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03고병수/새사연 이사

호텔에서 아침 식사는 7시부터 시작된다. 말이 호텔이지, 우리나라로 치면 여인숙 수준이다. 화장실은 좁고, 세면대는 내 얼굴 크기보다 작아서 세수를 하려면 물이 죄 바닥에 튀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고양이 세수를 해야 한다. 그렇다고 내 얼굴이 세면대보다 더 크다는 얘기는 아니다. 어쩌겠는가. 저렴한 비용으로 견학을 온 주제에 감지덕지 하고 있어야 했다.

아침마다 창밖으로는 여행용 가방을 끌고 가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되는데, 출근하는 행렬은 아니고, 여행객들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여럿이 짝지어 지나가는 모습들이다. 나중에 알아보니 이 지역은 런던 시내가 가까워서 여행객들이 많이 묵고 가는 곳이라 주변에 호텔들이 많다고 했다. 우리가 묵은 호텔에도 아침이면 멀리서 온 영국인뿐만 아니라 독일 사람들, 인도 사람들, 중국이나 몽골 사람들까지 다양하게 체크아웃 하며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서양에 가면 가장 곤혹스러운 것이 식사일 것이다. 아침은 호텔에서 먹지만 우유나 커피, 구운 식빵, 콩과 구운 베이컨 몇 조각이 들어있는 식사를 한다. 다른 건 몰라도 베이컨이란 게 삼겹살 두 조각을 바싹 구워낸 것이라서 웬만큼 배고프지 않고서는 먹기가 고역이었다. 그리고 어찌나 짜던지.....

한 가지 오해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은 내가 음식 투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먹은 음식을 상세히 소개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성 좋은 나는 아침마다 접시를 싹싹 비우며 다 먹었으니까. 며칠이 지나면서 정히 입맛이 안 생기는지 같은 방을 쓰는 홍승권 교수는 가지고 온 컵라면을 먹고야 만다. 말로는 다 먹어 버려야 짐이 가벼워진다고 했지만 기실 식사가 입맛에 안 맞았던 터이다.

OOO 의과대학 홍승권 교수의 ‘배반의 아침밥’

다행인 것은 점심과 저녁 일부는 현지 연구원으로 공부하고 있는 김용수 선생님 부부가 우리 일행들 것을 만들어 와서 너무 좋았다. 대신 수고에 대해 일정 정도 비용을 드렸지만, 멀리 영국 땅에서 매일 김밥이나 김치들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 부부는 각자 공부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현지 사정에 대해서도 많은 도움을 줬지만, 이처럼 식사에 지대한 고마움을 주신 분들이다.
※ 김용수 선생님은 노팅험 대학에서 박사과정으로 있는데, ‘오마이뉴스’에 영국 소식을 자주 게재하고 있었다.

김용수 선생 부부가 날라 온 도시락을 받고 도시락은 늘 깔끔하게 만들어져 있다

공원 계단에 앉아 먹는 모습.

영국의 민간의료보험회사

오늘은 영국의 민간의료보험회사를 방문하게 되었다. 많은 나라들이 100% 공공의료, 즉 무상의료를 시행하는 것이 아닌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선진 서구 국가들은 대게 10% 내외의 민간의료보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왜 만들어졌고, 공공의료가 발달한 선진국에서는 어떻게 사업을 전개하는지 알기 위해 방문 일정에 들어 있었다.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공공의료를 지키자는 사람들만 만나는 것, 즉 영국으로 말하면 NHS를 지키자는 사람들만 만나면 무엇이 문제인지 모를 수가 있고, 그 반대의 얘기들을 들어보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영국도 전 국민의 약 10% 정도는 민간의료보험에 가입되어 있는데, 회사에서 단체로 가입하거나 자영업자들의 경우 개인이 가입하기도 한다. 영국에 있는 민간의료보험 회사들로 규모가 큰 것만 찾아봐도 BUPA, AXA, PPP, WPA와 같은 것들이 있다. 대게 국가 의료보장이 안 되는 치과 영역 같은 것을 위해서 가입을 하지만, 요새는 NHS에서 의료의 질이 다소 떨어지는 분야나 입원이나 수술의 긴 대기 시간(waiting time) 때문에 가입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우리가 찾아 간 곳은 그 중에서 BUPA(British United Provident Association)란 곳이다. 공공의료의 메카인 영국에서는 영업이 안 되는 줄 알았는데, 건물도 화려하고 꽤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1947년에 처음 설립되었으니, NHS가 1948년에 시작된 것을 생각하면 1년 더 빠른 셈이다.

민간의료보험회사인 BUPA 건물(왼쪽). 자신들의 회사에 대해서 설명하는 국제시장 담당자

(오른쪽 사진 가운데 남자)

민간의료보험회사 BUPA의 모습

자신들은 세계 190여 개 국에 1,120만 고객들이 있으며, 5만 2천여 명의 직원들을 두고 있다고 했다. 좋은 말로는 글로벌 보험회사이고, 좀 나쁜 의미로 쓰면 다국적 회사인 셈이다. 그리고 자신들은 주식회사가 아니어서 주주들에게 이익을 나눠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보험 가입자들에게 최대한 이익이 되도록 노력할 수 있다는 것을 특히 강조했다. 하지만 조금 돌려서 생각해 보면 회사를 키우기 위해서는 조만간 주식회사로 상장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익의 많은 부분이 주주들에게 갈 수도 있지 않을까?

여러 민간의료보험회사들처럼 자신들도 개원해 있는 전문의들과 민간병원들과 연계하면서 가입자들에게 최선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영국에는 ‘Consultant’라고 해서 개원해 있는 전문의들이 있다. 그들은 NHS의 영향을 안 받는 분야의 의료서비스(주로 피부과, 안과) 등를 제공하면서 이익을 얻고 있었는데, 그들과 제휴를 하고, 민간병원들과 제휴를 해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설명 중에 눈에 띄는 내용은 NHS가 1948년에 만들어질 때 노인의료(장기요양, long term care)에 대해서 대책을 잘 세우지 않았는데, 자신들은 그 분야에서 특히 뛰어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서 사람들이 만족해 한다고 설명한다. 시설에 입소한 노인들은 대게 70%는 자기부담이고, 30% 정도만 국가, 즉 NHS에서 부담해 준다고 한다. 서구 많은 나라들이 노인의료만큼은 잘 발달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영국은 그 분야에서 상당히 뒤쳐져 있는 것 같다.

더욱이 대기 시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민간병원에서도 NHS와 협력해서 입원 치료나 수술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중요한 자신들의 역할이란다. 이건 무슨 말일까? 민간보험회사가 공공의료와 연결된다고?

영국은 대처정부 시절부터, 사실은 토니 블레어 정부 이후 상당히 많은 부분을 NHS에서 민간병원 영역으로 환자들을 보내고 있었다. 덕분에 대기시간은 줄어들었지만, 우리가 방문한 BUPA만 해도 그러한 협력관계 덕택에 한 해에 NHS로부터 3억 파운드(5천 2백억 원) 정도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그들은 지금 세계적으로는 각 나라의 정부들과 협상을 하기도 하면서 자신들의 서비스를 전파하고 있고, 국내에서는 공공영역과 협력관계를 잘 구축하면서 영국 국민들의 건강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자랑스러워 했다. 우리나라에 대해서도 상당한 이해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웃으면서 얘기할 때는 좀 무시무시하기도 했다. 우리나라까지 진출한다고?

설명을 듣는 내내 일행들은 어떻게 설명을 듣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다소 혼란스러웠다. 지금 담당자의 얘기를 들어보면 국가적으로나 개인에게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분야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존재하고 있고, 많은 만족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 아닌가? 공공의료의 나라에서 주무기인 NHS를 엿보기 위해서 멀리 동쪽에서 온 나는 그들의 말을 단순히 자화자찬으로만 여길 수는 없었다. 영국의 공공의료가 분명 문제가 있고, 그 틈새를 민간의료 영역이 파고 들어서 잘 정착하고 있다는 느낌.

NHS의 보호 속에서 열심히 크고 있는 민간의료 영역(보험회사, 민간병원 등)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우리나라에서는 지금 민간의료보험이 있지만 공공의료와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 많은 진보진영에서는 공공성을 높여서 민간의료보험 영역을 축소 내지는 없애자고 하는데 가능할 것인가? 많은 고민을 하다 보니 알아야 할 것들이 더 많아져 버렸다. 이번 여행이 단순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을 하면서 숙소에서 밤늦게 자료들을 들춰보았다.

이 글은 필자가 2011년 7월 2일부터 7월 9일까지 영국 런던에 머물면서 최근 보수당 캐머런 정부의 NHS 개혁에 관한 것과 일차의료 현장에 대한 견학을 하고 느꼈던 것들을 쉽게 이야기로 정리한 것입니다. 그에 대한 자세한 내용들은 나중에 자료집으로 나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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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