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7.15고병수/새사연 이사

비행기 시간이 점점 다가오면서 마음이 급해졌다. 오늘 서울로 가서 하룻밤을 묵고 내일 인천공항에서 새벽같이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아직 짐 정리도 못했다. 다름 아니라 어제 해군기지 문제로 싸우고 있는 강정마을에 진료를 갔다가 하루를 자고, 오늘 부랴부랴 집으로 왔기 때문이다. 강정마을 주민 진료는 뺄 수 없는 일정이었고, 서울행 비행기 시간은 오늘이어서 둘 다 옮길 수 있는 사정이 안 되었다.

강정마을을 떠나 뿌옇게 안개 낀 한라산 중턱을 넘어서 집으로 차를 몰았다. 집에 와보니 나 대신 옷가지며, 세면 도구 등을 싸고 있는 부인의 입이 뾰루퉁하게 튀어나왔다. 떠나는 마당이라 잔소리는 못 하고, 눈만 흘기며.....

인천공항 --> 나리타공항 --> 프랑크푸르트 공항 --> 런던 히드로 공항

이건 나의 여행 경로 표시가 아니라 돈을 절약한다고 경유하는 일정을 골랐더니 이렇게 갈아타게 되었다. 제주에서 김포공항까지 표시하면 영국 한번 가는데 도대체 비행기를 몇 번을 타야했던 건지.

13년만의 런던

7월 2일 아침 일찍, 인천공항에서 같이 갈 일행들과 만나서 드디어 비행기를 탔다. 한참을 자다가 깨다가, 갈아탔다가 하면서 도착하니 저녁 시간이었다.

1998년 가을이던가? 병원에 근무할 때 아일랜드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갔다가 돌아오면서 영국을 돌아본 적이 있었으니 13년만에 다시 와보는 영국이다. 그 때는 1997년 IMF를 맞은 직후라서 원화가치 하락으로 엄청 비싸게 경비를 들여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방을 구하는 게 여의치 않아서 역에서 떨며 자야했던 기억도 나고, 처음 겪는 문화적 차이에 놀라기도 했던 기억도 나고.... 차창 밖의 런던 풍경을 보면서 이런저런 기억을 떠올리니 살짝 미소 지어지기도 했다.

오래됐지만 예쁘게 붙어있는 집들, 좁은 벽돌길들도 여전하다. 달라진 게 있다면 예전에 비해 외국에서 이민 온 유색인종들이 더 많아졌다는 것이 눈에 띄는 정도.

우리 일행은 숙소가 있는 변두리 Earl's court라는 곳으로 전철을 갈아타면서 이동을 했다. 숙소가 있다는 전철역에 내려서 천천히 걸으면서 보니 멀리 높다란 호텔이 보인다. 오호라, 오는 길은 험했지만 숙소만큼은 제대로 골랐구나 흡족해하면서 가는데, 인솔자가 그 건너편에 있는 호텔이란다. 고개를 돌려 보니 자그마한 호텔인데, 우리나라로 치면 여관 수준.....

적당히 짐을 풀면서 창밖을 보니 저녁 9시가 넘었는데도 날이 훤하다. 동네에 있는 PUB에 들려 맥주 한 잔 마시고 돌아와서는 잠에 빠진다.

NHS 입문

둘째날이 되었다. 아침 식사를 구운 식빵과 커피, 바비큐로 때우고 일행들과 런던 시내에 있는 LSE 대학으로 향했다. 오늘은 간단히 최근 영국의 NHS 개혁에 대한 동향을 전해 듣는 시간을 갖기로 해서 현지에서 연구원으로 공부하고 있는 윤태호, 기명 두 분 강사를 모시게 되었다. 윤태호 선생님은 부산대 의대 교수로 있다가 LSE 대학의 연구자로 있으면서 영국의 NHS 역사에 대한 논문을 준비하고 있고, 기명 선생님은 영국의 건강불평등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고 했다.

LSE 대학 입구 ※ LSE : London School of Economics and Political Science

우리는 두 분 강사를 통해서 지난 대처 정부 시절의 신자유주의 정책의 일환으로 경쟁을 주창하며 NHS 기간이 흔들렸던 것과 토니 블레어 총리 당시 NHS 재정 증대와 복지 정책의 확산, 그리고 현재 보수당의 캐머론 총리가 다시 집권하면서 NHS를 상당 부분 민영화하려는 개혁 의도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다. 캐머론 총리는 작년 말에 자신의 NHS 개혁 구상을 발표하였으나 노동당과 여러 의료관련 단체뿐만 아니라 영국의사협회(BMA)의 반대에 부딪혀서 다소 물러선 듯한 NHS 개혁안을 다시 내밀고 있지만, 이마저도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했다.

영국에서는 1900년대 초부터 가난한 사람들이나 육체노동자들을 위해 제한적인 건강보험 형태가 있었다. 하지만 초기에는 노동자들이 아파서 결근하는 것을 막기 위한 의미로서 일부 도시를 중심으로만 시행되었고, 그것도 여자와 어린아이는 제외였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건강보험 형태는 확대해 갔으나, 비버리지 보고서로 더 잘 알려진 ‘Social Insurance and Allied Services’란 자료집이 1942년에 나오면서 국민 건강에 대한 국가의 전적인 책임을 논의하게 되었다.

William Henry Beveridge(1879~1963) and The Beveridge Report, 1942

이 보고서에 유명한 ‘요람에서 무덤까지(from cradle to the grave)’라는 표현이 나온다.

나는 강의를 들으면서 책으로 읽었던 당시 상황 등을 떠올려 보았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8년부터 영국에서는 국민들의 건강을 전적으로 책임을 지는 NHS가 본격적으로 시행되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처칠의 보수당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한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전격으로 시행이 됐다는 것이다. 그 힘은 다름 아닌 획기적인 보건의료 체계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와 절대적인 지지 때문이었다. 비버리지 보고서는 영국의 복지와 보건 정책에 대한 300쪽 안팎의 보고서인데, 그 자료집을 구하려고 영국 국민들이 난리를 쳤다는 뒷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처칠의 보수당 정부로서도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다. 불쌍하게도 법안을 통과시키게 된 보수당은 선거에서 졌고, 처칠은 연임을 할 수가 없었다.

오늘은 첫날이어서 가볍게 영국 의료제도에 대한 입문을 마치고 남은 시간은 시내 구경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나와 몇 명은 유학 온 연구자들과 템즈강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 이야기를 나눴다. 비싼 돈을 내면서 영국에 왔는데, 관광을 하는 게 아까운 마음도 들고, 영국의 의료제도 자체보다도 영국의 일차의료의 실제 모습에 대한 내용들을 더 알고 싶어서 이야기 자리를 만들었던 것이다. 병원을 이용하는 이야기며, 영국인들이 느끼는 불편감, NHS 개혁을 통해 겪게 되는 문제점들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맥주 한 잔에 이야기 하나..... 템즈강가의 모임은 그렇게 저물어 갔다.

템즈강가의 토론..... 바로 옆에는 고서적 판매 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왼쪽에서부터 가정의학과 이석훈 전공의, 홍승권 교수, 이원영 교수, 필자
안 보이지만 사진을 찍는 분은 김용수 노팅험 대학의 연구원

NHS에 대한 짧은 안내 ...


한 국가의 보건의료를 책임지는 형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NHS라 불리는 국가보건의료체계(NHS, National Health System)와 사회보험체계(NHI, National Health Insurance) 두 종류이다. 참고로 미국처럼 자유주의적 시장원리 속에서 NHS와 민간보험 중심의 의료(HMO, Health Maintenance Organization)를 보이는 미국의 경우는 변형된 형태로서 특별한 경우이다.


NHS 방식은 국가가 세금을 거둬서 전반적인 보건의료 문제를 해결하는 형태로서 영국에서 처음 시작되었으며, 이후 여러 나라로 파급되었다. 여기에는 노르딕 국가들(Nordic 5 countries :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아이슬란드, 덴마크)과 이탈리아, 스페인, 포루투갈, 뉴질랜드가 있다.


이에 비해 NHI 방식은 국가가 기업과 국민들로부터 건강보험료를 거둬서 필요한 경우에 보건의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용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독일을 시초로 프랑스, 베네룩스 3국(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일본, 대만, 한국의 경우에 해당한다.

이 글은 필자가 2011년 7월 3일부터 7월 9일까지 영국 런던에 머물면서 최근 보수당 캐머런 정부의 NHS 개혁에 관한 것과 일차의료 현장에 대한 견학을 하고 느꼈던 것들을 쉽게 이야기로 정리한 것입니다. 그에 대한 자세한 내용들은 나중에 자료집으로 나올 예정입니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