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사연



새사연은 2008년부터 매 년 진보 정책 연구소 최초로 <전망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습니다경제주거노동복지 분야를 중심으로 세계의 흐름 속에서 한국 사회를 진단하여 사회를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고 새로운 사회로의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세계경제 위기사라진 것이 아니라 우리 안으로 들어와


세계경제는 이미 “최장기 수준에서 경기침체(secular stagnation)”에 진입했다. 이 말의 의미는 경제가 항상 침체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침체를 벗어가기 위해서는 상당한 정도의 금융 불안정을 치를 수밖에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의미이다. 경제 위기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다.


새사연은 6대 쟁점 중심으로 2017년 세계경제 전망을 내었다. 그리고 우리 경제에 주는 시사점으로 4가지를 간추렸다.


첫째, 무엇보다 우리나라 경제의 체질을 개선하고 강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구조조정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이다. 노동자의 일방적인 희생만을 강요하는 구조조정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세계경제 전망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경제의 체질 개선 및 강화라는 미명아래 자본의 일방적인 수익추구만 관철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둘째, 내수 회복에 대한 노동중심성이 논의되고 대안으로 마련되어야한다. 이는 시민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힘을 마련하고 세력으로 존재하는가 여부와 관련 있다. 가장 나쁜 유형의 내수 회복은 생계비 부담을 배가하는 가운데 노동을 배제하는 투자가 지속되는 것이다. 우리가 바라는 바람직한 내수 회복은 청년, 여성, 노인 고용이 증가하고 지나치게 비싼 사회서비스의 가격을 낮추는 가운데 형성되는 것이다.


셋째, 우리나라 무역수지 흑자가 국민경제 이득으로 이어지는 틀은 지나치게 대기업 위주로 되어 있어 바뀌어야 한다. 대기업의 중소, 중견기업의 납품 단가 후려치기를 통한 상품의 국제경쟁력 확보는 국민경제의 성과가 국민들의 부를 증진시키고 생활수준을 향상시키는데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없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며 청산되어야 한다. 환율, 수입조건 및 여러 측면에서 중소기업의 이익이 보장되어야 하며, 대기업과도 상생적인 합의구조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정부의 바람직한 산업정책과 미래 먹거리 전망 속에서 적극적으로 고려되고 수행되어야 한다.


넷째, 무엇보다 리스크 관리에 주안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2017년은 정치 리스크와 계속되고 있는 저성장 기조가 섞여 주의 깊게 상황을 점검하고 기민하게 대응하는 노력이 필요한 해이다. 국가 수준의 컨트롤 타워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주목해야 하는 부분이 가계부채이다. 현재 가계부채는 더 이상 개별 정책과 조치만으로는 경착륙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국가수준의 컨트롤 타워를 마련하고 대응하는 일이 시급하다. 물론 중요한 것은 국가수준의 컨트롤 타워를 어떤 시각과 누구의 통제 하에 둘 것인가이다.



불평등의 해결촛불시민혁명에서 창의적 사고와 실천의 영감 찾아야


국내외 정치 정세에 대한 포괄적인 전망의 핵심 키워드는 불평등이다. 2017년은 역사의 변곡점을 통과하는 전형적인 한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2017년은 낡은 시대를 뒤로 하고 새로운 시대를 본격적으로 탐색하는 한 해가 되어야한다.


우리는 지금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국면에 직면해 있다. 너무 많은 과제와 씨름해야 하는 힘겨운 상황이다. 하지만 그 한 복판을 관통하는 핵심 문제는 딱 하나이다. 불평등 심화이다. 전 세계적 범위에 걸쳐 불평등은 최고 부자 8명이 하위 36억 명과 맞먹는 재산을 갖고 있을 정도의 극단적 수준에 이르렀다. 불평등 심화는 우리가 액면 그대로 경험 하고 있듯이 경제 체제를 마비시킬 정도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불평등 심화의 끝은 공멸이다. 보수 성향의 다보스포럼이 불평등을 향후 10년 동안 인류를 위협하는 최대 요소로 간주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해석된다.


문제는 불평등을 어떻게 해소시킬 것인가에 있다.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은 2차 분배 수단인 조세와 3차 분배 수단인 복지를 활용하는 것이다. 이 둘은 여전히 유효하기도 하고 절실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에만 의지해서는 문제를 온전히 해결할 수 없다. 국가 우위 시대도 지나갔다. 세계화 국면에서 기업은 유리한 곳을 골라 자유롭게 이동해 왔다. 추가증세를 용이하게 했던 장기 고도성장도 마감되었다. 유럽형 복지국가 모델이 황금기를 누리던 시절과 상황이 판이하게 다른 것이다.


따라서 불평등과 대결하는 우리의 자세는 불평등을 원천적으로 해소시키는 방향에서 사회경제 구조의 혁신적인 재구성을 함께 추진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 구체적인 경로와 방법 역시 이전에 없었던 전혀 새로운 것일 가능성이 높다. 그 어느 때보다도 창의적 사고와 실천이 질실히 요구되는 시대이다. 그런 점에서 촛불시민혁명은 풍부한 영감의 원천이 될 것이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은 촛불시민혁명 이후 새로운 국면을 탐색하는 데 적극 나설 것이다.



주택시장붕괴 막고 공공의 이익이 극대화되는 방향으로 구조조정되어야


2017년 주택시장은 그간 미뤄졌던 구조조정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될 것으로 보인다. 소득은 정체되어 있고 주택가격은 더 많이 올라 있다. 주택 마련을 위하여 거액의 대출을 받은 소유자들은 금리인상에 따라 더 많은 소득을 원리금 상환에 사용해야만 한다.


집 없는 서민들은 높아진 전세금을 마련할 방법이 없어 도심지에서 더 멀어지고 있다. 젊은 청년층의 주거불안은 훨씬 심각하다. 번듯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청춘들은 알바를 전전하면서 1평이 되지 않는 고시원에 거주하면서도 자기 소득의 30% 이상을 소비하고 있다. 청년세대의 과도한 주거비 지출은 결혼과 출산을 기피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여 대한민국의 생존조차 위협하고 있다. 소득수준에 맞지 않는 주택가격과 임대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미래를 계획할 수 없다.


다른 한편 금리인상과 공급과잉에 대한 공포가 쓰나미처럼 몰려오고 있다. 차기정부는 주택시장의 경착륙을 예방하고 관리하는 것에 많은 시간과 재원을 쏟아 부어야 할지 모른다. 지금과 같은 경기침체가 계속되면 건설과 주택으로 경기를 부양하자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올 것이다. 전 재산이 주택 하나에 몰려 있는 사람들은 가격조정을 감내하지 못하고 인위적인 경기부양 대책을 요구할 수 있다. 예상되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주택시장의 구조조정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이다.


주택시장의 붕괴를 막고 구조조정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서민들의 주거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 우선 소득수준에 맞지 않는 주택구매를 조장하는 금융정책은 전면적으로 바뀌어야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형국이지만 추가적인 피해를 막아야 할 필요는 충분하다. 전월세 불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논의되었던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 갱신청구권이 도입되어야 한다. 또한 임대시장과 매매시장의 안정화는 동시에 진행되어야 효과가 발휘될 수 있다. 더 나아가 저소득층이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의 공급이 확대되어야 한다. 공공임대주택 공급은 전세임대와 분양전환 임대 등 단기적으로 공급호수를 맞추는 시도보다는 장기적으로 임대주택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임대주택의 공급을 확대하여야 한다. 공공임대주택의 공급은 해당 주택거주자의 임대료 부담을 완화하고 장기적 주택시장 임대료 완화에 기여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주택공급에서 공공의 역할을 강화하여야 한다. 주택공급을 민간에 의존하는 방식은 필연적으로 주택가격을 높이거나 극단적인 주택공급 위축을 가져올 수 있다. 가구수 증가에 따른 주택수요를 예측하고 공공이 적극적으로 대응하여야 한다. LH 부채 문제를 핑계로 방기하였던 공공택지 공급을 확대하고 적정 수준의 주택을 공공(the public)이 공급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위험 사회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국민들에게 투자해야


저성장 시대에 불안한 노동시장, 협소해진 사회안전망에 최근 정재계 게이트까지 겹치면서 사회 불안은 더 커져만 간다. 자살률 세계 최고, 노인빈곤율 세계 최고, 저출산율 세계 최고에 사회 불신까지 더해지면서 우리 사회의 위험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하지만 우리 사회 안전핀 역할을 해온 사회복지망은 최순실 국정농단에 직격탄을 맞으며 후퇴한 사실이 낱낱이 밝혀지고 있다.


복지국가의 실현가능성은 결국 의지의 문제이며, 이는 곧 재정으로 반영될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는 ‘아버지의 꿈이 복지국가’라며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 기조를 전면에 내걸었으나, 이는 결국 ‘갈등의 복지’로 그 한계를 드러내었다. 현 정부의 정책은 이름 그대로 개인이 맞닥뜨린 생애에 필요한 복지를 제공하겠다는 취지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협소한 복지 예산에 복지공약은 줄줄이 뒷걸음치고, 국가가 책임져야 할 부담이 지자체나 개인에게 전가되면서 매해 복지 책임을 둘러싸고 ‘갈등’이 반복되고 있다.


2013년 집권 초기에는 ‘박근혜 정부 공약 가계부’까지 발표하며, 세입과 세출 관리만으로 복지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해 공약을 이행하겠는 의지를 밝혔다(18대 대통령선거 새누리당 정책공약, 2012).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약속한 기초노령연금, 무상보육, 초등 온종일돌봄, 4대중증질환 비급여 부담, 반값등록금 등 대부분이 애초 시행하기로 했던 수준보다 후퇴하였다. 심지어 고교 무상 교육처럼 아예 시작도 못한 공약도 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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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7년 2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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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일/ 새사연 연구이사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수출제조업에서와 달리 내수산업 특히 내수서비스업 업체들의 경우, 원청 대기업의 수익률은 현저하게 높은 데 반해 1차 하청협력업체의 수익률은 기이할 정도로 낮다. 또한 이들 내수업종의 1차 하청협력업체들의 다수가 별다른 기술력이나 품질능력에 구애받지 않는 제품과 서비스를 납품하고 공급한다는 특징도 가진다. 저임금이 하청·외주 계약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요인이 되는 것은 건설과 유통, 통신, 시스템통합과 같은 내수산업이다. 이들 업체에서 경쟁력이 큰 요인은 기술능력 및 품질능력이 아니라 종업원의 인건비를 낮추는 능력이다. 물론 전자와 자동차, 기계, 조선 등 수출제조업 업종에서도 2차 또는 3차 이하 하청납품의 경우 기술력과 품질능력은 비슷비슷하게 낮으므로 누가 더 저임금의 노동력을 잘 갈취하여 저가로 납품할 수 있느냐가 핵심적인 경쟁 요인이 되는 일이 다반사이다.


따라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이들 업종과 하청에서 나타나는 납품 또는 외주(outsourcing) 계약은 형식상으로는 ‘법률상 독립적인 업체들’ 사이에서 ‘상거래 계약’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저임금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한 ‘위장된 근로계약’으로, 즉 노예계약이다.


기업 간 상거래 계약으로 위장된 저임금 노동계약


대표적인 사례가 건설업이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목격하는 저임금의 건설 현장 노동자들은 다단계 하도급이 기술력 및 품질능력 향상과 거의 무관하며 악질적인 간접고용 즉 ‘상거래 계약의 가면을 쓴 저임금 착취 근로계약’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통상 한국의 건설 사업에서는 발주처가 발주를 하면 현대건설, 삼성물산 등 종합건설회사들이 공개경쟁 입찰에 참여하여 그 중에서 가장 적은 금액을 적어낸 회사가 시행사를 맡는다. 이것을 최저가 입찰 제도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들 종합건설회사들은 자기 회사의 종업원들을 데리고 직접 그 건설업무를 수행하기 보다는 토목, 방수, 설비, 전기, 인테리어 등 각 분야별 전문 건설업체인 1차 하청업체들에게 하청을 준다. 여기까지는 합법이다.


그러나 전문건설업체인 1차 하청업체가 직접 자기가 고용한 정규직 종업원들을 데리고 공사에 나서는 경우는 드물다. 1차 하청업체들은 프리랜서처럼 활동하는 팀장급 인력들을 보유하는데, 팀장급은 자신과 함께 일할 10~30여 명을 데리고 다닌다. 이들 팀장급 인력이 바로 2차 하청업체 사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자기 팀에 목수와 철근공, 비계공 등 30명 정도를 거느리고 있다. 이들 팀장은 하도급 계약의 중간에서 수익금을 챙긴다. 이들 팀장은 자신이 직접 데리고 다니는 인력으로도 부족하면 또 다른 사람들도 채용한다. ‘오야지’라고 하는 더 작은 팀장을 부르거나, 여의치 않으면 인력회사에 날품팔이 인력을 요청한다.


건설업계에서는 저임금 착취가 발생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먼저 최저가 낙찰 방식이기 때문에 시행사인 종합건설회사에서 인건비를 넉넉히 책정받기 어렵다. 게다가 둘째로, 다단계 하청을 거치면서 각 단계의 하청회사 업주가 자기 나름의 수익을 제하고 (물론 이 역시 갈수록 적은 수익성으로) 재하청을 주기 때문에 각 단계 하청회사 종업원의 임금이 매번 10~20%씩 깎인다. 1차 하청업체(전문건설업체)가 자기 회사 노동력을 정규직으로 고용하면 노동자 임금과 안전설비에 더 많은 돈을 쓸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는다. 다시 2차, 3차 재하청을 주게 되고, 그렇게 아래로 내려가면서 그 중간 단계 업체사장들이 매번 5~10% 수익을 남긴다. 그 결과 건설업계 전반에서 임금과 안전 수준이 낮아진다. 우리나라 건설현장에서 OECD 최악의 산업재해가 발생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삼성SDS는 어떻게 삼성 동물원을 운영하나


산업 현장의 밑바닥에서 일하는 노동력이 다단계 하청을 통해 갈취당하는 또 다른 대표적인 업종이 IT서비스업으로서, 소프트웨어 개발이 전형적이다. 삼성SDS, LG CNS, SK C&C 등과 같은 대형 IT서비스업체들은 정부기관 등 발주처로부터 대형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젝트를 수주한다. 그리고는 그 개발 사업의 각 요소들을 여러 개로 쪼개어 다수의 외주업체에 아웃소싱한다. 그 과정에서 2차, 3차 하도급 계약이 이뤄지는데, 이 때문에 본래의 개발 프로젝트 비용의 상당액이 중간 수수료 즉 중간착취로 빠져나간다. 따라서 실제의 소프트웨어 개발 현업에서 근무하는 개발자의 손에 들어가는 임금과 보상은 크게 줄어든다.


IT서비스 분야에 종사하는 개발자들은 이 같은 하도급 관행이 소프트웨어 개발업계에 만연한 저임금과 고용불안, 과중한 업무의 궁극적인 원인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비판해왔다. 벤처기업가 안철수가 갑자기 2012년에 대선 후보급 정치인으로 뜨게 된 것도 2010년 당시 그가 청춘콘서트마다 ‘삼성 동물원’을 비판하면서 삼성SDS 같은 대형 소프트웨어 발주 업체의 불공정한 하청 관행을 비판하면서부터였다.


한국의 소프트웨어 개발은 건설업과 자주 비교된다. ‘갑을병정’으로 이어지는 하도급 구조에서 그 말단에 있는 ‘정’은 ‘주말도 없고 인간 취급을 못 받는 개발자’이다. 슈퍼갑은 삼성SDS와 LG CNS, SK C&C 같은 대기업들이다. 그들이 하도급을 주면 그 도급(하청) 업체가 또다시 재하청을 준다. 갑은 직접 개발하는 건 없고 하청업체가 수행하는 개발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역할만 한다. 슈퍼갑 대기업의 과장들이 자기보다 열 살 많은 하도급 업체 사장한테 막말과 욕설을 할 정도이다. 그만큼 갑을(甲乙) 관계가 심각하다.


하도급 계약은 치열한 경쟁 입찰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완전경쟁 시장이다. 수요자(갑)의 숫자는 적은데 을과 병, 정은 우글우글 거릴 정도로 숫자가 많으니 공급자(납품업체)들은 치열하게 경쟁한다. 납품업체들은 서로 눈치껏 가격을 내리고 개발기간을 짧게 하겠다고 제시한다. 인건비 원가도 못 건지는 저가의 개발 프로젝트인데도 하청업체들은 손해를 감수하고 경쟁 입찰에 참여한다. 최저 가격에 최단의 개발기간을 제시한 외주업체가 그 상거래(하도급) 계약을 따낸다.


완전경쟁 시장에 가까운 외주납품 입찰에서 저가에 낙찰한 하청업체는 원가를 줄이기 위해 인건비를 줄이고 개발기간을 단축한다. 5명이 5개월에 마쳐야 마땅할 개발 프로젝트에 5개월간 3명만 투입되거나 5명이 3개월 만에 끝내라고 독촉한다. 두 경우 모두 근무자들이 야근과 철야를 하지 않고서는 개발을 끝낼 수가 없다. 하도급 단계가 늘어날수록 실제 말단의 소프트웨어 개발 인력에게 돌아오는 보수는 적어지고 개발자는 저임금과 중노동, 장시간 노동에 시달린다. 


... 본문 더 보기 


* 그동안  정승일의 <'진짜' 경제 민주화로> 시리즈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시리즈는 근간『누가 가짜 경제민주화를 말하는가』(2017, 책담)로 다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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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일/ 새사연 연구이사 




2차 이하 하청협력업체의 경우는 여전히 법률상 중소기업들이 훨씬 많다. 따라서 불공정한 하청납품거래에서 문제는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 재벌계 원천 대기업과 1차 하청협력업체 간의 거래가 아니라 1차 하청납품업체와 2차, 3차 하청납품업체간의 하도급 거래인 경우가 많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여, 몇 년 전에는 하도급법을 개정해 하청기업 보호법의 적용 범위가 2차, 3차 업체들로도 넓혀졌다. 그럼에도 대다수 야권 인사들은 이러한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는 현대차와 삼성전자로 대표되는 수출제조업의 하청 납품거래를 한번 깊이 살펴보자. 노무현 정부에 이어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추진되는 대기업-중소기업 동반성장 또는 상생협력 정책은 하나같이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 재벌계 수출제조업 대기업을 주요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일부 야권 경제학자들은 한 목소리로 이들 수출제조업 대기업의 높은 수익성(영업이익)의 원천은 무자비한 납품 단가 인하와 기술탈취 등 불공정한 거래에 있다는 듯이 비판한다. 이들과 거래하는 하청협력업체들의 수익성(영업이익)이 낮은 것은 이 때문이라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앞선 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전자와 자동차의 경우 1차 하청협력업체들의 수익성이 의외로 높다. 이 점에 대해서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먼저 전자와 자동차 제조업의 1차 협력 하청기업들의 경우 이미 상장 대기업으로 크게 발돋움한 회사들이 많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삼성전자 1차 협력업체’ 또는 ‘현대차 1차 협력업체’라고 찾아보라. 상당수의 상장 대기업들이 검색될 것이다.


야권 경제학자들이 제기하는 대기업-중소기업 간 격차와 불평등 심화의 문제는 주로 재벌계 대기업에 비해 중소기업들의 수익성이 낮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논의에서 간과된 점이 있다. 재벌계 대기업에 납품하는 1차 협력업체들의 상당수가 이미 법률상 대기업으로 성장해있다는 명백한 현실이다.


대기업-중소기업 간 수익성 격차를 비판하면서 재벌계 대기업의 갑질 하청 횡포에 대해 말하는 거의 모든 기존 연구는 ‘법률상 중소기업’과 ‘법률상 대기업’ 사이의 수익률 격차 및 임금 격차를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 하지만 그런 연구에서 사용하는 데이터에 반영된 격차는 재벌계 대기업과 그 1차 협력하청 업체 사이의 납품 거래가 아니다. 오히려 1차 협력업체 대기업들과 2차 협력 중소기업 사이의 격차일 확률이 훨씬 더 높다. 앞에서 본 곽정수(2010)의 삼성전자, 현대차와 그 부품업체들 간의 수익성 격차 분석 역시 ‘법률상 중소기업’으로 분류된 부품 제조업체들을 대상으로 분석한 연구의 결과이다.


2차 이하 하청협력업체의 경우는 여전히 법률상 중소기업들이 훨씬 많다. 따라서 불공정한 하청납품거래에서 문제는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 재벌계 원천 대기업과 1차 하청협력업체 간의 거래가 아니라 1차 하청납품업체와 2차, 3차 하청납품업체간의 하도급 거래인 경우가 많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여, 몇 년 전에는 하도급법을 개정해 하청기업 보호법의 적용 범위가 2차, 3차 업체들로도 넓혀졌다. 그럼에도 대다수 야권 인사들은 이러한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이미 대기업으로 성장한 많은 1차 협력사들의 경우 국내에 둔 생산공장만 해도 전국에 여러 개다. 더구나 법률상 독립된 중소기업으로 신고된 여러 개의 동종 부품 제조·납품 공장들도 그곳을 실제로 방문해 보면 하나의 오너 경영 하에 있는 여러 개의 하청기업들이 하나의 기업그룹(중소기업 그룹)을 이루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는 그 회사를 직접 방문하지 않고서는 알 수가 없다. 이러한 현실은 기업의 재무제표 수치와 이의 통계 처리에 의존해온 기존의 대기업-중소기업 간 매출액-수익성 분석 연구에서 드러나지 않은 채 은폐되어 있다.


더구나 이들은 해외에도 여러 개의 생산 공장을 가지고 있다. 예컨대 현대·기아차와 삼성전자, LG전자에 납품하는 1차 하청협력업체들은 이미 15년 전부터 중국과 인도, 유럽, 미국, 베트남, 태국 등지로 현대·기아차 및 삼성전자, LG전자 등과 함께 현지에 동반 진출하였다. 중국과 베트남 등지의 현대·기아차 공장 및 삼성전자 공장 인근에 이들 1차 협력하청 업체들이 납품 공장을 지어 놓고 현지 매출을 늘리는 것이다.


예컨대 현대자동차가 기아자동차와 통합한 직후인 2000년까지만 해도 현대기아차는 아직 해외 공장을 본격적으로 늘리지 않았고, 당시만 해도 현대기아차와 해외에 동반 진출한 부품 협력사는 28개 사에 불과했다. 그러나 2011년에는 1차 협력사 233개와 2차 협력사 197개 등 총 430개의 자동차 부품 협력사들이 현대기아차와 해외에 동반 진출해 현지 법인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지역별로는 중국에 277개사가 같이 진출했고, 인도에 60개, 미국에 40개, 유럽에 27개, 러시아 11개사, 브라질 8개, 터키에 7개 회사였다.


이들 하청 협력업체의 매출액은 해외 현지공장 매출을 합하여 수천억 원에 달하며 전 세계 매출이 1조 원이 넘는 경우도 꽤 많다. 게다가 해외 현지 공장들에서 일하는 종업원들 숫자도 수천 명에 이르러 종업원 수가 1만 명이 넘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중국에 있는 여러 공장에 종업원 3000명, 인도의 여러 공장에 2000명, 체코 공장에 2000명 등이다. 이렇듯 현대기아차와 삼성전자, LG전자 등 자동차와 전자산업에서 활동하는 1차 협력업체들의 상당수는 사실상 이미 10년 전부터 글로벌 중견기업(대기업)으로 성장하였다.


해외에 동반 진출한 업체들 간에는 공통점이 있다. 먼저, 자체 기술력과 품질관리 능력이 뛰어나다. 그들의 기술력과 품질능력을 국내외 완성차 업체들, 즉 최종 원청업체들이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SL의 경우 자동차 헤드라이트 제조의 기술력 및 품질에서 세계 6위에 올라있다. 자동차용 공조기(냉난방기)를 제작하는 한라공조 역시 세계 5위권의 우수한 기술력과 품질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들 1차 협력업체들은 세계적인 수준의 기술력과 품질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세계적 기준의 R&D를 수행한다.


게다가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세계 수준에 도달한 이들 1차 협력업체들은 현대차와 삼성전자와 마찬가지로 1960-80년대의 국가주도 경제성장 시기에 국가의 전략산업 육성 및 전략기술 육성정책(산업정책 또는 산업육성정책)을 충실히 따르면서, 그리고 자체 기술력 및 품질능력을 키워온 현대차와 삼성전자 등에 납품하는 과정에서, 이들 원청업체와 함께 공동으로 기술개발과 공동 R&D를 수행하면서, 그들 업체 역시 자체적인 기술력 및 품질능력을 키워왔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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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일/ 새사연 연구이사 



대중소기업 동방성장론자들이 제기하는 대기업-중소기업 간 격차와 불평등 심화 문제는 2차 이하 하청협력업체에 집중되어 있다. 그런데 과연 이들 업체에서 발생하는 저임금과 낮은 수익성, 낮은 기술력의 문제를 동반성장론자들이 제안하는 '공정한 하도급 질서 확립'을 통해 해결될 수 있을까? 물론 일부는 가능할 수도 있지만 그 해법의 한계와 범위는 명백하다. 이들 업체 종업원들의 임금수준을 높이려면 어떤 대안이 가능할까?  



원청 대기업의 하청 갑질이 심해지는 이유는?


납품선 다변화에도 불구하고 중소 하청업체들의 상황은 1998년 이후 더욱 악화되었다고 홍장표 등은 주장한다. 사실이다. 왜 그럴까? 그들은 두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첫째, 부품조달 하도급 계약에서 경쟁 입찰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시장경쟁이 격화되었다. 둘째, 복사발주(複社發注), 즉 하나의 부품을 하나의 납품업체가 독점적으로 납품하는 것이 아니라 2~3개의 납품업체가 동시에 납품하는 관행이 새롭게 생겼다. 이 두 가지 이유로 부품 하청 생산납품업체들의 협상력이 더욱 낮아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의계약이 아닌 경쟁 입찰의 관행을 이제 와서 되돌릴 수는 없다. 뒷돈이 오갈 수 있는 불투명한 수의계약보다 경쟁 입찰이 훨씬 투명하고 완전경쟁 시장 모델에 가깝기 때문이다. 민주·진보 경제학자들 스스로가 지난 20년 동안 “시장원칙 즉 경쟁시장 원칙이 모든 경제 분야에 관철되어야 한다.”고 항상 말해오지 않았던가?


다만 복사발주에 대해서는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복사발주를 하게 되면 여러 개의 공급·납품 업체들 간에 품질과 기술력, 가격 등을 놓고 경쟁이 벌어진다. 경쟁적 시장 원리가 작동하는 것이다. 이를 달리 보면, 하청협력 업체들이 납품선을 다변화하는 것에 대응하여 최종 완성재(자동차, 전자) 업체들 역시 조달선을 다변화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수요독점’이 해체되는 것과 동시에 ‘공급독점’이 해체되는 것이고, 수요와 공급 양면에서 경쟁적인 시장메커니즘이 작동하는 방향으로 변하는 것이다. 이러한 복사발주는 과거부터 있었으나,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 시장개혁에 따라 더욱 확산되었다. 현대차와 기아차의 복사발주율은 1994년에 각각 61.9%, 56.2%였는데 2001년에는 76.8%, 67.2%로 높아졌다.


복사발주를 할 때에는 아무래도 단사 발주에 비해 부품 납품업체의 협상력이 약화된다. 1개의 회사가 특정 부품을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2~3개의 하청 납품업체들 간에 치열한 경쟁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차와 삼성전자 등 최종 완성재 업체 입장에서는 복사발주를 통해 납품가격 인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더구나 하나의 납품회사가 해당 부품을 납품하지 못하는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 다른 납품회사의 공급 물량을 늘려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따라서 복사발주 그 자체를 금지 또는 제한시키는 내용의 규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이, 야권 경제학자들 스스로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시장개혁 시기 이래로 지금까지 일관되게 “경쟁적 시장 원리를 더욱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해오지 않았던가. 이제 와서 복사발주를 규제하자는 것은 자신들이 그토록 비판해왔던 독점시장으로, 즉 불공정시장으로 복귀하자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하청 단가에 국가 규제가 잘 작동하지 않는 이유


요즘 외주하청 계약(하도급 계약)은 대부분 공개경쟁 입찰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수의계약이 아니라 여러 납품업체들이 경쟁하는 공개입찰에서 납품업체가 선정되어 계약이 체결된다. 시장에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수록 주류 경제학자들은 공정한 시장질서라고 부르는데, 이런 의미에서 요즘 납품시장은 공정한 시장질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납품업체들은 공개적인 입찰 경쟁에서 납품가격뿐 아니라 자사 제품의 품질과 성능, 기술력과 신뢰성, 납품 기일 준수 여부 등 다양한 항목별로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승부를 겨룬다. 원청업체는 이러한 다양한 항목별 점수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하청업체를 선정한다.


공정거래법상 하도급 규제법 강화를 통한 하청단가 정부 규제가 겨냥하는 목적은 결국 1차적으로 가장 높은 납품가격을 제시한 하청업체가 하도급 계약을 따내도록 원청업체의 구매부서 행위를 규제하겠다는 말이다.


그런데 공정한 시장질서란 무엇인가? 보다 높은 납품 단가를 제시한 납품업체가 무조건 하청 계약을 따내는 것이 공정한 (납품) 시장질서는 아닐 것이다. 물론 가장 높은 납품가를 제시한 하청업체를 원청 발주업체가 좋아하는 경우도 있다. 그 납품업체가 다른 경쟁사들에 비해 월등히 높은 기술력과 품질을 보여줄 때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다른 하청업체들이 ‘불공정 거래’를 문제 삼을 것이다. “내가 더 낮은 납품가를 제시했고 더구나 경쟁업체와 품질력, 기술력이 비슷한데 왜 그 경쟁업체가 선정되었나?”고 항의할 것이다. “이것은 원청업체 구매부서 임직원과 하청계약을 따낸 납품업체 사장 사이에 뭔가 부정한 거래가 있지 않고서는 설명이 안 된다.”고 하면서 원청업체에 엄중한 감사를 요청할 것이다.


그래서 야권 경제학자들과 같은 ‘공정시장 경제민주화론자’들은 이런 현실을 고려해 하나의 해법을 내놓았다. 납품업체들이 서로 경쟁하지 말고 담합하면 해결되지 않겠냐는 것이다. 즉 특정 부품을 공통으로 납품하는 여러 납품업체들이 서로 담합(카르텔)하는 행위를 공정거래법상 예외적으로 허용하자고 그들은 말한다. 약자인 납품업체들이 하나로 뭉쳐서 담합하는 것을 국가가 허용하고 중소기업협동조합 같은 공공단체가 그 담합체의 하청 계약에 개입하여 중재하면 된다는 식이다. 한마디로, 수요자 독점(원청업체 전속거래)에 대응하여 공급자 독점체를 만들자는 해법이다. 경쟁적 시장질서는 여기서 사라진다.


그런데 이 해법에는 치명적 허점이 있다. 먼저 부품 납품시장에는 국내업체들만 있는 게 아니며 외국계 기업들이 많다. 예컨대 자동차 엔진 전자부품 납품시장에는 국내 기업만이 아니라 보쉬와 지멘스, 델파이 같은 다국적 업체들이 있다. 이들 해외 업체들은 납품업체 간 담합(독점)에 가담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자사 제품의 월등한 품질력과 기술력을 내세우면서 오히려 공개 입찰 경쟁을 해야 국내 경쟁업체들을 제치고 승리할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만약 보쉬와 델파이 등을 원천적으로 배제한 채 국내 하청업체들 사이의 담합(독점)만을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법제도가 국회를 통과한다면 WTO협정 또는 미국 및 EU와의 FTA협정 위반으로 곧바로 제소당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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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길/ 새사연 이사 



새사연은 2008년부터 매 년 진보 정책 연구소 최초로 <전망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습니다경제주거노동복지 분야를 중심으로 세계의 흐름 속에서 한국 사회를 진단하여 사회를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고 새로운 사회로의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세계는 거대한 전환기에 직면해 있다. 그동안 익숙해 있던 규칙과 경향들이 심각하게 흔들리거나 무너지고 있다. 기존 틀로는 쉽게 해석할 수 없는 새로운 현상들이 속출하고 있다. 2017년은 이처럼 역사의 변곡점을 통과하는 전형적인 한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곧 2017년은 낡은 시대를 뒤로 하고 새로운 시대를 본격적으로 탐색하는 한 해가 되어야 함을 의미하기도 하다. 향후 전체 판도에 광범위하면서 심도 있는 영향을 미칠 중요한 몇 가지 지점들을 전후 맥락에 비추어 점검해보고자 한다.


세계정세


1. 난파 위기의 세계화


2016년에 발생한 영국의 브렉시트와 미국의 트럼프 당선은 세계정세의 불확실을 키우는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이 두 사건이 향후 세계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파악하려면 먼저 그 발생 배경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


미국과 영국은 공통적으로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선도한 나라이다. 그런데 두 나라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세계화로부터 발을 빼는 양상을 보였다. 영국의 브렉시트는 세계화의 일환으로 추진된 EU 즉 유럽 단일시장으로부터의 철수이다. 트럼프는 자유무역 반대 기조를 앞세워 당선에 이르렀다.


지난 몇 십 년 동안 세계화는 자유무역을 거의 모든 분야에 확대 적용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1995년 출범한 세계무역기구(WTO)는 세계화를 관장하기 위한 기관이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같은 지역협정, 한미FTA와 같은 쌍무협정 등은 이를 더욱 강화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미국과 영국이 세계화를 적극 선도한 것은 제조업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금융을 통해 충분히 보충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였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핵심은 바로 미국과 영국 두 나라 금융자본의 전 지구적 지배를 실현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전략은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미국과 영국은 금융자본을 빨대로 전 세계의 부를 빨아들여 자국 안에 쏟아냈다. 이를 뒷받침하는 징표로서 1990년대 10년 동안 미국의 종합주가지수가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두 나라 국민들은 주가 상승 등으로 막대한 금융소득을 거머쥘 수 있었다. 덕분에 중산층도 그런대로 유지될 수 있었다.


하지만 금융자본 중심의 신자유주의는 거품에 의존하는 지속가능성 없는 시스템임이 드러났다. 거품이 붕괴되면서 2000년 월가 주가대폭락,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잇달아 발생했다. 금융자본을 앞세워 세계의 부를 끌어 모으는 것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았다. 이러한 가운데 자유무역 흐름을 타고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한 중국 등이 선진국 시장을 거침없이 잠식했다.


두 차례의 금융위기를 거치며 주가 폭락과 부동산 버블 붕괴 등으로 중산층은 직격탄을 맞은 상태였다. 반면 추가적인 금융 소득은 대폭 줄었다. 시장 잠식으로 공장 폐쇄가 늘면서 실업자까지 급증했다. 이러한 요인들이 종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선진국 사회구조를 상징했던 두터운 중산층이 빠르게 붕괴되어 갔다.


금융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유난히 높았던 미국과 영국 두 나라가 바로 이런 형태로 집중적인 타격을 입었다. 두 나라가 가장 먼저 세계화 흐름에서 발을 빼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동안 진행된 세계화는 평가를 떠나 세계 질서에 일정한 규칙을 부과해 왔었다. 이를 바탕으로 불확실성을 최소화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으로 그 규칙들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유일한 기준으로 삼고 있다. 적과 우방도 중시하지 않을 방침이다. 시장 논리를 뛰어넘어 글로벌 기업들에게 미국 내 투자를 겁박하고 있으며 각종 무역 분쟁을 예고하고 있다. 트럼프는 신설된 백악관 국가무역위원회와 미 무역대표부 수장에 잇따라 반중(反中) 인사를 지명하면서 중국과의 무역전쟁에 돌입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는 환율·무역정책에서 중국과 사사건건 충돌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대급 시장을 품고 있다. 미국의 행보는 곧 세계 질서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수 있다. 세계화는 암초에 부딪쳤다. 대의의존성이 높은 한국으로서는 심각한 위험 요소가 아닐 수 없다.


한국은 세계화 흐름을 타면서 무역 규모를 빠르게 확대시켜 왔다. 최근 뒤로 밀려나고 있지만 한 때 수출 규모 세계 6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GDP 대비 수출의존도도 50퍼센트에 육박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대외 환경이 급격히 바뀌고 있다. 시급히 세계화 이후 시대에 대비해야 하는 것이다.


2. 신냉전 격화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날로 격화되고 있다. 여기에 일본과 러시아가 가세하면서 신냉전 질서가 형성되고 있다.


1980년대 미국과 중국은 함께 손을 잡고 소련에 대항했다. 반소련 공동전선에서 두 나라는 동반자 관계를 유지했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하자 세계는 미국을 유일한 정점으로 통합되었다. 중국은 개혁개방을 가속화시키면서 미국 중심의 세계 자본주의 시장에 깊숙이 편입되었다. 중국은 대미 수출로 막대한 무역흑자를 기록했다. 중국은 벌어들인 달러로 미국 국채를 매입했고 미국은 이를 통해 무역적자를 보충했다. 그런 식의 ‘달러 사이클’을 바탕으로 두 나라는 밀월 관계를 유지했다.


미국은 자신을 유일 정점으로 하는 세계질서가 오랫동안 지속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중국은 견제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중국은 빠르게 실력을 키우면서 미국의 지위를 넘볼 수 있는 위치에 섰다. 세계는 미국과 중국을 G2로 부르며 대등하게 취급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GDP 규모는 미국에 바짝 다가섰으며 머지않아 추월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중국은 엄청난 외환 보유고를 바탕으로 국제무대에서의 영향력을 빠르게 넓혀가고 있다. 유인 우주왕복선을 띄우는 등 우주개척에서도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항공모함을 진주시키는 등 군사대국의 길에도 성큼 발을 내디뎠다. 중국은 대국굴기를 선언하며 강대국의 길을 가겠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오바마 행정부는 재균형 정책을 표방하며 중국 견제를 군사 외교 정책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기 시작했다. 최근에 이르러서는 두 나라의 군사적 긴장이 크게 고조되고 있다. 미국 항공모함이 남중국해에 깊숙이 진입하는 가운데 중국은 미국 본토 타격 능력을 지닌 핵잠수함을 전격 배치했다. 여기에 트럼프 행정부 발 무역 분쟁이 가세하고 있는 형국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 정책에 대한 맞대응으로 시진핑은 다보스포럼에서 자유무역을 옹호했다. 이는 중국이 미국과의 직접적인 이해 다툼을 넘어 세계 질서의 향방을 둘러싼 경쟁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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