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이슈2009.10.14 09:30

10월 13일~14일 이틀간 일제고사가 실시된다. 196만 명의 학생이 참여하고 주관식 채점으로 3만 명의 교사가 동원된다. 현재 정상을 달리고 있는 한국 영화의 3주간 관객 수가 200만 명인 것을 감안하면 대단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200만 명이 동시에 같은 영화를 본다고 상상한다면 말이다. 해마다 모든 국민이 긴장하며 숨죽이는 수능일의 수험생 수도 58만 명에 불과하다. 고3에 해당하는 한 학년 학생과 재수생이 보는 시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제고사는 전국 초/중/고교 총 1만 1496곳에서 초6, 중3, 고1 세 학년이 말 그대로 ‘일제히’ 치르는 전수평가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일제고사는 이번이 네 번째다. 번번이 반대에 부딪치고 그 때문에 교사 14명이 파면 또는 해임되는 사건까지 일어났지만 올 10월에도 어김없이 시행된다. 일제고사가 이토록 비판받는 이유 세 가지와 일제고사의 향방에 대해 짚어보겠다.

0교시, 시험횟수 늘고 정신건강은 피폐해지고

일제고사가 비판받아 온 이유 중 하나는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라는 명칭과 달리 시험을 통해 학생의 학력 수준만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청과 학교장 등에게 그 책임을 묻고 그로 인해 학생들이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받기 때문이다.

교육관료가 받는 압박감은 고스란히 현장 교사와 학생들의 몫이다. 일제고사를 성적에 반영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교과부의 장담과 달리 지역교육청별로 시험결과를 내신성적에 반영하겠다는 공문을 보내거나 성적이 우수한 교사에게 해외여행을 보내주는 상품을 내걸기도 한다. 어떤 지역은 교육청 수준의 일제고사를 부활시키기도 했다. 교장들은 일제고사 성적에 목숨을 걸고 독촉해대고 교사들은 그에 못 이겨 학생들에게 보충수업을 하고 문제풀이 연습을 반복시킨다. 초등학생의 경우 일제고사에 사용하는 OMR카드 사용법 익히기에 수업시간을 할애하는 진풍경도 벌어진다.

현재 진행 중인 국감에서도 이를 뒷받침할 자료들을 확인할 수 있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은 경기도 학생이 2008년 한 해 동안 평균 8.7회의 시험을 치렀다는 자료를 공개했다. 이는 2007년 8회에 비하면 0.7회 증가한 것으로, 방학기간을 제외하면 학교를 다니는 동안 매달 1차례씩 시험을 치른 꼴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초등학생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이다. 2007년에는 8.3회의 시험을 치르던 초등학생이 2008년에는 9.0회, 올해는 1학기 동안 5회를 치러 1년간 10회의 시험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

시험 뿐 아니다. 0교시도 늘었다. 민주당 김영진 의원은 경기도에서 오전 8시 이전에 등교하는 0교시 실시 학교가 2008년 56.7퍼센트에서 올해 77.8퍼센트로 21.1퍼센트 포인트나 증가했다고 밝혔다. 4.15 학교자율화 조치와 일제고사 시행 이후의 결과다.

이로 인해 학생들의 정신건강은 피폐해져 가고 있다. 한나라당 권영진 의원에 따르면 서울시교육청이 올해 정신건강 검진 시범학교 35개교 9814명을 대상으로 학생 정신건강 선별검사를 실시한 결과, 정밀검진이 필요한 학생이 18.2퍼센트인 1786명에 달했다. 이는 2007년 13.0퍼센트와 지난해 11.4퍼센트에 비해 크게 증가한 수치다. 정신건강 선별검사 내용에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폭력성, 우울증, 자살경향 등 주요 정서/·행동 문제가 모두 포함됐다.

수능성적 공개보다 더 큰 파고 예상

일제고사가 비판받는 또 다른 이유는 시험성적 결과를 공개하기 때문이다. 성적이 공개되면 학생 개개인 뿐 아니라 학교도 서열화돼 초/중등 모든 학생들은 언제든 싸울 준비가 되어 있도록 만드는 전시상태로 내몰린다.

교과부의 수능성적 공개 이후, 며칠 전에는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이 조선일보와 함께 지역 내 학교 이름까지 거론하며 등급과 순위를 밝혀 고교등급제가 실시되는 것 아니냐는 파장을 일으켰다. 교과부는 학교단위 이름을 삭제한 채 지역구별로 성적을 공개하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이라 강변했지만, 그것은 우리나라의 정치와 언론의 ‘파워’를 무시한 처사였다. 국민들 역시 수능성적이 공개되면 각 고교들이 수능성적 결과로 서열화되고 그로 인해 중학생의 고교입시 경쟁이 치열해질 것을 예상했을 터이다. 하지만 막상 사건이 터지고 보니 학교를 다니는 교사, 학생, 그 학부모까지 이해관계자들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다. 체감도가 다른 것이다.

이제 성적공개를 통해 특목고/자사고가 명문대 진입에 가장 효과적인 지름길임을 선명하게 알게 된 학부모, 학생들은 당연히 특목고를 더더욱 선호하게 될 것이다. 특목고, 자사고 등 특수학교 외에 가장 성적이 높은 지역의 명문고 역시 마찬가지다. 때를 놓치지 않는 한나라당 의원들은 몇몇 지역의 사례를 꼽으며 “학교선택권을 통한 학교 간 경쟁이 치열하면 성적이 높아진다”며 소리 높여 강조한다. 내 자식이 더 높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는 경쟁에 불을 붙여 학교의 질을 높이면 된다는 식이다. 이러한 프레임이 국민들에게 인정받는 순간, 고교등급제 실시는 현실이 될 수밖에 없다. 지난해 고려대와 같이 몇몇 대학들이 슬금슬금 성적우수 고교에 특혜를 주기 시작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물론 경쟁에 불 붙인다고 해도 경쟁에는 언제나 1등과 꼴등이 존재하므로 내 자식 성적만 올라가는 법은 없다.

이번에 치르는 일제고사 역시 지역별로 성적이 공개된다. 정부에서 지난 ‘임실의 기적’과 같은 해프닝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준비를 한만큼 공신력도 점점 높아질 수 있다. 정부가 내신을 절대평가화 하겠다고 하면서 진급 시 상대평가를 해야 할 때는 일제고사를 활용하는 방식을 언급해 중요도를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내년부터 실시되는 일제고사는 다음 해 2월 개별학교 단위로 학교알리미 사이트에 공시된다. 수능성적 공개 이후의 상황과 같이 이제 전국의 초/중/고등학교가 순위별로 나열될 수 있음을 짐작하게 된다. 그리고 공개된 성적을 근거로 학부모와 학생들은 이제 학교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된다. 서울시에서 올해 말부터 시행하게 될 ‘학교선택제’가 그것이다.

이미 국공립대학 등록금보다 비싼 영어유치원과 사립대학 등록금과 비슷한 국제중, 대학 등록금을 훌쩍 뛰어넘는 특목고/자사고 등 ‘값비싼 엘리트 양성 코스’는 정해져 있지만, 일제고사 성적 공개와 수능성적 공개로 완성된 서열 지도는 초등학생 때부터 입시경쟁의 한복판에 서도록 만들 것이다. 단지 200만 명에 머물지 않고 전국의 모든 학생이 치열한 경쟁에 뛰어들게 된다.

뒤처지는 학생과 학교, 무엇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

마지막으로 일제고사는 뒤처지는 학생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아 문제가 더 심각하다. 정부가 몇 개의 학교를 선별해 시험을 치르는 표집평가로 시행하던 학력평가를 굳이 전수평가로 만든 것은 성적이 미달인 지역과 학교에 대한 지원을 집중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표집평가로도 가능했던 교육격차의 확인을 전집평가로 더 명확히 파악해 각 학교를 지원하겠다던 정부의 계획은 별다른 효과를 얻고 있지 못하다. 일제고사 성적이 낮은 학교에 취한 조치라고는 약간의 예산을 편성해 각 학교에 성적미달 학생을 줄이라는 압력을 넣은 것뿐이다. 이에 일선 학교에서는 일제고사에서 성적이 미달된 학생들을 방과후 학교로 남겨 보충수업을 하고 있는 꼴이다. 성적미달로 낙인된 학생들이 이를 달가워 할 리가 없다.

게다가 일제고사는 어떤 ‘학력’을 측정하고자 하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고 출제하는 시험내용도 객관식 문항에, 주입식/암기식 교육을 요하는 것이라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적어도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미래형 교육과정에서 말하듯 ‘글로벌 창의 인재’를 기르겠다는 생각이라면 그에 걸맞는 성취도 평가를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현 일제고사를 통해서는 학생들의 창의력 수준은 전혀 판별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듯 뒤처지는 학생은 어떤 ‘학력’이 뒤처진다는 것인지 분별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그런 학생과 학교를 지원하겠다는 상황 자체가 앞뒤가 안 맞는 말이다.

경쟁 아닌 지원이 교육격차 해소의 해법

일제고사는 학생과 학교를 성적으로 경쟁시켜 교육의 질을 높이겠다는 정부 교육정책의 기조 하에 탄생했다. 그러나 교육의 ‘질’은 어떤 것인지 철학이 없는 정부는 또다시 주입식/암기식 교육을 강화시켰을 뿐 21세기적 창의교육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우리에게 필요한 ‘학력’은 어떤 것인지 바로 알고 일제고사가 어떤 성취도를 평가해야 하는지 정립해야 한다. 전수평가도 표집평가로 전환해야 한다. 우리가 뒤따르던 일본 역시 얼마 전 “개별 학교가 성적 경쟁만 해서는 의미가 없다”며 과도한 경쟁교육의 폐해를 이유로 4년 만에 일제고사를 폐지하고 표집평가로 전환하지 않았는가. 대신 일본은 일제고사에 배정된 예산을 고교 무상교육과 육아지원 등 교육복지 차원으로 활용할 계획을 밝혔다.

우리 정부가 표방했던 미국 역시 오바마 대통령 당선 이후 NCLB(no child left behind)법 개혁을 가장 앞세워 평가 방식을 결과중심에서 과정중심으로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규격화된 획일적 평가방식이 아니라 리서치, 과학적 조사를 통한 문제해결능력, 학생들의 의견 개진 등의 교육을 실시해 그에 맞는 평가 방안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경쟁 일변도였던 신자유주의를 포함한 세계의 학업성취도 평가는 모든 학생들이 뒤처지지 않도록 사전에 예방하고 이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일제고사와 수능의 성적을 공개해 학교를 서열화하고 경쟁을 촉진시키는 것이 아닌 학생 개개인을 책임지는 교육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 공동체 차원에서 교육복지 시스템을 잘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학교에서는 담임교사, 교과교사 외에도 상담교사와 보건교사가 상시적으로 학생을 돌보고, 하교 이후에는 지역의 공부방이나 학교의 다양한 프로그램이 개설된 방과후 교실의 교사나 자원봉사자가 학생을 돌보는 식의 시스템이 그것이다. 여기에는 지역의 의사, 교수, 교육전문가 등이 함께 네트워크를 이룰 수 있다.

학생 개개인을 책임지고 그들의 학력과 건강권을 함께 고민하는 지역 공동체는 전체 교육문제의 밑그림으로 그려져야 한다. 정부가 말하는 교육격차를 해소를 위한 학업성취도 평가도 이러한 전제가 있어야 의미가 있을 것이다. 지금 정부가 손에 쥐어야 할 것은 채찍이 아니라 당근이다.

최민선/새사연 연구원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