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6.11김병권/새사연 부원장


경제 민주화, 두 번째 라운드로 진입하나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민주당 전당대회가 치러지던 지난 5월 초까지만 해도 시대정신이라고 떠받들던 경제 민주화는 시대의 쓰레기통에 처박히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는 국정운영을 책임진 박근혜 대통령 자신이 취임 이전부터 경제 민주화 과제의 위상을 떨어뜨리기 시작하면서 예견된 일이었다. 박대통령은 취임 이후에도 "대기업을 옥죄고 때리고 이런 것은 옳지 못하다"거나, "제가 생각하는 경제민주화는 대기업 스스로 국민과 중소기업의 눈높이에 맞춰 사회에 대한 신뢰를 높여가는 것"이라면서 이른바 재벌의 '자율적 개혁'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대선 공약에 담겨 있었던 경제 민주화 공약에서 완전히 일탈하는 내용들이었다.

 

여당의 정책적 후퇴가 이토록 심각하면 당연히 야당이 이를 비판하고 견제하는 것이 일반적인 다당제 정치일 터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지난 5월 4일 개정한 당 강령에서 명백히 우클릭이라고 할 만한 행태를 보였다. 강령 전문에 "경제민주화와 함께 기업의 건전하고 창의적인 경영 활동에 대한 존중과 지원", "보편적 복지를 통한 복지국가의 완성 추구 및 복지와 함께 선 순환하는 질 좋은 성장 지향",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한 한반도 평화와 통일 실현"을 의도적으로 넣었기 때문이다. 정국을 주도하는 정부 여당도, 이를 비판해야 할 야당도 시대를 바꾸기 위해 경제 민주화를 추진할 방향도 의지도 상실한 순간이었다.

 

▲ <그들은 왜 회사의 주인이 되었나>(마조리 켈리 지음, 제현주 옮김, 북돋움 펴냄). ⓒ북돋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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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랬던 것처럼, 상황을 극적으로 반전시킨 것은 불공정하고 비민주적인 경제 현실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내기가 퍽퍽한 시민들이었다. 편의점 점주들의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이 잇달아 발생하던 와중에 남양유업 대리점 폭언 사태까지 공개되면서, '슈퍼 갑'에 대항하는 '힘없는 을'을 보호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갑자기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새로 민주당의 수장이 된 김한길 대표는 "자본과 노동의 문제라는 전통적인 갑을관계보다 훨씬 광범위한 갑을 문제가 많은 국민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라면서 '을'을 위한 경제 민주화의 전의를 불태웠고 그 분위기는 6월 임시국회까지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20만 편의점과 80만 대리점 점주들의 지지를 받으며 가맹사업법 개정안과 신규 대리점법이 과연 입법화될 것인지 사회적 관심이 어느 때보다 집중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부에서는 재벌 내부의 복잡한 지배구조를 개혁하는 비생활적 경제 민주화가 주종이던 지난해와 달리 '생활 밀착형 경제 민주화'로 진입했다면서, 최근 부활된 경제 민주화의 차별성을 지적하기도 한다. 어쨌든 새로운 국면에 들어선 경제 민주화가 이번에는 일정한 성과와 지속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규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실 우리나라의 경제 민주화 운동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특히 2011년 월가 점령운동을 전후로 세계적인 불평등 개혁운동과 긴축 반대운동, 복지축소 반대운동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편적인 세계 운동의 일환이다. 그러나 어느 나라도 '경제 민주주의'라는 높은 추상 수준의 담론 아래 시민사회와 정치권이 여기에 매달린 사례는 없었다.

 

이에 대해 이미 10여 년 전에 주주자본주의 비판과 경제 민주화를 내용으로 한 저서 <주식회사 이데올로기(The Divine Right of Capital)>(제현주 옮김, 북돋움 펴냄)를 써서 유명해진 미국의 마조리 켈리(Majorie Kelly)는, 최근 한국어판 서문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시대정신으로 격상된 경제 민주화 현상을 두고 "오늘날 어떤 나라에서도 이런 강력한 구호가 내걸리는 것을 찾아보기가 어렵다"고 놀라워했다.

 

그런데 10년 전 "정부를 변혁하거나 폐지할 권리가 시민에게 있듯이,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는 주식회사를 변혁하거나 폐지할 권리 역시 시민에게 있다"면서 대단히 강력한 경제 민주화 의제를 제기했던 저자 자신이 10년 후인 오늘은 이렇게 말한다. "경제 민주주의가 해결책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은 듯하다." 그녀가 지난해에 출간하고 최근 우리나라에 번역된 신작 <그들은 왜 회사의 주인이 되었나(Owing Our Future: The Emerging Ownership Revolution)(제현주 옮김, 북돋움 펴냄)은 바로 여기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물론 터무니없이 강도가 낮은 것이기는 하더라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후에 미국을 필두로 하여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금융 규제를 검토하거나 실시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그런데 이로 인해 세계 금융과 경제가 달라지고 있고 방향이 바뀌고 있다는 어떤 증거도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최근 유럽위기에서 보이듯 글로벌 채권시장을 매개로 하여 금융 자본은 남유럽 국가들의 운명을 쥐고 흔들고 있는 중이며, 초유의 양적완화로 풀린 자금이 여전히 실물경제가 아닌 주식시장으로 몰려서 주가만 끌어올리고 있는 중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제기되고 있는 경제 민주화는 경제력 집중과 독과점 행태의 주범인 재벌에 대한 규제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비록 시작도 제대로 못하고 있기는 하지만, 재벌개혁만으로 경제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국민들의 삶이 달라지는 조건이 형성될지는 여전히 미지수인 것 역시 사실이다. 지나치게 폭주하던 기존의 금융시스템과 기존의 독과점 시스템에 대한 규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비즈니스 윤리(Business Ethics)>라는 잡지의 대표이자 기업 컨설턴트로서 수십 년 동안 좋은 기업에 대해 연구하고 컨설팅하고 현장 조사를 해왔던 저자 마조리 켈리는 <그들은 왜 회사의 주인이 되었나>에서 이렇게 운을 뗀다.

 

"규제는 물론 필요하다. 언제나 그럴 것이고, 지금은 보다 많은 규제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보다 더 심오한 꿈을 꿀 때다. 공정성과 공동체, 지속 가능성과 같은 이상을 중심에 둔 경제, 정상적으로 기능할 때 공정한 결과를 창출해내는 경제, 소수보다는 다수에게 유익한 경제, 번성하는 지구위에서 인류가 오래도록 머물 수 있게 하는 경제를 꿈꿔야 한다. 그런 세상은 가능하다. 신전의 파수꾼이 입 밖에 내고 싶지 않는 이단의 말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대안은 있다."

 

새로운 대안 가치를 제시하라

 

▲ <주식회사 이데올로기>(마조리 켈리 지음, 제현주 옮김, 북돋움 펴냄). ⓒ북돋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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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저자는 경제학자 하먼 데일리를 빌어 현재의 세계경제가 한계상황에 도달했으며 과거의 규칙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강조한다. "물리학에서처럼 경제학도 마찬가지다. 고전적 이론은 한계에 가까운 영역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금융경제가 실물경제의 4배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커지고 여기에 더하여 파생상품시장이 세계 GDP의 10배까지 커진 한계상황이 오게 되면서 이제 시스템은 예상과 다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한계를 깨고 어떤 대안 구조를 고려해야 하는가? 어쩌면 지금 모든 진보적 사회세력의 고민이 멈춰있는 지점이 바로 여기가 아닐까? 선뜻 '이것이다'라고 확신을 갖지 못하고 주저하는 대목 역시 여기가 아닐까? 그렇다면 세계의 진보가 더 이상 진보하지 못하고 멈춰선 바로 그 장벽을 저자는 도대체 어떻게 뛰어넘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일까?

 

이 대목에서 마조리 켈리는 전통적인 경제학자가 아닌 현장 전문가로서의 자신만의 특유한 장점을 발휘한다. 경제학의 학술적 개념을 동원한 논리구조나 통계해석을 동원한 설명이 아니라, 잘 기획된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문제의 현실에 초점을 맞추고 추적해 나가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 흔히 국지적인 것에 초점을 맞춰 원래의 핵심 문제의식에서 벗어나기가 일쑤이지만, 저자는 많은 경험과 축적된 자료를 바탕으로 하여 핵심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미국의 어느 마을 협동조합에서 영국의 거대 백화점, 시골의 작은 어촌에 이르기까지 드라마틱하게 바뀌는 사례들을 어지럽게 좇아가면서도 일관된 맥락을 쥐려고 노력한다. 바로 '소유'의 문제다. 논리적 체계로만 대안을 설명하는데 익숙한 한국의 진보세력들도 이런 유형의 대안 고민 방법론은 그 자체로 유익하지 않을까 싶다.

 

또한 저자가 대안을 설계하기 위해 넘나드는 영역의 반경이 엄청나게 크다. 저자는 "사람이 지구의 지배자나 소유주가 아니라, 한 구성원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 우리가 창조하거나 건설한 모든 것은 지구위에 있는 게 아니라, 지구에 속한 것"이라면서, 대안 경제 모델이 기본적으로 생태경제의 토대 위에 있어야 함을 전제하고 있다.

 

동시에 저자는 단순히 새로운 대안 경제구조 모델을 제시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른바 추구하는 '가치'를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예를 들어 앞의 생태경제의 전제와 연동시키면서 우리에게 익숙한 '성장'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까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방식의 단선적 고속 성장은 최근 100~200년 산업사회에서만 일시적으로 가능한 것일 뿐 절대 영원히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미국 정책연구소(IPS) 수석연구원 척 콜린스 역시 최근에 "우리는 가치를 바꾸지도 않고, 권력의 엄청난 불균형을 해소하지도 않은 채, 규칙(rule)만 바꿔서는 성공하지 못한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이와 일맥상통한다.

 

"오늘날 우리 일상을 지배하는 구조는 개인주의, 성장지향, 최대의 금전적 이익 추구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세워져 있다. 그러나 새롭게 떠오른 생태적 감수성은 새로운 핵심가치들을 형성해내고 있다. 지속 가능성, 공동체, 충족성 등이 그 가치다. 이러한 가치의 전환은 새로운 종류의 생성적 소유구조, 근본적으로 새로운 종류의 경제를 길러낼 온상을 창출해낸다."

 

대안 모델을 제시하기 이전에 대안 가치를 제시하라는 저자의 주장은 직관적으로도 상당한 호소력이 있어 보인다. 최근 진보 노선과 가치논쟁이 활발한 우리에게도 생각해볼 여지가 꽤 있기도 하다.

 

대안은 우리 곁에 있었으며 커질 것이다

 

여기까지 왔다면 이제 주주 이익만을 추구하는 기존 모델의 한계를 뛰어넘으면서 새로운 가치들을 충족시켜줄 경제 모델은 무엇일까? 저자의 답은 여기서 의외로 너무 친숙한 해법을 제시한다. 지금 우리사회에서도 열풍(?)이 일고 있는 협동조합 모델이 저자가 중시하는 대안 모델의 하나인 때문이다.

 

저자는 자연과 동반자적 관계를 이루면서 지역 공동체가 관리하는 다양한 소유구조를 수년 동안에 걸쳐서 탐색한다. 지역 공동체가 소유하고 관리하는 멕시코의 '마을산림', 일종의 무허가 이동주택에서 살고 있는 뉴햄프셔 저소득층 주민들이 지역은행에서 대출받아 살고 있는 토지를 공동으로 매입한 '거주민 소유 공동체' 모델도 있다. 또한 덴마크와 독일, 미국에서 발견되는 협동조합 소유 풍력발전 모델도 있다. 공동체 풍력은 청정에너지 개발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제거하는데 도움을 주고, 거주민 소유 공동체는 부를 널리 확산하며, 마을 산림은 삼림파괴를 막는다는 점을 저자는 지적한다.

 

그리고 2009년 여성으로서 최초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엘리너 오스트롬이 강조했던 공동체에 의한 성공적인 공유지 관리이론에 천착하면서, 어떻게 하면 사적 속성과 공적 속성을 가진 제도가 풍성하게 혼합되어 자연 친화적이고 공동체 밀착적인 다양한 소유 모델, 운영 모델, 성장 모델들이 탄생할 수 있을까로 고민을 이어간다. 이 대목에서도 역시 저자는 또한 체계적인 논리구조와 법칙 규명 보다는, 새로운 현상에 대한 과감한 개념화와 패턴 모델링을 주로 시도한다. 건축학이나 IT분야에서 주로 적용되었던 패턴 이론을 대안 사회모델링에 적용한 것은 특히 흥미를 끄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식으로 저자는 네 가지 소유 모델을 제시한다. 우선 바다, 숲, 토지, 공원, 공공 발전소 등과 같은 공유자원에 대해 적용되는 '공동 소유와 공동관리' 모델이다. 둘째는 협동조합, 신용협동조합, 파트너십, 종업원소유기업 등을 모두 묶어서 '이해당사자 소유기업' 모델로 불렀다. 그리고 셋째로 사회적 기업을 따로 구분한다. 마지막으로 전통적인 사기업이지만 사회적 사명을 경영목표로 내걸고 있는 기업들, 북유럽에서 발견되는 재단경영기업 모델까지를 미래적 모델에 과감히(?) 포함시키고 있다.

 

사람들의 일반적 생각과 달리 이런 유형의 미래적 모델은 지금 현실에서도 의외로 많다는 점을 저자는 덧붙인다. 전 세계적으로 협동조합은 모든 다국적 기업을 합한 것보다 많은 사람을 고용한다. 미국에서는 1만개가 넘는 종업원 소유 기업이 있고 총 참여인원이 140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어쩌면 논리학에 익숙한 사람들이나 경제학적 엄밀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저자의 주장들이 너무 큰 얘기들을 넘나들면서 비약이 심하다고 생각하거나 반대로 절충적으로 섞어놓은 대안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을 냉정히 판단해봐야 한다. 미래사회의 소유구조, 기업구조에 대한 기존 논리들은 대부분 폐기처분된 상태가 아닌가? 지금은 섣부른 논리의 재구성보다는 현실에서 맹아적으로 발견되고 있고 곳곳에서 실험되고 있는 작은 경험들을 발로 뛰며 찾아내고 살펴보는 것이 아닐까? 이를 기초로 인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일지 모른다. 발로 뛰면서 새로운 싹을 조사하는 한편, 인문학적 상상력을 극대화하려고 시도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저자의 노력은 평가 받을 만하다.

 

"이익 극대화를 위한 기업 구조라는 단일 문화가 특정한 상황에만 들어맞고 다른 상황에서는 해로운, 산업화 시대만의 산물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그 구조는 어디에나 산재해 있지만 나는 그 시대가 끝날 수도 있다는 희미한 신호를 감지하기 시작했다. 바로 우리 시민이 깨어날 때 그 시대의 막이 내릴 것이다."

 

저자가 내리고 있는 결론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경제 민주화가 목표로 하는 방향은 어디일까? 어떤 대안일까? 적어도 그 하나의 해법을 저자는 제시해주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그들은 왜 회사의 주인이 되었나>는 경제 민주화를 다음 단계로 발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또 하나의 교과서가 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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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