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1.04     손석춘


당신의 참모 가운데 이 편지를 대통령 집무실 책상 위에 올려놓는 사람이 있다면, 그나마 나라를 위해 다행입니다. 어쩌면 ‘이명박씨’라는 호칭에서 당신이나 참모는 울뚝밸부터 치밀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나 또한 삭이며 씁니다. 지금 나는 대통령에게 쓰는 게 아닙니다. 자연인 이명박씨에게 씁니다. 대통령 자리에 앉은 이명박은 미워하지만, 인간 이명박에겐 연민이 느껴옵니다. 그 점에서 ‘이명박씨’라는 호칭은 호의를 담고 있습니다.


물론 그 호칭엔 분노가 더 짙게 깔려 있습니다. 최근 한 젊은이가 내게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젊은 친구는 남북 사이에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우려한 예언이 현실화되었다고 썼더군요. 북이 연평도를 포격했을 때입니다. 나는 그런 예언은 적중하지 말아야 했다고 답글을 썼지요. 그런데 답장을 보낸 직후입니다. 예측만 하고 방관했다는 자책감이 벼락처럼 저를 때렸습니다.


예측만 하고 방관했다는 벼락같은 깨우침


그래서입니다. 더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결기로 당신에게 편지를 씁니다. 먼저 오해 없기 바랍니다. 북의 연평도 포격이나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는 군사주의 노선을 두남둘 뜻은 전혀 없습니다. 연평도를 포격해 민간인까지 목숨을 잃은 사건은 어떤 ‘해명’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다만 서울의 서재에 앉아 평양의 군사적 모험주의를 아무리 비판하는 글을 써도 그 정책을 바꿀 수 없는 게 엄연한 현실입니다.


공리공론에 끝나지 않고 실제로 이 땅에서 평화와 통일을 이루려면 지금 여기서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인가를 터놓고 소통할 때입니다. 남과 북의 현재 상황을 온새미로 파악하기는 쉽습니다. 먼저 이명박씨 당신이 정직하게 톺아보기 바랍니다. 만일 집권한 뒤 북에서 곰비임비 제안해 온 대화를 당신이 짐짓 모르쇠하지 않았다면, 과연 연평도 포격이 일어났을까요?


무엇보다 당신 자신에게 솔직히 답하기 바랍니다. 당신도 잘 알고 있듯이 노무현·김정일 회담은 연평도·백령도를 아우른 ‘서해 평화지대’ 개발에 합의했습니다. 그 약속만 충실하게 이행했다면 천안함 침몰도 일어나지 않았을 터입니다. 아니, 굳이 김정일·노무현 회담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이명박씨 당신도 후보자 시절에 서해로 가는 들머리에 ‘나들섬’을 만들겠다고 공약하지 않았던가요?


하지만 당신은 북이 핵무기를 폐기해야 대화가 가능하다고 고집해 왔습니다. 참모 가운데 아무도 당신에게 진실을 말하지 못했을 터입니다. 듣그럽겠지만 명토 박아 직언합니다. 그 고집은 신념이 아닙니다. 국제 정세에 대한 무지의 폭로에 지나지 않습니다. ‘북핵 문제’는 남과 북이 풀 수 있는 사안이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당사자로 미국이 맞물려 있는 ‘북·미 핵문제’입니다.


핵무기 개발이든, 연평도 포격이든 북의 전략적 목표는 명확합니다. 미국과의 국교 수립과 평화협정이지요. 그 전략적 목표를 이루려는 북의 전술이 너무 모험적이고 조급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우리는 더 사려 깊어야 합니다. 우리가 현 단계에서 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 방법은 무엇일까요? 북이 미국과 국교를 수립하고 수출입을 하며 인민경제를 발전시켜갈 수 있도록 돕는 데 있음을, 그것이 평화를 지키고 통일로 가는 길임을 단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성찰하기 바랍니다.


북이 미국과 국교 수립하도록 돕는 게 현실적


당신이 앞으로도 나라 안팎의 ‘매파’들과 으밀아밀 대북정책을 논의해간다면, 유감이지만 나는 더 음울한 ‘예언’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경고합니다. 북의 ‘군사적 도발’에 ‘단호한 대응’ 따위를 부르댈 때가 아닙니다. 치기 넘치는 그런 말은 윤똑똑이들에게 맡겨도 이미 차고 넘칩니다. 대통령이 할 일은 ‘군사적 도발’을 사전에 막는 데 있습니다. 바로 당신이 지금 대통령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당신이 앞으로 대통령 자리에 머물 시간은 2년입니다. 길 수도, 짧을 수도 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역사가 대통령 이명박을 어떻게 평가할까 냉철하게 짚을 때입니다. 희미한 추억처럼 떠오를 나들섬 공약에도 눈길을 돌리고, 조건 없이 남북 대화에 나서길 충정으로 권합니다.

만일 철부지들의 부추김에 당신이 솔깃하면 연평도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핏빛 참사를 불러올 수밖에 없습니다. 자칫 아름다운 이 산하에 지옥의 불길이 활활 타오를 수도 있습니다. 과연 그 때 누가 ‘장로 이명박’을 구원할 수 있을까요? 결코 과도한 예언이 아닙니다. 과학적 예측입니다. 당신에게 ‘은총’이 내리길 기원합니다.


*경향신문(12월29일자)에 실린 칼럼입니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