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20고병수/새사연 이사

영국의 NHS 조직에 대해서 방문과 간담회를 진행하면서 어느 정도 이해가 될 즈음 우리는 보건의료를 이끄는 한 축으로 알려진 조직을 찾아가기로 했다. 선진국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로 한 국가의 정책들은 정부와 국회가 만들어나가지만, 국민의 뜻을 직접 제안하면서 동시에 정치권의 일방주의를 견제할 단위는 바로 노조이다. 영국도 오랫동안 노조가 발달된 국가인데, 요즘은 그 가입률이 다소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도 그 영향력은 건재하며, 노조들은 주로 노동당과 연계를 맺으며 활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런던에 머무는 시점에 NHS 60주년 행사가 있었는데, 우연찮게 집회에 참석해서 큰 박수를 받기도 했는데..... 잠깐 우리의 활약을 소개하려고 한다. 기대하시라.

영국의 최대 공공노조 UNISON

그 중에서 우리가 방문한 노조는 130만 명 정도가 가입되어 있는 영국 최대의 공공노조인UNISON이라는 곳이다. UNISON은 의료서비스노조인 COHSE(the Confederation of Health Service Employee), 공공종사자노조라고 해석될 수 있는 NUPE(the National Union of Public Employees), 정부종사자노조인 NALGO(the National and Local Government Officer's Association) 3개 공공부문노조가 1993년 7월 통합하여 만들어진 조직이다.

건물 왼쪽으로 붉은 벽돌로 쌓아진 옛 산부인과 UNISON 건물 모습(왼쪽)과 내부 입구 모습(오른쪽)건물이 보인다.


UNISON 건물은 옛 산부인과 병원 건물 옆에 붙여서 지어진 크고 예쁜 신축건물이었다. 안내를 받으며 회의장에 들어갔더니, 설명을 맡은 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잔소리 비슷한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우리 측 통역을 맡은 선생님과 몇 분 동안 얘기를 나누더니 끄덕이고 나서는 진행을 시작했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자기네는 2시 정각에 시작하는 줄 알아서 준비했는데, 안 와서 안절부절 못 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2시 30분으로 알고 있었고, 연락도 분명히 그렇게 했는데, 어디에선가 어긋난 것이다.

보검의료를 담당하는 대표는 인사말을 하고 다른 회의가 있어서 황급히 나갔다. 우리와의 시간 때문에 다른 회의 시간에 늦었다는 것이다. 미안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지만 서로 어수선한 분위기를 정리하면서 간담회를 시작했다.

인사말을 준비하는 보건의료 조직 대표(사진 오른쪽)와 우리에게 UNISON에 대해서 안내하고 설명을 담당하게 될 분(사진 왼쪽)들의 모습. 둘 다 간호사 출신인데, 거대 노조의 보건의료 책임자가 젊은 여성이면서 간호사 출신이라는데 놀랐다. 왜냐하면 보건의료 노조에는 의사, 간호사 등 여러 종사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UNISON은 영국의 공공에 관한 종사자들의 조직이기 때문에 많은 일들을 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주로 연금개혁에 관한 문제와 NHS 개혁에 관한 것들로 부지런히 싸우고 있었다. 연금개혁은 캐머런 정부가 연금 수혜자의 나이를 높이면서 연금을 적게 주겠다는 내용이고, NHS 개혁은 전에 말한 대로 사적 영역을 넓히려는 내용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연금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지만 이제 수혜자들이 많아지게 되면 영국이나 다른 나라들처럼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UNISON에서 바라보는 NHS

UNISON은 언급한 것처럼 공공서비스에 대한 여러 조직들이 합쳐져서 이루어진 노조 연합체이다. 영국에서 NHS가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기 때문에 주로는 영국 노동당과의 연계 속에서 정책을 만들기도 하고, 근래는 노동당이 좀 변질을 했다고 하며 비판적 관점에서 조율을 하기도 한다. 요즘처럼 NHS에 대해 정부가 뒤떨어진 개혁안을 내놓았을 경우에는 정치 세력과 여러 단체들이 연합해서 시위 및 토론회를 열면서 현재의 NHS 체계를 적극 방어하기 위해 애를 쓰게 된다.

2011년 봄에 국민연금 축소 정책에 항의하는 UNISON의 집회 현장.


그래서 UNISON은 요즘 연금 문제와 NHS 개혁 문제에 몰두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NHS에 대해 그들이 보여주는 사례를 소개하면서 생각을 엿볼까 한다.

“데니 길레스파이(Danny Gillespie)라는 어르신 얘기를 들려줄까 합니다. 데니는 NHS에 대해서 무한한 신뢰를 가진 분입니다. 그분뿐만 아니라 영국 국민들 대다수가 그렇죠.


그는 NHS가 지난 10년 동안 두 번이나 자신의 목숨을 구해줬다고 합니다. 10년 전 심근경색으로 응급실을 거쳐 수술을 받게 됐는데, 막힌 심장혈관(관상동맥)을 가슴절개 수술과 동맥 교체술을 통해 살려냈죠. 그 후로 축구도 할 수 있었고, 즐겁게 삶을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5년 전에는 폐암이 발견되어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받아서 지금은 암 세포 성장이 억제되어 다시 정상을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퇴원할 때까지 비용이 일체 들지 않았고, 이후로도 추적 검사 및 몇 가지 치료를 받을 때도 비용을 들이지 않고 치료 받을 수 있었습니다. 데니는 이 모든 것이 NHS가 아니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거라고 강조합니다.”

질병의 경중에 관계없이 포괄적인 혜택을 줄 수 있고,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모두 똑같이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NHS를 민간 보험회사에 넘긴다는 것은, 그리고 민간 병원에 넘긴다는 것은 이러한 영국 국민들의 바람을 빼앗는 거와 같다고 UNISON 관계자들은 언급했다. 6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NHS는 보수당 장기 집권 당시인 대처(Margaret Thatcher) 정부 시절에도 손을 대지 못했을 정도로 신뢰받는 정책이었다고 한다.

그러한 전통의 NHS를 지금의 캐머런 정부는 비용이나 효율의 문제를 제기하며 NHS 행정조직을 축소하고, 민간 병원에 환자를 맡기는 일을 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NHS는 영국의 최대 행정조직이라고 봐도 무방할 만큼 관계되는 인력이 방대하다. 거기에는 의사나 간호사, 재활치료사, 구급요원, 사회복지사, 상담사 등의 의료 인력들이 있지만, 행정을 담당하는 인력들도 상당수 있는데, 현 영국 정부는 이러한 행정 인력들을 대폭 줄임으로써 비용 절감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행정 요원들조차도 국민들의 건강과 안정을 위해서 필요한 조직에서 일하고 있고, 그들이 없으면 의료 서비스 제공에 심대한 혼란과 어려움이 올 것이라고 UNISON 관계자는 전한다. 우리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보건소에 의사나 간호사가 있지만 접수나 상담, 보건 교육을 하거나 행정 업무를 하는 직원들이 대폭 축소된다면 과연 의료 서비스라는 게 원활하게 이루어질까 생각해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건강은 질병의 치료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방이나 교육, 상담, 지역사회에서의 문제 해결 등이 어우러져서 완성되는 것인데, 캐머런 정부는 너무 효율이라는 것만 바라보고 너무 안일한 정책을 펴려고 하는 것 같았다.

지금 한국의 우리 정부도 효율, 비용의 문제에 너무 치중하다보니 복지 축소, 건강 보장성 축소 등의 문제를 가져오는 건 아닌지 비슷한 상황처럼 여겨져서 답답해지기도 하는 대목이다. 전 세계 보수 정당은 모두 그러한가? 그래서 얻어지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궁금하다.

우리 부모들은 우리를 키울 때 효율을 바라보고 먹여주고 입혀주지 않았다. 그저 건강하게 자라고,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만 바라고 무한정 베풀었던 것이다. 국가의 정책도 그럴 것이다. 건강과 복지에 관한 것은 국민들에게 필수적인 것이고, 그러한 것들은 효율로 판단할 일이 아니다. 어차피 그러한 정책들로는 투자 대비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들이 아니라, 오히려 건강 수준과 편안함을 얻을 수 있으면 목표 달성인 것이다. 물론 그러한 결과 인적이나 물적으로 경제 활성화에 도움은 되겠지만, 굳이 효율을 앞세우지는 않아야 한다.

UNISON 관계자와의 간담회가 끝나고 건물 여기저기를 안내받으면서.


NHS 60주년 기념 집회

오후에는 NHS 60주년 기념 집회가 있다고 해서 런던의 Savory street로 갔다. 외국에서 이러한 기념식에 참석할 수 있다는 게 어디 흔한 일인가?

이번 영국 방문을 주선한 ‘건강증진연구소’에서 미리 현수막을 만들어 왔는데, 집회 참석자들은 현수막이 예쁘다며 행진에 앞장서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머뭇머뭇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여기저기서 참석자들을 단속하는 검정색 복장에 몽둥이를 찬 영국 경찰들을 보니 겁도 좀 난다. 현수막은 그저 보여 주려고 했을 뿐인데....

외국에서 행진하다가 돌발 상황이 생겨서 잡혀가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약간의 불안감을 지닌 채 행렬에 끼어들었는데, 낯선 나라에 와서 행진에 참여하게 된 불안함은 걷는 동안 금새 사라졌고, 우리는 여기저기서 사진 찍히는 영광과 중간중간 인터뷰까지 하게 됐다. 영국은 어디에서 집회를 하더라도 적당히 질서 유지를 하는 선에서 보장을 하는 편이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막거나 폭력적인 진압 개념은 없다고 한다.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의사, 간호사로 분장한 현지 참석자들(왼쪽).

필자가 집회 장소에서 피켓을 들어보려고 하자 주변에서 몇 마디 말을 하라고 해서 구호를 외쳐봤는데(오른쪽), 영어가 아닌 한국말이어서 그들이 알아들었을까 모르겠다. 신문에 날까봐 걱정도 했지만, 다음날 신문 여기저기를 뒤져도 다행히 나온 사진은 없었다. 우리나라처럼 이러한 일들은 신문에서 조그만 기사로 나갈 뿐이어서 괜한 걱정을 했던 것 같다.


“NHS is not only for you! The world is watching (NHS는 당신들 것만은 아니다.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이라는 현수막으로 집회에 참석한 우리 일행. 현지에서 많은 호응을 받았다.

우리가 흔히 보았던 ‘빅밴’이라는 시계탑이 있는 국회의사당 옆에서 정리 집회를 하였고, 나이 많은 사람들이 눈에 띄는 것은 NHS의 역사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전직 간호사라는 분은 가족과 함께 나왔다고 하고(왼쪽), 할머니는 손수 만든 예쁜 피켓을 들고 나왔다(오른쪽).

우리의 행진은 1시간가량 이어졌고, 정리 집회를 하려고 멈춘 곳은 놀랍게도 국회의사당이었다. 외국 땅에서 거리 행진을 한 것도 감격스러운데, 국회의사당 코앞에서 집회를 한다는 것 자체도 우리 실정으로는 상상이 가지 않는 일이다. 권위적인 청와대와 우리의 국회 의사당 앞에서 시위를 한다? 유치장에 갇힐 각오를 해야 할 걸?

저녁 어스름. 숙소 근처 맥주집 펍(Pub)에 모인 우리들은 오늘의 무용담을 맥주 한 잔과 함께 저녁 늦도록 재잘거리며 즐거워했다. 일행 중에는 학생 때 그 흔한 데모 한 번 안 해본 사람도 있었는데, 너무 신나서 얘기를 하는 모습에 한국에 가서 자랑할 거리 하나 만들었다며 우리 모두 손뼉을 쳤다.

“오늘 정말 근 20년 만에 거리에 서 보았는데, 얼마나 짜릿하던지.....”
“옛날에는 많이 거리로 나댔나봐요?”
“저는 오늘 이런 거 처음 해봤는데, 경찰들을 보면 대열 속으로 슬쩍 숨었어요. 무섭기도 하고.....”
“걷다보니 도착한 곳이 국회의사당이어서 얼마나 놀랬던지.....”
“빅밴을 완전하게 사진에 담으려면 거리 중간에서 찍어야 한 대요. 그게 어디 쉽나요? 차가 씽씽 달리는데..... 덕분에 나는 빅밴 모습을 사진기에 담을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답니다.”

이 글은 필자가 2011년 7월 2일부터 7월 9일까지 영국 런던에 머물면서 최근 보수당 캐머런 정부의 NHS 개혁에 관한 것과 일차의료 현장에 대한 견학을 하고 느꼈던 것들을 쉽게 이야기로 정리한 것입니다. 그에 대한 자세한 내용들은 나중에 자료집으로 나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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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