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6.26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최근 서울 강변역 부근에 서울시가 700실 규모의 공공기숙사를 지어 대학생들의 주거를 안정화하려는 계획에 대해 지역주민들이 반발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우범지대화 우려’ 등 다소 당황스런 이유를 들어 반대를 하고 있단다. 대학생들을 보는 시선이 언제부터 그렇게 차갑게 됐는지도 놀라울 뿐 아니라 자신들이 보유한 집값, 즉 재산권에 대한 집착이 젊은 대학생들의 안정적인 주거권 보장에 대한 배려를 간단히 무시해 버리는 현실도 무섭다. 목동에서는 주민들이 인구 과밀화와 교통대란, 유수지 해체로 인한 안전성 문제를 이유로 행복주택 건설을 완강히 반대하고 있는 중인데 이 역시 ‘교육특구’ 이미지 상실과 집값 하락에 대한 우려가 자리 잡고 있다

늘 그렇듯이 구체적 현실은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혀 있을 것이다. 또한 어느 한 개인이나 특정지역 주민만의 양상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 대부분이 최근 십수 년 동안 유사한 상황에서 비슷한 행동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택을 소유한 주민들이 어떤 이유로든 주거공간이 마땅치 않은 젊은 대학생들의 주거공간 건축을 반대하고 있다면, 그 내부에 ‘부에 대한 욕구’가 자리 잡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도대체 어디까지 가면 부에 대한 욕구가 멈춰질 수 있을까.

케인스 전기 작가로 유명한 로버트 스키델리스 부자의 최근 저작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에서는 ‘끝없는 욕구’와 ‘상대적 필요’를 구분한다. 좋고 안락한 삶을 위한 객관적인 조건인 '필요(needs)'는 양적으로 한정돼 있지만 '욕구(wants)'는 순수하게 심리적인 것이므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무한히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거에는 인간의 끝없는 욕구가 사회의 도덕 윤리나 종교 등에 의해 일정하게 제어됐는데, 자본주의 체제가 물질적 부에 대한 인간의 무한한 욕망과 탐욕을 모든 사회적 제약과 규범으로부터 해방시켰다는 것이다. 그 결과 자본주의는 과거 시대와 비교가 안 되는 거대한 생산력과 물질적 풍요를 창조했지만 한편으로는 끝없는 불만족과 탐욕 또한 체계적으로 창조하면서 부의 극단적인 불평등을 가져왔고 지금도 멈추지 않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가장 극단적이고 비이성적인 탐욕의 정점에 금융시장이 있다고 봤다. 현실 사물에 대한 가치는 잊은 채 숫자 그 자체에 불과한 가격만 보고 있다.

바로 그 모습이 지난 30년 동안 우리가 살아왔던 신자유주의라는 자본주의 최신 버전이었던 것이고 지금도 우리는 그 영향권 안에 살고 있다. 이미 주택을 가지고 있는데도 주택 없는 어린 학생들의 주거권보다 자신의 집값이 더 오르길 바라는 욕구가 압도하는 것은 이렇게 볼 때 개인의 탓이 아닐지 모른다. 이제는 이런 사고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야 하지 않을까. 부에 대한 탐욕은 엄청난 생산력 발전을 넘어섰다. 지구환경에 실질적으로 위협이 되는 단계에 와 있다. 놀라운 생산력 발전의 결과조차 1%만이 독식함으로써 역사상 가장 위험스런 불평등 수준까지 이르게 됐기 때문이다. 이제 ‘필요한 만큼’으로 돌아오고 ‘더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을 돌아보기 시작해야 한다. 

두 가지 보상기준을 생각해 보자. 하나는 성과를 기반으로 보상해 주는 것이다. 더 나은 성과를 낸 노동자에게 더 많은 연봉을 책정하는 것이 이런 방식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연공서열 임금체계가 깨지고 능력에 따른 연봉제가 확산되는 배경이 될 것이다. 이와는 달리 ‘필요기반 정의’에 입각해 분배를 하거나 보상을 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가장 절실한 사람에게 가장 먼저 혜택이 가도록 하는 것이다. 가장 치료가 급한 환자에게 가장 먼저 의료서비스가 제공돼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바로 필요기반 정의에 근거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제까지 신자유주의는 필요기반 정의를 무시하고 모든 것을 성과기반 보상체계로 환원했고, 더 나아가 작은 성과의 차이를 확대해 보상 격차를 확대시켰다. 그 결과 치열한 승자독식 경쟁을 통해 최고의 성과를 내서 최고의 보상을 얻는 데 집착하도록 만들었고, 사회적 격차가 벌어지는 것을 방치했다. 사회적 약자들의 최소한의 안전망은 무시됐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의 모습이다.

노동과 건강, 교육과 주거 등 모든 국민의 삶을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들이 있다. 헌법은 이를 국민의 기본권과 사회권으로, 헌법상의 권리로 명문화해 놓고 있다. 그렇다. 지금의 시대는 국민들의 사회적 필요를 사회적 권리로 실현시켜야 하는 그런 시대다. 그것이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거의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헌법에도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헌법 제23조2항) 제한돼 있다.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재산권을 보장해 주고 사적 이익을 추구하게 해 주지만, 공공의 이익과 충돌하면 사적 재산권보다 공공의 기본권을 우선해야 한다는 말이다. 주택재산을 늘릴 자유가 존재하지만 주거권과 충돌하면 적절히 양보할 수 있는 사회. 이것이 사회적 필요를 사회적 권리로 만들어 주는 사회다. 이제는 탐욕에의 집착을 버리고 필요를 충족시켜야 한다. 국민에게 시혜를 베풀려 하지 말고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 

 

*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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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