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지난 10월 3일, 이라크 전쟁비용 6,500억 달러를 뛰어넘는 7,000억 달러 구제금융 법안이 미국 하원을 통과하고 대통령 서명까지 마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대미문의 금융위기와 가속이 붙은 경기침체는 좀처럼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 사이 금융위기의 여파는 환율 급등과 외환시장 불안, 외국인 주식 매도와 주가 폭락, 수출둔화와 경상수지 적자행진 등 다양한 경로로 우리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시장만능주의 파산'과 '규제 풀린 신자유주의 종언'이라는 주장이 거침없이 나오고 있는 지금, 미국 정부 최후의 대책이라고 할 구제금융법안 발효를 분기점으로 미국발 금융위기와 세계경제 침체는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과연 7,000억 달러 투입으로 1년 넘게 지속된 금융위기를 잠재우고 실물경제를 회복시킬 수 있을까? 또한 미국식 자본주의라는 거인이 쓰러져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정부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가는 미국식 모델을 여전히 밀어붙일 수 있을까? 새사연과 오마이뉴스는 공동기획으로 <구제금융법 통과 이후 미국 경제와 한국>을 연재해 이 문제에 대한 실마리를 풀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7천억 달러 구제금융, 산소호흡기를 달다

“경제의 동맥이 막혔다. 이제 심장마비가 올 것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인 벤 버냉키가 구제금융(Bailout) 법안 통과를 호소하며 의회에서 한 발언이다. 의회 통과를 압박하기 위해 과장된 표현기법을 동원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1929년 대공황 전문가였던 버냉키의 절박한 심정이 반영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만큼 지난 9월은 일백년 전통의 투자은행들이 연이어 간판을 내리고 금융위기가 전방위적으로 확산되었던, 미국 경제사에 유례가 없었던 한 달이었다.

미국 신자유주의의 심장인 월가의 금융시스템을 회생시키기 위해서, 미국 정부는 최후의 대책으로 7,000억 달러의 세금을 월가의 부실자산에 투입한다는 카드를 꺼냈다. 그러나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장본인인 월가의 금융회사들에 대한 징벌은 없고 구제만 있었던 재무부의 법안에 미국 국민들은 분노했고, 심장마비 직전의 금융시스템에 산소호흡기를 대는 응급치료를 거부하기도 했다.

폭스 비즈니스 닷컴이 공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국민의 64퍼센트가 구제금융을 찬성한 의원들에게 표를 주지 않겠다고 응답했고, 표를 주겠다고 답한 국민은 10퍼센트에 불과했다. 자신의 지역구 의원들에게 반대표를 행사하라고 이메일을 보내고 전화를 거는 미국 국민들이 쇄도했다. 11월 4일 대선과 의회 중간 선거를 앞두고, 유권자들의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미국 정치인들은 결국 9월 29일 투표에서 구제금융법안을 찬성 205표, 반대 228표, 기권 1표로 부결시켰다.

부랴부랴 성난 미국 국민을 위한 민심 수습책을 몇 가지 끼워 넣고 이례적으로 상원투표를 먼저 거치는 등 우여곡절 끝에, 법안 발의 13일 만에 ‘2008 긴급경제 안정화 법령(Emergency Economic Stabilization Act of 2008, EESA)’이라고 명명된 451쪽 분량의 구제금융법안은 10월 3일 하원을 통과했고 그날로 부시대통령이 법안에 서명함으로써 일단락이 되었다. 심장마비 직전의 상태로 응급실에 실려온 미국 금융시스템이 간신히 산소호흡기를 달게 된 순간이다.

일찍이 없었던 초대형 외과수술 집도를 맡은 폴슨 장관

그러나 법안 통과는 시작에 불과하다. 일단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과 실러 베어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의장이 거들어서 월가의 금융시스템을 중환자실로 이송시킨 것 뿐이다. 이제 7,000억 달러라는 엄청난 수술비 사용을 허락받고 거의 ‘백지수표’나 다름없는 광범위한 권한을 위임받은 헨리 폴슨의 집도 아래 진행될 대수술이 남아 있다.

폴슨 장관이 첫 번째로 해야 할 대수술은 바로 부실 자산을 잘라내는 것이다. 그러나 어디까지가 부실자산인가. 도려낼 환부를 얼마나 신속하게 판단할 수 있는가. 얼마나 걸릴지 모를 수술기간 동안 다른 부위가 썩어가는 것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수술비는 7,000억 달러면 충분한가. 결정적으로는 이번 종양을 만들어냈던 장본인인 투자은행, 그 중에서도 으뜸인 골드만삭스 최고 경영자 출신인 헨리 폴슨 장관이 과연 집도를 책임질 자격과 능력이 있는가.

수백 년 자본주의 역사에서 일찍이 없었던 초대형 외과수술이 얼마나 걸릴지, 얼마나 성공적으로 진행될지를 예측할 수 있는 명의는 불행하게도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중환자실로 들어갔다는 것만으로는 월가 자신들도 안심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법안이 하원에 통과된 지난 3일에도 뉴욕 다우지수는 종가기준 1.5퍼센트(157포인트) 하락한 10,325포인트로 마감했다. 불안한 그림자는 여전히 월가를 떠나지 않고 있다.

우선, 수술해야 할 환부를 판단하는 것조차 상당한 시간과 복잡한 절차를 필요로 한다. 재무부가 국채를 동원하여 인수할 부실자산을 평가하고 인수방법과 절차를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부실자산이 뭔가. 설계한 사람들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하는 악명 높은 파생상품들이 아닌가. 우량 모기지부터 불량 모기지까지 다양하게 존재하는 모기지 채권을 기초자산으로 설계된 약 6조 달러 가량의 MBS증권들과, 이걸 다시 섞어서 만든 2조 달러 이상의 1차 CDO증권과 2차 CDO증권들, 그리고 이들 파생상품에 최고의 신용등급을 부여하기 위해 들었던 보험상품인 62조 달러 규모의 각종 CDS 상품들 가운데 부실자산 여부를 가려내고 적정한 매입 가격을 산정해야 한다.

그뿐이랴. 이들 파생상품을 한 두 개의 금융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수백 개의 금융회사들이 자기 자금의 수십 배를 서로 차입(leverage)하여 나눠서 보유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단지 몇 개의 대형 금융회사들의 자산평가만 해도 수개월이 걸릴 판이다. 자칫 잘못된 자산평가를 하게 되면 순식간에 유사한 유형의 자산들이 시장에서 턱없이 높게 가치가 매겨지거나 반대로 되면서 전체 부실자산 크기가 요동을 치며 변하게 될 것이다. 더욱이 재무부가 자산평가를 하고 있는 시간에도 월가의 시계는 멈추지 않는다. 신용 경색은 계속되고, 파산하는 기업들이 생겨나며 그 때마다 부실자산 규모 자체가 달라질 것이다.

지금까지 사적 기업이면서 공적 기관행세를 했던 신용평가기관들인 무디스, S&P, 피치 등은 이번 금융위기의 공범들이니 이들에게 평가를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알려진 바로는 재무부가 5~10개 정도의 자산평가회사와 계약을 하고 여기에 법률과 금융, 회계 전문가들을 동원하여 부실자산 매입을 위한 세부절차에 들어갈 예정이며 곧 자세한 방안이 나올 것이라고 한다. 토니 프래토 백악관 대변인은 “재무부가 가능한 빨리 부실자산을 사들이기를 원하고 있지만 그것은 복잡한 작업인 만큼 최소 몇 주가 걸릴 것”이라며 그 때까지 참고 기다리라고 호소하고 있다. 정말 몇 주만 지나면 해결이 되기는 할 것인가.

월가를 위한 대수술비 7천억 달러, 그것이면 족한가

상황이 이렇다 보니 두 번째 문제, 즉 7,000억 달러면 수술비로 충분한가 하는 의구심이 다시 커질 수밖에 없다. 이미 베어스턴스 구제에 300억 달러, 패니매이와 프레디맥에 2,000억 달러, AIG에 850억 달러 투입이 결정되었고 추가로 7,000억 달러 지불을 의회로부터 약속 받았지만 누구도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확신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애초에 부실자산 규모를 제대로 산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이 작성한 워킹페이퍼 “Systemic Banking Crises: A New Database(2008년 9월)"에 따르면 지난 30여 년 동안의 세계 금융위기를 분석한 결과 은행위기를 해결하는 데 평균 53개월, 즉 4년 이상이 걸리며 비용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3.3퍼센트에 달한다. 이 기간 동안 실질 GDP도 약 20퍼센트 이상 추락한다고 한다. 지금까지 들어간 자금에 앞으로 투입될 7,000억 달러를 합해도 미국 GDP 14조 달러의 10퍼센트인 1조 4,000억 달러가 안 된다. 그러나 IMF의 분석마저도 과거의 사례를 통해 유추한 것일 뿐이다. 백년 만에 올까 말까한 위기라고 하지 않는가. 이보다 훨씬 강도가 낮았던 과거의 경험에서도 GDP의 10퍼센트를 훨씬 넘는 자금이 들어갔던 것이다.

고려대 박영철 교수도 지난 10월 1일 “미국의 금융위기와 한국의 대응”이라는 토론회 발표 자료에서, 부실자산을 보수적으로 계산해도 최저 2조 달러이고 7조 달러까지도 올라가는데 문제는 매일매일 부실자산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7,000억 달러 규모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인 바 있다.

그러나 정작 더 큰 이슈는 세 번째 문제인데, 이들 금융회사들을 미국 국민 세금으로 살려주기만 하면 이들이 과거의 오류를 바로잡아 다시는 이 같은 금융사기 행각을 벌이지 않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미국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고 의심하고 있는 대목도 바로 이 지점이다. 지금 미국 재무부가 예정하고 있는 외과적 대수술이란 금융이라는 순환기 계통의 악성질병을 근원적으로 치료하려는 것이 아니라 당장 살려놓고 보자는 일종의 심폐소생술이라고 할만하다. 미국 정부당국자들도 인정하듯이 당장 살려놓는 것이 우선이지 재발방지를 위한 구조적인 금융재편은 손도 쓰고 있지 못한 형편이라는 것이다.

미국 정가와 학계에서 차제에 규제 풀린 금융시스템에 대한 새로운 규제와 감독체제, 투명한 경영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아직은 이들 주장이 어떻게 구체적인 제도로 월가를 통제할지는 전혀 결정된 바가 없다. 2009년 말까지 한시적으로 집행되는 이번 구제금융 법안에도 이들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단지 현재의 추세로 보자면 일차적 충격대상에서 비켜나 있는 대형 상업은행들에게 부실 투자은행이나 모기지 업체들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박영철 교수의 지적처럼 부실이 상업은행으로 확장되는 것이며, “미국의 지역은행 300개 중 100개의 파산이 시간문제라고 하는 등 금융부실이 투자은행에서 상업은행으로 넘어가는” 것을 조장할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진정한 금융위기 수습책이라고 봐야 할 금융규제를 위한 포괄적인 제도적 대책은 어느 세월에 나올 수 있을까. 11월 4일 대선이 끝난 후에 수술팀이 교체되면 근본적인 치유책이 준비될 수 있을까. 당장 금지했던 공매도 규제를 3일 법안 통과와 함께 해제하겠다고 발표하고 있는 걸 보면 그리 낙관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심장수술만으로 미국 신자유주의 거인을 살릴 수 있을까

2007년 초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시작된 이후 1년이 훨씬 넘게 금융전반의 부실과 파국이 오고 있는 동안 다른 부위들은 멀쩡했을까. 유감스럽게도 전혀 그렇지 않다. 실핏줄이 터지고 동맥이 경화되고 심장까지 증세가 전이되는 동안 미국 신자유주의라는 몸통 자체가 병들고 있었고 현재 순환기 못지않은 중병 초입에 들어서고 있다. 사실 진짜 구제금융이 필요한 부분은 바로 미국 경제의 몸통인 실물경제다.

미국 경제의 뼈대라고 해야 할 제조업들은 이미 실질적인 경기하락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미국 공급관리자협회(ISM)에서 10월 1일 발표한 9월 제조업지수가 7년만에 최저치를 기록했고 공장 주문도 2년 만에 최대 감소폭을 나타냈다. 제조업의 상징인 자동차 기업들도 9월 미국내 매출이 26퍼센트 급감했다고 발표했다. 이런 상황에서 월가의 신용경색은 미국 기업들의 정상적인 자금 조달 경로마저 원천봉쇄를 하고 있는 셈이 되었다.

자본시장에서 기업공개나 유상증자 등이 거의 불가능해진 것은 물론 회사채 발행시장과 기업어음시장(CP)도 얼어붙었고, 은행을 통한 기업 대출은 고사하고 은행에 예치해 두었던 자금마저 빼내야 하는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투자등급이 양호한 비금융 회사채 발행건수도 지난 9월 105억 달러에 불과했다고 톰슨로이터는 밝혔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410억 달러에 비해 25퍼센트로 쪼그라든 것인데, 초우량 기업인 GE조차 신용경색 여파로 지난 1일 120억달러 신규 보통주 발행에 나서기도 했다

현재 미국의 기준 금리는 지난 5월부터 2퍼센트를 유지하고 있지만, 유동성 경색으로 인해 은행들 사이에서 단기 거래에 적용되는 리보(Libor)금리는 9월 30일자로 6.87퍼센트를 기록하고 있는 실정이다. 10월 말에 기준금리를 다시 인하한다고 해도 호전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지난 30년 동안 금융이라는 순환기 계통만 기형적으로 비대하게 발달해왔던 신자유주의가 지금 뼈대와 몸통까지 짓누르며 경제 전체를 마비시키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번 금융위기의 시작 지점이라고 할 수 있는 주택경기의 경우 진정되기는 커녕 최근 더욱 빠르게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 20개 대도시의 주택가격을 반영하는 ‘케이스 쉴러 20지수’는 지난 7월 전년 동월 대비 16.3퍼센트가 하락했다. 이어지는 기획에서 상세히 다루겠지만 보다 본원적인 문제는 미국경제의 근본이라고 할 미국 국민들의 고용과 소득이 좀처럼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구제금융법이 통과되던 10월 3일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9월 비농업 부문 고용은 15만 9,000개가 줄어들어 올해 9개월 동안 총 76만 개가 감소했다. 공식 실업자만 천만 실업자에 근접하고 있는 것이다. 실업률은 8월에 이어 9월에도 6.1퍼센트로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는 중이다.

이처럼 미국 경제 전체로 병이 전염되기 시작했지만 구제금융법은 주택시장이나 실물경제 안정화와 관련된 어떠한 요소도 포함하고 있지 않다. 아직도 미국 경제는 응급실에 있다. 당장은 금융부실이 심각하여 응급조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실물경제 부문은 아직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여기에는 수술비가 추가로 얼마나 들어갈지 알 수도 없다. 응급실을 거쳐 중환자실에서 순환기 종양을 도려낸 뒤 실물경제라는 몸통은 어떻게 치료할 수 있을지 정해진 것이 없는 상태다.

내심 미국 재무부의 기대는 금융부실 안정화 → 신용경색 완화 → 기업 자금조달 회복 → 기업경기 활성화 → 고용과 민간소비 회복이라는 메커니즘이겠지만, 이렇게 순환기 응급조치로 경제 전체가 선순환을 타면서 살아나리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 보인다. 금융부실 수술만으로 끝난다면 미국경제는 향후 장기 입원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하이에나와 장의사들의 시대가 왔다

구제금융법안 통과 여부를 둘러싸고 전 세계가 미국 의회를 주시하고 있는 동안, 월가에는 부실로 먹잇감이 된 여섯 번째 규모의 와코비아 은행을 차지하려는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지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월가의 금융위기가 전방위로 확산되던 지난 9월 와코비아 은행 역시 부실에 몰려 인수자를 구하는 처지가 되자, 자신도 상당한 모기지 부실을 안고 있던 씨티그룹이 나섰고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의 지원 아래 와코비아의 은행부문을 21억 달러(주당 약 1달러)에 인수하는 합의를 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 10월 3일, 미국 웰스파고 은행은 주당 7달러(인수가격 151억 달러)라는 훨씬 좋은 조건으로 미국 정부지원도 필요 없이 와코비아 은행 전 부분을 인수하겠다고 나섰고 와코비아는 당연히 동의를 했다. 씨티그룹은 즉각 씨티그룹과 와코비아가 배타적 협상(exclusivity agreement)을 하기로 했으니 웰스파고와의 합의는 무효라고 반박하고 나섰고, 분쟁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10월 4일 연방 대법원이 나서서 씨티그룹이 와코비아의 배타적 협상자이니 법원의 추가적인 명령이 있을 때까지 씨티그룹과의 협상안을 유지해야 한다고 비상명령을 내린 상태다.

와코비아를 둘러싼 씨티그룹과 웰스파고의 쟁탈전은 앞으로 월가에서 어떤 풍경이 벌어질 것인지를 잘 암시해주고 있다. 화려했던 월가의 주요 금융회사들이 이후에도 계속 무너져 내릴 것이고 그 와중에 상처만 입고 생존한 금융회사들은 무너진 다른 기업들을 인수합병하여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는 문자 그대로 정글의 살풍경이 벌어질 전망이다. 현재로 보아서 미국 재무부의 7,000억 달러는 그나마 힘센 금융기업들이 인수합병 전쟁을 치를 실탄을 대는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을 수도 있다.

특히 지난해까지만 해도 미국 기업 인수합병의 1/3을 차지하면서 월가의 떠오르는 스타로 동경의 대상이 되었던 사모펀드들이 지금은 레버리지가 극도로 위축되어 숨죽이고 있지만, 월가의 고물상으로 자임하고 나서면서 인수합병을 주선하거나 주도할 가능성도 있다. 외환위기로 초토화된 한국 금융시장에 소리 없이 들어와 뉴브리지 캐피탈이 제일은행을, 한미은행을 칼라일이, 그리고 외환은행을 론스타가 가로채서 구조조정을 거친 후 비싸게 팔아버린 일이 본토인 미국에서 재연되지 말란 법이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살아남은 투자은행들은 먹고 먹히는 인수합병 전쟁의 와중에서 인수합병 자문을 명목으로 수수료를 챙기고자 할 수도 있다. 명성 높은 총잡이들과 보안관들이 모두 없어진 월가에 당분간 하이에나와 장의사들이 휘젓는 19세기 미국 서부개척시대가 펼쳐지리라 상상하는 것은 허황될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은, 우리 정부가 월가의 고물상들이 던지는 미끼에 현혹되어 철없이 ‘월가 쇼핑’을 운운하며 부실한 금융기업을 헐값에 인수해 보겠다거나 미국의 고급 금융인력을 스카웃하겠다고 기웃거리는 어리석음을 보이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러시아를 방문한 지난 30일, “미국 의회에서 (구제 금융안이) 통과되면 시장이 안정될 것으로 본다”며 “우리 정부가 긴급한 상황에 대해 선제 대응을 해 나간 것이 지금 생각하면 아주 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현실감이 극히 떨어지는 주장을 하고 있는 마당이니 월가보다 우리의 상황이 더 아찔해 보인다.

김병권/새사연 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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