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정/ 새사연 연구원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언젠가부터 이 속담은 청년들의 마음에 대못을 박는 말로 쓰인다. 청년들이 더 이상 고생을 사서 할 만큼 여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근래 대다수의 청년들은 높은 학비를 감내하면서 ‘일 반, 공부 반’으로 겨우 학교생활을 마친다. 그러나 졸업조차도 취업준비를 위한 휴학과 취업 실패로 유예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청년들은 부모세대보다 늦은 나이까지 부모님의 그늘에 있거나, 청춘을 담보로 받은 대출을 통해 각박한 취업 시장의 경쟁에서 자리를 잡으려 발버둥 친다. 한편으로는 취업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청년들이 저임금 인턴이나 비정규직 등의 좋지 않은 일자리를 채우고 있다. 심화되는 청년들의 문제, 특히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고자 지난 정권들 모두 다양한 정책을 선보였다. 하지만 단기적 시각으로 수치적 정책 효과에만 집착한 나머지 불안정한 일자리만 양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즉, 청년에게 필요한 지원이나 미래에 대한 고민에 공감 없이 정치인과 기성세대들의 자위를 위한 정책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 정책들은 전보다 많은 수의 청년들을 취약계층으로 만드는 데에 일조하였다.


이 시대는 청년들을 ‘포기하는 청년’으로 지칭하지만, 연대를 통해 만나본 청년들은 강했다. 현실을 부정하거나 도피하지 않고, 힘든 상황에서도 자기만의 길을 개척하거나 소박하지만 꿈을 이루고자 다양한 시도를 하는 청년들이 곳곳에 있다. 또한 운동을 통해 청년들에게 필요한 정책과 공간을 확보하고자 노력하였다. 나아가 열악한 주거, 저임금, 불안정한 일자리 등 자신들의 절박한 상황을 그들만의 재치로 사회와 공유하고자 다방면으로 표출하고 있다. 매주 토요일 광화문의 촛불‘시위’ 현장을 촛불 ‘축제’처럼 만든 것도 그들이 아니었던가. 덕분에 더 이상 청년들의 힘든 상황을 ‘젊다면 당연히 겪어야 할’ 통과 의례가 아닌 미래와 직결되는 사회문제 중 하나로 보게 되었다. 청년수당, 청년허브, 청년협동조합주택 등의 수도권을 중심으로 시도되었던 제도들이 전국 지자체 단위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모두가 ‘아니’라고 할 때 ‘예’라고 하는 사람


모두가 인턴과 해외 취업, 창업으로는 청년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할 때, 소신 있게 이전 불통정권들을 오마주하는 대선주자가 나타났다. 청년들과 김치찌개를 먹으며 “인턴을 늘려야 한다(1월 13일).”고 말하고, ‘청년과 대한민국의 미래’라는 주제로 강연하기 위해 대학교를 찾아가서 “젊어서 고생은 사서라도 하는 만큼 해외로 진출하고, 정 일이 없으면 자원봉사라도 했으면 한다(1월 18일).”고 말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하 전 총장)이 그 주인공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모든 부처가 함께 노력해서 우선 7만 개의 청년 인턴 자리를 만들었습니다(2009년).”고 한 것과 박근혜 대통령이 “나라가 텅텅 빌 정도로 중동에 가서 노력해보라(2015년)”고 했던 말이 떠오르는 것은 비단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전 총장은 청년들의 마음에 대못을 박는 대장장이라도 될 셈인가.


반기문 전 총장은 지난 18일 조선대학교에서 열린 강연에서 청년들이 ‘글로벌 스탠다드한 시야’를 갖고 ‘스피릿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며 자원봉사 발언을 하였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글로벌 스탠다드는 프레카리아트 증가와 저임금 문제로 우려가 큰 국제사회와는 동떨어져 보인다. 유엔 사무총장직을 역임하고 있던 2015년, 유엔 사무국에서 무급인턴으로 근무하던 청년 데이비드 하이드는 사무국이 위치한 제네바의 높은 물가에 집을 얻지 못하고 호숫가에 텐트를 치고 생활하며 인턴직을 수행했다. 데이비드 하이드의 일화를 통해 유엔에서 무급인턴을 선발할 때 실제로 경제적으로 무급인턴 생활이 감당 가능한지를 물어본다는 사실과 이를 감당하기 힘들어하는 인턴들이 매년 다수 있었다는 것이 알려졌다. 그러자 세계 언론은 유엔의 인턴제도를 비난했고 인턴들도 파업을 감행했다.


오마이뉴스 기사에 따르면, 1996년 131명이었던 무급 인턴이 반기문 총장의 재임 중인 2014년 기준으로 4,018명으로 늘어났다고 한다.1) 반기문 전 총장이 무급인턴 제도를 유엔에 도입한 총장은 아니지만, 규모를 키우고 상황을 심화시킨 유엔총장이라는 평가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반기문 전 총장이 말하는 글로벌 스탠다드가 유엔 사무총장 재임시절에서 연장된 생각이라면, 이 시대 청년들이 취업시장에서 갖는 입지는 더욱 좁아질 것이다. 또한 젊다는 이유로 불안정한 일자리와 저임금의 청년을 착취하는 구조를 감수하는 것을 당연시 하는 사회분위기를 강화시킬 것이다.


취업 실패 청년은 패자가 아니다


한 번 실패가 영원한 실패가 되어서는 안 되므로 ‘패자부활전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반 전 총장의 발언은 매우 실망스럽다. 실패를 경험 한 사람을 ‘패자’로 보는 시각은 청년과 공감하는 자세가 아니기 때문이다. 스스로 이루어낸 성과가 과거 어려운 시절을 이겨낸 개인의 노력의 결과물임을 강조하고, 피난지역의 어려움과 국내 청년들의 상황을 비교하며 한국 청년의 상황이 더 낫다고 말하는 것은 모두 개인의 노력의 결과로 성패가 좌우된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고 짐작된다. 세대가 다르고 목표가 다른 사람에게 동병상련의 자세를 바라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미 국제 조직의 대표 자리에 있었던 인사에게 기대할 수 있는 정도의 자세도 아니다. 우리는 다양한 계층의 어려움을 포괄적으로 이해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진심이 있는 대표를 원한다.

 

1) 한경돈, 오마이뉴스, <청년실업 해결하겠단 반기문, 근데 왜 그러셨어요>, 2017년 1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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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길/ 새사연 연구이사 


보수! 너무나 익숙한 용어이다. 너무나 익숙해서 마치 자연 질서의 한 부분을 표현하는 것처럼 다가온다. 얼마 전까지 우리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던 세력의 호칭이다. 어느 학자는 보수는 인간의 욕망이기 때문에 어느 곳에든 있기 마련이라고 했다. 맞다. 이런 식이라면 보수는 늘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보수가 오랫동안 우리 사회 다수를 차지하면서 큰 소리 쳐 온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데가 있다. 보수의 역사에 아로새겨져 있는 대표적 단어들은 친일, 분단, 독재, 부패 등이다. 모두 부정적 이미지를 가득 담고 있다. 보수의 정당성을 뒷받침 해온 유일한 업적은 산업화 성공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엄밀하게 따지면 상당히 과장된 것이다. 한국의 산업화는 기본적으로 엄청난 교육열, 높은 저축률, 중소기업들의 왕성한 투자 열기 등을 원동력으로 빚어진 것이었다. 이러한 아래로부터의 힘이 없었다면 그 누가 나섰어도 산업화는 결코 성공할 수 없었다.


보수의 위기1. ‘독재세력이라는 낙인


30년 전 보수 세력은 존폐 위기에 내몰린 적이 있었다. 민주화투쟁의 승리 여파로 청산되어야 할 독재 세력으로 낙인찍힌 것이다. 당시 보수 세력은 숨을 죽인 채 불안한 시선으로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그런데 보수 세력을 기사회생시킨 일이 벌어졌다. 민주화투쟁을 이끈 김대중․김영삼 양김씨가 갈라선 것이다.


양김씨의 분열은 1987년 대선에서 군부 출신 노태우의 당선으로 이어졌다. 보수 세력은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반전을 위한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이어서 3당합당을 통한 민주자유당(이후 신한국당, 한나라당을 거쳐 새누리당에 이르렀음)이 출범했다. 보수 세력은 정치 영역에서 민주자유당을, 경제 영역에서 재벌을 구심으로 가까스로 전열을 재정비할 수 있었다.


3당합당 과정을 통해 보수는 이질적인 세력의 동맹을 구조화함으로써 그 외연을 크게 넓일 수 있었다. 동맹은 크게 세 가지였다, 먼저 과거 군부독재의 주요 기반이었던 대구경북 (TK)과 민주화투쟁의 기지였던 부산경남(PK)이 같은 ‘영남’이라는 카테고리로 지역동맹을 결성했다. 두 번째로 산업화에 몸 바쳤던 지금의 60대와 어느 정도 민주화투쟁의 세례를 받았던 50대가 나이 들면 보수적인 된다는 단순한 이유를 바탕으로 세대동맹을 결성했다. 마지막으로 박정희식 국가주의와 자유주의적 시장주의라는 이질적인 이념을 지닌 두 세력이 보수라는 끈 하나로 묶어 이념동맹을 형성했다.


보수의 위기2. 경제관리의 무능함


3대 동맹을 바탕으로 탄탄대로를 걷는가 싶었던 보수는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또 한 번의 위기를 맞이했다. 보수가 자랑하던 경제관리 능력에서 치명적 약점이 드러난 것이다. 그 결과 정권을 내주어야 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보수는 야인 생활을 해야 했다. 보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를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했다. 보수 세력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경제적 무능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켰다. 문제는 대안이었다. 바로 그 때 이명박이 급속히 부각되었다. 이명박은 서울시장 재임 시절 추진한 청계천 복원공사와 대중교통 혁신으로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었다. 보수 세력은 이명박의 두 가지 사업 성공을 통해 과거 박정희 시대를 관통했던 높은 효율성을 발견했다. 보수 세력은 이명박이 바로 그 효율성을 바탕을 한국 경제를 되살릴 것이라고 믿었다. 보수는 이명박을 선택했다. 경제 회생을 바라는 많은 국민들이 여기에 가세했다. 이명박은 2007년 대선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이명박은 보수가 자신을 선택한 이유를 잘못 해석했다. 이명박은 청계천 복원공사 성공에 대한 보수의 지지를 과거 1970년대 식 개발주의에 대한 지지로 착각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청계천 공사의 전국판이라고 할 한반도 대운하였다. 이명박은 한반도 대운하가 격렬한 반대에 부딪치자 4대강 살리기로 슬쩍 우회했다. 당시 한국 경제는 전면적인 혁신을 통해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야할 중대한 시기였다. 하지만 이를 주도해야할 정부는 4대강에서 삽질만 하느라 시간을 다 허비했다.


이명박 정부는 경제 회생에서 완전 실패했다. 보수는 실망하지 않고 히든카드를 꺼내들었다. 박정희 딸 박근혜였다. 보수는 박근혜를 통해 박정희 시대의 정신으로 경제를 되살릴 것이라 기대했다. 박근혜는 경제 회생의 비책으로 창조경제를 앞세웠다. 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조차 창조경제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박근혜 정부가 방향을 못 잡고 헤매는 사이 한국 경제는 하릴 없이 무너져 내렸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경제 성적표는 앞선 김대중․노무현에 비해서도 형편없이 저조했다. 장하성 교수가 어느 신문 칼럼에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이명박․박근혜 정부 경제 성적표를 조사 발표한 적이 있는데 대략 이렇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누적 경제 성장률은 60퍼센트 정도 된다. 그에 반해 이명박 박근혜 정부 8년 동안 누적 경제 성장률은 그 절반도 안 되는 28퍼센트 밖에 되지 않는다. 1인당 국민총생산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김영삼 정부가 초래한 외환위기 여파로 1998년 4천 달러 이상이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으로 1만 1천 달러 늘어났다. 반면 이명박 박근혜 정부 8년 동안 1인당 국민총생산은 4100달러 증가하는데 그쳤다. 국민의 살림살이는 어떠한가? 가계소득은 김대중 정부 시절 1998년 외환위기로 크게 감소했지만 이후 4년 동안 19퍼센트 늘어났다. 노무현 정부 5년을 거치며 10퍼센트 증가했다. 하지만 이명박 박근혜 정부 8년 동안 가계소득은 누적 경제성장률의 3분의 1 수준인 10퍼센트 증가에 머물렀다.


이번에는 가계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보자. 해당 수치는 김대중 정부 마지막 해에는 97퍼센트, 노무현 정부 마지막 해에는 105퍼센트였다. 그러던 것이 이명박 정부 마지막 해에 125퍼센트로 크게 증가했고 박근혜 정부 4년째인 2016년에는 150퍼센트를 넘어서고 말았다. 액면 그대로 국민부채시대가 열린 것이다. 빡빡해진 것은 가계살림만이 아니었다. 나라살림 사정 또한 다르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에 정부 재정은 6.8조 원 흑자였다. 하지만 이명박 박근혜 정부 8년을 거치며 매년 재정적자를 기록해 누적 재정적자가 무려 166조 원에 이르렀다.


보수 세력은 당면한 한국 경제의 위기를 타개할 비책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동안 보수가 축적해온 노하우는 새로운 상황에서 아무런 쓸모가 없음이 명확해졌다. 경제는 보수가 유능하다는 신화는 맥없이 깨져 나갔다. 보수 세력 내부에서 심각한 동요와 이탈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보수의 위기3. 동맹의 균열


다급해진 박근혜 진영은 4.13총선을 앞두고 전가의 보도였던 좌우 대결 구도를 재현하기 위한 작전에 돌입했다. 한국사 교과서의 검인정을 폐지하고 국정교과서로 단일화시키는 역사전쟁 불을 지핀 것이다. 좌우 진영이 한국사 그중에서도 근현대사를 두고 첨예한 입장 대결을 보여 온 점을 주목한 것이다. 역사전쟁을 계기로 우파가 총결집할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이념동맹의 한 축을 형성했던 자유주의 세력이 강하게 반발한 것이다. 이들의 눈에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개인의 선택권을 억압하는 획일화의 극치였던 것이다.


4.13총선은 새누리당이 압승할 것이라는 관측을 뒤엎고 새누리당의 참패로 나타났다. 4.13총선 결과는 세력을 떠받쳤던 각종 동맹에서 심각한 균열이 발생했음을 드러냈다. 지역동맹의 한 축인 부산경남 지역과 세대동맹의 한 축인 50대에서도 이탈 조짐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보수의 위기4. 국가의 사유화


심각한 균열로 인해 한없이 위태로워져 있던 보수 세력 위로 이른바 최순실 사태가 덮쳐 왔다.


최순실 사태는 보수 세력을 힘겹게 유지해 주던 정치적 끈을 가차 없이 절단시켜 버렸다. 최순실 사태는 최고 통치자의 무식과 무능, 무책임을 적나라하게 폭로했다. 의심을 받아 왔던 유능한 보수라는 신화는 완벽하게 깨져 나갔다. 최순실의 국정 농단은 국가라는 공적 기구가 어떻게 사유화되었는지를 보여주었다. 이는 국가관을 중시했던 보수 진영의 가치 체계를 심각하게 손상시키는 것이었다. 보수가 안겨다줄 수 있는 권위와 안정감마저도 환상에 불과했음에 드러났다.


보수 세력은 일제히 멘붕 상태에 빠졌다. 보수를 보는 사회적 시선도 싸늘해졌다. 스스로 보수라고 말했다가는 일거에 왕따 당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올해 초 한 일간지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유권자가 원하는 대통령 리더십은 진보가 64퍼센트, 보수가 26퍼센트인 것으로 나타났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비슷했던 수치가 확 달라진 것이다. 이 와중에서 추진된 박근혜 탄핵은 보수 세력을 산산 조각냈다. 박근혜 탄핵을 둘러싼 입장 차이로 보수가 사분오열된 것이다.


보수 세력은 붕괴되었다. 물론 일시적 현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쉽게 끝날 일도 아니다. 보수 세력 붕괴의 파장은 꾀 길게 이어질 것이다. 보수의 붕괴는 한국 정치 나아가 사회 전반을 혁신적으로 재구성될 수 있는 기회이다. 과연 그 답은 무엇일까? 정치권부터 먼저 나서서 응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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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일/ 새사연 연구이사 




2차 이하 하청협력업체의 경우는 여전히 법률상 중소기업들이 훨씬 많다. 따라서 불공정한 하청납품거래에서 문제는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 재벌계 원천 대기업과 1차 하청협력업체 간의 거래가 아니라 1차 하청납품업체와 2차, 3차 하청납품업체간의 하도급 거래인 경우가 많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여, 몇 년 전에는 하도급법을 개정해 하청기업 보호법의 적용 범위가 2차, 3차 업체들로도 넓혀졌다. 그럼에도 대다수 야권 인사들은 이러한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는 현대차와 삼성전자로 대표되는 수출제조업의 하청 납품거래를 한번 깊이 살펴보자. 노무현 정부에 이어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추진되는 대기업-중소기업 동반성장 또는 상생협력 정책은 하나같이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 재벌계 수출제조업 대기업을 주요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일부 야권 경제학자들은 한 목소리로 이들 수출제조업 대기업의 높은 수익성(영업이익)의 원천은 무자비한 납품 단가 인하와 기술탈취 등 불공정한 거래에 있다는 듯이 비판한다. 이들과 거래하는 하청협력업체들의 수익성(영업이익)이 낮은 것은 이 때문이라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앞선 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전자와 자동차의 경우 1차 하청협력업체들의 수익성이 의외로 높다. 이 점에 대해서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먼저 전자와 자동차 제조업의 1차 협력 하청기업들의 경우 이미 상장 대기업으로 크게 발돋움한 회사들이 많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삼성전자 1차 협력업체’ 또는 ‘현대차 1차 협력업체’라고 찾아보라. 상당수의 상장 대기업들이 검색될 것이다.


야권 경제학자들이 제기하는 대기업-중소기업 간 격차와 불평등 심화의 문제는 주로 재벌계 대기업에 비해 중소기업들의 수익성이 낮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논의에서 간과된 점이 있다. 재벌계 대기업에 납품하는 1차 협력업체들의 상당수가 이미 법률상 대기업으로 성장해있다는 명백한 현실이다.


대기업-중소기업 간 수익성 격차를 비판하면서 재벌계 대기업의 갑질 하청 횡포에 대해 말하는 거의 모든 기존 연구는 ‘법률상 중소기업’과 ‘법률상 대기업’ 사이의 수익률 격차 및 임금 격차를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 하지만 그런 연구에서 사용하는 데이터에 반영된 격차는 재벌계 대기업과 그 1차 협력하청 업체 사이의 납품 거래가 아니다. 오히려 1차 협력업체 대기업들과 2차 협력 중소기업 사이의 격차일 확률이 훨씬 더 높다. 앞에서 본 곽정수(2010)의 삼성전자, 현대차와 그 부품업체들 간의 수익성 격차 분석 역시 ‘법률상 중소기업’으로 분류된 부품 제조업체들을 대상으로 분석한 연구의 결과이다.


2차 이하 하청협력업체의 경우는 여전히 법률상 중소기업들이 훨씬 많다. 따라서 불공정한 하청납품거래에서 문제는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 재벌계 원천 대기업과 1차 하청협력업체 간의 거래가 아니라 1차 하청납품업체와 2차, 3차 하청납품업체간의 하도급 거래인 경우가 많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여, 몇 년 전에는 하도급법을 개정해 하청기업 보호법의 적용 범위가 2차, 3차 업체들로도 넓혀졌다. 그럼에도 대다수 야권 인사들은 이러한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이미 대기업으로 성장한 많은 1차 협력사들의 경우 국내에 둔 생산공장만 해도 전국에 여러 개다. 더구나 법률상 독립된 중소기업으로 신고된 여러 개의 동종 부품 제조·납품 공장들도 그곳을 실제로 방문해 보면 하나의 오너 경영 하에 있는 여러 개의 하청기업들이 하나의 기업그룹(중소기업 그룹)을 이루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는 그 회사를 직접 방문하지 않고서는 알 수가 없다. 이러한 현실은 기업의 재무제표 수치와 이의 통계 처리에 의존해온 기존의 대기업-중소기업 간 매출액-수익성 분석 연구에서 드러나지 않은 채 은폐되어 있다.


더구나 이들은 해외에도 여러 개의 생산 공장을 가지고 있다. 예컨대 현대·기아차와 삼성전자, LG전자에 납품하는 1차 하청협력업체들은 이미 15년 전부터 중국과 인도, 유럽, 미국, 베트남, 태국 등지로 현대·기아차 및 삼성전자, LG전자 등과 함께 현지에 동반 진출하였다. 중국과 베트남 등지의 현대·기아차 공장 및 삼성전자 공장 인근에 이들 1차 협력하청 업체들이 납품 공장을 지어 놓고 현지 매출을 늘리는 것이다.


예컨대 현대자동차가 기아자동차와 통합한 직후인 2000년까지만 해도 현대기아차는 아직 해외 공장을 본격적으로 늘리지 않았고, 당시만 해도 현대기아차와 해외에 동반 진출한 부품 협력사는 28개 사에 불과했다. 그러나 2011년에는 1차 협력사 233개와 2차 협력사 197개 등 총 430개의 자동차 부품 협력사들이 현대기아차와 해외에 동반 진출해 현지 법인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지역별로는 중국에 277개사가 같이 진출했고, 인도에 60개, 미국에 40개, 유럽에 27개, 러시아 11개사, 브라질 8개, 터키에 7개 회사였다.


이들 하청 협력업체의 매출액은 해외 현지공장 매출을 합하여 수천억 원에 달하며 전 세계 매출이 1조 원이 넘는 경우도 꽤 많다. 게다가 해외 현지 공장들에서 일하는 종업원들 숫자도 수천 명에 이르러 종업원 수가 1만 명이 넘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중국에 있는 여러 공장에 종업원 3000명, 인도의 여러 공장에 2000명, 체코 공장에 2000명 등이다. 이렇듯 현대기아차와 삼성전자, LG전자 등 자동차와 전자산업에서 활동하는 1차 협력업체들의 상당수는 사실상 이미 10년 전부터 글로벌 중견기업(대기업)으로 성장하였다.


해외에 동반 진출한 업체들 간에는 공통점이 있다. 먼저, 자체 기술력과 품질관리 능력이 뛰어나다. 그들의 기술력과 품질능력을 국내외 완성차 업체들, 즉 최종 원청업체들이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SL의 경우 자동차 헤드라이트 제조의 기술력 및 품질에서 세계 6위에 올라있다. 자동차용 공조기(냉난방기)를 제작하는 한라공조 역시 세계 5위권의 우수한 기술력과 품질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들 1차 협력업체들은 세계적인 수준의 기술력과 품질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세계적 기준의 R&D를 수행한다.


게다가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세계 수준에 도달한 이들 1차 협력업체들은 현대차와 삼성전자와 마찬가지로 1960-80년대의 국가주도 경제성장 시기에 국가의 전략산업 육성 및 전략기술 육성정책(산업정책 또는 산업육성정책)을 충실히 따르면서, 그리고 자체 기술력 및 품질능력을 키워온 현대차와 삼성전자 등에 납품하는 과정에서, 이들 원청업체와 함께 공동으로 기술개발과 공동 R&D를 수행하면서, 그들 업체 역시 자체적인 기술력 및 품질능력을 키워왔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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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일/ 새사연 연구이사 



대중소기업 동방성장론자들이 제기하는 대기업-중소기업 간 격차와 불평등 심화 문제는 2차 이하 하청협력업체에 집중되어 있다. 그런데 과연 이들 업체에서 발생하는 저임금과 낮은 수익성, 낮은 기술력의 문제를 동반성장론자들이 제안하는 '공정한 하도급 질서 확립'을 통해 해결될 수 있을까? 물론 일부는 가능할 수도 있지만 그 해법의 한계와 범위는 명백하다. 이들 업체 종업원들의 임금수준을 높이려면 어떤 대안이 가능할까?  



원청 대기업의 하청 갑질이 심해지는 이유는?


납품선 다변화에도 불구하고 중소 하청업체들의 상황은 1998년 이후 더욱 악화되었다고 홍장표 등은 주장한다. 사실이다. 왜 그럴까? 그들은 두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첫째, 부품조달 하도급 계약에서 경쟁 입찰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시장경쟁이 격화되었다. 둘째, 복사발주(複社發注), 즉 하나의 부품을 하나의 납품업체가 독점적으로 납품하는 것이 아니라 2~3개의 납품업체가 동시에 납품하는 관행이 새롭게 생겼다. 이 두 가지 이유로 부품 하청 생산납품업체들의 협상력이 더욱 낮아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의계약이 아닌 경쟁 입찰의 관행을 이제 와서 되돌릴 수는 없다. 뒷돈이 오갈 수 있는 불투명한 수의계약보다 경쟁 입찰이 훨씬 투명하고 완전경쟁 시장 모델에 가깝기 때문이다. 민주·진보 경제학자들 스스로가 지난 20년 동안 “시장원칙 즉 경쟁시장 원칙이 모든 경제 분야에 관철되어야 한다.”고 항상 말해오지 않았던가?


다만 복사발주에 대해서는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복사발주를 하게 되면 여러 개의 공급·납품 업체들 간에 품질과 기술력, 가격 등을 놓고 경쟁이 벌어진다. 경쟁적 시장 원리가 작동하는 것이다. 이를 달리 보면, 하청협력 업체들이 납품선을 다변화하는 것에 대응하여 최종 완성재(자동차, 전자) 업체들 역시 조달선을 다변화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수요독점’이 해체되는 것과 동시에 ‘공급독점’이 해체되는 것이고, 수요와 공급 양면에서 경쟁적인 시장메커니즘이 작동하는 방향으로 변하는 것이다. 이러한 복사발주는 과거부터 있었으나,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 시장개혁에 따라 더욱 확산되었다. 현대차와 기아차의 복사발주율은 1994년에 각각 61.9%, 56.2%였는데 2001년에는 76.8%, 67.2%로 높아졌다.


복사발주를 할 때에는 아무래도 단사 발주에 비해 부품 납품업체의 협상력이 약화된다. 1개의 회사가 특정 부품을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2~3개의 하청 납품업체들 간에 치열한 경쟁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차와 삼성전자 등 최종 완성재 업체 입장에서는 복사발주를 통해 납품가격 인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더구나 하나의 납품회사가 해당 부품을 납품하지 못하는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 다른 납품회사의 공급 물량을 늘려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따라서 복사발주 그 자체를 금지 또는 제한시키는 내용의 규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이, 야권 경제학자들 스스로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시장개혁 시기 이래로 지금까지 일관되게 “경쟁적 시장 원리를 더욱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해오지 않았던가. 이제 와서 복사발주를 규제하자는 것은 자신들이 그토록 비판해왔던 독점시장으로, 즉 불공정시장으로 복귀하자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하청 단가에 국가 규제가 잘 작동하지 않는 이유


요즘 외주하청 계약(하도급 계약)은 대부분 공개경쟁 입찰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수의계약이 아니라 여러 납품업체들이 경쟁하는 공개입찰에서 납품업체가 선정되어 계약이 체결된다. 시장에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수록 주류 경제학자들은 공정한 시장질서라고 부르는데, 이런 의미에서 요즘 납품시장은 공정한 시장질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납품업체들은 공개적인 입찰 경쟁에서 납품가격뿐 아니라 자사 제품의 품질과 성능, 기술력과 신뢰성, 납품 기일 준수 여부 등 다양한 항목별로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승부를 겨룬다. 원청업체는 이러한 다양한 항목별 점수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하청업체를 선정한다.


공정거래법상 하도급 규제법 강화를 통한 하청단가 정부 규제가 겨냥하는 목적은 결국 1차적으로 가장 높은 납품가격을 제시한 하청업체가 하도급 계약을 따내도록 원청업체의 구매부서 행위를 규제하겠다는 말이다.


그런데 공정한 시장질서란 무엇인가? 보다 높은 납품 단가를 제시한 납품업체가 무조건 하청 계약을 따내는 것이 공정한 (납품) 시장질서는 아닐 것이다. 물론 가장 높은 납품가를 제시한 하청업체를 원청 발주업체가 좋아하는 경우도 있다. 그 납품업체가 다른 경쟁사들에 비해 월등히 높은 기술력과 품질을 보여줄 때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다른 하청업체들이 ‘불공정 거래’를 문제 삼을 것이다. “내가 더 낮은 납품가를 제시했고 더구나 경쟁업체와 품질력, 기술력이 비슷한데 왜 그 경쟁업체가 선정되었나?”고 항의할 것이다. “이것은 원청업체 구매부서 임직원과 하청계약을 따낸 납품업체 사장 사이에 뭔가 부정한 거래가 있지 않고서는 설명이 안 된다.”고 하면서 원청업체에 엄중한 감사를 요청할 것이다.


그래서 야권 경제학자들과 같은 ‘공정시장 경제민주화론자’들은 이런 현실을 고려해 하나의 해법을 내놓았다. 납품업체들이 서로 경쟁하지 말고 담합하면 해결되지 않겠냐는 것이다. 즉 특정 부품을 공통으로 납품하는 여러 납품업체들이 서로 담합(카르텔)하는 행위를 공정거래법상 예외적으로 허용하자고 그들은 말한다. 약자인 납품업체들이 하나로 뭉쳐서 담합하는 것을 국가가 허용하고 중소기업협동조합 같은 공공단체가 그 담합체의 하청 계약에 개입하여 중재하면 된다는 식이다. 한마디로, 수요자 독점(원청업체 전속거래)에 대응하여 공급자 독점체를 만들자는 해법이다. 경쟁적 시장질서는 여기서 사라진다.


그런데 이 해법에는 치명적 허점이 있다. 먼저 부품 납품시장에는 국내업체들만 있는 게 아니며 외국계 기업들이 많다. 예컨대 자동차 엔진 전자부품 납품시장에는 국내 기업만이 아니라 보쉬와 지멘스, 델파이 같은 다국적 업체들이 있다. 이들 해외 업체들은 납품업체 간 담합(독점)에 가담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자사 제품의 월등한 품질력과 기술력을 내세우면서 오히려 공개 입찰 경쟁을 해야 국내 경쟁업체들을 제치고 승리할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만약 보쉬와 델파이 등을 원천적으로 배제한 채 국내 하청업체들 사이의 담합(독점)만을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법제도가 국회를 통과한다면 WTO협정 또는 미국 및 EU와의 FTA협정 위반으로 곧바로 제소당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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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박세길/ 새사연 이사 



새사연은 2008년부터 매 년 진보 정책 연구소 최초로 <전망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습니다경제주거노동복지 분야를 중심으로 세계의 흐름 속에서 한국 사회를 진단하여 사회를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고 새로운 사회로의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세계는 거대한 전환기에 직면해 있다. 그동안 익숙해 있던 규칙과 경향들이 심각하게 흔들리거나 무너지고 있다. 기존 틀로는 쉽게 해석할 수 없는 새로운 현상들이 속출하고 있다. 2017년은 이처럼 역사의 변곡점을 통과하는 전형적인 한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곧 2017년은 낡은 시대를 뒤로 하고 새로운 시대를 본격적으로 탐색하는 한 해가 되어야 함을 의미하기도 하다. 향후 전체 판도에 광범위하면서 심도 있는 영향을 미칠 중요한 몇 가지 지점들을 전후 맥락에 비추어 점검해보고자 한다.


세계정세


1. 난파 위기의 세계화


2016년에 발생한 영국의 브렉시트와 미국의 트럼프 당선은 세계정세의 불확실을 키우는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이 두 사건이 향후 세계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파악하려면 먼저 그 발생 배경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


미국과 영국은 공통적으로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선도한 나라이다. 그런데 두 나라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세계화로부터 발을 빼는 양상을 보였다. 영국의 브렉시트는 세계화의 일환으로 추진된 EU 즉 유럽 단일시장으로부터의 철수이다. 트럼프는 자유무역 반대 기조를 앞세워 당선에 이르렀다.


지난 몇 십 년 동안 세계화는 자유무역을 거의 모든 분야에 확대 적용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1995년 출범한 세계무역기구(WTO)는 세계화를 관장하기 위한 기관이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같은 지역협정, 한미FTA와 같은 쌍무협정 등은 이를 더욱 강화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미국과 영국이 세계화를 적극 선도한 것은 제조업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금융을 통해 충분히 보충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였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핵심은 바로 미국과 영국 두 나라 금융자본의 전 지구적 지배를 실현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전략은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미국과 영국은 금융자본을 빨대로 전 세계의 부를 빨아들여 자국 안에 쏟아냈다. 이를 뒷받침하는 징표로서 1990년대 10년 동안 미국의 종합주가지수가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두 나라 국민들은 주가 상승 등으로 막대한 금융소득을 거머쥘 수 있었다. 덕분에 중산층도 그런대로 유지될 수 있었다.


하지만 금융자본 중심의 신자유주의는 거품에 의존하는 지속가능성 없는 시스템임이 드러났다. 거품이 붕괴되면서 2000년 월가 주가대폭락,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잇달아 발생했다. 금융자본을 앞세워 세계의 부를 끌어 모으는 것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았다. 이러한 가운데 자유무역 흐름을 타고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한 중국 등이 선진국 시장을 거침없이 잠식했다.


두 차례의 금융위기를 거치며 주가 폭락과 부동산 버블 붕괴 등으로 중산층은 직격탄을 맞은 상태였다. 반면 추가적인 금융 소득은 대폭 줄었다. 시장 잠식으로 공장 폐쇄가 늘면서 실업자까지 급증했다. 이러한 요인들이 종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선진국 사회구조를 상징했던 두터운 중산층이 빠르게 붕괴되어 갔다.


금융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유난히 높았던 미국과 영국 두 나라가 바로 이런 형태로 집중적인 타격을 입었다. 두 나라가 가장 먼저 세계화 흐름에서 발을 빼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동안 진행된 세계화는 평가를 떠나 세계 질서에 일정한 규칙을 부과해 왔었다. 이를 바탕으로 불확실성을 최소화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으로 그 규칙들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유일한 기준으로 삼고 있다. 적과 우방도 중시하지 않을 방침이다. 시장 논리를 뛰어넘어 글로벌 기업들에게 미국 내 투자를 겁박하고 있으며 각종 무역 분쟁을 예고하고 있다. 트럼프는 신설된 백악관 국가무역위원회와 미 무역대표부 수장에 잇따라 반중(反中) 인사를 지명하면서 중국과의 무역전쟁에 돌입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는 환율·무역정책에서 중국과 사사건건 충돌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대급 시장을 품고 있다. 미국의 행보는 곧 세계 질서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수 있다. 세계화는 암초에 부딪쳤다. 대의의존성이 높은 한국으로서는 심각한 위험 요소가 아닐 수 없다.


한국은 세계화 흐름을 타면서 무역 규모를 빠르게 확대시켜 왔다. 최근 뒤로 밀려나고 있지만 한 때 수출 규모 세계 6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GDP 대비 수출의존도도 50퍼센트에 육박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대외 환경이 급격히 바뀌고 있다. 시급히 세계화 이후 시대에 대비해야 하는 것이다.


2. 신냉전 격화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날로 격화되고 있다. 여기에 일본과 러시아가 가세하면서 신냉전 질서가 형성되고 있다.


1980년대 미국과 중국은 함께 손을 잡고 소련에 대항했다. 반소련 공동전선에서 두 나라는 동반자 관계를 유지했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하자 세계는 미국을 유일한 정점으로 통합되었다. 중국은 개혁개방을 가속화시키면서 미국 중심의 세계 자본주의 시장에 깊숙이 편입되었다. 중국은 대미 수출로 막대한 무역흑자를 기록했다. 중국은 벌어들인 달러로 미국 국채를 매입했고 미국은 이를 통해 무역적자를 보충했다. 그런 식의 ‘달러 사이클’을 바탕으로 두 나라는 밀월 관계를 유지했다.


미국은 자신을 유일 정점으로 하는 세계질서가 오랫동안 지속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중국은 견제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중국은 빠르게 실력을 키우면서 미국의 지위를 넘볼 수 있는 위치에 섰다. 세계는 미국과 중국을 G2로 부르며 대등하게 취급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GDP 규모는 미국에 바짝 다가섰으며 머지않아 추월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중국은 엄청난 외환 보유고를 바탕으로 국제무대에서의 영향력을 빠르게 넓혀가고 있다. 유인 우주왕복선을 띄우는 등 우주개척에서도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항공모함을 진주시키는 등 군사대국의 길에도 성큼 발을 내디뎠다. 중국은 대국굴기를 선언하며 강대국의 길을 가겠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오바마 행정부는 재균형 정책을 표방하며 중국 견제를 군사 외교 정책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기 시작했다. 최근에 이르러서는 두 나라의 군사적 긴장이 크게 고조되고 있다. 미국 항공모함이 남중국해에 깊숙이 진입하는 가운데 중국은 미국 본토 타격 능력을 지닌 핵잠수함을 전격 배치했다. 여기에 트럼프 행정부 발 무역 분쟁이 가세하고 있는 형국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 정책에 대한 맞대응으로 시진핑은 다보스포럼에서 자유무역을 옹호했다. 이는 중국이 미국과의 직접적인 이해 다툼을 넘어 세계 질서의 향방을 둘러싼 경쟁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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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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