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2.13 고병수/새사연 이사 

오늘도 아침부터 대기실에는 환자들이 꽉 들어차 있다. 보통 때 같으면 틈틈이 인터넷도 돌아보면서 쉬엄쉬엄 진료할 텐데, 요즘은 그렇지 못하다. 바로 독감 때문이다. 쉴 틈 없이 바쁜 것도 문제지만, 그만큼 환자들과 실강이를 벌여야 할 일이 많아지기도 한다.

“이 정도 증상이면 독감이라고 봐야 합니다.”
“독감이라고요? 그러면 입원해야 하나요?”
“아니, 꼭 그럴 필요는 없고..... 보통 감기 보다는 몸살도 심하고 오래 갈 거지만, 잘 쉬면서 증상만 가라앉히면 됩니다.”
“타미플루를 먹어야겠죠?”
“꼭 그 약을 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조심하시고, 증상을 잘 조절하는 게 최선입니다.”
“독감이라면서 치료를 안 하면 어떻게 합니까?”

“.....”

이제는 전 국민이 알고 있는 명약, 아니 유명한 약인 ‘타미플루’를 요구할 때 굳이 필요 없다고 말하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는 말다툼이 되고 만다. 독감이라면 당연히 치료해야 되는 거 아니냐부터 문제가 생기면 책임질거냐까지 짜증나는 대화가 이어진다.

독감 치료약은 없다

2년 전 신종플루의 공포가 전 세계를 뒤덮을 때 상종가를 친 약이 바로 타미플루라는 독감 전용인 항바이러스약이다. 스위스가 본사이지만 미국의 아무개 전 부통령이 많은 주식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도 있는 이 약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독감 치료에 효과가 없다고 해서 실제 의사들은 잘 쓰지도 않고, 거의 폐기처분 될 뻔했었다. 그러나 재작년 신종플루가 대유행할 때 효과가 있다고 발표가 나는 바람에 창고에 잔뜩 약을 쌓아두었던 로슈는 엄청난 이익을 거두기도 했다.

독감은 인플루엔자(Influenza)라는 바이러스이다. 바이러스들은 그 변이가 쉽게 되기 때문에 해마다 다른 종류의 치료제를 만들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어서 그것들을 치료하는 항바이러스제는 그다지 효과적으로 만들어지지 못한다. 그 많은 바이러스 중에서 B형 간염 치료제나 몇몇 치료제 외에는 잘 쓰이지 않는 이유도 바이러스의 특징 때문이다.

일선 의사들은 효과가 그다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독감 치료제를 달라면 그것을 줄 수밖에 없다. 어떨 때는 효과 생각하지 않고 주기도 한다. 왜냐하면 나중에 독감인 줄 알았으면서 왜 치료제를 주지 않았느냐고 환자들이 항의하거나 만일의 사태에서 법적 문제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약이 건강보험으로 되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아서 자기 부담을 해야 하기 때문에 아주 비싸다. 효과도 불분명하고 비싸기만 한 약을 꼭 써야 할까?

독감, 겁내지 말자.

독감(毒感)이라고 표현된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지독한 감기’라고 되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감기의 일종이고, 아무 문제가 없는 줄 알게 된다. 그러나 인플루엔자(Influenza)를 뜻하는 독감은 감기와 전혀 다른 원인과 증상을 갖는다. 감기는 콧물, 목의 통증과 몸살과 같은 증상으로 시작되면서 기침으로 이어지는 호흡기 증상을 보이지만, 인플루엔자는 처음부터 인후통(목 통증)이 심하고 고열을 보이면서 까무라칠 정도로 사람을 힘들게 만든다. 감기가 고양이라면 인플루엔자는 호랑이라고 볼 수 있다. 힘든 증상까지는 참을만 하지만, 어린 아이나 어르신들, 면역력이 약하거나 중증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합병증으로 폐렴이나 뇌염으로 진행되어 사망에 이르게 되기가 쉽다는 게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사람들이 인플루엔자라는 존재를 너무 무시하기 때문에 질병관리본부나 전문가들은 독감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이제는 영어식 표현이기는 하지만 인플루엔자라는 말을 그냥 쓰고 있다. 독감이라고 써서 ‘독한 감기’로 오해하는 것 보다는 훨씬 낫다고 본다.

 인플루엔자가 인류를 괴롭힌 것은 오래됐지만, 처음 그 존재감을 알리게 된 것은 1918~1920년 사이에 대유행하면서 2,000~4,000만 명 이상을 사망하게 만든 스페인 인플루엔자("Spanish flu")이다. 이것이 2년 전 우리에게 나타났던 신종플루라는 것과 같은 형태인 A/H₁N₁이다. 1968년 또 유행했던 홍콩 인플루엔자(A/H₃N₂)는 150만 명 이상이 사망하고, 2009년 신종플루(A/H₁N₁)도 꽤 많은 사망자를 냈다.

 

                                                                                                             


(위) 1918년 스페인 인플루엔자 당시 집단 치료소 장면 (아래) 1919년 미국 적십자 대원들이 인플루엔자로 인한 사망자를 싣는 모습. 당시 사망자는 셀 수 없을 정도이고, 직전의 1차 세계대전 사망자의 두 배를 넘을 정도라고 한다.

한국에서 보통의 인플루엔자들은 계절형으로서 A/H₃N₂형이 많다. 이들은 11월경부터 이듬해 3, 4월까지 발생하기 쉬워서 예방접종도 그 시기를 목표로 하게 된다. 가끔 변종 인플루엔자가 생기면 대유행을 하게 되기도 하고, 특히 2009년의 신종플루는 A/H₁N₁형태를 띠는데, 이것들은 봄, 여름에도 기승을 부렸다는 특징이 있어서 비계절성 인플루엔자라고 한다. 하지만, 흔히 겨울에 찾아오는 계절성 인플루엔자나 변이 비계절성이든, 변종 인플루엔자이든 같은 족속들이어서 예방과 치료는 비슷하다.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섞인 비말(droplet)이 다른 사람에게 감염되는 것이다. 그래서 마스크를 착용하라고 하는 것이고, 대게 감염된 환자와는 2m 이상의 거리를 두라고 하며,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는 가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손에 묻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외출하고 돌아오면 비누로 손을 깨끗이 씻으라고 하게 된다. 그리고 치료약은 별 볼일 없어도 예방접종의 효과는 확실해서 필요한 사람들은 반드시 맞는 게 좋다.

예방법도 있고, 잘 쉬면서 견디면 낫는 것이 독감, 아니 인플루엔자이다. 무섭지만, 실제로는 하나도 안 무서운 질병이지 않은가? 요즘과 같이 인플루엔자 유행주의보(2012년 1월 5일 발령)가 내려지는 시기에는 무리를 하지 않는 게 좋고, 혹여 피곤한 일을 했을 경우에는 하루, 이틀은 푹 쉬어주자. 그리고 손도 자주 씻어주자. 이것이 타미플루보다 더 훌륭한 예방법이고 치료법이다.

신고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1.03.03     고병수/새사연 이사

 

“요즘 감기는 열이 심하고 장염이 같이 생기니까 먹는 거 조심하세요. 약 잘 먹이고요.‘

 

이렇게 아이를 진찰하고 보내려는데, 엄마는 뭔가 망설이는 듯 하더니 몇 마디 물어본다.

 

‘혹시, 약에는 항생제 안 썼죠?’

 

물론 항생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에 물어보는 것이라 생각해서 처방한 약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고 보냈다. 그런데 요즘 그런 물음이 많아졌다. 약에 무슨 성분이 들어갔는지 알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환자 권리이고, 그래서 처방정도 두 장 주도록 보건복지부에서 권유하고 있으니까 응당 그러려니 했는데.....

 

며칠 전에는 스테로이드제 혹시 들어갔냐고 물어오는 엄마가 있었다. 스테로이드제는 전문 중에서도 전문약이기 때문에 쉽게 물어볼 성질이 아닌데, 나는 오히려 왜 물어보는 건지 궁금해졌다.

 

“어, 그건 왜 물어보세요?”

“아니, 다름이 아니라..... 그제 TV에서 감기약에 스테로이드제라는 걸 많이 쓴다고 하다라고요. 그래서.....”

 

아, 또 TV로구나. 이놈의 TV에서 뭔 얘기만 나오면 며칠 또 엄청 바빠지는 경험을 했기 때문에 신경이 거슬렸다. 도대체 방송된 내용이 어떤 건지 궁금해서 진료 끝나고 녹화된 거라도 한번 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항생제 남용 국가, 대한민국

 

보신 분들은 다들 내용을 알 거라서 대충 요약만 해보면,

 

감기약에 항생제 남용이 너무 많더라.....

어떤 경우에는 강력한 염증 억제약인 스테로이드제까지 처방하더라.....

물론 꼭 필요할 때는 쓰지만 문제가 있더라......

 

이런 내용이다.

 

나도 감기에는 항생제를 안 쓰려고 무지 애를 쓰고 있기 때문에 ‘불만제로’라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항생제 부분은 충분히 공감이 갔다. 하지만 내용에 다소 문제가 있다.

 

독일의 경우를 예로 들었는데, 항생제 처방률이 아주 낮은 이유를 보니 세균 감염 여부를 알 수 있는 키트를 사용하고 결과에 따라 항생제를 쓴다는 내용이다. 아주 훌륭한 방법이기는 하나 우리에게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닌 것이 문제이다. 그 키트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맞는 검사비용이 들어가는데, 그 비용을 국가나 환자가 부담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독일은 국가에서 비용 부담하고, 그것에 안 맞는 항생제 처방은 규제를 가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능할까? 나라에서 인정해줄까?

 

방송에 나왔다시피 우리나라 항생제 처방률은 외국에 비해서도 그렇게 높은 편이 아니었다. OECD 평균 21.3%로, 나라별 비교를 해보면 벨기에 27.1%, 한국 23.8%, 독일 14.2%였다. 물론 항생제 처방이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알겠는데, 마치 우리나라가 엄청 높은 것처럼 얘기하고, 그것을 처방하는 의사들은 마치 부도덕한 부류인 것처럼 몰고 가는 것이 맘에 안 들었다.

 

 

억, 감기에 스테로이드제를 사용하다니.....

 

항생제보다 더 시청자들을 자극하는 것은 감기에 스테로이드제를 사용한다는 내용이었다. 스테로이드제란 콩팥 위에 얹혀져있는 부신이란 곳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부신피질호르몬이라고도 말한다. 그것을 치료용 약으로 만든 것인데, 염증을 억제하는 작용이 강력하고, 기분을 좋게 하기도 한다.

 

의료에서는 심한 아토피나 두드러기 등 피부 질환에 많이 사용하고, 심한 관절염에 제한적으로 사용한다. 흔히 입이 돌아갔다는 병, 즉 얼굴신경마비에는 고용량으로 치료를 하기도 하고, 천식이나 각종 질환에도 적절한 용량으로 사용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용하게 된다.

 

부작용으로는 부종, 피부염, 골다공증, 당뇨 등이 있는데, 보통은 장기간 복용할 때 문제가 되고, 의사들이 필요에 의해 단기간 사용할 때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래 전에 어느 약국이 피부치료를 잘 하더라, 관절약을 잘 쓰더라 하면서 유명했던 일이 있었다. 흔히 말하는 표현으로 거기 약을 쓰면 ‘직방이더라’라고 할 정도이다. 그게 이 스테로이드제를 혼합해서 약에 넣었기 때문에 피부병이 좋아지고, 관절이 좋아지는 효과였다.

 

할머니들은 그 약을 쓰다 보니 다른 데를 가지도 못하고, 그 약국만 가게 된다. 전국에서 소문 듣고 가기도 한다. 문제는 오래 사용하다보니 오히려 피부병을 악화시키고, 관절이 녹아나가는 현상이 벌어지고, 면역력이 약해져서 세균감염에 취약해지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부작용들은 장기가 사용할 때의 문제들이었다.

 

방송에서 스테로이드제의 위험성을 시청자들에게 보도한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필요에 의해 약을 써야 하는 것까지 부도덕하고, 무리한 투약인 것처럼 해버리면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병의 치료를 위해서 필요할 때 사용할 수는 있다고 마무리에서 짧게 얘기하기는 했지만, 이미 보도의 상당 부분에서 ‘스테로이드 = 독약’인 것처럼 표현해버렸으니 괜찮다는 뒷말이 시청자들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

 

얼마 전 일본의 의사가 한 말이 생각난다. ‘잃어버린 10년’이란 제목인데, 10여년 전 일본에서 아토피 치료에 약간씩 사용했던 스테로이드제를 나쁜 것으로 몰아가는 바람에 그 약을 잘 못 쓰게 되었고, 대체의약품 개발 붐이 일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아토피를 치료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오히려 병이 더 심해져서 사람들이 고생하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적절히 사용하라고 한 약을 쓰지 못하게 막아버리면 안 된다. 스테로이드제 사용 지침과 부작용에 대해 의사들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사용 지침 범위를 벗어나서 어느 정도는 사용할 수도 있다. 나도 잘 안 낫는 알러지비염이나 편도염이 심할 경우에 2~3일 정도 간단히 쓰기도 한다. 확실히 효과가 있어서 환자들의 상태가 아주 좋아진다.

 

 

재작년인가? 아이들 감기에 ‘아세타아미노펜’이라는 해열제를 사용하는 것이 문제라고 보도한 적이 있었다. 이유는 간독성이 있어서 황달이나 간염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진료실에 들어오는 아이 엄마들마다 해열제를 꼭 먹어야 한다느니, 안 쓰도록 해달라느니 말이 많았다. 분명 의학 교과서에는 과용량이나 치사량을 사용할 때라고 씌여 있는데, 해열제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듯한 보도가 되어버려서 의사들이 참 난처했었다.

 

참고로 난 아이들을 키울 때, 서로 약을 먹겠다고 아우성을 치면, 해열제가 달작지근하기 때문에 한 숟갈 떠서 먹이기도 했다. 물론 열이 없어도.....

 

방송에서 한 번의 보도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면서 사람들의 인식에 심각한 영향을 주는 것이 어제 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이번의 방송 프로그램 내용도 앞뒤를 좀 생각하면서 했으면 참 괜찮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신고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