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이슈2009.12.31 09:45
국가 부도 가능성 1위 베네수엘라?
도표가 포함된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http://saesayon.org에서 PDF파일 다운로드

1. 미국 언론의 대대적인 보도

두바이가 국가채무나 다름없는 두바이 월드의 채무상환을 일시 중지하고, 그리스가 부채 문제로 신용등급이 A-에서 BBB+로 강등되면서 국가 디폴트 사태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미국의 언론 매체들이 베네수엘라가 디폴트 가능성 1위에 랭크되었다고 대대적인 보도를 해 눈길을 끌었다. 국내에서도 <프레시안>이 미국 의 보도를 인용해 베네수엘라가 향후 5년에 걸쳐 국가파산 가능성이 가장 높은 나라로 뽑혔다는 기사를 전했다.

이들 보도의 원천은 영국에 기반을 둔 CMA Datavision이란 회사에서 나온 것이다. 이 회사는 신용평가와 정보를 제공하는 곳으로서, 세계에서 가장 큰 선물/옵션 거래소인 CME그룹의 자회사이다. 데이터비전은 2009년 4분기 “국가 신용 위험도 평가 보고서”에서 자신들의 평가 지표를 기준으로 베네수엘라의 국가 파산 가능성은 57.7퍼센트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밝혔다. 2위에는 54.6퍼센트의 우크라이나, 3위에는 49.1퍼센트의 아르헨티나가 각각 랭크되었다.

데이터비전의 국가 디폴트 가능성 계산은 금융 시장에서 5년 만기 국채에 붙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의 중간값을 누적적으로 계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계산방법이 얼마나 객관적 근거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우리는 데이터비전뿐만 아니라, S&P, 무디스, 피치 등 국제신용평가 회사들이 미국 발 금융위기에서 한 ‘역할’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위기가 폭발하기 직전까지도 빚을 갚을 능력이 별로 없는 사람들에게 제공된 모기지 대출을 근거로 만든 파생 담보부증권에 최고 등급을 부여하였었다. 또한 한국의 경우 2000억 달러가 넘는 외환보유고를 가지고 있었지만, 뚜렷한 근거도 없이 동유럽 국가보다 높은 CDS 프리미엄을 물어야 했다.

2. 객관적 근거보다는 금융시장 큰손들의 정치적 행동

여러 관련 정보를 종합해 보면 베네수엘라의 파산가능성은 객관적인 경제지표에 근거하고 있다기보다는 차베스가 진행하고 있는 국가 기간산업의 국유화 프로젝트에 대한 국제금융시장의 반감과 우려에 기반하고 있다. 특히 최근 2개월 동안 베네수엘라의 CDS 프리미엄이 상대적으로 많이 급등하였는데, 그 이유는 차베스 정부가 소규모 은행을 통폐합하는 조치를 실행한 데 있었다.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11월과 12월에 8개의 은행이 폐쇄되었다고 한다(2009.12.11). 국제금융시장에서는 베네수엘라의 국유화 조치가 국내예금의 20퍼센트 정도를 차지하는 소규모 은행에 국한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도 부자들의 자금이 몰려있는 주요 은행까지 확산될 가능성에 대한 경각심을 표출하고 있다. 이러한 우려가 CDS 프리미엄 가격의 상승을 낳았고, 여기에 근거한 계산으로 베네수엘라가 향후 5년 내에 국가부도를 겪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된 것이다.

위의 그림은 베네수엘라의 실질GDP, 소비자 물가지수의 변화율, 국민총소득에 대한 총외채 비율의 장기적 변화를 시계열로 나타낸 것이다. 그림은 소비자 물가가 여전히 높긴 하지만 차베스 정권이 권력을 확립한 이후 상대적으로 크게 안정되었고, 국민총소득 대비 외채의 비율도 엄청나게 낮아졌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또한 높은 물가에도 불구하고 실질 경제성장률이 지속적으로 증가했음을 보여준다.

2008년 하반기부터 이런 추세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이런 변화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원유가격의 변화이다. 베네수엘라의 GDP에서 원유관련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18퍼센트 이상을 유지해 왔었는데 11퍼센트까지 떨어졌다. 상당 정도 그 여파로 인해 GDP증가율이 둔화되었고, 올해 글로벌 경기침체로 인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반면 물가는 2008년부터 상승하기 시작해 현재 전년 동기에 비해 30퍼센트 가까운 수준의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소비자물가의 상승률이 높긴 하지만 베네수엘라 가계소득에 큰 타격을 주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위의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지속적으로 임금이 물가에 연동되어 움직여 왔다.

3. 인플레이션과 성장

인플레이션 문제는 차베스 정부가 베네수엘라 방식의 사회주의 개혁을 원만하게 진행하는데 있어 중요한 요소임은 분명하다. 위의 그림은 1990년대 베네수엘라가 겪은 초고인플레이션(hyper-inflation)이 통화량이 증가와 맞물려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2000년대 초반 이후 차베스 정부가 권력을 안정적으로 확립을 한 이후에도 통화량은 급격히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와 같은 초인플레이션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부가 물가를 안정시킬 수 있는 강력한 조치를 취했기 때문이다.

이 시기는 또한 1990년대의 초고인플레이션 국면과는 성격이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그 당시는 GDP성장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했지만, 2000년대 초반 이후에는 높은 실질 경제성장률이 달성되면서 중고-인플레이션이 발생한 것이다. 경제학자 스티글리츠는 그의 책 『Growth with Stability』에서 성장 없는 저인플레이션보다는 성장이 있는 중고-인플레이션이 상대적으로 더 낫다고 주장한다.

스티글리츠와 그의 동료들은 남미, 동유럽, 중동의 여러 국가들의 장기적인 거시경제 지표들을 면밀히 분석하여 아래 표2의 자료들을 정리해서 보여준다. 이들은 분석을 통해 각국의 경제주체(정부, 기업, 가계)들이 저/중/고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어떤 경제적으로 어떤 경험들을 하는가를 살펴본 뒤 중위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겪으면서 실질적인 경제성장을 이루는 것이 다른 두 상황보다 상대적으로 낫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밝힌다.

우리가 언론을 통해 흔히 접하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악마 같은 이미지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금융자본의 이해를 극대화하기 위해 이데올로기적으로 과장된 결과이다. 인플레이션은 화폐가치의 하락을 의미하기 때문에 돈놀이를 하는 주체들은 인플레이션을 저주하게 되어있다. 차베스 정부가 초고인플레이션으로 물가문제가 확산되는 것만 막는다면 신용평가 기관들의 ‘바람’처럼 사태가 걷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진행되진 않을 것이다.

박형준/새사연 연구원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