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관이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가 날마다 <문화방송>을 질타한다. 사설과 칼럼, 기사로 꾸짖고 조롱한다. 저들의 행패가 새삼스런 일은 아니다. 비판해야 이미 들을 귀가 없다는 판단도 있었다.

하지만 보라. 저들이 곰비임비 '기자정신'을 부르대는 풍경을. 참으로 황당하지 않은가. 기자 정신만이 아니다. 기자 윤리나 '언론의 정도'를 들먹인다. 비단 'PD수첩'만이 아니다. 젊은 방송프로듀서들이 애면글면 개척해온 '피디 저널리즘'을 난도질한다.

인터넷 신문은 아예 '저질 언론'으로 몰아간다. 언론학 교수 박명진이 집권 세력 추천으로 위원장 자리에 앉아있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결정은 '금과옥조'다.

피디저널리즘, 인터넷신문까지 싸잡아 '저질'로 비난

한 신문은

"PD수첩발(發) 광풍에 진실이 매도당한 두 달 반"(7월18일자 사설)이라고 개탄한다. 사설이 촛불 시위를 매도한 일은 접어두자. 다만 "정부의 어설프고 조급한 쇠고기 협상이 빌미를 제공한 것은 분명하다"는 대목이나 "일부 인터넷 매체와 좌파 군소신문, 명색이 공영방송들이 한 덩어리가 되다시피 해 미국 쇠고기의 위험성을 확대재생산했다"는 주장에 이르면 하릴없이 코웃음이 나온다.

마치 자신들만이 기자 정신을 지키고 언론의 정도를 걸어가고 있다고 부르대는 윤똑똑이들에게 묻는다. 과연 그대들은 "정부의 어설프고 조급한 협상"을 조금이라도 비판했는가? 과연 그대들은 미국 쇠고기의 위험성을 "확대재생산"하지 않고 진실을 보도했는가?

"진실이 매도당한 두 달 반"이라고 거침없이 쓴 신문을 보자. 촛불 문화제가 처음 열린 바로 다음날 이 신문은 곧장 "반미(反美) 반이(反李)로 몰고 가는 '광우병 괴담' 촛불시위" 제하의 사설(5월3일자)을 내보냈다. "일부 세력의 불순한 선동에 민심이 흔들리게 된다"고 개탄했다.

이틀 뒤에 사설 제목은 숫제 "다시 '촛불'로 재미 보려는 좌파세력"이다. 색깔공세는 마침내 극에 이른다. 사설 "광우병 촛불집회 배후세력 누구인가"(5월10일자)가 그것이다. "일부 세력이 벌이는 '광우병 공포 세뇌'는 북한의 선전선동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단다.

저들은 촛불 시위가 더 퍼져가자 슬그머니 '눈치'를 살폈다. 초기에는 순수했는데 변질됐다는 주장들을 싣기 시작했다. 명백한 거짓말이다. 언제 초기의 순수성을 인정했단 말인가.

'PD수첩'에 아무런 문제점도 없다는 게 아니다. 의욕 과잉으로 빚어진 문제들이 있다.

하지만 언론인으로서 묻는다. 촛불 시민을 겨눠 처음부터 '좌파'니 '반미'니 '북한의 선전선동'과 연관시킨 그대들이 'PD수첩'을 훈계할 수 있는가. 이명박 정권의 굴욕 협상에 입도 벙긋하지 않던 그대들이, 미국산 쇠고기를 전면 수입한 문제점에 아예 모르쇠 한 입으로 '확대재생산'이라고 비난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왜 그대들은 아무 문제도 없는데 대통령이 고개숙여 사과할 때, 추가협상 한다고 언구럭 부렸을 때, 침묵하고 있었는가.

검찰의 'PD수첩' 수사에 대한 침묵이 언론학자의 양심인가

같은 논리로 언론학을 공부한 학자인 박명진 위원장에게 묻는다. 과연 저 수구신문들과 <문화방송> 가운데 누가 더 저널리즘의 본령에 충실했는가. 방송에 대해 대통령부터 나서서 '대책회의'를 열고, 마침내 검찰이 제작진을 수사하고 소환하려는 이 혼탁한 탁류에서 언론학자의 양심은 무엇이어야 옳은가.

거듭 명토박아둔다. 지금도 미국산 쇠고기 전면수입으로 인한 광우병 위험성은 여전하다. 미국 민간업자들의 품질보증 따위는 기만이다. 언론의 길은 어디에 있어야 옳은가.

오늘 저 부라퀴들이 'PD수첩'을 비난하는 행태는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흉보는, 바로 그 꼴이다. 똥 묻은 개의 만용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촛불을 짓밟을 깜냥인가. 간곡히 당부한다. '개'가 아니라면 진실을 말하길. 그럴 용기가 없거든, 차라리 침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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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 시민이 엠네스티에 보내는 한국경찰 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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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력시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경찰을 위하여 2008년 5월 25일 촛불집회 도중, 부산지방경찰청을 향해 야유를 보내다. 대단한 경찰이다. 경찰청이 엠네스티를 향해 "폭력시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며 목청...

    2008/07/23 22:22



운동권.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언론이 ‘시대착오’의 낡은 이미지로 덧칠해 대량 유포한 말이다. 부정적 인상을 주기 십상이지만, 바로 그래서다. 이 글에서 나는 운동권이란 말을 일부러 쓴다.

 ‘운동권’과 촛불을 든 시민의 소통을 소망해서다. 촛불은 신선하고 운동권은 고리타분하다는 담론이 곰비임비 펴져있다. 운동권과 촛불세대를 가르기도 한다. 과연 그래도 좋은가. 기존의 진보세력을 싸잡아 신자유주의에 투항했다는 왜곡도 서슴지 않는다.

 물론, 그런 ‘386’도 있다. 하지만 묻고 싶다. ‘참여정부’와 국회에서 활동한 386들이 과연 진보세력인가. 아니다. 기존의 모든 진보세력이 신자유주의에 저항하지 않은 듯이 이야기 하기는 사실과도 다른 매도다.


 ‘광우병 쇠고기’와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며 노동운동, 농민운동, 빈민운동, 교육운동을 줄기차게 벌여온 사람들이 있다. 나는 노동현장, 농민현장, 빈민현장, 교육현장에서 변함없이 꿋꿋하게 활동하고 있는 ‘아름다운 386들’을 알고 있다. 정치권에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있다.

 왜 그들 모두를 촛불을 든 시민과 굳이 단절시키려 하는가. 그런 담론을 펴나가는 지식인의 글과 말을 마주칠 때마다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아름다운 386과 촛불세대를 누가 단절시키고 있는가


 2002년

효순-미선의 원혼을 위로하며 밝힌 촛불 때도 그랬다. 줄곧 운동해 온 사람들에 대한 불신은 촛불의 분열로 이어졌다. 친미사대 언론의 틀(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한 탓이다. 그 결과는 촛불의 몰락이었다.

 오해 없기 바란다. 진보운동을 해온 사람들이 지금 촛불 집회를 ‘지도’해야 한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진보세력은 실제로 그것을 지도할 역량을 갖출 만큼 준비하지도 유연하지도 못한 게 안타까운 현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 신자유주의에 반대하고 분단체제를 극복하려고 온 생애를 바쳐온 사람들과 촛불을 들고 나선 사람들 사이에 단절을 강조할 필요는 없다. 없는 단절을 굳이 단절시키려는 담론은 더 큰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


 그렇다. 지금은 ‘운동권’으로 매도 당해온 진정한 진보세력과 촛불세대 사이에 다리를 놓을 때다. 그러려면 진보세력과 촛불을 든 시민 모두 성찰이 필요하다.

 먼저 진보세력이다. 그동안 진보세력은 신자유주의와 분단체제를 넘어설, 실현가능한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는 데 스스로 소홀했다. 신자유주의와 분단체제로 고통 받고 있는 민중의 가슴에 다가서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자기 안의 경직된 신념을 다지거나 ‘뺄셈’을 하며 분열하는 데 많은 시간과 힘을 소모한 탓이 아닐까.


 촛불을 든 시민들도, 10대 청소년들도 성찰해볼 물음이 있다. 혹 진보세력에게 선입견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그 선입견이 어디서 비롯했는지 꼭 짚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상당수에게 그 선입견의 기원은 저 부라퀴 언론이다. 촛불을 든 시민은 순수하고, 운동권은 불순하다는 도식은 진보를 자처하는 일부 논객들 사이에서도 엿보인다. 과연 그런 도식이 옳은 것인가. 성찰이 절실한 까닭이다.


 먼저 진보세력이 시민에게 ‘낮은 목소리’로 다가서라


 그렇다. 촛불을 들고 만나야 한다. ‘운동권’과 촛불을 든 시민 사이에 단절을 강조하는 수구세력의 불순한 의도에 대해선 굳이 거론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진보논객들이 그런 담론을 펴는 일은 옳지 못하다.

 그래서다. 촛불 아래로 진보세력이 먼저 시민에게 다가서길 제안한다. 다가설 때 간곡히 당부하고 싶다. 어깨에 힘을 뺄 것을,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해 갈 것을. 촛불 아래서 민주시민도 ‘운동권’에 다가서길 제안한다. 다가설 때 정중히 당부하고 싶다. 선입견을 벗어나길, 이야기를 경청하고 판단하길.


 ‘운동권’과 시민이 마음을 열고 소통할 때, 바로 그 때가 신자유주의와 분단체제를 넘어설 주권혁명의 출발점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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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 정녕 하야하고 싶은가


옹근 100일 전이다. 그가 국민을 섬기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사뭇 진지하게 공언했을 때다. 고백하거니와 코웃음 치면서도 조금은 긴장했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바로 그날 밤, 공영방송에서 그의 ’레임덕’을 들먹였던 나의 전망이 빗나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조심스레 스쳐갔다.


그랬다. 나의 전망은 빗나갔다. 하지만 정반대 방향에서 그렇다. 적어도 집권 초기엔 ’반짝 효과’가 있으리라고 예상했다. 아둔했던 탓이다. 취임 100일을 맞은 그는 전혀 준비되지 않은 대통령임을 스스로 폭로해왔다.


문제는 그의 임기가 이제 겨우 100일을 마쳤다는 데 있다. 2013년 2월까지 그는 대한민국을 책임지는 최고 의사결정권자다. 대통령과 윤똑똑이 참모들이 즐겨쓰는 논리를 빌리면, 5년은 결코 ’잃어버린 세월’이 될 수 없다. 대한민국이 풀어야 할 과제는 쌓여있다. 더구나 세계경제가 미국의 부실로 무장 어려워지는 상황이다.   


2013년 2월까지 그가 대한민국 대통령이어도 좋은가


그러나 보라. 이명박 대통령은 아직도 상황 판단을 못하고 있다. 이른바 ’한반도 대운하’에서도 확인되었듯이, 쇠고기 굴욕협상을 놓고도 곰비임비 꼼수만 쓰고 있다. 고시의 관보 게재 유보와 ’인적 쇄신’이 그것이다. 일단 소나기를 피해가자는 깜냥이다. 인적 쇄신 또한 당장 하겠다는 결기도 엿보이지 않는다. 청와대를 방문한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다. "당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각계 원로를 두루 만나서 여론을 들은 뒤 민심 수습 방안을 제시" 하겠단다. 온갖 생색을 낸 뒤 슬그머니 장관 한두 명을 바꿀 속셈이다.


대통령에 곧장 묻고 싶다. 과연 지금이 그럴 때인가. 게다가 이 대통령은 강 대표에게 18대 국회에서 ’한미FTA 비준 처리’를 서둘러 달라고 지시했다. 과연 그만 모르는 일일까. 굴욕적인 쇠고기 협상과 한미FTA가 깊숙이 연관된 사안임을.


촛불 아래 상황은 명확히 밝혀졌다. 미국은 지금 한미FTA의 의회 비준이 불확실하다. 그럼에도 불확실한 의회 비준을 놓고 확실하게 쇠고기를, 국민건강권을 다 내주었다. 대체 이명박 정권은 자신이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왜 국민이 분노하고 있는지 아직도 모른단 말인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무조건 임기가 보장되는 게 결코 민주주의가 아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대한민국 헌법의 정신도 아니다.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앞으로 대한민국의 4년 9개월을 맡겨도 좋은가라는 데 있다. 답은 간명하다. 적어도 지금의 모습으로는 아니다. 대운하도, 민영화도, 공교육 파괴도 어떻게 해서든 여론의 ’천둥-번개’만 피해가면 된다는 최고 권력자의 모습은 대한민국 국민의 정치의식에 견주어 너무나 초췌하다. 과연 그 속보이는 꼼수를 2013년까지 받아줄 국민이 있겠는가.


잘못된 선택 바로잡기는 주권자의 권리이자 의무


솔직히 말해서 정치인 이명박의 운명에 큰 관심은 없다.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주권자 앞에 벅벅이 놓인 삶의 고통이다. 잘못된 선택을 바로잡는 일은 빠를수록 좋다. 그것은 주권자의 즐거운 권리이자 엄숙한 의무다. 보라. 저 여대생의 머리를 군화로 짓밟는 권력의 추악한 정체를. 


각계 원로를 만나겠다고 꼼수로 언구럭부릴 때가 아니다. 당장 여대생의 머리를 군화로 짓밟은 만행에 공개 사과하라. 평화적 시위를 과잉진압 한 책임자를 문책하라. 고시 발표를 해놓고 관보 게재만 유보할 일이 아니다. 잘못을 고백하고 쇠고기 재협상을 진솔하게 약속하라. 결코 과한 요구가 아니다. 이명박 정권의 임기 보장을 위한 지극히 온건한 요구다. 하야하고 싶지 않거든 더는 꼼수를 쓰지 말라.


손석춘 2020gil@hanmail.net / 새사연 원장

필자는 언론개혁시민연대 창립공동대표, 한겨레신문 노조위원장, 논설위원을 역임했습니다. 현재 <손석춘의 청년학교>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새사연 원장입니다. 이 글은 이스트플랫폼과 오마이뉴스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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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쇠고기 반대 촛불이 저항이 아닌 열정인 이유

    Tracked from [주머니 속의 송곳: 블로그]  삭제

    이번 쇠고기 사태로 인한 국민적 분노가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소위 유권자가 이명박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준 지 채 100일이 되기 전부터 이번엔 국민이라는 이름하에 80%가 넘는 여론으로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고 나아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물론 이 부분에 대해서 비단 쇠고기 문제 때문이라고 국한 짓는 사람은 적을 것이다. 강부자, 고소영 내각이라는 범용적인 문제부터 굴욕적인 대미 외교라는 보수적이라...

    2008/06/04 00:43


 

한국의

진보세력이 위기라는 진단이 높다. 2007년 12월의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이 얻은 표가 ‘증거’로 꼽힌다. 그래서다. 대선 참패가 ‘종북주의’ 때문이라며 민주노동당과 다른 진보신당을 만든 정치인들이 나타났다.


새삼 그들을 비판할 생각은 없다. 다만, 진보정당의 분열이 자칫 노동운동이나 농민운동, 빈민운동, 학생운동에 연쇄적으로 ‘핵분열’을 불러오지 않을까 우려는 된다. 그래서다. 분열의 원인을 면밀하게 짚어둘 필요는 있다.


당을 분열시키며 내세운 ‘종북주의 색깔공세’는 어느 정도 수그러들었다. 어쩌면 목적했던 바를 다 이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민주노총을 바라보는 시선은 사뭇 다르다. 앞으로도 갈등은 더 불거질 전망이다. 민주노동당을 깨고 나간 사람들이 민주노동당을 ‘민주노총 당’이라며 날 선 비판을 하고 있어서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왜 엉뚱한 당에 투표할까?


과연 그러한가? 한나라당의 영남 득표율이나 민주당의 호남 득표율과 비교해볼 때, 민주노동당의 민주노총 조합원 득표율은 떨어진다. 그렇다. 정확히 말하자면 문제는 ‘민주노동당=민주노총당’에 있지 않다. 민주노동당이 ‘민주노총당’ 조차 되지 못하는 데 문제의 핵심이 있다. 왜 그럴까. 왜 진보정당은 민주노총의 조합원들 가슴까지 사로잡지 못하는 걸까. 아니, 왜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진보정당 키우기에 온 열정을 쏟아 붓지 않는 걸까. 왜 엉뚱한 당에 투표하는 걸까.


그 해답을 사사로운 경험으로 찾고 싶다. 1995년 민주노총 건설을 앞두고 각 산별노조 정책실장 회의에 참석하며 민주노총과 인연을 맺었지만, 지금까지 줄곧 지녀온 의문이 있다. 민주노동운동은 어떤 사회를 지향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이 그것이다.


‘노동해방’이라고 하는데 과연 어떤 ‘해방’인가. 더러는 지금 당장 이 땅에 사회주의 체제를 실현할 수 있다는 듯이 주장한다. 그런 분을 볼 때마다 부럽다. 또 다른 한편에선 마치 지금 당장 이 땅에 자급자족 체제를 구현할 수 있다는 듯이 주장한다. 그런 분을 볼 때도 부럽다. 과연 그게 가능한가. 도대체 그들은 20세기 인류의 쓴 경험으로부터 무엇을 배운 걸까?


민주노동운동, 실현 가능한 대안으로 국민을 설득해야


민주노동운동이 어떤 사회를 지향하는지 설득력 있게 답하지 않는 한, 감히 장담하거니와 조합원들의 가슴도 사로잡을 수 없다. 자본주의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천만번 주장한다고 자본주의가 사라지는 게 아니다. 소련-동유럽 사회주의 정권의 실패 뒤에도 아무런 성찰 없이 사회주의를 되뇌며 ‘양심선언’한다고 해서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게 결코 아니다. ‘선언’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실제로 극복할 방안이 무엇인가의 문제를 파고들어야 옳다.


그렇다. 지금 우리는 실현 가능한 새로운 사회를 이야기해 나가야 옳다.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비전과 정책을 만들어가야 옳다. 과거처럼 단순히 반대운동만으로는 민중의 마음에 다가갈 수 없다. 민주노동운동이 국민 대다수의 눈높이에 맞춰 새로운 사회의 비전을 제시하고 운동을 벌여나간다면, 비단 ‘민주노총당’만이 아니다. 모든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당, 농민과 빈민의 당으로 퍼져갈 수 있다.


민주노동운동이 어떤 사회를 꿈꾸고 있는지, 신자유주의와 분단체제를 벗어난 그 사회에 대해 학습이 절실한 오늘이다. 모호한 대안은 언제나 선명한 분열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더 그렇다. 민주노총 차원의 대대적인 교육-선전 활동을 기대한다.


* 이 글은 민주노총의 기관지 <노동과 세계> 복간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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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난과 청년실업 앞에서 왜 노동운동이 문제인가?


이명박 대통령. 감탄이 절로 나온다. 지난 13일 노동부 업무보고 자리였다. 대통령은 자신이 노동자 출신이라고 말했다.


그것도 비정규직 노동자란다. 고등학교 1학년부터 노조에서 일을 했고, 고등학교 졸업하고는 비정규직 노동자였단다.


참으로 놀라운 고백이다. 대통령이 자신을 "태생적으로 본능적으로 '노동자 프렌들리'(친노동)"라고 인식한다지 않은가.


슬그머니 미안하기도 했다. 그런 대통령의 충정을 모르고 노동자에 적대적이라고 비판해왔기 때문이다. 대통령 스스로 "부임한 후에 비즈니스 프렌들리라는 말을 썼더니 일부에서는 친기업적 발언이 아닌가 오해를 한다"고 주장했다.


태생적으로 ’노동자 프렌들리’?


더 놀라운 일은 그 다음이다.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넘어선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해법을 보라. 여전히 '친기업'이다. 기업이 잘돼야 좋은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지고, 그래야 비정규직도 줄어든단다. 대체 누가 어떤 오해를 한다는 걸까.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자칭 '노동 프렌들리' 대통령은, 고등학교 1학년 때 노조 일을 했다는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엄포를 놓았다.  


"경제가 어렵고 젊은이들의 일자리가 없는 위기상황에서 정치적·이념적 파업이나 법을 지키지 않는 일은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감탄한 대목이 바로 그 지점이다. 놀랍지 않은가. 노동자들의 파업을 용납하지 않겠다면서 경제가 어렵단다. 일자리가 없는 젊은이들을 내세운다. 경제난과 청년실업의 문제를 교묘하게 노동운동과 연결짓고 있다. 다분히 의도적이고 정치적 발언이다.


대통령에게 곧장 묻는다. '경제가 어렵고 젊은이들의 일자리가 없는 위기 상황'은 누가 불러왔는가.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진단해야 문제를 풀 수 있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대기업들의 경제는 결코 어렵지 않았다. 경제 선순환구조가 무너진 탓에 민생경제가 고통스러울 뿐이다.


그렇다면 해법은 명쾌하다. 참으로 경제를 살리려면 빠르게 성장해 온 대기업의 이익이 중소기업과 노동자로 흘러가고, 그것이 자영업자들 경기를 비롯한 소비 내수시장을 활성화함으로써 대기업도 다시 이익을 얻는 경제 선순환구조를 일궈내야 옳다.


경제 살리려면 노동자 비난 앞서 ’선순환 구조’ 일궈내야


그런데도 노동자들의 '정치적, 이념적 파업' 을 살천스레 들먹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더구나 자신이 비정규직 출신임을 언죽번죽 내세우는 모습을 어떻게 봐야 할까.


안심하기 바란다. 이 대통령이 '친노동'을 주장한다고 해서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과 비교할 만큼 어리보기는 아니다. 이명박은 비정규직 출신이고, 룰라는 정규직 출신이어서가 아니다. 두 사람의 지향이 정반대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터다. 


하지만 일본의 후쿠다 정권은 어떤가. 같은 보수정권 아닌가. 충분히 비교 가능하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으나 후쿠다 총리는 자신이 '친노동'이라고 주장한 바가 없다. 그는 보수정치인의 '본분'에 충실할 따름이다.


그런데 보라. 후쿠다 총리는 최근 "지금이야말로 개혁의 과실이 급여로서, 국민과 가계에 환원돼야 할 때"라며 기업들이 임금 인상에 나서줄 것을 촉구했다. 후쿠다는 "일본 경제 전체를 보면 대기업을 중심으로 거품기를 웃도는 최고 이익을 얻고 있다"며 "이는 구조개혁의 성과로, 개혁의 아픔을 참고 견뎌온 국민들 노력의 산물"이라고 옳게 지적했다. 이어 임금을 높여 소비가 활성화되면 경제 전체가 확대된다고 강조했다.


기업에 임금 올리라고 촉구하는 후쿠다의 본능


후쿠다와 이명박. 두 사람은 모두 보수를 표방하는 정치인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본능은 다르다. 한 사람은 민중 앞에 보수가 해야 할 일을 알고 있다. 다른 한 사람은 보수를 주장하지만, 진정한 보수인지 하릴없이 의문이 든다.


자신이 비정규직 출신임을 언구럭부리며 노동운동을 짓밟으려는 독재 권력의 꼼수만 보일 뿐이다. 과연 그게 진정으로 이명박의 본능일까. 감탄만 하기엔 그 미래가 너무 어둡다.


손석춘 2020gil@hanmail.net / 새사연 원장

필자는 언론개혁시민연대 창립공동대표, 한겨레신문 노조위원장, 논설위원을 역임했습니다. 현재 <손석춘의 청년학교>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새사연 원장입니다. 이 글은 이스트플랫폼과 오마이뉴스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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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명박 정부의 노동시장 유연화 방안과 통계로 보는 사회 양극화 문제

    Tracked from 독일에서 바라본 세상 이야기  삭제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지난 13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노동부가 밝힌 이명박 정부의 첫 노동관련 정책들은 일련의 노동시장 유연화 방안이었습니다. 노동부는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고, 근로자 파견 대상 업종을 전면 확대하는 것과 아울러, 부당해고를 당한 노동자를 원직 복직시키는 대신 금전적으로 보상할 수 있는 권한을 사..

    2008/03/14 16:46

똥물 먹은 여성, 오줌소태 여성

손석춘의 시선 2008/03/10 11:51 Posted by 미디어팀


'민중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옹근 30년 전이다. 1978년 이맘때다. 스무 살 안팎의 여성들이 노동조합 총회를 열었다. 험 상궂은 사내들이 느닷없이 들이닥쳤다. 마구 똥물을 뿌렸다. 억지로 입을 벌려 먹이기도 했다. 한국 노동운동사에 전환점을 이룬 동일방직 사건이다. 경찰에 끌려간 사람은 '깡패'들이 아니었다. 여성노동자들이었다.


그랬다. 합법적인 노조활동을 하는 여성들에게 똥물을 퍼 먹인 야만극은 지금도 수구세력이 찬가를 읊어대는 '박정희 각하' 시절의 생생한 단면도다.


굳이 30년 전 일을 상기하는 이유가 있다. 3월 8일로 세계여성의 날 100년을 맞은 오늘, 대다수 사람들이 30년 전 과거와 현실은 전혀 다르다고 여겨서다. 과연 그러한가.


똥물사건 일어난 30년 전과 오늘 얼마나 다른가         


"못 배워서 청소일 하는 것도 억울한데 비정규직이라고 마음대로 잘려도 아무 것도 못 하는 게 너무 억울하고 서럽네요."


꼭 1년 전이다. '여성의 날'에 집단으로 해고당한 뒤, 복직 투쟁 한 돌을 맞은 광주시청 청소용역 여성의 토로다.


3월 10일로 농성 930일째를 맞는 기륭전자의 노조간부는 절규한다.


"다시는 노예나 짐승처럼 살고 싶지 않아요."


대다수 조합원들이 포기하지 않는 이유도 명쾌하다. "어디를 가도 기륭전자에서 받았던 설움, 인간취급을 받지 못한 상황이 극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실제로 하릴없이 생계를 위해 투쟁 대오에서 떠난 여성들이 "다른 곳에서 또 해고를 당했다"는 연락을 해 온다.


이랜드-뉴코아 비정규직 노동자의 회고는 더 가슴을 적신다.


"(처음 판매대에 섰을 때) 내 옆에 있던 언니는 방광이 안 좋았어요. 여자들 애기 낳고, 나이 들면 방광이 안 좋아지잖아요. 그 언니 얼굴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울컥 나와요. 언니가 너무 힘들어서 화장실에 갔는데 옆에 있던 정직원이 손님들 다 있는데서 왜 지금 화장실에 가느냐, 그냥 좀 참으라고 면박을 주는 거예요. 하루 종일 화장실도 못가고, 다리에는 핏줄이 다 터지고…."


비정규직이기에 생리현상 조차 해결하기 어려운 노동현실

  

판매대에 선 여성노동자들에게 방광염(오줌소태)은 어느새 '직업병'이다. 비정규직이기에 생리현상을 풀 자유도 없다. 그게 이 땅의 일터 현실이다.


아무런 머뭇거림 없이 더는 "노예나 짐승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여성 앞에서, 오줌소태로 고통 받는 여성 앞에서, 더구나 두 여성 모두 일터에서 쫓겨난 상황 앞에서, 묻고 싶다. 똥물을 먹은 여성 노동자를 떠올리는 게 과연 과도한가를.


분명히 증언한다.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이 똥물을 먹을 때 대다수 국민은 사실조차 몰랐다. 박정희 찬가에 앞 다투던 신문과 방송이 모르쇠 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다. 오늘 저 부자신문을 보라.


아니, 부자신문만이 아니다. 텔레비전에 넘쳐나는 오락 프로그램과 드라마를 보라. 그곳에 비정규직 노동자가 나오는가. 재벌의 딸이나 아들은 드라마마다 넘친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 "마음대로 잘려도 아무 것도 못 하는" 청소용역 여성은, "노예나 짐승처럼 살아가는" 일하는 여성은, 오줌소태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아름다운 여성은, 텔레비전 화면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다. 1978년 봄을 살아갔던 사람들 대다수가 동일방직 '똥물'을 몰랐듯이 여전히 우리는 2008년 봄 대한민국에서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는 여성노동자의 '오줌소태'를 모른다.


신자유주의 시대 민중운동 새 길 열어가는 사람들


그 결과다. 주저 없이 "민중의 시대는 갔다"고 부르댄다. '민중'을 거론하면 '1980년대식 논리'라고 눈 흘긴다. 기막힌 노릇이다.


저 엄혹한 시절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이 1980년대 민중운동을 열었듯이, 오늘을 살아가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은 신자유주의 시대 민중운동의 새 길을 열어가고 있다.


다만, 30년 전에도 그랬듯이 우리 대다수가 미처 인식하지 못할 따름이다. 스스로 민중이면서도 민중임을 망각하고 있어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