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0.05고병수/새사연 이사

이제는 영국 방문을 마무리할 때가 됐다. 영국의 NHS를 돌아보고자 런던에 왔지만 아직 완수하지 못한 미션이 있다. 그것은 영국 일차의료의 현장이었다. 우리 일행들의 시간표에도 일차의료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계획이 없던 터라 나는 개인적으로 찾아가기로 했다.

여행 초반에 숙소 주변에 있는 GP surgery(동네의원)를 찾아갔다가 딱지 맞은 나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것은 아는 사람을 통해 소개를 받는 방식이었다. 미리 한국에 있을 때부터 사전 약속이 되어 있지 않으면 외국에서의 어떠한 방문도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현지에 있는 지인을 이용한 방문이나 만남을 취하게 된 것이다.

현지인들이 바라보는 동네의원

비가 오락가락 하였지만, 런던의 날씨야 항상 그렇지 하는 마음으로 작은 접이용 우산 하나만 들고서 나와 홍승권 교수는 전철을 타고 런던 시외로 빠져나갔다. 우리는 소개받은 분을 만나기 위해 식당을 하고 계시는 레인스 파크(Raynes park)라는 곳으로 갔다. 나무가 주변에 많고, 집들은 전형적인 영국식으로 되어서 길을 따라 늘어선 조용하고 예쁜 곳이었다.

처음 보는 동네에 찾아든 우리는 비가 다소 거세지자 우산을 펼치고 둘이 어께를 맞대고 동네 구경을 했다. 외국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도시를 벗어나면 조용하기는 비슷한지라 아주 드물게 사람 지나가는 게 보일 정도였다. 하긴 이 시간에는 다들 출근했을 테니까....

남정네 둘이서 우산 하나 쓰고 가는 게 신기했는지, 이상했는지 지나가는 사람들은 힐끗힐끗 쳐다본다.

“아, 이런 목가적인 동네에서 우산을 쓰고 가는데, 옆에 있는 사람이 시꺼먼 남자라니.....”
“누가 할 소리를. 우산 가져온 게 이처럼 후회스러울 수가 없군.....”

우리가 찾아간 교포 내외가 운영하는 식당(맨 왼쪽)

우리는 서로 못마땅하다는 말투를 내뱉으며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드디어 만나기로 한 시간이 되어서 약속한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식당은 교포 내외분이 운영하는 곳으로 아담하였고, 일식부터 한식까지 다 하는 곳이었다. 만나려고 하는 분은 이 곳 주인인 장석규씨(가명. 나이 60대 초반) 부부였다. 그 부부는 영국에 정착한지 30년 정도 된 분으로 런던 근교에서 식당을 하고 있다.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처음 영국에 와서 온갖 일들을 다 하며 고생하다가 식당을 하면서 이제는 어느 정도 경제력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이 거리 끝에 보면 GP surgery가 하나 있어요. 동네 사람들은 그곳을 주로 이용하지요. 동네에 있으니까 아프면 찾아가기는 하지만, 신뢰가 가지 않아요.”

식사를 하면서 장석규씨는 자기가 겪은 NHS 및 동네의원에 대해서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의사들은 친절하고, 웬만한 것들은 해결해 드릴 수 있을 텐데요?”

“물론 친절하죠. 한국에서처럼 의사 얼굴 잠깐 보고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고, 내가 필요한 얘기는 어느 정도 하고, 건강관리에 도움이 되는 얘기도 많이 듣고 오죠. 하지만 정작 해결을 해야 하는 내용에서는 한정없이 느려요. 내가 몇 년 전부터는 허리가 아팠는데, 찾아가면 허리 디스크 탈출증이 약간 있다 그러고는 해주는 게 없어요. 검사를 하자는 말도 없고, 운동하라, 필요하면 진통제 정도는 주겠다 이 정도죠. 매일 허리가 아파서 힘든데, 별다른 차도가 없으니 얼마나 걱정되겠어요?”

장석규님씨는 영국의 의료에서 공짜도 좋지만, 돈이 들더라도 시원하게 검사를 받을 수 있거나, 치료약이라도 원 없이 받아보는 게 차라리 낫겠다는 생각을 한단다. 물론 처음에 영국에 와서 돈이 없을 때는 무료로 진료 받을 수 있다는데 너무 놀랐고, 우리나라와 비교하면서 천국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요즘 와서 보면 이 나라가 의료기술이 발달 하기는 한 건지 의심되는데다가 제도가 마음에 안 들게 됐다고 한다. 필요한 사람은 필요한 만큼 더 진료 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잘 안 되는 게 가장 큰 불만이다.

“필요하면 CT 등 정밀 검사들도 받을 수 있을 텐데요?”

“그게 세월아 내월아입니다. 여기서는 기본적인 것은 잘 보장이 되는데, 좀 더 검사 받거나 치료를 하려면 한정 없이 기다려야 해요.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한국에 가서 치료를 받고 오곤 하지요.”

장석규씨 부부 동네에 있는 동네의원(GP surgery).

이것은 10년 전 처음 영국을 방문했을 때도 들은 얘기였다. 영국 사람들은 현지 상황에 적응되서 그런지 별로 불만이 없지만, 교포들은 이곳의 의료 체제에 다소 만족스러워 하지 못했다. 불만족의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가장 많은 불만은 대기 시간. 위내시경을 받으려고 하든, CT를 찍으려고 하든, 고관절 수술을 하려고 하든 무한정 기다리는 게 일이다. 그 다음 불만은 약을 잘 안 주는 거. 우리처럼 약을 무한정 받아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웬만하면 약을 주지 않으니 병원이 병원 같지가 않단다.

응급실 얘기도 나왔다. 인근에서 중국집을 운영하는 친구가 있는데, 어느 날 식당에서 글라인더에 손이 빨려 들어가 손가락 여기저기 살점이 뜯어졌는데, 급히 응급실을 찾았다고 한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데, 의사는 와보지도 않고, 간호사가 보더니 약 발라주고 거즈로 싸서는 집에 가라고 했다. 그 분은 왜 더 치료를 안 해주냐고 물었더니 그 정도면 됐고, 집에서 약 바르면서 치료하면 잘 나을 거라고만 했단다. 우리나라 같으면 벌써 환자가 의자 집어 들고 생난리를 쳐야 하는 상황이다. 결국 그 사람은 다음날 아침 첫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와서는 성형외과에 가서 여러 군데 꿰매고 정성스런 치료를 받은 후 다시 영국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전에도 이런 류의 얘기는 여러 번 들었다. 아기가 열이 나서 응급실에 갔는데, 의사는 와보지도 않아서 4시간을 기다리다가 열이 저절로 떨어져서 돌아왔다는 얘기, 어떤 이는 충수돌기염 증상이 보여 응급실에 갔는데, 의사가 한번 와서 보더니 아니라고 하면서 그 다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더라는 얘기.

영국의 응급실.....

영국은 응급실 이용도 모두 무료이다. 심각한 중상을 입었을 때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처럼 아이들이 열나거나, 배가 아플 때에도 모두 응급실을 찾아간다. 영국도 밤에는 딱히 찾아갈 의료시설이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응급실에 갔을 때부터이다. 영국의 응급실에서는 응급 상황(emergency)이냐, 준응급상황(긴급상황, urgency)이냐, 아니면 가벼운 질환이냐에 따라 차별이 엄청 심하다. 웬만한 가벼운 질환 같으면 간호사 선에서 끝내버리고 의사 얼굴을 보기란 불가능하다. 여기서 가벼운 질환이란 고열 난다든지, 약간 찢어졌다든지, 뇌 이상은 없어 보이고 단지 머리를 다쳐서 피가 난다든지, 넘어져서 다리가 부러진 것 같다든지 이런 것들이다.

간호사가 호출하면 의사가 와서 보기는 하지만, 저쪽 침대에 중환자들이 있다면 위의 질환으로 응급실을 찾은 사람은 날이 밝을 때까지 치료 받기를 기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영국 응급실의 우선 순위는 말 그대로 응급상황의 환자들이다. 거기에 의료진의 손이 필요한 시간에는 몇 시간을 기다렸든, 아프다고 호소하든 순위에서 밀리게 되어 있다. 어떻게 보면 몰인정한 것 같지만, 외국의 응급실은 대게 비슷하다. 우리처럼 먼저 왔다고 우선 봐줘야 하는 것은 사실 응급실 이용 원칙에 맞지 않는 것이다. 영국 사람들은 자기들은 기다릴 상황이라는 걸 알고 몇 시간이고 침대에 누워서 기다린다.

※ 나중에 영국에서 돌아왔을 때 장석규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허리 때문에 한국으로 왔다면서 병원을 소개해 달라고 했다. 나는 영국에서의 고마움을 보답하기 위해 병원을 소개해 드렸다. 하지만 한국에서 건강보험 급여를 받을 수 없어서 걱정이라고 했더니 자기 비용을 들여서라도 검사나 치료를 충분히 받고 가겠다고 고집하셔서 잘 진료 받을 수 있도록 모든 편의를 봐드렸다.

며칠 후 어떻게 진행됐는지 알아봤는데, 척추의 양성종양인 ‘상의세포(Ependymoma)’ 라는 것으로 판명되어서 수술 대기 중이라고 했다. 자신은 척추 통증의 원인을 찾아서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수술에 대한 후유증으로 걱정이 컸다. 나는 이런저런 설명을 해드리면서 안심을 시켰고, 얼마 전에는 수술을 잘 마쳐서 재활치료 중이라는 연락을 또 받게 되었다.

이것은 영국에서 오진을 한 것이 아니라 검사받는데 시간이 너무 걸리다 보니 종양을 키운 결과라고 보이는데, 영국처럼 발달된 의료제도에서 공적인 것을 중시하다보니 개인의 문제가 뒤처지는 한 단면이라고 보면 된다. 이것을 해결하려고 하는 게 현재 영국 정부의 몸부림이고.

현지 의사 이야기

영국을 떠나는 마지막 날, 돌아가는 비행기는 오후 늦게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급히 연락이 닿은 중요한 분을 만나기로 했다.

우이혁씨. 그는 한국에서 정신과 전문의로 일하다가 2000년 영국으로 건너와 종합병원에서 일을 하다가 consultant(경험이 많은 교수급 의사) 자격을 얻었다. 지금은 개인 정신과 의원을 열어서 환자들을 보고 있다. NHS 체계의 진료를 하기도 하지만 다른 consultant들처럼 민영보험회사와 연결된 개인 환자를 보기도 한다.

처음에는 왜 영국까지 왔느냐부터 영국의 의사들은 어떤 진로를 밟느냐 여러 얘기를 나누다가 술 한 잔 걸치면서는 자연스레 동네의원 의사들의 문제, 환자들의 불만, 그래도 영국의 의료제도가 한국보다 낫다는 얘기 등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같은 의사여서 그런지 필요한 얘기들이 많이 오갔다. 지면상 자세히 실을 수는 없으나, 몇 가지를 추려보면....

영국의 의료체계가 중시하는 것은 건강에 대한 국가의 책임이다. 오랜 경험 속에서 1948년 NHS가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지금까지 영국이 가져온 철학인데, 그것은 진보나 보수 구분이 없다. 다만 요즘 문제가 되는 것은 한정된 의료 재정을 어떤 식으로 운영할 것이냐 논란이 있을 뿐이다. 처음부터 공적 구조 속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동네의원 의사들은 대부분 개인 진료소를 차리지만 공무원이라는 생각을 한단다. 이 말은 의사들이 돈을 벌려는 것보다는 정부의 파트너로서 시민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한 축이라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영국의 의료 체계를 우리나라에서 보면 답답한 것도 많을 것이라고 했다. 항상 문제가 되는 대기 시간, 검사나 치료의 지연, 치료약을 풍부히 사용하지 않는 것, 응급실의 문제 등. 하지만 이런 것들은 영국 의료 체계의 국가의 책임성이나 의료의 형평성 등을 생각하면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한다.

헤어지는 시간에 우이혁 의사와 함께 찍은 사진. 가운데가 정신과 전문의 우이혁씨.

시간이 허락하면 더 많은 얘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우리는 비행기 시간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하며 헤어지게 되었다. 히드로 공항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영국의 의료제도와 한국의 장점을 결합한 멋진 퓨전 의료제도를 상상해 보는 것이다.

만일 우리나라가 주치의제도를 시행한다면 환자들과 의사가 얼굴을 마주 보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진료하는 모습을 갖게 될 것이다. 물론 지금의 관습에서 벗어나자면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필요한 검사는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금방 받을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이미 많은 동네의원에 엑스레이(X-ray), 내시경 장비, 초음파 등 어느 정도의 의료장비들이 구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국 사람들은 그런 검사 한번 받으려면 엄청난 기다림을 겪어야 하는데 말이다. 수술도 우리나라는 금방 시간을 잡을 수 있다. 영국에서는 고관절 치환술 받으려면 1년 넘게 기다려야 하는데, 우리야 얼마든지 빨리 잡힌다. 우리나라의 빨리빨리 정신이 나쁜 것만은 아닌 것이다.

정치권에서도 의료보장성을 선진국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며, 건강보험에 대한 정부 지원을 대폭 올려서 암치료뿐만 아니라 입원이나 웬만한 수술 치료에도 개인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국민들도 보험료를 어느 정도 인상하는 것에 동의를 하게 되었는데, 그래도 사람들이 크게 부담을 못 느낀다. 보험료 상한선을 없앴기 때문에 수익이 높은 사람들은 보험료를 많이 내게 되고, 저소득층은 거의 내지 않아도 되며, 중산층들도 높아진 의료보장성에 만족을 하기 때문에 기꺼이 부담을 하게 된 탓이다.

영국 방문기를 끝내며.....

사실 영국을 방문할 때는 기대가 컸다. 확실히 우리보다 선진 의료제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현지를 돌아보면서는 그다지 우러러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의료 수준이나 시설들이 많이 발전을 했고, 게다가 전국민건강보험은 우리나라의 의료제도 중 가장 핵심 역할을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속에서 아직도 후진적인 일차의료 현장이나 왜곡된 의료전달체계는 안타까울 뿐이다. 아마 다가올 2012년 국회의원 선거나 대통령 선거에서는 분명 이 문제가 크게 대두될 것이라고 보고, 미리 준비도 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글은 필자가 2011년 7월 2일부터 7월 9일까지 영국 런던에 머물면서 최근 보수당 캐머런 정부의 NHS 개혁에 관한 것과 일차의료 현장에 대한 견학을 하고 느꼈던 것들을 쉽게 이야기로 정리한 것입니다. 그에 대한 자세한 내용들은 나중에 자료집으로 나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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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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