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6.16손석춘/새사연 이사장

방귀가 잦으면? 어떻게 될까? 속담 맞추기 놀이판을 펼치자는 뜻이 아니다. 나름 품격을 갖추려는 성의다. 글 들머리부터 구린내를 폴폴 풍기고 싶지 않아서다.

하지만 지금이 과연 예의를 차릴 때인지 하릴없이 회의가 든다. 대한민국 보수를 보라. 역한 구린내가 진동하고 있지 않은가. 과연 저들이 보수인가를 단적으로 드러낸 보기가 있다. 무릇 보수 또는 우파의 가치는 제 국가와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데 있다. 세계사에 나타난 보수들은 예외 없이 제 민족의 우수성을 부르대며 권력을 누렸다. ‘위대한 프랑스’를 내건 드골이 대표적 보기다. 바로 그렇기에 보수의 가치는 국가보다 사회를, 민족보다 계급을 성찰하는 진보의 가치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보수와 진보는 도무지 경계선을 찾기 어렵다. 아무런 선입견 없이 찬찬히 짚어보라. 만일 어느 민족이 다른 민족의 제국주의 정책으로 식민지로 전락했을 때, 독립을 위해 몸 던질 섟에 되레 그 제국주의 국가의 장교로 독립군 학살에 앞장섰다면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 민족의 보수세력은 적국의 장교로 독립운동가들에게 총을 쏜 그의 반민족행위를 준엄하게 추궁해야 자연스럽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선 지금 자칭 보수들이 참으로 생게망게한 일을 저지르고 있다. 백선엽을 영웅화하는 작태가 그것이다. <중앙일보>가 그를 한껏 띄우자 마침내 국가기간방송인 한국방송(KBS)이 독재자 이승만에 이어 백선엽을 미화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겠다고 공언했다.

백선엽이 누구인가. 일본 제국주의 강점기 때 간도특설대의 장교였다. 부일세력이 대한민국 곳곳에서 방귀 깨나 뀌며 살고 있기에 이제는 간도특설대에 대해서도 대다수 사람들의 감성이 무디어졌다. 하지만 간도특설대 장교는 단순 부일세력이 아니다. 5년 전 <세계일보>의 젊은 기자들이 현장에서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그들은 “조선의 건아들”을 “선구자”로 추켜세웠다. 독립운동 선구자가 아니다. 독립운동 벌이던 선구자들을 ‘토벌’하는 “천황의 뜻을 따르는 특설부대”로 당시 조선인들 사이에서 악명 높았다. <중국조선민족발자취 총서>에 따르면 “토벌하다 항일전사 2명을 포로한 놈들(간도특설대원)은 명월구 공동묘지로 그들을 끌고 가서 전체 대원을 집합시킨 다음 군도로 목을 자르고 시체 옆에서 기념사진까지 찍었다.” 악행의 증언은 곰비임비 이어진다.

1944년 5월에 마을을 습격한 “놈들은 녀자는 만나는 족족 강간하고 좋은 물건은 닥치는 대로 빼앗았다.”

그래서다. 그 시절 만주에서 애면글면 살아가던 조선인 가운데는 일본이 패망한 뒤에 “남쪽으로 도망간 친일파를 잡기 위해 6·25 때 인민해방군으로 참전”한 사람이 많았을 정도였다. 하지만 알다시피 간도특설대에서 장교로 ‘활약’했던 백선엽은 그 전쟁에서 공을 세웠다는 이유로 지금 대한민국의 신문과 방송에 의해 ‘영웅’시 되고 있다.

어떤가. 모든 일에 붉은 색안경을 쓰고 덤비는 보수언론의 고위간부들에게 미리 밝혀두고 싶다. 나는 지금 백선엽이 한국전쟁에서 한 일을 평가하자는 게 아니다. 다만 부일세력이 득세한 해방 뒤의 대한민국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자는 뜻이다. 그 연장선에서 지금 우리가 백선엽을 영웅화해도 좋은지 묻고 싶을 뿐이다.

두루 알다시피 백선엽을 중용한 사람은 이승만이다. 백선엽은 박정희를 중용했다. 박정희가 간도특설대에 참여했는지는 증언이 엇갈린다. 어쨌든 박정희 또한 만주군 장교로 일본 국왕에 자발적으로 충성을 맹세했던 친일파임엔 틀림없다.

박정희가 쿠데타로 ‘총통’ 권력을 휘두를 때부터 지금까지 그를 노상 찬양해온 ‘지식인’들이 바로 대한민국의 자칭 ‘주류 언론인’들이다. 이제 그들은 박정희 찬가에 만족하지 않는다. 민중이 피로 몰아낸 이승만을 다시 불러들인다. 마침내 독립군 학살에 앞장섰던 백선엽까지 온 국민에게 수신료를 받는 <한국방송>이 미화하고 나섰다. 자칭 보수를 자부하는 저들에게 차라리 연민을 느낀다. 대한민국 보수 세력은 존경할 한국인이 그렇게도 없는가?

일찍이 보수적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민족에게 역사는 반드시 보복한다고 경고했다. 말끝마다 진보세력에게 ‘수구좌파’로 언구럭부리는 자칭 보수언론의 고위간부들에게 거듭 진지하게 묻는다. 정말이지 이대로 가다가 대한민국 나라꼴이 어떻게 되겠는가?

정직하게 스스로 답하기 바란다. 눈앞의 이익에 어두워 독립운동 하던 사람들에게 총을 겨누고 학살한 경력이 분명하게 드러난 자까지 영웅화한다면, 대체 당신들의 보수는 무엇인가? 박정희의 딸이 차기 정권의 유력자로 떠오르는 상황이기에 눈이 더 침침해졌는가? 넌지시 다음 물음을 다시 던지는 까닭이다. 어떻게 될까? 방귀가 잦으면?

이 글은 주간 미디어오늘에 연재되는 기명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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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