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이슈2008.09.17 13:06



세계 금융위기, 그 끝은 어디인가


미국의 4위 투자은행인 리먼브라더스가 파산신청을 한데 이어 3위 투자은행인 메릴린치가 미국 최대 상업은행인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인수 합병되는 결정이 내려졌다. 미국 양대 정부보증 모기지 업체(GSE)인 프레디맥과 패니매이에 공적자금 2천억 달러가 투입되기로 결정된 지 불과 일주일 만이다. 미국 5위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에 구제 금융 300억 달러를 투입하고 JP모건 체이스와의 합병을 유도한 것이 지난 3월 14일의 일이다. 그 후 반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

500포인트 이상 폭락한 미국 증시를 필두로 전 세계 주식시장이 폭락하고 세계경제는 심하게 요동치고 있다. 한국 주식시장도 추석 직후인 9월 16일, 1400선이 맥없이 무너져 하루에 51조원의 평가자산이 공중 분해되고 환율은 외환위기 이래 최대치인 51원이 폭등해 116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그런데 진정한 문제는 이 금융불안의 끝이 어디인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를 포함한 일부 분석가들은 리먼브라더스와 메릴린치의 파산, 인수합병 결정으로 오히려 금융 불확실성이 상당부분 제거되어 금융 안정화에 한걸음 다가섰다고 자위하고 있다. 일부는 위기의 끝이 보이고 기회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성급한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그러나 이에 동의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지난 3월 미국 연준이 베어스턴스 구제 금융을 결정했을 때도 위기는 진정되었다고 믿었다. 일주일 전 매니매이와 프레디맥에 대한 지원을 결정했을 때도 이제는 상황이 진정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로 움직였고 이제 다음은 누구인가 하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시각으로 9월 16일, 또다시 미국 연방정부는 파산직전까지 몰린 최대 보험사 AIG에 무려 850~900억 달러를 투입하여 지분 80%를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베어스턴스, 패니매이, 프레디맥에 이어 4번째로 개별 기업에 대한 미국 정부의 직접적 구제금융이 전격 실시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끝은 아니다. 미국 최대 저축대부조합인 워싱턴뮤추얼이 다음 차례라는 얘기도 나돌고 있다. 남아있는 미국의 1, 2위 투자은행인 골드만 삭스와 모건 스탠리조차 금융위기를 피해갈 수 없다는 주장도 들린다. 최고의 투자은행인 골드만 삭스가 발표한 3분기 순이익은 무려 70%가 급감하여 9년 만에 최대 감소를 기록하기도 했다.

세계 주요 국가 정부들이 수백억 달러씩 유동성을 풀겠다고 발표했는데도 금융 불안은 전혀 진정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모기지를 담보로 한 구조화 파생상품인 RMBS와 CDO에 이어 일종의 모기지 보증보험인 신용디폴트스왑(CDS)으로 부실이 확산되고 있는 징후도 보인다. 한 세기만에 올까 말까한 금융위기가 왔다고 주장하는 마당에 누군들 그 끝을 장담할 수 있겠는가. 더욱이 위기의 시발점이었던 주택담보 부실이 해소되지 않고 주택가격이 여전히 하강곡선을 타고 있는데 위기가 끝났다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시장 스스로가 신뢰를 회복해야

현재의 심각한 상황을 진정시킬 대책으로 각종 언론매체와 분석가들이 입을 모아 주장하는 것이 바로 ‘시장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장 부실위험에 빠진 AIG나 워싱턴뮤추얼을 포함하여 주요 금융기관들이 ‘시장’이 신뢰할 만한 자구책과 자금조달 계획을 세워야 상황이 진정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현재의 위기가 어디에서 발생했는지 살펴보자. 금융시스템에 존재했던 각종 규제와 업무 장벽을 허물고,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기 시작하면서 금융위기와 파국의 씨앗이 잉태되었던 것 아닌가. 1930년대 대공황을 겪은 후 은행과 증권, 보험 업무를 분리시킨 ‘글래스-스티걸법’은 1999년 ‘그램-리치-브릴리법’으로 무력화되었고, 규제와 감독을 거의 받지 않는 헤지펀드가 등장하여 위험도가 극히 높은 각종 파생상품을 제한 없이 대량으로 유통시켰고, 규제가 풀린 투자은행과 상업은행들이 여기에 깊숙이 개입하면서 오늘의 세계적인 금융파국이 초래된 것이다.

시장이 조장한 금융부실을 번번이 해소시켜준 것은 바로 시장이 아니라 국가였다. 이번 서브 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베어스턴스로 확산되고, 양대 모기지 업체로 걷잡을 수 없이 번져 나갈 때 그것을 막은 것은 미국 연방 정부였다. 리먼브라더스의 경우 정부가 지원을 포기했기 때문에 곧바로 파산신청을 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지난 연말 모기지 부실로 인해 씨티그룹과 메릴린치 등 대형 은행이 불안해지자 이를 긴급히 구제해준 것은 바로 아시아와 중동의 국부펀드였다. 그러나 그 후 손실규모가 계속 확대되고 시장의 안정성을 보장할 수 없게 되자, 세계적으로 거의 유일하게 대규모 자금 조달을 할 수 있는 이들 국부펀드마저 미국 대형 은행들이 줄줄이 파산하는 상황을 보면서도 철저히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즉, 시장 메커니즘을 따라 확산된 파생상품 연쇄고리와 부실의 사슬이 너무 복잡하게 얽혀있어 이제는 정부가 나서서 몇 개 금융기업을 구제해 준다고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이다. 어려울 때는 정부에게 손을 벌리다가, 심지어 정부가 개입해도 해결이 용이하지 않을 만큼 상황을 복잡하게 만든 것은 바로 시장 자신이다.

따라서 지금 신뢰를 얻어야 할 대상은 바로 시장 자신이다. 불신의 표적이 되고 있는 것은 금융시장 자체다. 금융시장은 각국의 정부들과 국민들에게 자신이 안전하게 작동할 수 있다는 신뢰를 주어야 한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규제 풀린 시장만능의 금융시스템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GM의 구제요청을 들어줄 겨를이 없다

그렇다면 지금의 위기는 오직 금융기업에 국한 되는가. 실상은 그렇지 않다. 미국 산업을 대표해왔던 GM과 포드 등 전통 제조업들도 수년전부터 심각한 위기에 빠져있는 상태이며, 최근 금융위기로 이들 역시 파산위기에 직면했다. 이들 기업이 자동차 분야에서 일본의 도요타에게 추월당한 것은 물론 신용상태가 이미 정크본드 수준으로 추락한 것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현재 GM의 회사채 금리는 17~27%, 포드의 회사채는 15%에 거래된다. 사실상 신용이 거의 바닥이라고 할 수 있다. 블룸버그 통신에 의하면 GM과 포드는 올해 2분기에만 약 240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사상 최악의 경영상황에 내몰린 GM, 포드, 클라이슬러 등 자동차 3사는 현재 미국 연방정부에게 ‘에너지 고효율 자동차 개발’ 명목으로 500억 달러 자금 지원을 요청해 놓고 있는 상태다. 연방정부는 250억 달러 자금 지원을 결정하고도 여전히 집행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마디로 금융시스템 부실의 파급을 막는데도 힘에 부쳐, 제조업을 살리기 위한 여지가 없는 상태다.

물론 이런 결과는 미국 산업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1980년대 이후 미국은 철저히 금융산업에 의존하는 성장을 해왔다. 미국 기업의 순이익 가운데 1/3가량이 금융기업에서 나올 정도다. 최근 파산위기에 직면한 투자은행들이 하나같이 50대 글로벌 기업 안에 드는 대규모 기업들이라는 사실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한때 GM은 자동차 제조업에서 밀리는 경쟁력을 금융부분을 키워 만회하려고 했다. 그래서 GM의 수익가운데 금융자회사인 자동차 할부금융회사 GMAC의 비중이 갈수록 커졌다. 하지만 모기지 부실 사태가 커지고 신용경색이 시작되면서 GMAC은 GM의 수익 원천이 아니라 손실 원천으로 탈바꿈했다.

뒤늦게 GMAC은 인력 규모가 1만 4천명에 달했던 모기지 자회사인 레지던셜캐피털의 규모를 대폭 축소하는 등 구조조정을 서둘렀다. 그러나 이미 7개 분기 연속 적자 행진을 기록하면서 총 72억 달러의 손실을 본 상태다. 결국 도요타의 자동차금융 및 리스사업 자회사인 도요타파이낸셜서비스가 미국 시장 상반기 시장점유율 6.35%를 기록하며 6.2%를 차지한 GMAC를 추월했다.

GM과 같은 적자 기업은 물론 우량기업들도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면서 전체 실물경제가 위기에 처하고 있다. 프리츠 핸더슨 GM 사장은 지난 15일, "기업의 신용시장 차입이 대부분 중단된 상태"라면서 리먼브라더스 위기로 "당분간 상황이 더 나빠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동시에 "최소한 몇 주 아니면 몇 달간 험난할 수밖에 없다"면서 "AAA+등급 기업 정도나 금융시장을 통한 차입이 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버락 오바마 후보가 선거운동 연설에서 “월스트리트 위기가 문제가 아니라 메인스트리트(실물경제) 위기가 더 문제”라고 한 지적은 그런 점에서 전적으로 타당하다.

그러나 IT를 비롯한 몇몇 분야를 제외한 제조업 분야에서 상당부분 경쟁력을 상실한 미국경제가 비금융 분야에서 경제회생의 기회를 다시 잡을 수 있을지는 매우 불투명하다.

산업은행의 리먼브라더스 인수를 청와대가 막았다?

세계 금융위기로 유수의 글로벌 투자은행들이 줄줄이 파산하거나 파산선고를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 한국은 글로벌 투자은행 육성이라는 장밋빛 미래를 향해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하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어처구니 없는 것이 바로 산업은행의 리먼브라더스 인수시도였다.

현 정부는 산업은행을 민영화 한 후 투자은행으로 전환할 계획을 세운 상태다. 이에 전 리먼브라더스 한국지사 대표였던 민유성씨를 산업은행 총재로 임명했고, 지난 6월에는 부실에 빠진 리먼브라더스 인수합병 시도를 시작한다. 명목은 세계 굴지의 글로벌 투자은행을 인수하면 “한국 금융기관들의 눈높이가 일제히 월스트리트 수준으로 높아지면서 말로만 외치던 금융세계화의 문이 열릴 것”이라는 것이다.

이후 8월에는 보다 구체적인 인수협상에 들어가는데, 민유성 산업은행 총재는 9월 16일 기자들과의 얘기에서 “위험을 분리하고 구조조정을 거쳐 리먼을 인수했더라면 국익에 도움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며 강한 집착을 보였다. 실제 9월 10일까지 자금 투입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내년 2월에 자금을 투입하는 구체적인 일정까지도 준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프레시안>에 의하면 <조선일보>를 비롯한 유력 보수 일간지 역시 최근까지 산업은행의 리먼브라더스 인수를 권유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8월 27일자 <조선일보>에는 “만년 금융 후진국인 우리가 요즘과 같은 가격에 세계 일류를 인수할 기회는 자주오지 않는다. 리먼의 위험만큼 기회가 커보이는 것은 그때문”이라는 주장이 실렸다.

이처럼 리먼브라더스 인수를 종용했던 보수 언론들은 리먼브라더스가 파산신청을 하자 전혀 다른 주장을 한다. <미디어 오늘>이 보도한 바에 의하면 <동아일보>의 경우 9월 16일자 기사에서 "산업은행이 국제금융시장을 뒤흔든 리먼브러더스 인수를 한때 강력 추진했으나 청와대의 반대로 최종 단계에서 포기했던 것으로 16일 알려졌다"고 주장하여 리먼브라더스 인수포기에 청와대의 역할이 결정적이었음을 내비쳤고, 이어 청와대가 이를 전면 부인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초 리먼브라더스 인수에 구체적 관심을 가졌던 금융기관은 메릴린치를 인수한 뱅크오브아메리카 외에 미국과 항상 긴밀한 공조를 취해왔던 영국계의 바클레이 정도였다. 유럽의 어떤 금융기관도, 아시아와 중동의 국부펀드도 부실 덩어리인 리먼브라더스 인수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위험만큼 기회가 컸던 것이 아니라” 오로지 ‘손실 위험’만을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명색이 국책은행이고 정부가 총재를 임명하는 산업은행에서 자그마치 60억 달러를 투입해야 했던 리먼브라더스 인수 협상을 독자적으로 결정해서 추진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더욱이 지금은 우리나라도 달러 수급 부족에 허덕이고 있고 9월 위기설로 외환시장이 요동치던 상황아닌가. 리먼브라더스가 파산신청을 한 ‘챕터11’은 법원 감독아래 기업회생절차를 밟게 한 것으로 공식적인 청산을 의미하는 ‘챕터 7’은 아니다. 산업은행의 자금 투입 여지가 남아있다는 뜻이다. 지금은 굴지의 글로벌 금융기업마저 줄줄이 파산위기에 몰리고 있는 상황이다.

제조업에 기반한 국민경제를 다시 생각할 때

금융혁신을 내세우며 세계 경제를 주름잡던 월가 금융기업들의 첨단 금융기법이 고수익을 내며 승승장구하던 시절은 길게 봐야 30년, 한 세대를 갓 넘겼을 뿐이다. 금융위기의 진원지인 미국에서는 현재 첨단 금융기법의 총아였던 파생상품의 위험성에 대한 논의가 분분한 실정이다. 한발 더 나아가 현재 금융위기의 중심부가 되고 있는 ‘투자은행 수익모델’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론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월스트리트저널조차 9월 16일자 기사에서 현재 세계 금융위기로 기존의 투자은행 모델이 지고 전통적인 상업은행이 세계 금융의 중심으로 다시 부상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고작 연 3~4% 이익밖에 보장되지 않는 과거식 자산운용을 벗어나 단기간에 30~40%의 수익률을 좇아갔던 최근의 관행에 대한 비판이다.

그러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우리나라는 내년 2월 자본시장 통합법 시행을 앞두고 유력 제조업들마저 금융시장에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다. 국민은행 등 유력 은행들이 글로벌 은행으로 가겠다며 빅뱅을 서두르면서 이들 역시 투자은행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여기에 정부마저 기업은행과 산업은행 민영화를 앞세워 투자은행 시장을 키우는데 조력하고 있는 형편이다. 조만간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으로 벌어들인 막대한 자금이 투자은행 시장으로 유입될 상황이다.

사실 지난 신자유주의 30여년의 역사는 경제 금융화(financialization)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런데 금융화란 무엇인가? 국민경제에서 금융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제조업 상품의 생산이나 교역보다는 금융 상품과 금융 거래를 통한 이윤 창출의 계기와 규모가 커지는 것이다. 또한 세계적으로 자본 이동의 자유와 속도가 빨라지고 금융시장의 통합성이 높아지는 현상이 금융화의 표면적 모습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이 모든 현상은 ‘금융 혁신’, ‘금융 첨단화’라는 이름 아래 정보통신기술의 혁명과 맞물리면서 초고속으로 진행되었다.

그 결과 금융은 세계적으로 급팽창하였고 미국 월가는 글로벌 경제의 심장부로 자리매김 하게 되었다. 더 이상 사람이 노동을 하고 노동이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 일하는 경제(Money working Economy)’, 우리가 잠든 사이에 돈이 지구를 돌며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는 발상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리고 금융이야 말로 선진국 경제가 발전하는 원동력이자 ‘미래의 핵심 성장 산업’으로 추앙받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오늘날 신자유주의를 글로벌 스탠더드로 일궈냈던 금융시스템은 신자유주의를 끝없는 함정으로 몰아넣고 있으며, 그 결과가 현재의 세계 금융위기다. 금융기업에 밀려 찬밥신세를 면치 못했던 제조업들에게 다시 주목을 돌리는 것은 첨단을 거스르는 구태의연한 발상일까? 아니면 지금 목도하고 있는 금융위기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다시 찾아야 할 정도일까?

김병권/새사연 연구센터장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