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운/ 새사연 이사 



지난 3월 미국 연준 연방공개시장위원회(이하 FOMC) 회의에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늘어난 민간회사 채권과 모기지 증권 규모를 축소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아마도 올해 말 쯤 시작할 것으로 보이는 연준의 대차대조표 축소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즉각적이고 부정적이다. 이에 따라 긴축으로 돌아서는 게 아닌가 하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으며, 동시에 경제전망도 경우에 따라 후퇴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미국 연준의 정책 행보에 대한 관심은 우리나라의 기준금리에 해당하는 연방기금시장목표금리(FFR) 인상 “시점”에 맞춰져 있었다. 기준금리의 속도와 폭도 중요하지만, “시점”이 워낙 중요해서 다른 중요한 정책 행보는 주목받지 못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연준의 대차대조표 정책이다. 연준의 대차대조표 정책은 양적완화 정책이다. 그동안 우리는 연준이 양적완화를 통해서 돈을 뿌렸다는 사실에만 주목했지 양적완화 결과 연준의 대차대조표 구성이 어떻게 변경되었는지 꼼꼼히 챙기지 못했다.


연준은 1953년 이래로, 연준 자산의 대부분은 미 재무부 단기국채 보유를 원칙으로 삼고 있다. 이를 단기국채매입주의(T-bill doctrine)라고 한다. 연준은 자산의 90% 가량을 미 재무부 단기국채로 채웠다. 그러던 중 2008년 위기 대응 과정에서 양적완화 정책을 실시 한 결과 단기 국채 보유 비율이 35%까지 내려가기도 했다. 빠진 부분은 다른 자산으로 채웠는데, 바로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해 휴지조각이 되어 버린 모기지 증권에서였다. 현재도 약 35% 가량이 모기지 증권이다.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은 이런 조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서브프라임 사태의 원인은 공급 측 문제(모기지 파생상품을 판매한 금융기관)가 아니라 수요 측 문제(모기지 파생상품이 판매되지 못한 것)로 보고 연준이 이를 사주면 위기의 원인이 해결될 것이라고 했다. 또한 나중에 경제 사정이 나아지면 연준이 매입한 모기지 파생상품을 시장에 다시 내놓고, 연준은 금융 위기 이전의 대차대조표 상태로 돌아간다는 계획이었다. 지난 3월 FOMC에서 나온 대차대조표 축소 이야기는 바로 이것이다.


최근 미국의 경제 사정은 나쁘다고 할 수 없다. 고용 지표가 개선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방기금시장목표금리도 올리고 점차 과열을 걱정하는 정책 행보를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대차대조표 정상화는 쉽지 않고, 시장에 부담을 주는 것이어서 상당한 주의를 필요로 하는 정책 조치인 탓에 쉽사리 손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기준금리를 올리더라도 대차대조표는 당분간 손대지 않겠다는 것을 뜻하는 개념이 바로 뉴 노멀(New Normal)이다. ‘새로운 정상’이라는 낱말이 담고 있는 뜻은 정상적인 상태로 정책 처방을 되돌려야하지만 대차대조표는 그대로 놔두자는 것이다. 따라서 지난 3월의 결정은 뉴 노멀을 노멀로 돌리자는 뜻이었다.


역사적으로 1929년 미국 대공황은 뉴딜 정책과 태평양 전쟁 참전을 계기로 위기의 늪에서 빠져나왔다. 그러나 1937년~1938년 다시 침체로 빠져드는데, 여러 이유 중에서 연준의 정책 실패로 지적받는 사항이 바로 지급준비율 인상이다. 당시 연준은 미국 경제 상황이 대공황의 위기에서 빠져나왔다고 판단하였다. 그 이유는 은행이 적립해 놓아야 할 지급준비금을 초과해서 쌓아놓았기 때문에 그것을 보고 여유가 있다고 판단해서 지급준비율을 인상한 것이다. 그러나 은행이 지급준비금을 법에서 정하는 규모 이상으로 쌓은 것은 1) 경제 위기가 사라지기는 하였으나 아직 기업 대출을 마음 놓고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는 보수적 태도 2) 언제 또 다시 경제위기의 불씨가 살아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연준은 은행의 이런 입장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급준비율을 인상하였고, 곧바로 경기침체로 돌아서는 실수를 한 것이다. 물론 연준 FOMC의 3월 결정이 1937년 정책 실패로 이어질지 아닐지는 모른다. 하지만 경제가 확실히 대자대조표 축소를 견딜 수 있는 상황인지 분명하지 않다. 따라서 필요하지만, 그것이 지금인가는 다른 문제이다.


금융 위기 이후, 유명해진 경제학 개념 중 하나가 ‘최장기 수준에서 경기침체(secular stagnation)이다. 로렌스 서머스에 따르면, 최장기 수준에서 경기침체는 경제가 항상 침체상태에 있다는 뜻이 아니라, 통화정책을 통해 침체를 성장으로 변경시킬 수 있으나 이 경우 상당한 정도의 금융 불안정을 대가로 치를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다. 연말에 FOMC가 실제로 대차대조표 축소를 통한 정상화를 단행할지 말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가까스로 살려놓은 경제가 다시 침체로 이어질 수 있는 정도의 정책 처방은 완벽한 확신이 없다면 시도하지 않는 편이 합리적이다. 한편 FOMC의 대차대조표 축소를 둘러싼 이야기를 통해서 가늠할 수 있는 것은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가 그만큼 엄청난 것이었다는 것과 더불어 금융 안정을 위해 우리가 치러야 하는 대가가 얼마나 큰 것인지이다.



발행일: 2017.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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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운/ 새사연 이사 




앞선 글에서 필자는 현재 가계부채 가구의 상태가 1300조를 훌쩍 넘어선 것에 비해 금융 자산 대비 금융 부채가 45%정도여서 국민경제에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무디스의 진단을 소개하며, 그렇다할지라도 부자가 가난한 사람의 빚을 갚아 주지 않기에 경제 위기 위험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제 더 나아가 보자.


일반적으로 어느 한 대상의 문제를 진단하고 해법을 제시할 때 다양한 시각과 다양한 해법이 있을 수 있다. 가령 가계부채의 경우 채무자를 인권 감수성으로 인식하고 그들이 짊어진 삶의 무게를 덜어 주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부채 탕감을 주장하는 의견도 있다. 가계부채 문제를 복지나 인권 감수성으로 바라보는 견해이다.


약간 시각을 달리해서 신용 시스템의 관점에서 가계부채를 보자. 역사적으로 빚을 갚지 않는 것은 죄였다. “너와 너의 죄를 사하여 주겠다”고 했을 때 죄는 계율을 어기는 것뿐 아니라 빚을 의미하기도 했다. 시대에 따라 죄의 정도나 그에 따른 처벌의 강도도 달랐지만, 매우 가혹했다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멀쩡한 자영농도 빚을 갚지 못하면 곧바로 노비 신세로 전락해 인신구속은 물론 자손대대로 노비 신세를 벗어나기 어려운 상태가 되기 일쑤였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로 이행하면서 빚에 대한 관념이 바뀌었다. 빚은 곧 신용으로 이해되고 채권 채무 관계는 경제생활의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관행이 쌓여 금융 거래는 거대한 하나의 시스템으로 진화하였다. 시스템으로 진화했다는 의미는 금융 거래가 고도로 복잡한 관행이 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개별 거래들이 유기적으로 작동되는 하나의 커다란 기계처럼 되었다는 의미이다. 항상 그렇듯이 커다란 기계는 체계적으로 무수히 많은 일을 척척해내지만 작동 부품하나만 소실되어도 작동을 멈추는 특징이 있다. 시스템 수준에 도달한 잘 정돈된 금융 제도와 관행 덕분에 이전에는 생각도 못할 대단위 사업도 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신용 시스템은 자신 안에 잠재적으로 존재하는 위험 요소가 발현하면 자기 자신 뿐 아니라 사회 전체를 파괴시킬 수 있는 끔찍한 무기로 변할 수 있다.


2008년 글로벌 위기 당시 전 연준(미국의 중앙은행) 의장 벤 버냉키는 금융권에 공적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이유를 이런 맥락에서 설명했다. 금융권의 문제를 내버려 둘 경우 그 여파가 실물경제 전반에 그리고 미국 사회 전반을 강타할 것이어서 부득이 하게 금융권에 납세자의 돈을 지출 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다. 이러한 논리에서 중앙은행 뿐 아니라 재무부도 금융권에 공적 자금을 제공하였던 것이다. 재무부의 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 이름으로 제공된 조치에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가계의 부실자산을 구제한 독특한 방식이다.


미 재무부가 구제한 것은 ‘채무자’가 아니라 ‘부실자산’이었다. 언뜻 구별되지 않을 수 있지만, 사실 큰 차이가 있다. 채무자를 구제한다는 것은 국가에게 채무자 개인에 대한 구제 의무가 있는지 아니면 채무자 자신이 스스로를 구제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으로 확대될 수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도덕적 해이가 바로 이와 관련된 문제이다. 복지나 인권 감수성이 매번 부딪히는 벽이 바로 이 지점이다.


그러나 구제 대상을 ‘부실자산’으로 설정하면 문제는 완전히 달라진다. 즉 구제 대상을 고통받는 채무자로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신용 시스템으로 설정하는 것이다. 부실자산 구제의 정책적 목표는 부실 자산을 개인의 책임으로 보고 그대로 놔두었을 경우 피할 수 없는 채무불이행의 확산, 금융기관의 파산 그리고 여기서 비롯된 신용 시스템의 붕괴 위험을 제거하는 것이 다. 결국 부실자산 구제는 자본주의 사회의 신용 시스템이 끔직한 무기로 변모시킬 수 있는 위험을 제거하는 일(!)이 되기에 그것이 탕감이라 불리던 대리 변제라고 불리던 신용 시스템과 실물경제의 안정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 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공적 부실자산 구제이며 공적 채무조정이다.


공적 채무조정은 공적 부실자산 구제 와중에 채무자에게 이로운 채무 조정이 진행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경우 재무부의 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을 통해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더 이상 부정적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았고 또 경제가 회복할 수 있는 동력을 소진시키지 않을 수 있었다고 평가받는다. 즉 공적 채무조정 덕분에 경제 회복이 그만큼 더 빠르게 진행될 수 있었다.



원문 바로 가기: http://saesayon.org/2017/04/05/20552/


발행일: 2017.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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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보고서2017.04.04 11:45



송민정/ 새사연 연구원




2000년대 후반부터 경제 상황에 대하여 이야기를 할 때, 장기간의 불황으로 인한 각종 불안정성과 사회 깊숙이 침투한 양극화 문제는 사회 현상을 설명하는 기본적인 전제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전 세계적이고 지속적인 경제 위기 속에서 개인과 국가 모두가 불안하기 때문에 공동체 의식과 배려가 사라지고 자신에게‘만’ 나은 선택을 했기 때문이라는 도덕적 판단이 그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국부론의 저자 아담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나 ‘합리적 인간’, 혹은 ‘야경국가’ 등의 개념은 사회문제의 원인이 사회 구조보다는 개인에게 있다는 주장의 근거로 사용되곤 했다. 다시 말해, 사회에 속한 개인이 시장을 통해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면 자연스럽게 사회 전체의 이익은 커지고, 그것이 더 효율적일 것이라는 믿음이 사회 구조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귀속시킨 것이다. 역사 속에서 복지국가의 개념이 확장되면서 이러한 현상은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으나, 아직 해결되지 않은 시장의 주체들에게 발생하는 문제들을 분석하기에는 유용하다고 여겨진다.


실제로 아담스미스는 공정하지 않은 경쟁을 부정하였고, 국가의 무상교육을 통한 보편적 교육론을 언급하기도 한다. 즉, 해당 개념들은 사회 안에 기본적인 도덕적 가치가 정립되고 공유된 상태를 가정하고 전개된 것이다. 거기에는 본질적으로 공정한 사회에서 개인의 이기심이 발현 되어야 최적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불공정하고 불투명한 과정을 참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 덕분에 자기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더라도 보이지 않는 손에 인도로 사회 전체의 이익이 촉진된다고 주장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기심이 본질이면서도 희생과 배려가 있고, 그 사이의 사회 교환 과정을 관찰해 온 스미스는 인간 본성에 대한 연구를 하며 경제학을 창시하였다. 이에 기본 개념들을 다시 보며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이기심(Self-interest)에 대해


경제학에서 가정하고 있는 합리적인 인간은 때론 이기적인 인간의 이음동의어처럼 사용된다. 아담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중국의 지진과 당장 내일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절단해야 하는 상황에서 개인의 심리를 묘사하면서 이기심을 설명한다. 자세히 풀어보면, 중국에 갑작스럽게 지진이 나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죽고 나라를 잃게 된 상황이 벌어진다. 이 소식을 들은 유럽의 휴머니스트는 비통해하고 애도하지만, 이 비참한 소식이 막상 그날 밤 이 휴머니스트가 편안한 잠자리에 드는 것을 막을 수 는 없을 것이라고 한다. 반면, 사소한 사고로 인해 내일 당장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잘라야한다면 휴머니스트는 밤새 잠들지 못하며 불안해 할 것이다. 직접 보지 못한 수 억 명의 죽음보다 자신의 새끼손가락에 더 신경을 쓴다는 것이다.


앞선 예시에 따르면 사람은 마치 극단적인 이기심이 최우선으로 발현되는 것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인간이 극단적으로 이기적이고 자신의 안위만이 유일한 관심사라면 사회가 어떻게 조직되고 어떻게 운영되며 심지어는 발전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국부론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바로 그 유명한 저녁식사에 대한 비유이다. 우리가 저녁에 먹는 음식들이 푸줏간 주인이나 빵집 주인, 혹은 양조업자가 우리가 저녁을 먹기 위해 관용을 베풀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래한 결과라는 것이다. 자신이 처해 있는 조건을 개선시키려는 자연적인 노력이 합리적인 이기심인 것이다. 이러한 이기심을 충족하려는 각자의 노력과 이해가 이성과 언어능력을 기반으로 합치할 때 교환이 발생한다. 그리고 이렇게 발생한 교환이 곧 경제 질서의 근간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기심을 부정적으로만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개인의 상황을 좋아지게 하려는 노력은 인간을 생존하게 하는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단지 이기심이란 개념은 사람들의 희생이나 배려, 공정한 사회에 대한 요구 등을 설명하기엔 부족하기에 추가적인 개념이 필요하다.



공감(Sympathy)에 대해


이러한 이기심의 사이를 메우는 것은 이기심과 정반대의 능력처럼 보이는 공감능력이다. 국부론보다 앞선 스미스의 저서인 도덕감정론은 당대 스미스를 유럽 전역에서 유명하게 한 최고의 책이었지만, 국부론의 유명세에 밀려 주목을 덜 받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도덕감정론이 있었기에 국부론이 나올 수 있었고, 스미스가 말년에 수정을 거듭하며 손에 쥐고 있었던 것은 바로 도덕감정론이었다. 이 저서에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인간의 능력은 공감이다. 쉽게 풀어 말하면 역지사지의 자세이다. 상상력을 작용시켜 타인이 처한 상황에 자신을 대입시킴으로서 그 사람의 감정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도덕적인 판단의 기초에 연결이 된다. 그 이유는 타인과 감정이 공유되는 과정에서 자신의 행위에 대해 스스로 평가 할 때, 타인의 감정과 평가를 추론하여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개인은 행위를 할 때 타인의 승인과 평가를 요구하고, 이러한 타인의 역할을 자신의 내부에서도 (행위를 할 때마다) 지속적으로 수행하는 심리적 존재한다. 이를 공정한 관찰자(Impartial spectator)라고 하는데, 이는 각자 내부에 자리 잡는다. 공정한 관찰자는 당사자 안, 즉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행동하는 주체를 속일 수 없고, 모든 정보가 공개되어 있다. 사람들은 이 공정한 관찰자를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행동하고, 그 결과가 모인 것이 일반적인 도덕이다.


여기에 스미스는 미덕(virtue)이라는 항목을 추가하여 공정한 관찰자가 납득할 수 있는 옳고 그름의 판단기준을 제시한다. 개인에게 이득이 되는 낮은 차원의 덕목인 신중(prudence)과, 자기 및 공공적 측면에 도움이 되는 정의(justice), 그리고 공정성을 추구하려는 자기절제(self command)가 그것이다. 이 세 가지의 덕목 때문에 공감은 이기심과 조화를 이루어 사회를 유지하는 힘이 된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대해


인간의 본질을 설명하는 이기심과 공감의 개념을 통해 개인은 하나의 차원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각각의 개인은 다면적이고, 도덕적으로 공정한 사회라는 바탕에서 자유로운 개인 간의 교환을 통해 부를 증대시키며, 각기 다른 개인의 만족을 얻는 것이다. 국부론에서 시장의 효율성을 강조하는 장면에서 등장하는 보이지 않는 손은 이 사이에서 작용하는 확장적 통로이다. 마치 도덕감정론에서 개인의 이기심이 조화로운 사회에서나 가능한 교환까지 가는 데에 공감능력과 내적인 도덕기준의 발현이 통로가 된 것처럼 말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시장은 독과점이 없고, 노동이동이 자유로워 기회가 비교적 균등한 모습일 것이다. 그래야만 개인이 시장에서 자유롭게(natural liberty) 이익을 추구했을 때 결과가 확실하게 나오거나 노력한 만큼 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할 수 있는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과 구조이다. 아담스미스는 지금처럼 세계 자본의 규모가 크지 않았고, 신학적이고 철학적인 것이 학문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시기에 살았다. 그렇기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할 수 있는 사회를 도덕적 기반에서 찾았다. 이 부분을 다시금 되새겨야할 시기이다.

 


 

참고 1) D.D. Raphael, 1997, “Smith,”in Three Great Economists, 7-104, Oxford.

참고 2) 이현주 역, 2015,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 Russell Roberts, 2014, How Adam Smith Can Change Your Life, 세계사


원문 바로가기: http://saesayon.org/2017/04/03/20545/

 


발행일: 2017.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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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운/ 새사연 이사 



세계경제를 뒤흔든 위기의 원인은 취약계층에서 시작되었다


런던정경대학 교수 코스타스 라퍄비챠스는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위기를 이상하고 낯선 위기라고 했다. 라파비챠스에 따르면, 금융 역사에서 서민들의 빚 때문에 한 나라가 위기에 휩싸이고 그것이 글로벌 경제까지 뒤 흔든 사례는 없었다.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당시 미국의 위기는 서브프라임 즉 가난하고 직업 없는 히스패닉들과 백인 노동자 계급이 상환능력 없는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것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이들은 집을 사고 몇 년 후에 곧바로 변동이자 때문에 감당 할 수 없이 불어난 이자와 원리금으로 인해 채무불이행을 비켜갈 수 없었고 이 때문에 대출 금융기관들이 연쇄적으로 도산하고 급기야 미국 경제 전체를 위기 속으로 빠져든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전세계로 확산되었다.


미국의 금융자산과 실물경제에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전세계를 위기로 몰아넣은 직접적 계기는 저소득층의 채무불이행이다. 규모로 봐도 미국경제에서 차지하는 저소득층의 부채는 얼마 되지 않았다. 문제의 원인은 이를 근거로 발행된 자산유동화와 증권화 때문에 부채 상환능력이 있었던 자산까지 위기가 전염된 것이다. 따라서 전체적인 수준에서 부채상환 여력에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밀접하게 연관된 (자산 유동화와 증권화가 만들어 놓은) 금융혁신의 고리 때문에 저소득층의 가계부채는 한 계층의 문제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경우도 이와 다르지 않다. 앞선 글에서 금융 자산 대비 금융 부채 규모가 45% 정도여서 한국의 가계부채 문제는 국민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정도는 아니라는 무디스 신용평가 회사의 진단을 인용했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에서처럼 촘촘하게 연계된 현대 금융 네트워크의 특징 때문에 위기는 적은 규모에서 발생한 채무불이행이 국민경제 전체를 잡아먹을 수 있는 위험이 있다는 것은 부정 할 수 없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정부는 2016년 4월 총선과 여름 종합 대책, 그해 11월 종합대책 보완책 등 여러 차례에 걸쳐 총량 증가 관리 조치를 발표하였다. 이 중 특히 주목 할 내용은 여신 심사 가이드라인을 강화한 것이다. 이는 가계의 소득 수준과 총부채 수준 등을 고려하지 않는 무분별한 대출, 책임질 수 없는 대출을 막아 총량 증가를 억지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현 가계부채 사태는 대출 심사를 까다롭게 한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러한 접근은 전형적인 총량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총량 수준에서 한국의 가계부채는 아직 임박한 파국의 상황이 아니라는 인식에서 나온 조치라고 보인다.


그러나 최근 가계부채 증가는 주택담보대출뿐만 아니라 생계와 관련된 대출수요 증가다. 소득이 늘지 않는 가운데 빚이라도 내어야하기 때문에 증가하는 가계대출 부분이 문제를 발생한다. 이런 상황에서 대출 조건을 까다롭게 하면 저소득층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찾아 갈 곳은 결국 고금리 제2금융권과 대부업체로 갈 수 밖에 없다. 이를테면, 마이너스 통장, 카드론, 제2금융권 신용대출, 그리고 캐피탈과 대부업체가 그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2016년 가계대출 증가 요인은 무엇보다 생계 자금과 주택 임대차 대출이 특징이다. 2015년 1월~8월 동안 생계자금용 대출은 전체 가계대출에서 24.5%, 주택임대차용 대출은 6%에 그쳤다. 그러나 2016년 1월~8월 생계자금용 대출은 27.1%, 주택임대차용 대출은 13% 올랐다. 이는 더 이상 주택담보대출이 가계대출 증가의 가장 큰 요인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물론 지금까지 가계대출 중 주택담보대출 비중이 60% 이상 차지하고 있지만 말이다(예금취급기관 기준).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대출금상환 목적의 대출이 줄었다는 점이다. 지난 해 1월~8월 25%였으나 올해 1월~8월에는 10%로 급격하게 감소하였다. 이는 생활자금과 주택임대차 비용에 급하여 그나마 빌려서 갚았던 것도 불가능한 상황으로 볼 수 있다.


NICE 통계에 따르면, 2015년 말 기준으로 신용등급 4등급 이하 금융소비자는 964만 명에 달하며, 이 중 은행권 대출은 고신용자에 집중되었다. 금융소비자 1,498만 명 중 1~3등급은 534만 명, 4~7등급은 698만 명, 8~10등급은 266만 명이다. 또한 은행권 1~3등급 대출비중은 2012년 말 69%에서 2015년 말 79%로 크게 증가하였다. 2016년 이후 제2금융권 가계대출 증가는 주로 저신용 금융 소비자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015년 1분기부터 2016년 1분기까지 가계대출 총량 증가는 주로 은행권 대출 증가에서 비롯된다. 이 기간 동안 비은행 대출은 증가세가 크지 않고 또한 총량 증가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016년 1분기 이후 총량 증가는 비은행 대출의 증가가 직접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위에서 은행권 대출심사 엄격화에 따라 생활자금의 수요가 증가한 것이 원인이다.


결국 문제는 총량 증가를 관리하는데 있지 않고 채무불이행 위험이 높은 소득 계층과 직업군 또는 연령층에 대한 선제적인 공적 채무조정이다. 이들의 위험이 단순히 우려에 그치지 않고 현실화 될 경우 우리나라에 2008년 미국의 파국이 재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미 벌어진 파국에 대응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왜 그 많은 경제학자들이 예상하지 못했는지에 대해서가 아니다. 더 나아가 그들이 금융혁신을 통해 이러한 사태를 불러일으켰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위기가 터지고 이를 어떻게 수습하고자 했으며 또 하였는지에 대해서이다. 미국의 경우, 재무부는 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TARP)을 통해 부실 모기지 증권 매입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한편 주택시장 지원 정책으로 압류위기에 처한 가구가 채무불이행으로 압류에 처하지 않도록 지원하였다. 지금도 해당 정책을 개선하여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공적 채무조정 실적이 부진하다. 공적 채무조정이란 ‘부실채권을 채권자의 입장에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채무자의 입장에서 접근하여 채무자로 하여금 갱생과 회복을 통해 정상적인 경제생활을 가능하도록 지원하는 정부의 노력’을 의미한다. 이것이 다음 칼럼에서 집중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 본 칼럼은 <신용평가 회사 무디스는 왜 한국의 가계부채가 위험하지 않다고 했을까?> 연재 칼럼입니다.


1. 신용평가 회사 무디스는 왜 한국의 가계부채가 위험하지 않다고 했을까? ①

2. 신용평가 회사 무디스는 왜 한국의 가계부채가 위험하지 않다고 했을까? ② : 가계부채 총량 증가 관리 대책, 문제 원인은?


원문 바로가기: http://saesayon.org/2017/03/29/20533/




발행일: 2017.03.29

발행처: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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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서연/ 새사연 회원




작년부터 대학가를 중심으로 동전노래방과 인형뽑기방이 빠르게 늘고 있다. 동전노래방은 500원에 1~2곡을 부를 수 있는 노래방 박스가 있고, 인형뽑기방은 보통 1,000원에 2~4번 기회가 있는 인형뽑기 기계가 있다. 최근 한 기사에 따르면 인형뽑기방의 경우 2년 사이 24배나 증가할 정도로 폭발적으로 늘었다(한국경제TV, 2017년1월4일). 이는 청년(대학생 포함)들의 사정과 관련이 있다.



동전노래방과 인형뽑기방의 공통점 소액으로짧은 시간에감정소비 없이


동전노래방과 인형뽑기방의 공통점은 비교적 소액으로, 짧은 시간에 감정소비 없이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빈곤과 고독, 과도한 경쟁으로 인한 인간관계의 축소, 단절을 경험하고 있는 현재의 청년들은 경제적, 시간적, 정서적 여유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이들 신종오락 공간에 흥미를 느낀다. 주머니에 천 원짜리 한 두 장만 있다면, 함께 할 사람이 없더라도 언제든지 찾아가서 짧게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청년들은 스트레스를 달래기 위해 소액의 사치(치킨, 택시 등)를 부리며 이 비용을 매우 극단적인 표현인 ‘시X비용’이라고 일컫는 현상까지 등장했는데, 동전노래방과 인형뽑기방도 이 현상의 연장선에서 이해될 수 있다(경향신문, 2017년1월29일).


한편, 사업자 입장에서 동전노래방과 인형뽑기방은 기계별 매출은 적지만 매장 공간을 쪼개서 좁은 면적에 많은 기계를 배치할 수 있고, 빠르게 회전되기 때문에 전체 수익률을 높일 수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이처럼 수요자와 공급자의 이해관계가 맞물림에 따라, 동전노래방과 인형뽑기방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사실 동전노래방과 인형뽑기방은 기존에 없던 것이 새롭게 등장한 것이 아니다. 과거 오락실 구석에 놓여 있던 동전노래기계 박스와 길거리에 놓여 있던 인형뽑기 기계를 많은 이들이 기억할 것이다. 그런데 동전노래방과 인형뽑기방이라는 형태로 새롭게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동전노래방인형뽑기방 그리고 셰어하우스


동전노래방과 인형뽑기방이 등장한 맥락은 셰어하우스와 비슷하다. 셰어하우스는 공용공간은 공유하고 방을 개별 혹은 2인 이상이서 사용하는 주거방식인데, 2012년 정도를 기점으로 서울 등 청년들이 밀집한 대도시를 중심으로 공급되기 시작했다. 사업자는 보통 교통이 편리한 지역에서 방 3개 이상의 주택을 확보하여 3명 이상에게 임대하고 관리한다. 셰어하우스도 과거에 없었던 것이 아니다. 월세나 사글세를 아끼기 위해 친구나 동료와 한 집에서 함께 살아온 경험은 도시화와 함께 언제나 존재했고, 주거공간을 쪼개어 수요자의 부담 금액을 낮추고 사업자의 수익률은 높이는 고시원은 현재도 성업하기 때문이다.


다만, 셰어하우스는 기존 고시원이 갖고 있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역세권의 실제 주택용도의 건물을 활용하면서 희석시켰고, 입주자 연령이나 취미를 제한함으로써 정서적 유대감을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하였다. 공간을 쪼갬으로서 월세의 절대 금액을 낮추었고, 보증금 역시 월세의 2~3배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가난한 청년들에게 심리적 진입장벽을 낮추는 데 성공했다. 동전노래방과 인형뽑기방도 과거에 위치했던 오락실이나 길거리가 아니라 번듯한 상가 1층에 위치하고 있고, 청년들이 선호할 인테리어나 소품(특히 인형뽑기기계 경품은 주로 현재 청년들이 10대 때 좋아했던 포켓몬스터 인형)을 배치함으로써 정서적 유대감을 유도하였고, 앞서 언급하였듯이 1회 이용의 절대 금액이 낮다는 점에서 셰어하우스와 여러모로 닮아있다.



셰어하우스는 주거 대안이라기보다 청년 빈곤의 현상


그런데 최근 서울시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는 청년 주거문제를 해결한다는 명분으로 공공의 자원이 투입되는 임대주택을 셰어하우스 형태로 공급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서울시의 ‘역세권2030 청년주택’, 제주특별자치도의 ‘탐라하우스’로 기존 기숙사형태의 공공임대주택과는 별개로 일반주택을 활용하는 셰어하우스로 공급할 계획을 밝혔다. 셰어하우스 형식으로 공급함으로써 인당 공급단가를 낮추고, 더 많은 이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다는 측면은 분명 무시할 수 없고 이해가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셰어하우스가 등장한 맥락을 고려한다면 셰어하우스는 주거 대안이라기보다 청년 빈곤의 현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엄밀하게 말해 셰어하우스는 가난한 청년들의 처지를 겨냥한 것에 가깝다. 이를 공공에서 마치 주거대안인 것처럼 정당화하여 공급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먼저 청년들도 성인으로서 적절한 시설을 갖춘 독립공간에서 생활해야한다는 인권적 차원에서도 물론이고, 앞으로 우리 사회가 청년 등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방식의 전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걱정이 된다. 근본적으로는 청년들의 빈곤을 해결해야 하겠지만, 사회가 청년을 대하는 자세가 셰어하우스를 통해서도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


출처: 이영호 기자, “인형 뽑기방 2년새 무려 24배 급증…대체 왜?”, 한국경제TV, 2017년 1월 4일.

이유진 기자, “스트레스 사회, ‘시발비용’을 아십니까”, 경향신문, 2017년 1월 29일.


원문 바로가기: http://saesayon.org/2017/03/22/20451/


발행일: 2017.03.22.

발행처: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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