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5.27김병권/새사연 이사

 

반값등록금 문제에 관해 정몽준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아래 정 후보)가 부정적인 발언을 하여 논란의 중심에 섰다. 아들의 '미개국민' 발언에 이은 후속편이라 불러도 좋을 법한 충격적인 발언이다. 

야당은 물론 시민단체와 누리꾼, 심지어 교수들까지 나서는 등 비판이 쇄도하고 있다. 그러나 당사자인 정 후보 측은 사과가 아니라, 발언 취지가 왜곡되었다면서 해명에 나서는 모양새다.

각종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정 후보가 지난 20일 서울 숙명여대에서 열린 서울권 대학언론연합회와의 간담회에서 한 발언은 이렇게 요약된다. 

우선, 반값 등록금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최고 교육기관으로서의 대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떨어뜨리고 대학 졸업생에 대한 사회적 존경심을 훼손시킨다, 학생 부담이 줄어드니 좋지만, '반값'이라는 표현은 최고의 지성에는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고 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단순히 '반값'등록금이라는 표현상의 문제를 지적한 것처럼 보인다.

 


정말 '반값'이라는 표현에 대한 지적뿐이었을까

그러나 박원순 새정치민주연합 서울시장 후보가 서울시장 재직 중 서울시립대 등록금을 반값으로 줄인 것에 대해 비판하는 대목에서 정 후보는 "시립대 교수를 만나보니 대학 재정도 나빠졌고 교수들도 연구비와 월급이 깎여 좋아하지 않더라"면서 명백하게 반값 등록금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음을 밝혔다. 

더 나아가서 "등록금보다는 기숙사 문제를 해결해주고 장학금을 더 주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며 "(등록금이 비싼) 미국의 대학들은 좋은 평가를 받고 있고 대학의 힘으로 나라를 이끌어간다"고 주장했다.

결국 서울시립대와 같은 등록금 인하 정책에 반대하고, 나아가 등록금 인하 대신 다른 방안을 선호하고 있으며, 등록금 문제에 대해서는 미국의 경우가 참조할 만한 사례라고 지적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정 후보는 대학 등록금 인하 정책과 효과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관련 언론보도를 왜곡이라고 볼 수 없는 이유다.

그런데 정 후보 발언의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바로 대학교육을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이나 서비스로 간주하고 있으며, 등록금을 그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는 시장 가격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모든 것들을 시장에서 거래하는 상품으로 만들어서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정해지면 그것에 순응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시장주의자의 전형을 기업가 출신 정 후보에게서 보게 된 것이다. 마치 할인을 하면 싸구려 인상을 받게 되고, 상품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마음을 그대로 읽을 수 있다.

고등학생 70% 이상이 진학하는 대학을 포함하여 국민들이 받는 전반적인 교육이 각자의 경제력에 따른 구매 대상이 아니라 '국민의 권리'라는 관념이 정 후보의 머릿속에는 들어설 틈조차 없어 보인다. 정 후보만 빼고 대부분의 국민들이 다 아는 우리나라 헌법 31조 1항에는 이렇게 명시되어 있다.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대학 교육은 가장 잘못 매겨진 상품 가격

사실 교육만이 아니다. 인간이 사는 세상에는 수요 공급에 따라 상품을 거래하는 시장 말고도 공공영역을 포함하여 대단히 광범위한 사회의 공간이 존재한다. 교육과 보건, 주거, 환경, 공동체 등 서울시가 당면한 주요 사안들은 하나같이 시장으로만 풀 수 없는 영역이기도 하다. 서울시와 같은 공공기관이 상당부분 떠안아야 할 과제라는 말이다.

때문에 대학교육을 경제력에 따라 구매하는 대상으로 보고 대학은 이를 판매하는 기업으로 볼 경우 커다란 함정에 빠지게 된다. 시장 논리로 해석해 볼 때, 사상 최악의 상품에 사상 최고의 가격이 매겨진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바로 대학 교육이기 때문이다. 

대학 4년 동안 부모의 지원으로는 턱없이 모자라서 아르바이트와 대출까지 받아서 수천 만 원을 지불하고 구매한 대학 졸업장. 그런데 그 상품의 가치가 과거에 비해 현저히 나아졌는가. 확답하기 어렵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 체감하는 사실이다. 시장 가격의 메커니즘이 전혀 원형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제 대학졸업장은 더 이상 정 후보가 걱정하는 '사회적 존경심'의 상징이 아니다. 대학 졸업장은 졸업 후 취업과 일자리를 전혀 보장해주지도 않는다. 이처럼 사회적 지위도 일자리도 보장해주지 않는데, 왜 대출까지 끼고 수천만 원의 돈과 그보다 더 아까운 젊은 시간을 바쳐서 대학교육을 구매하는가? 이는 시장 논리로는 설명할 길이 없다.

일반 상품은 가격만 비싸고 효용가치가 없으면 구매하지 않는다. 그러면 가격이 내려가거나 공급이 줄어들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 우리 사회는 등록금 가격이 끊임없이 오른다고 대학 진학을 포기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효용 가치가 거의 없는데도 구매할 수밖에 없게 내몰리고 있다. 시장의 수요, 공급 논리가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정 후보가 모르는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미국 대학이 최고 대학? 미국 대학생은 최고 빚쟁이!

과도한 대학 등록금이 단지 대학뿐 아니라 청년세대 전체, 그리고 사회전체의 문제로 비화될 수 있다는 것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미국이다. 이 점에서 정 후보는 그 사례 국가를 제대로 짚었다. 단 최악의 사례를 최고의 사례로 들었다는 것만 빼고.

정 후보가 정확히 지적한 것처럼, 우리나라와 1, 2위를 겨룰 정도로 대학 등록금이 비싸다고 소문난 미국의 학생들도 우리나라 학생들처럼 빚을 내서 등록금을 내야 했다. 그 결과 정 후보가 상상하듯이 미국이 최고의 대학이 된 것이 아니라, 미국의 대학생들이 최고의 빚쟁이가 되어야 했다. 

미국 소비자금융보호국에 따르면, 2013년 현재 연방 학자금 대출금은 이미 1조 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민간 대출까지 포함하면 1조 2천억 달러 이상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 규모는 도대체 어떤 정도일까? 

이는 미국 전체 자동차 대출이나 신용카드 대출 수준을 넘는 것은 물론 최대 규모인 미국 모기지 대출하고 유사한 엄청난 규모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이 2010년에 1조 달러, 2013년에 1조3천억 달러이니 경제규모 15위 국가인 우리 국내총생산 금액을 미국 가정이 학자금 대출로 안고 있는 셈이다.

대략 학생 1명당 평균 약 2만5천 달러(한화 약 2500만 원) 정도의 부채를 가지고 있는 셈인데, 학자금 상환을 3개월 이상 연체하고 있는 청년들도 10%를 넘어가고 있다. 심지어 학자금 수혜자의 40% 이상은 아직 상환을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신규 졸업생의 40%가 주택이나 자동차 등 주요 소비를 연기하고 있고 이는 미국경제의 회복을 가로막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더 나아가 부채 상환 압력에 시달리는 미국 청년들이 결혼을 미루는가 하면, 빚을 갚기 위해 자신의 경력에 도움이 안 되는 임시직을 전전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한 마디로 전체 세대의 문제, 나아가 사회 문제로 비화되고 있는 중이다. 이 문제가 국가적 중대 사안으로 떠오르면서 오바마 정부가 일부 면제조항과 분할상환제도를 도입하는 등 고심하고 있지만 대책이 쉽지 않은 형편이다.

 


정몽준의 진심, 그 철학이 더 위험하다

이런 상황은 미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의 식자들이 우려스런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정 후보는 등록금 문제와 관련해서 미국 대학을 닮아야 한다고 하니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다른가? 전혀 다르지 않다. 그래서 지난 2012년 대선에서 당시 박근혜 후보조차 반값 등록금을 주장했던 것이다. 그리고 지자체 선거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 이 시각에도 성남시와 경기도를 필두로 '학자금 대출 이자 부담이라도 줄여주자'고 나서고 있는 중이다.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유감스럽게도 정 후보의 등록금 발언은 왜곡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그의 뼛속 깊이 내면화되어 있는 철학과 신념에서 비롯된 문제다. 교육을 포함하여 세상의 모든 활동을 시장의 상품 거래로 해결할 수 있다는 기업인 출신의 사고 관념에서 발원한 문제다. 시장이 정해준 상품 가격에 손대지 말자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시장이 정해준 등록금 가격을 반값으로 할인하면 위신과 존경심이 훼손된다고 생각하는 그 마음이 아마 진심일 것이다. 하지만 서울시와 우리 사회가 지금 안고 있는 가장 절박한 문제들은 그런 관념으로는 풀 수 없다. 세월호 참사가 지금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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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05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소수의 소득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행복한 소수가 누리는 번영으로부터 다수가 분리되면서 격차는 더욱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불균형은 이데올로기의 결과다. 그 이데올로기는 시장과 금융투기의 절대적 자율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어떠한 형태의 통제를 실행하고, 공동선을 경계할 책임이 있는 국가의 권리를 거부하고 있다. 그래서 보이지 않지만 가끔은 가상적인, 일방적이고 무자비하게 자신의 법칙과 규칙을 부과하는, 새로운 독재가 탄생했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첫 번째 ‘교황 권고(apostolic exhortation)’에 담겨 있는 한 대목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자유시장 이데올로기가 좀처럼 기세를 꺾지 않고 때로는 긴축 주장으로, 때로는 복지축소 주장으로 부활하고 있는 시점이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독재’라는 용어까지 사용해 가면서 부정한 시장논리에 치열하게 맞서는 교황의 절절한 호소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표시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지속되고 있는 대침체(Great Recession)가 5년이 넘어 또다시 겨울이 찾아왔지만, 새로운 대안 모색은 고사하고 왜 여전히 시장 자유주의가 기세를 떨치고 있는 것일까. 리먼 사태 이후 금융시장의 대붕괴를 국가의 엄청난 구제금융으로 겨우 막아 놓은 지 몇 년 지나지 않았는데, 왜 지금도 교황 표현대로 “늙은 노숙자가 거리에서 숨진 채 발견된 것은 뉴스거리가 되지 않지만, 주식시장이 2포인트만 하락해도 뉴스가 되는” 세태가 이어지고 있는 것일까.

그만큼 시장 만능과 시장의 자기조정 이데올로기가 강력한 뿌리를 갖고 있기 때문일까.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경쟁적 시장이라는 것 ‘그 자체를 공공재’로 인식한 엘리너 오스트롬은 “어느 시장도 공적인 제도의 뒷받침 없이는 존속할 수 없다”고 명쾌하게 지적했다. 한발 더 나아가 자유시장은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 아니라 국가의 계획에 따라 ‘만들어진’ 역설이 성립한다고 칼 폴라니는 주장한다. “인간 만사를 그야말로 제 갈 길 가도록 내버려 두기만 한다면, 결코 자유시장이란 나타날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자유시장은 “국가에 의한 법령과 집행을 통해 나타난 것”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자유시장으로 가는 길을 뚫고 또 그것을 유지·보수했던 것은 중앙에서 조직하고 통제하는 지속적인 정부 개입이었으며, 그 과정에서 정부 개입은 엄청나게 증대”하고 말았던 것이 실제로 일어났던 역사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겪은 최근 경험도 이를 명확히 실증해 주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무너진 금융시장과 세계 시장질서는 절대 스스로 조정되지 않았고, 세계 각국의 막대한 구제금융으로 파산을 면하게 된다. 위기 가운데 긴급하게 급조된 주요 20개국(G20) 회의 체제로 국제적인 협조를 모색하게 된다. 그것도 모자라 거의 모든 선진국들이 중앙은행을 동원해 초저금리와 양적완화를 수년째 이어 오고 있고 앞으로도 상당 기간 이어 갈 전망이다. 모두가 막대한 국가의 힘을 빌려 ‘결코 스스로 자기 조정되지 않는 시장’을 지탱해 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진실은 더 이상 국가가 시장에 개입할 것인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더 많은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에서 시장을 규율하고 조정할 것인가의 문제로 옮겨가야 한다. 앞서 인용했던 폴라니는 그렇게 하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또 하나의 역설이 있다. 자유방임은 중앙 계획이 만들어 낸 것이었지만, 중앙 계획은 중앙 계획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었다”는 역설이 그것이다.

즉 국가가 ‘계획한’ 자유시장이 지속되면 필연적으로 교황의 표현대로 “소수의 소득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행복한 소수가 누리는 번영으로부터 다수가 분리”되는 심각한 불평등의 폐해가 발생한다. 이 폐해가 심화되면 시민들은 마땅하고도 자연스럽게 저항하게 되고 “사회가 스스로 보호하려는 운동이 현실적”으로 일어나게 된다. 폴라니에 의하면 이렇게 자유시장의 폐해로부터 규제를 가하려는 움직임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었고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다는 것이다. 각종 노동보호 입법과 공공보건·사회보험·공공시설 관련 입법은 그렇게 사회를 보호하기 위한 자연스런 과정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바로 지금이 자유시장의 폐해가 낳은 불평등으로부터 사회를 보호하기 위한 움직임이 있어야 할 때다. 그런 차원에서 보편복지와 경제민주화는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오히려 박근혜 정부가 경제 활성화라는 이름 아래 자연스런 흐름을 인위적으로 가로막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해외에서도 월가 점령운동을 대표되는 ‘99% 운동’이 잠시 전 세계를 뒤흔들었지만 곧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고, 지금은 지루한 긴축논쟁과 양적완화 축소논쟁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답답한 교착 상황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메시지는 우리로 하여금 다시 사회를 보호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추동해야 한다고 역설하는 것이 아닐까.

 

 

*본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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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8김병권/새사연 부원장

 

국세청은 지난 24일 올해 종합부동산세 과세대상이 24만7천명이고 금액이 1조3천억원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아파트 가격이 내려서 세금 납부자는 다소 줄었지만 토지가격이 올라서 지난해보다 과세액이 7% 늘었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보육복지와 노인연금복지 재원조달 문제로 국가재정운용이 민감한 시기여서 세수가 늘었다는 대목에 눈길이 가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종합부동산세는 지난 이명박 정부가 시행한 대표적인 감세대상이었다. 참여정부가 부동산 투기를 방지하고 조세 형평성을 강화하기 위해 지금의 새누리당의 극렬 반대를 무릅쓰고 2006년 도입한 것이 종합부동산세였다. 그 후 2007년 종합부동산세 세수 실적이 무려 2조4천억원을 넘기면서 상속세나 증여세보다도 훨씬 큰 규모가 됐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법을 개정해 과세 대상을 대폭 줄였고 그에 따라 조세도 크게 줄었던 것이다. 

그런데 새누리당은 이것조차 성에 차지 않았던 모양이다. 최근에 종합부동산세를 지방세인 재산세로 통합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복지재원 마련을 위한 증세는 고사하고 취득세 영구인하에 이어 부동산 관련 감세기조가 계속 확대하고 있어 당황스럽다.

부동산은 인간노동의 산물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로서 인류가 오랫동안 배타적 사유가 아니라 공유해 왔음을 기억한다면, 사적으로 소유한 막대한 부동산 소유에 대해 과세를 하는 것은 최소한의 형평성에 부합하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자연과 토지, 부동산의 사적 소유와 투기적 시장거래가 왜 문제가 있는지에 대해 역사적으로 중요한 학자들의 비판적 목소리를 다시 귀담아 들어보자. 16세기의 토머스 모어, 19세기의 헨리 조지, 그리고 20세기 중반의 칼 폴라니가 그들인데 이들의 주장을 들으면 종합부동산세 유지는 최소한의 요구임을 알 수 있다. 

목초지와 농경지로 오랫동안 공동체가 함께 사용해 왔던 공유지가 사적인 부동산 소유로 전환되면서 자본주의가 시작됐는데 영국의 울타리치기운동이 대표적인 사례다. 16세기에서 18세기 말에 이르기까지 양모생산을 확대하기 위해 광범위하게 자행된 영국의 울타리치기운동에 대해 토머스 모어는 <유토피아>에서 “양들이 사람들까지 먹어 치우는 동물들로 돌변하고 있다”는 극단적인 비유를 구사하면서 공유지의 사적 탈취를 격렬하게 비난했다.

“탐욕에 젖은 그들 한 명 한 명이 자신이 태어난 토지를 악성 종양처럼 야금야금 먹어 치우고 있습니다. 들판과 들판을 연이어 집어삼키고, 수천 에이커의 땅을 울타리로 에워싸 버리고 있습니다. 그 결과 수백 명의 농민들이 자신이 살던 곳에서 쫓겨납니다. 그들은 사기나 공갈·협박을 통해 땅을 포기하기도 하고, 조직적으로 학대를 당하다가 결국은 땅을 팔 수밖에 없는 처지로 내몰리기도 합니다. 어떤 방식이든 간에 가엾은 이들 농민들은 자기 땅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자본주의가 한창 번영을 향해 달리던 19세기 후반, 헨리 조지는 토지와 자연의 사적 소유가 빈곤의 핵심 요인이라고 지목한다. 그는 “인간은 지구에 임시로 세 들어 사는 존재”에 불과하다면서 그의 저서 <진보와 빈곤>에서 자연에 대한 사적 소유를 폐지하든지 아니면 무거운 과세를 하라고 촉구하면서 이렇게 주장한다. 

“토지의 본질적인 성격은 노동의 결과가 아니라는 점, 그리고 인간의 노력과는 물론 인간 자체와도 무관하게 존재한다는 점이다. 토지는 인간이 존재하는 터전이자 환경이고, 필요한 물자를 공급받는 창고이며, 노동에 필수 불가결한 원료이자 힘이다.” 

“모든 인간의 토지 사용에 대한 권리의 평등성은 공기를 호흡하는 권리의 평등성처럼 명백하며 인간의 존재 그 자체에 의해 인정된다.”

세 번째 비평가는 1929년 대공황과 2차 대전을 보고 겪어 왔던 20세기의 학자 칼 폴라니다. 그는 인간·화폐와 함께 자연 또는 토지는 본래 시장에서 거래하는 상품이 될 수 없는 대상이었는데 상품이 되면서 모든 문제가 발생했다면서 보다 근원적으로 문제를 파고든다. 폴라니는 “노동은 인간 삶의 부분을 형성하며, 토지는 자연의 일부인 채 남아 있고, 삶과 자연은 함께 뭉쳐 유기체를 형성해 왔다”고 밝히면서 인류의 전통이 자본주의 도래와 함께 어떻게 무너졌는지에 대해 <거대한 전환>에서 이렇게 적시한다.

“토지가 없이 삶을 영위한다는 말은 차라리 손발 없이 세상에 태어난다고 하는 것보다 더 황당한 일이다. 그런데 토지를 인간에서 떼어내고 사회 전체를 부동산 시장의 작동조건을 충족하는 방식으로 조직하는 것이야말로 시장경제라는 유토피아적 아이디어의 절대적인 핵심이었다.”

지금 우리 사회와 세계는 심각한 불평등의 저주에 빠져 있다. 이로 인해 침체된 경제의 회복도 늦어지고 있으며 서민들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고 점점 더 막대한 사회복지 재원이 요구되고 있다. 불평등 가운데 그 격차가 가장 크고 단단한 분야가 바로 자산 불평등이다. 부동산 불평등인 것이다. 부동산 과다 보유자에 대한 최소한의 종합부동산세 부과는 사회정의 차원에서도 필요한 것이다.


 

*본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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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1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스위스는 24일 ‘1대 12 이니셔티브’라는 특별한 국민투표를 실시한다. 스위스에 등록된 모든 법인에 대해 어떤 임직원도 최저임금자의 12배가 넘는 임금을 지급하면 이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처벌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법안이다. 스위스 사회민주당 소장파들이 입법청원을 한 것이다. 현재 여론조사 결과 찬성의견이 40%가 안 되므로 통과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이러한 주제로 국민투표를 한다는 것 자체가 세계의 관심을 받을 만하다. 

이야기를 우리나라로 돌려 보자. 우리나라도 이달 말부터 대기업 임원 연봉을 공개하는 내용의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통합법) 개정안을 시행한다. 스위스처럼 임원의 연봉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공개만 하는 것임을 기억하자. 그러면 이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연봉 총액이 얼마인지 알게 될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은 해당 사항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무슨 소리인지 어리둥절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도대체 기업 임원 연봉, 특히 상장기업 연봉이 공개되지 않고 있다는 것도 생소할 수 있는 데다, 공개되도록 법이 바뀌었는데도 압도적인 국내 1위 재벌인 삼성그룹의 회장과 부회장의 연봉은 어째서 공개되지 않는지 아리송할 것이다. 

상황을 요약하면 이렇다. 원래 우리나라는 원칙적으로 정보공개 의무가 있는 상장법인이라 해도 임원 보수에 대해 등재이사 전체의 총액임금만 공개가 됐지 개별 임원의 보수를 공개하는 규정은 없었다. 예를 들어 지난해 삼성전자 사업보고서를 보면 사내이사 3명에 대한 보수 지급총액이 150억원, 1인당 평균 52억원으로만 돼 있다. 각각 얼마를 받는지는 알 수 없다.

지난해부터 경제민주화 바람을 타고, 대기업 임원들의 보수가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올해 상반기에는 자본시장통합법이 개정돼 공개가 의무화됐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본시장통합법 제159조2항의 사업보고서 제출대상 기업들이 보고해야 할 내용 중에 “임원 개인별 보수와 그 구체적인 산정기준 및 방법”이 새로 추가됐다.

하지만 이야기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우선 임원보수 공개 대상 기업은 사업보고서 제출 대상법인으로 상장법인 기준 1천663개와 기타 388개를 합쳐 2천51개 기업이다. 그런데 이들 기업의 임원 보수가 모두 공개되는 것이 아니다. 보수총액이 5억원을 넘는 ‘등기임원’의 경우에 한정된다. 때문에 연합뉴스 보도에 의하면 국내 500대 기업 중 등기이사 평균연봉이 5억원을 넘는 곳은 176개사이고, 공개 대상 임원은 536명 정도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일단 대기업들의 상당수 임원들이 보수공개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기업에서 대주주로서 실질적 권한을 행사하고 있어도 등기임원이 아니면 보수공개 의무가 없다. 대표적인 것이 삼성그룹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차녀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사위 김재열 삼성엔지니어링 사장 등 삼성가의 주요 실세들은 미등기 임원이다. 따라서 보수 공개의무가 없다. 가관인 것은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을 포함해 담철곤 오리온 회장 등이 속속 등기임원을 사퇴하고 미등기 임원으로 바꾸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되면 역시 보수공개 의무에서 벗어난다.

임원 보수를 공개하는 것은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미국은 1992년, 영국은 2002년, 일본은 2010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익숙한 제도다. 더욱이 지금 세계는 한발 더 나아가 임원 보수총액을 제한하는 제도를 도입하거나 검토 중에 있다. 대표적으로 올해 3월 스위스가 '살찐 고양이 법'(fat cat·배부른 자본가라는 의미)이라는 별명을 가진 법안을 국민투표에 부쳐 67.9%의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이를 통해 주주총회에서 임원의 보수를 통제하도록 하고 이를 어기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최고 6년 연봉에 해당하는 벌금을 내도록 강제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스위스가 주주의 임원 보수총액 통제에 만족하지 않고 아예 절대 총액이 최저임금자의 12배를 넘지 않도록 못 박는 국민투표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시도를 하는가. 갈수록 심해지는 불평등 때문이다. 미국 경제학자이자 전 노동부 장관 로버트 라이시는 지난 30년 동안 벌어진 미국의 소득격차를 비판하면서 “경영진들은 평균 노동자 임금의 300배 이상의 연봉을 챙기고 있다. 30년 전만 해도 그 차이는 40배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소득 불평등 해소를 위해 대기업 임원들의 과도한 보수를 통제할 필요가 있다는 국제적인 공감대가 커져 가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재벌 임원들의 보수 제한은 고사하고 보수마저 제대로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 경제민주화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한 상황이다.

지금이라도 추가적인 법 개정 준비에 들어갈 필요가 있다. 미등기 임원을 포함해 모든 임원들의 연봉을 공개해야 한다. ‘5억원 이상 보수’라는 문턱도 높은 것은 아닌지 재검토해야 한다. 기왕에 금융감독원 관계자가 "보수공개 대상을 등기임원에서 '집행임원'이나 '업무 집행 지시자'로 확대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밝혔으니 제도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말 아닌가.

 

*본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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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3.11.13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최근 우리 사회 경제 상황을 보게 되면 대단히 많은 문제들이 어지럽게 쏟아져 나오고 있다. 더구나 문제가 하나씩 해결되고 수렴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문제들은 더 꼬이고, 사라진 문제들은 다시 튀어나오고, 없던 문제들까지 새로 생기고 있는 실정이다. 대체로 정치가 어지럽기 때문인데, 그 덕택에 국민의 어려움은 배가된다. 

예를 들어 보자. 국가정보원 선거개입과 같은 후진적인 정치 후퇴가 21세기에 다시 불거져 나온다. 문제를 공개적으로 해결하기는커녕 덮으려다 보니 온갖 공안 통치적 발상이 줄을 잇는다. 또한 대통령 자신이 확언했던 경제민주화와 복지공약들은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하나씩 엎어지기 시작한다. 보육부터 노령연금에 이르기까지 해결되리라 예상했던 온갖 문제들이 다시 원점에서 논란을 일으킨다. 그 와중에도 경제 형편은 나아질 조짐이 없고 전세가가 끝을 모르고 치솟자 정부는 돈을 빌려 줄 테니 아예 집을 사라고 부추긴다. 빚 얻어 산 집값이 떨어지면 어떻게 될 것인지는 알 바 아니다. 

그러다 보니 다시 묻게 된다. 도대체 한국 사회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아니, 가야 할 곳은 차치하고 지금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 것일까. 우리 사회의 비전이 있기나 한 것일까. 다음 세대에게 어떤 미래를 말해 줄 것인가. 어떤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걸까.

“사회적으로 무책임한 소수의 자본가들에게 매력적인 투자기회가 존재하느냐 여부에 따라 전개되는 상황의 부산물로서의 경제체제가 아니라 인간이 필요로 하는 바를 진정으로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경제체제로 지금의 경제체제를 대체하기 위해 우리의 생각과 에너지를 집중해야 한다.” 

2004년 작고한 유명한 비판적 경제학자 폴 스위지가 오래전에 했던 충고다. 그렇다. 나라가 혼란스럽고 어지럽고 방향을 잃어버린 것은 우리 사회가 일부 특권관료·재벌·건설 기득권 등의 소수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소수의 이익과 의사에 따라 사회가 움직이게 되면 다수를 위한 민주주의나 보편적 복지·공평함은 방향을 잃을 수밖에 없게 된다. ‘인간이 필요로 하는 바를 진정으로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갈 수 없게 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정치와 사회·경제가 지극한 혼란 속을 헤매고 있을 때 현실에서 위기에 대처하려는 하나의 긍정적인 움직임이 있었다는 점이다. 바로 협동조합운동이다. 일부 생활협동조합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협동조합이 거의 전무한 상황에서 지난해 협동조합 기본법 발효 이후 1년 만에 거의 3천여개의 협동조합 신고가 전국에 걸쳐 이뤄졌다. 

일부에서는 협동조합이 민영화의 변종이라는 비판도 있고, 반대로 협동조합 자체가 통째로 대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대안 그 자체는 아니더라도 대안의 중요한 하나의 기둥을 이루고 있음은 틀림없다. 이런 사고방식은 이미 30년 전인 1980년 국제협동조합연맹(ICA)에 제출된 유명한 ‘레이들로 보고서’에 명확한 방식으로 표현돼 있다. 

“현대 협동조합운동의 지도자들은 일국의 사업 체제를 공기업이나 사기업과 함께 협동조합이 공존해 운영되고, 이 3자가 함께 경제 전체를 이룬다는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하고 보다 현실적으로 생각하게 됐다. (…) 현재까지 공적·사적부문과 협동조합부문의 어느 것도 단독으로서는 모든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완전한 사회질서를 실현할 수 없었다. 어떤 두 부문이 결합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세 부문이 함께 나란히 작동해 상호 보완함으로써 인간의 힘으로 달성 가능한 최선의 것을 이룩할 수 있다.”(레이들로 보고서, 1980)

동일한 내용은 이달 5~7일 서울에서 열렸던 국제사회적경제포럼(GSEF) 선언문에도 담겨 있다. 포럼은 선언문에서 현재의 사회 경제적 위기를 폭넓게 진단한 후 이렇게 주장한다. 

"위기를 맞아서, 우리는 다원적 경제를 모색하는 다양한 움직임에 주목한다. 지금 전 세계에서 일고 있는 사회적 경제 운동은 경제의 양극화, 사회적 불평등과 배제, 그리고 생태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 참석자들은 사회적 경제가 더 나은 세계, 더 나은 삶을 인류에게 선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나아가 이렇게 덧붙인다. 

"우리 모두는 사회적 경제와 시장경제, 공공경제가 조화를 이루는 발전모델을 개발한다. 정부의 공공정책은 이런 목적을 달성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 언제나 혼탁한 현실 안에서도 늘 미래의 싹은 존재한다. 척박한 시장주의 안에서 사회적 경제를 일구려는 시도들이 그 하나일 것이다. 미래를 위한 ‘완벽한 청사진’을 지금 당장 찾기 어렵다면 청사진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하나씩 찾아서 쌓아 올려 보는 것은 어떨까. 그렇게라도 해야 방향 잃은 한국 사회에서 한 줄기 탈출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본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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