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0-05                                                                                                                  박세길 / 새사연 이사






누구나 우리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음을 직감하고 있다. 위기의 징후는 다양하며 강도 또한 느끼는 사람에 따라 제각각이다. 위기에 임하는 최선의 태도는 최악의 경우를 염두에 두는 것이다. 과연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위기는 어느 정도 수준일까. 거시적인 역사의 흐름을 통해 그 맥을 짚어 보도록 하자.

중국의 대표적 고전인 삼국지는 ‘천하는 합쳐졌다 갈라지기를 거듭한다’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중국 역사를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구절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중국의 역사는 한족과 북방 민족 사이의 쟁투와 긴밀한 연관을 갖고 있다. 분열의 시기에 북방 민족은 중국 대륙으로 진출해 패권을 다투었다. 남북조 시대의 5호16국과 거란족의 요, 여진족의 금, 몽골족의 원, 여진족의 청이 그에 해당했다.

북방 민족의 진출은 중국인들에게 상당한 시련을 안겨다 주었지만 자칫 정체 상태에 빠질 수도 있던 대륙 안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요소가 되기도 했다. 고 신영복 선생은 이러한 북방 민족의 역할을 ‘변경혁명’의 한 모델로 파악하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중국은 강력한 문화의 힘을 지닌 거대한 용광로였다는 사실이다. 중국 안으로 진출한 북방 민족 대부분이 문화의 바다 속에 흡수 용해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 식으로 역사에 그 존재를 드러냈던 북방 민족 대부분이 사라져 없어지는 운명해 처했다. 일부는 중국과의 충돌을 피해 머나 먼 서쪽 세계로 활동 무대를 옮기기도 했다. 투르크가 대표적이다. 한국 역사 교과서에 돌궐로 표기되었던 투르크족은 서쪽으로 이동, 셀주크 투르크와 오스만 투르크를 거쳐 오늘날 터어키 공화국에 이르고 있다.

북방 민족 중에서 장구한 세월 동안 중국에 흡수되지 않은 채 자신의 터전에서 주권을 유지해 온 경우는 사실상 우리 밖에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결코 우연하게 얻어진 결과가 아니었다.

통일과 분열을 반복한 중국 역사의 패턴은 우리 민족의 판도 형성에서도 강력한 변수로 작용했다. 중국 대륙이 분열에 휩싸여 있을 시기에 우리 민족은 판도를 확장시킬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춘추전국 시대 고조선과 남북조 시대의 고구려는 강력한 세력 판도를 형성할 수 있었다. 반면 중국 대륙에 통일된 왕조가 들어서고 세력을 확대하기 시작하면 우리 민족은 심한 압박을 받아야 했다. 통일왕조인 한나라의 공격으로 고조선이, 당나라의 공격으로 고구려가 멸망하기에 이르렀다.

이 지점에서만큼은 다른 북방 민족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상황을 헤쳐 나가는 끈질김에서 차이가 났을 뿐이다.

수나라는 300만 대군을 동원했음에도 고구려를 정복하는데 실패했다. 중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군주로 평가받는 당 태종은 친히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 원정에 나섰으나 참담하게 실패하고 말았다. 쓰라린 경험을 한 당 태종은 결코 고구려를 넘보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었다. 하지만 그의 아들 고종은 고구려 원정에 나섰고 결국 성공을 거두었다. 신라와의 동맹이 성사되었고 고구려 지배층 내부가 분열되면서 가능한 일이었다. 고구려 정복에 성공한 당나라는 내친 김에 신라까지 점령하려 시도했다. 결국 신라와 당나라는 30년 동안 전쟁을 벌여야 했다. 신라는 그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당나라를 한반도에 밀어낼 수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옛 고구려 땅에서는 발해가 일어나 강대한 세력을 형성했다. 이로써 엄청난 노력에도 불구하고 당나라의 점령 시도는 완전 실패로 끝났다.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중국의 한족 사이에서는 우리 민족을 점령하는 것은 무모한 시도라는 인식이 깊이 뿌리내렸다. 한족 국가로 분류할 수 있는 송나라와 명나라는 우리 민족을 점령하려는 시도 자체를 하지 않았다. 다른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지만 역사적 경험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수차례에 걸쳐 군사 공격을 시도했던 몽골의 쿠빌라이조차도 고려의 화친 요구에 응하면서 고려 땅은 당나라도 점령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주변에 상기시켰다.

일설에 의하면 우리 민족은 960회에 걸친 크고 작은 외침을 받았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굴절을 겪었고 터전이 좁아지거나 다양한 간섭을 받기도 했지만 최소한 주권국가로서의 전통만큼은 지켜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같은 전통조차도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음이 드러났다 일제 식민 지배가 바로 그것을 입증한다. 그런 점에서 일제 강점은 ‘천년의 치욕’이라 할 수 있다. 천년 이래의 치욕이며 천년이 지나도 잊어서는 안 되는 치욕이라는 의미에서 그렇다.

어느 모로 보나 방심은 금물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 민족이 심각한 존폐 위기에 내몰린 것은 세 가지 요인이 작용하면서부터였다. 첫째 주변 강대국이 급격히 세력을 확장할 때. 둘째 한반도 지형 내부의 분열이 극대화될 때. 셋째 지배 엘리트 사이에 대외의존성이 심화되었을 때이다. 구한말 중국을 견제하자고 일본에 의존하거나 일본을 견제하자고 러시아에 의존하다 끝내 망국으로 치달았음을 상기하라!

공교롭게도 오늘날 이 세 가지 요소가 한꺼번에 밀어닥치고 있다. 먼저 이웃 중국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3조 달러가 넘는 외환보유고를 바탕으로 전 세계를 매수하고 있다. 벤처 창업과 IT 분야에서 미국의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하고 있다. 철강, 조선, 석유화학 등 제조업 분야에서는 한국을 추월한 상태이다. 중국의 ‘굴기’는 고스란히 한국 경제 위기 심화로 이어지고 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정작 남과 북은 북핵 위기를 둘러싼 갈등과 대결로 아까운 역량을 소진하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드 배치로 불거지고 있듯 대미 의존도마저도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형편이다.

혹자는 위기를 지나치게 과장하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역사는 위기를 과소평가했다가 패가망신 경우가 훨씬 많다. 최선은 역시 최악의 경우를 염두에 두고 대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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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