대 국회 임기 내 개헌추진에 찬성하는 의원이 157명으로 전체의 89.7퍼센트를 차지했다(2009.9.3). 이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 중에 개헌을 매듭짓고 차기 대통령을 새 헌법에 따라 뽑자”는 입장을 표명했다.

5년 단임 대통령제와 선거구제 개편 논의는 노무현 정권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민주당은 논의에 반대할 명분과 의지 모두 없어 보인다. 단지 한동안 정치적 상황이 다소 청와대와 여당에 불리하게 흘러왔기에 바로 말을 받아주면 호조건을 제대로 활용 못 할 것 같아 잠시 뜸을 들이고 있을 뿐이다. 민노당과 진보신당의 경우 원칙론에 입각해 권력구조 개편논의에 대해 한 동안 반대 입장을 고수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개헌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의 수준이 높은 상황은 아니지만, 국회에서 공식적인 논의가 시작되면 급속하게 개헌정국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 전개될 상황에 대한 대응책을 미리 차분하게 준비한다는 차원에서 우선 헌법연구 자문위원회가 이야기하는 헌법 개정의 필요성과 개선방향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헌법연구 자문위원회는 개헌 논의 시 참고하기 위해 지난 해 9월부터 국회의장 및 원내정당으로부터 추천을 받은 13명의 헌법 및 정치/행정 관련 전문가로 구성된 국회의장 자문기구이다.

개헌논의에 대한 새사연의 기본입장은 “’대통령 권력 분산 개헌’이 아닌 ’국민주권 확대 개헌’하자”(김병권, 2009.7.17)에서 이미 밝힌 바 있다. 앞으로는 정계와 학계, 시민단체에서 나오는 다양한 목소리를 종합하고 비판적으로 분석해 구체적인 내용을 전달하면서, 좀 더 세밀한 입장들을 체계적으로 세워나가도록 하겠다.

2. 개헌의 필요성과 개정방향

헌법연구자문위원회는 현행 헌법이 1987년 개정된 이래 20여 년 동안 정치/경제/사회 환경이 급속하게 변했다는 사실과 대통령에 대한 지나친 권력집중의 문제를 헌법 개정의 가장 큰 필요성으로 들고 있다. 이는 첫째로 그 동안 “생명/과학/기술/정보/통신 분야의 급격한 발전과 이에 따른 사회변화”가 있어왔고, 현행 헌법으로는 효과적으로 담아 낼 수 없는 국민들의 삶의 양식이 생겨났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둘째는 5년 단임제 대통령제를 기본내용으로 하고 있는 현행 권력구조가 대의제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기본원칙 중 하나인 권력의 분산과 견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지 못하다는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 헌법연구자문위원회는 (1) 새로운 기본권을 헌법적으로 수용하고, 기존 기본권의 보장도 강화하며, (2) 현행 대통령 중심제의 지나친 권력독점이 낳은 문제점들을 지양하고 민주주의에 충실한 권력구조 설계를 헌법 개정의 기본방향으로 제시하고 있다. 위원회에서는 이러한 기본방향에 따라 개헌 내용을 기본권 분야, 권력구조 분야, 헌법의 완결성 제고 분야로 나누어 구체적 안을 제시하고 있다.

정치권과 언론의 주된 관심사는 권력구조 분야에 집중되어 있지만, 기본권 분야에 권고되고 있는 개정조항도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으로 보인다. 전반적인 방향은 국민의 기본권에 관한 규정을 좀 더 명확히 표현하는 것이다. 자문위원회가 제시한 구체적 조항 중 몇 개를 골라보면 다음과 같다.

­ -평등권의 강화를 위해 출생/인종/연령/정치적 신조, 신체적 조건이나 정신적 장애 등 차별금지사유를 추가하고, 남녀평등에 관한 국가의무조항 신설
­ -언론/출판의 자유를 집회/결사의 자유와 분리하여 그 명칭을 ‘표현의 자유’로 하고, 언론/출판의 자유에 대한 제한규정을 삭제하여 보장을 강화
­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상의 자유가 가지는 중요성을 감안하여 현행 헌법의 해석상 인정되고 있는 사상의 자유를 명문화
­ -경제과정에서의 사회정의의 요청을 반영하여 소비자기본권의 내용을 구체화한 명문조항을 국가목표조항의 형식으로 신설
­ -기본권이 입법/행정/사법 등 국가작용을 직접 구속한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국가의 기본권 보장의무를 별도 조항으로 규정

권력구조 분야는 국회관련 제도 정비와 정부형태 변경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관심의 초점인 정부형태 변경은 다음 절에서 따로 정리하겠다.

국회관련 제도정비의 기본내용은 상/하원 양원제로의 변경이다. 위원회는 미국식 양원제와 흡사한 형태로, 하원은 4년 임기 직선제로 의원을 선출하고, 상원은 6년 임기 직선제로 하되 2년마다 1/3씩 교체하도록 하자고 제안한다. 또한 법률안은 양원 모두에서 의결되어야 법률로 확정되고, 양원의 의사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에는 양원협의회에서 단일안을 만들어 양원에서 다시 의결하는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 밖의 주요 내용으로는 다음의 다섯 가지를 꼽을 수 있다. (1) 정기회와 임시회의 구분 조항을 삭제해 국회의 상시화, (2) 감사원의 회계검사 기능을 국회로 이관하고 국회소속 하에 회계검사기관을 설치하되, 그 직무상 독립성을 헌법에 명시, (3) 감사원은 직무감찰에 한하여 기능을 수행하게 되므로 헌법상 기관에서 법률상 기관으로 조정, (4) 지출승인법 제정 또는 세출위원회 설치 등 부대적인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면서 예산법률주의를 채택, (5) 국민소환제도의 도입은 시기상조이며, 지방자치 차원에서 주민소환제의 경험이 일정 정도 축적된 후에 도입검토.

위원회가 설정한 국회관련 제도정비의 주된 목표는 현재 행정부에 속해 있는 예산편성권 및 회계검사권을 국회로 이관하고, 정부의 법률안 제출권을 삭제해 법률도입에 대한 의회의 고유권한을 강화하는 것이다. 또한 양원제를 도입해 정당 간, 입법부와 행정부 간 극단적 대립 상황을 조정하고 타협 문화가 정착할 수 있도록 도모하는 것이다.

헌법의 완결성 제고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대법원장과 대법관,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을 국회에서 선출하자는 것이다. 현재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대통령/국회/대법원장이 3명씩 선임하게 되어있고, 대법원장, 대법관, 헌법재판소장은 추천자문위원회가 추천한 인사들에 대해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되어 있다. 개정 권고안에서도 헌법재판소 재판관 3명에 대한 대법원장 추천권은 유지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자문위원회의 이러한 권고는 현행 헌법 체계에서 사법기관이 활동의 독립성을 가질 수는 있지만 그 구성에서 있어서는 행정부와 입법부에 종속되어 있어 3권 분립 원칙을 크게 훼손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개선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은 분명히 개선되어야 하지만 위원회의 권고안이 취지를 충분히 살리기에는 미흡하다고 판단된다. 그 한계점은 결론에서 종합적으로 설명하겠다.

국회관련 제도정비와 사법부의 완결성 제고는 정부형태 변경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문제를 살펴보도록 하자.

3. 권력구조 개편

자문위원회가 국민 기본권 보장을 확대하여야 한다는 취지를 헌법 개정안 권고에 포함시키긴 했지만 개정안의 주된 줄기는 3권 분립의 강화이다. 따라서 정부형태의 변화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위원회는 대통령제, 의원내각제, 이원정부제를 면밀히 검토한 후 이원정부제와 대통령제를 복수 제안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각각의 주된 내용을 요약해 보겠다.

1) 이원정부제
이원정부제는 행정권을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나누어 갖는 정부형태이다.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계엄권, 국회(하원)해산권, 법률안 재의 요구권, 국민투표 부의권 등을 행사하고 국무총리는 행정수반으로서 일상적인 국정활동에 관한 권한과 내각구성권을 행사한다. 하지만, 대통령이 국무총리 임명권은 대통령이 갖는다. 행정부와 국회의 관계에서는 국회가 내각불신임권을 갖고 행정권을 견제하되, 미리 국무총리를 선출해 놓고 이 권한을 행사하도록 하는 건설적 불신임제 도입을 권고하고 있다.

이원정부제는 대통령제와 내각제를 절충해 놓은 정부형태이다. 지나치게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현행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고, 일반 행정에 관한 권한을 의회에서 선출된 국무총리와 의원 각료를 포함하고 있는 내각에 이양하는 것이 주요 기조이다. 대통령의 권력축소를 일정 정도 보상하면서 국회와 내각에 대한 견제권을 대통령에게 부여하기 위해 대통령의 국회해산권을 국무총리 신임요구동의안과 연계시킨다. 즉 대통령이 국무총리 신임이나 중요정책 법률안과 신임을 연계해 동의안을 요구하고, 이것이 부결되면 자동으로 국회가 해산되는 것이다. 단, 국회(하원) 구성일부터 2년 이내에는 행사가 불가능하게 제한한다.

2) 대통령제-4년 중임, 정/부통령제
자문위원회가 제시한 대통령제는 현행 대통령제의 의원내각제적 요소를 배제하고 권력 분립적 내용을 강화한 정부형태이다. 현재 미국이 가지고 있는 형태와 흡사한 것으로 4년 중임으로 하여, 재선 가능성이 대통령의 국정 책임성을 강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또한 위원회는 부통령제를 도입하여 대통령의 궐위/사고로 인한 승계 또는 권한대행 시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위원회가 제시한 대통령제의 경우 현재 대통령에게 부여된 권한의 내용이 크게 바뀌지는 않는다. 다만 앞에서 이미 요약했던 국회와 사법부에 관련된 제도정비를 통해 3권 분립을 명확히 확립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4. 몇 가지 생각해 봐야 할 문제들

언론에서 몇 번 크게 다루어 주목을 끌기 시작했지만 개헌에 관한 논의가 아직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다. 이런 시점에서 개헌 논의의 향방을 미리 점치거나 입장을 서둘러 정리하기보다는 제안된 내용을 차분히 살펴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논의가 제기되고 있는 정치적 맥락도 잘 파악해야 한다.

정치/경제/사회 환경의 급속한 변화와 그에 따라 생겨난 국민들의 새로운 생활양식을 헌법상의 기본권 확장으로 수용하고, 대통령에게 지나치게 쏠려 있는 현행 권력구조를 3권 분립 원칙에 좀 더 조응하는 형태로 바꿔야 한다는 기본 취지는 옳다고 본다.

성공회대 연구교수로 재직 중인 보노짓 후세인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 헌법과 법률체계는 외국인 거주자가 100만이 넘는 현실을 전혀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 새로운 헌법이 1987년 이후의 사회적 변화를 적극 수용하고, 양성평등,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등 여러 가지 기본권과 관련해서도 헌법상 규정을 명확히 함으로써 기본권을 확장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인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또한 현재의 독립적 권한이 하나도 없는 국무총리제, 행정부주도 입법체제, 사법부 구성의 종속성 등이 꼭 개정되어야 할 사항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자문위원회가 소위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 원인을 너무 3권 분립이라는 틀 안에서만 협소하게 분석하고 있어, 권력층과 국민들과의 불균형 문제와 이를 제도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 원칙을 헌법 안에 수용할 수 있는 방안들은 전혀 고려의 대상조차 되지 못했다.

그 결과 국회관련 제도 정비에서 “국민소환제도의 도입은 시기상조이며, 지방자치 차원에서 주민소환제의 경험이 일정 정도 축적된 후에 도입을 검토”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하며, 주관적인 판단으로 국민적 기본권의 확대를 원천봉쇄하고 있다. 또한 3권 분립의 강화를 위해 현재 대통령의 영향력이 결정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대법원장, 대법관, 헌법재판소장의 추천/임명 과정을 의회에서 선출하는 것으로 개정하자는 제안도 그리 흡족하지 못하다. 진정 3권 분립 원칙을 강화하고자 한다면 이들은 국민들이 선출해야 한다. 여기에 현재 법무부 지휘아래 있는 검찰총장을 국민선출을 통해 뽑아 검찰을 독립시키는 방안도 추가되어야 한다.

권력기관 사이의 균형과 견제를 제도적으로 강화하는 것만으론 불충분하다. 이원정부제의 경우 내각불신임-국회해산권을 대통령에게만 부여하지 말고 국민들이 불신임 할 수 있는 권한도 헌법상 명시되어 있어야 한다. 또한 대통령을 국민들이 불신임 할 수 있는 권한도 헌법에 표현되어야 한다. 물론 그 조건은 엄격하게 규정되어야 한다. 현재 시대적 변화가 요구하는 가장 중심적인 개헌 방향은 국민의 주권이 좀 더 직접적으로 표현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무시하고 이루어지는 권력구조 개편 논의는 미흡할 수밖에 없다.

또한 현재 가장 신뢰도가 낮은 기관으로 뽑히고 있는 국회가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내세워 헌법 개정을 제기할 자격이 있는가도 생각해 봐야 한다. 자신들이 저지른 온갖 악행을 제도 탓으로 돌리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가 강하게 드러난다. 미디어법 날치기에서 보여주었듯이 법질서를 스스로 무너트리며 반민주주의적 행태를 일삼는 자들이 헌법 개정을 통해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겠다는 것이 너무나 위선적이다.

기본권 분야의 개정에서도 국민의 기본권을 확대하겠다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헌법을 무시하는 공권력을 제어하는 제도적 장치를 헌법에 포함하는 것이 더욱 더 중요하다. 서울광장과 광화문 광장에서 아예 집회를 못하게 하고, 경찰이 임의로 반헌법적으로 집회를 허가제로 전환시킬 수 있다면 헌법상의 기본권 확대는 무의미하다.

이밖에도 많은 사항들이 검토되고 문제제기 돼야 하겠지만 이 글에서는 헌법연구 자문위원회가 제기한 내용과 직접 관련된 부분에만 국한해서 생각해 봐야할 요소들을 제기해 보았다. 다음에는 선거구제 개편 논의와 관련해 많이 언급되고 있는 제도형태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박형준/새사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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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주제별 이슈 2009.07.21 13:24

개헌논의, 피할 수 없다면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하자

7월 17일 제헌절을 전후해서 개헌논의가 활발하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직선제를 쟁취해 만들어진 87년 헌법을 고치자는 얘기다. 사실 87년 개헌 이후, 멀리는 1990년 3당 합당시 내각제 개헌 이면합의부터 가깝게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기 말인 2007년 제안한 4년 중임제 개헌(이른바 원 포인트 개헌)에 이르기까지 정치적인 위기 국면마다 2, 3년에 한번 꼴로 정치권에서 개헌논의가 튀어 나오곤 했다.

그럴 때면 우리 국민들은 진지하게 그 내용을 뜯어보기 보다는 '또 무슨 정치적인 술수가 있지 않나'하는 의심부터 하곤 했다. 이는 국민의 탓이 아니다. 정치권에서 개헌 논의를 늘 '정략적'으로 국민들에게 던져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양상이 좀 다르다. 개헌논의가 나름대로 일정한 체계를 갖추면서 상당히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우선 김형오 국회의장이 직접 개헌 논의를 이끌어 오고 있고, 국회의장 직속으로 자문기구인 '헌법연구자문위원회'까지 두어 개헌연구를 해왔다. 자문위원회는 7월 말까지 '헌법 개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또한 여야를 포괄하여 국회의원 전체 재적인원 2/3 가까이 되는 186명이 지난해 7월에 '미래한국헌법연구회'를 결성하여 개헌 공론화를 시도해왔다. 헌법연구회의 목표는 18대 국회 임기 내 개헌이다. 연구회는 이미 지난 7월 9, 10일 창립 1주년 기념 개헌토론회를 개최했고, 16일 개헌관련 국제학술토론회까지 주관하고 있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개헌 시한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개헌이 되려면 18대 국회 전반기에 해야 하기 때문에 "내년(2010년) 6월 지방선거 전에 (개헌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KBS '일요 진단', 2009.7.13). 김원기 전 국회의장은 아예 "내년(2010) 1~2월에 개헌안 공고, 5월에 국회 개헌안을 통과시켜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를 함께 실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구체적인 일정까지 제안했다(연합뉴스 2009.7.14). 잘하면 2010년에 우리 국민은 지자체 장과 의원 투표, 교육감 투표에 이어 개헌 국민투표까지 하게 될지 모르겠다.

이상의 상황은 현재의 개헌 논의가 과거처럼 정치 지도자들이 정치위기 국면의 돌파용으로 활용하던 수준을 넘어서 상당한 지속성과 체계성을 갖고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전히 국민들은 정치권에서 확대되고 있는 개헌 논의 속에 숨은 '정략적 의도'에 강한 불신을 가지고 있지만 이쯤 되면 앞으로 개헌논의는 국민의 생각과 무관하게 정치권 전체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어찌할 것인가. 국민들이 외면해도 개헌논의의 확산이 불가피하다면, 우리 국민도 더 이상 개헌논의를 피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반대로 정치 엘리트들에게 이익이 되는 개헌이 아니라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개헌을 어떻게 만들어갈지 그 의사를 적극적으로 밝혀야 할 시점에 온 것이다. 피할 수 없다면 정면으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제왕적 대통령 권한'을 줄인다면 그 권한은 국민에게 이양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정치권은 도대체 어떤 이유로 무슨 개헌을 하자고 하는 것일까. 여러 가지 복잡한 내용을 제거하고 단순화시키면 핵심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권한을 분산시키자'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번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까지 맞물리면서 퇴임 후 전임 대통령의 불행이 재임 중 과도한 권력 집중에서 유래되었고 5년 단임이라는 제약까지 보태져 증폭되었다는 것이 그 근거다. 그리고 제왕적 대통령 권한을 분산시키는 대안으로 '미국식 4년 중임 대통령제', '프랑스식 이원 집정부제(분권형 대통령제)' 그리고 '독일식 내각제' 등이 제안되고 있다.

법치국가에서 한 나라의 정체성과 핵심 권력구조를 결정하는 헌법의 중요성은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5년 단위로 투표하는 대통령 선거보다 개헌과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가 국민들에게는 더 중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일반 법률과 달리 헌법은 법리적인 판단 이전에,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큰 흐름의 변화에 대한 정치적 판단과 국민의 의지가 선행적으로 중요하다. 개헌에 대한 국민의 판단이 일차적인 중요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특히 개헌의 주요 논점이 국가 권력구조의 개편을 다루는 것이라면, 거기에는 무엇보다도 민의를 좀 더 정확히 반영하는 권력구조 전환이 이루어지도록 개헌 방향이 서야 한다. 그러나 현재 개헌논의에는 민의를 어떻게 더 잘 반영할 것인가보다는 기존 정치권력집단 사이의 권력 분배에 더 관심이 있어 보인다. 과거에 나온 논의 가운데 '대통령 결선투표제'같은 그 나마의 민의 반영 시스템 등이 전혀 논의 틀에 들어가 있지 않은 것만 보아도 이는 입증된다.

사실 현재 권력구조에서 나오는 여러 문제점들이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을 총리와 나누거나 국회와 나눈다고 해결될까. 그렇지 않다. 총리나 국회가 민의를 더 대변한다고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권한이 집중되면서 다양한 문제가 발생한다는 사실은 타당할지 모르나 그 권한의 일부를 총리나 국회가 넘겨받는다고 민의가 반영된 권력구조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과거의 이라크 파병이나 한미 FTA강행 그리고 지금의 국정 난맥상을 보면 명확하다.

이라크 파병이나 한미 FTA를 대통령의 권력으로 추진하고 밀어붙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국회가 이를 막았는가? 거꾸로 동의를 해주었기 때문에 실행될 수 있었다. 최근 1년 동안의 이명박 대통령의 민주주의 후퇴나 신자유주의 정책 강행을 국회가 막았는가? 역시 그렇지 않다. 최근 수년간 민의에 어긋나는 제왕적 권력행사에는 항상 행정부와 입법부가 함께 했다.

대통령의 제왕적 권한을 제한하고 그 권한의 일부를 물려받는다면 그것은 총리나 국회, 사법부 등이 아니다. 대통령의 제왕적 권한 자체도 원래 국민이 준 것이라면 그 권한 중 일부를 주권자인 국민이 회수하면 되는 것이다.

즉, 대통령의 권한에 제약을 가해야 한다면 '국민이 직접' 권한 제약을 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 투표권의 대폭적인 확대, 대통령과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 소환권의 보장, 국회 입법에 대한 국민 발안권의 허용과 같은 방법을 통해 국민이 직접 대통령의 권한에 제약을 가할 수 있는 기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헌법에 의해 국민의 주권행사 범위와 폭을 대폭 확대하여 대통령 권한도, 국회의원 권한도 제약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지난 수년간 계속된 한미 FTA반대 운동도, 2008년 두 달 넘게 서울거리를 덮었던 촛불 항쟁도, 2009년 500만이 참여했던 노 전 대통령 서거 추모행렬도 모두 헌법적 틀 내에서 국민이 자신의 주권을 행사하지 못하면서 발생된 거리의 의사표시였다. 그러나 국민의 의사는 아무런 법적인 강제력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이명박 정부와 국회는 이를 무시한 채 국민의 뜻에 반하는 정국운영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따라서 새사연은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개헌이 필요하다면, 특히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하는 개헌'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국민 주권을 확대하는 개헌'이 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것이야 말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하는 헌법 제 1조 2항의 정신을 헌법 안에 더 풍부하게 구현하는 길이 될 것이다.

어떤 시대의 변화를 개헌에 반영할 것인가

김형오 국회의장은 개헌의 당위성을 역설하면서 87년 이후 20여 년간 변화된 시대 상황을 언급했다. 그는 "87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세계적으로 자랑하는 정보화, 90년 이후에 들어선 지방화, 세계화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도 (87년 헌법이) 고쳐져야" 한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지난 20년 동안의 한국 역사의 줄기에서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새사연은 헌법에 새로이 반영할 정도의 두 가지 큰 변화를 지목하고자 한다.

첫째는 위기국면에 몰리고 있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대전환이라고 하는 역사적 변화다. 1987년 이후 최근까지 우리 경제체제의 근원적인 변화를 지목한다면 그것은 경제의 금융화, 노동 유연화, 기업의 단기 이익화로 표현되는 신자유주의 경제로의 전환이다. 경제의 신자유주의화는 상시적인 고용불안과 양극화 확대, 경제 성장률의 하락, 경기의 불안정성을 구조화하면서 우리 국민에게 엄청난 경제생활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더구나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로 신자유주의 시스템 자체의 심각한 결함이 노정되고, 위기국면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 경제의 대전환은 현재 최대의 국민적 화두가 되고 있다.

그런데 확인해 둘 것은 1987년 헌법의 경제 조항은 결코 '신자유주의적'이거나 '시장 지상주의적'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우리 헌법 119조 2항에는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시장 지상주의와 우리 헌법정신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정이 이러했기 때문에 보수 세력은 개헌을 틈타 119조 2항을 아예 없애려는 모색을 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더 큰 문제는 헌법 119조 2항이 엄연히 살아있는 데도 우리 정부는 국민경제의 균형적 발전을 위해 해야 할 역할을 포기해왔다는 사실이다.

헌법을 통해 국민경제의 균형적 성장과 적정한 소득분배, 시장 지배력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국가의 적극적인 임무와 역할을 더욱 확고부동한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더 나아가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에 의해 특히 심각해진 국민의 노동권을 더 확대해야 한다. 우리 헌법 제 32조는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사회적ㆍ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하여야 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최저임금제를 시행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정부는 국민의 노동권을 '시장'의 논리에 철저히 맡겨 버리지 않았는가.

두 번째는 남북관계의 변화다. 암흑과 같은 반공체제가 완고히 유지되고 있던 1987년과 비교해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영역이 바로 6.15공동선언과 10.4 선언으로 대표되는 남북관계의 변화다. 87년 개헌 당시에는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던 남북 화해와 협력의 상황이 21세기가 접어들면서 극적으로 열린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변화를 반영한다면 마땅히 이를 헌법에 반영해야 한다.

더구나 이제는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불가역적인 수준으로 남북관계가 진전되었다고 생각했던 국민들의 믿음이 최근 뿌리에서부터 무너지고 있다. 십 수 년 동안 어렵게 이루어온 남북화해 분위기를 5년 임기의 이명박 정부가 단 1년 만에 원점으로 돌리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제 더 이상 특정 정부에 의해 남북관계가 역진되지 않도록, 진정 불가역적인 변화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6.15 공동선언의 정신과 원칙을 헌법에 명시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국민주권의 확대개헌'을 중심으로 시장의 실패를 적극 관리하기 위한 개헌, 남북화해를 불가역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한 개헌을 해야 할 것이다.

정치권의 개헌시도는 국민에게는 힘겨운 싸움이 될 것

그런데 개헌 논의를 보고 있는 국민의 입장에서 가장 난감한 장애물이 놓여있다. 그것은 현재 헌법상으로 우리 국민은 개헌안을 만들 권리도 그것을 발안할 권리도, 논의에 참여할 권리도 없다는 것이다. 오직 대통령이나 국회가 만들어준 개헌안에 '찬성, 반대'할 권리만이 주어졌을 뿐이다.

더구나 개헌의 열쇠를 쥐고 있는 현재의 국회는 여당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심히 불균형한 역학구조를 가지고 있는 실정이다. 즉, 현재 국회가 개헌을 책임지는 것에 대해 국민이 신뢰할 수 없다는 뜻이다. 국민이 원하는 개헌안이 나올 턱이 없고 그것을 합법적으로 막을 길도 없다. 어찌할 것인가.

가장 이상적인 방안은 현재 국회와 별도로 개헌안을 작성하고 국민투표에 회부할 역할을 할 수 있는 임시적 '제헌 의회'를 선거를 통해 구성하는 것이겠지만 이 자체도 현재의 국회가 결정을 해야 하니 가능성이 없다. 국민주권을 확대하는 개헌이 국민주권이 확대되어야 가능하다는 역설에 직면한 것이다.

정치권에서 확산되고 있는 개헌논의는 국민이 외면한다고 수그러들 것 같지 않다. 그렇다고 여당이 절대 다수인 국회에서 민의를 반영한 개헌안이 나오기를 기다려 찬, 반 투표를 할 수도 없다. 국민에게 남아있는 유일한 방법은 문자 그대로 일종의 저항권을 동원해 '국민운동'을 전개하는 것뿐이다. 우리 국민의 미래 삶을 규정할 국가적인 중대변화가 개헌을 통해 일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면 우리 국민에게 달리 선택의 여지는 없는 것 아닐까. 이것이 앞으로 1년 동안 개헌이라는 이름으로 정치권에서 치열하게 권력 밥그릇 쟁투가 벌어질 아수라장에서 우리 국민이 해야 할 일이 될 것이다.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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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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