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길/ 새사연 이사


 


지나온 한국의 민주화투쟁 역사를 보면 일정한 법칙이 발견된다. 민주화 투쟁은 매 순간 일정한 한계를 드러냈으나 그 한계를 딛고 다시 한 걸음 전진해 온 역사였던 것이다. 한계야말로 전진의 동력이었다.


1960년 4월 혁명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4월 혁명은 수많은 인명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승만 장기 독재를 무너뜨리는데 성공했다. 요즘 자주 나온 대통령 하야투쟁이 실질적인 성공을 거둔 사례였다. 하지만 불과 1년 뒤 박정희가 이끄는 5.16군사쿠데타를 맞이하면서 4월 혁명은 여실히 한계를 드러냈다. 5.16군사쿠데타 당시 그 어떤 저항도 없었다. 4월혁명 이후 거리를 가득 메웠던 시위대는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결정적 요인은 군부의 총칼 앞에 목숨 걸 각오가 되어 않았다는 데 있었다. 조정래 소설 <한강>에는 4월 혁명에 참여했던 학생들의 대화 내용이 다음과 같이 묘사되고 있다.


"이거 다 된 밥에 재 뿌린 건데, 이렇게 당하고 있어야만 되나? 한 번쯤 밀어붙여 봐야 되는 거 아냐?"

"목숨이 몇 갠데? 극형이라는 말 아직 안 들려?"

"괜히 똥폼 잡지 말어. 군대에서 말하는 시범쪼로 걸렸다간 국물도 없어. 저치들 지금 지네들 위신 세울려고 아무나 하나 걸려들기만 바라고 독이 올라 있는 것 몰라?"


4월 혁명의 한계를 딛고 군부의 총칼 앞에 목숨 걸고 투쟁할 수 있기까지 무려 19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다. 역사를 한 단계 도약시킨 위대한 투쟁은 1980년 5월 광주에서 만들어졌다. 1971년 대통령선거부터 본격화된 박정희 정권의 노골적인 호남 차별은 호남인들의 가슴 속에 씻을 수 없는 한을 남겨 놓았다. 한은 분노가 되었고 분노는 목숨 건 항쟁의지로 폭발했다.


5.18민주화운동에서 시민들의 결사 항전은 세 단계에 걸쳐 비상했다. 첫 번째 단계는 5월 20일부터 계엄군의 만행에 분노한 시민들이 항쟁에 적극 가세한 것이었다. 두 번째 단계는 5월 21일 계엄군의 도청 앞 집단발포에 맞서 시민군을 결성한 것이었다. 세 단계는 5월 27일 계엄군의 최후 진압 작전에 맞서 시민군이 도청을 사수한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은 복잡한 토론 과정 없이 본능적 대응으로 이루어졌다. 중요한 것은 광주 시민은 극한 상황에서도 단 한순간 물러서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군부 앞에 타협하고 굴복할 여지를 원천적으로 제거한 것이 바로 5․18광주정신이었다.


1980년 5월 광주는 군부의 총칼 앞에 굴복했던 4월 혁명의 한계를 과감히 뛰어넘었다. 5.18광주는 민주화투쟁의 기폭제가 되었다. 광주의 세례를 받은 학생운동을 필두로 민주화투쟁의 파노라마가 장엄하게 펼쳤다. 하지만 5.18광주에서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항쟁에 참여했던 광주 시민 자신들이 가장 고통스럽게 느꼈던 지점이기도 했다. 그것은 바로 ‘지역적 고립’이었다. 광주 시민들은 제발 다른 지역에서도 함께 일어나 주기를 갈망했으나 전혀 응답이 없었던 것이다.


1980년 5월 광주는 외로운 도시였다. 이 사실은 이후 무수히 많은 지역들로 하여금 광주에 대한 부채의식을 갖도록 만들었다. 그 부채의식을 갚는 것은 군부 앞에서 물러서지 않고 투쟁하는 것뿐이었다. 마침내 이를 입증할 기회가 왔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이 활화산처럼 폭발한 것이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군부대를 투입해 사태를 진압하기 위해 치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조만간 군부대가 투입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자하게 퍼져 나갔다. 하지만 시민들은 동요하지 않았다. 먼저 광주에 대한 부채의식이 남달리 강했던 부산 시민들이 치고 나갔다. 일단의 학생들이 분신을 각오하고 가톨릭회관 옥상에서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 가운데 수십만의 부산 시민들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투쟁의 여파는 곧바로 전국 각지로 펴져 나갔다. 상황은 더 이상 군부대 투입으로 제압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결국 전두환 정권은 두 손을 들고 말았다. 민주화투쟁이 승리한 것이다.


6월 민주항쟁은 군부에 맞서 목숨 걸고 투쟁했다는 점에서 5.18광주정신을 계승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지역적 고립이라는 5․18광주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수많은 지역이 투쟁에 동참했다. 천안은 3.1운동 이후 처음 시위를 경험했다. 충주는 단군 이래 처음이었다.


6월 민주항쟁은 민주화를 정착시키는 역사적 출발점이 되었다. 하지만 민주화투쟁 성과를 제도권에 온전히 안착시키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1987년 12월 직선제로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다. 결정적인 순간에 민주화투쟁을 이끌었던 김대중․김영삼 양김씨가 갈라서고 말았다. 결과는 군부 출신인 노태우에게 승리를 헌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태는 1990년 3당합당으로 새누리당의 전신인 민주자유당이 만들어지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로부터 보수 절대 우위 시대가 열렸다.


촛불시민혁명은 보수 세력을 붕괴시켰다. 보수의 정치적 구심인 새누리당도 두 조각내면서 코너로 몰아세웠다. 남은 과제는 성과를 제도권에 안착시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역사적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다. 다수 시민들이 그에 대한 긴장의 끈을 늦추고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일차적으로 조만간 치러질 가능성이 큰 대선 결과를 통해 확인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기존 정치판 흐름에 매몰되지 않고 냉철하게 대선을 직시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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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일/ 새사연 연구이사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수출제조업에서와 달리 내수산업 특히 내수서비스업 업체들의 경우, 원청 대기업의 수익률은 현저하게 높은 데 반해 1차 하청협력업체의 수익률은 기이할 정도로 낮다. 또한 이들 내수업종의 1차 하청협력업체들의 다수가 별다른 기술력이나 품질능력에 구애받지 않는 제품과 서비스를 납품하고 공급한다는 특징도 가진다. 저임금이 하청·외주 계약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요인이 되는 것은 건설과 유통, 통신, 시스템통합과 같은 내수산업이다. 이들 업체에서 경쟁력이 큰 요인은 기술능력 및 품질능력이 아니라 종업원의 인건비를 낮추는 능력이다. 물론 전자와 자동차, 기계, 조선 등 수출제조업 업종에서도 2차 또는 3차 이하 하청납품의 경우 기술력과 품질능력은 비슷비슷하게 낮으므로 누가 더 저임금의 노동력을 잘 갈취하여 저가로 납품할 수 있느냐가 핵심적인 경쟁 요인이 되는 일이 다반사이다.


따라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이들 업종과 하청에서 나타나는 납품 또는 외주(outsourcing) 계약은 형식상으로는 ‘법률상 독립적인 업체들’ 사이에서 ‘상거래 계약’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저임금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한 ‘위장된 근로계약’으로, 즉 노예계약이다.


기업 간 상거래 계약으로 위장된 저임금 노동계약


대표적인 사례가 건설업이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목격하는 저임금의 건설 현장 노동자들은 다단계 하도급이 기술력 및 품질능력 향상과 거의 무관하며 악질적인 간접고용 즉 ‘상거래 계약의 가면을 쓴 저임금 착취 근로계약’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통상 한국의 건설 사업에서는 발주처가 발주를 하면 현대건설, 삼성물산 등 종합건설회사들이 공개경쟁 입찰에 참여하여 그 중에서 가장 적은 금액을 적어낸 회사가 시행사를 맡는다. 이것을 최저가 입찰 제도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들 종합건설회사들은 자기 회사의 종업원들을 데리고 직접 그 건설업무를 수행하기 보다는 토목, 방수, 설비, 전기, 인테리어 등 각 분야별 전문 건설업체인 1차 하청업체들에게 하청을 준다. 여기까지는 합법이다.


그러나 전문건설업체인 1차 하청업체가 직접 자기가 고용한 정규직 종업원들을 데리고 공사에 나서는 경우는 드물다. 1차 하청업체들은 프리랜서처럼 활동하는 팀장급 인력들을 보유하는데, 팀장급은 자신과 함께 일할 10~30여 명을 데리고 다닌다. 이들 팀장급 인력이 바로 2차 하청업체 사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자기 팀에 목수와 철근공, 비계공 등 30명 정도를 거느리고 있다. 이들 팀장은 하도급 계약의 중간에서 수익금을 챙긴다. 이들 팀장은 자신이 직접 데리고 다니는 인력으로도 부족하면 또 다른 사람들도 채용한다. ‘오야지’라고 하는 더 작은 팀장을 부르거나, 여의치 않으면 인력회사에 날품팔이 인력을 요청한다.


건설업계에서는 저임금 착취가 발생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먼저 최저가 낙찰 방식이기 때문에 시행사인 종합건설회사에서 인건비를 넉넉히 책정받기 어렵다. 게다가 둘째로, 다단계 하청을 거치면서 각 단계의 하청회사 업주가 자기 나름의 수익을 제하고 (물론 이 역시 갈수록 적은 수익성으로) 재하청을 주기 때문에 각 단계 하청회사 종업원의 임금이 매번 10~20%씩 깎인다. 1차 하청업체(전문건설업체)가 자기 회사 노동력을 정규직으로 고용하면 노동자 임금과 안전설비에 더 많은 돈을 쓸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는다. 다시 2차, 3차 재하청을 주게 되고, 그렇게 아래로 내려가면서 그 중간 단계 업체사장들이 매번 5~10% 수익을 남긴다. 그 결과 건설업계 전반에서 임금과 안전 수준이 낮아진다. 우리나라 건설현장에서 OECD 최악의 산업재해가 발생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삼성SDS는 어떻게 삼성 동물원을 운영하나


산업 현장의 밑바닥에서 일하는 노동력이 다단계 하청을 통해 갈취당하는 또 다른 대표적인 업종이 IT서비스업으로서, 소프트웨어 개발이 전형적이다. 삼성SDS, LG CNS, SK C&C 등과 같은 대형 IT서비스업체들은 정부기관 등 발주처로부터 대형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젝트를 수주한다. 그리고는 그 개발 사업의 각 요소들을 여러 개로 쪼개어 다수의 외주업체에 아웃소싱한다. 그 과정에서 2차, 3차 하도급 계약이 이뤄지는데, 이 때문에 본래의 개발 프로젝트 비용의 상당액이 중간 수수료 즉 중간착취로 빠져나간다. 따라서 실제의 소프트웨어 개발 현업에서 근무하는 개발자의 손에 들어가는 임금과 보상은 크게 줄어든다.


IT서비스 분야에 종사하는 개발자들은 이 같은 하도급 관행이 소프트웨어 개발업계에 만연한 저임금과 고용불안, 과중한 업무의 궁극적인 원인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비판해왔다. 벤처기업가 안철수가 갑자기 2012년에 대선 후보급 정치인으로 뜨게 된 것도 2010년 당시 그가 청춘콘서트마다 ‘삼성 동물원’을 비판하면서 삼성SDS 같은 대형 소프트웨어 발주 업체의 불공정한 하청 관행을 비판하면서부터였다.


한국의 소프트웨어 개발은 건설업과 자주 비교된다. ‘갑을병정’으로 이어지는 하도급 구조에서 그 말단에 있는 ‘정’은 ‘주말도 없고 인간 취급을 못 받는 개발자’이다. 슈퍼갑은 삼성SDS와 LG CNS, SK C&C 같은 대기업들이다. 그들이 하도급을 주면 그 도급(하청) 업체가 또다시 재하청을 준다. 갑은 직접 개발하는 건 없고 하청업체가 수행하는 개발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역할만 한다. 슈퍼갑 대기업의 과장들이 자기보다 열 살 많은 하도급 업체 사장한테 막말과 욕설을 할 정도이다. 그만큼 갑을(甲乙) 관계가 심각하다.


하도급 계약은 치열한 경쟁 입찰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완전경쟁 시장이다. 수요자(갑)의 숫자는 적은데 을과 병, 정은 우글우글 거릴 정도로 숫자가 많으니 공급자(납품업체)들은 치열하게 경쟁한다. 납품업체들은 서로 눈치껏 가격을 내리고 개발기간을 짧게 하겠다고 제시한다. 인건비 원가도 못 건지는 저가의 개발 프로젝트인데도 하청업체들은 손해를 감수하고 경쟁 입찰에 참여한다. 최저 가격에 최단의 개발기간을 제시한 외주업체가 그 상거래(하도급) 계약을 따낸다.


완전경쟁 시장에 가까운 외주납품 입찰에서 저가에 낙찰한 하청업체는 원가를 줄이기 위해 인건비를 줄이고 개발기간을 단축한다. 5명이 5개월에 마쳐야 마땅할 개발 프로젝트에 5개월간 3명만 투입되거나 5명이 3개월 만에 끝내라고 독촉한다. 두 경우 모두 근무자들이 야근과 철야를 하지 않고서는 개발을 끝낼 수가 없다. 하도급 단계가 늘어날수록 실제 말단의 소프트웨어 개발 인력에게 돌아오는 보수는 적어지고 개발자는 저임금과 중노동, 장시간 노동에 시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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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정승일의 <'진짜' 경제 민주화로> 시리즈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시리즈는 근간『누가 가짜 경제민주화를 말하는가』(2017, 책담)로 다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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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세진 / 새사연 이사 



새사연은 2008년부터 매 년 진보 정책 연구소 최초로 <전망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습니다경제주거노동복지 분야를 중심으로 세계의 흐름 속에서 한국 사회를 진단하여 사회를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고 새로운 사회로의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후대에 마을살이, 마을공동체 활성화와 같은 마을운동을 연구할 학자들은 2012년을 흥미롭게 관찰할 듯하다. 여러 지자체에서 ‘마을(공동체) 만들기(활성화) 지원 조례’라는 명칭의 자치법규 제정이 크게 늘어난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는 1990년대부터 이어져 온 공동육아, 방과후학교와 같은 마을살이에 대한 관심의 증대와 지방선거 등에서 드러난 민심(전형적 개발공약 및 선심성 공약에 대한 거부감, 연대와 주민참여에 대한 열망)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2017년은 대선, 2018년은 지방선거를 치르게 된다. 제도적 지원근거가 마련되기 시작한 지 4~5년차에 접어드는 마을살이가 여러 사회⋅경제⋅정치 변수에도 불구하고 한 차례의 유행이 아니라 당연한 정책 영역으로 남을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2012조용한(?) 마을에 무슨 일이 있었나


마을만들기, 마을공동체, 지역공동체, 지역만들기, 자치공동체, 도시재생과 같은 용어를 제목으로 하는 자치법규 중에서 마을이나 공동체에 대한 지원내용을 담아 제정 또는 전부 개정된 조례는 2016년 12월 말 기준으로 171개에 달한다. 제정(또는 전부개정)된 시기별로 집계하면 2004년 처음으로 관련조례가 제정된 이후 2011년까지 26개의 실적이 있었다.


2012년 이후의 실적은 2012년 42개, 2013년 30개, 2014년 17개, 2015년 23개, 2016년 33개로 2011년 이전과 비교하면 여러 지자체에서 마을살이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음을 다음 <그림 1>과 같이 확인할 수 있다.


앞서 논의했듯이 2012년부터 관련조례가 크게 늘어나기 시작한 것은 마을현장에서의 노력의 결실이기도 하겠지만, 연대와 협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크게 증가하고, 그에 따라 보편복지와 같은 이슈가 선거에서 이기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마을이 중한 지역?


마을살이 관련 조례가 지정된 광역지자체는 17개 광역시도 중 울산광역시, 경상북도, 경상남도 3곳을 제외한 14곳이다. 기초지자체의 제정여부를 살펴보면, 전국 228개 기초지자체 중 53%에 해당하는 121개 단체에서 관련조례가 제정되었다.


아래 <그림 2>를 참고하여 광역시도별로 보면, 서울과 광주의 경우 모든 기초지자체에서 관련조례를 제정하였다. 이밖에도 인천과 경기도의 경우 80% 이상의 기초지자체에서 관련조례를 제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체로 수도권 지역에서 마을살이에 대한 관심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도시지역(자치구 및 시) 및 비도시지역(군)별로 관련조례 제정 여부를 살펴보면 <표 1>과 같다. 도시지역 114개 단체 중 65%에 해당하는 94개 지역, 비도시지역 84개 단체 중 32%에 해당하는 27개 지역에서 관련 조례가 제정되었다. 즉, 도시지역에서 마을살이에 대한 관심이 비도시지역에 비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결과가 빚어진 요인을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다음과 같이 유추해 볼 수 있다. 비도시지역의 경우 여전히 지역 내 관계망이 중요하게 작동되는 사회구조가 유지되고 있어서 마을공동체 활성화가 주요 이슈가 아닐 수 있다. 또한 인구밀도가 공동체가 형성되기 어려울 정도로 감소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 밖에도 자치단체장의 철학이나 정치적 성향과도 관계가 있을 수 있다. 이에 대해서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개별 지자체의 여건과 특성을 세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마을살이를 지원할 의지는 있나


2017년 2월 3일 기준으로 법제처 DB에 기록되어 있는 법령은 4,882건, 행정규칙은 14,293건, 자치법규는 98,095건에 달한다. 하지만 이러한 법령과 규칙에 규정되어 있는 지원정책이 모두 구현되지는 않는다. 당연히 집행부서의 실행의지와 의회의 예산편성이 정책구현의 기본조건이다.


그런데 마을공동체 활성화처럼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한 정책의 경우에는 공공의 실행의지와 예산만으로는 제대로 구현되기 어렵다. 그래서 주민들과 직접 소통하며 공공정책과 마을현장 사이의 가교가 되는 중간지원조직이 필요하다.


<표 2>로 정리한 관련조례에 중간지원조직을 둘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현황을 살펴보면, 17개 광역시도 중 관련조례를 제정한 14개 단체 모두 중간지원조직에 대한 규정을 마련하였다. 한편 기초단체의 경우에는 관련조례를 제정한 121개 단체 중 중간지원조직에 대한 규정을 마련한 곳은 70%에 해당하는 85개 단체에 머물고 있다.


실제로 어떻게 정책을 구현해 나가고 있는지는 지자체별로 차이가 있으므로 각각의 실태를 세세하게 살펴봐야 정황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마을살이의 특성상 중간지원조직에 대한 정책적 고려가 없다는 것은 곧 정책을 실현하겠다는 의지나 진정성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마을살이와 관련된 중간지원조직을 운영하는 사례를 살펴보면 <표 3>과 같다. 마을공동체 지원 역할도 수행하는 도시재생지원센터를 포함하여 집계하면 광역지원센터는 11개 광역단체에 14개소가 운영되고 있으며, 기초지원센터는 77개소가 운영되고 있다. 도시재생지원센터를 포함하여 집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마을살이 관련 지원센터에 대한 규정을 두고 있는 기초단체 수인 121개에도 미치지 못한다. 실제로 마을공동체 활성화를 정책적으로 추진하는 지자체가 많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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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와 원문은 새사연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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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운/ 새사연 연구 위원 




새사연은 2008년부터 매 년 진보 정책 연구소 최초로 <전망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습니다경제주거노동복지 분야를 중심으로 세계의 흐름 속에서 한국 사회를 진단하여 사회를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고 새로운 사회로의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1665년 런던은 흑사병으로 5만 명 이상의 시민을 잃었다. 이듬해 1666년에는 런던 대화재가 일어나 엄청난 대혼란이 뒤따랐다. 이 시기 아이작 뉴튼은 고향으로 돌아가 자연과학의 위대한 기초를 세운다. 사람들은 이 시기를 “기적의 해(Annus Mirabilis)”라고 부르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기적의 해”는 시인 존 드라이든이 학사병과 런던 대화재, 네덜란드와의 전쟁과 같은 고난을 극복한 영국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한 표현이다. 2017년 세계경제는 과연 “기적의 해”가 될 수 있을까? 불행하게도 다른 모든 조건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2017년 세계경제는 “공포의 해(Annus Horribilis)”가 될 것이며, 세계시민들은 가장 자본주의적인 크리스마스를 맞게 될 것이다.


스케치 최근 세계경제의 사정


세계경제는 이미 “최장기 수준에서 경기침체(secular stagnation)”에 진입했다. 대단히 부정적인 진단이지만, 이를 부정하는 것 또한 상당히 어렵다. 어떤 의미에서 낙관적인 세계경제 전망은 우리시대의 것이 아닐지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경제학의 역사에서 볼 때, 부정적인 진단과 전망은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다. 1849년 토마스 칼라일(Thomas Carlyle)은 당시 자본주의 사회의 대중의 빈곤과 극심한 불평등을 보며 경제성장과 이윤 그리고 분배 문제를 다루는 경제학자들을 가리켜 “우울한 학문에 종사하는 존경하는 교수님들”이라고 풍자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우리시대에 다시 경제학이 우울한 학문이 되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최장기 수준에서 경기침체(secular stagnation)”을 처음 제안하고 유행시킨 로렌스 서머스는 그 뜻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최장기 수준에서 경기침체가 의미하는 바는 경제가 항상 침체상태에 있다는 뜻은 아니다. 이 말이 담고 있는 것은 통화정책을 통해 침체를 성장으로 변경시킬 수 있으나, 이 경우 상당한 정도의 금융 불안정을 대가로 치를 수밖에 없다”


좀 더 구체적인 우리시대의 풍경 속으로 들어가 보자. 언젠가부터 경제 전망에 사용되는 대부분의 어조는 부정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 다음해에 대한 경제 전망은 매번 다시 발표되는 수정 본을 통해 하향조정(downward revision) 되었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다. 가장 극적인 사례가 중국이다. 2014년 이후 중국은 7%대 성장을 멈췄고 반복적인 하향조정을 통해 이제는 5%대로 내려왔다. 그러나 이 수준도 지키기 힘들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중국마저도 유행처럼 되어버린 하향조정의 트렌트를 비켜가기 어려운 처지가 된 것이다. 뒤에 언급하겠지만, 성장률을 제고하기 위해 중국은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내수를 중심으로 한 성장전략을 짜고 추진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국제무역이 감소하게 되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시대 경제의 핵심어는 부채와 위기이다. 2008년 글로벌 위기 이후 이 두 핵심어가 우리시대를 상징하게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계속되는 저성장의 원인과 우리가 어떤 체계 하에 놓여있는가를 동시에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경제가 계속해서 저상장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바로 부채 동학과 위기 때문이다. 그동안 부채, 즉 빚이 성장을 만들었고 한계에 다다르면 곧이어 위기에 빠져드는 거대한 시스템이 만들어진 것이다. 부채 동학에 의한 성장은 경제학에서 말하는 전통적인 의미의 성장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최종적 위기 바로 직전의 아름다운 시절(belle époque)이다. 따라서 부채동학은 단순히 빚이 많아졌고 벌이도 없는데, 돈을 빌리는 파렴치한 짓 수준에서 생각할 일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축적체계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부채-위기 축적체계가 만든 낯선 현상이다. 프랑스의 유력지 Alternatives economique에 크리스티앙 샤비뉴(Christian Chavagneux)는 이를 자본이 주도하는 “탈세계화의 힘(Les forces de la démondialisation)” 라고 주장하는 글을 발표하였다.


현재 세계경제는 자본의 탈세계화가 진행되고 있다. 동시에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주요국들 뿐 아니라 국제금융과 여기에 참가하는 대부분의 나라들 간 호혜적 관계가 아니라 상호 적대적 관계를 맺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지나가고 자본의 탈세계화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는데, 이는 세계시민들에게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세계화와 마찬가지로 자본의 탈세계화의 폭압적인 질주의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과 노동자의 몫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탈세계화의 위험에 가장 먼저 그리고 크게 노출되는 대상은 후진국과 신흥국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학력, 노동 숙련도, 성별, 노동조합 미조직 정도에 따라 겪을 피해가 다를 것이다. 그리고 선진국은 가장 나중에 비교적 약한 수준으로 그 피해를 겪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의 성장 정도와 사회복지의 수준에 따라 시민들의 처지가 결정된다는 브랑코 밀라노비치(Branko Milanovic)의 “지리적 시민성” 개념은 세계 시민이 처한 비극을 잘 조명해주고 있는 것 같다.


다시 샤비뉴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샤비뉴에 따르면 글로벌 자본주의는 승승장구 했던 시기를 지나 쇠퇴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세계화도 예년 같지 않다. 더 이상 국제금융과 국제무역이 호황을 누리며 전세계모든 나라가 이익을 볼 것 같지는 않다. 무역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쇠퇴하고 있다. 기업의 자회사 거래가 국제무역의 급격한 하락을 겨우 막아내고 있을 뿐이다. 국제 무역의 60%는 다국적 기업의 자회사 간에 발생하는 거래이다. 이렇게 보면 쇠락하고 있는 국제무역의 흐름은 기업의 전략적 선택에 의한 것이며 상황이 근본적으로 변경되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국제금융 쪽도 마찬가지이다. 전 세계적 수준에서 은행 간 대출의 규모는 2007년~2008년에 비해 약 33% 감소하였다. 유럽의 경우 이런 사정은 더욱 극적이다. 2015년~2016년의 대출규모는 2008년의 절반 수준이다.


세계경제가 이미 장기침체에 진입했다는 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준 것은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였다. 피케티는 불평등의 심각한 상황을 강조했지만 실상 이 같은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은 경제성장이 예외적으로 높았던 전후 경제성장의 “영광의 30년”을 제외하고 나면 매우 예외적인 순간이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거시 성장론의 대가 로버트 고든(Robert Gordon)은 현재의 기술혁신이 과거 생산성 향상효과에 기여한 것보다 훨씬 저조할 것이라며 앞으로 25년간 기술혁신이 계속해서 이루어지더라도 장기침체를 벗어나기 힘들다고 주장한다. 고든은 기술발전이 경제성장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이 지나치게 과장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는 “솔로우의 생산성 역설”에서 가장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다. 로버트 솔로우(Robert Solow)는 “당신은 컴퓨터 세상이 된 것을 모든 곳에서 확인할 수 있지만 단 한 곳 생산성 통계에서는 확인할 수 없다”고 말하며 기술발전이 생산성 향상, 곧이어 경제성장에 기여하지 못하였음을 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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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