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공동선언 이행이나 잘할 일이다



2007 남북 정상회담에서는 10.4 공동선언이, 6자회담에서는 10.3 합의가 발표되어 민족사적 대전환기를 마련할 수 있는 다시없는 기회를 마련했었다. 그러나 대선에서 대북 강경세력이 집권하게 되면 북미관계 진전에도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는 많은 우려가 결국은 현실화되고 있다.


북미관계가 남북관계를 규정하고 통제하는 측면이 강하지만, 어느 한 관계가 다른 관계를 절대적으로 지배한다고 볼 수는 없다. 또한 미국과 남한의 지배세력 내부에 적대정책과 개입정책을 추구하는 입장들이 혼재되어 있어 특정 관계를 지속할 수도 없다. 관계란 구성 요소들의 선호와 행위의 규칙성이라고 할 때, 관계를 만드는 추진세력들이 변하면 언제든지 새로운 관계로 재구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등장으로 위기 맞은 북미관계


북미관계를 방해하는 가장 큰 요인이 미국의 대북강경세력의 준동이라고 할 때, 이명박 정부의 등장은 부시 정부의 대북정책을 다시 뒤집어엎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북한이 핵실험을 했을 때 미 강경세력이 주도권을 놓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중국과 남한의 일정한 ‘선긋기’였다. 그러나 남한에서 강경세력이 등장하면 6자회담에서 중국을 압박할 수 있는 세력 구도의 재편이 발생하므로 상황은 달라지게 된다.


따라서 미국 내 대북 접근에 대한 분파의 대립은 언제든지 새로운 국면을 만들고, 이에 따라 남북관계 또한 파행을 겪고, 이는 또다시 핵문제에 악영향을 끼치는 악순환의 관계로 전환될 수 있다. 주도세력이 바뀌면 모든 상황이 역전될 수 있음을 2001년 부시 정부의 등장으로 우리는 이미 경험했다. 여전히 미국 내 대북 정책의 차이로 대립이 존재하지만 최소한의 대가로 북한 핵무기 폐기라는 목표를 달성하려는 ‘국익’에 합의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북미관계 진전 위해 미국의 결단 필요해


한편 북미 2단계 핵문제 해결의 과정을 보면, 북한은 지난 11월 5일부터 시작하여 연말까지 핵시설 불능화를 ‘기술적으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종결하고, 현재 폐연료봉을 꺼내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이미 지난 11월에 핵 신고서를 작성하여 미국에 통보하였으며, 우라늄농축 ‘의혹’과 관련하여 수입 알루미늄관이 사용된 군사시설까지 참관시켜 주며 성실히 해명하고 있다.


반면에 지난 12월 중순 2004년 북한인권법을 만든 미 브라운백 상원의원이 북한의 ‘테러지원국’ 지정과 ‘적성국무역법’ 적용을 해제하지 말자는 요구 법안을 제출하는 등 미국은 사실상 10.3합의 이행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즉 부시 행정부는 여전히 테러지원국과 적성국무역법 해제를 위한 정치적 합의와 결단을 내리지 못한 상태다.


새 정부 대북관계에는 철학도 정책도 없다


사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 정부의 ‘비핵개방 3000’은 남북관계를 통해 북핵문제 해결을 촉진하겠다는 구상으로, 핵문제 해결 없이는 남북 대화와 경제협력을 현상유지하거나 중단하겠다는 것과 다름 아니다.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에 북한의 핵무기 개발로 맞서 위기가 고조된 북미 핵문제의 본질에 비추어, 핵문제 해결을 위한 우리의 대북정책은 어떻게 하면 북미 대화를 촉진하고 중재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핵무기를 포기하고 개방하면 10년 안으로 국민소득 3000달러를 올려주겠다”는 것이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의 핵심이다. 통일부가 발표한 2008년 실행계획을 보면, “남북대화를 통해 북핵문제와 관련한 우리와 유관국의 입장을 전달하고, 북한의 핵폐기 결단을 촉구한다”고 한다. 세계 최강 미국이 지난 15년 동안 정치군사적 협박으로도 안 되는 일을 ‘입장 전달’, ‘비핵개방 3000’ 구상으로 추진하겠다니 실소를 금할 수가 없다.


대북관계 후퇴 없으려면 10.4 공동선언 이행해야


이런 정책 추진이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06년 7월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자 노무현 정권은 핵문제 해결을 위해 식량지원을 지렛대로 활용하겠다며 대북 쌀지원을 유보한 적이 있다. 결국 남북관계는 단절되고 북미관계는 극도로 악화되어 북한은 10월 핵실험을 실시하였다. 우리 정부가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고 오히려 상황만 악화시켰던 경험을 똑똑히 기억할 것이다.


철학과 정책이 없다면 지난 정권에서 합의한 10.4 공동선언이나 제대로 이행하면 될 일이다. 남북경협사무소 직원의 철수를 요구한 것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북한의 첫 번째 공식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민족사의 시계가 5년 동안 잠들어 멈출지 아니면 전진해나갈지는 이제 우리 정부의 태도에 달렸다. 이 시점에서 우려스러운 남북관계를 복원하는 길은 쌀과 비료를 지원하는 길임을 유념해야 한다. 


여경훈 khyeo@cins.or.kr / 새사연 연구원


이 글은 이스트플랫폼에 실렸으며 새사연 뉴스레터 R통신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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