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3.28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애플의 주도하에 일궈진 스마트폰 혁명은 글로벌 경제위기라는 불리한 경제 여건 속에서도 엄청난 속도로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의 일상생활 속으로 파고들었다. 이제 모바일은 성장속도가 가장 빠른 인터넷 접속도구가 됐다. 이메일이나 메신저 확인은 사무실 책상을 벗어나 어디서나 가능하게 됐다. 더욱이 스마트폰이라는 기기와 친화도가 가장 높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급격한 확산은 개인 일상의 변화를 넘어 경제·사회·정치 영역까지 새로운 변화를 촉발시키고 있는 중이다.

 

최근에는 일반인들이 접촉하는 프런트 엔드(Front-End) 영역을 넘어 백 엔드(Back-End) 분야에서도 새로운 기술혁신이 일어나고 있다. 이른바 빅 데이터(Big Data) 기술의 활용과 확산이다. 수십억 세계 인구가 수시로 사용하는 스마트 기기와 SNS에서 쏟아지는 엄청난 비정형 데이터가 서버기기에 쌓이면서, 이를 기반으로 과거에는 알 수 없었던 정보 분석과 추이 예측이 점점 더 가능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관련 하드웨어·소프트웨어 기술 역시 급격히 발전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를 전면에 내걸면서 출범한 뒤 행정부 구성을 거의 한 달을 미루면서까지 미래창조과학부 신설에 강한 집착을 보였던 것도 이러한 정보통신 기술혁신을 경제에 활용하고자 하는 욕구가 컸기 때문이라고 좋게 볼 수도 있다. 엄청난 기술혁신의 세계적 추세를 중앙정부가 적극적으로 정책범위 안으로 끌어들여 산업구조 개편과 일자리 창출에 활용하자는 것 자체는 사실 나쁜 발상이라고 할 수 없지 않은가.

 

그런데 몇 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스마트 시대에 오면서 우리 일상에 상당한 변화가 나타나고 생활의 편의성이 크게 좋아졌다는 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 변화와 편의성은 상당한 경우 ‘소비 영역’에 관한 것이다. 맛집을 찾기가 쉬워졌다거나, 결제를 하기가 편해졌다거나, 이메일이나 메신저를 사용하기 쉬워졌다는 것들이 그것이다. 스마트 혁명으로 정말 편리하고 쉽게 상품이나 서비스를 소비하기가 편하게 된 것은 틀림없다. 다만 돈이 두둑하게 있다는 단서가 붙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필요욕구를 채우기 위한 소비는 불편해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 없어서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소비의 편의성이 아무리 혁신돼도 소비할 돈이 없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러면 기술혁신은 일자리를 획기적으로 늘려 주는 그런 이익은 선물해 주지 않을까. 그런데 우습게도 적지 않은 사람들은 기술혁신이 일자리를 늘리기는 고사하고 줄여 왔다고 믿고 있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 30년 동안 노동시장에서 나타난 가장 큰 특징은 극심한 고용불안과 좋은 일자리 부족현상이었다. 한편에서는 신자유주의의 단기이익 추구 속성이 고용을 비용절감 대상으로 간주해 인건비 절감과 비정규직 선호에 매달렸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반면 일부 주류 경제학자들은 90년대 이후 정보기술 혁명과 자동화로 인해 상당한 작업들이 기계와 컴퓨터로 대체된 결과 체계적으로 일자리가 줄었다고 주장한다. 어떤 주장이 객관적 진실에 부합하는지는 지금도 논쟁 중이다.

 

그런데 역설적인 것은 둘 중 어느 경우를 수용하더라도 창조경제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용불안과 좋은 일자리 부족이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때문이라고 진단하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당연히 노동유연화 정책을 폐기하고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다시 보호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 정리해고 요건을 강화하고 각종 임금 차별을 금지하며 비정규직들이 노동조합을 쉽게 결성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다시 말해 노동정책을 전환해야 괜찮은 일자리가 확보되는 것이지 기술혁신을 하는 것이 순서가 아니라는 말이다.

 

기술혁명과 자동화가 고용불안과 일자리 감소의 원인이라는 주장을 수용한다면, 정보기술혁명을 전 산업으로 확장시키는 융합경제를 정책으로 도입하면 안 되는 것이다. 고용을 악화시키는 정책을 스스로 추진하겠다고 주장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면 기술혁신이 일자리를 줄이지 않는다고 생각을 바꾸게 되면 어떨까. 그렇다면 이제까지 고용불안과 일자리 감소의 원인이 기술혁신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때문이라고 인정해야만 한다. 스마트 혁명 이전에도 기술혁신은 계속돼 왔기 때문이다. 둘 중 어떤 것을 선택해도 결론은 기술혁신보다는 노동시장 정책 전환으로 결론이 난다.

 

사실 기술혁신이 거듭되는 것은 인류에게 이로운 것이다. 어렵고 힘든 노동으로부터 사람들을 벗어나게 해줄 뿐 아니라 더 많은 여가와 문화활동을 할 시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 모두 기술혁신 덕분이 아닌가. 더 단순하고 위험하고 힘든 노동은 기술혁신으로 대체해야 한다. 기술혁신으로 필요 노동시간을 더 줄여서 더 많은 여가와 문화활동을 할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즉 기술혁신은 더 고급하고 인간다운 노동을 하게 해 주고, 그조차도 더 적게 해 줘서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야 한다. 지금의 스마트 혁명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자본은 노동의 편의가 아니라 자본의 이윤을 위해 기술투자를 한다. 그 결과 더 많은 사람들을 작업장에서 쫓아낼 기술혁신을 추구하게 되고, 기존 직원의 노동시간을 줄이기보다는 직원 자체의 숫자를 줄이는 식으로 기술혁신을 활용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유죄인 것은 기술이 아니다.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

 

신고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