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이슈2009.08.18 13:54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수천조 원의 자산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금융 패닉을 경험한 지 불과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때의 심리적 충격과 허탈했던 기억을 모두 잊은 듯 금융시장과 부동산 시장 곳곳에서 과열과 거품의 조짐이 일고 있다. ‘손실의 기억’은 사라지고 ‘수익률의 기대’가 부풀어 오르고 있는 것이다.

대박의 꿈이 파산의 공포로

사실 우리가 2000년 3월 미국 나스닥 거품붕괴와 함께 무너졌던 코스닥 신화의 허망한 붕괴를 목도하며 21세기를 시작한 경험조차도 10년을 넘지 않는다. 당시 5000포인트를 상회했던 나스닥이 수개월 만에 3000포인트 밑으로 떨어지고 한국의 코스닥 지수도 290포인트까지 치솟던 것이 50포인트라는 원점으로 회귀했던 기억 말이다. 당시 IT 대박의 꿈을 좇아 묻지마 투자를 하던 수많은 개미들의 머니게임은 처절한 좌절로 끝나게 된다.

그러나 머릿속의 ‘대박환상’은 사라지지 않았고 수 년 후 부동산과 금융상품에 대한 머니게임은 다시 되풀이된다. 2004년부터 저금리 기조아래 부동산 시장이 점차 들썩이기 시작하고, 때마침 수익경쟁을 벌이던 은행들이 대대적인 주택담보 대출을 풀어 실탄을 공급하자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전국적인 부동산 투기 열풍이 대한민국을 휩쓸기 시작한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최대의 금융거품이 세계적 차원의 폭발을 앞두고 있던 2007년 시점에, 한국에서는 2000만 계좌 이상의 펀드상품이 팔려나가고 있었고, 2006년까지만 해도 360만 명 전후를 맴돌던 주식투자인구가 2007년 440만, 지난해는 460만 명을 넘어서게 된다. 경제활동인구 5명 가운데 1명이 주식투자를 한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의 펀드 상품 개수는 1만 개를 육박하여 가히 세계최고를 기록한다. 종합주가지수도 2000포인트를 돌파하며 분위기를 한껏 띄우게 된다. 대박의 꿈을 좇아 부동산에, 펀드에, 주식에 자산을 쏟아 붓던 정점에서 글로벌 금융위기는 마침내 폭발을 하게 된 것이다.

2008년 10월 이후 본격화된 금융위기 충격은 거의 실시간으로 전 세계, 전 가구에 파급되었고 우리나라에도 순식간에 은행 파산의 공포, 기업 파산의 공포, 가계 파산의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특히 우리 가계가 느꼈던 공포는 2000년 IT버블에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순식간에 물가상승률 밑으로 소득이 추락하면서 가계에 들어오는 수입이 줄게 된다. 가계 자산의 77퍼센트를 차지하는 부동산 가격이 추락하고, 펀드와 주식이 반 토막 행진을 이어가면서 가계가 보유한 자산가치는 급격히 축소된다. 반면 각종 시중 금리가 7퍼센트 이상으로 뛰어오르면서 지출해야 할 이자비용은 급팽창하고 부채도 늘어나게 된다. 대박의 꿈이 파산의 공포로 전환된 것이다.

‘고위험’을 감수하고 ‘고수익’을 좇아 움직이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던 사회심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반면, 우선 부채를 줄이려는 부채 디레버리지가 시작되고 사람들은 다시 ‘안전자산’을 찾게 되었다. 2007년까지만 해도 전체 금융자산 대비 41퍼센트로 떨어졌던 예금이 2008년 말 기준으로 46퍼센트까지 올랐던 것이 이를 증명한다. 국민들이 자본시장에서 돈을 빼서 예금으로, 적금으로 몰리는 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심리적 수준을 넘어 구조화된 투기욕망

외환위기 이후 줄곧 자신과 가정의 미래를 투기성 짙은 투자에 걸어오면서 이미 우리 가정의 소득과 소비, 저축 구조는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되었다. 외환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가계는 비교적 안정적인 노동소득 상승과 15센트 이상의 높은 순저축률을 보이고 있었다. 그 결과 한국은행에 따르면 저축을 기반으로 우리 국민은 경기가 악화되어도 소비를 크게 줄이지 않았고, 반대로 경기가 과열되어도 소득의 일정부분을 저축으로 쌓는 경향이 많아 과잉소비와 경기과열을 부채질하지 않았다. 우리 국민들은 경기순환과 관계없이 안정적으로 가계 운영을 했던 것이고 그 결과, 가계의 움직임이 경기의 급격한 변동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가계 운용패턴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게 된다. 정부의 노동유연화 정책에 따라 노동소득이 불안정해졌는데도 불구하고, 저축을 줄이면서 부채까지 동원해서 소비를 확대하게 된 것이다. 때문에 가계 부채는 빠르게 늘어나서 지난해 기준 가처분 소득의 1.4배까지 폭증한다. 반대로 가계의 저축률은 빠르게 줄어들어 지난해 기준 2.5퍼센트를 기록하는데, 이는 저축률이 0퍼센트까지 추락했던 미국을 제외하고는 가장 낮은 수치다. 올해 미국인들의 저축률이 급상승하여 6.9퍼센트까지 올라간 점을 감안하면 대한민국은 가장 저축을 안 하는 나라가 되었다.

더욱이 한국 가정들은 소비 가운데에서도 부동산과 금융상품과 같이 경기변동에 민감한 상품들, 즉 투기성 자산에 몰리는 경향이 더욱 심해지게 된다. 안정적인 저축성 예금이 줄어들었고 보험 상품도 경기변동에 민감한 변액보험이 25퍼센트를 차지할 정도로 팽창하게 되며, 주식 투자도 2007년 기준으로 무려 21퍼센트가 될 정도로 직접투자가 간접투자에 비해 매우 높은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한국 가계 자산이 점점 더 ‘시장에 민감한’ 구조로 전환되었고, 그 결과 부동산 시장과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곧바로 가계의 소비지출에 큰 영향을 주는 구조가 된 것이다. 이제는 가계운용이 경기변동을 완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경기변동을 증폭시키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위기로 충격에 빠진 가계가 갑자기 자산운용 패턴을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제는 단순히 국민들의 고수익 기대, 투기 욕망이라는 심리적 요인으로만 투기 열풍을 해석할 수 없는 단계까지 왔다는 것이다.

되살아나는 투기 움직임

구조화된 투기적 가계운용구조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서서히 수면 아래로 잠복하기 시작한 2009년 3월부터 즉시 그 실체를 다시 드러낸다. 유동성 부족으로 한국과 신흥시장에서 자금을 대거 회수했던 선진국 금융자본들이 다시 한국 주식을 매수하기 시작하면서 주가가 올라가자 개미들은 이를 따라가기 시작한다. 가장 극적인 것은 이른바 공모주 열기였다. 지난 5월 하이닉스 반도체의 일반 공모 유상증자에 무려 26조 원에 달하는 자금이 몰려 사상최대를 기록했는데 이는 기존 하이닉스 주식 시가 총액의 몇 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우려할 만한 것은 개미들이 돈을 빌려 주식에 투자하는 행위가 부활하려는 조짐이 보인다는 사실이다. 주식을 사기 위해 증권사에서 돈을 빌리는 신용융자 잔액이 지난 6월 18일 4조 원을 넘어서고 있는데 이는 올해 들어서 178퍼센트가 늘어난 것이다.

부동산 규제완화를 틈타 부동산 시장도 비록 국지적 양상을 띠고 있지만 다시 거품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다. 서울 아파트 매매가는 올 4월에 월단위로 0.7퍼센트로 플러스 반전된 뒤에 지속적으로 올라가고 있고, 특히 서울 강남권은 1.18퍼센트까지 오르면서 2006년 가격대 회복을 말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지난 7월, 월 단위로는 9년 만에 처음으로 버블 세븐 지역 아파트 경매에 사상 최대 금액인 1500여억 원의 뭉칫돈이 몰리기도 했다.

투기에 대한 잠재적 욕망이 건재하고 있음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외환 마진거래(FX 마진거래) 열풍이었다. 환율변동에 따라 설계되고 자기 자본의 50배에 해당하는 투자를 할 수 있는 전형적인 투기적 상품인 외환마진거래에 올해 다섯 달 동안 무려 361조 원 이상의 자금이 몰렸는데 이 가운데 99퍼센트가 개인들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개인의 90퍼센트 이상이 손실을 보는 것으로 막을 내렸고 결국 금융위원회가 규제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시금 부활하는 투기욕망이 이번에는 무엇으로 귀결될 것인가. 제2의 부동산 버블과 금융버블을 만들어 낼 것인가, 아니면 녹색성장 분위기에 편승하여 세간의 우려처럼 ‘그린 버블’이라는 제3의 버블을 만들어낼 것인가.

확실한 것이 하나 있다. 공포를 불러일으킨 뇌관(금융 자유화와 부채를 기반으로 한 소비경제)은 아직 제거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기존 버블 시스템에서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더욱이 노동소득은 여전히 줄어들고 있고 실업률은 올라가는데, 교육비와 의료비 같은 경직성 지출은 늘어만 가고 있다. 노동소득에 기초하지 않고 금융적 투기수익으로 줄어든 소득을 보완하려는 구조가 온존하는 한 거품과 거품 붕괴, 탐욕과 공포는 끊임없이 교차될 것이다.

* 이 글은 <한겨레21> 2009년 8월 14일자 기고를 수정 보완한 것임을 밝혀 둡니다.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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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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