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이슈2009.12.18 11:24
“성장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보다 고용이 성장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 무슨 말일까. 성장을 하면 자연스럽게 고용이 늘어나기 보다 차라리 고용을 늘리면 성장이 담보된다는 얘기다. ‘성장을 통한 고용 확대’를 주창해왔던 우리 정부 당국자들이나 주류학자들의 주장과 정반대 되는 ‘고용확대를 통한 성장’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진보학계의 주장이 아니다. 국가 기관인 한국은행의 한 연구자 분석결과다(장동구 한국은행 연구위원, '성장, 임금과 고용의 인과관계', <국가 고용전략 수립을 위한 토론회 자료집>, 2009.12.4).

위의 분석은 '고용이 성장에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을 확인하면서 고용이 1퍼센트 늘어나면 장기적으로 성장률이 약 2퍼센트 정도 높아질 것으로 추정했다. 그 결과 성장과 고용의 동반 확대라는 선순환 고리의 시발점을 '성장이 아닌 고용'에서 찾을 것을 주문하고, 고용증가→소비 증대→성장 확대→고용증가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결론을 맺고 있다. 보기에 따라서는 발상법을 바꾸는 상당히 신선한 분석이다.

그 동안 우리사회는 지나치게 성장 우선주의에 집착해왔고, 성장률이 높아지면 국민들의 소득 수준과 생활도 향상되고 고용도 자연스럽게 늘어날 것으로 생각해왔다. 이런 관념은 외환위기 이후 사실상 근거를 대부분 상실해왔다. 성장률(GDP)이 올라가도 국민총소득(GNI)이 늘지 않는 경우가 자주 발생했고, 사회 양극화로 인해 효과는 더 반감됐다. 고용도 마찬가지다. 성장률 상승에 따라 늘어난 고용 규모, 즉 고용 유발계수는 갈수록 떨어져왔다. 기업의 매출 증가에 따른 고용확대를 말해주는 취업유발계수(매출 10억 원당 취업자 수)도 당연히 떨어졌다.

이를 두고 이른바 ‘고용 없는 성장’을 말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고용 없는 성장이 기술혁신으로 인한 불가피한 결과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일부에서는 신자유주의 노동 배제적인 기업 경영의 결과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어떤 이유가 되었건 확실한 것은 높은 경제 성장률이 높은 고용률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제는 내년부터 고용 없는 성장이 훨씬 더 심각하게 나타날 것이라는 사실이다. 정부와 주요 기관이 2010년 경제성장 전망을 5퍼센트 정도로 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취업자 수는 15만 명 정도 밖에 늘어나지 않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 마지막 3년(2005~2007) 동안 경제성장률이 최대 5퍼센트 전후를 기록했는데 같은 기간 취업자 수는 평균 29만~30만 명이 증가했다. 성장률 1퍼센트 당 6만 명 내외의 일자리가 만들어졌다는 얘기다. 그런데 내년에는 성장률이 1퍼센트 높아져도 3만 명밖에 늘어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반 토막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당연히 발상법을 바꿔야 한다. 경제 성장의 파생물로 고용확대를 기대할 것이 아니라 고용을 적극적으로 확대해 성장을 담보하는 전략, 즉 ‘고용을 통한 성장전략’을 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자면 “SOC에 50조 원 투입하면 고용이 96만 개 늘어난다”라든지, 미디어법을 개정하면 고용이 확대될 것이라거나 교육과 의료를 민영화하면 고용창출 효과가 있다는 식으로 고용을 특정 정책의 부산물쯤으로 취급하는 발상을 버려야한다.

경제정책의 산출결과가 아니라 입력 변수로, 출발지점으로 고용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용창출형 재정·산업·교육·복지·노동정책으로 구체화돼야 한다. 그러나 지난 14일 노동부가 보고한 2010년 업무계획을 보면 이런 흔적은 전혀 없어 보인다. 내년 노동부 중점 추진 과제라고 보고한 내용이 취업정보 서비스를 좀 더 확대한다든지 여성을 위한 단시간 근로모델 발굴이라든지 정년퇴직 예정자에 대한 임금피크제 등 그동안 나왔던 방안들을 다시 열거한 것 외에 특별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기업연구소인 삼성경제연구소마저도 내년에 “기업들은 경기 상승세에도 고용확대를 가능한 늦추면서 초과 근무 등으로 대응할 전망”이라고 진단하고 있기 때문이다(삼성경제연구소, ‘고용 없는 회복 가능성 점검’, 2009.12.8).

앞서 예시한 한국은행 연구원의 분석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도 담겨 있다. “성장을 효율적으로 높이기 위해서는 기존 근로자의 초과시간 근무와 같은 근무시간 연장 보다는 취업 확대, 또는 일자리 나누기가 더 바람직하다” 정부와 기업의 발상전환은 언제 이루어질 것인가.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