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서연/ 새사연 회원




작년부터 대학가를 중심으로 동전노래방과 인형뽑기방이 빠르게 늘고 있다. 동전노래방은 500원에 1~2곡을 부를 수 있는 노래방 박스가 있고, 인형뽑기방은 보통 1,000원에 2~4번 기회가 있는 인형뽑기 기계가 있다. 최근 한 기사에 따르면 인형뽑기방의 경우 2년 사이 24배나 증가할 정도로 폭발적으로 늘었다(한국경제TV, 2017년1월4일). 이는 청년(대학생 포함)들의 사정과 관련이 있다.



동전노래방과 인형뽑기방의 공통점 소액으로짧은 시간에감정소비 없이


동전노래방과 인형뽑기방의 공통점은 비교적 소액으로, 짧은 시간에 감정소비 없이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빈곤과 고독, 과도한 경쟁으로 인한 인간관계의 축소, 단절을 경험하고 있는 현재의 청년들은 경제적, 시간적, 정서적 여유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이들 신종오락 공간에 흥미를 느낀다. 주머니에 천 원짜리 한 두 장만 있다면, 함께 할 사람이 없더라도 언제든지 찾아가서 짧게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청년들은 스트레스를 달래기 위해 소액의 사치(치킨, 택시 등)를 부리며 이 비용을 매우 극단적인 표현인 ‘시X비용’이라고 일컫는 현상까지 등장했는데, 동전노래방과 인형뽑기방도 이 현상의 연장선에서 이해될 수 있다(경향신문, 2017년1월29일).


한편, 사업자 입장에서 동전노래방과 인형뽑기방은 기계별 매출은 적지만 매장 공간을 쪼개서 좁은 면적에 많은 기계를 배치할 수 있고, 빠르게 회전되기 때문에 전체 수익률을 높일 수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이처럼 수요자와 공급자의 이해관계가 맞물림에 따라, 동전노래방과 인형뽑기방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사실 동전노래방과 인형뽑기방은 기존에 없던 것이 새롭게 등장한 것이 아니다. 과거 오락실 구석에 놓여 있던 동전노래기계 박스와 길거리에 놓여 있던 인형뽑기 기계를 많은 이들이 기억할 것이다. 그런데 동전노래방과 인형뽑기방이라는 형태로 새롭게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동전노래방인형뽑기방 그리고 셰어하우스


동전노래방과 인형뽑기방이 등장한 맥락은 셰어하우스와 비슷하다. 셰어하우스는 공용공간은 공유하고 방을 개별 혹은 2인 이상이서 사용하는 주거방식인데, 2012년 정도를 기점으로 서울 등 청년들이 밀집한 대도시를 중심으로 공급되기 시작했다. 사업자는 보통 교통이 편리한 지역에서 방 3개 이상의 주택을 확보하여 3명 이상에게 임대하고 관리한다. 셰어하우스도 과거에 없었던 것이 아니다. 월세나 사글세를 아끼기 위해 친구나 동료와 한 집에서 함께 살아온 경험은 도시화와 함께 언제나 존재했고, 주거공간을 쪼개어 수요자의 부담 금액을 낮추고 사업자의 수익률은 높이는 고시원은 현재도 성업하기 때문이다.


다만, 셰어하우스는 기존 고시원이 갖고 있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역세권의 실제 주택용도의 건물을 활용하면서 희석시켰고, 입주자 연령이나 취미를 제한함으로써 정서적 유대감을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하였다. 공간을 쪼갬으로서 월세의 절대 금액을 낮추었고, 보증금 역시 월세의 2~3배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가난한 청년들에게 심리적 진입장벽을 낮추는 데 성공했다. 동전노래방과 인형뽑기방도 과거에 위치했던 오락실이나 길거리가 아니라 번듯한 상가 1층에 위치하고 있고, 청년들이 선호할 인테리어나 소품(특히 인형뽑기기계 경품은 주로 현재 청년들이 10대 때 좋아했던 포켓몬스터 인형)을 배치함으로써 정서적 유대감을 유도하였고, 앞서 언급하였듯이 1회 이용의 절대 금액이 낮다는 점에서 셰어하우스와 여러모로 닮아있다.



셰어하우스는 주거 대안이라기보다 청년 빈곤의 현상


그런데 최근 서울시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는 청년 주거문제를 해결한다는 명분으로 공공의 자원이 투입되는 임대주택을 셰어하우스 형태로 공급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서울시의 ‘역세권2030 청년주택’, 제주특별자치도의 ‘탐라하우스’로 기존 기숙사형태의 공공임대주택과는 별개로 일반주택을 활용하는 셰어하우스로 공급할 계획을 밝혔다. 셰어하우스 형식으로 공급함으로써 인당 공급단가를 낮추고, 더 많은 이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다는 측면은 분명 무시할 수 없고 이해가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셰어하우스가 등장한 맥락을 고려한다면 셰어하우스는 주거 대안이라기보다 청년 빈곤의 현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엄밀하게 말해 셰어하우스는 가난한 청년들의 처지를 겨냥한 것에 가깝다. 이를 공공에서 마치 주거대안인 것처럼 정당화하여 공급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먼저 청년들도 성인으로서 적절한 시설을 갖춘 독립공간에서 생활해야한다는 인권적 차원에서도 물론이고, 앞으로 우리 사회가 청년 등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방식의 전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걱정이 된다. 근본적으로는 청년들의 빈곤을 해결해야 하겠지만, 사회가 청년을 대하는 자세가 셰어하우스를 통해서도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


출처: 이영호 기자, “인형 뽑기방 2년새 무려 24배 급증…대체 왜?”, 한국경제TV, 2017년 1월 4일.

이유진 기자, “스트레스 사회, ‘시발비용’을 아십니까”, 경향신문, 2017년 1월 29일.


원문 바로가기: http://saesayon.org/2017/03/22/20451/


발행일: 2017.03.22.

발행처: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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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은/ 새사연 연구원 


대한민국의 주인이 국민이라는 헌법 제1조가 제 가치를 발휘하는 때이다. 국민주권주의가 실현되는 토대는 국가의 권력이 입법, 사법, 행정으로 나눠져 견제와 균형을 통해 나라 살림이 운영되게 한 삼권분립의 원칙에 있다. 이는 국가 권력을 독점하거나 몇몇 개인에 의해 좌지우지되지 않도록 한 장치였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의 역사적 과정에서 삼권분립의 원칙이 유명무실한 시대들이 많았다.


오늘날에도 권력 남용의 폐단이 끊이지 않으면서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탄핵되는 초유의 사태까지 맞았다. 이는 국가의 상당한 권한이 대통령에 집중되었기 때문에 빚어진 문제만은 아니다. 우리 헌법 제1조에 밝혀져 있듯, 대한민국 헌법의 근본이념은 민주주의이다. 그러나 삼권분립의 제도 안에서 이뤄지는 의사결정이 민주주의 원칙에 서 있지 못해 초래된 문제를 보다 성찰할 필요가 있다.


애플비(Paul H. Appleby, 1891~1971)는 그의 대표적인 저서인 『정책과 행정(Policy and Administration)』1) 에서 국가의 권력이 실질적으로 나눠지고, 통치권자의 행정 권한이 잘못 쓰이지 않으려면 시민을 위해서, 그리고 의사결정 과정에 시민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고 선구적으로 말했다. 이는 정치와 행정에 몸담고 이 시대를 이끌어갈 주역들이라면 새겨 들어야할 대목이다. 그들의 권력이 누구를 위해, 또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 시사점을 준 본 책을 요약 정리해본다.



경제 대공황행정의 역할 적극적으로 변화


애플비2)는 1930년~1940년대 미국 대공황과 전쟁 시기에 십여 년 이상 미국 행정 관료로 지내다가 이후 학계로 자리를 옮기며 미국 행정학의 발전에 이바지한 인물이다. 루즈벨트 행정부에서 농업장관 비서관직과 농업차관보를 역임하고, 트루먼 행정부에서 미국 예산국 부국장을 거쳤다. 이처럼 대격변기에 행정 경험을 쌓은 이후 시러큐스대 맥스웰 학교 시민권과 공공문제 학장으로 재직하며 공공사업과 정책 발전에 기여하기도 했다. 학술 활동을 통해 지속적으로 정치행정이원론에 반론을 제기하며 정치행정일원론을 주장한 대표적인 학자이다. 그는 이전과 다르게 국가의 결정과정에서 행정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데 시민의 참여가 전제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정책이 높은 수준에서 결정된 것이고, 행정은 낮은 수준에서 일을 집행하는데 그치던 관점과 달리해, 정책과 행정을 모든 수준에서 동일하게 다루고 있다. ‘행정(administration)은 정책결정(policy-making)뿐 아니라 집행(execution)을 포괄하는 광의의 개념으로 다시 정의하고 있다. 관리(management)는 정책결정과 집행의 혼합이긴 하나, 보다 낮은 수준에서 최소한의 정책결정에 의한 집행을 지칭한다. 공공행정(public administration)은 정책결정과 관리가 혼합된 형태로, 입법적, 사법적, 대중선거에 의한 정책 결정 차원이며 대다수 대통령의 정책결정이 그러하다.


역사적 과정을 거치며 미국 정부는 8가지 정치적 절차로 운영되고 있다. ① 대통령 임명(presidential nominating), ② 일반 임명(general nominating), ③ 선거(electoral), ④ 입법(legislative), ⑤ 사법(judicial), ⑥ 정당 유지 및 운영(party maintenance and operation), ⑦ 선동적인(agitational), ⑧ 행정 및 집행적(administrative or executive) 절차이다. 모든 정치 기관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정치 환경과 제도를 만들어 간다. 이 장에서는 행정과 관련된 정책을 수립하는 방식을 탐색하는데 목적이 있다. 8가지 정치 과정에서 다양한 기관, 공무원의 참여 수준은 단일하지 않다.



전문가의 역할 확대행정과 연결 중요


공공행정의 주요 기능은 사회 서비스 안의 정치인의 역할과 전문가의 역할을 조화롭게 만들고 연결하는 일이다. 정치 행정가는 탁월한 정치적, 조직적인 결합자이다. 물론 최상위의 행정가의 역할이 낮은 지위의 행정가보다 더 정치적이긴 하다. 이는 전체 정부 영역, 시민, 정부 기관, 정치 절차에 보다 더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행정 과정에서 전문가의 역할은 더 명확해져야 하고, 행정에서 전문가와의 관계에 관심이 필요하다. 행정기관 내 낮은 수준에서 전문가와 행정가의 역할이 쉽게 결합되며, 전문적인 정보가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데도 영향이 준다. 이렇듯 전문가의 역할이 보다 광범위해지고 있다. 행정은 대중의 힘과 의식에 대한 무게나 조정과 관련. 정부 내부의 모든 행정과 모든 정책 결정은 정치적이며 정부적이다. 정당은 근본적으로 문제를 일반화하고 단순화하여 시민들의 선택 범위를 좁히고 명확히 하는 예비 메커니즘인데 반해, 행정부는 보다 다양하고, 더 구체적이며 세부적인 문제를 다룬다.


모든 부분에서 정책결정과 행정은 하나의 작업이다. 프로그램과 관계된 조직의 일부는 행정과 연관되어 있고, 행정과 관계된 조직의 부분들은 프로그램과 관계가 있다. 조직과 구조는 관련된 개념이다. 구조 없는 조직이 없으며, 구조는 조직의 본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행정 계층(administrative hierarchy)은 대중적인 요구의 메시지를 받는 기관이며, 그 내용들은 대부분 반대의견이다. 이러한 요구에 대응하고 조정하며, 그 과정 안에서 다른 대중의 요구와 기대를 담아 신중하게 관점과 원칙을 넣는다.



증대된 권력견제와 균형으로 통제


정부의 증대된 힘은 행정 과정에서 이뤄지는 정책 결정에 의해 불가피하게 행사된다. 이러한 행정권이 민주적 전통이나 이상과 조화를 이루며 수행될 수 있을지는 논의 지점이다. 정부가 행정권을 소유하고 행사하는데 대한 우려는 당연히 현대의 총체적인 견제와 균형, 절차가 다원적 가치를 계속 견지해 가는데 적절한지이다. 이는 행정부 내 관련의 자의적인 행동을 막는 견제와 균형과 관련되어 있다. 행정권이 광범위해지고 더 많이 영향과 통제를 받는 건 정부 권력의 한 면모이다. 그 힘은 협력하며 쓰인다. 이는 상당한 정도로 정부 내 부분들과 상호작용에 의해 스스로 통제가 되며, 또한 전체와 부분 모두 정치적으로 통제되고 있다.


정치와 행정이 혼재되어 있다면, 자유주의 체제에서 행정과 보수적인 체제에서 행정 간에 구분되는 차이는 명확하다. 자유주의 체제에서 행정은 새로운 일을 하고, 옛 방식을 바꾸려는 데 반면, 보수적 행정은 그러한 의지가 덜하다. 자유주의 체제 행정에서는 보수적인 체제 행정보다 상상력, 대담함과 창조성에 여지를 둔 정책 실현이 가능하다. 자유주의 체제 행정은 새롭게 보이는 대상을 향한 움직임에 집중하는 반면, 보수적 체제 행정은 오랫동안 친숙한 대상을 지원하는데 쏟는다. 행정 과정에 영향을 주는 정책 변화는 선거, 선거 기대, 리더십 변화의 반영, 대중적 감정 변화의 반영에 이어서 이뤄진다. 일반적으로 자유주의 체제의 행정이거나 보수적 체제에서 행정의 성격은 당시 리더십에 의해 수정된 정치적 합의의 직접적인 산물이기도 하다.



정부의 주된 관심은 시민이어야


이제까지 본 행정은 정책결정 과정과 정치 과정과 다르지 않다. 정부를 운영하는데 일반적인 고려 사항에서 주 관심사는 시민이어야 한다. 시민의 입장에서 어떤 변화가 있을지 질문해야 한다. 엄밀히 말하면 정치 기관은 중요한 대중매체이다. 모든 시민의 이익을 고려해 이슈를 일반화하고, 응답을 모아내고, 선택의 범위를 좁히고, 다수의 합의와 동의를 확립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그러나 시민의 영향은 각 기관마다 똑같지 않다. 시민은 의회와 같이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권력을 계속 위임하고 있다. 일부는 법원에, 일부는 입법부에, 일부는 행정 관료와 기관에. 시민들은 당 안과 밖의 활동이나 선거에 참여하고 있다. 공공 정책은 정책결정을 이르지만, 이것이 마음대로 독점되거나 고립된 정책결정은 아니다. 공공정책은 사람들이 달성하고 통제하는 수많은 기본적인 정치과정 중 하나이다.



1) Paul H. Appleby, Policy and Administration, the university of Alabama press, 1949.

2) 애플비의 저서로는 『거대 민주주의』(1947), 『정책과 행정』(1949), 『도덕과 행정』(1952), 『주권자로서 시민』(1962) 등이 있다.


원문바로가기: http://saesayon.org/2017/03/21/20485/


발행일: 2017.03.21.

발행처: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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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길/ 새사연 이사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 탄핵 인용 결정을 내림으로써 촛불시민혁명이 마침내 승리의 마침표를 찍기에 이르렀다. 누구나 직감하고 있듯이 세상을 바꾸기 위한 대변혁의 본격적인 출발점이 마련된 것이다. 촛불시민혁명의 진정한 위대성은 바로 그 대변혁을 위한 에너지를 풍부하게 충전했다는 점이다.


국회가 박근혜 탄핵 소추안을 가결시켰던 2016년 12월 9일 전후 상황을 비교해 보면 문제의 본질이 보다 명료하게 드러난다. 12월 9일 이전 보수 세력은 박근혜를 탄핵시키더라도 보수 정권 재창출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자신했다. 국민적 지지를 받는 반기문이라는 카드가 있었고 ‘신보수연합’의 무대가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던 제3지대가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조선일보> 등 보수 매체는 마치도 촛불시민혁명을 자신들이 주도하는 것처럼 분위기를 몰고 갔다. 박근혜 지지 세력은 극소수로 내몰린 채 숨을 죽여야 했다. 박근혜 반대 분위기가 워낙 압도적이다 보니 박근혜가 자신의 공약대로 국민대통합에 기여했다는 역설적 표현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정이 크게 달라졌다. 보수 정권 재창출의 가능성은 희박해지고 대신 진보로의 정권 교체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반기문은 중도하차했고 제3지대는 신보수연합 무대와는 거리가 멀어졌다. 극우 보수 세력은 심각한 위기의식에 사로잡혔다. 위기의식은 촛불집회에서 사드 배치 반대 등의 구호가 터져 나오면서 한층 격화되었다. 극우 보수 세력이 대거 태극기 집회에 가세하기 시작했다. 태극기 집회는 한 때 서울 숭례문에서 세종대로까지 가득 메울 정도로 기세를 올렸다.


<조선일보> 등 보수 매체는 국론이 두 동강 났다며 비명을 질렀다. <조선일보>는 대한민국이 낮에는 반탄(탄핵반대), 밤에는 찬탄(탄핵 찬성)으로 갈라졌다고 묘사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의 독자층이 두 패로 갈라진 상태에서 어느 쪽에 장단을 맞추어야 할 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박근혜 탄핵을 둘러싸고 촛불집회와 태극기 집회가 첨예하게 대립했다. 이러한 상황에서라면 대체로 그 중간에 있던 세력 특히 보수 성향의 사람들은 심하게 동요를 일으키기 쉽다. 그런데 놀라운 현상이 발생했다. 박근혜 탄핵 지지 여론이 75퍼센트에서 80퍼센트 사이에서 큰 흔들림 없이 유지되었던 것이다.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결정이 내려지면서 탄핵 지지 여론은 더욱 높아졌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티에 따르면 86퍼센트가 헌재 결정에 대해 잘했다고 평가했으며, 92퍼센트가 승복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승복할 수 없다는 의견은 6퍼센트에 그쳤다.


어떻게 해서 이런 현상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두 측면을 동시에 볼 필요가 있다. 먼저 촛불시민혁명은 참가자 수에서도 공전의 기록을 세우기도 했지만 광범위한 국민의 공감과 지지를 이끌어내는데서 특유의 능력을 발휘했다. 공감의 리더십에서 극치를 보여준 것이다.


반면 태극기 집회 측은 그런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거꾸로 태극기 집회가 보여준 극단적인 수구 색체는 보수 세력 내부에 심각한 정서적 균열을 일으켰다. 헌재 탄핵 결정 직후 군가 합창을 하고 무차별 폭력을 행사하는 등의 모습은 그러한 균열을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 약속을 파기하면서까지 특검 조사를 시종 거부한 채 책임 떠넘기기 발언으로 일관한 박근혜의 모습은 극우 보수 세력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키웠다. 법리 논쟁은 제쳐 둔 채 시간끌기와 트집 잡기로 일관한 대통령 대리인단들의 모습 또한 그러한 반감을 키우는데 톡톡히 한 몫 했다.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박근혜를 중심으로 한 극우 보수 세력은 진보 보수를 떠나 나머지 국민들이 정치적 유대감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박영수 특검이 거침없는 공격적 수사로 일관하고 헌재가 전원일치로 박근혜 파면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도 다분히 이러한 배경에서 가능했다.


보수가 다시 하나로 결집할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반면 검증된 대로 박근혜 탄핵으로 뭉쳤던 국민들의 정치적 유대는 진보 보수의 경계선을 넘어 상당히 강력하게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향후 대변혁을 뒷받침할 가장 든든한 정치적 자산이 될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대변혁을 선도할 강력한 힘이 만들어졌다.


그간 청년세대는 외환위기 이후 실패와 좌절, 패배만을 반복해서 경험했다. 그들에게 승리의 경험은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그런 청년세대 입장에 입장에서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었다. 세월호 참사는 청년세대의 세상을 향한 불신과 냉소를 극에 이르도록 만들었다. 청년세대에게 대한민국은 아무런 희망도 없는 지옥의 땅이었다. 청년세대에게 가장 호소력 있게 다가간 것은 이 나라가 하루 빨리 망하는 것뿐이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청년세대의 40퍼센트 이상이 우리 미래와 관련해 ‘붕괴 후 새로운 시작’을 선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촛불시민혁명은 청년세대의 의식에서 액면 그대로 혁명적 변화를 일으켰다. 청년세대는 촛불시민혁명을 통해 그들의 삶에서 처음이자 역사에 기록될 의미심장한 승리를 경험했다. 이 경험은 매우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1987년 6월민주항쟁의 승리는 자신감을 회복한 노동자 대중의 광범위한 진출을 촉발시켰다. 그 유사한 현상이 청년세대에게 나타날 것으로 확신한다.


청년세대의 의식변화는 도처에서 감지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정치적 관심이 비상하게 높아졌다. <중앙일보> 신년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20대의 92퍼센트가 다가오는 대선에서 투표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이는 2016년 4.13총선 대의 투표율 52.7퍼센트에 비해 비겨할 수 없이 높은 수치이다. 열성적 투표 층인 5060세대보다도 10포인트나 높은 것이었다.


촛불시민혁명은 박근혜 탄핵 추진을 통해 정치 지형을 뒤바꾸어 놓았지만 그보다 더 큰 변화를 일으킬 거대한 에너지를 충전했다. 세상을 바꾸는 진검 승부는 이제부터 시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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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7.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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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스/ 새사연 정회원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 이다. 1908년 3월 8일 미국 루트거스 광장에서 1만 5천여명의 여성노동자들이 참정권과 노동조합결성의 자유를 요구하며 열린 대규모 집회가 그 기원이다. 그 이후 각 나라는 3월 8일 여성의 권리 및 ‘진보와 자유’를 주장하는 여러 행사를 개최하였으며, 1977년 3월 유네스코는 공식적으로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선언하였다. 한국에서도 1920년대 세계 여성의 날을 최초로 기념했으며, 1985년 <세계 여성의 날 기념 한국여성대회>로 부활해 오늘 서울시청에서 33회 대회가 개최된다.


하지만,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여성의 권리운동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 사회, 최소한 한국 행정부에서 여성을 보는 인식은 모성, 출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최근, 행정자치부가 만든 전국‘가임기 여성’ 수 등을 표시한<대한민국 출산지도> 나 ‘여성의 높은 교육수준’을 출산율 저하의 원인으로 분석하여 대안으로 ‘휴학, 연구, 자격증 취득을 하면 대기업과 공공기관 채용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고지하자’는 보건복지부 산하 정부출연 연구기관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저출산 대책이 관료들의 낮은 여성인권 인식 수준을 증명한다.


이 관점들이 불쾌한 것은 여성의 몸을 사회에서 ‘타협 가능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여성의 몸은 여성 그 자신의 것이다. 나의 자궁은 온전히 나의 것이지, 사회 유지 및 세금 감소를 막기 위한 출산의 도구로 존재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5년 전, 나는 화학생리대 사용 거부를 선언했다. 그리고 택한 것은 생리컵(menstrual cup, 체내에 삽입해 생리혈을 받는 컵)생리컵을 쓰는 것은 나에게 ‘해방’을 의미하였다. 한 달에 5일 이상 있는 불편하고 찝찝한 느낌으로부터의 해방, 매번 ‘조물주는 여성을 싫어하지’ 라며 여성으로 태어난 것을 원망하는 것으로부터 해방, 그리고 여성을 얽매는 전통적인 정숙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 이 경험을 통해 난 내 질과 자궁을 사회가 원하는 역할에서 탈피시켜, ‘단지’ 나의 몸으로만 존재케 할 수 있었다. 이제 나에게 월경은 한 달에 한 번 번거롭게 구는 객식구같은 대자연의 저주가 아니며 자궁은 내가 잘 관리해 온 손톱, 피부와 같이 내가 잘 관찰하고 보살펴 줄 내 몸이 되었다.


우연히 온라인에서 생리컵을 발견했다. 실리콘이나 고무로 된 컵을 질 내부에 넣어 생리혈을 담아내는 생리컵은 넣고 빼는 것에 대한 진입장벽만을 극복하면, 반영구적이다. 경제적 이익 외에도 보다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며, 화학약품으로 인한 생리통은 발생하지 않는 장점이 있었다.


생리컵의 종류는 생각보다 다양해서 나에게 맞는 생리컵을 찾기 위해서는 몇 가지 단계가 필요했다. 먼저 적절한 사이즈를 알기 위해 생리혈의 양을 알아야 한다. 둘째, 자신의 질 길이에 맞춰 생리컵의 길이를 정해야 한다. 셋째, 배나 방광의 민감도에 따라 탄력성을 결정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은 우선 배나 방광, 질, 자궁경부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요구한다.


모든 단계가 생소했지만 특히 두 번째 단계, 나에게 적합한 생리컵의 길이를 알아가는 과정이 가장 큰 장벽으로 다가왔다. 사람마다 자궁의 위치가 다르므로 질 입구에서 자궁경부에 도달하는 길이도 다르다. 이 길이에 맞춰 생리컵을 구매해야 하는 것이다.


길이를 재는 도구는 가운데 손가락이었다. 그렇다. 나는 생리컵을 제대로 쓰기 위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질 안에 손가락을 넣은 것이다. 단순 길이를 잴 뿐만 아니라 약간 손가락을 움직여 질 내부에서 자궁경부에 도달하는 정방향인지 혹은 오른쪽, 왼쪽으로 약간 기울어져있는지를 확인하였다. 내 질 내부가 어떤 모양인지 느끼는 것은, 낯설지만 친숙한 동굴을 탐험하는 것과 같았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질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아 넌 이렇게 부드러웠구나! 약간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구나! 그걸 이제야 알아채서 미안해.


지난 달에 생리컵을 사용한 뒤 이번 달 월경이 기다려진다고 하면 너무 과장된 표현일까? 하지만 일부는 진실이다. 이번 달에도 몇 알의 진통제와 번거로움은 함께하겠지만 내 몸과 나눌 대화를 생각하면 그 시간이 예전처럼 고통스럽지만은 않다. 내 몸은 온전한 나의 선택(My body, My Choice) 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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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7.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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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운/ 새사연 연구이사 




2017년 가계부채위험 수준 아니다?


2016년 말 기준으로 가계부채는 1천344조3천억 원으로 1년 사이 141조2천억 원(11.7%)이 급증하였으며, 이는 우리나라 GDP의 82.9%에 해당한다. 상승폭이 그 어느 정권보다 빠르게 증가하는 중이다. 우리나라 경제가 이를 감당해 낼 수 있을지 계속해서 의문이 제기되는 가운데 정부와 정책 당국은 이렇다 할 정책 처방 없이 총량 증대라는 억지책만 내고 있는 형편이다. 국제통화기금까지 나서서 우리나라 가계부채를 걱정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서 지난 2월 7일 세계적인 신용평가회사 무디스(Moody’s)의 진단이 흥미롭다. 우리나라 가계부채 문제가 생각만큼 큰 걱정은 아니라는 것이다. 무슨 까닭으로 이런 주장을 내놓았는지 배경이 자못 궁금하다. 하지만, 일단 신용평가 회사가 이런 분석을 내놓았으니 당분간 한국의 가계부채 관련 경제위기설은 잠잠할 것으로 보이며, 가계부채 발 신용평가 하향조정은 없을 것 같다. 대내외 상황이 모두 취약하여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최근의 경제 상황임을 감안하면 무디스의 이런 평가는 분명 악재는 아닐 것이다.


다른 한편 신용평가 회사의 진단이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이나 여기서 비롯되는 채권, 주식 등 여러 금융 자산에 대한 평가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경제 상황이 긴급한 것이 아니라면 정책 당국이 서둘러 해결 방안을 마련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할 시점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것도 걱정이다.


필자는 여기서 딱 두 가지만 이야기하고자 한다. 첫째, 현 가계부채 수준이 한국경제의 시스템 리스크가 아니라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살펴 볼 것이다. 둘째, 현 가계부채 수준을 소득분위별 등 구체적으로 들여다 볼 것이다. 이를 통해 이 글이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즉 사회적 불평등이 가계부채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으며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를 적극적으로 인식하지 않기 때문에 정책당국이 가계부채 문제를 시스템 수준에서 리스크 요인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인식에 기초해 있기에 정책 당국이 가계부채 문제를 총량 증가 억지책으로만 접근하는 것이다.



무디스총량 늘었지만부채의 분포 상황이나 가계의 금융자산 등을 감안하면 채무상환 능력 아직은 양호


지난 2월 7일 무디스(Moody’s)는 현 가계부채 수준이 금융 시스템 리스크는 아니라고 진단하였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23일 기준금리 결정 설명회에서 시장금리의 상승 압력과 대내외 금융경제 여건의 불확실성 때문에 염려되긴 하지만 가계부채 채무상환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요약하면, 현재 가계부채는 국민경제 차원에서 채무상환에 큰 무리가 없기 때문에 금융 시스템의 리스크로 볼 수 없으며 이에 따라 국가차원의 위험은 아니라는 생각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의외로 간단하다. 현재 국민경제 수준에서 봤을 때 금융자산이 금융 부채보다 많기 때문에 그리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가계부채를 갚는데 쓰이는 금융자산이 꾸준히 증가하면서 가계의 금융 자산 대비 부채 비율이 지난 해 3/4분기 기준으로 45.3%로 예년평균 45.9%(2010년~2015년)를 유지하고 있으며, 가계부채 증가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주택담보대출의 고정금리·분할상환 비중이 높아지고 평균 잔존만기가 장기화되고 있어 질적 구조도 개선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핵심 근거이다.


그래서 결국 “가계신용이 큰 폭 증가하면서 가계의 소득 대비 부채비율이 높아졌으나 전반적인 채무상환능력은 양호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경기회복 지연 가능성, 금리 상승압력 등으로 취약가계를 중심으로 채무상환능력이 저하될 소지가 있다”(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 2016.12)는 결론에 이른다.



2017년 가계부채 상황은 어떠한가?


먼저 국민경제 수준에서 금융자산과 금융부채 비중을 살펴보자. 가계의 금융자산과 부채를 함께 고려한 부채 상환 능력을 보면 자산 대비 부채 비율이 2016년 3/4분기 말 45.3%(추정치)로 전년 말 (44.8%)에 비해 소폭 상승하였다. 이는 금년 들어 가계의 금융부채 증가율이 자산증가율을 상회하였기 때문인데, 다만 동 비율은 예년 평균(2010∼15년 45.9%) 수준으로 여전히 가계의 금융 자산이 부채의 2.2배 수준에 달한다는 점 등에서 부채상환능력은 대체로 양호한 것으로 평가된다. 물론 2016년 3/4분기 기준 부채증가율이 10.4%로 자산 증가율 8.2%를 상회하지만, 금융자산 대비 부채비율이 50% 하회하기 때문에 채무상환 여력이 문제가 없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림1. 금융 자산 대비 부채 비율 





이는 앞서 무디스나 한국은행 등 여러 기관들이 평가한 근거로 활용되는 지점이다. 그러나 이를 소득 분위로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상황이 보인다.


2016년 12월 발표된 가계금융복지 조사(2016년 3월말 기준)에 기초한 가계의 소득 및 순자산 분위별 금융부채 보유 분포를 살펴보면 부채상환능력이 비교적 양호한 4분위 및 5분위(상위 40%) 계층이 각각 전체 금융부 채의 약 70% 및 60%를 차지하고 있다. 이 표가 의미하는 것은 현재 가계부채의 상당 부분이 소득이 나쁘지 않는 4분위와 5분위에 몰려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소득이 높은 4, 5분위 계층의 채무불이행 위험이 낮은 것은 당연하며 이를 기초로 한국 가계부채의 채무상환 여력은 나쁘지 않아 금융 시스템 리스크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소득 1분위, 2분위, 3분위의 가계부채 비중은 30%에 머물러 있지만, 이들은 소득이 낮고 자산 보유 정도가 높지 않기 때문에 가계부채로 인한 채무상환 부담이나 채무상환 때문에 기본 생활을 위한 소비가 곤란 한 점 등은 총계 수준의 가계부채 통계로는 또 금융 자산 대비 금융 부채 비중 통계로는 잡히지 않는 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림2. 2015년, 2016년 소득 분위별 부채 보유 비율 추이 


              * 자료: 한국은행, 통계청   * 주) 가계금융복지조사(2016.12 발표)


국민경제 전체로만 보면 놓치는 문제가 있다. 즉 누가 빚을 갚을 것인가이다. 전체 수준이 아니라 소득 분위로 볼 경우 이는 전혀 달리 보이는데, 이유는 부자인가 가난한 사람의 빚을 갚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경제를 운용하는 입장에서 보면 상환 부담이 자산 보유액보다 크지 않아 문제가 아닐 수 있지만, 개인별 수준에서 보면 갚지 못할 사람은 현재 상황이 변하지 않는 이상 영원이 갚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디스나 여타 기관들의 경제를 보는 시각은 사람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수준에서 자산만을 고려하기 때문에 위험하지 않다고 한 것이다. 전체와 부분을 나누면 전체를 보는 시각의 장점도 동시에 사라지게 된다.


*송종운의 가계부채 칼럼은 2회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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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7.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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