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이슈2008.12.10 09:28
신자유주의의 대안 모델로 주목을 받아온 베네수엘라 혁명은 여러 고비를 넘으며 현재 진행되고 있다.

지난 11월 23일 총 327명의 시장과 22명의 주지사를 뽑는 베네수엘라 지방선거가 일제히 치러졌다. 그동안 ‘선거불패’의 신화를 자랑하던 차베스가 지난 2007년 12월 대통령 임기제한조항 철폐를 포함한 개헌안 투표에서 처음으로 패배한 후 치러진 첫 선거였다. 그래서 더 큰 관심을 모은 베네수엘라 지방선거 결과를 분석해보고, 신자유주의를 대체할 볼리바리안 혁명을 추진하고 있는 베네수엘라의 이후 정치상황에 대해서도 살펴보도록 하자.

베네수엘라 지방선거, 묘한 변화


▲ 베네수엘라 자치시 선거결과. 이번시장선거에서 차베스는 역대 어느 선거보다 가장 많은 시장을 당선시켰다. 붉은색이 PSUV의 시장 당선인 수, 푸른색이 반차베스 후보의 시장 당선자 수다. ⓒ Defense of Marxism 이번 베네수엘라 지방선거 결과는 단순하게 평가하기 어려운 복잡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번 베네수엘라 지방선거 결과는 단순하게 평가하기 어려운 복잡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2007년 말 연임제한 폐지를 골자로 한 개헌 투표에서 처음으로 패배했던 차베스가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화려한 승리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그의 통합사회주의당(PSUV)은 전체 327명을 뽑는 시장선거 중 265개 지역에서 승리했다(81퍼센트).

2000년 친차베스 후보가 114개 시장선거에서 승리했고, 2004년에는 226개에 이르렀던 것에 이어 ‘차베스 열풍’은 또 한 번 재현됐다.

더구나 PSUV 후보들의 총 득표수는 550만 표(58퍼센트)로, 지난 개헌 투표 때 찬성표보다 120만 표가 많았다. 반면, 반차베스 진영의 총 득표수는 400만 표(41퍼센트)로 지난 개헌 투표의 반대표보다 50만 표가 줄었다. 차베스는 선거 직후 “볼리바리안 혁명은 지난해 개헌 투표 패배 이후 다시 제 궤도에 올라섰다”며 승리를 자축했다.

그러나 주지사 선거의 양상은 좀 다르다. PSUV는 선거주기가 다른 아마조나스 주를 제외한 전체 22개 주 중 17개 주에서 승리했지만, 2004년 선거에서 20개 주에서 승리했던 것과 비교하면 그 수는 줄었다. 더구나 반차베스 진영이 승리한 미란다, 술리아, 누에바 에스파르타, 카라보보, 타치라 주는 하나같이 전략적 요충지이다. 미란다, 타치바, 카라보보 주를 비롯해 베네수엘라 수도인 카라카스 시(Greater Caracas)는 차베스 지지 지역에서 반차베스 지역으로 옮겨간 경우다.

전략적 요충지 빼앗긴 주지사 선거

차베스가 빼앗긴 주들을 좀 더 톺아보자. 우선 미란다 주는 수도 카라카스가 속해 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곳이다. 미란다 주의 시장 선거에서 PSUV는 반차베스 진영이 5개를 차지하는 동안 15개 지역에서 승리를 거뒀지만, 반차베스 진영은 베네수엘라 수도인 카라카스를 포함해 수도의 5개 자치지역 중 4개를 차지했다.

여기에는 가장 가난한 지역인 카라카스 동부의 수크레 지역도 포함되어 있다. 이전까지 반차베스 진영은 카라카스에서 가장 부유한 차카오, 바루타, 엘 하틸로 세 개 시만 차지하고 있었지만, 이번 선거 결과 차베스 진영은 전 부통령이었던 로드리게스가 당선된 리베르따도르 시만 수성했다.


▲ 붉은색 지역은 차베스의 PSUV가 승리한 주다. 푸른색 지역은 반차베스 진영이 승리한 주이며, 화살표 모양은 차베스 지지 지역에서 반차베스 지역으로 바뀐 주를 표시했다. 하얀색 지역은 선거 주기 불일치로 선거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 AFP
전통적인 반차베스 지역인 술리아 주는 베네수엘라 석유 생산의 40퍼센트를 담당하는 곳으로, 미국이 자치독립운동을 부추기고 있는 지역이다.

지난 대선에서 차베스의 경쟁자였던 로살레스는 술리아 주지사였다. 그는 2002년 차베스 추출 쿠데타 직후 헌법 무효를 비롯한 정권교체 문서에 가장 먼저 서명한 인물 중 한 명이다.

타치라 주는 마약 밀반출과 반군 척결을 빌미로 미군이 개입해 있는 콜롬비아의 국경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민병대나 마약 밀반입자들이 출입하고 있어 안보상 중요성이 매우 크다.

이외에도 카리비안 해역에 위치한 누에바 에스파르타 주는 차베스 정부가 새로운 해군기지를 건설할 계획을 세워 놓고 있었으며, 카라보보 주는 산업시설이 집중되어 있는 곳이다.

따라서 차베스와 PSUV로서는 지방선거 결과를 마냥 자축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이 구도는 다양한 조건과 맞물려 베네수엘라 정국을 또 한 번 혼란스럽게 할 개연성이 높다.

발판 다진 반차베스 진영의 노골적인 공세

우선 반차베스 진영의 공세가 더욱 강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반차베스 진영이 공을 들인 전략적 요충지가 반차베스 진영으로 넘어갔다는 사실은 이들의 활동과 영향력이 볼리바리안 혁명 과정 상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2002년 쿠데타 실패 이후 2003년 사장들 파업, 2004년 대통령 소환 국민투표 등 차베스에 대한 도전에서 줄줄이 패배를 맛보았던 반차베스 진영은 이제 다시 본격적인 공세에 나설 태세다.

우리가 이명박 정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이제까지와 다른 방향의 정국운영을 추진하기에는 집권 초기가 가장 유리할 수 있다. 이미 미란다 주에서는 선거 직후인 11월 25일, 미션 리바스(중등 무상교육 프로그램)와 수크레(고등교육-대학)의 강의실로 이용되던 공공장소가 폐쇄되기 시작했다. 이에 맞서 지난 11월 28일 차베스 미션 운동의 수혜자들인 교사, 학생, 장애인, 노동자들이 새 주지사에게 위협받고 있는 중앙 정부의 사회적 미션과 프로그램을 방어하기 위한 시위를 벌였다.

11월 25일 밤 아라구아 주에서는 친 혁명적인 전국노동조합(UNT)의 좌파 지도자 세 명이 총격으로 사망하기도 했다. 이들의 사망은 암살방식과 그들이 관여했던 업무 등을 고려했을 때 콜롬비아 식품회사가 개입된 것으로 추측되지만, 하루 전날에도 이들이 아라구아 주지사와 연계된 경찰들의 공격을 받았었기 때문에 반차베스 세력의 개입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제 곧 퇴직하는 아라구아 주지사는 원래 차베스 진영에 속해 있었지만, 작년 개헌 국민투표 와중에 우파 진영으로 옮겨간 인물이다.

아라구아의 살인사건은 지난 11월 23일 지방선거 이후에 분출되기 시작한 베네수엘라의 계급갈등이 고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벌써부터 미국의 후원을 받는 반차베스 진영이 노동조합원, 풀뿌리 공동체 조직, 친 혁명적 사회 운동 등에 본격적인 위협을 가하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교육과 보건 관련 미션 사업이 위협을 받으면서 의료 미션에 참가하던 쿠바 의사가 반차베스 진영의 공격을 받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위기의 네오콘, 잠자코 있을까?

오바마가 취임하기 전, 미국의 대외 정보·공작 기관의 활동이 강화될 가능성도 크다. 차베스를 ‘남미의 후세인’ 쯤으로 치부하고 있는 미국은 그동안 CIA, NED, OTI, USAID, DAI, IRI 등을 통해 베네수엘라 정치에 적극 개입해 왔다. 미국이 베네수엘라 내부 정치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는 것은 이제 비밀도 아니다. 지난 대선 직전에는 미국의 후원을 받는 반차베스 진영이 사회혼란을 부추기기 위해 학생과 군인들로 위장한 반정부 시위대를 조직하고 대학생을 암살하는 등의 시나리오를 추진하려다 술리아 주 마라카이보 시장에 의해 폭로되기도 했다.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인은 일방주의 정책을 폈던 부시와 다른 대외정책을 천명하고 있고, 차베스 또한 오바마 당선인에게 “부시가 남겨놓은 문제들을 풀기 위한 열린 대화”를 제안하고 있어 양국관계가 호전될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바로 그런 점 때문에 부시가 남겨 놓은 대외 공작의 유산들은 자신의 효용가치를 증명해야 할 필요성이 커진다. 이들은 오바마가 취임하기 전에 최대한 베네수엘라의 혼란을 부추겨 자신들의 입지를 보장하고, 오바마의 베네수엘라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할 것이다.

세계 금융위기, 혁명에 독 될까?

한편 세계 금융위기 속에서 베네수엘라가 부딪힐 문제들도 변수로 남는다. 대체로 베네수엘라는 국제 금융위기를 충분히 방어할 메커니즘을 가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2002년 말에서 2003년 초까지 이어진 석유파업 이후 베네수엘라 석유 산업이 재국유화 되면서 외환보유고는 남미 국가 최대 수준으로 높아졌고, 통화 교환에 대한 통제력도 충분히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고질적인 인플레이션은 여전한 골칫거리이다. 올해 베네수엘라의 GDP 성장률은 1분기에 4.9퍼센트를 기록했고, 2분기에 7.1퍼센트를 기록해 상반기 전체를 통틀어 총 6퍼센트를 성장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은 지난해 22.5퍼센트에서 올해 32.2퍼센트로 급격히 상승했다. 물론 이런 인플레이션 증가는 차베스 집권 이전 두 정권 하에서의 증가율(59.4퍼센트, 45.3퍼센트)보다 낮지만, 차베스 집권 기간 동안 평균 인플레이션 증가율인 20.9퍼센트보다 높다. 다행스러운 것은 높은 인플레이션에도 불구하고 달러가치가 오랜 기간 고정되어 외환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식료품 등 기초적인 생필품을 해결하는 문제도 풀어야할 숙제이다. 올 1월 24.7퍼센트까지 치솟았던 식품 부족율은 7월 들어 12.1퍼센트로 낮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저소득층의 불만을 이용한 반차베스 진영의 공격거리가 되고 있다. 빈민이 많은 카라카스 시의 수크레 지역에서 반차베스 진영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빈민들의 불만을 효과적으로 이용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 베네수엘라의 GDP성장률은 차베스 정부 등장 이후 마이너스에서 반등되었다가 2002년 쿠데타와 석유파업 이후 -26.7퍼센트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석유파업이 종료된 이후 매년 높은 수준으로 성장해왔다. ⓒ 베네수엘라 중앙은행.

베네수엘라가 올 한해를 ‘경제주권의 해’로 정하고 균형적인 국내 발전을 노동자들의 자주 경영과 꼬뮨 등으로 극복하려고 노력하지만, 여전히 많은 수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금융위기의 파급효과가 생필품 가격의 변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베네수엘라는 올해 상품 수입이 크게 늘어(10.8퍼센트) 110억 달러를 지출했다. 주요 수입 품목은 의약품, 화학품, 기계설비, 오일, 유지, 고기, 우유, 시리얼, 핸드폰 등이다. 석유를 제외한 수출은 16억 달러로 작년 동기에 비해 5.8퍼센트 줄었다.

국제유가 하락 또한 국가재정에 부담을 주고 있다. 베네수엘라 수출의 94퍼센트를 차지하고 국가예산 수입의 절반을 감당하고 있는 원유 가격이 연일 폭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의 신사회주의 개혁 동력은 힘에 부칠 수 있다. 올 10월, 베네수엘라 국회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60달러 선을 유지할 것이라는 전제로 778억 달러에 이르는 2009년 예산안을 통과시켰지만, 11월 24일 현재 베네수엘라 원유는 54달러 선에서 거래됐다.

이런 상황들이 민심이반을 노리는 반대세력의 좋은 공격거리가 될 수는 있다.

차베스가 다시 꺼내든 헌법 수정 카드

이런 다양한 요인으로 인한 ‘반혁명’ 가능성에 대해 차베스가 꺼내든 카드는 연임제한 조항 폐지를 골자로 하는 ‘헌법 수정’ 국민투표다. 선거 직후 차베스는 “나는 어떤 개헌도 제안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민중들이 그렇게 한다면 난 피할 수 없다”고 말해 묘한 여운을 남겼지만, 점차 좀 더 적극적인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차베스는 수도 리베르따도르 시장 당선자를 위한 공식 행사에서 “나는 2019년까지 당신들과 함께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연설했다. 두 차례의 연임만 허용하는 현 헌법에 의해 차베스의 임기는 2013년에 종료된다는 점에서, 이 말은 3선을 허용하는 개헌 운동을 펼쳐 나갈 것이라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연설에서 차베스는 “지난 (개헌)투표에서의 패배는 나에게 더 이상 연임에 관한 헌법 수정을 강조하지 말라는 신호였다고 봤고, 내가 5년 동안 열심히 일하면 (나 대신) 책임을 떠맡을 수 있는 새로운 지도자가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 파시즘과 함께 등장한 커다란 위협을 목도하고 있으며, 언론은 민중에 대한 공격을 다시 개시했다. 당신들이 옳았다. 차베스는 떠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헌법 수정 국민투표는 곧 제안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2월 5일 차베스는 헌법 수정이 내년 2월을 넘기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며, 지방선거 운동에 나섰던 지지자들에게 조직을 유지해줄 것을 당부했다. PSUV 또한 국민청원을 받기보다 국회에 헌법 수정안을 발의하는 방법으로 국민투표까지의 시간을 최대한 단축시킨다는 방침을 이미 결정했다. 헌법 수정 문제를 년 초에 매듭지어 개헌 문제로 일 년 내내 발목을 잡히지 않겠다는 계산이다.

지금 당장 투표하면 수정안 통과 가능성 높아

지난 해 12월 2일 아슬아슬하게 부결된 개헌 투표를 다시 밀어붙이고 있는 이유는 지방선거를 거치며 지난 개헌 과정에서 잃어버린 지지자들의 결집이 이루어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2007년 출범 초기 PSUV가 제대로 조직정비를 하지 못한 상황에서 개헌 투표에 패배했지만, 이제 PSUV가 본격적인 활동을 펼칠 수 있을 정도로 정상궤도에 올랐기 때문에 헌법 투표 승리는 어렵지 않다는 판단이다. 친차베스 진영은 애초부터 이번 지방선거를 PSUV의 시험무대로 보고 있었다.

이런 자신감은 작년 개헌 투표에서의 패배가 반차베스 진영의 승리라기보다 혁명지지 세력의 결집 실패 때문이었다는 점에서 나온다. 차베스는 2006년 대선에서 730만 표를 획득했지만 지난 개헌 투표 때는 약 300만 표 적은 430만 표를 득표했다. 반면, 최근 몇 년간 반차베스 진영이 획득한 표는 항상 400만 표에서 450만 표 사이에 머물렀다. 반차베스 진영은 주로 전략 주의 득표에 온 역량을 집중하고 있을 뿐이다.

PSUV가 정상적인 활동을 펼쳐 지지자를 결집해낸다면 차베스의 승리 가능성은 지난 개헌투표 당시보다 높다. PSUV는 지난 개헌 투표가 부결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지나치게 복잡한 개헌안에 있었다고 보고, 개헌이 아니라 하나, 혹은 몇 개 조항만 고치는 ‘헌법 수정’ 국민투표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 개헌 시 수정 대상에 오른 조항은 69개에 달했고 일부사항을 못마땅하게 여긴 지지자들이 투표를 포기했다는 내부평가도 있다.

그러나 이 과정이 마냥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전략 주를 반대파에게 넘겨준 것은 반대파의 승리만이 아니라, 해당 지역의 친차베스 정부들이 민중의 기대를 채워주지 못한 때문이라는 평가도 있다. 몇몇 지방 정부는 부패와 관료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여전히 반노동자적인 경찰은 차베스 정부와 민중 간의 거리감을 넓히고 있다.

혁명진영 내부에서 직접적인 불만도 터져 나오고 있다. 전 국영방송국의 사장이자 외교부 차관이었던 빌리가스는 한 인터뷰에서 “(헌법 수정의) 목적이 뭔가? 차베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것인가, 혁명과정을 유지하기 위한 것인가?”라며 “최고 지도자 없이 혁명과정을 진행한다면 (혁명은) 성공할 수 없는가?”라고 물었다. 2002년 쿠데타를 저지하는 데 큰 공을 세웠고 차베스의 영원한 동지일 것 같았던 바두엘 전 국방장관이 2007년 개헌 투표 와중에 반차베스 진영으로 옮겨 간 상처도 아직 깊다.

차베스 리더십의 딜레마와 민중들의 선택

이처럼 베네수엘라 내·외적인 요인들이 복잡스럽게 얽혀 있는 베네수엘라 정국은 매우 혼란스런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지방선거에서 역습의 발판을 다진 반차베스 진영과 연임 제한 철폐로 반전을 노리고 있는 차베스 진영은 헌법 수정안 투표를 두고 또 한 번 격돌을 예고하고 있고, 이것은 이제까지 베네수엘라 정치가 그랬듯 제도화된 정치적 수단을 통해서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 혼란은 차베스의 승리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한 가지 의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바로 리더십의 딜레마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장송곡이 울러 퍼지고 있는 상황에서 베네수엘라 모델은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이를 지구 반대편의 한국에서 구현하고자 할 때 맞닥뜨리는 문제가 리더십 부재에 있다. 특히 2008년 대중의 폭발적인 정치참여와 함께 정치적 리더십의 공백을 절감했던 우리에게는 차베스와 같은 정치적 리더십이 무엇보다 아쉽다.

그러나 새로운 대안체제의 건설과정에 리더십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이것을 어디까지 보장해야 하는가는 논쟁거리다. “지도자의 장기집권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민주주의의 암묵적 전제를 지키기 위해 차베스의 헌법 수정을 반대해야 하는가”, 아니면 “반혁명세력의 공세가 강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혁명의 수호와 전진을 위해 리더십을 보존해야 하는가?” 이것은 베네수엘라 정치상황과 볼리바리안 혁명의 역사를 이해한다면 쉽게 대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베네수엘라의 성과는 차베스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것들이다.

지난 개헌 투표에서 투표를 포기한 300만 명의 차베스 지지자들도 이런 질문에 답을 구하지 못했을 수 있다. 그들은 지난 1년 동안 그 문제의 해답을 찾았을까, 확신하기 어렵다. 따라서 만일 베네수엘라 혁명이 리더십에 대한 해답을 구하고자 한다면, 문제는 헌법 수정안의 통과 여부가 아니라 그 과정이다. 딜레마 속에서 갈등하고 있는 베네수엘라 민중들이 베네수엘라 혁명과정에서 리더십이 갖는 의미를 스스로 찾을 수 있는 국민투표 과정을 모색해야 한다.

당장 내년 2월 이내로 논의되고 있는 투표 일정에 이런 과정이 기획되어 있는지는 아직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나 혁명과정에서 가장 큰 장애물은 반혁명 세력의 공격이 아니라 내부의 불신과 동요, 그리고 갈등이었다는 역사적 교훈을 기억한다면, 차베스는 혁명을 지지하는 대중들과 좀 더 깊은 민주적 의사소통을 시도해야 한다.

내년 초 헌법 수정 국민투표가 통과된다고 해서, 딜레마에 대한 베네수엘라 민중들의 혼란이 깨끗이 정리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아마도 이 문제는 볼리바리안 혁명이 풀어야할 가장 크고 중요한 숙제가 될 것이다.

손우정/새사연 연구원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