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22고병수/새사연 이사

영국 방문 며칠 동안의 공식적인 방문과 회의가 끝났다. 남은 며칠은 개인 시간이 주어졌는데, 나는 몇 가지 일을 하기로 했다. 그것은 영국의 민간의료 상황에 대한 파악과 일차의료 현황, 즉 영국의 주치의제도에 대한 것이었다. 우리 일행들이 방문하거나 만난 사람들은 거의 공공의료를 강조하거나 그것을 강력하게 지키려는 사람들이었는데, 나는 현장에서 일하는 의사나 주민들의 생각과 오히려 그 반대의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의 얘기도 듣고 싶었다.

하지만 낯선 나라에 와서 병원 시설들을 보거나 관계자들을 만난다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욱이 미리 약속이 되어 있지 않으면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홍승권 교수와 나는 한번쯤 맨땅에 헤딩하기로 마음먹고 런던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찾아보기로 했다. 일단 오늘은 영리병원 격에 해당하는 개인병원들을 탐방하기로 하였다.

런던의 압구정동 ‘할리 스트리트’

서울의 압구정동, 청담동을 가보면 고급 술집, 백화점, 고급 식당들도 많지만 한 골목 건너 성형외과나 피부과 같은 곳들이 간판을 내걸고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경제적으로 특정 영업점들이 한 군데 모여 있다는 것은 돈을 낼 수 있는 수요층이 가까이 있다는 이점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전문 지역이라는 이미지를 보여주는 효과가 더 큰 이유일 것이다.

런던에도 그런 곳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우리는 솔깃해진 마음으로 찾아가 보았다. 일단 주변 시내를 죽 훑어보면서 가기로 했는데, 옥스퍼드 스트리트를 따라 이 골목, 저 골목을 구경하며 다녔다. 서울의 강남구처럼 런던에서 제일 번화한 곳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구경거리도 많았다.


화려한 옥스퍼드 스트리트의 모습(왼쪽 그림). 이 거리 왼편에 헤롯 백화점이 있다.
거리 왼쪽으로 꺽어지면 할리 스트리트가 나온다. 오른쪽 사진은 거리 중간에 있는 공원.

가다보면 영국의 다이애나 황태자비와 불륜 관계라고 알려진 이집트 출신의 도니 파예드의 아버지가 소유하고 있는 최고급 백화점 ‘헤롯’을 비롯한 백화점들이 즐비한 거리도 나오고, 옛것과 현재가 버무려져 있는 도시답게 유명 관광지도 보인다. 옥스퍼드 스트리트를 지나면서 왼쪽으로 들어가면 조금 한적한 곳에 ‘할리 스트리트(Harley street)’라는 곳이 나온다. 언뜻 보면 조용한 주택가 같은 곳인데, 가까이 가서 살펴보면 거의 병원들이다. 물론 집들은 거의 고풍스런 옛 고급 주택가들이고, 1층이나 2층은 병원 간판이 조그맣게 붙여져 있다.

 
할리스트리트 전경(왼쪽)과 그 중 한 건물 입구(오른쪽) 모습.
간판들은 거의가 성형외과 피부과, 치과, 피부 관리에 대한 것들이고, 한 건물에 여러 과목들이 몰려있는 경우가 많다.

홍승권 교수와 나는 천천히 건물 간판들을 들여다보며 걸어본다. 어디 한 군데라도 들여다보려고 문을 두드리면 인터폰 목소리만 들린다. 먼저 예약을 했는지 물어보고, 예약을 안 했으면 전화로 예약을 해야 들어올 수 있단다. 하나같이 꽁꽁 잠겨져 있고, 함부로 들어갈 수가 없다. 영국 사람들은 뭐 하나 친절한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다. 이런 종류의 서비스 업종이라면 고객들이 편하게 오갈 수 있게 하고, 구경도 할 수 있게 해야 홍보가 되는 법이거늘.....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어떤 종류의 병원들이 있나 살펴보는 것만으로 만족을 하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영리병원의 한 단면인 컨설턴트 의사

할리 스트리트에 있는 병원들의 의사들은 거의가 NHS 병원에 근무하는 경우가 많다. 즉 NHS 병원에도 근무하고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이런 곳에서 진료하며 병원 외 수입을 얻어가고 있었다. 공공의료의 메카인 영국에서 그런 일이 가능한지 알아봤는데, 오래 전부터 조금씩 허용이 되어 왔던 일이고, 지금은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NHS에서 월급을 받으면서 개인 진료로 또 수입을 올리는 모습이 어쩐지 얄미워 보인다. 우리로 치면 국립병원이나 보건소에 근무하면서 틈틈이 나와서 따로 개인 진료를 하는 것이다.

그렇게 공공병원에서 일하며 외부에서 개인 진료를 할 수 있는 것이 가능한 의사들은 대부분 관련 전문과에서 오랫동안 전문직을 수행했던 사람들로 ‘컨설턴트(Consultant)’라는 명칭을 붙인다. 우리 같으면 전공의(레지던트)가 있고, 그 위에 임상 교수가 있는데, 아마 어느 정도 경륜이 된 교수쯤 되어야 그런 컨설턴트라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 같다. 이 정도면 의사가 되어 20년 쯤 지나서이다.

컨설턴트는 특정 전문과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일반의로 알려진 GP 세계에서도 있는데, 그들을 특별히 ‘GP consultant’라고 부르기도 한다. 컨설턴트.... 우리가 흔히 쓰는 단어 뜻으로는 상담이라는 말이지만, 그들은 경험 많은 의사를 지칭하는 것으로도 쓰고 있었다.

같이 걷던 홍승권 교수가 며칠 전에 겪었던 재미있는 경험담을 얘기해 주는데..... 한번은 병원에 가서 중년의 의사를 만날 일이 있었는데, ‘닥터(Dr.)’라는 호칭을 썼더니 언짢아 하더란다. 나중에 그 분이 살짝 귀띔해주는데, 자신을 닥터가 아니라 ‘미스터(Mr.)’라고 부르란다. 닥터는 그냥 의사지만 미스터는 격 높은 의사를 부를 때 표현하는 것이라나. 어쨌든 컨설턴트에 해당하는 의사들도 그렇게 불리길 좋아한다니까 혹시 여러분들이 그런 분들을 만나면 실수하지 않도록.

GP 컨설턴트 역시 NHS와 계약 관계에서 동네의원을 운영하지만, 일주일 중 특정일에는 개인 환자를 보게 된다. 그 때는 NHS의 영향을 안 받아서 따로 환자를 접수하고 진료비도 다소 비싸게 개인에게 받을 수 있다. 이것은 대기 시간과 해야 할 검사들이 지연되기 때문에 정부에서 어느 정도 인정한 형태이다. 우리 같으면 건강보험에서 인정 안 해주는 검사나 치료 행위들을 개인 비용으로 해도 좋다는 것과 같게 보면 된다. 병의원을 이용해본 분들이면 가끔 의사에게서 어떤 것은 건강보험으로 안 되니까 본인이 일부 비용부담을 해야 합니다 라고 얘기를 듣는 것이 있을 텐데, 비슷하게 보면 될 것이다.

민간 병원이 점점 많아지는 영국에서 이러한 개인 진료 시설(의원급)이 늘고 있다는 것은 요즘 추세로 보면 놀랄 일도 아닌 것 같다. 아직도 영국의 의사들은 의료를 공공의 것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일부에서 개인의 영리를 위해 이용하려는 움직임 또한 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개인 의원들은 우리가 찾아간 할리 스트리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런던 곳곳에 한두 군데씩 차려져 있고, 런던 교외에도 있었다.

의사들의 욕구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요구도 있었기에 이러한 개인의원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만난 어떤 영국 주민은 거의 모든 피부질환이든, 성형문제든 NHS에서 해결을 해주는데, 그 차례를 기다리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라면서, 차라리 자기 돈 내고 이런 개인 진료를 받으며 해결하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한다. 성형이나 피부 관련 진료소가 아닌 GP 컨설턴트도 일차의료를 담당하는 동네의원이지만 빨리 봐주고, 필요한 검사들을 해주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선호하는 형태라고 한다.

고민이 깊어진다. 우리의 건강에 관한 모든 문제는 국가가 책임진다는 대원칙이 옳은 걸까, 일부일지라도 개인의 호주머니에서 해결하도록 하는 것이 효율적인 걸까?

영국을 방문한 방문단 내에서도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다. 100퍼센트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측과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게 현실이므로 보장성을 높이면서도 일부에서는 개인이 해결하도록 해도 된다는 의견.

영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의 의료 보장성은 90%이다. 이는 감기든, 사고이든, 암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질환들을 90퍼센트 이상 국가가 비용을 댄다는 뜻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13위의 통상국가라고 하면서 아직도 건강보장성이 60%를 맴돌고 있다. 그나마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이 수치마저 간신히 턱걸이 하고 있는 실정이다.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나 아직도 암에 걸리면 수 천 만원씩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고, 비용 때문에 치료 중단을 고민하기도 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영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의 민영화 바람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내린 결론은 성급하지만 이렇다. 공공의료를 실현한 그들의 고민은 한계에 부딪힌 공공의료의 효율성을 위해서 약간만 개인의료에 대해 빗장을 여는 것이고, 우리나라의 경우는 이렇다 할 공공의료 수준을 못 이루어내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가 영리병원을 허용하느니 마느니 논쟁할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90% 수준까지) 의료 보장을 이루어 내면서 영리병원 얘기를 내놔야 국민들에게 먹혀들 것 아닌가.

현재 우리의 60퍼센트 수준의 의료 보장성에서 영리병원을 허용하게 되면 의사들이나 병원들은 앞 다투어 그 쪽으로 가려고 할 게 뻔하다. 물론 그 쪽으로 간다고 다 왕창 돈을 벌지는 않을 것이지만, 하여튼 많은 의사들의 눈과 귀를 현혹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주변에 있는 병원들은 보통의 질환들을 가진 환자들(돈 안 되는 환자들)을 안 보려고 할 것이고, 우리는 아픈 몸을 이끌고 자기를 진료할 병원을 찾아다녀야 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영국의 민간병원들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병원에서 비용 부담이 되는 수술들을 기피하고 있었다.

다행히 우리나라의 의사협회에서도 지난 봄에 공식으로 영리병원 반대의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건강보험공단의 정형근 이사장도 최근 영리병원은 우리의 건강보험을 뒤흔드는 게기가 될 것이라며 반대의 소리를 냈다. 이러할진대 도대체 누가 제주도에 영리병원을 들여놓겠다는 얘기를 하는 것일까?

영국의 의사 자격 과정

Medical degree : 의과대학 5~6년 과정

Foundation House Officer : 일반의, 전문의 공통의 2년 과정 (우리나라의 인턴 과정)

이 과정을 마쳐야 의사자격증이 나오며, 영국의사협회 (BMA, British Medical Association)의 회원이 된다

일반의(GP) / 전문의(Specialist) 수련 과정으로 일반의 3, 전문의 3~6년 과정

Consultant : 병원 근무 경력이 높은 의사에게 주어지는 자격. 교수급으로 보면 됨


이 글은 필자가 2011년 7월 2일부터 7월 9일까지 영국 런던에 머물면서 최근 보수당 캐머런 정부의 NHS 개혁에 관한 것과 일차의료 현장에 대한 견학을 하고 느꼈던 것들을 쉽게 이야기로 정리한 것입니다. 그에 대한 자세한 내용들은 나중에 자료집으로 나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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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