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08고병수/새사연 이사

장면 1. 남편의 환자 정보를 요구하는 부인

얼마 전 40대 초반쯤 되는 남자가 진료실에 들어와서 의자에 앉자, 불편한 게 무엇인지 물었다.

“어디가 불편하세요?”
“아, 저..... 거기에 습진이 생겨서요.”

정확한 부위도 말을 안 하고 ‘거기’라고 하면서 말을 하는 환자의 얼굴을 보고 나는 직감적으로 은밀한 부위임을 알았다. 몇 마디 주고받고는 바지를 내리게 하고 성기 부분을 관찰한 후 어렵지 않게 그 남자가 ‘임질’에 걸렸음을 알 수 있었다. 아주 오래 전에는 참 많았던 성병인데, 요즘은 일 년에 한번 볼까말까 하는 희귀병(?)이다.

“최근에 다른 여자와 관계한 적이 있어요?”
“예, 어휴..... 술 마시고 정신없다보니 나도 모르게.....”
“아무리 정신없어도 콘돔을 썼어야죠. 일단 균 확인을 해야 하니까 검사만 간단히 한 후, 주사를 꼭 맞고 며칠 약을 먹읍시다.”
“주사 맞으면 금방 낫겠죠?”

몇 번이고 금방 나을 수 있느냐고 물어보는 이유는 부인과도 성관계를 해야 하는데, 문제가 있을까봐 걱정이기 때문이다. 치료 며칠 지나면 전염력은 없어지기 때문에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키면서 주사실로 보냈다. 임질에 쓰는 주사는 엄청나게 아프다. 주사약이 끈적거려서 웬만한 주사바늘로는 안 되고, 제일 굵은 주사바늘을 써야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못을 엉덩이에 꽂는 게 났겠다고 비명을 지를 정도(좀 과장해서)라고 한다. 맞아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며칠 후 그 환자의 검사 결과를 묻는 전화가 왔다. 전화를 걸어 온 사람은 그 남자가 아니라 부인이었다.

“OOO씨 부인인데요, 우리 남편이 검사를 했다는데, 결과가 어때요? 습진이 맞나요?”

이 대목부터가 중요하다. 의과대학과 전문의 수련 과정에서 배운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고 오직 비즈니스와 감각적인 느낌만이 필요한 순간이다. 일단 환자에 대해서는 사소한 진료 정보라도 말하면 안 되는 게 원칙이다. 나의 소신이 아니라 전 세계 의료법에서 규정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그래도 부인이니까 간단히 습진이 맞다고 한 후 지금은 잘 나았을 거라고 전했다. 그런데, 자꾸 검사 결과를 알려달라고 해서 어떨 수 없이 접촉성습진인데, 어떤 물질 때문에 생겼나 알기 위해서 검사를 했노라고, 그리고 남자들에게서 흔히 있는 사타구니 땀띠 같은 원인 때문이었다고 말해줬다. 부인은 큰 문제가 아니어서 다행이라면서 전화를 끊었다.

부인에게 거짓말한 것은 미안하지만 가정의 평화와 나라의 법을 지키기 위해서 그렇게 해야 했는데, 병원에 있으면 의사들에게는 이런 일들이 종종 있다. 대부분은 나처럼 문제를 풀어나가며, 절대 진료 기록이나 결과에 대해서 환자 본인 이외에는 발설하거나 서류를 넘겨주는 일을 하지 않는다. 당연한 환자 비밀보호 차원이기도 하지만, 그런 일로 병원 문 닫고 싶지는 않으니까....

장면 2. 사망자의 환자 정보를 요구하는 경찰관

가끔 어떤 용의자를 찾는다고 경찰관들이 오는 경우가 있다. 다치거나 아픈 용의자가 병원을 찾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한번은 경찰 신분증을 제시하며 돌연사로 죽은 어떤 분의 진료 기록을 달라고 형사 두 명이 찾아온 적이 있었다. 나는 진료 차트를 훑어본 후 그 환자가 우리 병원에는 몇 번 왔었고, 간단한 내용만 말해 주면서 오래 전에 몇 번 다녀간 기록이 있다고 말을 하고는 진료기록은 자세히 말해주기 힘들다고 전했다.

“죄송하지만, 진료 기록은 의료법에 의해 본인 외에는 절대 보여주면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미 죽은 사람이고, 수사에 협조하는 차원에서 몇 장 안 되는 기록이니 뽑아주세요.”
“그래도 안 됩니다. 정히 그러시다면 영장을 가져오시거나 보호자 동의서를 가져오셔야 합니다.”

이마를 찌푸리며 나와 실랑이를 벌이던 형사 둘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다가 결국은 나가버렸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도 진료 자료 요청은 오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형사소송법’에는 제106조에서 법원이 압수 또는 제출을 명하거나, 제215조에서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이 지방법원판사가 발부한 영장에 의하여 압수, 수색 또는 검증을 하는 경우에 한해서만 환자 본인의 동의가 불필요하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이러한 방법이 아닌 일반적인 공문 형태의 수사 협조 요청일 경우에는 의료인이 그 요청에 따를 의무는 없다고 유권해석이 내려지고 있다. 또한 ‘개인정보 보호법’ 제18조의 ‘개인 정보의 이용?제공 제한’ 부분에서도 비슷하게 개인의 정보는 정해진 규정이 아니면 절대 공개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진료 기록과 의사

진료기록과 관련 자료는 의사들에게 가장 중요한 무기이면서 굴레이기도 하다. 며칠 전 국회의원을 사퇴하겠다며 물러난 강용석씨를 보면서 의사의 진료 기록과 자료에 대한 엄격한 비밀보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처음 강용석씨가 박원순 서울시장 아들의 MRI(자기공명영상) 필름을 공개하며 다른 사람과 바꿔치기했다고 주장할 때 나는 결코 아닐 거라고 페이스북에 글을 썼었다. 왜냐하면 필름 바꿔치기로 군대 면제시켰다면 당사자는 어떤 이유에서든 중대 범죄를 저지른 것이 되고, 병원은 문을 닫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30년 전이었다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이회창씨 아들 병역면제 이후 이 분야에서는 상당히 엄격해진 것이 군대 신체검사이거늘 그것도 시장 선거에 나올까 말까 생각 중인 사람(박원순)이 그런 일을 방조 했을까 하는 것도 의문이었기 때문에 결코 가능하지 않다는 투로 글을 써서 올린 것이다.

강용석씨가 필름을 공개하며 기자회견할 당시 며칠 동안 몇몇 언론에서는 분명 강용석씨 주장이 맞다며 기사 1면을 동원하여 재검을 부르짖었다. 결론은 우리가 알다시피 MRI 필름은 바뀌지도 않았고, 본인 것이 맞다 였다. 하지만 또 하나의 문제가 남아 있다. 강용석씨는 도대체 그 필름을 어떻게 구했느냐이다. 해당 병원 원장이? 아니면 방사선과 의사가? 그것도 아니면 방사선과 기사가?

짧게 조명해보고 가자. 우선 병원장이나 방사선과 의사가 필름 유출을 지시했다면 본인이 필름을 복사할 수 없어서 방사선과 기사에게 지시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병원 내부 공범은 두 명 또는 세 명이 된다. 원장이나 방사선과 의사와 방사선과 기사. 만일 방사선과 기사 단독으로 강용석씨에게 매수되어 필름을 유출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 경우에는 단독범행이 되면서 알 수 있는 사람이 극히 적기 때문에 비밀 보장이 유리하다. 하지만 어떤 경로로 필름 유출이 되었는지는 찾으려고만 하면 쉽게 알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강용석씨가 국회의원 사퇴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란 점이다. 그는 어떤 이유에서이든지 병원 내부자를 매수를 했고, 병원 내부자는 필름 원본을 복사해서 유출을 했다는 것이다. 경찰이나 검찰은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 것에 대해서 분명히 밝히고, 그에 따른 죄값도 물어야 한다.

나는 솔직히 그가 국회의원 사퇴를 하든, 말든 별로 관심이 없다. 의사로서 정말 박원순 서울시장 아들이 MRI 필름을 바꿔치기했을까 궁금했고, 도대체 어떻게 불법적인 진료 자료 유출을 했는데도 관련자들을 체포하지 않는 걸까 이것이 더 궁금했다. 경찰, 검찰은 궁금하지 않은가? 현장범이나 피해자의 고발에 의해 수사가 이루어지지만, 경찰과 검찰의 인지에 의해 수사가 시작되기도 한다. 이것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강용석씨를 용서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법질서의 문제이고, 그 법을 지키는 집행자들의 문제이다.

대한민국의 엄정한 법 집행자분들이여, 인지를 했으면 어서 불법한 행위에 대해 수사해 주세요!!! 잘 모르시면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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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