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6.20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조세도피처에 세운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저질렀을 것으로 추정되는 역외탈세 행위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인터넷 언론사 뉴스타파가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와 함께 7차례에 걸쳐 대표적 조세도피처인 버진아일랜드의 한국인 소유 페이퍼컴퍼니를 폭로했다. 

그런데 여기에는 일부 중견 재벌가 인사가 포함되기는 했지만 국내 최대 재벌그룹인 삼성이나 현대자동차·SK·엘지 등은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 정말 우리나라 핵심 재벌들은 역외탈세 같은 것은 하지 않는 준법정신을 갖고 있기 때문일까.

바다 건너 미국에서는 다른 소식이 들린다. ‘사악하지 말라’는 사훈으로 유명할 정도로 깨끗한 이미지를 가진 구글이나 애플·아마존 같은 IT회사들이 최근 역외탈세 등의 혐의로 도마에 오르고 있다. 예를 들어 구글은 영국에서 32억파운드의 돈을 벌었으나 법인세는 600만파운드만 냈다는 사실이 최근에 밝혀졌다. 애플 역시 2012년 아일랜드 자회사를 이용해 90억달러의 세금을 덜 낸 것으로 알려져 미국 의회의 조사를 받고 있다. 아마존은 지난해 영국에서 43억파운드의 매출을 올렸는데 법인세는 매출의 0.1%만 낸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그럼 뭔가. 우리의 핵심 재벌기업들은 미국의 최고 IT회사들보다 높은 도덕성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하나 유의할 것이 있다. 지금 뉴스타파가 폭로하고 있는 조세도피 행위는 대표적인 노골적 조세도피처 중 하나인 버진아일랜드에 있는 페이퍼컴퍼니 소유주가 누구인지에 국한돼 있다. 이런 식으로는 대부분 개인적 수준의 조잡한(?) 역외탈세 행각들이 폭로되는 정도로 제한될 가능성이 높다. 

글로벌 대규모 역외탈세 주인공들은 따로 있다. 글로벌 금융기업과 다국적 기업들이 바로 그들이다. 글로벌 다국적 기업들은 조세도피처를 포함해 전 세계에 공식적으로 수백 개의 자회사를 두고 다양하고 복잡하게 내부거래를 한다. 2008년 미국 연방 회계감사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 100대 기업 중 약 80%가 조세도피처에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다. 또한 국경을 넘나드는 세계 교역의 3분의 2는 다국적 기업 내부에서 발생한다. 음성적으로 조세도피처에 자산을 숨겨 두거나 불법적인 거래를 하는 일부 부유층은 몸통이 아닌 것이다.

특히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확산되면서 다국적 기업들은 낮은 세금과 적은 규제, 비밀주의를 기업에게 보장하는 나라를 찾아 경쟁적으로 자회사를 세우기 시작했다. 각 국가에 세금을 내리고 규제를 풀지 않으면 다른 나라로 가겠다고 협박도 한다. 세계화되는 글로벌 다국적 기업들의 공세 앞에 국경에 갇힌 국민국가들은 무력했고, 결국 신자유주의 분위기에 휩쓸려 조세인하·규제완화·임금인하 경쟁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다국적 기업들이 사용하는 전형적인 역외탈세 수법은 바로 합법과 불법 기준이 모호한 ‘이전가격 시스템(transfer price system)'이다. 예를 들어 한국에 본사를 둔 자동차 회사가 프랑스에 법인을 세우고 자동차를 판매했다고 하자. 프랑스 법인이 직접 소매 판매하는 대신 세금이 낮은 아일랜드 법인에 원가보다 조금 높게 넘기고, 아일랜드 법인에서 이익을 크게 붙여 판매했다면 프랑스 법인은 이익이 거의 없을 것이므로 세금도 거의 안 낼 것이다. 한술 더 떠서 세금이 낮은 이웃 룩셈부르크에 금융법인 계열사를 설립한 뒤 프랑스 법인이 여기서 금융대출을 받게 하고 그나마 이익도 이자비용으로 룩셈부르크 금융법인에 돌려줬다면, 프랑스 법인은 매출이 아무리 많아도 세금을 한 푼도 안 낼 수 있다. 이익은 없고 비용만 잔뜩 늘어났으므로. 

이런 식으로 소득은 저세율 국가로, 비용은 고세율 국가로 이전시키는 방법을 통해 역외탈세를 하는 것이다. 이런 행태는 수많은 계열사와 자회사의 중개망을 통해 이뤄진다. 앞서 언급한 구글·애플·아마존이 했던 수법도 이렇게 이전가격 시스템을 통했을 개연성이 높다. 

우리나라로 돌아와 보자. 알다시피 우리나라 재벌은 엄청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총수가 있는 43개 재벌이 거느린 계열사는 1천500곳이 넘는다. 삼성도 76곳이나 된다. 하지만 여기에는 해외 계열사가 빠져 있다. 재벌들의 해외 계열사는 국내 규모의 두 배 가까이 되는 2천693곳이다. 삼성그룹은 440곳이 넘고, 현대차와 엘지·SK·롯데도 200여곳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재벌들도 2000년대 이후 글로벌 기업으로 진화함에 따라 전 세계 국가에 수백 개의 계열사와 자회사를 거느리면서 각 국가별 세율 차이와 제도 차이를 악용해 역외탈세를 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할 것이다. 국내에서 일감 몰아주기를 서슴지 않고 자행하는 것을 감안해 볼 때 결코 무리한 예측이 아니다.

만약 우리 정부가 정말 제대로 조세정의를 세우고 싶다면, 막대한 해외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는 재벌들의 ‘해외 계열사를 포함한 내부거래’를 주기적으로 조사해야 한다. 우선 조세도피처에 있는 핵심 재벌들의 해외 계열사가 얼마나 되는지 조사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해외계열사 사이의 편법적인 내부거래를 통한 이전가격 조작으로 납세의 의무뿐 아니라 금융규제·형법 준수의무와 상속규정을 위반하지 않았는지 감독할 필요가 있다. 특히 자본규모·매출·고용 등을 감안해 이익이 지나치게 많거나 적은 해외 계열사는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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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