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 01 / 23      정태인/새사연 원장

비준만 남겨놓고 있는 한미FTA

 

“한미 FTA로 경제영토가 넓어집니다. 이제, 세계가 당신의 시장입니다” 요즘 지하철에 나붙은 광고 문구이다. 5년 전에는 이랬다. “한미 FTA는...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우리의 선택입니다” 당시에 함안의 할머니는 이렇게 대답했다. "인자 쪼께 살까 싶었어요. 그랬두만은... 우찌 됐든 (FTA를) 끝내 막아서...행복하게 살아야 할긴데... 이런 말 저런 말 하면 눈물 나온다“ 평생의 노동으로 갈쿠리가 된 손으로 눈가를 훔치는 이 광고는 아무도 TV로 보지 못했다. 사실상 “방송불가”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그해 한미 FTA 국내 홍보비로 130억원을 책정했고 그 때부터 지금까지 미국 로비비용으로 95억 5600만원을 사용했다. 그도 모자라 또 다시 2억 5천만원을 들여 이렇게 대대적 홍보에 나선 것이다. 그들로서는 ‘최후의 일격’인 셈이다. 한미 FTA는 이제 국회 비준만 남았다.

 

벌써 5년째 우리는 한미 FTA라는 유령과 싸우고 있다. 2006년 KBS 이강택 피디는 “나프타 12년, 멕시코의 명과 암”(KBS 스페셜)을 내보냈다. 카메라는 멕시코의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줬지만 정부는 사실 왜곡이라며 반박했다. 이제 그 나프타는 17년이 되었다. 10년째였던 2004년에는 전 세계적으로 논쟁이 벌어졌지만 15년째인 2009년에는 아무도 나프타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미국이 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멕시코는 -7.1%의 경제성장율을 기록했다.

 

NAFTA이후 멕시코에서 무슨일이 벌어졌는가?


정부의 광고대로라면 멕시코는 전 세계에서 가장 넓은 경제영토를 가진 나라이다. 미국과 EU 등 “거대 선진경제권과 동시다발적” FTA를 맺었으니 대한민국 정부가 애면글면 추구하는 “FTA의 허브”다. 과연 1993년에서 2007년까지 멕시코의 수출은 311%(석유를 빼면 283%) 증가했고 외국인 직접투자 역시 3배나 늘었다. 그러나 같은 기간 1인당 국민소득 성장률은 연평균 1.6%에 불과했고(2000년에서 2009년까지 0.9%) 무역수지는 지속적으로 적자였다. 이 기간이 미국 사상 최장의 호황기였는데도 그랬다. 급기야 2008년 멕시코는 대기업의 외채를 갚느라 외환보유고의 1/3을 써야 했고 IMF와 미국으로부터 긴급 달러 수혈을 약속받아야 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미국과 인접한 마킬라도라 등에 자동차, 전자분야 초국적기업이 너도 나도 투자를 했고 거의 전량 미국으로 수출했다. 그러나 멕시코의 전체 투자율은 2000년까지 미미하게 증가하다 이제는 오히려 20% 부근에서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FTA로 인한 대대적 구조조정으로 멕시코 국내 제조업, 특히 부품산업이 붕괴했기 때문이다. 멕시코의 옥수수농업은 말 그대로 궤멸했다. 이에 따라 실질임금과 고용은 여전히 1990년대 중반 수준에 머물러 있다.

   

<표1> 나프타의 성과

 

<출처> Deblock,C et.al.(2010), Nafta - A Model Running out of Breath, CESifo.

 

1960년대에 지어진 멕시코 인류학 박물관에 가면 그 수많은 부족마다 아주 다양하고 기막힌 옥수수 문양을 뽐낸다. 그러나 이제 옥수수의 원조 멕시코가 미국의 유전자 조작 옥수수로부터 토종 옥수수를 보존해야 하는 절박한 지경에 이르렀다. 자유로이 날아 다니는 벌과 나비를 무슨 수로 막으랴.

 

멕시코 국내 은행들은 민영화를 거쳐 미국과 스페인 은행에 인수합병됐다. 1997년 2%에 불과했던 외국인 소유 은행 자산은 이제 83%에 이르렀다. 한국 정부의 소원대로 선진 금융기법이 도입됐지만 부자 도시만 혜택을 누렸을 뿐 중소기업과 서민에 대한 대출은 오히려 줄었다. 민영화한 멕시코의 공기업들은 너도 나도 값싼 달러를 빌렸고 당연한 것처럼 파생상품에도 손을 댔다. 2008년 리만 브라더스 파산 이후 외국 은행들은 달러를 본국으로 보냈고 멕시코는 한국의 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를 동시에 맞은 상황에 빠졌다.

 

멕시코와 캐나다는 다르다?


5년 전에도 그랬듯 이제 정부는 멕시코와 한국은 다르다고 할 것이다. 물론 다르다. 그렇다면 미국을 능가하는 자원부국이고 유럽형 복지국가를 갖추고 있던 캐나다는 어떨까? 다행히도 캐나다는 멕시코와 같은 금융위기를 겪지 않았다. 캐나다 은행은 왕립은행(chartered bank)의 전통에 따라 자본을 도매시장이 아닌 예금으로 조달했으며 그림자금융 등 위험감수행위를 하지 않았고 정부의 자본규제도 바젤II보다 더 강했다. 즉 캐나다의 금융부문 만큼은 NAFTA의 민영화, 규제완화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전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프타 이후 캐나다의 1인당 경제성장율은 1.2%(2000년에서 2009년까지는 1.1%)에 머물렀다. 실질임금은 1996년에서 2006년까지 10년 동안 4% 늘어났을 뿐이며 제조업 고용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아메리카의 복지국가 캐나다의 소득불평등은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2008년 지니계수가 한국을 추월했다. 나프타 이후 캐나다의 공공사회지출/GDP 비율이 5%p 가량 떨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실업급여의 축소가 두드러졌다. 캐나다도 점점 미국을 닮아가고 있는 것이다. OEDC 국가 중 멕시코가 나쁜 쪽으로 부동의 1위, 미국이 4위, 그리고 캐나다는 13위를 차지했다(한국은 14위).

 

미국과 멕시코의 생산성 격차는 줄어 들지 않았고 캐나다의 경우 2000년 이후엔 격차가 오히려 확대됐다. 한국 정부는 한미 FTA를 맺으면 1%의 생산성이 향상돼서 경제성장율이 5% 가량 추가로 증가할 것이라 주장하고 있지만 그런 신비스러운 일은 캐나다와 멕시코 어디에서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프타는 두 나라에게 초헌법, 또는 외부헌법의 역할을 했다. 이 헌법은 민영화와 규제완화를 지시하고 있다. 국가 내부에서 이런 정책기조를 강력하게 추진하면 추진할수록 이 헌법은 위력을 발휘한다. 투자자국가제소권은 강력한 무기이다. 2010년 7월까지 알려진 NAFTA 투자자국가제소 총 76건 중 환경보호 16건, 자연자원 15건, 건강 및 식품 7건, 부동산 6건, 조세 2건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한국 정부의 주장과 달리 환경과 공공정책에 대한 예외조항이 얼마든지 무력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미 FTA는 복지 및 환경 정책의 강화를 가로막고, 줄어든 공공영역에 미국인 투자가 들어가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져도 되돌릴 수 없도록 하는 장치를 나프타보다 더 강력하게 갖추고 있다.

 

물론 상대국의 기존 경제사회구조, 정부 규제나 복지에 대한 내부의 합의 정도에 따라 미국식 FTA의 영향은 서로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과연 한국의 지배계급은 캐나다형일까, 아니면 멕시코형일까? 어느 쪽이든 복지의 확대는 불가능하지만 멕시코형이라면 파국을 맞게 될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보면서도 자본시장통합법, 의료채권법을 추진하는 한국 정부와 재벌이 이미 그 답을 알려주고 있다.

 

멕시코는 '허브'(중심)가 아니라 자신보다 강한 상대국의 수탈을 받는 ‘스포크’(spoke, 자전거 살)였다. FTA 전문 연구자 볼드윈은 멕시코가 “스포크 함정(spoke trap)"에 빠졌다고 묘사했다. 그리고 2009년 논문에서 그는 한국이 제2의 멕시코가 될 것으로 예언했다. 우리 스스로 왜 그래야 하는가? 국회는 비준하기 전에 이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한다.

 

※이 글은 금요일(21일) 경향신문에 실린 글의 원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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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