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1.19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새해가 됐는데도 마찬가지였다. 어지간하면 형식적인 격식이라도 차렸을 법했으나 그러지 않았다. 1월17일 동반성장위원회 전체회의에 대기업 대표 9명이 또다시 모두 불참한 것이다. 보이콧이다. 이로써 정운찬 위원장이 지난해 2월 ‘초과이익 공유제’를 제안한 지 1년 만에 대·중소기업의 이익 공유를 통한 동반성장 정책은 완전히 물 건너갔다.

어쩌면 초기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이익 공유제가 부정적이다, 긍정적이다를 떠나 사회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공산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모르겠다”고 이데올로기적인 덧칠을 하면서 무시할 때 이미 지금의 결론이 예고됐는지 모르겠다. 이렇듯 2011년 초과이익 공유제 방안이 나온 직후 이건희 회장을 필두로 재계의 반발이 쏟아졌고 정부 내부에서도 비판이 나오자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 사퇴까지 거론됐던 터다. 그 후 1년 동안 진지하게 세부방안을 검토했을 리가 없다.

초과이익 공유제는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의 일환으로 대기업의 초과이익 중 일부를 협력사에게 인센티브로 제공함으로써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경쟁력과 혁신역량을 함께 높이는 선순환구조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시행방안으로는 대기업이 연초에 세운 목표를 초과할 경우 초과분의 일정비율을 대기업이 ‘자율적으로’ 협력사들에게 나눠 주자는 정도의 방안이 검토됐다. 대기업에게 전혀 강도 높은 이익 재분배 요구라고 할 수 없었다. 아마도 대기업 총수들이 우려한 것은 ‘공유할 이익의 금전적 크기’보다는, 협력 중소기업과 이익을 공유할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그러니 이건희 회장이 이데올로기적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닐까.

그러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은 철저히 현실의 문제다.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가 양극화라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양극화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로부터 발생한다. 전 산업기준 중소기업 고용비중이 87%임에도 불구하고 영업이익률은 절반 수준, 생산성은 3분의 1에 불과하다. 그 결과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이 대기업의 절반 수준인 실정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 확대, 그것은 소득 격차의 확대, 사회안전망 격차 확대를 포함해 우리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모든 양극화 현상의 근원일 수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가 대기업 노동자와 중소기업 노동자의 소득격차로, 다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로 확대되면서 양극화의 ‘적하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친재벌 정책을 내세우면서 집권한 이명박 정부였지만 워낙 심해지는 사회 양극화로 인해 집권 3년차인 2010년부터 동반성장을 들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 정점이 정운찬 전 총리를 동반성장위원회 수장에 앉힌 것이다. 그리고 정운찬 위원장은 초과이익 공유제와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를 야심차게 제기했으나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사실상 없던 일이 될 정도로 묻힐 위기에 몰린 것이다. 이런 식으로는 동반성장 정책이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암시해 준다.

정운찬 위원장은 1월17일 대기업 대표들이 위원회에 집단적으로 불참한 사실을 두고 “이는 동반성장 파트너로서 책임 있는 태도가 아니라 스스로 경제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길을 선택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렇다. 정 위원장이 1년을 넘게 돌고 돌아서 내린 결론인 ‘재벌개혁’, 그것이 동반성장을 위한 대전제이고 출발인 것이다. 사실 초과이익 공유제는 우리나라처럼 재벌 대기업집단의 경제력 비중이 큰 나라에서 단번에 경제력 집중도를 완화시키지 못한다면 동반성장을 위해 시도해 볼 수 있는 방안의 하나다.

그러나 초과이익 공유라는 개념이 성과 공유개념이나 모두 그 원천적 속성상 강력한 외적 강제력을 가지고 시행되기보다는 상당 정도 대기업의 자발적 의지가 있어야 가능한 조치다. 대부분 이익을 재분배하는 문제는 외형적으로는 자발적으로 진행된다 하더라도, 실제로는 상당한 정도의 보이지 않는 사회적 힘과 압력이 작용해야 실현된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지금 우리나라의 재벌 대기업집단은 문자 그대로 겁을 낼 견제세력이 없을 정도로 스스로 권력화돼 있지 않은가. 관료도, 국회도, 검찰도 모두 재벌권력과 인적·금전적 유착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초과이익 공유제와 같은 재벌 대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정책이 현재 단계에서는 매우 어려운 것이다. 재벌개혁을 위한 시민적 합의와 시민적 압력을 만들어 내는 것이 먼저 필요했던 것이다. 동반성장의 첫 단계가 재벌개혁인 이유다.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