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키지 않지만 도리 없이 써야할 글이 있다. 그럴 때는 글을 실을 매체도 신중히 선택해야 한다. <한겨레>에 쓰면 더 좋은 글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쓸 수 없는 형편이다. 더구나 꼭 <한겨레>에 대한 반론만은 아니다. 우리 모두가 성찰해볼 보편적 문제다.
<한겨레>는 12월 26일자에 "이명박 당선자를 도와야 한다"는 칼럼을 내보냈다. 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가 쓴 글이다. 정치부장을 지낸 성 선임기자는 사적으로도 잘 알고 있다. 훌륭한 기자다. 성 기자의 진의가 무엇인지도 짐작은 한다.
하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대목이 있다. 나를 포함해 진보적 지식인을 겨냥한 대목에 날이 서있기 때문이다.
성 기자는 “선거가 끝난 뒤 이명박 당선자에게 저주를 퍼붓는 사람들이 많다”며 그 저주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썼다.
“머지않아 부동산 값은 폭등하고 물가가 오를 것이다. 양극화는 더 심해질 것이다. 이명박은 독단과 오만의 정치를 할 것이다. 내년 국회의원 선거가 끝나면 곧바로 레임덕에 빠질 것이다.”
이명박 당선자에게 보내는 쓴소리가 과연 ’저주’인가
성 기자는 이어 “그러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명박 당선자는 성공해야 한다며 그 이유로 실패하면 국민이 고통을 받는다고 썼다. 이어 강조했다. “우리 모두 그를 도와야 한다.”
이명박 후보가 당선된 바로 그날, 12월 19일 밤에 개표방송이 진행되던 한국방송(KBS)에 출연해 이명박 후보의 당선이 “안타깝고 아쉽다”면서 “양극화가 더 심해질 것”이고 “레임덕에 빠질” 가능성을 진단한 나로선 정면으로 비판 받은 셈이다.
먼저 분명히 전제할 게 있다. 정치인 이명박의 후보 시절과 대통령 당선자 시절은 엄연히 다르다. 대통령에 당선된 이명박은 후보 시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위상이 높고 크다. 이명박 정권이 실패하면 국민이 고통을 받는다는 말은 두말할 나위 없이 옳은 말이다.
다만, 당선자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그에게 저주를 퍼붓는다는 주장은 섣부르고 옳지 않다. 만일 그것이 이명박 당선자를 바라보는 <한겨레>의 전반적 분위기라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이명박 후보의 공약을 보라. 후보시절부터 그리고 당선된 뒤에도 지며리 써왔지만 그의 공약이 고스란히 추진될 때 양극화가 심화될 게 불을 보듯 또렷하다. 신자유주의 정권의 연장임을 강조한 까닭이다. 그것은 결코 ‘저주’가 아니다. 경제학이고 과학이다.
부동산 값이 폭등한다는 우려도 이미 한국경제학회에서 제기하고 있다. 보라. 그런 비판이 곰비임비 이어지기에 이명박 당선자 쪽에선 폭등을 우려하는 대안을 고심하고 있지 않은가. 양극화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공약으로는 양극화가 심화될 게 틀림없다. 마땅히 그 진실을 보도하고 논평해야 옳다. 그래야 양극화 심화를 막을 대책을 서두르지 않겠는가.
KBS 개표방송에 출연해 당선된 바로 그날 ‘레임덕’을 경고한 것은 그를 저주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대다수가 당선자에 축하를 보낼 때 쓴 소리를 할 사람이 필요해서다. 언론인이 할 일은 거기에 있다.
물론, 볼썽사납다. 누구에게나 환영받을 수 없다. 하지만 비판을 싫어하는 권력에 맞서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 옳다. 바로 그곳이 언론인이 설 자리다. 찬가를 읊거나 두남둘 사람은 언론인이 아니어도 쌓여있다.
이명박 당선자가 들을 귀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미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 비판을 해도 쇠귀에 경 읽기를 절감한 바 있어서다. 하지만 그렇기에 비판언론은 더 절실하다.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지만 언론인의 본령은 비판
더러는 노 정권의 대선 참패를 진보세력의 비판 탓으로 돌리는 참으로 해괴한 주장도 한다. 하지만 시간은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억지인가를 심판해준다. 언론인이, 아니 그 이전에 지식인이 할 일은 권력에 대한 비판이다. 그 권력이 비판을 새겨듣지 않아 몰락하는 풍경을 바라보기란 안타까운 일이다.
바로 그렇기에 지식인의 권력 비판은 더 절실하다. 이명박 당선자의, 이명박 정권의 문제점을 그때그때 적실하게 지적하는 일, 그것이 언론이 정권을 돕는 길이다. 언론인이 충성해야 할 곳은 정권이 아니라 국민이다.
<한겨레>만이 아니다. <경향신문>도 마찬가지다.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의 과제도 그렇다. 이명박 당선자의 잘못을 더 치밀하게 비판하는 일, 그것이 참된 언론이, 지식인이 정권을 돕는 방법이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따위가 장악하고 있는 여론 시장이기에 더 그렇다. 서슬이 한창 시퍼런 이명박 정권 인수위원회도 가슴에 새겨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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