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5.02정태인/새사연 원장

“아이들이 밝힌 촛불이 점점이 일렁인다. 책임을 다하지 못한 중년 사내의 시야가 이내 흐려지면서 촛불은 파스텔톤의 들불로 부옇게 번져간다.” 4년 전 이맘때 쓴 글의 첫머리다. 2008년 5월2일, “나 이제 15살, 살고 싶어요”라는 팻말을 목에 걸고 여중생들이 광장으로 나왔다. 이 아이들도 이번 총선에서 한 표를 던졌을 테지만 우리는 책임을 다하기는커녕 또 한 번 그들을 실망시켰다.

극적으로 변한 건 정부와 여당, 그리고 보수언론이었다. 촛불에 놀라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반성’을 하고 결국 국민에게 사과까지 했던 대통령은 2010년 5월, “촛불시위 2년이 지났는데 많은 억측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음에도 당시 참여했던 지식인과 의학계 인사 어느 누구도 반성하는 사람이 없다”고 다그쳤다. 조·중·동은 시민들에게 “좌파의 선동에 놀아났다”는 반성을 강요했고 검찰과 법원은 1000명이 넘는 촛불시민에게 벌금형 이상을 때렸다. 심지어 정부의 광우병 대책을 비판한 지식인들을 쫓아다니며 허위의 폭로 기사를 쓰는 것도 그들의 일이었고, 사소한 흠결을 문제삼아 MBC 팀을 대법원에서 무죄로 확정될 때까지 끊임없이 괴롭혔다.

확률로 볼 때 썩 괜찮은 전략이었다. 실제로 고전적 광우병(CJD)은 전 세계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였고 도축 소의 0.05%에서 0.1%만 검사하는 미국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 내에 광우병 소가 발견될 확률은 지극히 낮으니 말이다.

광우병 연구로 노벨상을 수상한 프루시너 교수가 미 하원에서 “은폐는 좋은 방책이 아니”라며 전수검사를 지지했다는 사실은 이들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캔자스주립대학의 폭스와 피터슨 교수가 미국에서도 유럽 수준으로 ‘고위험 소’를 검사한다면 99.999%의 확률로 광우병 양성 소를 찾아낼 것이라고 단언한 사실도 무시됐다.

그러나 미국은 영국이 광우병을 막기 위해 차례로 취한 3단계 사료 조치 중 1단계만 시행하고 있을 뿐이며 등뼈에 붙은 살을 기계로 뜯어내는 AMR도 허용하고 있다. 결국 광우병 소가 발견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오로지 미국 축산대기업의 이익 때문이다. 미국에선 버려야 하는 창자, 혀, 목둘레살 등 소의 부산물을 한국에 수출하면 이윤율을 10% 가까이 올릴 수 있다.

정부는 이번에 발견된 소가 비정형광우병(atypical BSE, BASE)에 걸린 것이며 인간의 식품체계에 들어가지 않았으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코모이 등 유럽과 미국의 수의학자, 의학자 16명의 공동연구는 원숭이 실험에서 비정형광우병이 CJD보다 더 병원성이 높을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따라서 이들은 CJD가 감소하는 추세라고 해서 기존의 규제조치를 완화해서는 안된다고 권고한다.

미국에서는 늙거나 죽은 소를 닭과 돼지와 같은 다른 가축의 사료로 만든다. 이들 가축이 죽으면 또다시 소의 사료가 되니 언제든 광우병의 교차감염이 일어날 수 있다. 직접 먹지 않는다고 해서 위험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정부는 언제까지 국민을 속일 것인가? 다른 아시아 국가들이 우리 수준으로 개방하지 않으면 위생검역조건을 재개정하겠다는 거짓말, 언제든지 수입중지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했던 뻔한 거짓말, 그리고 지금 별 위험이 없으므로 검역만 강화하면 된다는 거짓말….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기 마련이다. 장차 인간 광우병까지 발견되면 또 어떤 거짓말을 할 것인가?

아이들에게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는 어른이 되기 위해 우리는 지난 총선의 과오를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오늘 나는 이제 훌쩍 컸을 촛불소녀들에게 “정말 미안하다”고 말하기 위해 광장으로 나가야 한다.

이 글은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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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