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를 높이는 ‘서민금융 활성화 대책‘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서민금융 활성화’ 대책을 띄우고 있는 모양새다. 얼마 전 대기업 계열의 미소금융 창구를 대통령이 직접 방문한 바 있고, 지난달 26일에는 법적 근거가 불확실한데도 ‘햇살론’이라는 이른바 서민금융 대출상품을 시작하였다. 이외에도 신용등급 7등급 이하를 대상으로 한 금리 10% 중후반 대의 ‘희망홀씨’도 출범 1년 6개월이 지났다.
이러한 각종 ‘서민금융’ 정책들에 대해 정부는 초기의 혼선을 딛고 정상화 궤도에 들어서고 있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예컨대, 한정된 재원과 까다로운 심사조건 때문에 수혜자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비판(7월까지 누적 인원 약 4천명에 불과)이 불거졌던 미소금융의 경우 최근 대출자가 급증하고 있다.
정부가 저신용자를 위한 금융상품을 발표하고, 경기회복의 혜택을 아래로까지 전달하겠다는 데 대해 어느 누구도 반대하지 않고 있다. 물론 진보 진영에서는 정부의 이런 정책들이 ‘서민 중심’ 이미지 창출을 위한 쇼에 불과하다고 보고, 시장근본주의자들은 반대로 ‘우익 포퓰리즘’을 경계하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 정책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왜 대출 일색인가?

자, 본질에 조금 더 가까이 가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 보자. 왜 서민금융 정책들은 하나같이 대출상품 일색인가? 정부는 위에서 언급한 정책들이 이른바 한국판 ‘마이크로 파이낸스’의 대명사들이라고 자화자찬하고 있는데, 이는 ‘소액금융=대출’이라는 시각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노벨상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방글라데시의 그라민 은행은 국내에 소액대출을 널리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라민 은행은 1976년 설립되어 지역공동체의 자활에 큰 성과를 보인 바 있었는데, 이 은행의 핵심적 사업방식이 바로 ‘마이크로크레딧(micro-credit)’, 우리말로 ‘무담보 소액대출’이다.
그라민 은행의 성공으로 소액대출 제도가 전 세계로 확대되었으나, 다른 나라의 경우 수십 년의 경험이 반드시 긍정적인 효과만 가져온 것은 아니다. 자활을 돕기 위한 각종 장치가 동시에 구상되지 않는 한, 그리고 시혜적 차원의 기부금 재원에만 의존하는 한 한계가 너무나 분명했기 때문이다. 소액대출은 담보를 요구하지 않는 대신에 연대 보증인을 내세우도록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 그라민 은행은 공동체의 연대노력을 요구 - 이로 인해 대출자가 소득 증대에 성공하지 못해 주변사람들까지 연체자로 내몰리는 사례가 늘고 있다. 최근에는 무담보 소액대출의 본 고장, 방글라데시에서도 연체자로 몰린 연대보증인의 보복 살인 행위와 같은 라는 경악스런 사건까지 발생하고 있다.

문제는 ‘대출’이 아니라 ‘저축’이다.

빈자들의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천착해 온 많은 활동가들과 전문가들은 이제 ‘소액대출, 마이크로크레딧’이 아니라 ‘소액저축, 마이크로세이빙(micro-savings)’으로 정책의 중심을 옮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액저축은 저소득자에게 제공되는 소액의 저축계좌를 말한다. 저소득자가 미래를 위해 저축을 하면 그만큼의 액수를 정부가 적립시켜 준다. (서울시의 ‘희망플러스 통장’ 사업이 바로 이것이다.)
‘대출’이 아니라 ‘저축’이 저소득자 금융정책의 중심으로 주목받는 데에는 무엇보다 그 수혜자들의 소비행태 변화와 관련이 깊다. 소액저축 정책을 시행한 많은 국가에서 수혜자들의 소비가 매우 안정적이고 계획적으로 바뀐 것이다. 실제로 똑같은 소비라 하더라도 대출자들의 소비와 저축자들의 그것은 질적으로 다른 작동방식을 갖고 있다. 대출자들은 ‘미래의 소득’을 미리 당겨쓰는 것이지만 저축자들은 ‘과거의 소득’을 사용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저축자들은 미래에 행할 소비를 위해 현재의 저축을 계획하고 있는 것이다.

소액저축 제도가 계층 간 불평등을 얼마나 완화시킬 수 있을지는 솔직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여기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 원리가 부채에 의존해 소비 거품을 확장시켜 온 신자유주의 금융과 완전히 반대의 성격을 갖는다는 데 있다. 대출을 해 주면서 금융기관들은 자신들이 무슨 혜택을 주는 것처럼 행세하지만, 실상은 그 이상의 이익을 회수해가면서 다른 한편으로 자산거품을 키워 왔던 것이다. 현재 저신용자로 분류되는 신용등급 하위의 사람들은 이러한 구조 속에서 발생한 것임을 상기해야 한다.

‘소비자 신용’이라는 거대한 거짓말

금융계는 ‘신용’의 개념은 시장이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주장한다. 개인의 자산/부채와 소득을 숫자로 지수화시켜 놓은 ‘소비자 금융기법’, 즉 신용점수에 근거해서 말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작동하는 유일한 방법은 기업이 그들의 이익을 최대화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고 때때로 어떤 이들의 상태가 더 나빠지게 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시장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소득 소비자의 경우에는 이들이 줄곧 가정하는 ‘완전한 시장’ 속에서 살고 있지 않다. 불완전하고 비대칭적인 정보 속에서 살고 있으며 그 결과는 바로 착취로 나타난다. 시장의 선택은 종종 환상이며 때때로 위험하기까지 하다.
많은 가계, 특히 저소득자의 부채는 점점 더 증가하고 있으며 부채에 대한 비용도 더욱 증가하고 있다. 부채가 증가하는 만큼 ‘신용점수’를 사용하기 위해 금융기관에 지불해야 하는 비용도 증가한다.
정 부가 발표한 갖가지 서민금융 대출상품들 역시 ‘신용점수’가 만들어 놓은 거대한 구조 속에 있을 뿐이다. 저소득자들은 신용점수가 평가한, 딱 그만큼의 아주 미미한 대출금을 받아 당장의 부족한 소비여력을 충당할 뿐이다. 무담보 소액대출은 저소득자들에게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을 시작하는 어떤 밑천이 될 수 없다. 오히려 그렇게 믿는 것은 잘못된 환상일 뿐이다. 방글라데시와 같은 일부 성공한 빈국의 사례가 없지는 않으나 대체적으로 많은 연구들은 대출금은 새로운 경제활동에 대한 투자가 아니라 소비 평탄화에 사용되었을 뿐이라고 증명한다. 즉, 대출, 또는 신용은 자신을 돕는 길이 아니라 금융기관들이 파놓은 ‘부채의 늪’으로 인도할 수도 있다.

필자주> 본 글은 매일노동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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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