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스/ 새사연 정회원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 이다. 1908년 3월 8일 미국 루트거스 광장에서 1만 5천여명의 여성노동자들이 참정권과 노동조합결성의 자유를 요구하며 열린 대규모 집회가 그 기원이다. 그 이후 각 나라는 3월 8일 여성의 권리 및 ‘진보와 자유’를 주장하는 여러 행사를 개최하였으며, 1977년 3월 유네스코는 공식적으로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선언하였다. 한국에서도 1920년대 세계 여성의 날을 최초로 기념했으며, 1985년 <세계 여성의 날 기념 한국여성대회>로 부활해 오늘 서울시청에서 33회 대회가 개최된다.


하지만,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여성의 권리운동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 사회, 최소한 한국 행정부에서 여성을 보는 인식은 모성, 출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최근, 행정자치부가 만든 전국‘가임기 여성’ 수 등을 표시한<대한민국 출산지도> 나 ‘여성의 높은 교육수준’을 출산율 저하의 원인으로 분석하여 대안으로 ‘휴학, 연구, 자격증 취득을 하면 대기업과 공공기관 채용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고지하자’는 보건복지부 산하 정부출연 연구기관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저출산 대책이 관료들의 낮은 여성인권 인식 수준을 증명한다.


이 관점들이 불쾌한 것은 여성의 몸을 사회에서 ‘타협 가능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여성의 몸은 여성 그 자신의 것이다. 나의 자궁은 온전히 나의 것이지, 사회 유지 및 세금 감소를 막기 위한 출산의 도구로 존재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5년 전, 나는 화학생리대 사용 거부를 선언했다. 그리고 택한 것은 생리컵(menstrual cup, 체내에 삽입해 생리혈을 받는 컵)생리컵을 쓰는 것은 나에게 ‘해방’을 의미하였다. 한 달에 5일 이상 있는 불편하고 찝찝한 느낌으로부터의 해방, 매번 ‘조물주는 여성을 싫어하지’ 라며 여성으로 태어난 것을 원망하는 것으로부터 해방, 그리고 여성을 얽매는 전통적인 정숙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 이 경험을 통해 난 내 질과 자궁을 사회가 원하는 역할에서 탈피시켜, ‘단지’ 나의 몸으로만 존재케 할 수 있었다. 이제 나에게 월경은 한 달에 한 번 번거롭게 구는 객식구같은 대자연의 저주가 아니며 자궁은 내가 잘 관리해 온 손톱, 피부와 같이 내가 잘 관찰하고 보살펴 줄 내 몸이 되었다.


우연히 온라인에서 생리컵을 발견했다. 실리콘이나 고무로 된 컵을 질 내부에 넣어 생리혈을 담아내는 생리컵은 넣고 빼는 것에 대한 진입장벽만을 극복하면, 반영구적이다. 경제적 이익 외에도 보다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며, 화학약품으로 인한 생리통은 발생하지 않는 장점이 있었다.


생리컵의 종류는 생각보다 다양해서 나에게 맞는 생리컵을 찾기 위해서는 몇 가지 단계가 필요했다. 먼저 적절한 사이즈를 알기 위해 생리혈의 양을 알아야 한다. 둘째, 자신의 질 길이에 맞춰 생리컵의 길이를 정해야 한다. 셋째, 배나 방광의 민감도에 따라 탄력성을 결정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은 우선 배나 방광, 질, 자궁경부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요구한다.


모든 단계가 생소했지만 특히 두 번째 단계, 나에게 적합한 생리컵의 길이를 알아가는 과정이 가장 큰 장벽으로 다가왔다. 사람마다 자궁의 위치가 다르므로 질 입구에서 자궁경부에 도달하는 길이도 다르다. 이 길이에 맞춰 생리컵을 구매해야 하는 것이다.


길이를 재는 도구는 가운데 손가락이었다. 그렇다. 나는 생리컵을 제대로 쓰기 위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질 안에 손가락을 넣은 것이다. 단순 길이를 잴 뿐만 아니라 약간 손가락을 움직여 질 내부에서 자궁경부에 도달하는 정방향인지 혹은 오른쪽, 왼쪽으로 약간 기울어져있는지를 확인하였다. 내 질 내부가 어떤 모양인지 느끼는 것은, 낯설지만 친숙한 동굴을 탐험하는 것과 같았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질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아 넌 이렇게 부드러웠구나! 약간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구나! 그걸 이제야 알아채서 미안해.


지난 달에 생리컵을 사용한 뒤 이번 달 월경이 기다려진다고 하면 너무 과장된 표현일까? 하지만 일부는 진실이다. 이번 달에도 몇 알의 진통제와 번거로움은 함께하겠지만 내 몸과 나눌 대화를 생각하면 그 시간이 예전처럼 고통스럽지만은 않다. 내 몸은 온전한 나의 선택(My body, My Choice) 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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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7.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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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