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4.06     손석춘/새사연 이사장

슬픔과 울분이 넘친다. 대통령부터 거침없이 토로한다. 언론은 맞장구친다. 울분이 묻어난다. 2011년 봄의 대한민국 풍경화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국가원수 이명박의 슬픔부터 짚어보자. 대통령이 슬픔을 고백한 자리는 천안함 사건 1주기를 앞두고 열린 청와대 확대비서관회의다. 그는 천안함 침몰로 운명한 46명의 군인에 대해 ‘억울한 죽음’이라고 애도했다. 회의 중에 고인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메모를 남기기도 했다. “잘못이 있다면 여러분을 지키지 못한 우리에게(나에게) 있다”고 썼다. 그가 더욱 슬펐던 순간이 눈길을 끈다. 대통령은 “1년 전 우리는 가해자인 적들 앞에서 국론이 분열됐었다. 가슴 아픈 일”이라며 “당시 북한의 주장대로 진실을 왜곡했던 사람들 중에 그 누구도 용기 있게 잘못을 고백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고 언죽번죽 말했다.

 

“국론분열” “맹북주의” 쏟아낸 말·말

 

어떤가. 궁금하지 않은가. 대통령은 “여러분을 지키지 못한 우리에게(나에게) 잘못이 있다”고 했는데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말했을까. 정부 주장처럼 이북의 ‘기습 어뢰공격’이라면,  어떻게 했어야 옳았다는 뜻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천안함 1년을 맞아 종합일간지 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는 세 신문은 특집보도와 논평을 집중 쏟아냈다. 그들이 드러낸 ‘울분’의 정체는 사설에서 드러난다. <조선일보>는 천안함 사건으로 우리 내부에 “대한민국보다 북한 김정일 체제의 안위를 더 걱정하는 세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중앙일보>는 한국의 진보·좌파 야당·시민단체가 “북한에 대해 깊은 미망에 빠져 있다”는 게 가장 충격적이다.

 

사설은 남쪽이 ‘맹북주의’를 버리고 이성의 편에 섰다면 북쪽은 남쪽의 단결이 두려워 연평도 도발을 벌이지 못했으리라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는 대통령의 슬픔을 언급한 뒤 “아직까지 천안함 폭침이 북한의 소행이 아니라며 북한을 계속 비호하는 친북세력은 국민의 추모 열기를 똑똑히 봐야 한다”고 울뚝밸을 치밀었다. 

굳이 말살에 쇠살인 사설들을 짧게나마 인용한 까닭은 간명하다. 한국 저널리즘의 수준을 우리가 함께 직시하고 싶어서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대통령의 슬픔을 바라보는 세 신문의 고위간부들이 부럽다. 무엇보다 그들의 용기 때문이다. 굳이 언론인이나 언론학자가 아니더라도 언론보도에 가장 중요한 게 ‘사실 확인’임은 상식이다. 바로 그래서다. 세 신문에서 기자 생활만 30여년 해온 논객들에게 진정으로 묻고 싶다. 천안함이 북의 어뢰공격임을 사실 확인 했는가?

 

명토박아두거니와 지금 나는 천안함이 이명박 정권의 자작극이라고 주장할 생각은 전혀 없다. 내가 알고 있는 시민사회단체에서도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문제의 핵심은 북의 공격인지 아닌지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데 있다. 전문가들이 포함된 시민사회단체가 의혹을 제기하는 까닭은 그들이 친북이어서가 아니다. 진정으로 비극의 반복을 막으려면 실체적 진실을 낱낱이 밝혀야 옳기 때문이다.

 

세 신문은 의문을 제시하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친북세력’ 딱지를 붙여대며 정부에 강경책을 촉구해왔다.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란다. 세 신문은 천안함이 북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됐다고 확신하는 데 우리가 모르는 어떤 근거라도 갖고 있는 걸까? 과연 연평도 포격사태는 그들이 주장하듯이 우리 내부의 분열 때문에 일어났을까? 혹 천안함 침몰 뒤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근거한 대북 강경책이 연평도 포격을 불러온 것은 아닐까?

 

기자라면 마땅히 짚어야 할 의문들이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가 10.4선언에서 남북정상이 합의한 서해 공동개발에만 나섰더라도, ‘나들섬’을 만들겠다는 그의 공약에만 충실했어도 천안함은 물론 연평도 포격도 일어나지 않았을 사건 아닌가?

 

천안함의 실체적 진실 아는가

 

바로 그래서다. 대통령과 세 신문사의 슬픔과 울분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사실 확인이 절실하다. 혹 확인할 길이 없다거나 정부가 주도한 발표를 신뢰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할 셈인가?

 

하지만 그것은 기자의 문법이 결코 아니다.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동북아시아를 비롯한 세계질서가 전환기를 맞고 있지 않은가. 갈라진 겨레의 운명이 걸려 있는 문제다. 시민사회 단체가 참사 직후부터 의혹을 말끔히 씻을 공동 조사를 줄기차게 제안해온 이유도 여기 있다.

 

차분히 짚어보라. 만에 하나 북의 어뢰공격에 의한 침몰이 아니라고 판명된다면, 오늘 대통령의 슬픔과 신문의 울분은 무엇이 될까. 물론, 북의 어뢰공격이 진실로 판명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 언론이 할 일은 진실 규명이다. 사실 확인도 없이 일방적으로 대북 강경책을 선동할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도 대한민국에 차고 넘친다. 저널리즘은, 책임 있는 저널리스트의 자세는 달라야 옳다. 남북화해 정책을 파탄시킨 권력자에 부닐며 그의 경망한 언동을 맞장구치는 언론을 보면 하릴없다. 슬픔과 울분이 넘쳐온다.

 

이 글은 '미디어 오늘' 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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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