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2/11                                                                        강세진 / 새사연 연구이사





전세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랑받아왔던 임대차 형태이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세입자와 집주인 모두에게 그러했다. 특히 도시지역에서 그러한데 많은 인구가 한정된 토지에 몰리다 보니 토지가격이 치솟고 이에 따라 주택가격도 일반 서민이 홀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통계가 남아있지 않아서 경험과 기억에 의존하여 과거의 전셋집을 떠올려보자면 집을 여러 칸으로 나누고 그것들 중 집주인이 쓰지 않는 것을 세를 놓는 형태였다. 그것을 목돈이 없는 사람들은 사글세로 목돈을 마련할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전세로 얻었는데 집을 마련하면서 빚을 진 집주인들에게는 빚을 갚기 위한 목돈으로 쓸 수 있는 전세금이 더 요긴했었다.

한편으로는 급속한 도시화와 도시개발이 맞물리면서 급속하게 집값이 오르는 것을 목격한 사람들이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경우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시세차익을 노리겠다는 심산이었는데 시중에 저렴한 전셋집이 많았던 1980년대에는 매매가의 30% 수준에 전세가격이 결정되었다. 하지만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1칸에서 벗어나 번듯한 집을 얻으려는 욕구가 늘어나면서 새로 지어진 깔끔한 주택에 대한 매매수요와 임대수요가 동시에 늘어났다. 재개발을 통해 셋방이 즐비하던 달동네가 고급아파트단지로 변모하는 것이 대도시에서는 일상적인 풍경이 되었다. 재개발이 아니더라도 단층 셋방들이 4층짜리 다세대나 연립으로 빠르게 재건축되어 나갔다.

당연히 집값도 빠르게 올랐고 전셋값은 더 빠르게 올라서 아파트의 경우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어느덧 매매가의 60%에 이르게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시기 제1금융권의 주택담보대출기준도 매매가의 60%였다는 것이다. 실상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과 변명이 있을 수 있지만 수치만 놓고 보자면 집을 살 때 은행에서 빌리든 전세를 놓든 집값의 40%만 있으면 자가소유에 도전해볼 수 있었다는 게 된다. 문제는 당시의 주택담보대출금리가 가장 저렴한 것이 연6% 정도였다는 점이다. 4억짜리 집을 2억4천만 원 대출을 끼고 구입하면 한 달에 이자만 120만 원이다. 목돈 1억6천만 원을 들이고 내 명의의 집을 장만했지만 실상은 120만 원짜리 월세에 사는 것과 같은 셈이다.

그래서인지 이 시기부터 이상한 풍습이 관찰되기 시작하는데 시세차익이나 임대소득을 노리지 않는 경우임에도 구입한 주택에 직접 거주하는 대신에 전세를 놓고 자신들도 다른 주택에 세들어 사는 자가소유자이면서 세입자인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출금에는 이자를 내야 하지만 전세금에는 이자를 지불할 필요가 없으니 일단 집값이 더 오르기 전에 집은 사놓고 목돈을 더 마련한 후에 새 집으로 들어가려는 경우에 해당한다. 안정적인 소득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고려해 볼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집값의 40%만 있으면 구입할 수 있는데 60% 수준의 전세를 선택한 세입자들이 많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경우가 있을 수 있지만 4억짜리 주택을 기준으로 생각해보자면, 집값의 40%인 1억6천만 원을 도저히 마련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대신에 전세보증금에 해당하는 집값의 60%인 2억4천만 원 중 2억 원을 연3.3% 금리의 근로자서민대상 전세대출로 마련하면 한 달에 55만 원을 이자로 부담하면 된다. 4천만 원만 모아두었다면 한 달 55만 원에 4억짜리 집을 얻어 살 수 있으니 서민들에게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이 당시 강남권의 창 없는 1.5평 고시원 가격이 40만 원 정도였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어찌 되었든 이런 서민들이 기꺼이 전세를 부담하였기 때문에 고가의 아파트가 건설되기도 전에 모델하우스에서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서울시에 공급된 주택은 20만4천 세대였다. 같은 기간 자가소유자이면서 세입자인 가구주는 16만6천 명 증가하였다. 이는 공급된 주택의 81% 달한다. 자기 집이 있는데 다른 집에 세들어 살아야 하는 사람들, 이들 중 상당수는 주택산업 활성화에 기여한 대가로 하우스푸어가 된 셈이다. 이처럼 무리한 주택구매가 전세를 활용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역으로 해석해본다면, 공공에 의한 재정지원이 전무한 상황에서 전세라는 제도가, 도시화에 대응한 주택의 대량공급에 실질적인 기여를 하였다고 볼 수도 있다.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깔끔한 주택들은 집주인과 세입자가 협력하여 만들어 낸 것이다. 윤리적으로 따지자면 주택을 통해 파생되는 이익을 세입자들도 같이 공유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처럼 자가소유에 대한 욕구와 이를 단기간에 실현가능하게 한 전세제도 등의 시너지로 인해 대도시 지역의 경우 아파트가 전체 주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0%를 넘어서게 된다. 이와 같이 고가의 주택이 늘어나면서 점차 저렴한 전셋집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방 한 칸 전셋값이 수천만 원이 되었다. 물론 전셋값이 5천만 원이더라도 연3.3% 금리로 전세대출을 받을 수 있다면 한 달에 14만 원 정도만 부담하면 된다. 하지만 방 한 칸을 전세로 얻고 싶은 사람들은 대체로 안정적인 소득이 없는 사람들이다. 신용등급이 낮아 연3.3%의 전세대출을 이용할 수 없다. 결국 보증금 천만 원에 월30만 원의 월세를 택할 수밖에 없다. 보증금 천만 원이 없다면 창문도 없는 고시원에 월40만 원을 내면서 살아야 한다.

현재의 시장구조에서는 집값이 오르고 그에 따라 전세값이 오르면 덩달아 월세 부담도 가중된다. 매매, 전세, 월세를 대체제로 보고 한 쪽의 수요가 커지면 다른 쪽의 수요가 작아지니 한 쪽의 가격은 오르고 다른 쪽의 가격은 내린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있지만 실제로 그런 현상이 관찰되지는 않는다. 같은 주택이 매매, 전세, 월세라는 가격표를 달고 있을 뿐이고 그 수준은 결국 우월적 지위에 있는 주택소유자가 정하는 양상이다. 심지어 소유자들의 담합도 존재한다. 그 주택을 마련하는데 세입자들도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는 것은 완전히 무시되고 있다.

최근 언론에서는 요즘 같은 저금리에 전세를 놓는 것은 이득이 되지 않으므로 월세로 전환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조의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겪어 온 주택공급의 역사를 무시하는 것이다. 애초에 전세라는 것은 임대수익을 목표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임대소득을 노린 것이었다면 애초에 주택가격의 30%에 그치는 전셋값이 형성될 리 없는 것이다. 시급하게 많은 주택을 만들어야 하는데 시민들의 경제적 여력은 부족하고 공공에서도 지원할 재원이 없는 상황에서 자가소유를 선택한 계층과 세입자로 남는 것을 선택한 계층의 공생을 위한 방편이 전세제도였던 것이다. 이런 과거를 무시하고 소유자의 이익만을 두둔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것일까?

어떤 제도가 보편화 되었다는 것은 사회 전체의 암묵적 합의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입자에게 비교적 유리한 수준에서 가격이 결정되는 전세제도의 보편적 확산은 주택을 영리의 수단으로 삼는 것은 실제로 주택을 필요로 하는 서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라는 사회적 공감대와 관련이 있다고 여겨진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장관 후보자의 낙마 요인 중에 1순위가 부동산투기였던 것처럼 주택을 통한 이익의 추구는 공공연하게 자랑할 만한 행위는 아니었으며, 공공정책도 부동산투기를 억제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주택을 사놓고 시세차익을 노리는 것도 지탄의 대상인데 세입자를 상대로 과도한 이득을 챙기는 것은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합의와 공감대가 명확하지는 않았다는 것이 문제이다. 주택을 가지고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뭔가 잘못된 것이라는 찜찜함이, 200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자본의 자유가 사회정의 실현과 기본권보장에 우선한다는 인식과 맞물리면서, 주택을 소유한 사람들이 수익을 얻을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대통령의 발언이 나올 정도의 당당함으로 전도되었다. 이제 고위 공직자의 부동산투기 의혹은 사과 한마디로 넘어갈 수 있는 하찮은 일로 취급되고 있는 듯하다.

주택소유자에게 임대소득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은 명백하게 세입자에 대한 배신이다. 우리가 몇 십 년 만에 이룩한 기적은 지금 소유자로 기록된 사람들만의 노력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모두가 어렵던 시절 주택을 구매한 계층과 그들을 뒷받침한 세입자들 공동의 노력에 의한 것이다. 이런 과정에 공공이 큰 도움을 주지 못했다면 최소한 주거권 보장을 통해서 세입자들의 공헌을 보상해야 한다. 이제 개발은 끝났으니 소유자들에게 유리하지 않은 전세는 더 이상 필요치 않으며 거추장스러울 뿐이라는 논리는 배은망덕이고 정의롭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집을 가지고 돈을 벌 수 있게 해주면 전세의 도움으로 집을 장만했던 서민들을 포함한 모든 주택소유자에게 이익이 돌아가기는 하는 걸까? 2012년 기준으로 전국의 주택소유자는 1,196만 명이다. 이 중에서 1,059만 명은 주택 1채만을 지니고 있는 실수요자들이다. 이 사람들의 대부분은 임대소득을 얻을 수 없다. 자기가 살고 있는 집을 세를 놓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임대소득을 올릴 수 있는 사람은 전국에 137만 명이다. 5천만 인구의 3%에 불과하다. 반면에 전국의 세입자는 46% 정도일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전세가 폭등을 방치하고 월세로의 전환을 당연시 하면서 3%의 이익을 위한 46%의 희생을 강요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46%의 국민들도 주택의 소유자로 등록되어 있지 않을 뿐, 현재의 주택을 공급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비용을 부담한 사람들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세입자들에게도 현재의 주택이 주는 혜택을 누릴 분명한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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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