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이슈2008.07.05 00:23

꼬박 두 달을 채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재협상과 고시철회’ 그리고 ‘이명박 정권 퇴진’이라는 계속된 외침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변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는 말한다. 이제 촛불을 거둘 때가 되었다고, 촛불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결국 촛불은 훅 불면 꺼지는 잠깐의 환상이었을까?

아니다. 분명 대한민국은 변했다.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한다는 사실은 변함없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여전히 대통령이라는 사실은 변함없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변했다. 바로 2008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이 바뀐 것이다.

생각이란 나약한 것이기도 하지만 모든 것의 시작이기도 하다. 특히 그것이 한 개인의 생각이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다수의 생각이라면, 그것은 한 사회의 상식이라 부를 수 있다. 상식은 사회구성원이라면 알아야 하는 기본지식이자 가치판단의 최저기준이다. 상식 이하의 행동, 상식적으로 어긋나는 행동은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촛불이 꺼지지 않았던 지난 두 달, 대한민국에 새롭게 자리 잡은 상식을 살펴보자. 그리고 나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그래도 여전히 촛불이 이루어놓은 것이 없는지, 과연 촛불을 접어야 하는 것인지 말이다.

첫째, 헌법 1조는 지켜져야 하며, 국민이 원하면 대통령도 리콜해야 한다는 생각

초기 ‘재협상’으로 시작되었던 촛불집회는 시민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이명박 정권 퇴진’으로 확대되었다. 이전에도 ‘안단테’라는 아이디의 고등학생이 인터넷을 통해 ‘이명박 대통령 탄핵 요구 1천만 명 서명운동’을 제안하여 주목 받았으며, 국민주권수호연대와 이명박 탄핵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등 다양한 곳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이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대한민국의 주인, 주권자로 인식했음을 뜻한다. 그렇기에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값싼 쇠고기를 먹게 해주겠다’는 말로 팔아버리고, 이에 반대하는 촛불을 좌경불순세력으로 몰아대는 대통령을 참을 수 없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1조의 내용을 담은 노래가 촛불집회의 대표곡이 된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은 6월 9일부터 7월 4일까지 인터넷을 통해 ‘촛불혁명과 한국 민주주의’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총 400명이 설문에 참여했다. ‘국민이 스스로 통치한다는 민주주의의 원리에 비추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그 원리가 구현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45.3%가 ‘그렇지 않다’, 43%가 ‘매우 그렇지 않다’고 응답하여 전체 88.3%가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또한 ‘촛불집회가 향후 우리나라 민주주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49%가 ‘정부의 정책에 대한 국민의 감시와 비판이 활발해질 것이다’, 36%가 자연스럽게 제도의 민주적 개선 요구로 모아질 것이다’라고 응답했다.


▲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이 진행한 인터넷 설문조사 ‘촛불혁명과 한국민주주의’


이처럼 국민은 스스로를 주권자로 인식함과 동시에 한국 민주주의 한계를 절실히 느끼게 될 것이다. 건강과 직결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같은 중요한 문제를 결정하는 것은 국민이 아니었다. 국민의 뜻과 다른 정치를 하는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 또한 없다. 촛불집회로 성숙된 국민의 주권 의식은 국민투표, 국민소환, 국민발안 등의 강화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제도적 개선으로 이어질 것이다.

둘째, ‘배운여자’와 ‘배운남자’는 더 이상 정치에 무관심하지 않다는 생각


▲ 인터넷 패션 카페 ‘소울 드레서’ 의 깃발과 회원들 ⓒ 시사인
한국사회에서 정치는 오랜 기간 무관심과 냉소의 영역이며, 일부 정치인들의 몫이었다. ‘정치적인 것’이란 말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동시에 선거에서의 낮은 투표율을 보며 ‘국민들이 정치에 무관심하다’, ‘국민들이 보수화되었다’ 등의 비판도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10대 소녀들이 앞장서서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 뿐 아니라 대운하, 민영화, 학교자율화를 비롯한 각종 정책에 관해 국민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현장이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의 ‘아고라’다. 아고라에는 하루에도 십만 건 가까운 글이 올라온다. 그 중 대부분이 각종 정부 정책과 사회 문제에 관한 글이며, 정부의 논리와 정책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다.

‘100분 토론’ 역시 국민들의 관심에 부응해 많은 관심을 누리고 있다. 평일 심야에 진행되는 시사토론 프로그램이지만, 방송이 된 다음날이면 100분 토론에 출연했던 패널이 인터넷 검색어 순위에 오를 정도이다. 최근에는 다음의 아고라에서 ‘100분 토론 방영 시간을 앞당겨달라’는 청원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너... 배운여자인가?’ 라는 깃발을 들었던 인터넷 패션 카페 ‘소울 드레서’는 정치 사회 문제에 전혀 관심 없을 것만 같던 20~30대 여성들의 활발한 활동으로 주목을 받았다. 본디 패션 카페였음에도 불구하고, 요즘에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를 비롯한 정치 사회 이야기가 더 많을 정도라고 한다. 이런 변화 때문에 촛불집회가 정치적이라서 불법이라거나 배후가 있다거나 등의 논리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셋째, 사실을 왜곡 보도하는 조중동, 언론으로서의 권위가 사라졌다는 생각

촛불집회와 함께 조중동 거부 운동 또한 진행되고 있다. 초기에는 촛불집회 현장에서 조중동 기자들의 취재를 거부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조중동 절독 운동, 조중동 광고주 불매 운동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난 9일 6.10 국민대행진을 앞두고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조중동 구독거부 서명운동’을 진행했던 언론개혁시민연대는 당시 4000여명의 서명을 받았다. 또한 회원수 4만 8천여 명의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 인터넷 카페는 조중동 절독과 광고불매, 집단 소송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


▲ 경향신문과 한겨레의 1월부터 6월까지의 판매부수 현황 ⓒ 데일리 서프라이즈 재인용


한편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상대적으로 이익을 얻고 있다. 특히 5월 독자현황에서 한겨레는 5배, 경향신문은 15배 이상 늘어나는 성장세를 보였다. 언론사 인터넷 페이지뷰 수치에서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높은 상승을 보인 반면, 조중동은 수치가 떨어지거나 제자리 걸음에 머물고 있다.


▲ 다음 디렉토리 검색으로 본 한 주간의 페이지뷰 분석 결과, 경향신문과 한겨레가 약진을 보였다 ⓒ 오마이뉴스 기사 재인용


▲ 다음 디렉토리 검색으로 본 한 주간의 페이지뷰 분석 결과, 조중동은 쇠국기 국면이라는 폭발적 이슈에도 불구하고 수치가 떨어지거나 제자리 걸음을 보였다 ⓒ 오마이뉴스 기사 재인용

조중동의 친일 경력과 진실 왜곡 보도에 대한 비판은 꽤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이처럼 많은 시민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는 자신이 실제 겪은 촛불집회의 모습과 조중동에 보도되는 촛불집회의 모습이 매우 다르다는 사실을 국민들이 체감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디지털 기기와 인터넷을 활용한 1인 미디어의 활약으로 많은 국민들이 기성언론에서 대안언론으로 관심을 옮기고 있는 것도 한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조중동이 이전에 누렸던 권위를 되찾기는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중동이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이 여전하다는 것도 사실이다.

넷째, ‘민영화’와 ‘자율화’는 생각만큼 좋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

촛불집회의 또다른 의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 바로 민영화다. 민영화의 본질이란 결국 영리화임을 알리기 위해 진보진영은 꽤 오랜시간 노력해왔다. 이전까지 대체로 국민들은 공기업은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민영화가 필요하며, 민영화를 반대하는 것은 공기업들이 제 밥그릇을 챙기는 것이라는 쌀쌀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요즘은 민영화라는 허울좋은 이름의 기만성을 잘 알고 있다는 듯, 민영화 반대를 외치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높다.

민영화를 하면 국가가 책임져야 할 최소한의 의무마저 시장에 넘겨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국민들이 부담해야 할 비용이 높아진다는 것이 가장 큰 반대 이유이다. 특히 의료나 수도, 전기 같이 생활에 꼭 필요한 분야에서의 민영화는 국민들에게 생존의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촛불소녀들을 거리로 나오게 만들었던 학교 자율화 조치 역시 교육이라는 기본권의 양극화를 불러온다는 이유에서 많은 반발을 샀다. 국민들이 정부 정책에 관심이 많아지고, 경제상황도 점점 어려워지면서 민영화와 자율화라는 허울좋은 이름에 가려진 본질이 드러나고 있다.

다섯째, 서로가 서로를 믿고 도울 수 있다는 생각

촛불집회에서는 오늘 처음 만나는 사람도 일행이 된다. 힘들어하는 서로를 위해 누군가는 김밥을 준비하고, 누군가는 물을 나눠주고, 누군가는 공연을 한다. 환자가 생겼을 때도 의료진을 찾아 부르면, 주변 사람들이 모두 한 목소리가 되어 의료진을 불러준다. 다른쪽에서 전경의 진압이 시작되었다거나 밀리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도와주러 나선다. 시민들을 보호하겠다며 군복을 입고 나온 예비군들은 이미 촛불집회의 스타가 되었다.

집회 참가자들이 무엇인가 판단해야 할 문제가 생겼을 때 즉석에서 토론을 벌이는 모습 역시 그 누구보다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의 판단과 결정을 믿기 때문이다. 반대로 스스로가 판단력과 결정력을 갖고 있다고 자신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인터넷 공간에서도 마찬가지다. 만약 혼자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생겼거나 고민이 생겼다면, 아고라에 가서 도움을 청하면 된다. 아고라에는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글 외에도 사소한 고민거리들까지 수많은 글이 올라온다. 그리고 그에 대한 해결책들이 제시된다. 전문가가 따로 필요없는 셈이다.

촛불은 꺼지지 않는다 

촛불은 한국 사회를 바꿔갈 주체로 자신감 넘치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국민들을 등장시켰다. 촛불은 국민들이 분명히 구별해야 할 적을 인식하도록 해주었다. 또한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갈 사회에서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인정하고, 어떻게 하나의 공동체가 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촛불은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의식을 새롭게 변화시켰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갈 핵심조건을 마련했다. 한번 일어난 의식의 변화는 되돌리기 어렵다. 한마디로 국민들의 입맛이 높아진 것이고, 눈이 높아진 것이니 기대치를 채울 수 있는 사회적 변화가 반드시 따를 수밖에 없다. 우리 국민들은 이미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을 경험해버렸기 때문에 앞으로도 촛불은 쉽게 꺼질 것 같지 않다.

설령 촛불을 꺼야 한다는 여론에 밀려, 혹은 정부의 강경진압으로 인해 촛불이 꺼지더라도 촛불이 거둔 성과가 없다고 허망해할 필요는 없다. 촛불이 만들어낸 한국사회의 새로운 상식을 분명히 인식하고 그것이 후퇴하지 않도록 지켜간다면, 언젠가는 그날의 촛불 덕분에 우리가 새로운 사회를 열 수 있었다고 말할 날이 올 것이다.

이수연 | 새사연 연구원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